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7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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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경(능암리섬)
봉황경은 한강 8경 중 제7경에 해당하는 곳으로 자연학습장과 산책로로 좋은 곳이다. 다양한 종류의 철새가 서식하는 곳으로 원앙, 큰고니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철새와 함께 물억새, 갈대 군락지가 장관을 이루고 있어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이다. 수변 산책로를 통해 야생 조류원을 볼 수 있고 전망 관찰대에서는 갈대숲의 전경과 소나무 숲, 철새들의 비상을 감상할 수 있다. 수변 잔디광장을 중심으로 자전거 도로, 제방길, 청소년 야영장이 있으며, 목계 나루터 재현 및 체험장, 수변 광장과 관찰 데크 등이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
대구 달성습지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천동·호림동, 달성군 다사읍·화원읍 일대에 걸쳐 있는 내륙습지인 대구 달성습지는 낙동강과 금호강, 진천천과 대명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총 면적 200만㎡의 광활한 규모로 형성돼 있다. 오래전 홍수로 인해 범람한 하천이 퇴적과 생성을 반복하며 현재의 모습을 이룬 것이다. 자연의 자정작용을 거쳐 봄이면 노란 갓꽃을 여름에는 기생초를, 가을에는 억새와 갈대를 피우고 겨울에는 철새를 부르는 곳이다. 또한 뛰어난 생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습지 보호 지역 및 야생 동식물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22년 한국관광공사 안심 관광지로 선정된 생태 관광지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구라리

소세양신도비
소세양신도비는 조선 전기의 문인 소세양(1486~1562)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퇴재[退齋]·퇴휴당[退休堂],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소세양신도비는 비석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구성인 기단, 비신, 이수가 잘 갖추어져 있어 비석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며, 조각과 글씨의 서체가 매우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 이전 건립되어 현재 익산에 남아 있는 비석 중에서는 조성 시기가 빠른 편이다. 보존 상태가 전반적으로 양호하지만, 기단석의 이수는 파손되어 교체하였다. 현재 진주소씨 익산회종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소세양은 1504년 진사시에 급제했으며 수찬에 재직할 때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복위를 건의하여 현릉에 이장하게 했다. 이후 영접사 종사관, 전라도관찰사, 판서, 우찬성 등의 관직을 거쳤다. 윤임 일파의 탄핵을 받아 사직했다가, 조선 명종 즉위 후 다시 기용되어 좌찬성을 지냈고 사직한 뒤에는 고향인 익산에 은거하였다. 소세양은 사후 익산 화암서원에 배향되었고, 문집으로는 양곡집(陽谷集)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화곡1길 53-15

진안 원촌마을
진안 백운면의 원촌 간판마을로 흰백, 구름운의 백운면은 흰 구름이 쉬어 간다는 뜻으로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군)의 높은 고원에 자리한 아담한 시골 마을이다. 원촌마을은 지난 2007년 ‘아트인 시티-진안 백운면 공공미술 프로젝트’라는 사업명으로 문화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여 진안 백운면 마을 사람들과 디자인 전문가들이 기획, 도시와 농촌의 경계 없는 자유로운 소통을 도모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아름다운 간판이 마을 풍경을 빛내고 있다. 간판뿐만 아니라 마을 빈 벽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다. 진안 최고의 비경인 마이산과 백운계곡, 용담호가 있고,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 등 살아있는 청정 진안고원의 농촌 마을이다. (출처 : 진안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백운면 임진로 1326-13

무안 하늘백련마을
연꽃으로 유명한 무안은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에서 회산 백련지까지 영산강을 따라 걷다 보면 연꽃 가득한 백련마을에 도착한다. 백련지는 원래 이름 없는 농업용 저수지였으나,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두 개의 저수지를 합치면서 ‘복용’이란 이름이 붙었다. 벼농사가 대부분이던 당시 논에 물을 대던 저수지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면서 영산강에서 바로 농업용수를 끌어왔고, 사용하지 않아 점차 수위가 낮아진 저수지는 연꽃만 무성하게 피어있는 연방죽이 되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일로읍 백련로 339-2

제주 노루생태관찰원
제주 노루생태관찰원은 2007년 8월 3일 개장하였다. 각종 동식물이 자연 그대로 보존된 52㏊의 공간에 오름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노루를 관찰할 수 있는 숲길 관찰로와 관람객이 가까이에서 직접 노루를 만져보고 먹이 주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상시관찰원이 조성되어 있다. 전시관에는 제주의 다양한 동식물과 한라산의 식생분포 등 제주의 자연에 대한 동물 이야기관과 노루의 특징, 역사 속에 나오는 노루의 기록 등 노루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는 노루의 생태관, 노루의 생태와 생활상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노루이야기 영상관이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제주의 상징인 노루를 직접 관찰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노루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노루생태관찰원은 자연학습과 생태체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우리들의 공간이다. 거친 오름 중턱을 따라 조성된 숲길 관찰로는 온 가족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트래킹 코스로 약 40분이 소요되며 탁 트인 전망과 함께 자연 속의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노루생태관찰원에서는 노루먹이 주기 체험과 나무를 이용한 노루 만들기 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520
옥천 석탄리 선돌
옥천 석탄리 선돌은 재앙을 막고 풍농·평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구실을 하고 있는 선돌이다. 선돌은 자연석이나 손질한 자연석을 마을 입구에 세워 재앙을 막고, 마을의 평화와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세운 것이다. 입석, 선바위, 수구 맥이, 탑, 미륵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선돌 형태에 따라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전체적인 형태는 길쭉한 자연석 돌을 세워놓은 모습으로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게 나와있다. 쪼이기 수법으로 지름 90cm 정도 되는 원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는 임신한 여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당시 사람들이 자식을 많이 낳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새긴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선돌은 옥천 석탄리 고인돌과 함께 위치하고 있는데 모두 옥천 석탄리 유적의 안터에 위치해 있다.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안터1길 36
안터선사공원
안터 선사공원은 옥천의 선사시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원이다. 고인돌 1기, 선돌 1기가 있으며 석탄리 고인돌은 안터 마을에 있던 3기의 고인돌 중 1977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한 안터 1호 고인돌이다. 덮개돌이 거북 모양이며, 판돌 4매를 짜 맞춰 무덤방을 지상에 축조한 탁자식 고인돌이다. 발굴 당시 X 모양을 새긴 돌, 얼굴 모양의 예술품, 가락바퀴, 그물추 등이 출토되어 고인돌에 묻힌 이가 여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과 짝을 이루는 선돌은 아랫부분에 쪼으기 수법으로 지름 90cm의 원을 새겨 전체적으로 임신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안터 1호 고인돌에 묻힌 사람을 나타내는 기념비적 기능과 무덤 수호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과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아이들과 편안하게 선사시대의 무덤 양식을 살펴보기 좋은 곳이다.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안터1길 36
목도강변유원지
괴산군 불정면의 목도강변은 여름철이면 물놀이를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다. 목도강변은 예부터 마포나루에서 출발한 소금 배가 목계나루를 거쳐 들어와 정박하던 곳이다. 남한강의 지류로서 맑은 물과 수려한 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괴산군에서는 목도강 수변 일대에 전국 최대 규모의 강수욕장을 개장했다. 화장실, 샤워실, 급수대 등 편의시설과 함께 400여 미터의 모래사장과 솔숲을 조성했다. 강변 산책로와 전망대도 조성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고 있다. 목도강수욕장 근처에 목도리마을에는 매월 4일과 9일이 들어가는 날 장이 서는 목도시장이 있다. 긴 세월 동안 자생적으로 형성된 전통시장이며 목도강수욕장에서 여름철 물놀이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 좋다. 강과 가까이 위치해 있어 신선한 어죽과 매운탕이 유명하다. 또, 가까운 곳에 태조 이성계의 첫째 아들 진안군 이방우와 대군의 첫째 아들인 봉영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인 청덕사가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다.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
괴산 수월정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명신(名臣)인 소재(蘇齋) 노수신이 유배되었을 때 거처하던 곳이다. 노수신(1515-1590)은 중종 38년(1543) 문과에 급제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같이 독서당에 뽑혀 함께 학문을 연구하다가 을사사화(乙巳士禍)로 관직에서 파면되어, 순천·괴산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선조 즉위 후 복직되어 후에 영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이 건물은 노수신이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순천, 진도 등지로 유배되었다가 괴산으로 옮겨져 명종 20년(1565)부터 2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괴산 연하동(煙霞洞)에 있던 적소인데 괴산수력발전소 댐을 만들면서 물에 잠기자 1957년 현 위치에 이건 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에 우물마루를 깐 대청 1칸이 있고, 좌우에 온돌방 각 1칸이 있으며 전면에 툇마루를 둔 간소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후에 건물명을 수월정(水月亭)이라고 하여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산막이옛길 315-38
멍딩이마을
멍딩이마을은 충북 괴산군 소수면에 위치한 마을이다. 벚나무, 살구나무 꽃길 및 쉼터조성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값싸고 품질 좋은 안전한 먹거리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마을 내에는 옛날 생활필수품이었던 짚신, 삼태미, 둥구미, 매판, 멍석, 가마니 등 짚풀공예품들을 전시한 짚풀공예전시장이 있다. 인근에 소암저수지는 조용하고 한적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겨울이 되면 얼음낚시를 즐기기도 한다.
충청북도 괴산군 소수면 원소로명덕2길 24
석보군묘각
괴산군 청안면에 있는 전주 이씨 석보군파의 사묘재실로 조선 정종의 9남인 석보군 이복생과 부인 원주 김씨, 석보군 장남 양위의 위패를 모신 부조묘이다. 사묘는 선조의 신주나 영정을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이고 재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로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숙식과 제사음식 장만 등을 하는 장소를 말한다. 1905년에 초가집으로 창건하였고 1930년 기와지붕으로 재건하고 1986년에 중수하였다. 건물은 홍살문, 삼문, 부조묘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조묘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맞배지붕 집이다. 평면구성은 전면에 툇마루를 설치하였으며 내부는 통칸으로 하여 우물마루를 설치하였다. 기단은 장대기단으로 정평주초를 설치하고 전면은 원기둥, 후면은 각주로 하였다. 공포 형식은 이익공으로 하였으며 가구 형식은 1고주 5량가로 하였다. 부조묘의 단청은 모로 단청으로 하였으며 좌향은 서북향이다. 중수 시 부조묘 측면의 중방하 및 묘각 후면의 하방하에 설치된 현대식 붉은 벽돌을 철거하고 전통기법으로 재현하였다. 또한 장마루는 철거하고 한식 우물마루로 하였다. 보의 치목기법에서 고식을 남기고 있으며, 벽체 및 마루에서는 원형에 가깝게 재복원되었다. 1996년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고 전주 이씨 석보군파에서 관리하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조천상길 74-21

연풍향청
괴산군 연풍면 소재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향청은 본래 조선 초기 지방관의 행정을 보좌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유향소였으나, 성종 20년(1489)에 향청이란 이름으로 개칭하고 지방관의 감독 하에 운영되었던 자문기관이다. 향촌의 풍기를 단속하고 향리를 감찰하며 마을의 관리임원을 추천하고, 조세나 요역의 부과 또는 분배 등에 대한 자문기능을 담당하였다. 향청의 수장을 좌수 또는 좌장이라 하고 그 아래에 좌별감, 우별감, 창감, 방감 등을 두었다. 연풍향청은 1910년 경술국치 후에는 천안헌병대충주관구연풍분견소, 괴산경찰서연풍주재소, 괴산경찰서연풍지서 등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1963년 3월부터는 천주교 연풍공소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은 1995년 보수 전까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통칸으로 된 팔작지붕 초익공식의 목조기와집이었으나 1995년 보수 시 부식된 기둥을 교체하고 창호, 초석 등을 수리하였으며, 고증에 따라 온돌방 2개소를 원형에 가깝게 보수하고 홑처마를 겹처마로 바꾸었다. 천주교 성지인 연풍성지와 함께 자리하고 있으며 근처 연풍향교와 연풍동헌 등 역사의 흔적이 담긴 건축물이 많이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중앙로 44
위정사
위정사는 숙종 8년(1667)에 위정공(威靖公) 김정경(金定卿)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 하기 위하여 건립된 사당으로 매년 음력 7월 15일, 10월 29일에 향사하고 있다. 김정경(1345-1419)은 조선 태종 때의 장군으로 본관은 안산(安山), 진주목사(晋州牧使) 성경(星慶)의 아들이다. 태조(太祖)에서 태종까지 섬겼으며, 삼군절도사(三軍節度使), 이조전서(吏曹典書·판서) 등을 역임했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간 일도 있었다. 정종 2년(1400) 제2차 왕자의 난(芳幹의 난·朴苞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좌명공신 4등에 책록되고 연성군에 봉해졌다. 이 사당은 앞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威靖祠’란 편액을 걸었으며, 일각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대문밖 마당에는 1980년에 세운 김정경신도비(金定卿神道碑)가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 충민로광진8길 53-1
장암 정호 묘소
괴산 정인지 묘소는 문경공(文敬公) 장암(丈巖) 정호(鄭澔,1648-1736)의 묘소이다. 정호는 조선중기의 문신, 학자로 자는 중순(仲淳), 호는 장암(丈巖), 본관은 연일(延日), 좌의정 정철(鄭澈)의 후손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숙종 8년(1682) 생원이 되고 1684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정언(正言)을 지냈으나 1689년에 을사환국(乙巳換局)으로 파직되어 문외출송(門外黜送)당했다가 이어서 경성(鏡城)에 유배되었다. 이후 숙종 20년(1694) 갑술옥사(甲戌獄事)로 서인이 기용될 때 재등용되었고 당쟁의 와중에 부침을 거듭하였으나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충주의 누암서원(樓巖書院)에 배향되었고, 부조묘(不轅廟)는 충주시 가금면 창동에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床石), 묘비, 망주석(望柱石) 등이 있으나 전체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지장리
괴산 정인지 묘소
괴산 정인지 묘소는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학역재(學易齋) 정인지(1396∼1478)의 묘소이다. 태종 14년(1414)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 , 등 각종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또한, 세종 때에는 집현전 학사로 집현전 직제학, 부제학 등을 지내면서 성삼문, 신숙주, 최항과 함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는데 공을 세웠다. 단종 1년(1453) 계유정란 때 세조를 도와 공을 세워 1등 공신이 되고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단종∼성종 연간에는 학덕을 갖춘 정치가로서 민심을 진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저서로는 있다. 묘 앞에는 묘비 1기가 서 있는데 대리석으로 만든 갓이 없는 높이 250cm, 90cm의 크기이다. 비문은 강희맹이 지었다고 전한다. 묘비 앞으로는 상석과 장명등이 서있고, 좌우로 문관석과 망주석이 서 있다. 묘소 아래에 서거정이 지은 신도비가 있었는데 유실되어 1958년 서거정이 지은 비문을 윤보선이 쓰고 성락서가 제전을 써서 다시 세웠다.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외령로1길 24
청덕사
청덕사는 조선 순조 31년(1831)에 태조 이성계의 첫째 아들인 진안대군 이방우와 대군의 장자인 봉령후 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으로 건립되었다. 이방우는 고려 공양왕 초에 밀직부사로 부친이 혁명의 뜻이 있음을 알고 함흥에 은거하다가 죽었다. 후에 진안대군에 추봉 되었으며, 해주의 지청사에 배향되었다. 청덕사로 현판을 붙인 것은 대군이 청빈하고 덕이 있다고 하여 ‘청덕’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청덕사’란 편액이 걸려있다. 내·외삼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으며, 외정에 연못을 조성하였다. 외정 안에 1933년 후손 이태호가 인도교를 창립하고, 이를 기념하여 교리를 적어 세운 인도교창립기념비가 있었는데, 일제 때 일인들이 이곳을 참배했다고 하여 광복 후 주민들에 의해 일부가 파손되었던 것을 2011년 철거하였다.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한불로청덕2길 15-1

취묵당
1662년(현종 3년)에 백곡 김득신이 만년에 세운 독서재로 괴강가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이다.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안쪽에 마루를 깔고 난간이 둘려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괴강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더불어 정자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김득신은 자는 자공, 호는 백곡·구석산인이며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 승리의 공을 세운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의 손자이기도 하다. 영감과 직관을 통해 자연의 생명을 조화롭게 읊은 시가 으뜸이라고 칭해진다. 5언·7언 절구를 잘 지었으며 시어와 시구를 다듬는 것을 중요시했다. 김득신이 이곳에서 『사기』와 『백이전』을 1억 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하여 일명 억만재로도 불린다. 취묵당은 김시민 장군의 사당인 충민사와 가까이 자리하고 있고 벽초 홍명희 생가, 제월대 등의 명승지가 많이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충민사길 45

하담 김시양 신도비
조선 인조 때의 명신인 김시양선생의 신도비로 1670년(현종 11년) 8월에 세워졌다. 김시양은(1581~1643)은 조선의 문신으로 1605년(선조 3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1년 광해군 시절 전라도도사로 향시를 주관할 때 왕의 실정을 비유한 시제를 출제하였다 하여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1623)으로 풀려나와 여러 관직을 지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도체찰사 이원익의 종사관이 되어 활약하고, 이어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인조 9년(1631년)에 병조판서에 올라 팔도도원수 ·사도체찰사를 겸임하고, 척화를 주장하였다. 이 신도비는 김시양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대에서 세운 비석이다. 비석의 비문은 당대의 명문장가인 조경이 김시양의 아들인 김휘의 요청으로 지었으며, 글씨와 전자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인 이정영이 썼다. 방형대석과 비신, 가첨석을 갖춘 전형적인 신도비로 최근에 난간석을 돌려 보호하고 있다. 모두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나 암질이 차이가 있다. 현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500m 앞의 취묵당 옆도로(충민사 부근)에 세워졌던 것을 도로폐쇄로 1976년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이전 과정에서 귀부나 방형으로 조성되어 있었을 대석의 원형이 망실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비록 대석은 변형되었으나 가첨석과 비신은 화강암으로 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전형적인 조선의 신도비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문장과 서체가 뛰어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능촌로 182

화양서원 묘정비
화양서원 묘정비는 우암 송시열 선생을 제향하는 화양서원에 세워진 비석이다. 묘정비는 서원 앞에 세워 서원의 건립 취지와 서원에서 제향하는 인물, 서원의 주인에 대해 기록해 놓은 것이다. 비는 높이 210cm, 폭 75cm, 두께 30cm로 넓이 150cm의 네모반듯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뒤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숙종 42년(1716)에 세웠으며 비문은 윤봉구가 짓고, 전자는 옥편체에서 집자하고, 비문은 안진경체에서 집자한 것이다. 서원이 헐리면서 땅속에 매몰되었다가 광복 후에 다시 세워놓게 되었다. 손꼽히는 경승지인 화양계곡 내에 있는 화양서원은 조선 숙종 22년(1696)에 문정공 좌의정 우암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창건되던 해에 사액을 받고 숙종 42년(1716) 어필로 편액을 달았다. 창건된 해에 편액을 받았으며 숙종 42년 어필로 현판을 달았다. 전국의 사액서원 중에서도 가장 이름있고 위세가 당당한 서원이었다. 그러나 그릇된 세금징수로 심한 민폐를 끼쳐 철종 9년(1858)에 폐쇄되었으며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고종 7년(1870) 건물이 헐리었다. 1999년 화양서원이 송시열 유적으로 국가유산이 된 이후 2004년 송자사 · 승삼문 2동을 복원하였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188
고산사 석조관음보살좌상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와룡산의 고산사 응진전에 모셔진 관음보살상이다. 응진전에 모셔진 관음보살상은 조선 중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에 매우 정제된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과 몸체의 각 부분도 균형미가 보인다. 다만 양 어깨가 위축되고 턱이 크게 숙여지는 등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불상 양식을 지닌 탓이다. 사찰에 1920년대에 제작한 중수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신라말 고려초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로 나타난다. 그러나 절에서 발견되는 기와조각, 청자조각 등은 고려와 조선의 유물들이어서 확실하지 않다.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로9길 113
고산사 석조나한상
제천 와룡산의 고산사 응진전에 봉안된 나한상이다. 나한이란 아라한의 준말로, 소승불교의 수행자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성자를 말한다. 사찰의 기록에 의하면 고산사는 신라 말 고려 초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절에서 수습되는 기왓조각, 청자 조각 등은 고려와 조선 때의 유물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관음보살을 중심으로, 좌우로 배치된 고산사 나한상은 조선 중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나한상은 주로 석고로 만들거나 흙으로 만들었는데, 이 나한상은 돌로 만들어 그 예가 극히 드물다. 제천 고산사 석조나한상군은 충주 신흥사 석조나한상과 더불어 충청북도 북부 지역에 보존되고 있는 자료로서, 충청북도 지역에서 조선시대 나한신앙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로9길 113
제천 중전리 고가
제천 중전리 고가는 제천시 금성면에 있는 전통가옥으로 19세기 중엽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금성면 고교천 다리를 건너 중전리 마을의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변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부농 계층의 집으로 ‘ㄱ’ 자 모양의 안채와 ‘ㄴ’ 자 모양의 사랑채로 구성된 트여있는 ‘ㅁ’ 자형이다. 안채는 퇴칸이 없는 일반적인 구성 방식을 따르고 있다. 사랑채는 초가로 일반적인 농가의 사랑채 평면을 보인다. 건넌방 앞에 살림방을 둔 점이 특이하다. 대문간에는 내외 담을 설치하여 밖에서 안마당이 직접 보이지 않고 꺾어서 돌아들어 가는 구조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특징이기도 하다. 안마당과 사랑마당은 대문을 통해서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사랑방 옆에 담장을 둘러 구분하고 있으며 편의를 위하여 쪽문을 두었다. 가옥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전면으로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경관 및 조망 등의 입지 조건이 많이 훼손되었다. 주위 담장은 돌로 잘 쌓아 놓았으며, 담장을 따라 은행나무, 과목, 각종 꽃을 심어 놓았다. 부재들의 상태 및 가구 기법, 공간 구성 등을 통해 조선 후기 이 지역에서의 부농 계층의 전통적인 주거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것을 충주댐 건설로 인해 이곳으로 이전되었다고 한다. 우리 주거 형태를 알아보기 좋은 곳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신담길 278
노목계곡
노목계곡은 제천의 구학산을 타고 내려온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이다. 제천의 빼어난 절경인 탁사정을 지나 봉양읍 옥전리에 위치한 노목계곡은 아직은 외지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자연의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다. 물소리만으로도 시원한 계곡을 오르다 보면 곳곳에 편편한 바위와 그늘막을 친 듯 나무숲을 이루고 있으며 야영을 겸한 호젓한 피서를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계곡이 깊지 않아 아이들도 물놀이하기 좋은 곳이며 사계절 모두 변해가는 아름다운 자연을 접하며 경쾌한 물소리로 힐링할 수 있는 곳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옥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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