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65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65페이지입니다.

충무교와 통영운하
충무교와 통영운하는 통영시 당동과 미수동(진남초교 입구)에 연결되어 있다. 바다의 물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배들이 오가는 통영운하의 주변 경관은 자연과 도시의 조화가 극치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야경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예로부터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고 있다. 호수 같은 바닷물 위로는 배들이 다니고, 그 바다 밑으로 뚫린 해저터널에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바다 위로 만들어진 육지(통영 시내)와 섬(미륵도)을 연결하는 다리(충무교)에는 자동차가 다니는 통영운하는 하늘과 바다와 바닷속이 하나로 이어진 한국 유일의 3중 교통로를 자랑하는 곳이다. 통영운하가 있는 좁은 목은 가느다란 사취로 반도와 섬이 연륙 되어 바다가 막혀 있었다. 한산대첩 때에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게 쫓긴 왜선들이 좁은 목으로 도망쳐 들어왔다가 퇴로가 막히자 땅을 파헤치고 물길을 헤쳐 도망친 이곳을 판데목이라고 부르는데, 왜군들이 도망칠 때 아군의 공격으로 무수히 죽었으므로 송장목이라고도 한다. 이 판데목에 운하가 만들어진 것은 1932년 12월로 5년 6개월 만에 운하가 만들어졌으며, 운하와 함께 같은 시기에 통영 해저터널도 개통되었다.
경상남도 통영시 당동

길치문화공원
길치문화공원은 약 42만 평으로 대전광역시의 동부권에 위치한 주로 산림 형태의 공원이다. 남간정사가 있는 우암사적공원과 경부고속도로 대전육교 주변의 중앙광장이 조성되어 있는 곳으로 이용권이 양분되어 있다. 특히, 우암사적공원은 낮은 야산 기슭의 숲이 우거진 골짜기를 배경으로 하여 위치하고 있어 대전시민은 물론, 외지인들의 이용객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길치문화공원은에는 큰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접근성이 좋으며 상시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산책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원이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상로 65-100 (비래동)
옥류각
옥류각은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이 우암 송시열, 송애 김경여, 창주 김익희 등 당대의 석학들과 함께 학문을 논하던 누각으로, 현재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형식으로 지어졌으며, 넓은 대청과 온돌방이 갖추어져 있다. 마루 아래에는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은 뒤, 굵은 두리기둥을 세웠다. 특히 골짜기 부분에는 팔각형 주춧돌을 사용해 구조적 안정성과 미적 감각을 더했다. 누각 아래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시원하고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누각 바로 앞 바위에는 ‘초연물외(超然物外)’라는 암각이 새겨져 있어 이곳의 역사성과 정신적인 깊이를 더해준다. 옥류각 주변은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등산로와 오솔길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접근하기 쉬워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이기도 하다. 몇 해 전까지는 직접 마루에 올라갈 수 있었지만, 현재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인근 관광지로는 비래사, 초연물외 암각, 비래동 고인돌, 계족산, 계족산성 등이 있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래골길 47-73 (비래동)

황매산 군립공원
합천군 가회면과 대병면에 걸쳐있는 황매산은 합천의 진산이지만 산행 서적이나 관광 지도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무명의 산이었다. 덕분에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골짜기를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1983년 군립 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가야산과 함께 합천을 대표하는 명산이 되었다. 태백산맥의 마지막 준봉인 황매산은 고려 시대 호국선사 무학대사가 수도를 행한 장소라고 전해진다. 산 정상에 오르면 합천호와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이 모두 보인다. 합천호에 비친 황매산의 세 봉우리가 매화꽃 같다 하여 수중매라고도 불린다. 황매산은 철쭉이 만개하는 봄도 아름답지만, 낮은 구름들이 푸르른 초목으로 뒤덮이는 한 여름이나, 억새풀이 가득한 가을, 눈꽃이 피어나는 겨울의 모습도 아름답다. 여느 산 정상의 모습과는 달리 시야가 탁 트여 있어 계절마다의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공원길 331

합천호 관광농원수련원
합천호 관광농원수련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청정 지역인 경남 합천군 대병면 악견산 자락에 있는 휴식과 레저 체험을 맛볼 수 있는 멀티 문화공간이다. 합천호의 넓고 푸름이 아늑함을 자랑하고 있다. 관광농원에는 다양한 시설과 자연 학습장이 있다. 각종 수련활동, 테마여행, 기업연수, MT/OT, 수학여행, 졸업여행, 야유회, 동창회, 칠순 잔치 등 여러 가지 행사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단체연수, MT 등 손님들이 머물면서 축구, 족구, 야구, 발야구 등 각종 운동으로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500명 이상의 단체가 이용할 수 있는 규모이며, 물놀이장, 숙박시설, 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다. 인근 합천호에서 모터스키, 땅콩보트, 웨이크보드, 플라이피쉬, 바나나보트 등의 수상레포츠도 같이 즐길 수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합천호수로 310
초연물외암각
초연물외암각은 대전 대덕구 매봉산 자락 옥류각과 비래사 앞 바위에 새겨진 글자이다. 초연물외암각은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친필로 옥류각 옆 바위에 음각되어 있다. ‘초연물외’라는 글자를 바위에 새겼다 하여 초연물외암각이라 한다. 옥류각, 비래사로 통하는 도로 바로 옆에 있어서 가까이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데, 이 글자를 통해 송준길의 필체를 엿볼 수 있다. 계곡에서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등산로와 오솔길은 아파트 단지 근처로 접근성이 좋아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근에는 옥류각, 비래사 외에 비래동고인돌, 계족산, 계족산성 등의 관광지가 있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래동
이시직공정려각
이시직공정려각은 대전 대덕구에 위치한 조선시대 누각이다. 이 누각은 조선 중기 문신인 죽창 이시직(1572∼1637)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이시직은 1624년(인조 2) 문과에 급제하여, 같은 해 이괄의 난이 터지자 충남 공주까지 인조를 수행하였다. 그 뒤 종묘서 직장을 거쳐 성균관전적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그 후 1636년(인조 13)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들어갔다가 강화도가 함락되자 이를 비관하여 자결하였다. 이 누각은 앞면 1칸, 옆면 1칸으로 4면에 홍살을 두르고 내부에 정려편액과 중수기가 걸려있다. 이러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4년 6월 7일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연안이씨 죽창공파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시직공정려각은 계족로, 동춘당로에서 계족산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 대전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동춘당, 법동 석장승, 비래사, 옥류각 등의 관광지가 있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

함벽루
함벽루는 1321년 고려 충숙왕대에 당시 합주지주사(陜州知州事) 김영돈(金永暾)이 처음 창건하였으며 안진이 이 사실을 기문으로 적었다. 이 누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대야성 기슭에 위치하여 황강의 정양호를 바라볼 수 있게 지어져 오래전부터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이용했다. 이황, 조식, 송시열 등과 같은 조선시대 문인들의 글이 누각 내부 현판에 걸려 있으며, 뒤 암벽에는 함벽루라 새긴 송시열의 글씨가 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고 들보 5량(樑)으로 조성된 팔작지붕의 목조기와 누각이다.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에 떨어지도록 배치된 점이 유명하다.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옥오재
옥오재는 대전 대덕구 회덕 지역에서 제월당과 함께 자리한 문화재이다. 제월당 바로 뒤편 ‘ㄷ’ 자형 평면에 안채와 사랑채를 겸한 전통 민가이다.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과 함께 3 송으로 추앙받던 제월당 송규렴(1630∼1709)의 장남이자 대제학을 지낸 당대의 문장가인 송상기(1657-1723)가 자신의 호를 따서 옥오재란 편액을 걸어놓았다. ‘옥오재’의 뜻은 명나라 유학자 ‘방정학’의 ‘차라리 기와로써 온전할지언정 깨어지는 옥은 되지 않겠노라’는 말의 반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당시의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에서도 충성스러운 말과 도의를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기개가 담겨 있다. 이 건물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제월당과 함께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송규렴의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다. 옥오재는 계족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 대전 IC 및 신탄진 IC와 호남고속도로 지선 북대전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계족산, 계족산성, 장동산림욕장 등의 관광지가 있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계족로 750
제월당
제월당은 대전 대덕구 회덕 지역에서 옥오재와 함께 자리한 문화재이다.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과 함께 3송으로 추앙받던 제월당 송규렴(1630∼1709)이 1676년(숙종 2)에 세운 별당 건물이다. 송규렴은 1653년(효종 4)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등에서 요직을 지내다가 숙종 대에 그의 스승 송시열과 송준길이 유배당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자신의 호와 같은 이름을 붙인 이 집을 지었다. 제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집으로 정면 3칸 중 오른쪽 2칸 통문에 우물마루의 대청을 꾸미고 왼쪽 1칸 통문에는 온돌방을 들였는데, 온돌방 후면으로 1칸을 더 내어 상부는 다락으로 하부는 함실로 사용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정면에 제월당 현판이 걸려 있다. 집 구조와 형태는 동춘당을 모방하여 지은 흔적이 역력하다. 이 건물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송규렴의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다. 인근에는 계족산, 계족산성, 장동산림욕장 등의 관광지가 있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계족로 750
김해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김해향교의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김해읍지』에 의하면 옛 김해부 동쪽 다전동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향교가 있던 산이 무너져 숙종 14년(1688)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전체적인 배치는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앞에 있고 제사 지내는 곳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일반 향교의 배치와 비슷하다. 정문인 풍화루는 누형식의 건물이 아닌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된 1층 건물로 지어져 특이하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제사만 지내고 있다. 김해지방 향토사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향교이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150번길 21
합천 사의정
합천 사의정은 손님이 묵고 가기 위한 숙소로 1922년 은진 송씨 문중에서 지었다. 원래는 현재 위치에서 남서쪽으로 1㎞ 정도 떨어진 유전리에 세워졌으나, 1985년 합천댐 건설로 지금 있는 자리에 옮겨 지었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3칸 규모의 2층 기와집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누각에는 둥근기둥을 사용했으며, 사방으로 난간을 설치했다.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이며 마루 중앙에 정면 2칸, 측면 1칸의 온돌방이 딸려 있다. 정면의 방문은 이중으로 설치했는데 바깥쪽은 격자문이고, 안쪽은 아자문이며, 후면은 홑문의 격자문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서부로 2551-3

삼매당
조선 선조 때 연원도(連元道) 찰방을 지낸 박계립(朴繼立)이 지은 17세기의 건물이다. 대전 보건 대학 담을 끼고 좌측으로 가면 송시열 유적지가 나오고, 그 뒤쪽으로 올라가다가 박팽년유허비(朴彭年遺墟碑) 아래쪽에 있다. 인근인 동구 가양동에서 태어난 그는 관직에서 물러난 후인 인조 22년(1644년) 이곳에 서당을 짓고 정원에 매화 세 그루를 심었으며, 사방에 정자를 세우고 버드나무 5그루를 심어서 오류정(五柳亭)이라 불렀다. 어느 날 송시열 (宋時烈)이 이 앞을 지나다 매화가 피어 있음을 보고 삼매당(三梅堂)이라 이름 붙였으며, 시를 지어 걸어놓고 갔다고 한다. 이후 이 건물을 삼매당이라 하고 그의 호도 삼매당으로 하였다.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

창녕지석묘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창녕지석묘는 원래 7기의 지석묘가 북두칠성 형으로 배열되어 일명 칠성바위라고 불리고 있었으나, 1912년 도로공사 때 일본인이 일부 파괴하여 공사에 사용해 현재 1기만 남게 되었다. 상석 아래 5개의 지석이 놓여 있으며, 지하는 석실로 되어 있다. 남방식 지석묘 중 호남지방의 지석묘가 군집을 이루는 데 반해, 영남지역의 지석묘는 열을 지우고 있는데 이 창녕지석묘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62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현재 남아있는 1기를 제외한 나머지 6기의 하부구조를 조사하였으며, 지석묘들의 축조 시기는 기원전 5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구릉의 정상부에 있으며, 구릉 밑이나 평지에 있는 고인돌과는 다른 입지 조건을 보여주는 것으로 학술 가치가 크다.
경상남도 창녕군 장마면
박팽년선생유허비
유허비는 옛 선현의 자취를 살피어 후세에 전하고 그를 기리기 위하여 세우는 비로, 이 비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인 박팽년(1417∼1456) 선생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박팽년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과거에 두 번이나 급제하여 우승지를 거쳐 형조참판이 되었다.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세종 때에는 신숙주·성삼문·유성원 등과 함께 집현전의 학사가 되어 왕의 총애를 받았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아 왕위에 오르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펴다 실패로 끝나고,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생을 마치었다. 이후 그의 높은 절의를 기리어 ‘충정’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는 선생이 계시던 옛 건물터의 주춧돌들을 모아 세운 것으로,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현종 9년(1668)에 세웠으며, 우암 송시열이 지은 글에, 동춘당 송준길의 글씨로 하여 비문을 새겼다. 현종 13년(1672) 비각을 세우고 ‘장절정(壯節亭)’이라 이름하여 비를 보호하고 있다. ( 출처 : 국가유산청)
대전광역시 동구 우암로326번길 28

광산서당
광산서당은 병자호란(1636) 때 활약한 양훤의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서당이다. 양훤은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창녕 일대에서 의병을 모아 싸운 인물이다. 서당은 기록에 따르면 1935년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후학을 교육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며 책을 보관하는 서고도 갖추고 있다. 역사적 인물의 정신을 기리는 교육 공간으로 의미가 깊다.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 유어장마로 415
강양향교
강양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합천군 소재지에 처음 지었던 합천향교는 조선 고종 18년(1881) 합천군청을 야로면으로 옮기면서 함께 옮겼다. 그 뒤 1965년 합천·용주·율곡·대양면의 유림이 현재의 자리에 강양향교를 새로 지었다. 건물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 내삼문,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으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향교 232개소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지은 향교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충효로1길 5-14

혜산서원
산외면 다죽리 죽서마을에 세거하는 일직 손 씨의 5현을 받드는 서원으로 본래는 1753년(영조 29)에 창건한 손조서의 서산서원이 있던 자리이다. 손조서는 조선 초기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횡포에 분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충의와 탁절로서 두문불출하며, 오직 도학에만 전념한 학자인데 후일에 사림들의 추앙을 받아 이곳에 서원을 세웠으나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그 집을 서산고택 또는 철운재로 편액 하였다. 1971년에 서원의 영역을 확장 정비하고 각지에 분산 봉안되었던 일직 손 씨 명현 다섯 분의 서원인, 정평공 손홍량의 안동 타양서원, 격재 손조서의 밀양 서산서원, 모당 손처눌의 대구 청호서원, 문탄 손린의 대구 봉산서원, 윤암 손우남의 영천 입암서원 등을 후손들의 집성촌인 이곳으로 옮겨 혜산서원으로 중건한 것이다.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원1리길 17-18
창원 삼정자동 마애여래좌상
삼정자동 내리마을 계곡 중턱의 장군바위라 불리는 화강암 바위에 양각된 마애불상이다. 소라고둥처럼 틀어 올린 머리 위에 상투처럼 돌기 된 육계가 남아있으며, 오른쪽 뺨이 파손되었다. 이마에는 자해의 흔적이 있고 목에는 삼도가 돌려져 있다. 법의는 앞가슴 부분에 박락이 심하여 잘 알 수 없으나, 두 무릎을 덮은 뒤 대좌로 흘러내려 대좌 위에 U자가 3개 겹친 모양으로 표현되었는데 약간 도식적이나 유려한 편이다. 불상의 높이는 159cm로서,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는데 대좌의 경우 부조형으로 입체감을 더하고 있다. 깨달음의 내용을 두 손으로 나타내는 모습인 수인은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갖춘 거신광으로 두광과 신광 안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대좌는 육각으로 보이며 중대에 기둥을 3개 표현하여 입체감을 더하였는데,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삼정자로 79 (성주동, 유니온빌리지)
세천공원
세천 공원은 1986년 식장산 서측 하단부 세천 소류지 일대를 도시공원으로 조성한 곳을 자연 생태가 잘 보전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한국 고유의 토박이 식물 8백여 종을 포함해 약 6천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자연림으로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식장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로 세천 소류지가 이루어졌고 이곳 주변은 식물 생태계 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이다. 어린이 학생들의 산림 자연환경에 대한 산 교육장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식장산 단풍나무 보호수, 세천저수지도 있어서 볼거리를 더하고 있다. 세천공원은 국도 4호선에서 세천공원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통영대전 고속도로 판암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식장산 해돋이 전망대, 식장산 자연생태림, 대청호 자연수변공원 등의 관광지가 있다. 또한 공원 입구에는 여러 맛집과 카페들이 있다.
대전광역시 동구 세천공원로 68
문충사
문충사는 대전 동구 동부에 위치한 사당이다. 이곳은 구한말에 일제에 항거한 유학자이자 우국지사인 송병선, 송병순 형제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기존에는 1908년 충북 영동군에 건립되었는데, 송병선의 순국 60주년 기념사업 과정에서 1966년에 그의 순국지인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입구에는 송병선정려각과 함께 홍살문이 서 있고, 그 옆에 정면 5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인 외삼문 안에 ‘용동서원’ 현판이 걸린 강당이 있으며, 그 뒤의 내삼문 안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당이 있다. 용동서원은 1970년에 건립되었는데, 조선시대의 서원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송병순은 1888년(고종 25)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나 곧 사임하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다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을 성토하는 격문을 지어 전국에 돌렸다. 이후 1910년 망국의 비보를 듣고 통분하여 형의 뒤를 따라 음독 자결하였다. 1977년에는 두 사람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되었고, 1989년 3월 18일에는 이곳이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문충사는 국도 4호선에서 새울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고, 고속도로는 통영대전고속도로 판암 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대전도시철도 1호선 판암역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식장산, 세천공원, 삼정동 산성 등이 있다.
대전광역시 동구 동부로73번길 44
영산향교
영산향교는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중종(재위 1506∼1544) 때 다시 지은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출입문인 풍화문,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 경내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인 대성전 등이 있는데,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특이하게 명륜당과 대성전이 얼마간의 사이를 두고 위치하고 있으며, 대성전에는 동·서무가 없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재 봄과 가을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영산향교는 창녕군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많이 제공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유생길 19

관음사(창녕)
창녕군에 위치한 관음사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사찰안 마당에 잔디가 깔려 있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아기자기하여 특색이 있다. 관음사 안에는 도천 삼층석탑, 미륵불비상, 석등, 아미타불회도 등 문화유산자료가 보존되어 있다. 창녕 도천 삼층석탑은 본래 도전리 탑골 마을 안쪽에 있던 보광사 절터에 있던 탑으로 임진왜란 때 절이 폐허가 되는 바람에 1928년 이곳 관음사로 옮겨온 것이라고 전한다. 보광사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는 것이 없지만 전하는 바에 의하면 관룡사의 말사였다고 한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의 탑으로 추정된다. 관음사 석등은 보광사지에서 발견된 것으로 1928년 5월 관음사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적인 모양을 보았을 때 통일신라~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등에 없어진 부분을 근대에 다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관음사 미륵불비상은 일제강점기 영산-부곡 간 도로 건설 당시 덕곡 근처에서 발견되었으며, 1928년 관음사를 재건할 때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로 행방을 모르다가 1968년 4월 경내 지하에 묻힌 것을 발견하여 현재의 위치에 모셨다. 언제 제작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옷주름이 단순하며 얼굴에 비해 코와 입을 작게 표현하는 등 고려시대에 제작된 마애불의 특징을 보인다. 다만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둥글게 표현된 머리는 같은 시기 불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이다.
경상남도 창녕군 도천면 영산도천로 11-14

권희문가옥
산서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고택으로 현 수유주의 10대 조가 광해군의 사화를 피해 일가와 함께 오산리에 정착하면서 건립하였다. 상량문에 따르면 안채는 1866년, 사랑채는 영조 49년(1733)에 지었다. 사랑채는 1875년 중수하였는데 안채를 세운 후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 1973년 문간채를 짓기 전에는 사랑채 화단 앞의 서문이 대문이었으나, 좁아서 마차가 드나들기에 어렵고 대문 방향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따로 문간채를 세웠다. 일반적으로 옛 가옥의 중심은 사랑채인데 이 가옥은 안채가 중심이다. 전라도 지방 가옥의 일반적 특징인 일자형 구조가 아닌 ㄱ자형 구조에, 안채 전면 기둥은 둥근기둥인데 사랑채는 네모기둥인 것도 가옥의 중심이 안채임을 나타낸다. 안채와 사랑채 외에 서쪽채·아래채·문간채·바깥채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었다. 안채, 사랑채, 서쪽채 등은 거의 원형 그대로이나 나머지 건물은 많이 변형되었다. 문간채는 블록을 쌓아 창고로 만들고 바깥채는 외양간, 창고, 목욕탕 등으로 사용된다. 아래채에는 돼지우리와 외양간 등 축사를 두고 사랑채 한쪽에는 여물청을 두었다. 권희문 가옥은 많은 부분이 변화되고 개조되었지만 안채와 사랑채는 거의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메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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