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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7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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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후산리 고가
역사관광충청북도

청풍 후산리 고가

청풍 후산리 고가는 청풍문화재 단지 안에 있는 전통가옥이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일대가 수몰되게 되자 청풍면 후산리에 있던 옛 가옥을 옮겨온 것이다. 수몰 전에는 사람이 거주했으나 지금은 청풍문화재 단지에서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사랑받고 있다. 현재 ㄱ자 모양의 안채만 남아있지만 일반적인 예로 보아 안마당 앞에 사랑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넌방 쪽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고, 부엌 쪽은 사람 인[人]자 모양인 간결한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어 오래된 양식을 보여준다. 가옥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주위로는 막돌 담장을 둘렀고, 가옥의 동쪽 뒤편 담장 앞에는 단칸 규모에 이엉을 얹은 아담한 광이 자리 잡고 있다. 집 안에는 수몰 전에 사용하던 가재도구 및 농기구를 전시하여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제천 후산리 고가는 평면 형식, 가구 형식 등에서 농촌 지역의 부농 주거로서의 전통적인 건축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 양식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안방 뒤에 수납공간인 윗방과 대청 한구석에 상제례를 위한 상청을 둔 특징이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제천 청풍관광마을
문화관광충청북도

제천 청풍관광마을

청풍관광마을은 마을에 남한강이 흘러 수운이 발달하여 교통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넓은 들이 있어 선사시대 이후 인류가 거주하여 왔으며 풍요로운 삶 속에 온화하고 순박한 인심과 산과 호수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청풍문화재단지를 비롯하여 수몰민의 애환이 담겨 있는 만남의 광장과 165m까지 높이 솟구쳤다 떨어지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수경분수 그리고 번지점프장, 인공암벽장과 폭포, 수상 경비행기장 등의 색다른 체험 관광지이기도 하며 유유히 흐르는 청풍호반 위로 여유와 낭만을 싣고 떠나는 유람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배시론로 3

역사관광충청북도

제천 청풍향교

제천 청풍향교는 고려 충숙왕 때 처음 지었다고 하는데, 원래 물태리에 있던 것을 정조 3년에 교리로 옮겼다가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지금은 대성전과 명륜당, 동재와 서재, 내삼문 등이 남아있다. 청풍 문화유산단지 내 청풍 망월 산성 남쪽 언덕 아래에 있으며 이전한 장소의 지형에 맞추어 남서향으로 3단으로 조성되었다. 건물의 배치는 교육 공간이 앞에, 제사 공간이 뒤에 배치된 전학후묘의 형식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학생들의 생활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교육 공간을 이루고 있다. 뒤쪽으로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어 제사 공간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서적·노비 등을 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이 남아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충주 대림산성
역사관광충청북도

충주 대림산성

대림산성은 충주 시내에서 수안보 방면에 솟아있는 산이다. 이곳은 과거 충주를 왕래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던 곳이고, 감시역할을 위해 좋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조망 좋은 등산로가 되었다. 등산로 초입은 가파른 편이지만 조금만 오르면 대부분 완만한 길들이 이어져 있다. 대림산성은 충주시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계곡을 포함한 대림산 정상을 둘러싼 형태를 띠고 있다. 대림산성이라는 명칭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 나타나며 조선 초기에도 대림산이 봉수대로 사용되었다. 산성이 있는 곳은 특히 경사가 심하여 암벽이 형성된 천연의 요새이다. 성내에는 우물 터와 건물터가 남아있고 정상에는 봉수 터가 있다. 인근에 기와 조각류 및 절터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고려 고종 대몽 항전의 역사적인 승전지로 충주 사람들이 항전하여 몽골군을 물리쳤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이곳은 충주 일원의 산성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성으로 축성 방법에서도 토석 혼축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재 산성의 형태와 축성 방법 등을 고려해 보면 충주 대림 산성은 평시에 병력이 상주하였다기보다는 성내 창고 등에 군량미나 병장기 등을 보관하였다가 유사시에 군관민이 함께 성으로 들어가 농성을 하였던 곳으로 이해된다.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

미륵리 불두
역사관광충청북도

미륵리 불두

미륵리 불두는 충주의 미륵사지에서 하늘재로 향하는 길가에 있는 불두이다. 불신은 없고 부처님 머리 조각이 미완성 상태로 놓였다. 2000년에 도난당했다가 2003년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이후 새로 만든 불신 위에 불두를 올려놓았다. 대형 화강암 불두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남아있고, 눈매는 일자형으로 보이며 입도 일자형으로 다소 작게 표현되었고 입술 윤곽선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코와 입 사이에는 사실적으로 음각 주름선이 나타나 있고 귀는 길며 코끝은 오뚝하지 않고 다소 편평하게 처리하였다. 미륵리 불두는 고려 시대 지방 불상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불두만 보았을 때도 거대한 크기이며 불두의 전체인 모습은 역삼각형에 가깝고 머리 윗부분은 편평하다. 얼굴의 이목구비는 매우 추상적으로 표현하여 옛 불상의 느낌이 보이지 않아서, 안내문을 보기 전에는 현대의 조각품으로 착각하기 쉽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수룡폭포
자연관광충청북도

수룡폭포

충주의 수룡폭포는 충청북도 충주시에 위치한 넓은 진달래 꽃밭이 장관을 이루는 보련산 자락에 자리한 자연폭포이다.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위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물이 맑아서 여름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약 6m 높이의 폭포로 수직 폭포는 아니지만 화강암질 편마암으로 이루어진 넓적한 바위 위에서 3층의 단을 이루며 물줄기가 떨어진다. 물이 맑고 수량이 많아서 보련산 등반과 연계한 여름철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가까운 곳에 앙성온천지구와 보련산성 등 가볼 만한 명소가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

어제 달천 충렬사비
문화관광충청북도

어제 달천 충렬사비

어제 달천 충렬사비는 조선시대의 명장 임경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임경업은 1633년 명나라의 반란군을 토벌하고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공격으로부터 백마산성을 수비한 조선 인조 때의 명장이다. 1618년 무과에 급제하여 1633년 명나라의 반란군을 토벌한 공으로 명나라 황제로부터 총병의 관직을 받았다. 병자호란 때에는 백마산성을 수비 하며 청군의 진격을 둔화시키고자 하였다. 이후 철저하게 친명배금의 노선을 견지하다가 청나라에 포로가 되었고 심기원의 옥사에 연루되어 본국에 송환되었다가 옥중에서 생을 마감했다. 신도비는 현재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경내의 사당 오른쪽에 완산 이씨 정렬비와 같이 나란히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어제달천충렬사비(御製達川忠烈祠碑)’라는 제목이 전각 되어 있다. 자헌대부 예조판서 겸 직제학 이병모가 글씨를 쓰고, 전서는 왕의 명령을 받아 보국숭록대부 이조판서 윤동섬이 썼다. 숙종 때 임경업에게 충민이란 시호를 내렸고, 영조 때 그의 사당에 충렬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후 정조 때 임경업의 기리는 정문과 비석을 세웠다. 충렬사와 함께 둘러보기 좋으며 우리 역사를 알아보기 좋은 곳이다.

충청북도 충주시 충열1길 6

연안이씨 쌍효각
역사관광충청북도

연안이씨 쌍효각

충주 연안 이 씨 쌍효각은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시희, 이시걸 형제 효자문이다. 쌍효각 내용에 따르면 이시희, 이시걸 형제는 연안 이 씨 문강공인 이석현의 4 세손으로 부친과 모친의 상을 당하자 형제가 함께 정성을 다해 시묘하였고, 임진왜란이 발생한 당시에서도 시묘를 이어갔다고 전해진다. 이 둘의 효성을 참작해 1722에 이 두 형제가 살고 있던 자리인 충주시 살미면 신당리에 명정된 효자를 표창하던 정려이다. 연안 이 씨 쌍효각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이 되면서 후손들이 1983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일각문을 세운 사괴석 담장 내에 남향으로 배치하였으며, 건물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사면에 홍살을 돌렸다. 구조는 원형 초석을 놓고 원형 기둥을 세워 이익공 계통의 공포를 구성하였고, 익공 끝에는 연꽃 모양을 새겨 넣었으며, 창방으로 짜인 기둥 사이에는 화반 한 개를 놓아 주심도리 장여를 받치도록 하였다. 가구는 굴도리 4량 집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효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1길 21

충주 영모사
역사관광충청북도

충주 영모사

충주 영모사는 충주 최 씨 후손들이 시조인 최승 등 8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기 위해 1922년에 세운 사당이며, 일제강점기 때 세워져 사액을 받지는 않았다. 최승은 신라 문성왕 8년에 흉년이 들어 도적이 많아지자, 중국 당나라 무종의 명을 받아 이들을 무력으로 평정하였으며, 통일신라 진성여왕 3년에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수습한 인물이다. 큰 암석 위에 쓰인 내동 부락 표석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충주 영모사가 나온다. 이곳은 남향으로 배치되었는데, 정면 4칸, 측면 3칸의 전퇴를 둔 목조 기와지붕이다. 특징적인 것은 충주 영모사 뒤편에 봉분이 모셔져 있다는 점이다. 영모사 앞쪽에 있는 문은 가운데를 높인 솟을대문이고 최승이 살았을 때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와 석교가 있다. 신라 말 최승이 충주에 거처한 이후, 후손들이 이 지역을 본관으로 하여 충주 최 씨가 되었다. 충주 최 씨 종중에서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리며 사당을 관리하고 있고, 뿌리를 잊지 않고 조상의 얼을 받드는 추모의 장소인 만큼 향토 문화의 정립과 역사 교육에 큰 의미가 있다. 상시 개방하고 있으나, 내부 관람은 행사가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따로 문의해야 한다.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내동1길 26-11

충주 오갑사지 석조여래좌상
역사관광충청북도

충주 오갑사지 석조여래좌상

충주 오갑사지 석조여래좌상은 충주시 앙성면 모점리 동막마을에 있는 고려 시대 석불좌상으로, 얼굴의 일부와 머리가 떨어져 나갔을 뿐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통일신라의 사실주의 조각과는 거리가 있지만 옛 양식을 수용한 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오갑사지는 1978년에 새롭게 확인된 사지로, 이 절터에서 금나라 연호인 명창과 오갑사가 쓰인 기와가 출토되어 고려 1192년경에 창건되었거나 중창 불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좌상은 이 절터에 있던 것으로 현재는 동막마을 주민 소유의 담배 건조실 근처에 안치되어 있다. 불상의 앞에는 탑의 부재인 옥개석이 놓여 있는데, 넓적한 정방형이다. 1984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민가에 있으므로 관람 시 주의해야 한다.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모점1길 404

용담사(충주)
역사관광충청북도

용담사(충주)

용담사는 충주시 신니면 문승리의 신덕 저수지 옆에 자리하고 있으며 문숭산 아래에 있는 사찰로 산이 절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1962년 창건되었으며 대웅전과 범종각, 요사채와 산신각이 있는 작은 사찰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조용히 머물다 갈 수 있다. 경내에 미륵불 표지석은 1689년부터 2년간 충주 목사를 지낸 이국헌의 선정비인데 그 위에 음각하여 새긴 것이다. 폐타이어로 만든 계단을 오르면 산신각을 마주할 수 있고, 경내에서 100여 미터 정도 길을 따라가면 용담사 미륵불인 석불입상과 마주하게 된다. 이 불상은 고려 시대의 석불입상으로 일제 강점기에 신덕 저수지 축조공사를 하던 중 하천에서 발견되었는데 몸체만 있고 대좌는 없이 선당리에 모셨다. 그러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송암리에서 1977년 대좌를 발견하여 1978년에 함께 지금의 용담사가 있는 곳으로 옮긴 것이다. 아담한 크기의 절로 뒤쪽으로는 산이 펼쳐져 있으며 고려 시대의 석불은 용담사 석불입상으로 불리고 있다. 근처에는 중앙탑 사적공원과 술 박물관, 충주 조정 체험학교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내포길 27-110

우천석, 우팽 부자 묘소
역사관광충청북도

우천석, 우팽 부자 묘소

충주시 산척면에 있는 고려 시대 인물 우천석과 우팽 부자의 묘소이다. 조성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조선시대에 조성된 묘로 추정되며 단양 우 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우천석은 1280년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그가 죽은 후 장지를 충주로 정하면서 후손들이 대대로 충주에 살게 되었다. 묘표는 1919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우팽은 우천석의 둘째 아들로 우천석 묘소 뒤편에 있는데 조선시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묘표와 문관석은 조성 당시의 것이고 묘비는 1980년에 세웠다. 두 기의 무덤은 거의 같은 방법으로 쌓았는데 평면 형태는 4 각형이며 돌을 4~5단 쌓아 호석으로 삼았다. 묘소들은 별도의 가공을 하지 않은 자연 활석으로 쌓아 올려 경사면을 따라 묘가 조성되었다. 호석의 측면은 앞이 높고 뒷면이 낮은 방형분으로 이러한 형식의 무덤은 이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예이다.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충주 이시진 효자각
역사관광충청북도

충주 이시진 효자각

이시진 효자각은 충주시 동량면 마을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뒤쪽 언덕에 그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시진(1578~1633)은 조선 중기 때 효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슬퍼함이 극진하여 난리를 만나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또 어머니의 병환이 심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케 하였으며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를 하였다. 이시진의 효행은 임금에게까지 알려져 1608년(선조 41) 효자문이 세워졌다. 지금은 낮은 담장을 둘러 효자각을 보호하고 있으며 담장 앞에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남향으로 배치된 정려각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구획하여 사면에 홍살을 둘렀다. 기단은 자연석을 낮게 쌓았으며 그 위에 사각주 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공포는 만들지 않고 창방으로 결구된 주간에만 네 개의 소로를 놓아 주심도리 장형을 받치고 있다. 가구는 양측 대량 상부에 제형 대공을 설치하여 종도리를 받치도록 한 삼량집이며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단청을 하였다.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임경업 장군 묘소
역사관광충청북도

임경업 장군 묘소

임경업 장군 묘소는 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명장 임경업 장군의 묘소다. 임경업은 광해군 10년(1618) 무과에 급제한 후 인조 2년(1624)에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 때에는 의주 부윤으로 있으면서 백마산성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등 큰 공을 많이 세웠지만, 청을 반대하던 장군은 병자호란이 끝난 뒤 반대파에 의한 모함으로 희생되었다. 숙종 23년(1697) 다시 좌찬성의 관직이 내려지고 충렬사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묘소의 석물로 양호석, 망주석, 묘비 등이 있었으며, 이 외에 정화 사업으로 상돌, 동자석, 무관석, 장명등을 새로 만들어 설치하였다. 충주 임경업 묘소는 부인 전주 이 씨와의 합장묘로 큰 편이며 봉분 아랫부분에는 화강암으로 둘레돌을 두른 원형분이며 주위에는 망주석과 신도비 등이 놓여 있다. 묘소 주변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가까이에 영정을 모신 충렬사가 있으며 유물 전시관에서 임경업 장군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풍동

충주 장미산성
역사관광충청북도

충주 장미산성

충주시의 남한강 인근 장미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둘레 삼국시대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에 산성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92년 조사 결과 성 안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들을 통해 백제, 고구려, 신라가 치열한 영토분쟁을 벌인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봉학사 지역 일부를 빼고는 성벽이 원래 모습대로 남아 있다. 성벽은 돌을 다듬어 직사각형으로 쌓았다. 북쪽 정상 부분의 성벽을 따라 나 있는 좁고 긴 군사용 참호는 주변 성벽의 재료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장미산성 위에서는 남한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근처에 중원고구려비와 누암리 고분군 등 충주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

조산공원
자연관광충청북도

조산공원

수안보 온천지구에 있는 곳으로 근처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쉼터이다. 한국전력공사가 수안보연수원을 신축하면서 부대시설로 만든 곳이다. 주민과 관광객, 연수원생들의 체력훈련과 볼거리 제공을 위해 1989년 조성되었으며 이용은 무료이다. 수안보온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팔각정등산로와 식물원, 동물원, 체육관, 수족관, 박제관 등 다양한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조산공원 입구에서 정상까지 800미터에 이르는 등산로는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길로 숲이 우거져 있어서 산림욕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정상에 오르면 수안보온천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팔각정이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중원대로 1480

역사관광충청북도

충주 주정산 봉수

충주 주정산 봉수는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와 괴산군 장연면 추정리의 경계인 주정산 봉우리에 있는 봉수대이며 봉우리 인근에 비교적 넓게 조성되어 있다.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 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 봉수대는 고려 시대에 축조되어 조선 시대까지 이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남쪽의 미륵리 마골재에서 봉수를 받아 북쪽의 대림산 봉수대에 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 훼손되었으나 석축 원형과 봉대가 큰 훼손 없이 남아 있으며 발굴조사 결과 남북으로 긴 타원형의 방호벽, 석등을 갖춘 남북 2곳의 출입구, 화구와 화덕을 갖춘 봉조 5개소가 확인되었다. 또한 이곳에서는 조선시대의 자기류와 그릇 조각, 한자와 한글을 같이 새긴 그릇 뚜껑, 석제품 등의 각종 유물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 봉수대는 봉수대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기우제를 지내는 제의 장소로도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충주 문주리 요지
역사관광충청북도

충주 문주리 요지

충주 문주리 요지는 팔봉 마을 입구 오른쪽 달천강변 강안의 경사면에 위치하고, 자기나 기와, 그릇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이다. 1985년 토지 소유자인 유기붕 씨가 밭갈이 도중 소가 지하로 빠지는 바람에 이상히 여겨서 신고하였다. 현지 조사 결과 조선시대 가마터로 확인되었고, 가마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강안의 자연 경사면과 단구상의 지형 조건을 이용하여 남에서 북으로 오르는 단상 하부 지면을 파내 아궁이를 만들었으며, 단상부를 이용하여 소성실을 경사지게 했다. 소성실과 아궁이는 생토층을 깊게 파내고 천정부를 지표로 삼은 일종의 지하식 오름칸 가마 등요이다. 이곳에서는 조선시대에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파도 무늬가 찍히고 두께가 비교적 두꺼운 기와가 출토되었다. 주변의 보호 구역은 철제 난간이 둘려 있다. 이곳은 원형이 살아 있는 조선 후기의 기와 가마터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충주 미륵대원지 삼층석탑
문화관광충청북도

충주 미륵대원지 삼층석탑

충주 미륵대원지 삼층석탑은 충주시 수안보면의 미륵사지 근처에 있는 고려 시대 이중 기단의 3층 석탑이다. 이 석탑은 매우 안정감을 주며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위, 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비하여 2층 몸돌의 높이가 많이 줄어들었고,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다.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시대가 고려로 내려옴으로 인해 지붕돌 밑면 받침 수가 4단으로 줄어드는 등 후대의 양식이 나타난다. 중원 미륵사지의 동쪽 200m 떨어진 한적한 곳에 탑을 세운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비보사탑설(도선국사에 의해 제기된 이론)에 따라 땅 기운이 약한 곳을 보강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처에는 미륵리 불두가 자리하고 있고, 수안보온천과 하늘재가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
역사관광충청북도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은 충주시 신니면의 원평리 사지에 있는 석불이다. 원평리 삼층석탑과 같은 곳에 있어 함께 볼 수 있다.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의 불상은 8각형의 넓은 갓을 쓰고 서 있으며 전체적으로 대석, 불신, 개석의 3석으로 조성된 거대한 석불이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 묶음이 있으며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양감이 잘 표현된 어깨와 당당한 하체,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묵중한 옷은 불상의 격을 높여 주고 있다. 불상 앞에는 복련대 앙련좌를 올려놓은 예배석을 볼 수 있으며, 석불의 얼굴은 네모나고, 위엄 있지만 인상은 원만하고 턱 아래에는 이중턱을 표현하여 후덕함을 강조하였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양쪽 귀는 길어 어깨에 닿아있는 모습이다. 마을 가운데 있으며 출입할 수 있는 길이 좁은 편이고 울타리로 주위가 둘러 쳐져 있다. 이 석불은 고려 시대 경기와 충청지방 일대에서 유행하던 석불 입상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조각 수법이 뛰어나서 당시를 대표하는 불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108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문화관광충청북도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충주시 중앙탑면에 있는 석탑으로 마을 가운데 세워져 있다. 원래는 민가의 뒤뜰에 있던 것을 100여 m 남쪽으로 옮겨 복원해 놓은 것이다. 중원창동오층석탑이라고도 한다.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며, 현재 맨 위의 머리장식이 없어진 채 그 받침돌만 남아 있다. 위로 오를수록 조금씩 규모가 줄어드는 탑신의 각 몸돌에는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과 몸돌은 각기 다른 돌로 조성되어 있는데 5층에서만은 한 돌로 되어 있어 흥미롭다. 지붕은 네 귀퉁이가 부드럽게 치켜 올라갔고, 위로 올라갈수록 밑면의 받침 수가 줄어드는 특징을 보인다.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단 위에 두툼한 굄돌을 끼워 탑신의 1층 몸돌을 받치고 있는 것과 각 층 지붕돌 위에도 비슷한 괴임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장식이 거의 없는 탑신에 작은 변화를 주고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탑은, 섬세한 조각은 볼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구성이 간략화되고 대범하여 고려인의 기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근처에 남한강이 흐르고 탄금호 야영장과 중앙탑 사적공원, 충주 박물관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청금로 112-10

충주 미륵대원지 석조보살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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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미륵대원지 석조보살의좌상

충주 미륵대원지 석조보살의좌상은 충주시 수안보면의 미륵대원지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조불상이다. 미륵대원지는 고려 시대 들어와 크게 번창한 사찰이며 이곳 일대에 대형 건물지와 고려 시대의 불교 관련 유적이 남아있다. 미륵리대원지 석조보살의좌상은 판석형 석재에 부조로 조각된 보살상으로 사각형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다른 불상에서는 보기 드물다. 머리에 보관을 쓴 것으로 보이며 관식은 어깨까지 내려온다. 목에는 삼도흔이 보이며 왼손은 법의 자락을 잡고 있고 오른손은 배 부분에 댄 것으로 보인다. 왼발은 수직으로 내렸으며 오른발은 왼발 종아리 뒤쪽에 대고 있다.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 오른쪽 다리를 구부려 마치 반가사유상처럼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마모가 심하여 옷 주름을 알 수는 없지만, 앉아 있는 자세와 보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보살상으로 보인다. 의자에 앉아 반가좌를 취하고 있는 모습은 다른 불상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적인 자세이며 인공적으로 조성된 석굴의 벽면석으로 활용되었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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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미륵대원지 석등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은 월악산 자락의 미륵대원지에 있는 석등이다. 월악산을 바라보며 서 있는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과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의 중간에 놓여 있다. 각 부분이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상·중·하로 이루어진 3단의 받침을 마련하여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올린 후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바닥돌과 아래 받침돌은 한 돌로 이루어졌으며 아래 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둘렀다. 가운데 기둥은 적당한 높이에 간결한 모습이다. 위 받침돌에는 아래 받침돌과 대칭되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화사석은 불빛이 퍼지도록 4면에 창을 내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추켜올려졌다. 꼭대기에는 8각의 낮은 받침 위에 보주를 얹어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함께 서 있는 석불입상, 5층 석탑과 함께 고려 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미륵 대원지에 안내 표지판과 함께 울타리가 쳐져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다른 불교 유적과 함께 관람하고 있다. 미륵사지가 미륵대원지로 바뀌면서 중원 미륵리 석등에서 명칭이 변경되었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사지길 150

중원 미륵리 도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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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미륵리 도요지

중원 미륵리 도요지는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자리하고 있는 백자 가마터이다. 수안보면에서 미륵리 쪽으로 가면 마을 초입에 송계계곡과 미륵리 사지로 가는 두 갈림길의 왼쪽에 위치한다. 충주 미륵대원지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점말의 높은 산록 동남쪽의 경사면에 해당한다. 1호 가마와 2호 가마는 오름식 연실칸 가마로 자연 구릉에 외벽과 내벽을 진흙과 돌을 섞어 이중으로 축조한 가마이고 3호 가마는 철화백자를 만들었던 오름식 가마로 경사가 가파르다. 굴뚝의 구조는 좌우 벽이 둥글게 안으로 좁아 들어 중앙에서 약간의 공간을 두어 연기가 빠져나가게 되어 있다. 가마의 상부에 보호각을 설치하고 밖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창살문을 마련하였다. 주변에는 잔디밭을 조성하고 퇴적층에서 나온 백자나 도지미편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충주 미륵리 도요지는 조선 후기에서 말기에 이르는 가마 구조의 변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가마터다. 또한 철화백자 가마터로부터 출토된 철화백자의 기형 및 무늬의 다양성에서 17~18세기 충청도 철화백자의 특징을 볼 수 있다. 특히, 한국도자사에서 공백기에 해당하는 20세기 전반기, 즉 근대의 가마 구조와 도자기의 기형 및 무늬 등의 양상이 파악된 점은 한국 근대 도자기의 계통을 수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송계로 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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