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6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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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진덕여왕릉
이 무덤은 신라 제28대 진덕여왕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진덕여왕은 본명이 승만이며,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이다. 산라의 두 번째 여왕이면서 성골로서는 마지막 왕이다. 진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라 재위 기간에 관료와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당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김유신을 내세워 백제와의 잦은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거뒀다. 진덕여왕이 죽었을 때 사량부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무덤은 안태봉 남쪽 능선에 단독으로 있다. 가장자리에 돌판과 버팀돌로 둘레돌을 둘렀고, 버팀돌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였다. 다른 왕릉에 비해 십이지신상이 작고 조각이 얕아 신라 왕릉의 십이지신상 중에서도 늦은 시기의 것으로 평가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경주 효공왕릉
신라 제52대 효공왕(재위 897∼912)의 무덤으로 높이 5m, 지름 21.2m이며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원형 봉토 무덤이다. 무덤 밑부분에는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쌓았던 돌이 몇 개 남아 있으며, 이는 무열왕릉과 같은 성격인 둘레돌의 일부로 추측된다. 그밖에는 아무런 표식물이 없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무덤이다. 에 의하면 912년 왕이 죽자 이름을 효공이라 하고 사자사라는 절 북쪽에 장사 지냈다고 하고, 에는 왕이 죽자, 사자사 북쪽에 화장해 그 유골을 구지제의 동산 옆에 묻었다 하여 기록에 차이가 있으나 현재의 위치가 사자사터로 전하는 지점의 북쪽에 해당하므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현재 이 무덤의 남쪽에 절터가 있어 사자사의 터로 추정하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경주 흥덕왕릉
신라 42대 흥덕왕(재위 826∼836)의 무덤으로 지름 20.8m, 높이 6m로 신라 역대 왕릉 중에서 규모가 크고 형식이 완전히 갖추어진 대표적 왕릉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왕비와 합장한 것으로 되어 있어 봉분의 규모가 비교적 크다. 봉분 밑에는 판석을 세워 둘레돌을 삼고, 판석과 판석 사이에 탱주를 세워 판석을 고정하였으며 위에 갑석을 얹었고 탱석에 각각 방향을 따라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였다. 둘레돌의 주변에 방사형으로 박석을 깔고 그 주위에 난간을 돌렸다. 난간 기둥에는 상하 2개의 둥근 구멍을 뚫어 관석을 끼우게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다. 봉분 네 귀퉁이에는 각각 돌사자 1구씩을 배치하였고, 그 전방의 좌우에는 문인석과 무인석 각 1쌍이 배치되었다. 또 능 전방의 왼쪽에는 능비를 세웠던 귀부가 있었으나 손상되었고 비신과 이수는 망실되었다. 이 표식물의 양식을 보면 봉분 밑의 둘레돌이나 십이지신상의 조각은 원성왕릉의 형식을 따랐고 돌사자의 배치는 성덕왕릉의 형식을 취하였으며, 문인석 ·무인석의 배치는 성덕왕릉 또는 원성왕릉의 형식과 같다. 흥덕왕은 임금이 된 첫 해에 왕비인 장화부인이 죽었는데, 11년 동안 죽은 장화부인만 생각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왕이 장화부인의 무덤에 합장하기를 유언하여 흥덕왕릉에 합장하였다고 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육통길 190-26
동강서원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손중돈을 향사하고 높은 학덕을 기리기 위해 1695년(숙종 21) 건립했다. 포항시와 경주시에 걸쳐 있는 형제산 중 제산 자락에 자리 잡았다. 묘우를 중심으로 강당, 동재, 서재, 신도비각, 관리사 등의 건물이 있으며 1996년 1월 20일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손중돈의 자는 대발[大發], 시호는 경절[景節]이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손소의 아들로,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82년(성종 13) 사마시에 합격, 이후 도승지 세 번, 대사간 네 번, 경상·충청·전라·평안·함경도 관찰사를 지내고 이조판서와 우참찬 등 요직을 거친 후 청백리에 선정되었다. 중종반정 직후 상주목사로 재직할 때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이 생사당(오늘날의 상주 속수서원)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유금강정길 40-25

경주유연정
운곡서원 옆에 있는 유연정은 조선 순조 11년(1811)에 안동 권씨 종중에서 고려태사 권행과 그의 후손인 죽림 권산해, 귀봉 권덕린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이 정자는 도연명의 자연 애호 사상을 본받아 서원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계곡의 용추대 위에 있는데, 주위의 자연경관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건물의 형태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이고, 팔작지붕이다. 대청의 천장은 서까래가 보이지 않도록 井자 모양을 한 우물 반자로 꾸몄는데, 그 양쪽에 반원형 판재를 45도로 끼운 모습이 매우 독특하다. 용추계곡, 은행나무 등 주변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1800년대 초기의 건축 수법을 잘 보여준다.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사라길 79-19

경주 헌덕왕릉
경주 북천가에 있는 신라 제41대 헌덕왕(재위 809~826)의 무덤이다. 헌덕왕의 본명은 김언승이며,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 재위기간 동안에 농사를 권장하고 당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김헌창의 난과 김범문의 난이 일어나는 등 국내정세가 혼란스러웠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26년에 왕이 죽자 천림사의 북쪽에 장사 지냈다고 한다. 천림사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 왕릉의 남쪽에 절터가 있어 이곳을 천림사 터로 본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26m, 높이 6m이다. 봉분 밑의 둘레를 따라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둘레돌은 먼저 바닥에 기둥 역할을 하는 돌을 한단 깔고, 그 위에 넓적한 돌(면석)을 세웠다. 면석사이에는 기둥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워 고정시켰다. 탱석에는 무덤을 수호하는 상징적 의미로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조각하였는데, 이 무덤에는 현재는 12지신상 중 돼지(해)·쥐(자)·소(축)·호랑이(인)·토끼(묘) 등 5개상만이 남아있다. 둘레돌 밖으로는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설치하고, 둘레돌과 난간 사이 바닥에는 돌을 깔았다. 지금의 모습은 1970년대에 정비된 것으로, 둘레돌의 일부와 돌난간석을 새로 만들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경주 신무왕릉
신라 제45대 신무왕(재위 839)의 무덤이다. 본명은 김우징이고, 희강왕의 사촌동생이다. 흥덕왕 사후에 왕위 쟁탈전에서 아버지를 도왔으나 패하여 청해진으로 도망하였다가 장보고의 군사를 빌려 민애왕을 내쫓고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지 3개월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제형상 서북쪽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은 왕경의 동남쪽인 동방동에 있는데, 능이 있는 구릉 동남쪽 산의 이름이 형제산이다. 높이 3.4m, 지름 15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주변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다.
경상북도 경주시 동방동

경주 성덕왕릉
경주에서 불국사 방향으로 가는 길의 동남쪽 구릉 소나무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 신라 제33대 성덕왕(재위 701~737)의 무덤이다. 성덕왕은 신문왕의 아들로 본명은 융기이다. 당과 적극적인 교류를 하였으며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어 나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737년에 왕이 죽자 이거사(移車寺) 남쪽에 장사 지냈다고 하는데, 현재 왕릉 북쪽에 이거사로 추정되는 절터가 있다. 왕릉의 밑둘레는 46m, 높이는 5m이다. 무덤 아랫부분에는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는데, 높이 90㎝ 정도의 돌(면석)을 두르고 그 위에 덮개돌인 갑석을 올렸다. 면석 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워 고정시켰으며, 그 바깥쪽에 삼각형의 돌을 세워 받치고 있다. 삼각형의 받침돌 사이에 12지신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네모난 돌 위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의 조각이 심하게 파손되어 있다. 무덤 앞쪽에는 석상이 놓여있고 무덤 주위의 4모서리에는 돌사자를 배치하였다. 석상 앞쪽 양 옆으로 문인석·무인석 각 1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무인석 1개와 상반신만 남은 석인(石人) 1개가 남아 있다. 성덕왕릉에서 보이고 있는 석물의 사실적인 조각기법은 통일신라 초기 양식에 속하며, 왕릉은 통일신라시대의 왕릉으로서 완비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

경주 효소왕릉
이 능은 신라 제32대 효소왕(재위 692~702) 무덤이다. 신문왕(재위 681~692)의 맏아들로서 6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으며, 어머니인 신목태후가 8년간 섭정하였다. 효소왕의 재위 기간에 관제를 정비하고 의료 교육기관인 의학을 설립하였다.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해 성을 많이 쌓았고, 왕도에 물품의 유통을 쉽게 하기 위해 시장을 열었다. 효소왕이 죽은 후 망덕사 동쪽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은 시가지 동남쪽 형제봉의 남서쪽 산자락에 있다. 동쪽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 동생인 성덕왕의 능이 있다. 능의 높이는 4.3m, 지름은 10.3m로,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석을 돌렸으나 현재 몇 개만이 남아있다. 무덤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혼령이 머무는 자리라는 혼유석만이 있다. 내부 구조가 돌방무덤인 것을 확인하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

관성솔밭해변
관성솔밭해변은 경주 다섯 곳의 해수욕장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다. 좌우로 수렴방파제와 지경방파제가 있어 파도가 높지 않고 맑고 푸른 청정해역으로 인기가 높으며 송림과 길게 펼쳐진 백사장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해수부가 뛰어난 자연경관과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 중 한적한 해수욕장으로 사람이 많이 분비지 않아 쾌적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인근 양남면 신대리에는 코오롱 골프장이 있어 해양레저와 함께 여가를 즐길 수 있으며 울산 방면 해안도로를 따라가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이름이 높다. 주변 관광지로는 하서해안공원이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수렴리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는 제14대 대통령 김영삼이 태어난 생가가 위치해 있다. 이곳은 김영삼 대통령의 유년기와 성장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으로,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생가는 전통 한옥 형태로 복원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가족사진, 생활용품, 어린 시절 관련 기록 등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주변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생애와 철학을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과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 생가는 단순한 출생지를 넘어 민주주의와 문민정부 수립이라는 대한민국 정치 변화의 출발점을 상징하는 역사적 공간이다. 현재는 거제시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별도의 예약 없이 자유 관람이 가능하다.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옥포대첩로 743-1

상무시민공원
서구 치평동 상무 신도심 아파트 단지 내에 자리한 아름다운 공원이다. 각종 운동시설과 아름다운 수경관 연출이 가능한 호수 및 열린 광장, 조각공원 등 각종 조경, 편의시설 등을 갖추었다. 조각공원은 상무시민공원 내 호숫가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작품마다 경관 조명시설을 설치해 야간에도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누구나 만지고 체험하면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는 즐거움’과 ‘체험의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준다. 축구장과 테니스장도 있어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시민들이 여가생활을 즐기기 좋은 공원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서구 상무공원로 101

물안해수욕장
물안해수욕장은 하청면 칠천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변 길이 200m, 폭 30m로 모래가 곱고 물이 잔잔하며 해안변이 완만한 작은 해수욕장이다. 이곳은 옆개해수욕장이라고도 불리는데 바닷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 즉 여(암초)가 있는 개(바다)라 하여 여개가 되었다가 역개, 옆개로 이름이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안해수욕장의 물안이란 장목면을 기준으로 ‘물 안쪽에 자리한 바다’라는 의미이다. 이곳은 물이 깨끗해 바닷물 속이 훤히 보인다. 칠천육교가 개통된 이후 교통이 편리해져 가족 단위의 피서객이 많이 찾고 있다. 수심이 얕고 조개류가 많아서 가족 단위로 오면 패류를 적당량 채취할 수도 있는 곳이며 모래 해변과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 텐트를 치고 가족 단위로 피서를 즐기기에 좋다.
경상남도 거제시 하청면 칠천로 973-1

풍암호수
1956년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축조한 풍암호수는 1975년에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꽃이 피며, 이곳에는 장미 140여 종과 2만여 주가 식재되어 있다. 용두동에 자리한 봉황산과 풍암지구를 둘러싼 금당산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으며, 쉼터와 작은 도서관, 야외 공연장 등을 갖춰 자연과 함께 문화를 즐기기에 좋다. 산책로 곳곳에는 시문이 적힌 팻말이 있어 낭만적 분위기를 더한다. (출처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관광 홈페이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서구 풍암동

거창 건계정
거창 건계정은 거창 장씨 문중이 1905년에 세운 것으로, 문중의 시조인 평보 장종행이 고려 충렬왕 때 중국으로부터 귀화했는데, 그의 아들인 두민이 공민왕 때 홍건적들이 침입하여 개경까지 점령 당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군사들을 지휘하여 개경으로부터 홍건적을 몰아내어 국란의 위기를 극복하는 무훈을 세우자, 이에 대한 공로로 공민왕이 두민을 아림군으로 봉했다. 이에 그 후손들이 두민의 공을 기려서 세운 정자이다. 건계정 계곡은 역사, 지리, 군사상의 요충지로 자리하였으나 지금은 거창하면 건계정을 생각할 만큼 고풍스러운 정자와 맑은 물이 굽이도는 물길과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예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거창을 소재로 하는 글이나 문학 소재의 대상에서 으뜸이 되었던 곳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거안로 1173-21
화담사
조선 중기 문신인 정희 선생을 중앙에 모시고 좌우에 그의 아들 정초·손자 정수충과 정오도·민제장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처음에는 사경과 예법에 뛰어나고 청렴결백한 정수충의 영정을 모신 영당이었으나, 정조 8년(1784) 그의 위패를 함께 모시면서 사당의 격을 갖추었다. 정조 20년(1796)에는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민제장을, 순조 6년(1809)에는 정몽주의 제자로 충절을 지킨 그의 할아버지인 정희와 세종 때 학문과 예술, 과학, 기술 등에 업적을 남기고 청렴했던 그의 아버지인 정초의 위패를 함께 모셨다. 그 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다가 1905년 다시 제사 지내기 시작했다. 1906년 송시열의 제자로 충효가 뛰어났던 정오도의 위패를 추가하고 정희의 위패를 중앙에 두어 지금의 틀을 갖추었다. 제사를 올리는 공간인 화담사는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며 앞쪽에는 넓은 마루가 있다. 건물 앞쪽으로는 내삼문인 양양문이 있고 계단을 내려가면 중간에 학문을 연구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있어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서구 화운로156번길 17-8 (화정동)
팔용산 돌탑
마산회원구 팔용산과 인접한 양덕동에 거주하는 이삼용 씨 등 주민들이 1987년 7월부터 팔용산 먼동 골에 약수터를 개설한 뒤, 많은 지역주민이 찾게 되었으며 1993년 3월부터 산사태가 난 계곡 주변에 등산로 정비를 하면서 돌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이삼용 씨는 이산가족의 슬픔을 느끼고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에 지극 정성을 담아 돌탑을 쌓기 시작하여 1,000여 기를 쌓았다고 한다. 돌탑이 시민들에게 알려져,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로 발전하자 창원시에서 돌탑 주변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돌탑공원 표지석, 반려동물 배변봉투함, 해충기피제 자동분사기, 먼지떨이 기계 등 각종 편의 시설을 설치하였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사천읍성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일대에 있는 사천읍성은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약 1.5㎞의 둘레 중 현재는 3개 부근 약 300m의 성곽이 남아있다. 사천의 옛 이름이 사물(史勿), 사수(泗水), 동성(東城) 등이었는데 조선 태종 때부터 사천이라 하였다. 세종 24년(1442)에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명에 의해 쌓았다고 전해지며, 이곳에 돌로 성을 쌓기 시작하여 3년 후(1445)에 완성시켰다. 이로부터 4년 뒤 관청을 짓고 읍을 옮겼다고 한다. 처음의 기록에는 성 둘레 3,105척, 성벽의 높이 10.5∼1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고, 그 후의 기록에는 성둘레 5,015척, 성벽의 높이 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어 후에 증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래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수모가 있었다. 특히 선조 32년(1598) 정기룡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을 벌여 왜적을 몰아냈다 한다. 현재 성 안에는 충혼탑, 수양루, 활을 쏘는 관덕정이 있는 산성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수양공원길 51

선진공원
공원 입구에서 53개 계단을 오르면 바다에 둘러싸인 전망 좋은 공간이 나온다. 공원 안에는 사천해전 때 승전을 거둔 충무공 이순신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천해전 승첩 기념비와 6·25 전쟁 당시 사천지역에서 참전·순직한 공군 조종사 65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군충령비가 있다. 매년 봄이면 사천비연보존회 주관으로 벚꽃 연날리기 대회가 펼쳐지고 벚꽃축제도 열린다.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충익사 의병탑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홍의장군 곽재우(1552~1617)와 휘하에 있던 17명의 장수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탑으로, 1972년 4월 22일 의령군 남산 기슭의 남산천변에 의령군민들의 성금으로 건립한 것이다. 탑의 높이는 27m이며, 탑 중앙 부분의 둥근 고리 18개는 곽재우와 17장령을 상징하고, 고리를 지탱시키는 양쪽의 팔자 형태 기둥은 횃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고리 중간에 한글로 의병탑이라 적혀 있으며, 탑명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이다. 탑의 하단 양쪽에 말을 타고 전투를 지휘하는 곽재우 장군의 모습과 의병들의 전투 장면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의병탑 옆으로는 곽재우와 열일곱 장수의 위패를 봉안하는 충익사가 있는데, 사당은 1978년 12월에 건립되었으며, 사당, 기념관, 충의각, 충현정, 충의문, 홍의문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의병탑 근처에는 남산체육공원과 의령군의 명물인 의령구름다리, 의령천수변공원이 있다.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1

영사재
영사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오씨 재실이다. 대동사와 함께 명곡부락 뒤쪽 산기슭에 있으며 조선 중기 학자이자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에 참여한 생노당 오효석(1620~1697)이 은거하며 후진을 길렀던 곳으로, 사후에 오효석의 재실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오효석은 광해군 때 본량에서 출생하여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양란에 참여하였으며, 효종의 사망으로 북벌 계획이 좌절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쓰다 68세로 사망하였다. 우암 송시열은 오효석을 대명처사라 불렀다고 한다. 오효석은 ‘생로당유고’를 남겼다. 영사재가 있는 곳은 골짜기가 길어 장탄이라고도 하는데, 워낙 골짜기가 깊어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의병들이 자주 머물며 무기를 제작하였다고 전한다. 특히 전해산 의병부대는 영사재에 주둔하며 무기를 수선하거나 화약과 탄환을 만들었다. 영사재는 한말 의병장 오성술 의병부대의 주둔지로도 자주 활용되었다. 오성술은 집안 사당인 영사재가 대명동천의 가장 깊숙하고 으슥한 곳에 자리한 점을 전술적으로 잘 활용하였던 것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명곡길 170-30
취백정
취백정은 대청댐 인근에 금강변에 위치한 조선시대 문화재이다. 이곳은 원래 미호서원의 부속건물로 1701년(숙종 27)에 건립되었다. 건립 후 제월당 송규렴(1630∼1709)이 제자를 모아 학문을 가르치는 곳으로 활용되었다. 송규렴은 학문이 뛰어나 송시열, 송준길과 함께 ‘삼송’으로 일컬어졌다. 별세 후엔 ‘문희’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이곳은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또한 금강변 야산 구릉의 정상부에 자리하여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아름답다. 취백정은 국도 17호선과 지방도 32호선에서 대청로, 대청로 526번 길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 신탄진 IC와 당진영덕고속도로 문의청남대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대청댐, 금강로하스대청공원, 청남대, 용호동 구석기 유적 등의 관광지가 있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청로526번길 45-24
성흥사 계곡
창원 불모산(801.1m) 자락인 화산(799.1m)에서 내려오는 계곡으로 성흥사 옆에 있는 계곡을 말한다. 계곡 주변 숲이 울창하고,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한 자연발생 유원지로 그늘진 숲속 바위에 앉아 맑은 계곡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 깊이 숨겨진 번잡한 생각들이 말끔히 없어진다. 성흥사 계곡 입구에는 넓은 주차 공간과 토속 음식점들이 있어 평소에도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여름철에는 무더위를 식히려는 피서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계곡을 벗어나 해안 관광도로로 접어들어 용원 방향으로 가다 보면 탁 트인 바다가 있다. 성흥사는 신라 흥덕왕 8년(833년) 무염국사가 웅동지방에 침입한 왜구를 불력으로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창건된 고찰로, 창건 당시에는 승려 수가 500여 명에 달하는 신라 유수의 고찰이었으나, 잦은 화재로 여러 차례의 중건과 이건으로 현재는 대웅전만이 창건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대장로 227 (대장동)
법동 석장승
법동 석장승은 대전 대덕구 중리동과 법동의 경계에 자리한 돌장승이다. 원래는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나무 장승이었으나, 약 300여 년 전 돌장승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이 마을에서는 전통적으로 음력 10월에 산신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에 산신제를 올리고, 이어 거리제(장승제)를 지낸다. 법동 택지조성 사업으로 이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한때 장승이 대덕구청으로 이전되었으나, 현재는 동춘당로 양쪽에 다시 세워졌다. 이 장승은 선돌과 함께 있는 점이 특이하며, 조선 시대의 장승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가치 있는 문화재이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인근 관광지로는 동춘당, 송애당, 이시직 공적려각, 계족산, 계족산성 등이 있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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