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7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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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동생태숲
덕동생태숲은 250만㎡의 넓은 산림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470여 종에 이르는 백운산 일대 산림생태학습장이 구축되어 있어 도심과 멀지 않은 곳에서 생태체험을 할 수 있는 생태의 보고이다. 기존에 덕동계곡을 중심으로 여름철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또한 덕동계곡 주변에는 숲 속의 좋은 공기를 한껏 마실 수 있는 삼림욕장이 조성되어 있다. 덕동생태숲은 자연소재의 휴게 및 편의시설이 있는 비지터센터와 자연체험학습과 교육 및 홍보를 토대로 하고 있는 실내전시실, 낙엽송으로 둘러싸인 연결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계곡, 그리고 소나무 등의 숲을 관찰할 수 있는 테마별 관찰로 등으로 조성되어 있어 덕동생태숲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덕동생태숲은 다양한 숲 속의 주제를 체험·탐구할 수 있는 교육·체험 프로그램 운영하고 있다. 특히 백운면청사를 목재체험실로 탈바꿈하여 산림 부산물을 이용한 공예체험과 숲해설 프로그램 등 자연학습체험교실을 수시로 운영하고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덕동로 545

덕주사 약사여래입상
제천시 한수면 월악산 자락의 고찰인 덕주사에 있는 불상이다. 원래 정금사 절터라고 전해오던 곳에 있었는데 충주댐 건설로 인해 1983년 4월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덕주사는 법주사의 말사이며 신라 말기 경순왕의 딸인 덕주공주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절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계절 아름다운 곳이며 특히 가을 단풍 명소로 알려진 곳이고 넓은 마당이 있어 탁 트인 곳이다. 덕주사 약사여래입상은 부분적으로 닳아있지만 형태는 양호한 상태이다. 특히 오랫동안 땅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몸통의 밑부분이 약간 파손되었는데 옷 주름 등 다른 곳의 상태는 좋은 편이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낮고 작은 머리 묶음이 있으며 얼굴은 길쭉하지만 풍만하다. 양쪽 눈은 가늘고 긴 듯 하나 닳아서 구분하기 어렵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으며 옷은 왼쪽 어깨에만 형식적으로 걸쳐진 모습이다. 손 모양을 보아 약사여래불상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몸에 비해 머리가 커서 신체 비례가 맞지 않고, 돌 표면의 옷 주름을 간단하게 조각한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 제천 지역에서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주변에 덕주산성, 미륵사지, 송계계곡 등이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미륵송계로2길 87
제천 백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제천 백련사에서 봉안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아미타여래 좌상이다. 조선 영조 2년(1736)에 조성된 불상으로써 단양군 조계사의 삼존불 중 주불이었으나 후대에 백련사로 이전하여 봉안되었다. 높이 75㎝, 무릎 폭 48㎝의 비교적 작은 나무 불상으로 얼굴이 작은 데 비해 귀가 크고 반듯한 이목구비를 하고 있다. 머리는 나발이고 중간 계주와 정상 계주가 있다. 작은 불신과 더불어 어린아이 같은 인상을 준다. 원만한 상호와 균형 있는 동체, 안정감 있는 무릎의 표현 등 정제된 양식이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유려한 의문을 갖춘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불상으로 목조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대의 아래 편삼을 입은 형태이나 윗단에는 주름 잡힌 내의를 표현했고, 배에 길게 늘어진 W자형의 옷 주름 등에서 18세기 제천 지역에서 유행한 불상 양식을 잘 보여준다. 복장 유물 중 목판본의 『대불수능엄신주(大佛首楞嚴神呪)』 다라니경이 나왔는데 목판 제작 상태와 조성 원문으로 보아 1736년 제천 지역을 대표하는 조각장이었던 정행에 의해 조성된 불상임이 밝혀졌다. 제천 강천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이나 신륵사 목조 삼존불상과 더불어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지역 불상 연구에 있어 중요한 불상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암로5길 414
용두산 산림욕장
제천시 송학면의 용두산에 조성된 산림욕장이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에 걸쳐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다. 도시 근교에 자리하고 있으며 바쁜 일상 중에도 자연을 만끽하며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곳이다. 용두산 산림욕장은 30~40년생의 소나무 군락지로 조성이 되었으며 충북 최초의 자연환경 명소로 지정되기도 했다. 용두산 산림욕장 옆으로는 한방 생태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자연의 울창한 숲 속에서 산림욕을 할 수 있게 용두산 등산로, 야생화 단지, 농구대와 산책로 등의 시설물들을 갖췄다. 사계절 변화하는 자연을 느낄 수 있으며 가까운 곳에 제천 10경의 하나인 의림지가 있으며 오미 저수지, 송학역 등 가볼 만한 곳이 많이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

월악산 약초마을
월악산 약초마을은 월악산의 수려한 자연환경 속에 자리하고 있는 산촌마을이다. 제천의 자랑인 약초를 테마로 하는 산촌체험마을로 월악산 국립공원 서쪽에 위치하여 풍경이 아름답고, 광천과 성천이 면 중심을 흐르고 있어 농업용수가 풍부하며 토질이 비옥하여 특용, 약용 등 경제작물이 풍부한 마을이다. 지금은 천혜의 관광자원을 확보한 관광마을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덕산면은 약초의 고장으로 홍화, 황기, 당귀, 천궁 등 20여 가지의 약초가 재배되어 생산되고 있다. 월악산의 맑은 정기를 받고 자란 월악산 생송이, 월악산 산채, 더덕, 고추 등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 그 효능과 맛을 인정받아 주목을 받고 있는 브로콜리, 적채, 양상추, 칼리 등의 채소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월악산 장터]에서는 월악산 더덕과 사과가 판매되고 있으며 [월악산 체험터]에서는 전화 문의를 통해 더덕 캐기, 서예 쓰기, 브로콜리 순따기, 솟대 만들기, 메주 만들기, 전통 장 담그기, 전통 장 뜨기 체험 등 농촌 체험과 전통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약초로 78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덕주사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누이인 덕주공주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덕주사는 월악산 남쪽 기슭에 있으며 암자가 두 곳에 분리되어 있어 상덕주사, 하덕주사로 불린다.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이 있는 상덕주사는 6·25 전쟁 때 불타고 지금은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앞의 법당 터만 확인할 수 있다. 월악산 만수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따라 약 1시간 올라가면 정상 가까운 곳에 높다란 석축을 쌓은 대지가 있고, 그 앞에 서 있는 거대하고 평평한 바위 면에 마애여래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높이는 무려 13m나 되는데 얼굴 부분은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것에 비해 신체는 선으로만 새겼다. 과장된 얼굴의 표현은 고려 시대의 거대한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선으로 조각한 몸 부분은 인체의 조형적 특징을 살리지 않고 왜곡한 표현법이 보인다. 고려 초기의 거대한 불상 조성 추세에 힘입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살찐 얼굴과 하체로 내려갈수록 간략해진 조형 수법, 평면적인 신체는 당시 불상의 주된 특징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미륵송계로2길 87
제천 송계리 대불정주 범자비
제천 송계리 대불정주 범자비는 송계계곡 하천 정비 중 굴삭기 기사에 의하여 월광사지 입구에서 발견되어 월악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경내에 안치하였다가 최근에 제천 덕주사 경내에 보호각을 지어 관리하고 있다. 덕주골 휴게소에서 월악산 등산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 제천 덕주산성 동문을 지나 자리하고 있다. 비석은 화강암의 자연석으로 모서리가 둥글게 돌아간, 위는 좁고 아래는 넓은 사다리꼴 모양이다. 화강암의 앞면만 다듬어 글자를 새긴 비석으로, 비석 상단부의 두께는 30~40㎝로 불규칙하며, 하단부는 28㎝이다. 하단부 바닥 면은 정으로 돌을 다듬은 흔적이 뚜렷하여 비의 좌대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나 자연 암반에 세워진 것인지 좌대가 독립되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제원 송계리 망개나무
제원 송계리 망개나무는 제천의 월악산을 따라 흐르는 송계계곡 근처에 있는 망개나무이다. 제원은 지금은 사라진 지명인데 문화재 명칭에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수령은 150살 정도로 높이는 17미터, 둘레는 2미터에 이른다. 망개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지에 드물게 자라는 희귀종으로 황색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대체로 따뜻한 곳에서 자란다. 번식력이 매우 약하나 한번 싹을 틔우면 잘 자라며 희귀한 수목으로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지금의 멋진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보존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근처에 월악산의 맑은 물줄기가 흐르는 송계계곡과 덕주사, 덕주산성 등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미륵송계로 1405

제천 시곡리 석조여래입상
제천 시곡리 석조여래 입상은 시곡리 심곡마을 입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조 여래 입상이다. 전체 높이는 200cm, 불상 높이 164cm, 폭 92.5cm이며, 불신과 광배는 하나의 돌에 조각되어 있고 대좌는 따로 만들어져 부처의 발 부분을 새기고 그 위에 몸통을 맞추어 붙인 듯하다. 얼굴은 동그란 형태로 뺨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듯하나 이목구비는 마멸로 인해 거의 알아볼 수 없다. 몸 부분의 어깨는 넓고 허리는 잘록하며 가슴과 배 부분에는 양감이 있다. 불상 아랫부분의 대의는 편단우견으로 입었고, 허리 아래 자락이 옆으로 넓다. 대좌는 단엽 8판의 복련의 연화 대석으로 윗부분에 2단의 팔각 받침을 모각하였다. 불상이나 연화문 대좌의 조각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의 불상 양식을 따라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이곳이 아닌 주변의 절터에 봉안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99년도에 도난되었다가 2002년도에 다시 찾아 세웠다. 살창이 있는 벽으로 삼면을 두르고 정면은 개방한 형태의 보호각을 지어 관리하고 있다. 바로 옆에 시곡리 족구경기장과 주차장이 있어 찾아가기 쉽다.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

제천 엽연초생산조합 구사옥
충청북도 제천시 명동에 있는 제천 엽연초생산조합의 옛 사옥이다. 2003년 9월 27일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18년 제천 엽연초 경작 조합 설립 당시 사옥으로 지은 목조건축물로 아치형 현관 등에서 근대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현관 위쪽 창호는 기하학무늬가 특이하고 외부 장식과 평면 구성 등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근대화 시기의 과도기적인 건축양식과 업무 시설의 특징을 잘 알 수 있다. 근처에 같은 시기에 지어진 제천 엽연초 수납 취급소가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의병대로12길 8

연업초살롱
제천 엽연초 수납취급소는 우리나라 근대기 엽연초산업의 대표적인 시설물이다. 수납장과 저장 창고를 헐고 일식 단층 목구조 형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형태는 ‘ㄱ’자 평면형태이다. 엽연초 수납 작업을 할 있도록 하치장, 배열장, 경작자 대기실, 계산실, 감정실, 현품 대조실, 갱장장 순으로 공간이 구성되어 있다. 당시 엽연초 생산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감정실에는 엽연초를 감정하기 위한 원형 레일과 갱장장 바닥에 물을 담아놓는 습도조절장치 등 당시의 시설이 잘 보관되어 있다. 현재 엽연초 수납취급소는 ‘엽연초 살롱’이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로 탈바꿈하였다. 엽연초 수납취급소의 갱장장(수납장) 공간을 2024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20주년을 맞아 새롭게 리모델링했다. 이 건물은 목재트러스를 사용하여 구조적으로 안정된 인상을 주며, 지붕 골조를 그대로 노출하여 의장적으로는 보다 풍요로운 공간감을 제공한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이러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공간을 전시, 공연, 영화상영, 교육 프로그램, 지역협력사업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연중 상시 운영한다. 대표적으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기간 JIMFF OST페어를 운영하였다.
충청북도 제천시 의병대로12길 14-1 (명동)
제천 입석리 선돌
제천 입석리 선돌은 제천시 입석리로 진입하는 삼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입석리라는 지명은 마을 입구에 선돌이 세워져 있다고 붙여진 것이다. 입석리 선돌은 7개의 돌을 쌓아 만든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길에서 돌을 던져 선돌에 올라가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기자 신앙이 전해지고 있다. 이 선돌은 마고 할미들이 힘자랑 승부 내기를 하면서 던진 돌이라는 전설도 전해진다. 입석리 주민들은 1974년부터 선돌회를 조직하여 선돌을 보존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에 입석리 선돌제를 지내고 있다. 선돌은 청동기 시대의 큰돌 문화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입석리 선돌은 제일 아래에는 높이 66㎝의 널따란 돌 3개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높이 96㎝, 너비 140㎝, 두께 96~116㎝ 크기의 돌 3개가 중앙부를 이루고 있다. 제일 꼭대기에는 높이 245㎝, 너비 258㎝, 둘레 654㎝의 커다란 돌이 놓여 있어 모두 7개의 돌이 하나의 고인돌을 이루고 있는 매우 특이한 형태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제천시내에 있는 모전석탑이다. 돌을 벽돌처럼 잘라서 7층으로 쌓은 형태이다. 1층 탑신에는 화강석을 끼워 넣었으며 벽돌탑의 형태지만 석탑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기단은 여러 개의 자연석으로 짜서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점판암을 벽돌과 같이 잘게 끊어서 꼭대기까지 쌓아 올렸다. 1층탑신에는 남북면에 내부로 통하는 감실을 내어 놓았는데 여기에 문틀과 두 짝의 돌문을 달았다. 감실의 네 귀에 세운 귀기둥을 화강석을 끼워 맞춘 것으로 다른 모전석탑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방식이다. 모전석탑과 석탑의 양식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의 탑이다. 근처에 가볼 만한 곳으로는 제천향교와 제천시민회관 제천엽연초조합 사옥 등이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탑안로8길 24

제천 한산사 석조여래입상
제천 한산사의 소장유물로 석조여래입상이다. 고려 말기의 불상 양식이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불상이다. 석불은 높이 2.8m이며 벽돌로 만든 대좌 위에 세워져 있다. 대좌를 제외한 몸체는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돌기둥형이다. 윗면보다 아랫면이 더 넓고 옆면은 넓적한 형태이다. 정면은 부조형으로 조각되어 있고 좌우 옆면과 뒷면은 아무것도 조각되어 있지 않다. 석불의 얼굴은 타원형으로 얼굴에 비해 코가 큰 편이다. 눈 끝이 날카로우며 입은 살짝 벌린 채 미소를 띠고 있다. 불상의 전체적인 조각 수법은 선을 하나하나 조각한 수법이다. 근처 가볼 만한 곳으로는 의림지와 제천시민회관이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용두천로8길 27
제천 소악사지 삼층석탑
제천 소악사지 삼층석탑은 송학산의 대덕 산성 안쪽 소악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삼층 석탑이다. 소악사지 삼층석탑과 똑같은 모양과 크기의 석탑이 전국에 4개가 있다고 하는데, 다른 하나는 제천과 가까운 영월군 주천면 주천교 건너 강변도로 옆에 있으며, 또 하나는 영월군 수주면 인근의 도로변에 있고, 마지막 하나는 사자산 법흥사에 있다. 이렇듯 제천시 - 주천면 - 수주면 - 법흥사로 이어지는 도로변에 삼층석탑이 조성되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사자산 법흥사를 찾아가는 이정표 역할을 하였다는 설이 전해진다. 지금은 산속에 홀로 서 있어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크기는 높이 320cm, 기단의 길이와 너비는 각 100cm로서 규모가 작은 탑이다.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웠고 맨 위의 상륜부에는 현재 복발만 남아 있다. 소악사지 동쪽에 있는 넓은 자연 암반 위에 남동 방향을 향하도록 건립되었으며, 상륜부는 결실되었고, 탑신부와 기단부만 남아 있다. 탑의 조성연대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보고 있다. 탑이 있는 곳은 소악사지로 불리며 조선시대의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범우고에서 절 이름이 나타나고 있다. 기록상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불사를 이어오다가 19세기경에 폐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
제천 청풍 금남루
조선 순조 25년(1825)에 부사 조길원이 세운 관청의 정문으로 고종 7년(1870)년에 고쳐 지었고, 1985년에 청풍문화유산단지 안으로 옮겼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1층은 3개의 문으로 되어있는데, 가운데 문은 부사가 출입했고 양쪽 문은 평민이 출입했다고 한다. 2층에는 난간을 둘렀으며 사방이 탁 트여 멀리 있는 적의 동정을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이라는 현판은 건물을 세울 당시에 부사 조길원이 썼다고 한다.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제천 무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무암사는 금수산 자락에 있는 사찰로 신라시대에 지어진 절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창건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의 극락전은 조선 영조 16년(1740)에 중수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극락전의 주불인 목조여래좌상은 극락전을 건립할 때 함께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고 불상의 규모는 비교적 크다. 통나무로 조각되었는데 두 손은 따로 만들어 끼운 형태를 하고 있다. 복장 유물이 유실되었으나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목조여래좌상이다. 원만한 얼굴과 몸체의 양감 표현에서 훌륭한 조각 솜씨를 보여준다. 근엄하면서도 단정한 얼굴이나 도식화된 대의의 표현을 잘 볼 수 있다. 무암사에서 조성된 것이라면 극락전 망와의 명문에 보이는 건륭 5년(1740)은 참고할 만하다. 작은 규모이지만 조각 수법이 뛰어난 상이다. 양식 면에서도 조선 후기 목조불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어 조선 시대 충청북도 지역 불상 연구에 중요한 상이라 할 수 있다. 무암사에 들려 함께 볼만한 곳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청풍호로39길 285
제천 지곡리 고가
지곡리에 있는 옛집으로 곱은 자 모양의 안채와 ‘一’ 자 모양의 곡간채 및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 뒤에 사랑채가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만 있으며, 건넌방이 사랑채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부엌 앞에는 고방을 두어 식료품을 저장하는데, 부엌과 고방 사이에는 판자벽을 둘렀다. 이러한 기법은 오래된 집에서만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문간채 주위에는 담장을 둘러 바깥마당과 구분하고, 대문간에도 담을 설치하여 밖에서 집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특히 안채와 곡간채 사이에도 담장을 둘러 사랑채 역할을 하고 있는 건넌방의 독립성과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한 점이 특이하다. 가옥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주위로 막돌 담장을 둘렀고, 집안에는 수몰 전에 사용하던 가재도구 및 농기구를 전시하여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효율성과 기능성을 살펴볼 수 있는 가옥이다. 충주댐 건설로 청풍문화재단지 안에 이전 및 복원하였다.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제천 교리 방단석조물
제천 교리 방단석조물은 비단을 수놓은 듯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금수산 중턱 교리사지 근처 넓은 바위 위에 조성된 1기의 석탑 형태의 방형 석단이다.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정확한 조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전기의 탑으로 보인다. 1960년대 학계에 모전석탑으로 알려져 희소성과 중요성이 인정되어 왔으나 본격적인 학술조사가 진행되지 못한 채 원형이 훼손되어 방치된 상태이다. 현재 기단부와 초층부의 일부가 남아있고 북동쪽은 붕괴되었으나 서쪽면은 일부 남아 있다. 내부는 심하게 파헤쳐져 중심부의 암반이 보일 정도로 도굴되었다. 수습 유물로는 어골문 평기와와 격자문기와, 파상문기와 등이 수습되고 있는데 출토기와 편년은 모두 고려기의 것으로 이 석조물과 동일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사역의 규모는 약 200평 규모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교리
제천 청풍 응청각
청풍문화재단지 안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의 누각 건물이다.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원래 청풍현 객사 누각인 한벽루 옆에 나란히 세워졌던 2층 누각이었다. 충주댐이 생기면서 한벽루와 함께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제천 청풍 응청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1단의 기단 위에 건물을 세웠는데 1층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그사이를 흙벽으로 막아 창고로 사용한 듯하다. 2층은 앞면만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세워서 난간을 둘렀다. 동남쪽으로 3단의 나무 계단을 설치하여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다. 단청하지 않고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서 소박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누각이다. 제천 청풍 응청각은 한벽루 서측에 위치한 조선 시대 청풍현 관아 건물의 하나로서 건물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방관과 고을의 세력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중들의 삶을 보듬는 정담을 나누던 장소로 여겨진다. 관아의 누각이면서도 비교적 소박함이 깃든 건물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제천 청풍 한벽루
청풍문화유산단지 안에 있는 누각으로 사료적 가치가 큰 건축물이다. 조선시대 3대 익랑 누각 중 하나로 현존하는 건축물 중 유일한 양식이고 현판은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다. 고려 충숙왕 4년(1317) 당시 청풍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가 되었다.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어,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객사의 동쪽에 한벽루를 세웠다. 구조는 앞면 4칸, 옆면 3칸의 2층 누각과 앞면 3칸, 옆면 1칸의 계단식 익랑 건물이 이어져 있다. 건물 안에 송시열, 김수증의 편액과 김정희의 [청풍 한벽루]라고 쓴 현판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본채 옆으로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와 함께 본채 옆으로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적인 예이며, 세 건물 가운데 가장 간결하고 단아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1872년 대홍수로 망가진 것을 1875년 원래대로 복원하였다. 그러나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이 지역이 수몰되면서 청풍문화유산단지로 이전 및 복원하였다.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제천향교
제천향교는 1389년에 지어진 교육기관이다. 원래 마산 서쪽에 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쇠퇴하였다. 그 뒤 1907년에 대성전과 명륜당이 불에 타 없어졌고, 1922년에 대성전을 다시 지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등이 있고, 그 밖에 부속건물이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제사 공간을 형성하는데 중심이 된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배움의 공간을 이루며, 그 앞에 학생들이 거처인 동재, 서재가 있다. 갑오개혁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사만 지내고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칠성로 117
제천 청풍 금병헌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축물이다. 조선시대 청풍부의 동헌으로 부사가 집무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청풍면 읍리에 있던 건물이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로 지금의 자리로 이전 복원하였다. 숙종 7년(1681)에 부사 오도일이 창건하였으며 그 후에도 여러 번 개축한 기록이 있다. 건물 내부에 청풍관이라는 현판이 있다. 건물은 2단의 기단 위에 세운 정면 6칸, 측면 3칸 규모이다. 전면 1칸은 마루를 깔고 뒤쪽으로 방이 있으며 왼쪽 2칸은 마루에 난간을 둘러 마치 누각처럼 꾸몄다. 청풍 지역의 관아 건축 중 유일하게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이다. 관아 건물과 함께 원래의 배치 모습으로 복원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제천 청풍 금병헌은 옛 청풍부의 중심 건물로서의 상징성과 조선 후기의 소박하고 단아한 건축 양식적 특징이 잘 표현된 지방 관아라는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청풍 황석리 고가
청풍 황석리 고가는 청풍 황석리에 있는 옛 집으로, 앞면 4칸 규모이며 오른쪽 앞에 퇴칸은 두었다. 부엌·안방·윗방을 나란히 배치하고 끝에 사랑방을 두었다. 안방과 윗방 앞에는 마루를 놓았고, 사랑방 앞에는 마루 없이 옥외 취사공간인 한데 부엌을 두고 머리퇴에 툇마루를 놓아 손님을 맞을 수 있게 하였다. 청풍 황석리 고가는 머리퇴를 둔 4 칸집의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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