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5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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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서당
성재서당은 동구 미대동의 인천채씨 성재 문중의 현조인 양전헌 채선견이 최초로 건립했으며 조선 인조 때 선비 채명보가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채명보의 휘는 선견, 자는 명보, 호는 양전헌이며 본관은 인천이다. 광해군 9년(1617)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서궁유폐사건이 일어나자, 선비들과 함께 상소를 올려 잘못된 점을 지적하였다.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에는 향병을 모집하기도 하였으며, 인조 4년에 희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받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성재정을 짓고 선비들과 학문을 논하면서 만년을 보냈다. 채선견은 이곳 성재정에서 당시 대구의 대표적 유학자인 손처눌·도신수·정극준·최동집 등과 교유하였다. 채선견의 호인 양전헌은 정구와 조호익의 양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의미이다. 1627년(인조 5) 채선견이 건립한 성재정으로부터 시작된 이 서당은 1770년경 채선견의 증손자 채상정 때 중건하였으며, 1800년대 초에 후손들이 다시 지붕을 잇고 당호를 성재서당이라 바꾸었다. 근래 성재서당 주변에 대구올레 5코스인 성재서당 가는 길에 포함되어 찾는 이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올레 5코스는 구암마을 입구-동화천변-미타사-내동보호수-삼마산 능선길-성재서당-미대동입구로 봄과 가을에 걷기 좋은 길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길 120
봉무정
조선 고종 12년(1875)에 달성 지역의 토호인 최상룡이 문회를 위해서 건립한 정자이다. 만년에 학문을 강론하면서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뜻이 담긴 공공 건축물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달성군 공산면 4개 마을(강동·독좌·위남·단산)에서 쓰던 초가 사무소가 있었으나, 이 4개 마을을 합쳐 봉무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자 초가를 헐고 이 건물을 지었다. 봉무정은 대청(강당)을 중심으로 동서 쪽으로 각 1칸씩 온돌방이 있으며 동쪽 방은 덕교재 서쪽 방은 예용재로 불리었다. 강당은 농민들의 계몽과 마을 규약 등을 가르치고, 선비들이 모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덕교재와 예용재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의논하던 곳이다. 화강석의 둥근 초석 위에 둥근기둥을 세운 5칸 규모의 집으로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옆면에 내림지붕을 달았다. 봉무정은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이며, 이 시대 공공건물의 예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봉무정 주변으로 봉무정·봉무토성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둘레 350m의 소규모 토성과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패배한 후 도피하던 왕건이 잠시 쉬었다는 독좌암을 연계해서 둘러보는 것도 좋다.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327-7 (봉무동)

신무동마애불좌상
부인사계곡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신무동마애불좌상은 지상에 노출된 큰 바위 위에 돋을새김한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길쭉한 얼굴은 풍만감을 주고 있다. 어깨는 당당하며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경직된 모습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손은 오른손을 위로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내리고 있는 모습이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위와 아래를 향한 연꽃을 새겼는데, 위를 향한 연꽃 속에는 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선으로 구별하고 있는데, 머리광배에는 고사리 무늬를 새기고 가장자리를 불꽃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불상은 길쭉한 얼굴, 경직된 옷주름 등의 조각기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채계산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괴정리에 위치한 채계산은 비녀를 꽂은 여인의 모습을 닮아 채계산, 수만 권의 책을 쌓은 형상이라 하여 책여산, 적성강을 품고 있어 적성산, 화산 옹바위 전설을 간직하고 있어 화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산 아래에는 섬진강이 병풍처럼 흐르며, 채계산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석산이다. 채계산 밑 적성강변에는 천재지변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높이 6자(약 1.8m)가 넘는 흰 바위가 있는데, 백발노인이 우뚝 서 있는 모습과 같아 ‘화산옹’ 또는 ‘화산 늙은이’라 불린다. 이 바위는 해마다 풍년이 들면 흰색과 아름다운 색을 띠고, 흉년에는 검은색으로 변하며, 큰 불이나 전염병이 돌면 파란색,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붉은색을 띤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화산옹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신비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적성면 담순로 2172-33

추령천
추령천은 순창군과 내장산, 추령 등에서 발원하여 섬진강으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내장산 동쪽의 추령봉을 끼고 흐른다 해서 추령천이란 이름이 붙었다. 전북 천리길 중 순창 [선비의 길]의 경우 길의 대부분이 추령천을 따라 걷는 길이어서 추령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전북 천리길은 14개 시군에 걸쳐 44개 코스로 구성된 길로, 전라북도의 우수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은 곳을 알리고자 만들어진 길이다. 선비의 길은 조선 중기 대표 성리학자인 하서 김인후 선생이 제자를 양성했던 곳인 훈몽재,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선생의 생가 등 다양한 문화 자원을 만날 수 있는 역사 문화 탐방길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복흥면 석보리

순창 대모산성
순창 대모산성은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의 대모산에 축성되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경영되었던 산성이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성으로, 조선 시대에도 군창으로 이용되었다. 조선 시대 순창현의 치소지(지역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와 가까이 있으면서 창고를 방비할 수 있었던 성벽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고적에 따르면, 대모산성은 ‘처음에 할미가 아들 아홉을 데리고 성을 쌓아 살았다고 한다. 곡식을 많이 저장해 후에 관곡으로 삼았다 한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홀어머니산성이라고도 불린다. 순창 대모산성의 평면 형태는 사다리꼴에 가까우며, 두 개의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포곡식 석성이다. 둘레는 875m 정도인 중형 산성으로, 인근의 담양 금성산성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성 내부에는 대모암이 자리하고 있고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다. 성벽은 무너진 부분이 많으나 북벽과 서벽은 높이 4~5m 정도 남아있으며, 북벽은 복원되었다. 남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자연 경사면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

오봉산(완주)
전북 완주군 구이면, 임실군 운암면, 신덕면에 걸쳐 있는 오봉산은 513m 높이의 산이다. 전주에서 구이면 운암대교 방면으로 20km 지점에 암벽과 계곡의 수많은 소폭포와 소, 그리고 운암호가 내려다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서의 전망이 수려하며 다섯 봉우리의 육산과 골산이 어우러져 있다. 북쪽 소금 바위 너머의 영암마을 사람들은 제5봉인 북쪽 봉우리를 남산이라 부르는데 기암괴석과 절벽에 노송이 절경을 이룬다. 정상에 오르면 남쪽 능선 바로 아래 맑고 푸른 섬진강 옥정호(운암댐)와 짙푸른 산과 들이 마음을 풍요롭게 하며, 산세가 완만하여 초보자도 산행하기에 좋은 산이다. 산행은 오봉산 휴게소와 백여주유소 동쪽 소모마을에서 시작하여 대모마을로 돌아 나오는 코스, 운암으로 빠져 관촌이나 경각한 허리를 거쳐 구이쪽으로 나오는 코스, 5개 봉우리를 돌아 석남사로 빠져 대덕 초등학교 앞으로 나오는 코스 등 다양하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소모마을 일원
회진당원의대사지비
팔공산 파계사 옛 진입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립 연도는 1648년(인조 26년) 3월, 회진당 원의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비신은 원규형으로 높이 63cm, 폭은 29cm, 두께 10cm의 화강석이다. 비부는 높이 지상 16cm, 가로 59cm, 세로 49cm 타원형의 화강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마모되고 비신에 큰 균열이 나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 (중대동)

구암서원
구암서원은 서침, 서거정, 서해, 서성 등 달성 서씨의 선조들을 모시는 서원이다. 1665년에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연구산에 자리하고 있었다. 1675년(숙종 1년)에 귀계 서침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다가, 1718년(숙종 44년)에 동산동으로 이전하면서 사가 서거정 선생을 함께 모셨다. 이후 약봉 서성 선생과 함제 서해 선생을 차례로 추향하였다. 경내에는 강당, 숭현사, 비각, 제수청 등이 있다.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이며, 숭현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집 맞배지붕 양식이다. 세월이 흐르고 도시가 발전함에 따라 동산동 일대의 환경이 서원 입지로 부적합해짐에 따라, 산격동 연암공원으로 이전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
송계당
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는 고려 후기 충신 구홍과 조선 후기 의병장 구회신을 기리는 재실 송계당은 1960년에 중건하였으며, 후손 구현이 중건 기문을 썼다. 고려말 충신이었던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인 시문정공 송은 구홍과 그의 8세손이며 조선조 임진왜란 때 대구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첨정공 계암 구회신의 절개와 위업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659년(효종, 10년)에 세운 건물인데 두 분의 아호를 따서 당호를 송계당이라 하였다. 가구는 3량 집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대청양쪽의 툇마루는 대청보다 한단 높고 난간이 둘러 쳐져 있다. 제고물 반자로 천정의 경사가 매우 낮고, 대공은 원형 판대공으로 되어 있으며 1960년에 중건하였다. 송계당 강당에는 기문과 시가 편액되어 있으며, 송계당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무태 지역의 선비 정신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웃하여 현손이 거주하고 있는 능성세가가 있다.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로3길 47-19

서계서원
서계서원은 1781년(정조 5)에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조선 태종 때 문예관, 대제학 등을 역임한 오천 이문화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으며, 위패를 봉안하였다. 동화천의 서쪽에 위치해 있어 ‘서계서원’이라 불리며, 서원 편액은 조선 말기의 명필 윤용구가 쓴 것이다. 1801년(순조 1)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싸운 이주 선생을 추가로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으며, 이후 점차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원 경내에는 3칸의 사우와 신문, 동·서 협문, 3칸의 강학당, 1칸의 서고, 각 3칸의 동재와 서재, 주사, 대문 등이 있다. 강학당은 화수정이라 부르며, 1924년에 중건되었다. 동재는 금수랑이라 하여 유림의 회합, 학문 토론, 행사 공간으로 사용되며 문헌과 가보도 보관하고 있다. 서재는 희리당이라 불리며 유생의 강학 공간으로, 창포리에 있던 환성정을 이전해 사용하고 있다. 서고는 부용장으로, 유생의 휴식처이자 숙소 역할을 하였고, 주사는 향사 때 제수를 마련하는 공간이다. 뒤편에는 이문화·이주 두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숭덕사가 있다.
대구광역시 북구 호국로51길 45-17

고산향교
고산향교는 조선 태조 때 창건되었으나 정종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이후 재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된 뒤 선조 연간에 대성전과 명륜당이 차례로 중건되었다. 향교 입구인 성묘에는 공자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그 뒤로 명륜당과 대성전이 있으며, 두 건물 사이에는 동재와 서재가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은 맞배지붕 구조로 정면과 측면이 각각 세 칸이며, 공자와 사성, 송조 사현, 우리나라 열여덟 현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편에는 설총, 안향,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등 아홉 분을, 서편에는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성혼 등 아홉 분을 모시고 있으며, 이러한 위패 배열은 국조오례의 규정에 따른 소설위 형식이다. 고산향교는 매년 두 차례 춘기와 추기의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고산면 고산로 147-23

칠곡향교
향교는 조선조에 사문진작의 관학으로서 사학인 서원과 더불어 인재 양성의 산실로 지방 교육 문화의 거점이었다. 즉 서원이 지금의 사립학교라면 향교는 공립학교인 셈이다. 칠곡향교는 대구 신도시 칠곡지구 도심 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향교 정문 옆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나 고증할 수 있는 문헌이 남아있지 않고 현 위치에는 조선 인조 임오년(1642년)에 창건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전학후묘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외삼문을 지나면 명륜당이 자리하고 뒤편으로 대성전, 동무, 서무가 위치하고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들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현재도 봄, 가을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으며 대성전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는 이곳이 대성전 공간임을 알려주듯이 오랜 세월을 지키고 있어 가을이면 노란 단풍과 함께 향교를 빛나게 하고 있다. 2013년 전통문화체험관인 양현당을 건립하여 기로연, 전통혼례를 비롯한 전통행사와 지역 청소년들과 지역민을 대상으로 서예교실, 충효교실 등의 교양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중앙대로 597
모명재
모명재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조선에 귀화한 두사충을 기리기 위하여 두릉 두씨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모명재는 고국인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이다. 모명재는 네모 반듯한 대지 위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기와집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앞쪽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마련하였다. 이 건물은 20세기 초 대구 지역 재실 건축 형식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1912년 경산 객사가 철거되자, 그 재목을 후손들이 옮겨와 두사충의 묘소 앞에 지은 것으로, 1966년에 낡은 건물을 중수하였다. 대구를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재정비 사업을 통해 새롭게 단장되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525길 14-23 (만촌동)

남계정
남계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 김진이 후학을 양성할 목적으로 세운 누각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건물은 선조 13년(1580)에 신축해 두 차례 중건되었다. 정자는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마루와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 목조 건물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공포는 주심포 양식이다. 구성은 대청마루와 방으로 나뉘어 마루에는 ㄱ자형으로 정면과 측면에 걸쳐 퇴를 두었다. 지면에서 약간 올려 깐 마루에는 전면으로 일반 가옥처럼 출입문을 내고 측면에 한 쌍의 두 짝 여닫이 덧문을 달았다. 귀포의 장식이 화려하며 용마루도 높아, 작지만 품위를 느낄 수 있다. 남계정 안에는 의병장 고경명, 조헌, 부제학 심음시 등 당시의 유림이 남계의 학문과 덕망을 찬양한 현판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남계정의 밑에 있는 절벽 아래 바위에는 한문으로 남계정이란 암각서가 새겨져 있다. 남계정은 산 끝의 절벽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이 누각에 오르면 두현리와 멀리 모악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시원한 조망을 안겨준다. 주변으로 구이저수지와 전북도립미술관, 모악산관광단지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원두현길 12-12

대원사 용각부도
대원사 용각부도는 완주 모악산(795m) 동쪽 자락에 위치한 사찰 대원사 경내에 보존된 부도 중 하나이다. 부도는 불교에서 승려의 사리를 안치한 탑이다. 대원사에는 총 10기의 부도가 있는데 그 중 북동쪽에 4기, 계곡에 6기가 있다. 용각부도는 그 중 북동쪽에 위치한 4기의 부도 중 하나로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이다. 이 부도는 종 모양의 부도로 자연석을 다듬어 만들었으며, 구름 문양, 용 문양, 연화 문양을 새겼다. 1976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부도가 있는 곳에서는 대원사가 있는 골짜기가 내려다보여 운치를 더한다. 주변에는 대원사, 모악산 외에 전북도립미술관, 구이저수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길 243
수만리마애석불
수만리마애석불은 대부산 자락의 거대한 자연 암벽에 새겨진 마애석불이다. 수만리마애석불은 민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게 솟아 있고, 풍만한 얼굴에는 눈, 코, 입이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넓은 가슴, 큼직한 무릎 등이 당당하고 듬직해 보인다.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두터운 편이며, 평행의 옷주름이 신체 전반에 새겨져 있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배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수만리마애석불이 새겨진 시기는 통일신라나 고려 초로 추정된다. 착의법과 옷주름, 수인 등은 수만리마애석불이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나, 거대한 상체와 왜소한 하체의 불균형, 침잠한 얼굴, 느슨하고 힘이 빠진 선각, 단순해진 장식 등으로 볼 때, 고려 초 백성이 주도한 불교 신앙 활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신도들의 결사인 향도결사에 의해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동상면
선교사스윗즈주택
이주택은 1893년부터 대구를 찾아와서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인 선교사들(스윗즈, 핸드슨, 아키베드 캠벨 등)이 거주한 집이다. 1906~1910년경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건립된 서양식 건물이며 동산(현 청라언덕) 위에 서남향으로 자리 잡고 1907년(대구읍성 철거 때)에 가져온 안산암의 성돌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붉은 벽돌을 쌓은 벽돌조 2층의 한·양 절충식 건물이다. 1989년 6월 15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81년 8월 동산병원에서 인수하여 사택으로 사용하면서 한식 기와를 함석으로 교체하고, 내부 마감재 일부를 교체하였다. 평면 구성은 남쪽 우측부에 현관으로 이어지는 베란다를 두고, 현관 홀을 통하여 거실과 응접실을 직접 연결하였다. 거실을 중심으로 침실, 계단실, 욕실, 부엌, 식당 등을 배치하였고 지붕은 한식기와를 이은 박공지붕으로 남쪽과 북쪽이 쇠드(Shed)형이었으나 함석으로 개선되었다. 1999년 10월 1일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개원 100주년을 맞이하여 선교박물관으로 개원하여. 1층에는 각종 성경과 선교 유물 기독교 전래 과정 등의 사진 자료와 2층은 성막 모형 및 이스라엘 현지에서 구입한 구약, 신약 관련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선교사스윗즈주택은 미국인들의 주거 양식과 생활양식, 한·양 절충의 건축 수법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대구의 개신교 선교사와 당시의 건축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청라언덕에는 선교사블레어주택, 챔니스주택을 비롯한 대구제일교회, 동무생각 노래비와 한국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의 3세 자손목 특히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는 오월이 오면 청라언덕에 이팝나무가 200년 넘게 흰쌀밥 꽃을 피우는 등 볼거리 가득한 곳이다. 사유지인 건물로, 내부는 방문객들에게 개방하지 않고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029

선교사챔니스주택
대구 중구 동산동 청라언덕에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서양식 2층 건물로 191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의료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남북으로 뻗은 긴 네모형으로 1층 내부에는 거실·서재·부엌·식당·계단 등이 있고, 2층에는 2개의 침실이 있다. 외부에는 나무로 된 현관과 베란다를 설치했으며, 지붕에는 2개의 붉은 벽돌로 된 굴뚝이 솟아있다. 당시 우리나라에 거주했던 미국인의 건축·주거·생활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건물이다.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029

옥계천
옥계천은 대둔산의 암봉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유구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지각변동과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계곡이다. 계곡에 구슬같이 맑은 물이 사철 흐르고 있어 옥계천, 또는 옥계동이라고 불리며, 그늘이 많고 물이 깊지 않아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 적합해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에서 피서를 즐기려는 가족 단위의 이용객이 많이 찾고 있다. 인근에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대둔산이 있어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흠뻑 느낄 수 있으며, 대둔산 출렁다리와 삼선계단을 건너는 것도 하나의 이색 체험으로 자연을 한층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소계정
달성군의 옥연지 송해공원 맞은편 작은 야산에 있는 소계정은 소계 석재준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소계는 석재준의 호이며 소계정은 그의 문하에 있던 제자들이 지은 것이다. 소계정은 축대를 다소 높이 쌓은 지대위에 지었으며, 계단을 올라 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3칸 규모의 정자가 마당을 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평면은 가운데에 마루를 두고 양옆에 각각 1칸 온돌방을 둔 영남지방의 일반적인 정자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장식이 거의 없는 소박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대구 달성지역의 정자 건축 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 자료라고 한다. 좌측 여재문으로 들어서면 소계 석재준 이하 3대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과 우측에는 소계 석재준의 행적비가 있다. 송해공원을 찾으면 그 맞은편 이곳 소계정에도 들려 소계 석재준의 선비 정신을 느껴 보길 추천한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옥포로57길 25-14

원등산
원등산은 전북 완주군 동상면과 소양면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월리에 있는 절 이름에서 유래하였으며 마을 사람들은 청량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주와 가까워 접근성이 좋고 등산로가 다양해 무난한 산행지로 인기가 있으며, 다리목마을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른 뒤 원등사나 위봉사로 내려오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정상에서는 위봉산과 동상저수지, 운장산과 연석산, 멀리 덕유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원등사 방향으로 하산하면 소원을 비는 오백나한 동굴과 옛 절터, 장군이 갈랐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깨진 바위와 계단식 폭포 등 다양한 볼거리가 이어진다. 해발이 높지 않지만 기암절벽과 조망이 뛰어나 가족 단위 산행지로도 적합한 산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영남제일관
대구 읍성은 1590년에 처음 만들 때는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뒤 1736년에 돌로 다시 쌓아 석성(石城)으로 만들었다. 성에는 동서남북에 네 개의 정문을 두었는데, 동문은 진동문(鎭東門), 서문은 달서문(達西門), 북문은 공북문(拱北門)이라 하였다. 그리고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은 이곳의 남문이었다. 1906년 읍성이 철거될 때 성문들도 함께 철거되었다. 영남제일관은 1980년에 만촌동 현 위치로 그 자리를 옮겨 중건한 것으로, 형태는 처음의 모습을 참조하였으나 규모는 원래의 것보다 더 크다. 영남제일관은 역사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대구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도 애용되고 있으며 야경의 모습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독무재
독무재는 벼슬도 마다하고 향리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한 하시찬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문인과 유림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하시찬은 1750년 지금의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서 태어나 당대의 석학이던 김경호, 송성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지금의 독무재가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독무암루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고, 팔례절요 2권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원래 동구 효목동 경북주유소 부근 경부선 철로 변에 있었으나 대구시 3차 우회도로가 개설되면서 1968년 4월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 되었다. 이건 시 독무재 서남쪽에 별도의 담장을 두고 사당인 경덕사와 팔례절요와 열암문집 판각이 보관된 장판각을 새로 지었다. 주변으로 동촌파크광장놀이공원과 국리대구기상과학관, 아양아트센터, 망우단공원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 하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42길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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