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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6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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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사
사찰인천광역시

호불사

호불사는 부처님의 진리와 자비광명이 하늘과 땅 그리고 온 인류 중생들의 가슴에 길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인천 송도 앞바다와 송도 신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청량산 중턱에 위치한 관음기도 도량이며, 호불사로 올라가는 청량산 등산로는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주변 관광지로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인천시립박물관, 능허대 해안친수공원 등이 있다.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룡로 80 (옥련동)

인천가족공원 외국인묘지
역사관광인천광역시

인천가족공원 외국인묘지

외국인 묘지는 인천이 개항된 뒤 인천에서 체류하다 사망한 외교관, 통역관, 선교사, 의사 등 외국인 66명의 유해가 안장됐던 장소이다. 이 묘지는 북성동, 율목동, 도화동에 흩어져 있던 외국인 묘를 지난 1965년 5월 25일 한데 옮겨 놓은 것이다.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사망하는 이들도 생겨나자 외국인들 유해를 본국으로 보내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거주지 인근 야산에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그 결과 일본인 묘지, 중국인 묘지, 기타 국가별 묘지가 조성됐다. 2017년 5월 인천시와 7개국 주한 대사관에 의해 청학동에 있던 외국인 묘지 66기는 인천가족공원에 마련된 묘역으로 이전됐다. 이곳에 묻힌 사람으로는 개항 후 인천에서 해외 무역을 주도했던 독일계 헤르만 행켈, 타운센드 상회의 월터 타운센드 등과 같은 상인들과 인천에 성 누가병원을 설립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서양 의술을 베풀다 요절한 엘리 바 랜디스 박사 등이 있다.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

역사관광인천광역시

조병수 가옥

인천광역시에 있는 조선 말기의 고가이다. 1997년 7월 14일 인천광역시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1890년 건립된 전형적인 중부형 주택으로서 경기도, 충청도 지방에 많은 주거 형식이다. 일반적 중류 주택으로 ‘ㄱ’자형의 대문채와 안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변이 터진 ‘ㅁ’자형 구조이다. 전체적으로 비교적 큰 양재를 사용해서 정교하게 가공, 건축한 건물이다.

인천광역시 영종구 용유로380번길 21

인천항 갑문
자연관광인천광역시

인천항 갑문

인천항 갑문은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중요한 항만 시설로, 인천항의 선박 운항을 원활하게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갑문은 배가 항구에 안전하게 입출항할 수 있도록 돕는 조수 간만의 차이를 조절하는 시설로, 특히 큰 선박들이 통과할 때 필수적인 구조물이다. 이 시설은 선박이 높은 조수나 낮은 조수에서 어려움 없이 항구를 오갈 수 있도록 물의 높이를 조절하며, 인천항의 효율적인 운영을 돕는다. 인천항 갑문은 또한, 항구의 안전성과 선박의 통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국내외 무역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갑문을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선박들은 인천항을 통해 물류와 상업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으며, 이 시설은 인천항의 발전과 해상 물류에 기여하는 핵심적인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월미로 376 (북성동1가)

구 인천우체국
역사관광인천광역시

구 인천우체국

인천광역시 항동에 있는 인천우체국은 일제강점기 우편 업무를 담당하던 건물이다. 인천우체국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12월 10일 건축됐다. 우편 업무를 담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은 근대식 건물로, 당시 행정 관청 건물 중에서 큰 규모로 만들어졌다. 총면적 1,787㎡, 약 540평으로 웅장한 건물이었다. 건립 당시의 명칭은 인천우편국이었으며, 해방 이후인 1949년 8월에 인천우체국으로 바뀌었다. 인천우체국의 전체적 구조는 벽돌조이지만 바닥은 콘크리트로 시공하였다. 외부 마감은 징두리(건물 안팎 둘레의 밑동 부분)에만 화강암을 2단으로 쌓고, 나머지 윗부분에는 모르타르로서 석조 모양을 표현하였다. 건축될 무렵 유행하던 절충주의 건축양식을 단순화해 지은 것도 특징이다. 입구 양쪽에 큰 기둥 형식의 탑부를 세우고, 그 사이에 주두(기둥 머리를 장식해 공포를 받치는 재료)가 없는 여러 개의 기둥을 받쳤다. 당시 행정 관청 건물은 윗부분에 돔 모양의 탑옥을 올려놓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건물은 돔 모양 탑옥을 생략하는 등 평면과 세부적 외양이 기본 형식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6·25전쟁 때 일부가 파손돼 슬래브 지붕을 슬레이트로 보수하는 등 1957년 복구를 마쳤다. (출처 : 인천투어)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제물량로 183

거잠포해변
자연관광인천광역시

거잠포해변

거잠포해변은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해돋이 명소로, 인천국제공항 인근에 있어 수도권에서 접근이 용이하다. 해변에서는 상어 지느러미 모양의 섬 하나가 보이는데, 이 섬이 바로 매도랑이다. 매도랑 너머로 떠오르는 붉은 해는 장관을 이루며, 이곳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해변을 따라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하얀 모래사장과 갯벌이 어우러져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휴양지로 주목받고 있다. 거잠포해변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면, 거잠포선착장에서 약 300m 거리에 위치한 용유 하늘전망대를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인천광역시 영종구 잠진도길 11

용동큰우물
역사관광인천광역시

용동큰우물

인천광역시 인현동에 있는 조선 후기 우물이다. 1996년 6월 12일 인천광역시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처음에는 자연 연못으로 수량이 많고 물 맛도 좋아 식수로 이용되어 왔다. 그 후 1883년 제물포구를 기점으로 한 인천의 개항과 함께 현재와 같은 우물로 만들어졌다. 내부는 자연석과 가공된 돌을 둥글게 쌓아 만들었고 지상에 드러난 부분은 원형의 콘크리트 관으로 마감하였다. 1967년 우물을 보호하기 위해 한식 기와지붕의 육각형 정자를 건립하였고 현판은 인천 출신의 서예가 박세림(朴世霖)이 썼다. 이 주변을 큰 우물 거리라고 부르며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용동 일대의 상수원이었다.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우현로90번길 19-13

아암도해안공원
테마파크인천광역시

아암도해안공원

인천시 연수구 옥령동에 조성된 해안 공원이다. 공원 입구가 아암대로와 맞닿아 있으며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계단이 놓여 있다. 아암도해안공원은 갯바위가 많고 작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으로 바다 건너로 인천 대교와 송도 국제도시가 훤히 바라보인다.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도시의 스카이라인 너머로 지는 일몰이 볼 만하다. 아암도는 원래 육지에 인접한 작은 바위섬이었다고 한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온전한 섬이 되었다가 물이 빠지면 걸어서 갈 수 있어 과거에도 사람들이 자주 찾던 곳이었다. 이곳에 1980년대 말 송도 해안도로 매립공사가 진행되면서 섬이 육지화되었으며, 2000년 4월에는 기존에 있던 해안 초소와 1.2km가량 이어진 철조망을 제거해 약 1만 2,000㎢ 규모의 해안공원이 만들어졌다. 아암도해안공원 앞쪽은 너른 개펄이 펼쳐져 갯벌 탐사를 하거나 철새들을 관찰하기 좋다. 복잡한 도시 속에 남겨진 섬 아닌 섬 같은 분위기이다. 바닷가 갯바위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언제든 찾기 편한 공간이 되어준다. 호젓하고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거나 바닷가의 색다른 일몰을 담고 싶을 때 한번 방문해 보자. (출처 : 인천관광)

인천광역시 연수구 아암대로 612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자연관광인천광역시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모양이 둥글고 온화하여 중국에서는 높은 관리의 무덤이나 선비의 집에 즐겨 심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들여와 향교나 사찰 등에 심었다. 특히 회화나무는 활엽수 중 공해에 강한 나무로 가로수나 공원수로도 활용된다. 회화나무는 나이가 약 500살 정도로 추정(지정일 기준)되며, 나무 높이 22m, 가슴높이 둘레 1.76~5.84m로 가지는 사방으로 길게 뻗어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고 있으며,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에 꽃이 필 때 위쪽에서 먼저 피면 풍년이 오고, 아래쪽에서 먼저 피면 흉년이 든다고 예측했다 한다. 회화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온 나무로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인천광역시 서해구 신현동 131-7

원인재
역사관광인천광역시

원인재

인천 이씨 중시조인 이허겸의 묘 앞에 세운 건물이다. 중시조란 이름이 별로 없던 성(姓)씨를 가진 집안을 일으켜 세운 선조를 말한다. ‘고려사’에 보면 그의 선조는 신라 때부터 지금의 인천인 소성현에 살았는데, 신라 사신으로 중국 당나라에 갔다가 천자로부터 성(姓)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인천 이씨가 고려시대 귀족대열에 낄 수 있게 된 것은 이허겸 때부터로, 그의 손녀 3명이 모두 현종의 비(妃)가 되었다. 첫째 손녀는 원성황후로 덕종과 정종 두 왕을, 둘째 손녀는 문종을 낳았다. 그 뒤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기까지 7대에 걸쳐 귀족정치의 막강한 파벌을 이루었다. 이 건물을 언제 세웠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32대 손과 33대 손의 글을 통해, 조선 순조 7년(1807) 혹은 고종 4년(1835)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근처 신지마을에 있었으나 택지개발로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인천광역시 연수구 경원대로 322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자연관광인천광역시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갑곶리에 있는 탱자나무는 사기리에 있는 탱자나무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보호수이다.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강화군이 관리하고 있다. 수령 400년 정도의 노거수로서 나무의 크기는 높이 4m, 뿌리목 둘레 1m, 2갈래로 갈라진 부분의 가슴높이 지름이 각각 14㎝와 10㎝ 안팎이다. 이곳에 탱자나무를 심게 된 이유는 성벽 밑에 적군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전해진다. 탱자나무의 억센 가시가 오늘날의 철조망 역할을 해서 성벽에 붙여 심었다 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강화 분오리돈대
역사관광인천광역시

강화 분오리돈대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 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침략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치기도 한다. 분오리돈대는 1679년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동막해수욕장 옆에 있다. 원래 계획은 방형 구조였는데 자연 지형을 이용해 쌓다 보니 초승달 모양이 되었다. 돈대가 대부분 방형이거나 원형인데 반해서 분오리돈대는 초승달 모양이라 독특한 외형을 갖고 있다. 뒷산에서 해안으로 돌출되어 나온 산 능선의 끝부분에 위치하여, 좌우로 깊게 만곡 된 갯벌을 이룬 포구를 끼고 있어 가시 범위가 매우 넓다. 4곳에 문을 설치한 외곽 포대로, 관아에서 돈장을 따로 두어 관리하게 할 정도로 중요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동막리

후애돈대
역사관광인천광역시

후애돈대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 두는 초소로, 밖은 성곽으로 높게 쌓고 그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둔다. 강화 53 돈대 중의 하나인 이 돈대는 화강암을 이용해 정사각 모양으로 쌓아 올렸으며, 대포를 올려놓는 받침대를 4개 설치하였는데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성 위로 낮게 쌓은 담의 일부가 유일하게 남아있어, 1998년에 정말 복원해 놓았다. 인근 마을에는 이 돈대를 훼손하면 재앙이 온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이 때문에 돈대를 제단처럼 여기고 보호하여 지금까지 그 본모습이 잘 남아있다.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된 것으로, 어영 군 2천 명과 경기 ·충청 ·전라 3도의 승군 8천 명이 동원되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장곶돈대
역사관광인천광역시

장곶돈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돈대이다.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미곶돈대(彌串墩臺)·북일곶돈·검암돈과 함께 장곶보(長串堡)에 속한다. 해안방위를 위해 효종~영조까지 대규모 돈대가 축조되었는데 대부분이 1679년(숙종 5)에 지어졌다. 숙종은 함경·황해·강원 3도에서 8,000명의 승군과 어영군 4,300명을 동원하여 40일 만에 49개의 돈대를 축조하였다. 그때 지어진 돈대로, 북일곶돈(北一串墩) 서쪽 1,500m, 검암돈(黔巖墩) 동쪽 1,500m에 있으며 40~120㎝의 돌을 둥글게 쌓고 4개의 포좌(砲座)를 설치하였다. 위에는 벽돌로 된 여장(女薔)이 90㎝ 간격으로 돌려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 2631

망양돈대
역사관광인천광역시

망양돈대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1679년(숙종 5) 5월에 완성된 48돈대에 이후 5개 돈대가 추가로 지어졌다. 48돈대는 황해도·강원도·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 돈대 축조를 기획하고 감독한 이는 병조판서 김석주였고 실무 총괄은 강화유수 윤이제였다. 망양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건평돈대·삼암돈대·석각돈대와 함께 정포보에 속했다. 방형 구조로 둘레가 130m, 석벽의 높이는 300~340㎝이다. 동쪽으로 외포리 항이 있고 바로 아래 삼별초항몽유허비가 있다. 남쪽은 급경사로 거의 절벽에 가깝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계룡돈대
역사관광인천광역시

계룡돈대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 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한 초소로,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물이다. 망월평야 남서방향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이 돈대는 바깥벽 측면에 기록이 남아 있으며, 망월돈대와 함께 관아에서 관리하던 돈대이다.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해 조선 숙종 5년(1679)에 설치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처럼 돈대의 재작년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

강화 무태돈대
역사관광인천광역시

강화 무태돈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무태돈대는 조선시대의 돈대이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 방어시설이다. 강화도는 예부터 해안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1679년 당시 병조판서 김석주에게 강화도를 돌아보게 한 뒤에 48개의 돈대를 쌓게 했는데, 무태돈대도 이때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인화돈대, 광암돈대, 귀등돈대, 작성돈대와 함께 무태돈대는 인화보의 관리 아래 감시소와 방어진지로서 역할을 했다. 직사각형 형태인 무태돈대는 해안을 향해 포좌 4문을 설치했으나 동쪽과 서쪽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남쪽 성벽은 하부만 남아있어 최근 새로 상부를 쌓았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

이섭정
역사관광인천광역시

이섭정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에 위치하고 있는 정자이다. 최초로 건축된 것은 1398년(태조 7년) 강화 부사 이성[李晟]이 세웠다고 한다. 고려 때 몽고와의 협상에서 우리 측이 이롭게 되기를 염원하고 외교 사신들을 영접, 환송하기 위해 지은 강화도 관문의 팔각정이다. 이섭정은 옛 진해루 옆에 있었는데 무너진 지 오래되어 1398년(태조 7년) 강화 부사 이성이 현 자리에 복원하였으나 다시 무너졌고 1976년 국난극복의 역사 전적지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옛 건물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곳에 오르면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염하강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논현포대
역사관광인천광역시

논현포대

논현포대는 조선 후기에 축조된 포대로 1982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병인·신미양요를 거치면서 경기 연안의 군비 강화 필요성을 절감한 정부가 해안을 통해 들어오는 외세를 사전에 방어하기 위해 어영대장 신정희와 강화유수 이경하에게 명하여 군사시설을 확충토록 함으로써 1879년 (조선 고종 16년) 축조되었다. 축조 당시에는 당시의 지명을 따서 호구 포대라고 명명하였으나 현재는 논현포대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대포를 올려놓은 대좌인 포좌가 두 개 남아 옛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인천광역시 연안은 강화의 바닷길을 통해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당시 많은 포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논현포대만 남아있다.

인천광역시 남동구 호구포로 203-31

두남제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두남제

두남제는 행주기씨 문중 재각으로 건축적 배치 및 조형이 가지는 유교 건축의 규범과 품격이 잘 유지되어 있으며, 한옥의 멋을 느낄 수 있는 문화 경관성을 지니고 있다. 건물은 화강석 기단 위에 정평주초를 넣고 평주와 고주를 세운 정면 5칸, 측면 2칸의 한식 기와 팔작지붕이다. 마루는 귀틀에 의한 툇마루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중앙에 대청과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천정은 대들보 위에 마루 대공과 종보를 결구하여 종도리를 걸친 5량 집이다. 창호는 좌우 1칸씩은 분합문으로 되어 있고, 중앙 3칸은 4 분합문으로 되어 있으며, 띠살창이다. 상인방 위에는 빗살창으로 된 봉창이 있다. 창호 좌우측에는 머름을 장식하였고, 좌우측 툇마루는 머름을 대고 1단 높인 마루이다. 대문은 맞배지붕의 평 3문이며, 담장은 토석 혼축의 담장이다. 처마는 겹처마로 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광산동 277

칠송정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칠송정

조선시대 후기 정자인 칠송정은 함재 기효증(1551~1616)의 작은 정자이다. 아버지 고봉 기대승을 3년간 시묘살이 했던 곳으로 원래는 구들이 놓인 움막집 형태로 그의 만년에 지냈던 정자다. 《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북쪽 50리 떨어진 너브실마을에 있다고 했다. 지금 정자는 원래에 위치에서 중건하면서 옮겨지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임곡동 소재지에서 장성읍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편에 광곡(너브실)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 입구에는 고봉 기대승의 도학사상을 잇기 위한 고봉학술원이 있는데, 그 옆에 칠송정이 있다. 이 마을 안쪽에는 고봉을 배향한 월봉서원이 백우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정자 주변에 직접 일곱 주의 소나무를 뜰 앞에 심어 사계절 불변의 지조를 지닌 소나무의 절개를 본받았다는 뜻으로 정자의 이름을 칠송정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일곱 그루의 소나무는 남아 있지 않다. 정자의 정면에 올려져 있는 ‘칠송정(七松亭)’ 현판의 글씨는 한말의 거유 석촌 윤용구(1853∼1939)가 행서로 썼으며 이 당시에 중수 또는 보수를 했을 것으로 여겨지며 칠송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이며 방은 들이지 않은 누각형의 정자로 마루 위에는 현판 외에 두 개의 편액을 볼 수 있다. 후손으로 8 세손 기봉국의 ‘호산승처필명정(湖山勝處必名亭)’의 편액이 있고 1905년(고종 42)에 10대 손 기동준이 쓴 ‘칠송정중건기(七松亭重建記)’의 기문이 있다. *고봉 기대승 고봉 기대승은 이황과 성리학을 문답하여 「사단칠정」에 관한 편지만도 8년을 계속해서 교환했으며, 뒤의 유학자들 중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성리학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다. 나중에는 이황도 그의 이론을 많은 부분 받아들이게 되었고, 후학이긴 하지만 거의 동등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광곡길 73

역사관광제주특별자치도

양금석가옥

양금석가옥은 제주 전통가옥의 면모와 종가의 위상이 공간에 잘 투영된 전통가옥이다. 양금석가옥은 제주도에서 전통이 유지되는 몇 안 되는 가옥 중 하나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600평의 넓은 대지에 세커리의 가옥이 위치한다. 외부인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집 둘레에 돌담을 둘렀고, 집 앞쪽에는 제주도의 상징인 밀감밭이 펼쳐져 있다. 안거리(안채), 모거리(모서리), 밖거리(바깥채)는 밀감밭을 향해 ㄷ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안거리 앞쪽에는 동백나무가 집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일반적으로 쑥대낭(삼나무)을 집 주변에 두르는 관행과 달라 매우 특별한 풍광을 자아낸다. 벼농사가 발달하지 않아 지붕은 억새를 이용해 얹는데, 거센 바람이 지붕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띠를 꼬아 만든 엉으로 망을 만들어 지붕 전체를 덮고, 처마 아래에 긴 대나무에 엉을 일정 간격으로 고정해 둔다. 엉 덕에 바람이 불어도 억새가 날리지 않는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로298번길 3-6

하모해변
자연관광제주특별자치도

하모해변

모슬포와 가까운 곳에 있어 모슬포 해수욕장이라 불리기도 하는 하모해변은 과거에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나, 모래 유실과 돌출된 암반 등에 의한 안전사고 우려가 높아 현재는 폐장된 상태이다. 하모해변은 올레 10코스 지점 중 하나이며 해변 근처에 야영장이 있다. 텐트를 칠 수 있는 구역이 10개 이상 마련되어 있는데, 성수기에는 유료로 제공되고 있어 사전 문의가 필요하다. 여름 성수기에는 바닷속을 걸어 다니며 열대어와 산호초를 볼 수 있는 ‘씨워킹’이라는 이색 해양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으며, 하모해변 주차장 맞은편에는 해바라기밭이 산방산을 배경으로 장관을 이룬다. (출처: 제주 관광공사 홈페이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도림사(광주)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도림사(광주)

도림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도림마을 입구에 있으며 노사 기정진(1798~1879), 난와 오계수(1843~1915), 후석 오준선(1851~1931)을 모신 사우이다. 기정진은 고종 3년(1866)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병인소를 올려 외적을 방비하는 대책을 건의하였고, 위정척사사상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오계수는 기정진의 제자로 을미사변 후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가마마을 뒤쪽 산에 있는 영사재에서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구하였다. 오준선도 기정진의 제자로, 한일병합 이후 용진산에 들어가 용진정사를 세우고 성리학을 연구하면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1934년 나주오씨 문중과 오계수, 오준선의 후학들이 오계수, 오준선과 기정진을 기리기 위하여 도림사를 세웠다. 도림마을은 오계수와 오준선이 태어난 곳이며, 나주오씨 문중의 집성촌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도림하길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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