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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62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62페이지입니다.

이중섭거리
문화관광제주특별자치도

이중섭거리

40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화가 이중섭을 기리기 위해 피난 당시 거주했던 초가를 중심으로 조성된 거리이다. 1996년에 사업체가 창단하고 1997년 9월 복원되었다. 주변에는 이중섭의 삽화가 들어간 기념품이나 각종 수공예품, 편집샵 등이 즐비해 있으며, 수제버거, 피쉬앤칩스 음식점 등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맛집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서귀포에 머물며 명작을 남긴 예술가들의 삶의 자취를 더듬어보는 작가의 산책 길도 조성되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이중섭로 29 (서귀동)

오남제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오남제

오남제 건립은 행주기씨 락남선조인 덕성군 물제기진을 제향 하는 제각으로 1560년에 건립했고, 물제기진는 고봉 기대승의 부친이며 기앙명현기준의 중형이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골기와 8작지붕이며 건물내부 우측에 ‘금송유사 공사원 유사임자’ 3월 29일이란 현판내용과 제각정면에 고봉선생과정기훈이란 제하의 기문이 걸려있다. 내부는 대청마루로 되어 있고, 대문은 소슬대문으로 대문 좌우측에 각 1칸씩 창고로 쓰이고 있다. 담장은 토담으로 되어 있고, 제각 우측에 행랑채가 있어 관리인이 살고 있으며, 건물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건축 과제로서의 가치가 높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임곡용동길 166

신룡동오층석탑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룡동오층석탑

외딴 민가 옆에 우뚝 솟아있는 석탑으로 현재는 절이 있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그 옆에 석불입상이 1구 있어 상당한 규모의 절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로 5층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의 몸돌은 2층에서 갑자기 높이가 낮아져 5층까지 알맞게 줄어들었으며,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3층은 4단씩, 4∼5층은 3단으로 줄었다. 꼭대기에는 돌의 재질이 다른 장식들이 놓여 있는데, 나중에 보충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형식에 치우친 모습이어서, 고려 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층 기단이 손상되고, 일부가 없어져 심하게 갈라진 위층 기단은 거의 무너질 정도였으나 1981년 해체, 복원하였다. 탑 해체 시 발견되었던 유물들은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신룡동

하멜기념비
문화관광제주특별자치도

하멜기념비

하멜기념비는 핸드릭 하멜의 공덕과 네덜란드와 대한민국 간 우호 증진의 증표로 1980년 4월 1일 한국국제문화협회와 주한네덜란드대사관에 의해 산방굴사 바로 앞 해변가 언덕에 세워졌다. 조선 효종 4년(1653) 하멜 일행이 탄 네덜란드의 무역선 스페로호크호가 심한 풍랑으로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표류하게 된다. 하멜은 입도 후 13년 동안 이곳에 머물렀고,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1668년 ‘하멜 표류기’, 일명 ‘난선 제주도 난파기’를 출판하여 한국을 서양에 널리 밝힌 최초의 사람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112-3

왕동저수지
자연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왕동저수지

왕동저수지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용진산 서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용진산에서 뻗어 나온 내왕산과 쓰래산 사이 골짜기에 자리 잡은 드넓은 저수지다. 이른 아침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장관인 곳이다. 왕동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해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이 용진산 석봉과 태봉에 올라 제를 지냈다고 한다. 1928년에 준공된 왕동저수지는 90만 1,000톤의 물을 저장하여 본량들 260만㎡의 농사를 책임졌다. 용골에서 발원한 여미골 물이 더해지고 원당마을 앞에서 고개미골 물과 합쳐져서 왕동저수지로 들어간다. 저수지의 물은 다시 산보래산과 쓰래산 사이의 기구마골을 지나 본량 파출소, 황계를 거쳐 황룡강으로 흘러 나간다. 가물치, 잉어, 붕어, 민물새우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했던 저수지는 이제 블루길과 배스 등 외래어종의 서식지가 되어, 광산구청에서 외래종 퇴치를 위한 낚시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저수지 인근에 광산구 본량동 주민센터-왕동저수지-원당마을-용진산-사호동 마을까지 10㎞ 구간에 '고향 길'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본량동서로 259

평화통일 불사리탑
역사관광제주특별자치도

평화통일 불사리탑

평화통일 불사리탑은 반구형으로 건립한 불교사원으로 1998년 8월 15일 완공되었다.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에 맞서 불교중흥을 위해 헌신하다가 제주도로 유배된 허응당 보우대사와 환성 지안대사의 전법 정신을 이어 조국 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며 세운 사찰이다. 탑은 민족의 영산 백두의 천지에 정방향으로 맞추어 건축했고 한라산과 백두산이 불사리탑을 축으로 서로 일직선상에 놓이도록 했다. 불사리탑의 높이는 33M로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천상세계 삼십삼천을 상징하는데 1층은 둥근 우주의 완전한 평화와 행복, 2층은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올바른 여덟 가지 길, 3층은 108번뇌를 상징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일주동로 884

신촌향사
역사관광제주특별자치도

신촌향사

신촌향사는 조선시대 마을의 공무를 처리하던 곳이었다. 조선 순조 5년(1805)에 이곳으로 옮겨지었다고 하며, 그 뒤로도 여러 차례 고쳐서 원래 형태에서 많이 바뀐 것으로 보이며, 침수에 대비하여 지대를 높이면서 본래의 분위기를 거의 잃었다. 신촌향사는 앞면이 7칸으로 제주도의 일반 민가보다 규모가 크고 가운데 있는 대청도 넓다. 그러나 구조와 양식 등은 민가와 거의 비슷하다. 우진각 지붕의 기와집이며, 전면퇴는 개방되어 있고 내진주에 세살문을 달았으나, 후면은 퇴기둥에 심벽을 치고 간마다 판장문을 달았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5길 27

구시물
자연관광제주특별자치도

구시물

구시는 나무와 돌로 수로[水路]를 파 만든 것을 말한다. 구시물은 성[城]동산 북쪽 기슭 샘물로 삼별초의 식수원이었다. 이 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城]밖인데도, 외성[外城]을 쌓아 나무로 구시를 만들어, 깨끗이 관리하였고, 아무리 가뭄이 닥쳐도 마르지 않는 질 좋은 생수라서 콜레라가 유행할때도 고성은 한 사람도 희생자가 없었다고 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세화해수욕장
자연관광제주특별자치도

세화해수욕장

제주올레 20코스를 걷다 보면 세화민속오일장과 해녀박물관 사이에 작은 해변인 세화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다.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이 해변은 정식 해수욕장도 아니고 규모도 크지 않지만, 맑고 파란 바다를 선물해 준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하얀 모래와 검은 현무암이 에메랄드빛 바다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제주의 많은 해변 중에서도 작은 세화해수욕장이 널리 알려진 것은 벨롱장과 세화민속오일장 덕분이다. 동부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오일장이자 바닷가 바로 옆에서 열리는 이 오일장엔 매 5일마다 도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길

서강사(광주)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서강사(광주)

고려 왕건태조를 도와 개국공신으로 고려통합 삼한익찬공신 삼중대광태사로 파평윤씨 시조이신 태사공 휘 신달[諱 莘達]을 주벽으로, 5세조 문숙공 휘 관[諱 瓘], 6세조 문강공 휘 언이[諱 彦頤], 8세조 남원백 휘 위[諱 威], 10세조 함안백 휘 돈[諱 敦], 11세조 문헌공 휘 보[諱 珤] 등 육현선조를 배향한 전국유일의 사묘사우로 매년 음력 3월 18일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시조 윤신달은 고려 초의 공신으로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익찬공신이 되었으며, 윤관은 고려시대 명장으로 여진을 정벌하여 동북에 9성을 쌓아 승리한 업적을 남겼고, 고려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윤언이는 고려 초 문신으로 윤관의 아들이며 고려 예종대에 정치적으로 활약한 바가 있다. 8세조 윤위는 남원윤씨 시조가 되었고, 10세조 윤돈은 함안윤씨의 시조가 된다. 경내에는 6현선조를 모신 사당과 강당인 경모재,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유학 온 종친들의 자녀들의 학숙을 하는 육영관(오늘날 남도학숙 기능), 관리사 등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고, 서강사묘정비, 6현선조 행장비, 문숙공 윤관대원수 기마상, 우물 등이 배치되어 있다. 6현선조를 배향한 사당은 3단의 화강석기단 위에 정평주초를 놓고 원주기둥을 세워 정면 3칸 측면 1칸의 골기와 8작지붕으로 돼있고, 네 귀에는 각 3개씩 처마를 받치는 활주를 세웠으며 창방 위의 주두에는 뻘목을 결구하고 평주와 평주사이에는 1개의 변형소를 끼워 장혀와 납도리를 가구 하였다. 내부는 우물천장으로서 2고주 5량집이다. 창호는 좌우 편문으로 중앙은 2분합 겹문으로 교살창으로 장식하였고 인방 밑에는 머름을 두고 상인방 위에도 머름을 설치하여 안상의 무늬를 넣었다. 처마는 평고대를 끼워 겹처마로 돼있고 2익공식을 따르고 있다. 전면은 단청이 비교적 잘 되어있고 대문은 평3문으로 되어 있다. 경모재는 서강사 강당으로 강당은 화강석으로 석계를 1.8m정도 기단을 조성한 후 콘크리트를 다져 그 위에 모기둥을 세워 정면 5칸 측면 1칸의 일식 기와를 올린 8작지붕으로 돼있다. 내부는 중앙에 대청을 조성하고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분합문으로 마루와 온돌방을 구획하였다.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되어 있고 사다리꼴 판대공을 종보위에 올려 종도리를 지나가게 한 5량집이다. 주두에는 장혀와 납도리만을 가구 하였으나 전면 좌우 퇴 칸에는 소로와 창방을 덧붙였다. 창호는 좌우 각각 1칸씩은 2분합겹문, 중앙은 4분합문으로 돼있고 띠 살창이다. 온돌방 좌우에 2분합문으로 출입문을 두었고, 뒤편에는 대청에 2분합문을 2개 내고 온돌방 뒤편에는 봉창을 달았다. 전면에는 풍우를 막기 위해 최근 유리창을 내었으며, 대문(필식문)은 소슬대문으로 홀실과 거북귀문 등을 목각으로 장식하였으며 건축 연대는 단기 4301(1968)년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치마봉1길 16-1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문화관광제주특별자치도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은 제주해녀항일운동의 흔적과 저항 정신을 기리고 있는 곳이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1932년 1월 제주시 구좌읍과 성산읍, 우도면 일대에서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과 민족적 차별에 항거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다. 이 운동은 여성들이 주도한 유일한 여성항일운동으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은 당시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해녀들의 2차 집결지인 이곳에 해녀 항일 운동 정신을 기리고자 조성하였다. 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을 바탕으로 후세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과 애국, 애향정신 함양을 위한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길 26

고씨삼강문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씨삼강문

고씨삼강문은 조선시대 고경명과 고경명의 동생인 고경형,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와 고인후, 딸인 영광유생 노상룡의 부인, 고경명의 조카 고거후의 부인인 광산정씨, 고경명의 손자 고부금 총 7명의 충·효·열을 기리는 정려문이다. 정려문은 효자, 효부, 열녀, 충신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나 문을 말한다. 현존 건물은 1844년에 세운 것으로 사방에 홍살문을 설치하여 내부를 차단하고 앞 뒤 이열로 정려현판을 걸었다. 정면 네칸, 측면 한칸의 맞배지붕으로 지붕은 부연이 없는 홑처마로 처리했다. 건물 밖에는 담장을 돌리고 외삼문을 세웠으며 삼강문 옆에는 고씨문중의 제각인 추원각이 있다. 장흥고씨 삼강문은 충렬공 고경명의 태생지인 압촌동 마을입구에 있다. 정석7간 측면 1간의 골기와 8작지붕으로서 임진왜란 후 왜병이 철수한 선조28년(1595)에 고경명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선조가 명하여 세웠다. 충렬공 제봉 고경명(1533~1592) 선생은 압촌동에서 태어나 여러 관직을 거쳐 1591년 동래부사를 끝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금산에서 왜병과 싸우다 두 아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압촌길 66

정의향교
역사관광제주특별자치도

정의향교

정의향교는 1971년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향교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1423년 정의현청을 고성리에서 진사리(지금의 성읍리)로 옮겨 설치할 때 함께 성안으로 들어왔다. 그 후 여러 차례 개축과 이건을 거듭하다가 1849년 방어사 장인식이 조정에 주청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 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정의향교는 약간 높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현재 대성전, 명륜당, 수선당, 수호사, 내삼문, 협문, 동재가 복원되어 있다. 대부분의 향교 건물이 남향이고, 제주향교와 함께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배향 공간인 대성전과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좌우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정의향교에는 현재 전패가 보관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5성, 10철, 송조6현과 한국의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해마다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한다. 향교 앞에는 10개의 송덕비가 줄지어 서 있고 향교 안에도 5개의 송덕비가 있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으로는 성읍민속마을과 보름왓, 백약이오름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서문로 14

지산재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산재

지산재는 본래 고운 최치원을 배향했던 지산사의 강당이었다. 영조 13년(1737)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역에 있는 경주 최 씨 문중에서 시조인 최치원의 영정을 모시기 위하여 영당을 세웠다. 헌종 12년(1846) 경주최 씨 문중과 지역 유림들이 최치원 외에 최운한, 최형한, 정오도를 추가로 모시면서 지산사로 이름을 바꾸고 서원이 되었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영당만 남고 모두 훼철되었다. 1922년 경주최 씨 문중을 중심으로 강당이 복설이 되고 지산재로 이름을 바꾸고 최치원만 모셨다. 이후 내삼문과 외삼문이 건립되어서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 지산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 구조이며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 3칸은 마룻바닥이고 나머지 1칸에 방을 두었다. 지산재의 편액은 김규태가 작성하였고 지산재 앞에 외삼문과 동재, 서재 건물이 있으며, 지산재 뒤로 내삼문과 영당이 있다. 지산재 옆에 1985년에 세운 유허비가 있다. 조선 후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역 문중에서 시조를 어떻게 제향 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곳이며 서원 철폐령 이후 다시 세워졌던 사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지산재길 51

제주 성읍마을 고평오 고택
역사관광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성읍마을 고평오 고택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고택으로 성읍민속마을 안에 있다. 고평오의 증조부가 1829년(순조 29)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고택에는 안거리(안채), 밖거리(바깥채), 모커리가 배치되어 있다. 모커리는 안채, 바깥채 사이에 배치된 대문간 옆의 건물로, 수레간과 절구 등을 보관하던 헛간으로, 현재 있는 모커리 맞은편에 모커리 한 채가 더 있었는데 1970년대 중반에 헐었다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1979년에 수리한 것으로 바람에 지붕이 날리지 않도록 새끼줄로 그물처럼 덮어 놓았다. 배치 도면에서 남쪽에 위치하는 바깥채는 예전 면사무소 관원들이 숙식하던 곳이었다고 전해지며, 안채 대청의 쌍여닫이창은 제주 남부 일부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중요한 연구자료로 평가된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정의현로34번길 5-3

제주 성읍마을 고창환 고택
역사관광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성읍마을 고창환 고택

19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보이며, 정의향교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제주 성읍마을 고창환 고택은 정의고을의 여인숙으로 쓰였던 일이 있어, 지금도 주민들 사이에는 여관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문을 들어서면 왼쪽 곁으로 헛간채, 그 앞마당을 가로질러 안채가 있고 안채 뒤편으로 넓은 텃밭과 수목들이 우거져 집 주변과 조화롭게 어울린 자연이 격을 더한다. 안채는 한라산 산남지역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3칸 집으로 앞에서 볼 때 왼쪽부터 부엌, 대청, 안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부엌 뒤쪽에 작은방을 안방 뒤쪽에는 곡물을 쌓아두던 고팡을 마련하였다. 대청마루와 안방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두고 대청마루에 두 개의 쌍여닫이 널문을 설치하였다. 그중 오른쪽 문에만 작은 생깃문(호령창)을 달았다. 생깃문은 주인이 일꾼이나 머슴을 부르거나 바깥사람과 대화할 때 쓰는 작은 창이다. 부엌 앞에는 물동이를 넣는 바구니인 물구덕을 얹어두는 물팡이 있다. 헛간채는 1칸으로 멍석이나 살림 도구 등을 두던 곳이다. 전형적인 민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상방과 고팡과 안뒤와 정지 등의 공간구성이 어색함이 없이 매우 자연스러우며, 평범하면서도 부족함이 없다. 여관으로서 특이한 가옥 형태는 찾아볼 수 없지만 평범하고 단출한 옛 농가의 형태를 살피고 대문 없는 민가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서문로 4-7

정의현성
역사관광제주특별자치도

정의현성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이다. 본래 이 성은 지금의 성산읍 고성리에 있었지만, 우도와 가까워서 새벽과 밤에 북과 나발 소리가 들리고 여러 번 태풍으로 흉년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왜적이 침범했기 때문에 세종 5년(1423) 9월에 안무사 정간이 진사리로 이전하여 축성했다. 당시 성의 둘레는 2,520척, 높이 13척이었다. 동, 서, 남에 각각 문이 있었으며, 문 위에는 초루가 있었다. 정의현성 안에는 110호에 달하는 가옥이 있고 성 밖으로도 많은 가옥이 있었으며 관아 문밖에 12개의 돌하르방을 세워 성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성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했다. 1986년부터 정의현의 읍성 복원과 보수를 시작했다. 복원 과정에서 정의현감이 업무를 보던 일관헌은 1975년 옛 건물을 헐어내고 새롭게 증축해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성읍민속마을 주변에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현청 등을 보호하는 성도 복원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대정향교
역사관광제주특별자치도

대정향교

대정향교는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으며, 1416년에 세웠는데 이후 터가 좋지 않다고 하여 여러 차례 옮기다가 1653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대정향교는 2단으로 지어진 정지된 부지 위에 상단부는 제향 공간인 대성전, 하단부에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배치되어 전학후묘의 전형적인 향교 배치를 하고 있다. 현존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 동재·서재·신삼문·정문·대성문 등이 있으며, 대정향교의 대성전과 명륜당은 조선시대 그 어느 지역보다 척박했던 제주 대정지역의 향토성과 역사성을 투영시켜 소박하고 절제된 양식으로 표현해 냈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 생활을 할 때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전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향교로 165-17

성주 경산리 성밖숲
자연관광경상북도

성주 경산리 성밖숲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성주읍성(邑城) 서문 밖에 조성된 숲으로, 300~500년생의 왕버들나무 52그루가 자라고 있다. 『경산지(京山志)』및『성산지(星山誌)』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중기 서문 밖의 어린아이들이 이유 없이 죽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풍수지리설을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성밖에 조성된 숲이라는 단순한 이름 뒤에는 성주의 다양한 역사와 생활사가 담긴 가치 높은 공간이다. 노거수 왕버들로만 구성된 단순림(單純林)으로 학술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풍수지리 및 역사, 문화, 신앙에 따라 조성된 전통적인 마을 숲으로 마을 사람들의 향토성, 민속성, 역사성 등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또 마을의 풍치와 보호를 위한 선조의 전통적 자연관을 보여주는 전통적 마을 비보림(裨補林)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현재 성밖숲은 축제 등 각종 행사를 하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산책 공간, 생활체육 활동 공간 등 다양한 주민 생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왕버들나무가 4~5월이면 연두빛으로 물들고, 8월이면 야생화 맥문동의 보랏빛으로 장관을 볼 수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자연관광경상북도

경정해수욕장

영덕 경정 해수욕장은 경사가 완만하며 파도가 잔잔한 바다와 고운 모래사장을 지닌 해수욕장으로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 안전하게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맑은 물 덕분에 소라, 물고기 등을 볼 수 있는 스노쿨링도 즐길 수 있으며 모래찜질과 모래놀이하기에도 좋다. 7번 국도인 해안도로와 인접해 있어 동해안의 유명한 관광지는 거의 다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며 경치 좋은 트레킹 코스 영덕 블루로드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영덕대게로 1726

역사관광경상북도

자계서원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김일손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중종 13년(1518)에 지은 서원이다. 선조 11년(1578)에 다시 지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7년(1615)에 다시 짓고 김극일과 김대유를 더하여 모셨다. 현종 2년(1661)에 ‘자계(紫溪)’라는 사액을 받아 나라의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고종 8년(1871)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4년에 복원되었다. ‘자계’는 연산군 4년 무오사화(1498)로 김일손이 화를 입자 서원 앞을 흐르는 냇물이 3일 동안 붉게 변한 데서 유래하였으며, 서원 이름도 자계서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로는 사당인 존덕사와 제사준비를 하는 전사청, 강당인 보인당, 삼문, 영귀루, 동·서재 등이다. 이 중 영귀루와 동재·서재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영귀루는 서원에서의 여러 행사를 하고, 학생들이 모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숙식하는 생활공간이다. 영귀루 옆에는 김일손이 심었다고 전하는 은행나무가 있고, 원정비·신도비 등이 비각 안에 있다. 지금은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매년 2월과 8월에 제사만 지내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자계서원길 13

청도향교
역사관광경상북도

청도향교

청도향교는 조선 전기에 창건된 교육 시설로 화양향교라고도 불린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와 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1568년에 군수 이선경이 고평동에 세웠다가 1626년에 합천동으로 옮겼으며, 1734년에 화양읍 교촌리로 다시 이전하였다. 1843년 군수 송계백, 1929년 군수 최병철이 각각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978년 군수 최형수가 명륜당을 보수하였다. 경내는 대성전과 동무,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사락루 등 8동의 건물이 있다. 일반적으로 제사 기능을 담당하는 대성전과 강학 기능의 명륜당을 앞뒤로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이곳은 두 건물이 좌우에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향교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충효 교실이 있다. 청소년에게 서예와 한문을 가르치며, 서예반의 경우 오랫동안 배우고 익혀왔던 서예술과 작품을 모아 서예전을 개최했다. 이 외에도 백일장 개최와 청도향교지 발행 등을 통해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와 계승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교길 36

금남로
문화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금남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에 있는 2.3㎞의 길로 금남로 1~5가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금남로 1가의 옛 전남도청에서 옛 광주 은행 사거리 518m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2011년 8월 30일 광주시에 의하여 ‘유네스코 민주인권로’로 지정되었다. 금남로는 광주시민이 계엄군에 맞서 5·18 민중항쟁 기간 중 연일 격렬하게 저항했던 항쟁의 거리다. 5월 18일 가톨릭센터 앞에서 최초의 학생 연좌시위가 있었으며 5월 19일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어 투쟁의지를 불태웠다. 5월 20일 저녁에는 택시를 중심으로 100대 이상의 각종 차량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전까지 30여 만 광주시민이 매일 운집, 군사독재 저지와 민주화를 촉구했던 금남로는 5·18 민중 항쟁을 상징하는 거리다. 이후에도 항쟁의 진실을 밝히려는 투쟁이 이 거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가톨릭센터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시민 집회가 계속 열렸다. 지금도 광주에서 진행되는 행사나 집회, 축제 등은 모두 금남로를 거쳐 옛 전남도청(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향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금남로 일대

유등연지
자연관광경상북도

유등연지

경상북도 청도군에 위치한 연꽃 연못이다. 청도 9경 중 제7경으로 유호연지, 신라지라고도 하며 둘레가 600m, 깊이가 2m에 이른다.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한여름 만개한 연꽃을 감상하며 산책하기 좋다. 모헌 이육이 무오사화로 인해 화양읍 유등리에 은거하면서 연을 심고 군자정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이육이 ‘연은 꽃 중에 군자다’라고 하며 연을 심고 못 위에 정자를 지어 군자정이라 하였으며 이곳에서 문우들과 시를 읊기도 하고 후진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유유자적한 여생을 보냈다. 청도군에서는 매년 4월 초파일 이곳에서 ‘청도 유등 축제’를 연다. 등에 불을 밝히는 점등으로 개제하여 헌다례를 봉행한다. 이 밖에도 소원지 달기, 유등 띄우기, 솟대 까기와 연등 만들기, 염주 만들기 등의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연지로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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