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7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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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보혁파비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을 위한 구실이었으며 크게는 반봉건 의미를 담은 만석보 철거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만석보 철거 요구는 당시 백성들의 민심을 헤아릴 수 있는 동시에 이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백성들의 의식이 커졌음을 의미하며 결국 신임 고부군수 안길수로 하여금 민심수습을 위해 철거를 결심할 수밖에 없게 만든 정치적 사건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들은 고부관아를 점령한 뒤 수탈의 구실이었던 만석보를 부수었는데, 1898년 새로 고부군수로 부임한 안길수가 남아있던 만석보를 완전히 철거하였다. 이에 동년 9월 농민들이 ‘군수 안후길수 만석보 혁파 선정비’를 세웠다.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풍우로부터 비석의 훼손을 예방하기 위해 비각을 세웠다. ( 출처 : 정읍관광)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청주 문의 문산관
청주 문의 문산관은 조선시대에 청주 문의현에 있던 관아건물이자 충청북도 유일한 객사이다. 객사는 전패를 안치하고 초하루 보름으로 대궐을 향하여 절을 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중앙에서 내려온 사신의 숙소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이 건물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66년 문의읍에 현령 명하가 옮겨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지붕의 암막새 기와에 옹정육년 무신사월이 새겨져 있어 1728년에 중건했음을 알 수 있다. 현 건물은 대청댐 공사로 인해 1979년 문의향교 옆으로 옮겼다가 1997년 문의문화유산단지 현 위치에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건물구조는 정당이 중앙에 있고 그 좌측에 좌, 우익실을 두었으며, 전면에 중문, 외문, 측면에 무랑 등이 부속되었고, 정당은 벽돌을 깔고 좌, 우익실은 한국식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대청호반로 721

청주 문의향교
청주 문의향교는 조선시대 문의지방에 있던 관학기관이다. 본래는 문의현 서쪽 1리 지점인 지금의 양성산 아래에 있던 것을 조선 광해군 1년(1609)에 기산리로 옮겼고, 숙종 9년(1683)에 현령 이언유가 다시 서쪽으로 2리 떨어진 양성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가 그 후 세 차례에 걸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06년 청주향교에 합쳤다가 1925년 크게 중수하여 복구하였다. 건물의 배치는 선현의 위패를 봉안한 대성전을 뒤에 두고 앞에는 유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을 두는 후묘전당식이다. 대성전 앞에는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인 명륜당이 있고 그 앞에 삼문을 세우고 입구에는 홍살문(紅箭門)이 세워져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문의시내1길 11-14

월성위김한신묘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근처에 있는 이 묘소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정효공 김한신(1720~1758)의 묘이다. 1732년 13세 때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졌으며, 오위도총부도총관과 제용 감제 조를 역임하였다. 글씨를 잘 쓰고, 시문에 능하였던 그는 애책문(哀冊文), 시책문(諡冊文) 등을 많이 썼으며, 도장을 새김에 있어서도 뛰어나 인보(印寶:임금의 도장)를 새기기도 하였다. 그가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는 애도의 정이 극에 달하여 곧 그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현재 묘역에는 그와 화순옹주가 합장되어 있다. 이 일대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외에도 김정희묘, 화순옹주홍문, 예산 용궁리 백송 등 다른 볼거리도 있으며, 그 외에도 신리성지, 합덕성당, 합덕제수변공원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망부상과 망부사 사우
정읍사문화공원은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를 주제로 조성된 공원이다. 이곳에는 행상 나간 남편을 기다린 정읍사 여인의 망부석을 재현한 망부상과 그 여인을 기려 제례를 지내는 사당인 망부사 사우가 있다. 정읍사문화공원에는 정읍의 상징물인 백제 여인 망부상이 있다. 행상 나간 남편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 그 아내가 산에 올라 바라보며 남편이 밤에 오다가 진흙탕물에라도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기다림 속에 안녕을 기원하는 가요 한편을 지어 불렀다. 이것이 오늘날 현존하는 백제가요 정읍사다. 여인은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굳어 돌로 변해 망부석이 되었다. 정읍사공원의 맨 위쪽에 자리한 망부상은 허리띠를 두른 백제 여인의 의상을 갖추고 있다. 치마저고리가 하얀 색깔이며 아래까지 단이 있는 반코트를 입고 있다. 망부상은 지금도 남편을 기다리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듯 정읍 시가지를 바라보며 양손을 모은 채 서 있다. 정읍사문화공원안의 망부상 서편 기슭에 있는 백제 여인을 위한 망부사 사우다. 망부상 사우는 1994년 7월 건립 하였으며, 행상나간 남편을 오직 사랑하나로 천년을 기다린 정읍사 여인의 영정을 모시고 부덕과 부도 정신을 계승하고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읍사로 541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선생의 옛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 2동짜리 건물로 조선 영조(재위 1724~1776)의 사위이자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인 김한신에 의해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 건물 전체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데, 안채는 서쪽에 있고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은 동쪽에 따로 있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머물면서 손님을 맞이하던 생활공간인데, ㄱ자형으로 남향하고 있다. 각방의 앞면에는 툇마루가 있어 통로로 이용하였다. 안채는 가운데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막힌 ㅁ자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살림살이가 이루어지던 안채는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판벽을 설치하여 막아놓았다. 대청은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동쪽을 향하였고 안방과 그 부속공간들은 북쪽을 차지하고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지형의 높낮이가 생긴 곳에서는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층을 지게 처리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덕산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덕산향교는 처음 건립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인조 때 세운 것으로 전한다. 대성전은 숙종 8년에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1987년에 다시 한번 보수했다. 건물 배치는 외삼문 없이 앞쪽에 바로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어 전학후묘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덕산향교 앞의 평지에는 공자상이 세워져 있으며 여름에는 향교 주변으로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워 그 풍경이 아름답다. 덕산향교는 가을 선진 지역을 답사하고 전임 강사를 초빙 교양 강좌를 개최하는 등 지역 사회 유림 활동에 힘쓰고 있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향교길 88-34
흑성산성
흑성산성은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에 있는 이 산성은 흑성산 정상을 둘러싸며 만들어졌다. 돌로 쌓은 산성으로 성의 둘레는 570m로, 산성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기 힘든 상태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성안에는 우물 1개와 샘 1개가 있는데, 하절기와 동절기에는 간혹 마른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성벽의 높이가 6척이며, 가운데에는 못이 하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교촌리
충주향교
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29년(인조 7)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다. 1897년 중수하였고, 1936년 군수 김석영(金錫永)이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를 중수하고 명륜당을 신축하였으며, 1966년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치사재(治事齋)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 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제도적인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매년 충주시·중원군내 효자효부(孝子孝婦)를 춘계 석전(釋奠) 때에 표창하며 1976년부터 명륜학원(明倫學院)을 운영, 한문·서예(書藝)·경서(經書) 등을 가르치고 있다. 종교적 기능으로는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장전적은 판본 100종 137 책, 사본 2종 3 책이 있다.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인과 장의(掌議) 수인이 담당하고 있으며, 1979년에 유림회관(儒林會館)을 건립, 운영하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교동9길 1 (교현동)
이동녕선생 생가지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녕(1869∼1940)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이후 일가는 1885년(17세) 한성부 종로 봉익동 2-4번지로 이주하였다. 2005년 12월 생가지 보수 및 정비가 완료되고, 생가복원사업이 이루어졌다. 더불어 우물, 포토존(이동녕선생좌상) 등 구조물이 설치되고, 생가에는 안방, 사랑채 등에 옛 가구 및 인물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건물의 배치 구조는 ‘ㅁ’ 자형이며, 안채와 ‘ㅡ’ 자형 문간채가 어우러져 ‘ㄷ’ 자형을 이루고 있다. ‘ㄱ’ 자형 안채는 3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한 칸씩 방이 있다.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를 깔았고, 양쪽으로 한 칸씩의 방이 있는데, 안채의 좌우로 3칸씩을 내어 방과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문간채는 서향으로 3량 가구 구조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모두 5칸인데, 가운데 2칸은 마루를 깔았고 양쪽으로 한 칸씩의 방을 두었다. 안채에서 보아 북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대문이 있다. 사랑채가 있었으나 많이 변형되어 원형을 알기 어렵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4길 36

정산향교
정산향교를 세운 시기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전기부터 있던 것으로 보인다.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와 서재를 비롯하여 강학루와 전사청이 있고, 제사 공간으로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와 그의 제자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특히 향교 입구에 2층의 청아루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누정이 있는데 1층의 출입문과 좌우를 모두 판장으로 마감했고 그 위에 태극문양을 그려 놓았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고 청양군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서정향교1길 13

신경섭 전통가옥
신경섭 가옥은 보령시 북서부에 위치한 전통 가옥이다. 이 가옥은 조선 후기 한식 가옥이며 큰 부재를 사용한 당시 부호의 사랑채로 전해진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전체적으로 ㄱ자형이다. 중간에 대청을 설치하였으며, 앞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좌측 끝에는 부엌을 두고, 부엌 위에 다락을 만들었다. 사랑채 회첨부 중간에 마루를 두어 대청으로 사용하였고, 전면 벽체에 화방벽을 설치하였으며, 목재의 결과 고색 단청이 지금까지 변함이 없는 등 보존이 잘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고, 1998년에는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문간채에는 문중의 효자 신석붕 정려문이 있다. 신경섭 가옥은 국도 21호선, 36호선에서 지방도 610호선, 609호선, 죽성로, 장밭길을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서해안고속도로 광천IC, 대천IC와 서천공주고속도로 서공주IC가 가깝다. 주변에는 오서산, 국립 오서산자연휴양림, 명대골계곡, 보령장현리귀학송, 청천저수지 등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장밭길 62
삼탄유원지
충북선의 아름다운 간이역, 삼탄역 근처의 삼탄전 주위에 형성된 유원지다. 삼탄은 관청소여울, 소나무여울, 따개비 여울 등 여울이 셋이라는 뜻으로 산수경치가 수려하고 사계절 소풍객과 전국의 낚시꾼, 산나물 캐러 많이 찾는 곳이다. 화전민들이 가끔 머물렀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어 전쟁등 큰 변란이 있을 때마다 피난처로 삼았던 오지였다. 1958년 목행과 봉양 사이의 충북선이 연장 개통되면서 유원지가 되었다. 기암절벽 아래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서 여름철 피서지로 많이 찾고 있다. 삼탄 유원지는 산수경관이 수려하고 물이 주변의 산과 조화를 이뤄 옛날부터 충주의 명승지로 꼽히고 있으며 2000년 6월 18일 깨끗하고 넓은 체육공원이 준공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인등로 177
보령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보령향교는 보령시 주포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향교이다.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현존하는 건축물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을 비롯하여 부속건물이 있으며, 전학후묘의 일반적 배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동재, 서재는 기숙사이며, 명륜당은 강의실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위시한 중국 5성과 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현재 보령향교에서는 미래학교, 여름바캉스, 요리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주변 관광 명소는 보령성곽, 보령관아문, 진당산, 보령리 5층석탑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향교말길 45
충주 제금당
충주시내의 관아공원에 있는 조선 초기의 관아건물이다. 귀빈들을 맞이하던 영빈관으로도 사용했던 건물이다. 고종 7년(1870) 청령헌과 함께 불에 타버린 것을 당시의 충주목사 조병로가 다시 지었다. 그동안 중원군수 집무실로 사용하였으며 1983년 원형을 살려 복원하였다. 앞면 7칸·옆면 3칸 규모이고, 지붕은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 공포가 새날개 모양이 장식된 익공양식으로 지었다. 가운데 2칸은 대청, 오른쪽 2칸과 왼쪽 3칸은 온돌방과 마루방으로 꾸몄다. 주변에는 충주축성사적비와 충주박물관, 충주문화회관 등이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관아1길 21

결성향교
향교는 공자 등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결성향교의 언제 지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고려 현종 1년(1010)에 세웠다고 전한다. 조선 인조 1년(1623)과 현종 15년(1674), 순조 8년(1808)에 수리하였고 1923년에 크게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건물 배치는 외삼문 없이 바로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그 뒤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는 전학 후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외에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제기고, 홍살문, 내삼문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홍남서로707번길 21-8
백암리남근석
남근석은 남자의 성기 모양을 한 자연 암석이나, 암석을 조각하여 세운 것을 말하는데, 사람들이 섬기는 민간신앙 중 성기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흰 바위 마을 입구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 남근석은 이 마을에 있는 12 당산 중의 하나로, 일명 자지바우라고도 불린다. 높이는 1.35m로 네모난 단 위에 길고도 곧게 뻗어 있다. 꼭대기 부분은 약간 뾰족하게 깎은 후 둥글게 처리하였다. 300여 년 전에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와주던 박잉걸이 이 남근석을 세웠다고 전한다. 음력 정월 초사흘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농사의 풍요와 액을 막기 위한 제사를 올리는데, 아이 낳기를 소망하는 여인이 기도하면 아들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농경사회에서 풍부한 생산력의 바탕이 되었던 성이 남근석으로 만들어지고 신성시되어, 이처럼 민족의 고유신앙이 되었다. 주변 관광지는 백암리 당산, 무성서원, 무성리 삼층석탑, 무성리 석불입상, 칠보 수력발전소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을 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홍주아문
홍주아문은 조선시대 홍주의 지방관이 근무하던 건물인 안회당의 바깥문으로,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함께 세운 것이다. 안회당과 함께 홍성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목조건물이다. 홍주아문은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도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조선 시대 관청 출입문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홍주아문 안에는 내삼문과 남과 북으로 행랑을 이어서 지어 담장을 대신했던 큰 건물이 있었는데, 3·1 운동 당시 홍성의 만세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진주한 일본군이 홍성군청을 병영으로 삼고 군수를 추방하는 한편 내삼문을 헐어버렸다. 그 이후 행랑은 보수하지 못해 스스로 무너져 버렸고 오직 외삼문인 홍주아문만 보존된 것이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7
단양 조덕수 고택
단양 조덕수 고택은 남한강이 굽이쳐 흐르는 가곡면의 상덕천 마을, 해발 200m의 얕은 산자락(국수봉)에 있는 목조기와집으로, 조자형 가옥으로도 불린다. 조자형의 6 대조인 조덕수가 1770년경에 지었다고 전해온다. 이 지역의 중농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민가이다. ‘ㄱ’ 자형의 안채와 ‘ㄴ’ 자형의 행랑채가 맞물려 ‘ㅁ’ 자 모양을 이루는 전형적인 중부 내륙 지방의 민가 형식의 가옥이다. 안채는 19 세기 중엽 정도에 건축된 건물이며 정면의 왼쪽에서부터 건넌방, 대청, 안방이 차례로 있고 안방에서 앞쪽으로 꺾여 부엌과 아랫방이 있다. 건넌방 앞과 안방 뒤의 측면 툇간에는 툇마루를 달았고 대청마루가 툇간까지 연장되어 있다. 부엌 옆에 붙은 아랫방 앞에는 툇마루가 없이 함실아궁이가 설치되어 있고 부엌에는 뒤쪽 상단에 1칸 규모의 다락이 있는데 이런 방식은 중부지방보다는 남부 지방의 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랑채는 20세기 중엽에 지은 초가집으로 대문간과 함께 건축되었는데 구조는 일반적인 농가와 유사하다.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덕천1길 19
상선암
단양군을 중심으로 12㎞ 내외 산재한 아름다운 명승지를 모아 단양팔경이라고 한다.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을 말한다. 단양팔경 중 하나인 상선암은 중선암에서 59번 국도를 따라 아기자기한 계곡 풍경에 취해 달리다 보면 어느 틈엔가 나타난다. 크고 널찍한 바위는 없으나 작고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서로 모여 있는 모습은 소박하고 정겨운 한국인의 이웃을 연상케 한다. 맑은 벽계수가 용출하여 반석 사이를 평평히 흐르다가 좁은 골에 이르러 폭포가 되어 구름다리 아래로 떨어진다. 아치형 다리를 따라 그 풍경 안으로 들어가면 층층이 몸을 맞대고 있는 바위 아래로 계곡 물이 힘차게 휘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바위를 찰싹찰싹 때리며 흘러가는 계곡의 맑은 소리가 온 숲을 가득 채우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멀리서 산새가 우짖는다. 이렇게 사람이 오가는 길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지만 한 발짝만 들여놓아도 금세 딴 세상이 되어 버리게 한다.
충청북도 단양군 선암계곡로 790 상선암

결성동헌
조선시대 홍성지방 관리들이 업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행정업무를 처리하던 동헌과 치안업무를 처리하던 형방청, 책과 문서를 보관하면서 관리의 자제가 지내던 책실로 구성되어 있다. 동헌은 고려말에 결성면 금곡리 분우터에 있다가 정종 2년(1400)에 결성읍 산성 정상으로 옮겼다. 현종 6년(1665) 현재의 위치인 읍내리에 다시 지었고,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동헌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형방청은 ‘ㄱ’ 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책실은 앞면 2칸·옆면 1칸 반 크기로, 지붕은 앞에서 볼 때 사다리꼴인 우진각지붕이다.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홍남서로738번길 23

북벽
북벽은 단양군 영춘면 상리 느티마을 앞을 도도히 흐르는 남한강가에 깎아지른 듯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석벽을 의미한다. 단양 제2팔경 중 한 곳으로 봄가을의 철쭉과 단풍이 그 풍광을 더해준다. 북벽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청명봉이라고 하는데 마치 매가 막 날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어 응암이라고도 불린다. 북벽은 영춘면에서 북쪽에 있고, 17세기에 펴낸 각종 문집에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1600년대부터 이 같은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단양지역 향토사학계는 1741년(조선 영조 17) 2월부터 1745년 7월까지 영춘현감으로 재직했던 이보상이 이곳 암석에 ‘북벽’이란 글자를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영월, 영춘, 청풍, 단양, 풍기, 제천 등지의 풍류객들과 유생들이 이곳 북벽의 풍경에 매료되어 뱃놀이를 하며 봄의 철쭉, 가을의 단풍을 즐겼으며, 많은 선비가 신이 빚은 자연의 조화를 한시로 남겼다. 1960년대만 해도 북벽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를 지나서 서울 광나루로 향하던 뗏목 사공의 노래가 구성지게 울려 퍼졌다고 한다.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북벽길 51-3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상
충주시 중앙탑면의 자연 암벽 위에 얕은 선으로 새겨진 마애불이다. 높이는 4m이며 불상의 중앙 부분이 철 성분으로 인해 붉은색을 띠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얕은 부조로 조각하고 손을 표현하지 않는 등 고려시대 지방색이 나타난다. 또한 강물 위에 뜬 배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독특한 위치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수운의 안녕을 기원하여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와 얼굴 부분은 낮게 양각하였으며 어깨 이하는 거의 음각선으로 처리하였다. 머리는 소발이며 얼굴은 살이 쪄 풍만한 모습으로 나타냈고 코도 큼직하게 표현되었다. 귀는 길게 나타내어 어깨에 닿아 있고 머리에 비해 양 어깨는 좁고 목에는 삼도가 또렷하다. 눈썹은 동그랗게 표현되어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눈은 일직선으로 표현하였다. 눈꼬리는 찢어진 듯하고 입가에 미소가 없어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통견의 법의는 양팔에 걸쳐 옆으로 퍼지면서 양쪽 무릎을 덮었으며 가슴의 둥근 의문은 중심부만 약간 남기면서 흐르고 있어 몸 전체가 구름에 쌓인 듯이 표현하였다.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충주댐
국내 최대의 콘크리트 다목적댐인 충주댐은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조동리를 잇는 댐으로 남한강을 막아 수자원 확보 및 홍수 피해 방지, 전력 생산을 목적으로 한다. 충주댐 좌안 정상에는 물 전시관, 기념탑,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우안 정상에는 물레방아 휴식 공간, 헬기장, 충주호 유람선을 탈 수 있는 충주나루가 위치해 있다. 충주댐으로 생긴 충주호는 유람선이 운행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높이 97.5m, 길이 447m, 저수용량 27억 5천만 평방미터의 댐으로써 본댐 하류에는 높이 21m, 길이 480.7m의 조정지댐이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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