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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72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72페이지입니다.

은진향교 대성전
역사관광충청남도

은진향교 대성전

은진향교 대성전은 조선 태조 7년에 은진면 용산리에 있었으나 인조 20년 (1642) 현재의 위치인 교촌리 77번지로 옮겨 지었다.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있었던 지방교육기관으로서 제사공간인 문묘와 강학공간인 명륜당으로 나누어진다. 대성전은 문묘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고종 31년(1894) 과거제도의 폐지로 향교는 강학기능이 쇠퇴하고 문묘의 향사 기능이 주가 되었다. 은진향교에는 9인의 중국선현을 포함하여 27위를 배향하고 있으며 해마다 봄과 가을에 음력으로 2월과 8월 상정일에 유림들이 모여 선현들을 존모 하는 행사로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이를 석존제라고 한다.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탑정로427번길 14-1

연풍성지
역사관광충청북도

연풍성지

천주교 연풍성지는 조선 정조 15년(1791) 신해교난 이후 연풍 땅에 은거하여 신앙을 지켜가던 교인 추순옥, 이윤일, 김병숙, 김말당, 김마루 등이 순조 1년(1801) 신유교난 때 처형당한 자리로, 1974년부터 천주교회에서 성역화한 곳이다. 성지 내에는 연풍향청 건물과 높이 8.5m의 십자가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한국천주교 103 성인의 한 사람인 루까 황석두의 입상과 묘가 있다. 순조 13년(1813) 연풍현 병방골에서 태어난 황석두 성인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일생을 종교에 헌신하다 병인박해 때 다블뤼주교, 오메트르신부, 위앵신부, 장주기 회장과 함께 충청도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고 한다. 성지 왼쪽에는 순교현양비를 세웠으며, 문 앞에는 처형석을 유물로 전시하고 있다. 성지에 있는 연풍향청은 향청 이후 헌병주재소, 경찰지서 등으로 쓰이던 건물이었으나, 천주교회에서 구입하여 연풍 공소의 예배소로 사용하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중앙로홍문2길 14

남복리오층석탑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남복리오층석탑

정읍시에 위치한 남복리오층석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편편한 4매의 돌로 짜 맞추고, 위층 기단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기단 맨 윗돌 위에는 높은 괴임을 두었는데, 이곳에 난간모양을 새겨놓아 독특한 특징이 되고 있다. 탑신의 1층 몸돌 4면에는 중앙을 직사각형모양으로 얕게 파내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머리장식 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영원로 596-31

남포향교 대성전
역사관광충청남도

남포향교 대성전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남포향교는 조선 태종 13년(1423) 웅천면 대천리에 창건되었으며 중종 25년(1530)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고, 1975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남포향교의 전체적인 배치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외삼문, 내삼문, 동재, 서재 등이다. 주변 관광 명소는 남포읍성, 옥마산, 남포 관아문, 보령시 옥마산 패러글라이딩 체험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33

연풍향교
역사관광충청북도

연풍향교

중종 10년(1515)에 지어진 연풍향교는 여러 차례 고쳤으며, 한국전쟁 때 명륜당과 동무·서무가 불에 타 없어졌다. 1978년에 대성전을 고쳤고, 그다음 해 명륜당을 다시 지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명륜당과 대성전이 있고 그 외에 고직사가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곳이고,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던 건물이다. 대성전과 명륜당 사이에는 내삼문을 두어 배움의 공간과 제사공간을 구분하고 있어, 향교의 일반적 배치 형태인 전학 후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급받아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 2차례에 걸쳐 제사만 지내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 보관하고 있는 책은 이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향교로 40-2

화양동관광농원
문화관광충청북도

화양동관광농원

화양동관광농원은 농촌 체험이 가능한 숙박시설로서 성인 2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시설로 사계절 수련과 각종 모임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단체 외에도 가족 단위 고객들이 주말과 휴가철을 맞아 고향집처럼 찾고 있다. 농원 내 편의시설은 황토방으로 지은 민박동에 객실과 식당이 있고, 야외수영장과 잔디 족구장, 가축 사육장, 야외 바베큐장, 출렁다리, 서바이벌 게임장, 황금박쥐동굴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시냇가 래프팅, 패들보트, 물총서바이벌, 트램펄린, 에어바운스, 미꾸라지 잡기, 농작물 수확 등의 여러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여름에는 대형 수영장을 운영하며, 이곳은 농촌에서의 숙박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다보길 8

홍산향교
역사관광충청남도

홍산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홍산향교는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며 『부여향교지』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1591년 관찰사 이성중이 중건하고, 1597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10년 이덕기가 복구하였다. 1643년 부여지방의 유림 홍처윤이 향교의 위치가 너무 높아 불편하다 하여 평지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배움의 공간인 명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이외에 홍살문과 내삼문·외삼문이 있다. 인근에 홍산동헌, 홍산객사가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홍내로21번길 61

암서재
역사관광충청북도

암서재

암서재는 우암 송시열이 만년에 정계에서 은퇴하여 화양동에 은거할 때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국립공원인 화양동 계곡의 제4곡 금사담 옆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위 바위 사이에는 노송이 울창하고 밑으로는 맑은 물이 감돌며 층암절벽이 더할 수 없는 경치를 엮어내고 있다. 대지 약 20평 정도의 목조 기와집으로 2칸은 방이고, 1칸은 마루로 되어있는데 여기에 현판 5점이 걸려있다. 앞에는 암반사이에 일각문이 세워져 있으며, 일제말에 후손들이 수리하였고, 1970년에 다시 보수하였다. 문인 권상하가 쓴 암서재기에 ‘우암선생어병오년간축정사어계남(尤庵先生於丙午年間築精舍於溪南)’이라 쓰여 있어서 1666년 8월 암서재를 신축하고 이곳에 거주한 것을 알 수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205

홍산동헌
역사관광충청남도

홍산동헌

동헌은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 건물로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인 일을 하던 곳이다. 홍산동헌은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조선시대 홍사현 관아의 동헌 건물이다. 흥선대원군은 정권을 잡은 후 관청의 위엄을 세우기 위하여 전국에 걸쳐 관청건물을 정비하였고, 그 일환으로 고종 8년(1871) 당시의 군수였던 정기화가 건립하였다. 이곳은 해방 후 홍산 지서로 사용하다가 1984년에 부여군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하여, 앞면 7칸, 옆면 2칸의 크기로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에 각각 크기가 다른 온돌방을 설치했다.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관청의 위엄을 나타내고 있다. 동헌 앞에 있는 이정우 가옥은 관아문과 형방청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주변 관광 명소는 아홉 살이 관광, 보부상, 홍산객사, 성일사, 홍익향교가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동헌로 38

홍산객사
역사관광충청남도

홍산객사

객사는 국왕의 전패를 모시고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물던 곳으로 관아에 관련된 시설들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시설에 해당한다. 1836년(헌종 2) 당시의 군수 김용근이 건립했다고 전해지며, 한때는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83년 크게 중수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홍산객사 평삼문으로 된 외삼문을 들어서면 중앙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당(正堂)을 중심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동쪽 익실과 정면 3칸, 측면 2칸의 서쪽 익실이 붙어 있다. 정당은 겹처마 맞배지붕이고 동서 익실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홍산객사는 동·서익실의 규모가 달라 좌우의 균형을 이루지 않았으며 객사 건물로는 규모가 비교적 큰 건물이다. 홍산객사 내에 있는 은행나무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홍산객사의 건립 연대와 같은 수령인 수나무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높다고 한다. 인근에 홍산객사 은행나무, 홍산동헌, 홍산향교, 홍산 현관아, 홍산 형방 청을 연계 관광할 수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로 47

중선암
자연관광충청북도

중선암

단양팔경중 하나인 중선암은 조선 효종조의 문신인 곡운 김수증이 명명한 것으로 전해지며 삼선구곡의 중심지이다. 태고 때부터 바람이 다듬고, 계곡이 씻어낸 하얀 바위들이 옥빛 계류와 선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밝은 햇살이 계곡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하얀 바위들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눈이 부시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반한 옛 선인들은 감흥을 가슴에 새기는 것도 모자라 바위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깊게 새겨놓고 떠나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이름이 300명이 넘어 중선암을 향한 선인들의 열성을 느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옥염대 암벽에 사군강산 삼선수석이란 대서특필한 각자가 있는데 이는 관찰사 윤헌주가 1717년에 특서한 것이다. 단양, 영춘, 제천, 청풍 네 개의 군중에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중선암은 상선암과 하선암과 달리 너른 바위옆에 소나무숲이 있어서 바위에 그늘이 드리워져 햇살도 피할 수 있는 곳이어서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가산리

한산향교
역사관광충청남도

한산향교

한산향교는 서천의 한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조선 전기의 교육기관이다. 한산향교를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고려 충렬왕(재위 1274∼1298) 때 동산리 유산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조선 현종 10년(1669)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고 철종 1년(1850)부터 이듬해까지 크게 고쳐 지었다. 건물 배치는 앞쪽에 학문을 배우는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이 있어 전학후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 옆면에 바람막이 풍판을 설치했다. 이외의 건물로는 학생들의 기숙사로 쓰이던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보통 명륜당의 좌우에 세우지만 이곳은 지대가 폭이 좁고 길이가 길어 동재는 명륜당 오른쪽에, 서재는 담장 밖에 자리 잡고 있다.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한산향교길 76-31

양방산전망대
문화관광충청북도

양방산전망대

양방산 전망대는 해발 664m인 양방산 정상에 세워진 전망대이다. 전망대는 사방을 다 볼 수 있는 원형 모양으로 우주선을 연상하게 하나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다. 전망대 인근에 있는 작은 테라스에서 일몰과 남한강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어느 곳에서 봐도 남한강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더불어 단양 시내의 전경도 바라볼 수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양방산길 350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
역사관광충청남도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

이 건물의 건축연대는 19세기 말로 추정되며, 구한말 규장각(奎章閣)의 직학사와 참판을 지낸 이정렬이 고종황제로부터 하사 받아 지은 집이라 전한다. 이 집은 큰집과 작은 집의 2개군으로 되어 ‘므’ 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평면의 구성은 대체적으로 중부 방식(대청이 안방 구들에서 꺾여 놓이는 식)을 따랐지만 작은집 사랑채만은 대청이 한쪽으로 배치되는 남도풍이 가미되었다. 집안의 살림살이 기구도 비교적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특히 큰집 사랑채의 가구 배치 등은 우리 조상들 생활 모습의 멋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했다. 큰집의 특징은 집을 둘러싸는 돌담으로 공간을 구획한 것인데, 대문간 앞으로 돌담을 내쌓아 집안으로의 진입에 깊이감을 준다. 중문 간 앞에는 아담한 마당을 만들고 장독대 주위에는 나지막한 돌담을 두르는 등, 아름다운 공간의 연속을 연출한다. 작은 집의 사랑방 앞퇴에는 고방을 배치하고 분합문을 달아서 다용도로 쓰는데, 이것은 여느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 42-15

천동관광지
문화관광충청북도

천동관광지

단양 시내에서 고수대교를 건너 6km를 달리면 다리안관광지와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천동관광지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소백산 깊은 골짜기에서 내려온 맑은 계류와 울창한 숲이 청정한 기운을 뿜어내는 천동계곡 주위로 오토캠핑장, 취사장 등을 갖추고 있는 다목적 관광단지이다. 1급수인 천동계곡은 푹푹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차갑고, 시원한 산그늘 아래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천동 물놀이장과 여름철 가족끼리 오붓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오토캠핑장까지 갖추고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다리안로 534

신창향교
역사관광충청남도

신창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신창향교는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지었다고 하지만 기록은 없고, 고종 9년(1872) 처음 지은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서재, 내삼문 등이다. 대성전은 제사 지내는 공간으로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인 익고 양식으로 꾸몄다. 안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 중국·우리나라 성현들을 모시고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으로,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또한 향교·서원 문화유산 활용사업으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서부남로840번길 29

보은향교
역사관광충청북도

보은향교

보은향교는 조선 세종 때에 현유의 위패를 보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된 곳으로 인조 이후 여러 차례 중건하고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등이 있다. 명륜당은 1871년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하게 된 상현서원의 강당을 옮겨 지은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목조건물이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적을 봉행하여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소장 전적으로 순암집 등의 문집수권과 공부자성적도 등이 있다. 현재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향교2길 21-5

보은동헌
역사관광충청북도

보은동헌

보은동헌은 삼산리의 옛 보은경찰서 자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로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순조 때 고친 것으로 전한다. 동헌은 아헌이라고도 하며, 관청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조선시대 감사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보은동헌은 조선시대 각 지방 수령이 집무하던 곳이었으나, 1907년(융희 1) 보은군에서 일어난 의병활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한 일본 헌병대가 강점한 후 계속하여 경찰관서로 사용하여 왔다. 한때 보은경찰서로 사용되면서 내부구조가 많이 바뀌긴 했으나, 17세기 말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건물은 정면 7칸, 옆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계 건물로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평면이 특징 있게 꾸며져 있다. 전면 1칸은 모두 마루이고 오른쪽 4칸은 대청이며, 왼쪽 3칸은 온돌방을 두었다. 대청 중 동쪽 1칸과 후면을 높게 해서 누마루를 만들었는데, 조선 후기 동헌의 한 특징으로 태인동헌과 함께 다양한 공간구성과 창호의 장식이 돋보인다. 1983년 원형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헌 앞에는 관내 각지에 흩어져 있던 역대 현감 또는 군수들의 송덕비 또는 선정비 6개를 1988년 옮겨 세워져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삼산로 56-14

역사관광충청북도

상현서원

충암 김정(1486∼152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김정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학자로 이조참판, 대사헌 등을 거쳐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그림과 시문에 능하였고 조광조와 함께 사림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1555년(명종 10년) 동주 성제원이 삼년성 안에 충암 김정을 향사하는 독향원을 세우고 삼년성서원이라 하였는데 1610년(광해군 2년)에 국가 공인의 사액서원으로 상현이란 이름을 받았다. 한국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 다음으로 세워졌으며, 충청북도에서는 첫 번째로 설립되고 사액받은 서원으로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제사 지낸다. 1672년(현종 13년) 삼년성 안에서 외속리면 서원리로 옮겨 세웠으며 사당에는 김정의 위패를 중심으로 좌우에 성운·성제원·조헌·송시열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고종 8년(1871)에 폐쇄된 뒤 1892년(고종 29년) 찰방 김세희가 제단을 만들어 제향을 올렸으며 1896년(고종 33년) 장례원집례인 김문희와 송근수가 서원을 재건하고 1919년에 중수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49년에 다시 지은 후 1986년 해체 복원한 것이다. 나지막한 산을 뒤로하고 세운 이 서원은 작은 규모의 사당과 비석이 안치된 비각, 출입문으로 구성된다.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의 비각이 있고 뒤편으로 별도의 담장을 두른 정면 3칸,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사당이 있다. 사우 앞에는 내문인 일각문이 있고 일각문 앞에는 묘정비와 이를 보호하기 위해 비각이 있다. 비각 안에는 1949년 김명구가 쓴 상현서원중수기기문판이 걸려 있다. 강당은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될 때 보은향교로 옮겨 향교의 교육 장소인 명륜당으로 사용하여 왔다.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장안로 225

온주아문 및 동헌
역사관광충청남도

온주아문 및 동헌

온주아문 및 동헌은 조선 후기의 관아 건물이다. 문루는 ‘온주아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온주는 아산의 시가지를 일컫는 지명 ‘온양’을 뜻한다. 문루는 화강암 초석 위에 2층으로 세워져 있으며 아래층은 통로, 위층은 누마루로 활용하였다. 동헌은 문루에서 약 50m 북쪽에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온양군 동헌으로 쓰였는데, 동헌은 지금으로 따지면 군수의 집무실이라 할 수 있다. 동헌의 역할을 상실한 후 1928년부터는 일제의 주재소, 해방 후에는 파출소, 1986년에는 시승격에 따라 1988년까지 온주동 동사무소로 2년간 사용되다가 1993년에 수리 및 복원하였다. 이 건물은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정면 6칸, 측면 2칸의 평면 건물로 홑처마 팔작지붕 구조이다. 온주아문 앞에는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훌륭한 현감, 군수의 업적을 적어놓은 비석이 있다. 1973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최근에도 추가 발굴이 이어져 앞으로 더 많은 면모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온주길 27

영동 소석고택
역사관광충청북도

영동 소석고택

영동 소석고택은 고종 22년(1885)에 지은 집이다. 넓은 들 위에 자리 잡은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광채 등이 있었으나, 행랑채와 광채는 1920년대에 철거되었다.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이 멀찌감치 떨어져 남아있고 넓은 들 위에 자리 잡아 편안하고 안정된 모습을 지닌다. 건물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집의 앞쪽 약간 경사진 터전에 ‘ㄷ’ 자형의 사랑채가 위치하는데 뒤편이 높고 앞쪽이 낮은 상태다. 사랑채는 중앙의 사랑방과 사랑대청을 중심으로 왼쪽 꺾인 부분은 뒷방, 사랑부엌, 앞방이 위치하고, 오른쪽으로는 골방, 건넌방, 누마루가 위치한다. 누마루는 사방을 개방했는데 서쪽으로만 간단하게 난간을 시설하였다. 안채는 남부(경기도 이남의 땅) 형식의 평면 구성을 이루어서, 부엌, 안방, 웃방, 2칸 대청, 건넌방의 차례로 배열되었다. 안방의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여 대청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부엌의 앞마당에는 장독대가 있다. 현재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지정 당시 명칭은 ‘영동송재문가옥’이었으나, 2007년 1월 29일에 ‘영동 소석고택’으로 지정 명칭을 변경하였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초강로6길 26

전의향교
역사관광세종특별자치시

전의향교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읍내리 있는 조선시대 관립 교육기관이다. 1416년 (태종 16)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그 뒤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다가 1684년 (숙종 10) 현재의 위치에 중건하였고, 1867년, 1891년, 1938년, 1958년, 1970년, 1972년에 각각 중수하였다. 향교 건물은 전학후묘 (앞쪽에 학업용 건물을 뒤쪽에 사당을 배치)식 배치이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제향공간인 대성전과 강학공간인 명륜당, 내·외삼문, 홍살문 등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5성과 송조 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소장 전적은 판본 4종 8 책, 사본 3종 3 책 등 총 7종 11 책이 있으며, 이 중‘선안(仙案)’, ‘재임록(齋任錄)’, ‘훈사(訓辭)’등은 이 고장의 향토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전의향교는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맡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북촌1길 5-18

예산 오추리 고택(정동호 가옥)
역사관광충청남도

예산 오추리 고택(정동호 가옥)

19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초가로, 집의 뒷산이 좌우로 뻗어 나와 감싸고 앞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지는 명당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른쪽 산자락에 울창한 소나무 숲과 연못을 조성하였고, 들판에 나무를 일렬로 심어 진입로를 조성하여 아늑함을 느끼게 한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배치되고 광채가 왼쪽·부엌이 오른쪽을 감싸고 있어 전체적으로 튼 ‘ㅁ’ 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앞면 5칸·옆면 1칸 반 규모의 안채는, 왼쪽부터 방 3개를 차례로 배치하였고 오른쪽이 부엌이다. 부엌과 ‘ㄱ’ 자로 연결되어 부엌광·헛간·외양간이 있다. 사랑채는 2칸의 사랑방 오른쪽으로 대문간과 광이 있는 4 칸집이다. 광채는 광과 헛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채와 사랑채 사이에 샛문이 있다. 원뿔형으로 돌려쌓은 토담에 통나무를 세우고 이엉을 덮은 굴뚝은 산간지대에서 쓰이던 기법으로 전통적 특색이 있다.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가래울길 34

영동규당고택
역사관광충청북도

영동규당고택

영동규당고택은 19세기 후기에 건축된 집으로 상당히 넓은 터전을 차지한다. ‘ㄱ’ 자형 안채와 광채가 널찍이 둘러앉아 전체적으로는 튼 ‘ㅁ’ 자 모양을 이루고 집 뒤쪽 길가에 서서 바라보면 맞담을 쌓은 길이가 길다. 안살림은 잘 보존된 편이나 바깥살림에 해당하는 외부공간은 많이 변형되어서 전체적인 원형은 알 수 없다. 건축 연대는 기와의 기록에, 을유삼월(乙酉三月:1885년)과 병술삼월(丙戌三月:1886년) 두 종류가 있어, 19세기말 건물로 추측된다. ‘ㄱ’ 자형의 안채는 남부방식에 따라,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순서와, 책방(작은사랑), 사랑대청, 사랑방 순서로 배치되었으며, 사랑채를 따로 두지 않았다. 지붕의 용마루 끝을 특히 눈에 띄게 추켜올리는 것은 남부 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특히 건넌방 동쪽에 있는 뒷간은 정식으로 지어진 단칸 초가 네모 지붕으로 모양이 매우 아름다운 건물이다.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금동로4길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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