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6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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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정
용연정은 양악리에 살던 정존성이라는 이가 소요하던 곳에 그의 손자 정기수가 세운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 입구에서 덕유산의 토옥동계곡을 따라 약 1km 올라가면 층암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가 소를 이루는 용연이 나오는데 용연정은 용연 바로 옆의 언덕에 서 있다. 전면 중앙칸에 용연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내부 벽면에 한말의 우국지사인 연재 송병선(1836~1905)이 지은 기문과 심석 최병심이 지은 제액이 걸려 있다. 용연정 위쪽으로는 1996년에 조성된 저수지인 양악댐이 있고, 용연정 바로 옆으로는 고려 후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석탑인 장수 양악탑(전라북도유형문화재)이 있다. 폭포와 소, 기암 등이 정자와 석탑과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이룬다. 주위에 둘러볼 곳으로 무병장수마을, 정인승생가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북면 양악길 156-12
명량해협 울돌목
울돌목은 이충무공의 3대 해전 중의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잘 알려진 서해의 길목으로, 해남과 진도 간의 좁은 해협을 이루며 바다의 폭은 한강 너비 정도의 294m 내외이다. 물길이 암초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소리가 매우 커 바다가 우는 것 같다고 하여 울돌목이라고도 불린다. 물살이 빠르고 거품물이 용솟음쳐 배가 운항하기 힘든 곳이다. 바다라기보다는 홍수진 강물로 보이며, 물길이 소용돌이쳤다가 솟아오르면서 세차게 흘러내려 그 소리가 해협을 뒤흔든다. 이는 해협의 폭이 좁은 데다가 해구가 깊은 절벽을 이루고 있어 흐르는 물살이 이에 부딪쳤다가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이런 지형적 환경을 이용하여 정유재란 당시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은 13척의 배를 가지고 130여 척으로 공격해 오는 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울돌목 해변가에는 데크길과 수변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울돌목 스카이워크를 설치하여 바다 위를 걸으며 울돌목의 바닷물살과 소용돌이를 발밑으로 실감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원흥석불입상
장수군 산서면 마하리 팔공산 기슭에 있는 원흥사 법당 안에 있는 높이 4m의 거대한 석불 입상이다. 원래 노천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1904년 이 마을에 살던 이처사 부부가 꿈을 꾼 뒤 불상을 만들어 모셨으며, 그 뒤 딸 청신과 손자 김귀수가 현재의 원흥사를 세웠다고 한다. 얼굴은 살찐 모습이며 눈과 입이 작은 편이나 코는 큰 편이다. 목은 매우 짧게 표현되었으며 3개의 주름인 삼도는 분명하지 않다. 신체는 어깨와 하부의 너비가 같아 둔한 느낌을 준다. 양어깨를 감싼 옷을 입고 있는데 가슴이 거의 노출되었고, 양 소매와 배 아래로는 형식적인 옷 주름을 표현하였다. 손은 양 소매에 넣어 감추고 있으며, 무릎 이하는 땅속에 묻혀 있다. 머리 위에 모자가 얹혀 있었다 하는 이 불상은 손 모양이 특이하며 전체적인 조각 기법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원흥길 102-6

목포 갓바위
목포 8경 중 하나인 갓바위는 마치 스님 두 분이 삿갓을 쓰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갓바위라고 부르며 중바위는 훌륭한 도사 스님이 기거하였다 하여 중바위라 전해지고 있다. 갓바위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진리를 깨달은 경지 높은 도사 스님이 영산강을 건너 나불도에 있는 닭섬으로 건너가려고 잠시 쉬던 자리에 쓰고 있던 삿갓과 지팡이를 놓은 것이 갓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전설은 아주 먼 옛날 목포에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아버지의 약값을 벌려고 집을 떠나 돈을 벌다가 아버지를 돌보지 않아 그만 돌아가시게 되어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몇 날 며칠을 굶어가며 삿갓을 쓰고 하늘도 보지 않고 용서를 빌다가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영산강변을 따라 해상 보행교가 설치되어 바다 위에서도 감상할 수 있으며, 물 위에 떠 있는 보행교는 밀물 때 약 1m 올라왔다가 썰물 때 바닷물을 따라 내려가며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다. 파도와 해류 등에 의해 바위가 침식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자연학습장으로 교육적 활용도가 크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용해동

중산동 고분군
삼한 및 삼국시대에 형성된 대규모 고분군이다. 이 고분군은 울산시의 도시팽창으로 인해 이 지역에 대한 아파트 건설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삼국시대의 매장 유물이 노출되어 발견되었다. 1991년과 1993년의 발굴조사 결과, 돌덧널무덤, 덧널무덤, 돌무지덧널무덤, 구덩식돌방무덤, 굴식돌방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유물로는 여러 종류의 토기, 둥근머리큰칼 등의 무기, 철판 갑옷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무장류가 다량 출토되었다. 1차 조사에서 덧널무덤 7기를 포함한 96기의 무덤이 확인되었고, 오리모양토기 2점 등 1,200여 점의 토기, 둥근머리큰칼 6점을 비롯한 200여 점의 철기, 금제 및 금동제 장식 3점이 수습되었다. 2차 발굴에서도 101기의 무덤과 청동기시대 움집터 1기가 조사되었고 960점의 토기와 다량의 철기가 출토되었다. 중산동 고분유적과 유물은 삼한·삼국시대(신라) 묘제와 토기의 변천 과정을 밝히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아울러 청동기시대의 장방형 주거지가 1993년에 조사되어 중산리 유적은 신라시대 고분군임과 동시에 청동기시대부터 신라시대에 이르는 장기간에 걸쳐 생활했던 터전으로 여겨진다.
울산광역시 북구 이화5길 27-18 (중산동)

배중손 사당
배중손 사당은 고려 무신정권 때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조직된 군대인 삼별초의 장군 배중손을 배향하는 사당이다. 배중손 장군이 남도 진성 전투에 패한 후 굴포 해안 쪽으로 이동하다 당시 바다 뻘밭이었던 굴포 해안에서 최후를 마친 곳으로 전해오고 있다. 용장성은 고려시대 삼별초가 진도를 근거지로 관군과 몽고군에 항전했던 성이다. 현재 성의 대부분은 원형이 사라진 상태이며, 성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성내의 용장사지 및 행궁지가 보존되고 있다. 용장성에는 고려항몽충혼탑과 함께 배중손 장군의 동상, 숭의문과 사당인 정충사가 있다. 그 우측에는 배중손 장군 항몽순의비가 세워져 있다. 진도군 임회면 진도대로 4212에 위치해 있던 정충사는 2021년 2월 진도 용장성으로 신축 이전하였다. 기존의 사당은 고산 윤선도 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로 옆에는 용장성홍보관과 사찰 용장사가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군내면 용장산성길 79-6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
고려 시대 원묘국사가 백련결사를 일으켰던 유서 깊은 사찰인 백련사를 기점으로 남쪽과 서쪽으로 약 1,500그루의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자생하며 숲을 이루고 있다. 백련사 동백나무숲은 1962년 12월 7일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의 동백은 토종 품종으로 겨울을 이겨내고 1월부터 개화하여 3월~4월 사이에 만개하며, 숲길은 산책로로 잘 다듬어져 있어 관람객들이 둘러보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약 7m 높이의 동백나무숲을 지나 다산초당으로 가는 오솔길이 있는데, 이 길은 옛날 정약용(1762~1836)이 백련사를 왕래할 때 이용하던 길이라고 한다.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동백나무숲은 백련사의 주지였던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이 서로 시국담을 논하며 자주 거닐었던 유서 깊은 숲길이다. 백련사 주변에는 차량으로 약 6분 거리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생활을 하며 목민심서를 저술했던 다산초당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
보성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보성향교는 1397년(태조 6)에 당시 군수였던 김유양의 주도로 지어졌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관주산 아래 구계동에 창건하였다가 양청산 서쪽으로 옮겼고, 정유재란(1597)때 불타버린 것을 선조 35년(1602)에 현재의 위치에 다시 옮겨 지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인 항일유림의거가 열리기도 한 곳이다. 일제강점기때는 향교에서 제사를 올릴 때 술을 빚었는데 금주령으로 인해 술을 빚지 못하게 되자 이에 항거하였고, 결국 제사 때 올리는 술에 대해서는 허용을 받아내게 되고 이로 인해 전국의 향교에서 제사때 술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공자와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동·서무, 학문을 익히는 공간인 명륜당, 학생들이 공부하고 숙식을하던 동·서재 등이다. 건물배치는 학문의 공간을 앞에 두고 제사의 공간을 뒤에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인데 향교의 일반적인 배치형태이다. 이 향교는 조선후기 이후에 세워진것으로 교육제도사와 향촌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보성읍 중앙로 58-23
선바위(입암)
울주군 범서읍 태화강변 입암마을에 위치한 바위로 백룡이 살았다는 백룡담 푸른 물속에 서 있는 기암괴석이다. 깎아지른 듯 우뚝 서 있는 바위라 하여 선바위(入巖)라 부른다. 높이는 약 33m(수면 위 21m, 수면 아래 12m)이고, 수면 위 둘레는 46m, 바위 최정상 폭은 약 3m인데 꼭대기에는 삼봉을 이루고 정상에는 잡목 몇 그루와 잡초들이 자라고 있다. 옛사람들에 의하면 날이 가물어 비가 오지 않을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면 영험이 있었다고 한다. 울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예로부터 빼어난 경치에 시인묵객이 즐겨 찾아 절경을 노래한 시가 전해오고 있다. 선바위를 마주 보는 벼랑 위에는 학성이씨의 정자인 용암정과 통도사의 말사인 선암사가 서로 인접하여 있으며 태화강 생태관이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선바위 건너편의 선바위공원에는 피크닉 장소와 아이들의 놀이터인 도담도담 숲 체험원이 있다. 태화가 십리대밭과 함께 철새도래지로서 울산 12경에 선정됐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모두박길 6-1

보성 문익점 부조묘
문익점 부조묘는 고려 말에 목화씨를 들여와 우리나라에 보급한 문익점을 모신 사당이다. 부조묘란 나라에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영구히 제사 지내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문익점은 고려 말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가져와 국가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였고, 성리학을 크게 일으켜 백성들을 교화하였다. 문익점의 부조묘는 태조 7년(1398)에 경상도 단천에 세웠었다. 문익점의 사손이 끊겨 외손인 합천 이씨가 관리해 왔는데 1592년 임진왜란에 불타버리고 말았다. 그 후 철종 5년 (1854)에 남평 문씨 후손들과 유림들의 노력으로 현재의 위치에 옮겨 세워 제사를 지내게 하였고, 현재에도 2월 8일이 되면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이곳에는 문익점 부조묘와 관련된 조선 후기(18세기 말∼19세기 말)의 각종 증명서 15점이 보존되어 있는데, 모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골기와 건물인 사당과 내삼문을 갖추고 있다. 사당에는 ‘부인후묘’라는 현판이, 내삼문에는 ‘충신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미력면 도개2길 21

장성향교
장성향교는 태조 3년(1394)에 오산리에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없어져 선조 33년(1600)에 장안리로 옮겨지었다. 이 때 진원현이 장성현과 합해짐에 따라 진원리에 있던 진원향교를 없애고, 장성향교에 합치게 되었다. 효종 9년(1658)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명륜당, 동재, 서재, 대성전, 내삼문 등과 부속건물들이 있다. 경사지에 자리 잡은 장성향교는 앞쪽 낮은 터에는 출입문인 외삼문과 학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을 두었다. 그 앞에는 동재·서재가 있어 배움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뒤쪽 높은 터에는 제사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어 향교의 일반적 배치형태인 전학후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장성읍 성산2길 102
장암정
장암정은 장암 대동계에서 현종 9년(1668)에 동약의 모임 장소로 지은 정자이다. 마을 유생들이 모여 향약을 읽으며 잔치를 하던 향음주례, 백일장, 회갑연 등과 나라의 행사가 있을 때 쓰이던 곳이라고 한다. 동약이란 조선시대 시골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규칙으로, 좋은 일은 서로 권유하고 잘못은 서로 바로 잡아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 있는 정자는 영조 36년(1760), 정조 12년(1788), 순조 19년(1819)에 각각 고쳐지었으며, 고종 17년(1880)에 전체적으로 보수 공사를 하였고, 1976년에 일부를 수리했다. 정자는 앞면 4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쪽에 마루를 깔아 개방된 구조이며 뒤쪽 중앙으로 마루방 2칸을 두었다. 장암정은 건축적으로 큰 특징은 없으나, 동약의 집회소로 남아 있는 건물이 드물고, 조선 후기 호남지방의 시골 생활사를 반영하는 기록들을 보관하고 있어 역사 자료로 가치가 크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영암읍 무덕정길 67

구강서원
포은 정몽주와 회재 이언적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으로 강학과 교화, 제향 등을 하며 조선시대 선비를 양성했다. 숙종 4년(1678)에 세웠으며 숙종 20년(1694)에 구강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약 200여 년 동안 강학과 향사를 봉행해 오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철폐되었다. 훼철된 후 옛터는 주거지로 변하였고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지역 유림들이 서원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서원부지 800여 평을 매입하고 울산광역시에 기부채납해 복원했다. 현재는 한문교실, 청소년 인성 및 예절교육, 주부예절 및 교양강좌 등을 무료로 운영한다.
울산광역시 중구 서원11길 45 (반구동)

삼일사
삼일사는 울산 병영에서 일어났던 1919년 삼일운동에서 순국한 독립투사들을 봉안한 사당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은 지방에도 파급되어 울산의 병영에서도 4월 5일과 6일의 양일에 걸쳐 일어났다. 울산 병영의 삼일운동은 청년회에서 주도하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 현재 병영 초등학교(당시 일신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대회를 가장하여 사람들이 모였을 때 축구공을 높이 치켜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만세운동을 일으키자 일신 학교 학생과 성내의 온 주민들이 이에 호응하여 동참하였다. 이때 총검으로 무장한 일본 수비대와 충돌하여 그 자리에서 엄준, 문성초, 주사문, 김응룡의 네 사람이 순국하고 송근찬, 김규식, 김두갑 등 많은 사람들이 중경상을 입고 천추의 한을 품은 채 해산하고 말았다. 실형을 받았던 동지들이 형기를 마치고 돌아오자 그들은 기미계를 만들어 순국한 동지의 외로운 넋을 달래기 위해 매년 비밀리에 빠짐없이 제사를 4월 6일에 받들어 오다가 1955년 영모각을 개수하여 삼일사를 세우고 이들을 안치하는 한편 삼일사 봉제회를 만들어 길이 그들의 뜻을 받들어 오고 있다. 삼일사는 1955년에 현 위치에 세웠다가 이를 남외동 549-1번지로 한동안 옮겼으나 다시 이 자리에 사당을 새로 지었다.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성11길 25 (서동)

진도읍성
진도읍 성내리 철마산 아래에 있는 읍성으로, 세종 19년(1437) 진도군으로 독립되어 지금의 자리에 성의 둘레 3,400척, 높이 11척의 읍성을 쌓고 3문을 설치하였다고 한다.『여지도서』에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 14개,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성벽으로 그 위에 쌓은 낮은 담인 치첩이 58개가 있으며, 성안의 연못은 둘레 4,500척, 깊이 5척이고, 성안에 우물 5개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 성곽형태는 4각형으로 서벽을 동벽보다 짧게 쌓아 올렸다. 성벽은 동북 모퉁이에 있는 군강공원 쪽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데, 높이 2∼3.5m. 길이 50m 정도이다. 북쪽의 성벽은 군청과 진도초등학교 북쪽 부지의 외곽을 감싸고 있는데, 군청(현 문화예술관) 뒤쪽에는 높이 1.8∼2m의 성벽이 약 50m 정도 남아있고, 현재 군청사 뒤쪽에는 높이 1∼1.2m 정도의 성벽 하단부만 남아있다. 서쪽의 성벽은 학교부지 서쪽에 약 50m가 남아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진도읍 군강공원길 18
여수 흥국사 홍교
흥국사 홍교는 조선 시대 인조 17년(1639) 흥국사 주지인 계특 대사가 쌓은 무지개 형태의 석교이다. 흥국사 일주문 왼쪽 계곡을 가로질러 아래쪽 50m 지점에 위치한 흥국사 홍교는 다리 높이 5.5m, 길이 40m, 너비 3.45m, 홍예 지름 11.3m 부채꼴 모양의 화강석 86개를 맞추어 틀어 올린 홍예로, 완전한 반원을 이룬다. 단아하고 시원스러운 홍예의 양옆에는 학이 날개를 펼친 듯 둥글둥글한 잡석으로 쌓아 올린 벽이 길게 뻗쳐 조화를 이룬다. 흥국사에는 본래 일주문이 없었으므로, 홍교는 세속과 불국토의 갈림길이며 흥국사의 불이문이라 할 수 있다. 홍예 좌우의 주변 다리 측면 벽체의 석축은 축조 수법과 석재가 다양한 점으로 보아 여러 차례 다리가 수리되었음을 보여 준다. 홍예의 중심 머릿돌은 용머리를 새겨 돌출시켜 다리의 격을 높이고 있으며, 홍예 중심 머릿돌에서 양 홍예 난간 부분에 귀면상을 조각함으로써 잡귀를 막아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순천 선암사 승선교와 함께 빼어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흥국사 홍교는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져 한국 곡선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흥국사길 160

성안숯못생태공원
숯못 생태공원은 울산광역시 중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역주민의 쉼터로 연꽃, 수련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산책로와 의자, 분수대, 보행데크가 잘 설치되어 있어 더욱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 숯못에는 ‘삼천갑자를 살았던 동방삭’과 그를 잡았다는 ‘마고할미’ 전설이 전해온다. 이 숯못은 작은 반티이못(함지못)이라 할 정도로 작은 못이었으나 지금은 시의 지원을 받아 확장을 하여서 못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울산광역시 중구 성안동

창평 남극루
남극루는 담양군 창평면 창평리 면사무소 앞의 옛 창평군 동헌 정문이었으나, 1919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남극루라는 이름은 남극성이 장수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별이라서 붙여졌으며, 노인성이라고도 불리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남극루를 양로정이라고 부르고 있고, 창평 동헌 근처에 있어서 통행시간을 알려주는 종루 역할과 농사를 지도 감독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형식의 팔작지붕 집으로 담양 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경지에 세운 정자이다. 정자에 올라 보면 월봉산의 주봉과 창평의 들녘이 눈에 들어온다. 차량 이동 10분 거리에 창평 향교가 있으며 창평 슬로시티가 바로 인접해 있어 슬로시티 내의 한옥을 감상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창평면 창평현로 669
해남 민정기 가옥
1807년 민정기의 6대 조인 민정현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가옥이다. 안채, 사랑해, 사당, 문간채 등 조선 후기 상류층의 주생활 모습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해남 지역 주거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가치가 있다. 가옥의 배치 형식은 맨 앞에 문간채를 두고 그 뒤로 안채를, 그리고 맨 뒤쪽에 별도의 담장으로 나누어 사당을 배치하였다. 청사당이라는 사랑채는 사당의 왼쪽에 정남향으로 앉혔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에 전퇴인 맞배집으로 툇마루를 설치하였는데 퇴락이 심하다. 문간채는 [ㅡ] 자형으로 왼쪽부터 광, 대문,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고는 안채와 문간채, 사당 등이 일렬로 이루는 축에 직각 방향으로 위치한 3칸 초가집으로 규모가 크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해남읍 백야길 36

해남 송호리 해송림
1992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된 송호리 해송림은 송호리의 땅끝송호해수욕장의 해안과 도로에 인접하여 길이 약 394m, 면적 약 16,474㎡에 걸쳐 자생하고 있다. 수량은 약 640여 그루로 해안 방풍림의 기능을 하고 농경지 보호, 생활환경림과 경관림의 역할을 한다. 이곳 해송의 수령은 약 200년 된 나무를 비롯하여 어린 나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포해 있다. 나무흉고는 41㎝에서 120㎝에 이르는 나무가 가장 많으며 200년생은 될 것으로 보이는 둘레 181㎝에서 220㎝에 이르는 노목이 전체의 약 4.3%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나무 흉고의 분포로 볼 때 인공적인 식재가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한 나무로 여겨진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송지면 땅끝해안로 1827

해남 용두리 고분
해남군 삼산면 창리 용두마을에 있는 6세기 중반에 조성된 고분이다. 2008년 10월 7일부터 11월 25일까지 50일간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고분의 규모는 분구 길이 40m, 원부 지름 23m, 높이 5m, 방부 전단 너비 17m, 허리부 너비 16m, 높이 3.5m인데 구릉 일대가 개간되면서 분구가 상당한 깊이로 깎여 있으므로 원래 분구의 규모는 이보다 1-2m 정도 축소될 것이다. 용두리고분은 장고형분으로서는 작은 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장고형분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겉모습이 장고형(전방후원형)이라는 점과 이음돌의 존재로 보아 백제와 왜의 교류 관련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출토된 유물은 개배(뚜껑이 있는 접시), 유공광구소호(구멍 있는 작은 항아리) 등의 토기류와 대도편, 철촉, 쇠손칼 등의 철기류가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창리길 173

해남윤씨 영모당
영모당은 조선 숙종 13년(1687)에 건립된 해남 윤씨 문중 제각으로 해남 윤씨의 묘소가 모여 있는 곳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배치에 있어 유교 건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일축선기법, 대칭에 의한 정형화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규모가 크고 부재의 결구기법이나 양식적인 면에서 뛰어나다는 점 등으로 높이 평가받아 2022년 11월 25일에 보물 제 28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이곳에 해남 윤씨들의 제실인 영모당이 건립된 배경은 한천처사 유익의 이곳에서의 은둔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진다. 유익은 어초은 윤효정의 증손자이자 행당 윤복의 손자로서 그의 형인 유겸과 함께 성균관유생으로 학문을 연마하였다. 그러던 중에 형인 유겸이 이이첨의 폐비 상소에 가담하자 이를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자 강진 한천동에 낙향하여 은둔생활을 하게 되었다. 유익은 한천동에서 우연히 개간 중에 선대의 묘전지석을 발견하였고 이로서 실전되었던 윤광전과 두 아들 원봉, 원학 3부자의 묘를 찾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유익을 중심으로 한 이곳 해남 윤씨들은 묘소를 새롭게 수축하였다. 이것이 바로 영모당인 것이며 이때부터 윤광전, 윤원봉, 윤원학 3부자를 제향 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영모당은 3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의 원형이 유지, 보존되고 있으며, 행랑채, 우사 (바깥 행랑채) 등 제례의 기능을 충족시켜 줄 건물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도암면 해강로 577-36
해남윤씨 추원당
추원당은 해남윤씨 덕정동파의 직계 선조인 윤사보와 윤경선생께 제사를 올리기 위해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주축이 되어 건립한 제각이다. 정조 5년(1781)과 1986년 3차례에 걸쳐 수리하였고 현재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앞면 5칸, 옆면 2칸 크기의 건물에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지붕 네 귀에는 활주를 세웠다. 행랑채는 추원당과 거의 같은 시기에 건립된 건물로 추정되는데, 트인 ㄷ자형 건물로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대청, 방, 부엌을 배치하였다. 옆에 딸린 우사는 앞면 3칸, 옆면 1칸 건물이며 외양간, 부엌, 방을 두었다. 추원당은 제각 건축 연구 자료의 가치와 조선사회 친족 조직이 변모하던 17세기 중반의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는 의미있는 건물체이다. 건립 시기가 17세기 중반이 확실하고 같은 기능으로 건립된 강진 해남윤씨 영모당보다 40여 년 앞서 세워졌다. 또한, 이곳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해남윤씨 족보 목판 93매를 보관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도암면 강성길 77

해남향교
해남향교는 고려 충렬왕 때 창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태조 7년(1398)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하였으며 성종 13년(1482)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다. 명종 4년(1549)에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진되었다가 광해군 2년(1610)에 중건하였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중수하였다. 해남향교는 경사 지형에 지어져 전학후묘의 배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일직선상에 대성전과 내삼문, 명륜당을 배치하고 있다. 내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진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재와 서재가 있고 정면에 누대형의 명륜당이 있고 고직사가 1동 있다. 해남향교는 현재 해남 유림들의 활동 근거지로 매년 봄, 가을에 석전제를 봉행하고 청소년들에게는 충효교실, 선비체험 및 인성교육 등을 열어 교육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해남읍 향교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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