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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70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70페이지입니다.

고송정지
역사관광경기도

고송정지

고송정지는 조선시대 순조 27년(1827)에 김처일이 그의 9대조인 김충주를 애도하여 지은 고송정이라는 정자가 있던 자리이다. 김충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했다가 죽임을 당하자 밤중에 도성을 도망하여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화정동에 숨어 살면서 평생 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베옷에 평민들이 쓰던 모자를 쓰고 다녔다고 한다. 단종에 대한 충성이 약해질 때마다 단종의 묘가 있는 영월을 바라보면서 통곡하였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비명에 숨진 것을 애통하게 여겨 흘린 눈물에 소나무가 말라 죽었다고 전하고 있다. 풀을 엮어 집을 짓고 숯을 구워 파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며 자신을 숯 굽는 노인 ‘탄옹’이라 했다 하여 고송정터를 탄옹고터라고도 한다. 정자는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 왼쪽에는 ‘탄옹고지’라고 새긴 바위가 있으며, 고송정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그가 단종을 그리며 울던 망월암이라는 바위가 있다. 주변에는 500년 이상 된 느티나무와 향나무가 있어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운봉향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운봉향교

운봉향교는 조선 선조 8년(1575) 가산리 성산에 처음 지었다가 인조 18년(1640)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와 서무, 명륜당, 동재와 서재, 고직사, 진강루, 신문(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운봉향교 대성전은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는 공자를 비롯한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사성(四聖)과 송조 6현(宋朝 六賢) 중 4현, 우리나라 18현(신라 2현, 고려 2현, 조선조 14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운봉남길 217-28

노적봉공원
문화관광경기도

노적봉공원

노적봉공원은 안산 시내로 진입하는 관문에 있는 도시자연공원으로 노적봉 정상에 서면 안산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정상에서 보는 서해 낙조는 절경 중의 절경이다. 이산의 지맥은 수리산에서 떨어진 낙맥으로 안산읍지의 청룡말미에 해당하는데 산의 모양이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듯하다 하여 노적봉이라 불리었다. 노적봉공원은 순환로가 조성되어 산책을 즐기기에 좋으며, 주요시설인 인공폭포는 인조암으로 조성된 뒤 1,900개의 자연석으로 재공사하여 2단 계류식 자연석 폭포로 재탄생하였다. 이와 함께 장미원과 철쭉원 등을 갖추고 있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며, 다양한 편의시설과 볼거리 등으로 안산시민의 여가 활용 공간으로서뿐만 아니라 안산시의 도시 상징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노적봉 공원과 이어지는 김홍도 테마길은 안산을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성포동 일원을 테마길로 조성해서 이곳을 따라 둘레길을 산책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곳이다. 김홍도미술관 - 노적봉공원 - 성호공원 - 청문당 - 점성공원 - 단원조각공원으로 이어지는 테마길은 산책하기 좋은 안산시의 둘레길 명소이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

천반산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천반산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 하단과 진안군 상전면 일원, 동향면 일원에 걸쳐져 있는 높이 647m의 산이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보기와는 달리 가팔라 오르기가 힘든 산이다. 산 정상 부근에는 널따란 평지가 있는데 이 평지에 7개의 작은 바위가 정렬한 듯 나란히 서 있어 기이한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을 할미대라고 하는데 토속신앙을 숭배하던 그 옛날 산신할머니와 연관이 있어서 불렸다고도 볼 수 있다. 신기마을에서 먹재 정상까지는 2.3㎞로 약 2시간 소요된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

부남강변 유원지
테마파크전북특별자치도

부남강변 유원지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와 대유리, 굴암리를 거쳐 길이 약 13.5㎞의 금강천이 흐른다. 이곳은 대표적인 자연 발생 유원지로 다양한 경관과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하고 있어 무주군에서 레저 스포츠로 인기를 얻고 있는 래프팅 관광지로 개발하였다. 대소 마을 강변을 비롯한 봉길 마을 백사장, 한티 마을 강변, 상굴 마을 강변, 하굴암 마을 백사장 등 강변 곳곳에 백사장이 형성되어 있다. 주차장과 화장실 등의 기본적인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인근의 부남면 체육공원 안쪽으로 오토캠핑장도 갖추고 있다. 우뚝 솟은 절벽 사이로 강물이 흐르고 있어 여름철 래프팅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래프팅 명소인 강원도 동강을 빗대어 작은 동강이라고 불린다. 매년 여름 부남 강변 축제가 부남 면민의 날 행사와 동시에 열린다. 행사 전날 전야제로 별자리 탐험 행사가 유명하며 다음날에는 뗏목 재현 및 래프팅, 물 나르기, 물풍선 터트리기, 강변 마라톤 등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물놀이 행사 등이 진행된다. 유원지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낚시를 할 수 있어 야영객의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인근 부남면 체육공원은 숲속에 차를 갖고 들어가 오토캠핑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연천향교
역사관광경기도

연천향교

연천향교는 연천군을 대표하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이다. 연천향교는 1398년에 읍내리 부근에 창건되었는데, 1658년에 1차례 이전하였고, 한국전쟁 중 전소되어 1965년 차탄리 부근에 재건되었다가 도로공사로 인해 1989년 현재의 위치로 다시 이전되었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매년 공자 탄신일(음력 8월 27일)에 공자를 기리는 석전제를 홀리고, 매월 음력 1일과 15일에 분향하는 제사의 기능과 함께 청소년 인성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지혜로117번길 20

자재암
사찰경기도

자재암

자재암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 원효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나 자기 수행력을 인증받았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고려 광종 25(974) 왕명으로 각규대사가 중창했으며, 의종 7년(1153) 화재를 당해 이듬해 각령 선사가 대웅전과 요사 일부를 중건했다. 6·25전쟁에 모두 소실된 것을 다시 중창한 것이다 보니 고색 찬란한 사찰의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바위산 중턱에 있다 보니 암벽과 굴을 이용하여 사찰을 지어서 암벽과 어우러진 모습이 보기 좋은 곳이다. 소요산 입구부터 천천히 걷다 보면 자재암을 만날 수 있으며, 원효굴이 시작되는 곳부터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이 동굴은 원효대사가 수행한 굴로 전해지고 원효굴로 불린다. 원효굴 앞에는 작은 폭포가 있고, 특이하게 자재암까지는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어서 물자를 실어 나르는데 사용된다. 계단을 오르며 가는 길에는 좋은 글들이 쓰여 있어서 글을 읽으며 계단을 오르는 재미가 있다.

경기도 동두천시 평화로2910번길 406-65 (상봉암동)

무주 구천동 관광특구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무주 구천동 관광특구

무주 구천동 관광특구는 무주 구천동 계곡과 덕유산 일대의 관광지역으로 야영장 및 숙박시설과 주변관광지를 갖추고 있다. 무주 구천동 계곡은 무성한 수풀에 아늑하게 둘러싸인 맑은 계곡의 물이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도 잊게 해 줄 정도로 시원하여 여름철 피서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또한 명산으로 알려진 덕유산은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으로 유명하여 매년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무주 구천동 관광특구 인근에 자리한 국립태권도원은 자연 관광을 탈피하여 활성화된 문화 관광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으며, 무주 덕유산 리조트는 다양한 레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1로 166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계화도

계화도는 원래는 작은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육지화되어 계화면이 되었다. 이곳의 최고봉은 해발 246m의 계화산이며, 정상에 봉수대가 있다. 계화도의 북쪽 끝의 양지마을은 예전에는 ‘광당(光堂)’이라고 불려 왔으나 구한말 간재 선생이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양지로 불렸다고 한다. 이곳의 계화조류지는 서해권에서 보기 드문 일출 명소로 둑에 일렬로 늘어선 방풍림 소나무가 뒤로 일출이 아름다워 많은 사진작가가 찾는 곳이다. 계화면 계화초등학교 앞에 있으며 일출을 감상하도록 데크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드넓은 농경지와 갈대숲, 각종 야생조수가 서식하여 조수 보호구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곳이다. 화산과 지진이 활발했던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계화도의 역암 지역은 전북지질명소로 지정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계화면

남한산성 수어장대
역사관광경기도

남한산성 수어장대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으로 남한산성에 있던 5개의 장대(동장대, 서장대, 남장대, 북장대, 외동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다. 청량산 정상(해발 482m)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 안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하층은 정면 5칸, 측면 3칸, 상층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양식의 2층 누각이다. 지붕은 상하층 모두 겹처마루를 둘렀으며 사래 끝에는 토수를 달고 추녀마루에는 용두를 올렸으며 용마루에는 취두를 올렸다. 건물의 기둥은 높이 60cm의 팔각장주초석 위에 올려져 있고, 포는 주심포 양식의 이출목 익공식이다. 영조 27년(1751) 2층 누각으로 증축하고 외부에 ‘수어장대(守禦將臺)’ 내부에 ‘무망루(無忘樓)’라고 편액을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출처 :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국청사(경기)
역사관광경기도

국청사(경기)

경기도 광주시 산성리에 위치한 국청사는 조선 왕조 제16대 인조 2년(1624) 벽암 각성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각성대사는 인조로부터 팔도도총섭총절제중군주장(八道都摠攝總節制中軍主將)으로 임명을 받은 후 전국 팔도에서 의승군을 모아 남한산에 석성을 축성하였다. 이때 7개의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그중의 하나가 국청사이다. 국청사는 백성들과 의승군을 훈련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비밀리에 군기(軍器)와 화약·군량미 등을 비축하였던 사찰이다. 병자호란 시 우익문(일명 서문) 전투를 강원도 의승군과 포수들로 최정예 부대로 운영하여 격퇴하였다. 수어장대 우측으로부터 북문 좌측 북장대까지 성역 구역을 관리 운영한 사찰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에 의해 불탔던 것을 1968년에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성각과 요사채를 신축하고, 1988년에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국청사의 현판과 주련은 당대 최고의 명필 일중 김충현 선생의 글씨로 나라사랑하는 호국정신의 사찰이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780번길 105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타관산

타관산은 장수읍 송천리, 용계리, 개정리 등의 경계에 있는 높이 624m의 산이다. 서쪽에 팔공산, 북쪽에 봉황산, 남쪽에 신무산 등이 있다. [조선지형도]에서 타관산은 그 높이만 적혀 있고, 주변에 용추리와 용계리 등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타관산 자락 주변으로 용추마을, 안양마을, 하평마을, 구락마을이 있다. 향토지에 의하면, 과거 어느 홍수 때 타관에서 떠내려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즉 고향에 있는 산이 아니고 객지에서 온 산이라는 뜻이다. 장수읍의 주변은 장안산에서 뻗은 호남정맥이 병풍처럼 둘러쳐져서 지형이 천옥에 해당하는데, 풍수지리에서 천옥의 터는 집터나 묘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면하기 위해 타관산으로 칭했다고 한다. 한편, 산맥이 연계되지 못하고 들 가운데 홀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산의 크기가 아담해 가볍게 산책하며 즐기기 좋고, 좀 더 욕심을 내어 산행 한다면 바로 인접한 팔공산 트레킹을 하는 것도 좋다.

전북 장수군 장수읍 송천리 산145-2

지수당
역사관광경기도

지수당

지수당은 1672년(현종 13)에 이세화(李世華)가 지은 정자(亭子)이다. 지수당이라는 이름은 ‘군자는 백성들을 잘 포용하여 잘 살도록 길러 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건립 당시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앞뒤에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만 남아 있다. 정자의 동쪽에는 부윤 이세화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고 제3 연못지로 추정되는 지역은 현재 논으로 바뀌어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건물이지만, 옆면의 1칸이 반 칸 크기여서 전체모양은 앞면이 옆면보다 넓은 장방형 형태를 띠고 있다. 건물은 4면이 모두 개방되어 밖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사충서원
역사관광경기도

사충서원

사충서원은 ‘네 명의 충신을 모신 서원’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1725년(영조 1) 노론 4충대신인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를 제향 하기 위하여 노론계 관료와 유생이 추진하고 국가의 보조에 의하여 경기도 과천(현 동작구 노량진동)에 건립되었다. 이들 4대신은 경종 때 왕세제를 책봉하고 대리청정을 하는 문제로 소론의 미움을 사서 1722년(경종 2) 노론계의 역모사건(신임옥사)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는데, 왕세제가 영조로 즉위한 뒤 노론정권이 수립되면서 신원되고 서원이 건립된 것이다. 건립과 동시에 국가로부터 사액을 받았지만 1727년의 정미환국으로 소론정권이 들어서서 신임옥사를 역으로 번복하고 4대신을 다시 죄인으로 만들자 이 서원도 따라서 철폐되었다. 그 뒤 1740년의 경신처분으로 4대신이 다시 충신으로 판정되었으나, 한동안 재건되지 않다가 소론세력이 완전히 몰락한 1756년에야 서원을 복설하고 사충서원이라 부르게 하였다. 이처럼 사충서원은 노론·소론 사이의 시비여하에 따라 철폐와 복설이 거듭되는 우여곡절을 겪을 만큼 당색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으나, 영조 이후의 역대 왕들이 모두 영조의 후손이었던 관계로 영조에게 충성을 다한 4대신의 서원이라 하여 특별한 은전을 받았다. 이에 따라 대원군에 의한 서원철폐 단행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되었다. 그 후 1927년 봄에 이곳이 철도용지로 편입됨에 따라 당시 고양군 한지면 보광동(현재의 서울특별시 보광동)으로 이건 하였다가 6·25때 파괴되었다. 1968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으며,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근래 자리를 옮겨 세운 탓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과 삼문만 복원되었다. 사당과 삼문이 남향으로 배치되었고, 서원 남쪽 가까운 곳에 수복청이 위치하고 있다. 삼문 오른쪽 앞에는 서원과 함께 옮겨온 묘정비는 정조 10년(1786)에 세워졌다. 오래되어 글씨가 희미해졌지만,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오재순이 글을 썼고 좌의정 홍낙성이 글씨를 썼다. 4대신의 행동이 정당했음을 다시 한번 대내외에 알리는 내용이다. 비문의 왼쪽 면에는 1928년 사충서원 자리가 철도 용지로 편입되어 서원을 한강 상류의 보광리로 옮기게 된 사연이 기록되었고, 오른쪽 면에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서원을 1968년 현 위치로 옮겨 새로 중건한 과정이 적혀 있다. 2020년에 서원최초로 한글홀기편람을 제작하여 한글제향을 지냈고, 2022년에는 사충신순절300주년 행사가 있었다. 2023년에는 사충신의 영정사진이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경기도 하남시 하남대로232번길 89-8

가마소계곡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가마소계곡

가마소계곡은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에 위치한 계곡으로 이름은 폭포 아래 물웅덩이와 주변 지형이 가마솥처럼 움푹 파인 모습에서 유래하였으며 한자로는 부소(釜沼)라 한다. 계곡은 변산반도 남부의 세봉(해발 433m)에서 시작되어 비교적 좁은 협곡을 따라 형성되며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지류인 와룡소계곡과 연결되어 있어 통칭 ‘회양계곡’으로 불리며 전체 길이는 약 9km에 이른다. 내변산에서도 교통이 다소 불편한 지역에 속하지만 이곳의 폭포와 소는 하천 지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자연 자원이다. 가마소계곡은 내변산 탐방 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경관지로 손꼽힌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

역사관광경기도

의안대군방석묘역

조선 태조의 8번째 아들 의안대군(宜安大君) 이방석(李芳碩, 1382~1398)의 묘역이다. 의안대군은 신덕왕후(神德王后)의 강씨의 아들이며, 태종의 이복동생으로 이름은 방석이다. 아버지 이성계의 공훈으로 어린 나이에 고려 왕조에서 군기녹사(군대에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직책)의 일을 맡았다. 조선 왕조가 개창되고 태조 즉위 초에 세자 책봉 문제가 일어났을 때 배극렴, 조준, 정도전 등에 의해 1392년 8월에 세자가 되었다. 이후 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 때 피살되었다. 1406년(태종 6) 소도공의 시호가 내려지고 1680년(숙종 6) 의안대군으로 추봉 되었다. 1998년 4월 13일 경기도 기념물 제166호로 지정되었으며, 전주이씨의안대군파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묘역은 애기능이라 불리는 산능선에 정남향으로 자리 잡았다. 묘의 좌우에는 문인석 2기가 세워져 있고 상석과 향로석, 묘비가 놓여 있다. 묘 앞에는 세자빈 심씨의 묘와 묘비가 있고, 묘역 뒤쪽에는 산신제단이 있다. 이 묘역은 고려시대 묘제의 특징을 지닌 조선 초기의 것으로, 돌담이 있고 봉분은 직사각형 모양의 호석이 둘러져 있는 한강이남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엄미리

와룡소계곡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와룡소계곡

와룡소계곡은 변산반도 내변산을 흐르는 백천 계곡의 지류로서 총길이 약 5㎞에 이르는 계곡이다. 와룡소는 누워 있는 용의 형상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변산반도 남부에 있는 용각봉과 남옥녀봉에서 발원하여 대체로 북향 하면서 중간에 와룡소 폭포와 와룡소를 이룬다. 봉래구곡과 함께 변산을 대표하는 계곡이지만 비교적 알려지지는 않았다. 넓은 반석 위를 흐르는 계류가 여기저기 소를 이루고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하는데 그중에서도 가마소계곡과 와룡소계곡이 으뜸이다. 특히 깊은 소와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룬 와룡소계곡은 한 폭의 그림을 방불케 한다. 와룡소계곡 주위의 태고림과 천총봉, 장군봉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산과 층암절벽, 계곡이 험준하여 경관이 일품이다. 또한,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굴바위 입구에서 시작되는 등산로가 와룡소 계곡을 통과한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실상길 60

화산사(장수)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화산사(장수)

화산사는 1961년 창건되어 박수기·박상·김정·박지견·박순·박지효 등 여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이들은 모두 조선 중기 이전의 문신과 유학자들로서 성품이 곧고 절의가 빼어난 분들이다. 이곳은 충주 박씨 문중 사당으로, 박상과 뜻을 같이 했던 김정을 함께 제향하고 있다. 이 사당은 화산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300m 정도 떨어진 능선의 서쪽 사면에 있다. 진덕문을 들어서면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절개와 의리, 우국충절을 보인 선현들을 널리 알리기 위해 1961년 화산사를 창건했다. 주위에 둘러볼 곳은 김해김씨효열비, 충주박씨기행비, 장수미술관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남면 화산길 24-21

정충묘
역사관광경기도

정충묘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있는 정충묘는 1636년 병자호란 때 쌍령리 전투에서 분투하다 전사한 장군 다섯 분을 모신 사당이다. 당시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를 구하기 위해 북상하던 영남의 근왕병들은 이곳에서 청나라 군사들에게 선제공격을 당하였고 수많은 장병과 함께 전사하였다 한다. 사당 안에 봉안된 신위는 4위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許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閔栐], 안동영장 [宣世綱], 죽산산성 성주 [李義培] 등이다. 현재 매년 음력 정월을 기하여 광주문화원 주관으로 제향을 올리고 있다. (출처 : 광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무들로 84-7

갑오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탑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갑오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탑

내장저수지가 바라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 탑은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리는 탑으로 1997년 5월 11일 건립되었다. 바로 옆에는 내장산조각공원이 있다. 화강암, 대리석, 오석 등으로 만든 탑으로, 주탑과 부탑으로 되어있다. 주탑의 4각뿔은 동학농민혁명의 이상을 상징하고 흰 대리석은 민족봉기의 정신을 상징한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1894년을 기리기 위하여 높이 1,894m로 조성하였다. 상층부에 3단 금태는 고부 농민봉기, 3월 백산봉기, 9월 삼례봉기를 상징한다. 문경석으로 만든 부탑은 4개의 원기둥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4민, 평등, 수평, 사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각각의 원기둥은 높이 1,100m, 지름 85㎝ 규모이다. 이 기념탑은 정읍 출신의 설치미술가 전수천이 조성하였다. 주변에 내장산 워터파크와 내장산 문화광장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호반로 214

강천사계곡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강천사계곡

강천산은 계절에 따라 산의 경관이 변하고 그 경관이 한결같이 수려해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린다. 산입구에서 시작되는 두 개의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약 ㎞나 뻗은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기암괴석과 크고 검은 못, 자연폭포가 엇갈리면서 주변의 수림과 조화를 이루어 절경을 연출한다. 또한 강천산의 자랑인 아기단풍이 붉게 물들어 만산홍엽을 이룬다. 매표소에서 강천사까지 이어진 계곡은 경사도 완만해 거닐기도 좋고 중간중간 계류에 발을 담그고 쉴 수 있는 공간도 많다. 비구니들의 도량인 강천사는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고찰이며 강천사에는 고려 충숙왕 때 세워진 지방유형문화재 제92호인 오층석탑이 현존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길 270

증산 강일순 탄생지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증산 강일순 탄생지

이 터는 구한말의 대종교가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이 태어난 곳이다. 탄생지인 신월리 신송마을은 진주 강씨 집성촌을 이룬 곳이며, 그의 호인 증산(甑山)은 마을 뒷편 시루산[시루 증, 甑]에서 유래하였다. 증산이 활동하던 시기는 대외적으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위기 속에서 여러 약소민족이 제국주의 침탈에 신음하고, 대내적으로 삼정(三政)의 문란 등 부패한 지배층의 학정(虐政)에 시달리며 이 땅의 민중들이 고통받던 때였다. 증산은 어릴 때부터 성품이 원만하고 남달리 총명하였으며, 지극히 작은 곤충도 해치지 않을 만큼 호생(好生)의 덕이 두터웠다. 그는 일찍이 동학농민운동의 실패를 목도한 후, 1897년부터 3년간 전국을 두루 돌아보며 민중들의 참혹하고 암담한 현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무도병(無道病)에 빠진 세상의 혼란을 극복할 방법은 오직 하늘과 땅의 질서를 새롭게 고치는 일이라고 보아, 1901년부터 1909년까지 9년간 해원상생(解冤相生)의 진리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며 많은 가르침을 전하였다. 그는 상생과 인존, 평화 사상을 주창하였고, 이후 증산의 가르침은 일제강점기 그를 신봉했던 무극도(無極道), 보천교(普天敎) 등 민족종교와 민족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학자들의 심층적인 연구 결과 이곳 436번지가 증산의 생가터임이 확인되었고, 그에 대한 역사ㆍ문화적 평가가 반영되어 2021년 정읍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래 2024년 전북특별자치도 종교문화유산(1호)으로 선정되었다. (출처 : 정읍시 문화관광)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신송길 64

만경강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만경강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동상면에서 시작하여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와 김제시의 경계를 이루며 서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북부 지역을 남서류하는 강으로 전북특별자치도에서 가장 큰 강이고, 유역면적은 1,527㎢이며, 익산시 외곽을 흐른다. 만경이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하천 하류에 위치한 만경현(현재 김제시 만경읍)에서 유래하였다. 만경현의 북쪽 강이므로 붙여진 이름이고, 만경은 백만이랑의 뜻을 나타내는데, 이는 넓은 들을 의미한다. 만경강은 익산시민의 상수원으로 이용하며, 관개용수 및 공업용수로도 사용하고 있다. 만경강의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들판에서 농사를 짓기도 한다. 강 옆으로는 자전거길이 조성되어 있어 드넓은 강과 평야를 마주하며 라이딩을 즐길 수 있으며 삼례를 중심으로 만경 1경 만경낙조로 향하는 방면에서는 가을이면 억새로 장관을 이루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춘포면 천동리

주문진항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주문진항

주문진항은 주로 화물선이 주로 입출항하고 있으며 동해안의 주요 어항 기지, 약 350여 척의 어선이 드나들며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동해의 특성상 오징어, 양미리, 명태, 청어, 멸치 등이 많이 잡힌다. 배에서 갓 내려놓은 횟감이 무척 싱싱하며 관광객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회를 즐길 수 있다. 또한, 주문진시장은 주문진항을 끼고 1936년부터 형성된 재래시장으로 종합시장, 건어물시장, 회 센터 등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상가와 연계되어 있는 동해안 최대 규모의 어시장이자 국내,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는 전통시장이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주문진읍 해안로 17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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