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5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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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련암(대구)
청련암은 우록리 최정산(最頂山) 있는 남지장사의 부속 암자로 지장보살을 모시는 도량이다. 신라 신문왕 4년(684) 양개조사가 왕명으로 남지장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지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유정의 지휘 아래에 있던 승병들이 훈련장으로 사용하였으나 전쟁 때 화재로 소실되었고, 1808년에 재건한 것이다. 청련암의 인법당은 청련암의 중심 건물로 법당의 기능과 요사의 기능이 혼합되어 있다. 따라서 평면의 구성이 사찰 건축의 일반적인 구조와는 달리 가운데 3칸의 법당을 중심으로 좌측에 방 2칸이 이어 붙어 있고 우측으로 부엌이 자리한다. 전후에는 툇간을 내고 좌측 전면으로 방 1칸과 마루 1칸을 덧대어 일견 민가의 사랑채를 연상시키며, 부엌 뒤편으로도 방 2칸을 더 두었다. 법당이 있는 건물은 6칸의 정면 건물 오른쪽 뒤와 왼쪽 앞으로 각각 3칸 건물을 이어 지어 평면 배치가 특이하다. 남지장사 대웅전 동쪽에 있는 청련암은 남지장사 수목장림이 있는 소나무 숲길을 가로질러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세속과 동떨어져 숲으로 둘러싸인 고요하고 단아한 사찰의 분위기가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로 하여금 평온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 운이 좋다면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마루에서 차 한잔을 즐기며 풍경에 취할 수도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남지장사길 127

달성 조길방 고택
달성 조길방 고택은 원래 대구 동촌 비행장 근처에 살던 현 소유자의 10대 조가 조선 중기 난리를 피하여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로 들어와 정착하면서 지은 초가집이다. 경사가 급한 산기슭에 자리한 한덤마을에 있다. 1784년에 건립한 함안 조씨가 살았던 집으로 안채는 정착 당시 건립한 건물이며 사랑채와 아래채, 부속채는 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안채 종도리 하부에 ‘성상 재위 구년 갑진 이월 십구 일 묘시 견주 미시 상량’이라는 묵서명이 있어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다. 안채를 중심으로 좌·우측에 사랑채와 아래채가 위치하여 전체적으로 ㄷ자 형태이다. 달성 조길방 고택은 삼량 구조로 결구된 초가로 초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안채의 마루 정면에 원기둥을 사용하여 대량과 원초적인 상투걸이 수법으로 결구되었으며 특히 안채의 창호 규모와 성격은 주택 발달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한천서원
이 서원은 고려개국공신 태사 충렬공 전이갑과 충강공 전의갑 형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팔공산 동수에서 견훤군과 맞서 싸우다 태조 왕건을 피신시키고, 장절공 신숭겸 장군등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여 그들의 영명을 후세에까지 남겼다. 뒷날 태조가 몹시 슬퍼하여 전이갑은 통합삼한개국공신 태사 충렬공으로 추증하고 전의갑은 시중개국공신 충강공으로 봉하였다. 공의 충절이 병조, 예조등 열성조 수교가 조선왕조에도 전교되어 서기 1864년(고종 8년)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설단하고 제각을 지어 공의 높은 충의를 기려오다가 서기 1989년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대지 800평 규모에 1곽 3동으로 되어 있으며 뜰에는 달성군 보호수 8-1호인 10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출처 : 대구트립로드)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동로 117

구암정
구암정은 순창 구미마을과 내월교 사이 섬진강 및 국도 21호선, 섬진강자전거길가에 세워진 정자이다. 이 정자는 돈암 혹은 배암이라 불리는 바위 위에 서 있다. 이 바위는 인근 남원 출신의 조선 전기 학자 구암 양배(?~1500)가 그의 동생 양돈과 함께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곳이다. 양배는 일찍부터 학문을 닦아 그 지식이 높았으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양대 사화로 어진 사람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 조정을 등지고 동생과 함께 이곳으로 내려와 자연 속에 묻혀 세상을 잊고 살았다. 그 후 1901년에 양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 정자를 세운 것이 바로 지금의 구암정이다. 1990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인근에 위치한 구미마을은 남원 양씨의 집성촌으로 남원 양씨 종가 등이 있다. 그 외에는 주변에 용궐산자연휴양림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진주강씨모열각
진주강씨모열각은 기세기 석씨 문중 며느리인 진주 강씨의 열행을 표창하여 건립한 비각이다. 은열공의 맏딸인 강씨부인이 기세리에 시집을 갔는데 출가한 지 한 달 만에 남편을 잃게 된 그녀는 남편과 합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집안사람들이 유언을 따르지 않고 가례에 따라 장례를 별장으로 치렀는데 이후 갑작스레 집의 대들보가 내려앉고 솥이 깨지고 마을의 가축들이 까닭 없이 죽어가고, 해마다 극심한 가뭄이 들어 농사를 망치는 등 기이한 일들이 연이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 지변이 강씨 부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때문이라 단정하고 별장 한 묘를 합장한 후 성대히 제사를 지내주었는데 이상하게도 산 중턱에 서리가 어린 구름이 감돌더니 단비가 쏟아져 풍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과 문중에서 1945년 기세리 입구에 열녀비를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며 강씨의 열행을 기리고 있다. 모열각 내부 중앙에 열부진양강씨실행비가 있고 사방 벽면에 서열부진양강씨창문, 열부강씨실기서, 모열각기, 열부진양강씨비명병서, 강씨열행기, 모열각상량문 등 현판이 걸려 있다. 모열각은 1922년 오륜행실중간소의 공인을 받아 세워졌으며 지금의 모열각은 1979년 중수한 것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옥포로 305

귀래정(순창)
귀래정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에 있는 정자이다. 귀래정이란 이름은 신말주의 호를 딴 것이다. 현재 정자에는 귀래정기와 강희맹의 시문 등이 편액에 새겨져 있다. 귀래정은 1457년(세조 2년)에 신말주에 의해 세워졌다고 하는데 현재의 건물은 1974년에 다시 세운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주변 관광지로 강천산군립공원, 국립회문산자연휴양림, 설씨부인신경준선생유지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낙덕정
명종 즉위년(1545)에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학자인 하서 김인후가 관직을 그만두고 세상을 피해 숨어 살던 곳이다. 김인후는 낙덕암 주위의 산세를 유난히 좋아했던 것으로 전하며, 자연을 즐기는 한편 후세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쳤다. 고종 4년(1900)에는 훗날 이곳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올 것이라는 김노수의 예언을 따라 낙덕암 위에 정자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북픙면 상송리

섬진강(순창)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의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정읍시와 임실군의 경계에 이르러 갈담 저수지를 이룬다. 순창, 곡성군, 구례군을 남동쪽으로 흐르며 하동군 금성면과 광양시 진월면 경계에서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지리적으로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3도에 걸쳐 있고 역사적으로는 고대 가야문화와 백제문화의 충돌지대, 신라와 백제의 경계,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때는 왜군의 침입경로였으며 조선시대 말기에는 동학농민전쟁이 승화되기도 한 장소이다. 주요 지류로는 정읍시 산내면에서 합류되는 추령천을 비롯해 일중천, 오수천, 심초천, 경천, 옥과천, 요천, 수지천, 보성강, 황전천, 서시천, 가리내, 화개천, 횡천강 등이 있다. 본래 섬진강의 이름은 모래가 고와 두치강, 모래가람, 모래내, 다사강, 대사강, 사천, 기문하 등으로 불렸으며, 고려시대인 1385년(우왕11)경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했다고 한다. 하류의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는 840년에 중창된 신라의 고찰인 쌍계사와 불일암, 불일폭포가 있다. 명산물로는 은어와 참게를 들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수도암(대구)
수도암은 비슬산 유가사의 부속 암자이다. 달성군 유가면 양리에 위치한 비슬산 유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827년에 도성국사가 창건했다. 절 이름은 비슬산의 바위 모습이 아름다운 구슬과 부처의 형상과 같다 하여 옥 유, 절 가 자를 따서 지어졌다. 수도암은 유가사에서 북서편으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85년 성운이 크게 중창하였으며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명성 높다.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 극락전, 삼성각, 두 요사채가 있는 아담한 암자이다. 극락전 앞뜰에는 옛 전설을 간직한 거북바위와 가지가 4미터 정도 뻗은 꽤 큰 떡갈나무가 있다. 암자 주변에는 낙암선사의 비문이 있다. 또 다른 부속 암자인 도성암은 경북지역의 3대 참선기도 도량으로 영남지역에서는 가장 유서 깊은 선원 중 하나다. 신라의 명승인 도성국사가 도를 통한 곳으로 전해지며, 암자 뒤 거대한 바위가 도통바위다. 유가사에서 도성암으로 오르는 길에 수도암이 자리하고 있다. 비슬산 빼어난 경치 속에 자연 닮은 사찰 유가사에서 수도암과 도성암까지 오롯이 번뇌 놓고 오기를 소원해 본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유가사길 161

도성암(달성)
대구의 영산인 비슬산 정상에 있는 도성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에 속하는 유가사의 부속 암자이다. 도성암은 선산 도리사, 팔공산 성전암과 함께 경상북도의 수행 도량 중 하나이다. 신라 혜공왕 때 도성 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982년 성범 대사가 만일미타 도량을 열고 5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도성 대사와 관기 대사가 함께 수행하였던 일화와 성범 대사의 만일미타 도량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도성암은 남서향으로 자리한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산신각이 위치하고, 우측 승방과 대웅보전 전면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이 암자의 중심부를 이룬다. 대웅보전은 다포식 건물로 매우 아담하고 균제미가 뛰어난 건물 외관을 지니고 있다. 도성암 뒤쪽 비슬산에 있는 도통바위는 도성대사와 관기대사가 성도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바위이다. 또한, 도성암은 비슬산 천왕봉 최단 거리 등산코스의 시작점으로 등산 전에 참배하는 마음으로 도성암과 도통바위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도성길 180

도성암 3층석탑
도성암(道成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에 속하는 유가사(瑜伽寺)의 부속암자로 한 때 경상북도 지역의 3대 참선수도처 중 하나로 알려졌던 곳이다. 도성암은 신라 827년(흥덕왕 2)에 도성(道成)이 창건하였는데, 도성은 이곳에 머무르면서 남쪽 고개에 있는 관기(觀機)와 교유하였으며, 평소에는 뒤편 바위 위에서 좌선하였는데, 하루는 바위 사이로 빠져 공중으로 날아가서 행방을 감추었다 한다. 그 뒤 982년(성종 1) 성범(成梵)이 중창하고 만일미타도량(萬日彌陀道場)을 개설하여 50여 년간을 계속하였는데, 여러 가지 상서로운 일이 있었다고 한다. 도성암 극락전 앞에 위치한 삼층석탑은 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218㎝, 기단의 폭 184㎝이며, 하대지석과 중석이 일석이며, 탱석이 1개 있고, 하대갑석은 2개로 구성, 몰딩이 2개 있으며 상대중석이 4개로 구성되었고 탱주가 있다. 원래 3층이상은 옥신, 옥개, 두부가 없었는데, 2008년경 사찰에서 새로운 부재을 사용하여 복원하였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도성길 180

순창향교
전북특별자치도 지정 문화유산 제68호인 순창향교는 조선 초기 향교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성종대(1469~1494)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공양왕 때 현령 최자비가 곡천동에 창건한 것을 시작으로 1489년 군수 김수광이 몽암 이숙감에게 지시해 지금의 옥천동으로 이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을 비롯해 동무·서무, 명륜당, 동재·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으며 대성전은 정면 3칸·측면 3칸, 명륜당은 정면 7칸·측면 2칸 규모로 대성전에는 중국의 5성 10철, 송조 6현과 우리나라 18현이 배향되어 있고 매월 1일과 15일에는 삭망 분향례, 봄·가을에는 석전제가 거행된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교성1길 13

묘골마을
달성군 묘골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순천 박 씨 집성촌이다. 박팽년은, 세조 2년인 1456년 사육신들과 모의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멸문의 화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박팽년이 혈통을 보전하게 된 이유는 당시, 박팽년의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 이 씨 부인이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뱃속에 든 아이까지도 아들일 경우 죽이라고 명하였고, 이 씨 부인은 친정인 묘골에 내려와 살다가 아이를 낳으니 아들이었다. 혈손을 보전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데리고 있던 노비가 딸을 낳자 서로 바꾸어 그 이름을 박 씨 성을 가진 노비라는 뜻으로 ‘박비’라고 짓고. 아들을 노비로 둔갑시켜 혈통을 보전한 것이다. 박비가 장성한 후인 조선 성종 때, 아버지와 동서지간이던 이극균이 경상 감사로 내려와 자수를 권유하자 임금을 찾아가 박팽년의 자손임을 이실직고하였다. 성종은 크게 기뻐하면서 특사령을 내리는 동시에 이름도 박일산으로 고쳐 주었다. 이리하여 은둔의 세월은 막을 내리고 묘골이 충절의 본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도 마을 한옥들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잘 관리되고 있으며, 마을에는 묘골 박 씨들의 전통을 자랑하는 육신사와 달성 태고정, 도곡재, 달성 삼가헌 등의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39-4
순화리 삼층석탑
순화리삼층석탑은 순창여자중학교 교정에 위치한 3층 석탑으로 고려 시대에 건립된 탑이다. 탑은 불골(佛骨)을 모시는 건축물이므로, 신앙적인 의미에서 법당에 안치한 불상과 같은 격이다. 그러므로 절의 법당 앞에 위치하는 것이 정형인데, 현재의 순화리삼층석탑의 존재 형태로 보아서 이곳에 고려 시대에 상당한 규모의 절이 있었고, 그 절에 소속되었던 탑으로 판명된다. 사찰의 이름은 옥천사(玉泉寺)로 전한다. 탑의 전체적인 형태와 기둥 등은 삼국시대에 순창 지역을 지배하던 백제의 양식이지만, 상층부 등에서는 신라 말기의 양식이 나타난다. 이러한 점 등을 종합하면 이 탑은 고려 초기에 지역적 특색이 가미되어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겉으로 보기엔 아담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부가 현재 땅속에 묻혀있기 때문에 그 전모는 상당히 크다. 이 탑이 있던 사찰 역시 꽤 큰 규모였을 것이다. 1973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주변에는 순창향교, 순창객사, 순창시장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295-11

어은정
어은정은 섬진강과 오수천이 만나는 곳에서 섬진강자전거길가에 위치한 정자이다. ‘어은’은 섬진강에서 낚시를 하며 유유자적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정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인 어은 양사형(1547∼1599)이 1567년(명종 22)에 성인이 되어 이곳으로 분가하면서 지은 누각으로 원래 이름은 ‘영하정’이었다. 그 후 양사형은 1588년(선조 21)에 문과에 급제한 후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양사형이 세상을 떠난 후 이 정자는 어은정이라고 이름이 바뀌고 여러 차례 중건되었는데, 지금의 정자는 1919년에 중건된 것이다. 지금의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현판은 양사형의 9세손 양재절이 썼다. 섬진강 언덕에 자리 잡은 누각 주위에는 백일홍이 수십 그루 심어져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해 준다. 1990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주변에는 구송정체육공원, 동계시장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길 107-32

달성 하목정
달성 하목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이 1604년(선조 37)에 세운 것이다. ‘하목정’이라는 정호(亭號)는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머문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이종문의 장남인 이지영에게 직접 써 준 것이다. 이곳은 조선 중기에 건립된 평면형태가 독특한 정자형 별당 건축으로 공간구성과 세부기법 및 의장 등에는 많은 특색이 나타나고 있어 역사적, 건축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과 정면 1칸, 측면 4칸의 방들이 서로 붙어서 전체적으로 독특한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목정길 56-10

현풍향교
현풍향교는 고려시대 이래로 조선 시대까지 지역 유생들이 머물며 수학한 지방의 관학 교육기관이자, 유교적 사상과 신념, 습속을 지역 내에 전하기 위한 유교문화의 거점이다.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명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조선 초에 건립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교사상 교육 외에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는 제향적 기능, 향교를 출입하는 현풍의 재지 사족들의 향론을 형성하는 향촌 자치 기구로 활용되었다. 현풍향교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다가, 현풍 현감 이영도가 옛 교동에 중건하였다. 이후, 1758년(영조 34) 현감 김광태가 임진왜란 이전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규모를 확대하였다. 이후 1857년(철종 8), 1872년(고종 9)에 중수되고, 1882년(고종 19)에는 여제당을 중수하는 등 수차례의 중수, 중건 과정을 거쳤다. 현풍향교는 대지를 3단으로 조성하여 대성전과 명륜당이 축을 이루면서 좌우에 동무, 서무, 동재, 서재를 각각 배치한 전학 후묘의 형태이다. 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인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지붕은 향교 대성전의 일반적인 형태이고, 그 구조는 측면이 ‘ㅅ’자 형태인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단에는 근처 사찰에서 사용된 석재들을 기단석과 초석으로 사용하였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 중앙에 대청으로 좌우에 협실을 둔 중당 협실형 건물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각 4칸의 동무와 서무, 각 4칸의 동재와 서재, 내삼문 등이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현풍동로20길 27-8

원호루
원호루는 1897년(고종 34) 현풍 현령홍필주가 관직에 있을 때 인근 현령과 지방유생들이 정사를 논의하고 풍류와 여흥을 즐기기 위하여 지은 것이라 전해진다. 원래는 현재의 현풍읍사무소 후원 동산에 있었으나 1989년 면사무소를 증축하며 해체되었다가, 초대 민선 달성 군수 양시영에 의해 1996∼1998년 현 위치로 옮겨와 복원되었다. 처음에는 2층의 아담한 누각이었으나, 1957년 중건하면서 높은 댓돌 위에 단층으로 바뀌었다. 복원된 현 누각은 자연산 주초석을 자재로 하여 기둥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이익공 양식의 겹처마 팔작 기와지붕이다. 작은 산의 정상 부근에 위치하여 원호루 누각에 오르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주변 숲의 초록으로 가득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원호루 인근으로 석빙고와 상리체육공원, 사직단 등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이용하여 반나절의 짧은 시간 안에 연계해서 둘러볼 수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현풍동로 92

영광정
영광정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세운 누정(누각과 정자)이다. 영광정은 쌍치면 시산리에서 중안마을로 가는 길 옆 기룡암 위 바로 냇가에 위치하고 있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자 당시 이 지방에 살던 금옹 김원중은 뜻있는 7명의 동지들과 함께 고의적으로 광인 행세를 하면서 은밀하게 이곳을 근거지로 잦은 모임을 갖고 의병을 모집하고 물자를 준비하여 항일 투쟁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1921년 6월 27일 항일운동의 집회 장소였던 이곳에 8인 애국동지의 뜻을 높이 추앙하고자 정자를 세우고 건물의 처마 끝에 태극팔괘를 도각하여 망국의 설움을 게시하고, 건물의 이름을 ‘영광정’이라 하였다 한다. 1950년 6·25 때 쌍치면 관내의 모든 건물은 완전히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는데 유일하게 이 영광정만은 소실되지 않았다. 다만, 6·25를 겪으면서 건물에 있던 27개의 현판들만이 소실되었다. 이후 1975년에 순창군에서 보수한 바 있으며 1991년에는 도로(담양-정읍 간)의 확장공사로 건물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해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쌍치면 시산리 367-1
남평문씨본리세거지
남평문씨본리세거지는 원래 절이 있었던 명당 터를 남평문씨 일족이 세거를 위하여 정전법에 따라 구획을 정리하여 터전과 도로를 반듯하게 열었고 집을 지었던 곳이다. 지금은 세거지에 아홉 채의 집과 정자 두 채가 있으며 주거지의 도로에 면한 부분에는 나지막한 담을 쌓았다. 수봉정사는 이곳의 대표적인 건물로 새거터 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도 하고, 일족의 모임도 열던 큰 건물이며 정원의 꾸밈이 아름답다. 광거당은 자제들의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학 장소이며, 인수문고는 1만여 권의 도서와 문중의 보물을 보존하던 건물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3길 16
장군목유원지
섬진강 최상류에 해당하는 장군목 유원지는 빼어난 경관 그대로의 자연 유원지로, 동계면 소재지로부터 7㎞ 떨어진 어치리 내룡 마을에 위치한다.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면 마치 밀가루로 반죽하다 굳은 듯한 형태의 바위들이 나오는데, 모양도 특이하고 주변 경관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유원지가 되었다. 특히 다슬기가 진갈색으로 작으면서 통통한 모양인데 국물이 굉장히 새파랗게 우러나온다. 동계면 어치리 내룡 마을 장군목으로부터 풍산면 대가리 향가 마을까지 순창군 일대를 흐르는 섬진강은 적성강이라고도 불린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동계면 장군목길 686-1

수봉정사
수봉정사는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 중앙 전면에 위치하여 마을로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이다. 대문채와 본채인 수봉정사가 동일축 선상(同一軸線上)에 배치되어 있다. 수봉정사는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일자형 건물이다. 평면은 중앙에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2칸, 오른쪽에 1칸의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수봉정사는 현재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를 찾는 손님을 맞을 때나 문중과 공사 간의 모임을 갖는 건물로 활용되고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3길 16

인흥마을
남평 문 씨의 중시조로 알려진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이 대구에 입향한 것은 대체로 500년 전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 인흥에 자리를 잡은 것은 그의 18 세손인 인산재(仁山齋) 문경호(文敬鎬, 1812~1874) 때이다. 그는 문 씨만의 마을을 만들 것을 계획하고 원래 고려의 대찰(大刹)인 인흥사가 있었던 자리에 터를 잡아 오늘의 인흥마을을 새로 열었다고 한다. 세거지에 최초로 건립한 건물은 1820년을 전후해서 지은 재실 용호재(龍湖齋)로 현재 광거당이 있는 곳이다. 저택이 들어선 것은 1800년대 후반으로 처음에는 초가로 시작했으나 그 후 100년에 걸쳐 지금의 세거지가 형성되었다. 현재 70여 채의 기와집이 한울 안에 정연히 들어서 있는 이 마을은 건축연대가 200년 미만이지만 전통적인 영남 지방 양반 가옥의 틀을 지키고 있으며 세거지 구성과 주위 경관의 조화는 어느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마을이라 할 수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3길 16

인흥서원
인흥서원은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소재하고 있다. 추계 추씨의 중시조이며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인 노당 추적을 봉안한 서원으로 노당이 편저한 명심보감 판본을 소장하고 있다. 유주목이 지은 인흥서원기에 따르면, 1853년에 후손들이 500여 년 간 실전되었던 추계 추씨 노당 추적의 묘를 찾아 수습한 뒤, 1866년 묘 아래 사우를 지어 추계 추씨의 시조이자 추적의 아버지 추황의 위패를 주향으로 모시고, 추적과 그의 손자 추유, 추유의 5세손 추수경을 합향하였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1938년에 복원하여 매년 음력 3월 중정일과 10월 3일에 춘추 향사를 봉행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원의 건물은 강당, 동재와 서재, 사당인 문현사, 신도비각, 장판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이다. 문현사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이며 동서재는 각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 반의 규모이다. 장판각에는 명심보감, 조군영적지, 추계가승, 추계가승속편 추계가승집록,등의 책판이 소장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2길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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