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5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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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
광한루는 원래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廣通樓)’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이후 세종 26년(1444)에 남원부사 민공이 중수하고 당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순찰사였던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 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떠 ‘광한루’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 광한은 ‘달나라 궁전’을 뜻한다. 춘향과 이몽룡도 바로 이곳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맺게 되었다. 광한루의 앞뒤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호남제일루라는 말 그대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에 들어서면 광한 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광한루 누각에 걸린 여러 편액 중 광한루란 편액은 신익성이 호남제일루와 계관의 편액은 1855년 남원부사 이상억이 누각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 걸었다. 이 중 계관의 편액은 동학란 때 없어진 것을 1930년대 광한루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때 남원유지 강대형이 다시 써 건 것이다. 또한 현재 광한루에 걸린 광한루란 편액은 전민의원 조정훈이 쓴 글씨라고 하는데 금암봉의 금수정과 용성관의 편액 글씨도 썼다고 전해온다. 1879년 광한루가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루의 북쪽에 다락(월랑)을 세워 층층대를 만들어 놓았다. 북쪽의 층층대는 1877년(고종 14년)에 부임한 남원부사 이용준이 광한루가 퇴락하여 본관 전체가 북쪽으로 기울어져 무너질 우려가 있어 수지면 고평리에 사는 추(秋) 대목의 묘안을 받아들여 북쪽에 누를 오르내리는 계단을 만들되 본관과 같이 아름드리 기둥을 세워 튼튼하게 고정시켜 본관의 기울음을 바로 잡고 외관으로도 더 화려하게 하였다. 이는 우연하게도 누각 건축사상 큰 의의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누각에 월랑을 가설하게 된 시초이며 이전까지는 누상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만 설치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요천로 1447 (천거동)

남원 교룡산성
남원 교룡산성은 해발 518m의 교룡산 지형을 활용해 돌로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약 3,120m이다. 현재 동문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옹성, 그리고 일부 성벽이 남아 있으며 특히 동문터와 수문은 성곽 연구에 중요한 구조를 보여준다. 성 안에는 우물 99개와 계곡이 있어 유사시 주민들의 대피나 전투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이곳에 군량을 보관하는 창고가 설치되어 전략적 중요성을 가졌다. 축성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입지와 형식으로 미루어 백제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성순환길 714 (산곡동)

금강암(부산)
범어사(梵魚寺) 산내암자인 금강암(金剛庵)은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기록에 의하면 1803년 범어사 대성암과 함께 취규 대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1899년 승려 오성월이 범어사 금강암에 처음으로 선원을 개설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 금강암이 선풍을 일으키는 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800년대에 제작되어 현재 남아 있는 중수기문들 중에서 금강암의 사명이 발견되어 범어사 금강암의 중창 시기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1980년대 벽파가 범어사 금강암에 주지로 주석하면서부터 범어사의 산내 작은 암자에 불과하던 금강암이 점차 명성을 떨치며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하였으며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약 7년간 벽파의 상좌인 정여가 중창 불사를 주도 하면서 범어사 금강암은 지금의 가람을 갖추게 되었다. 금강암은 범어사 왼쪽의 금정산 북문 방향으로 가다 보면, 범어사 대성암이 나오고 대성암을 지나 바위로 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범어사 팔경 중 한 곳인 금강만풍으로 잘 알려진 금강암이 나온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4
남원읍성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 때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원지역에 소경(지방도시)을 설치하였고, 691년에 쌓은 네모난 형태의 평지 읍성이다. 1597년에는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성을 크게 다시 쌓고 수리하여 담을 높였다. 그해 8월 조·명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왜군에게 크게 패했고, 이때 싸우다 죽은 군인과 주민들의 무덤이 만인의총이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많이 허물어져 약간의 성터 모습만 남아있다. 돌축대의 길이는 2.4㎞가 넘고, 높이 약 4m에 이르며 성 안에는 70여 개의 우물이 있었다. 성 내에는 남북과 동서로 직선대로가 교차하고, 그 사이에도 너비가 좁은 직선도로가 교차하여 바둑판 모양의 도로구성을 볼 수 있다. 근대에 들어와 도시가 들어서며 성곽은 대부분 헐려나갔으나, 시내 중심부의 도로는 지금도 바둑판 모양으로 되어 있어, 과거 성내의 가로 구성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 읍성의 가장 전형적인 구조를 하고 있으며, 규모가 크고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네모 반듯한 구성과 성내의 가로가 직선으로 구성된 점이 흥미롭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동충동

남원항공우주천문대
남원항공우주천문대는 천문 과학 및 항공 우주 분야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시립 과학관으로, 춘향테마파크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태양과 천체관측 4D 영상관람, 가상항공체험, 천문강연 등의 프로그램을 한다. 천체 관측실에 설치된 다양한 천체 망원경과 디지털 천체 영상을 활용하여 달과 행성은 물론 성단, 은하 등 다채로운 천체를 관측할 수 있으며, 항공 체험실과 야외 광장에 전시된 전투기를 통하여 항공 분야를 보다 가깝게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여름방학 캠프를 비롯하여 하반기 현장체험 학습과 다채로운 과학체험교실을 운영한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양림길 48-63 (노암동)

보광사(부산)
보광사는 수정산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사찰로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위치해 있다. 현대에 지어진 사찰로서 깨끗한 경내시설을 갖추고 있고 도시에서 산을 접할 수 있는 곳에 자리해 방문객들의 편의를 높였다. 보광사 대웅전에는 18세기 전후에 제작된 불상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색난 계열의 조각승에 의해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본존은 아미타여래이며 양측의 좌우협시보살은 관음과 대세지보살로서 모두 3구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광역시 동구 범상로1번길 35

문화공감 수정(부산 수정동 일본식 가옥)
문화공감 수정(국가유산명:부산 수정동 일본식 가옥)은 1943년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로 넓은 대지 안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는 대문 3칸이 있고 몸채 1동이 남쪽을 향해 있다. 몸채 현관의 오른쪽은 벽돌(조적조)로 지어져 있으며 이를 제외한 대부분은 일본식 목조 주택으로 지어졌다. 현재 1층의 일부는 온돌방으로 개조되어 있으나 2층에는 전형적인 일본 식 주택에서 볼 수 있는 툇마루(연가와)와 장마루를 설치한 복도, 그리고 다다미방이 원형대로 남아있다. 또한 다다미가 깔려 있는 실내에는 도코노마, 쓰케쇼인, 명장지, 다다미, 일본식 창호 문양 등의 세부적인 장식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고급 일본식 건물의 외장 요소를 잘 갖추고 있으며 특히 2층의 일본 식 전통 주택의 형식을 철저히 따른 공간의 구성과 치장이 특징적이다. 일제 강점기 근대 주택 건축사와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곳으로 평가받는 공간이다.
부산광역시 동구 홍곡로 75 (수정동)

백장암 삼층석탑
백장암 삼층석탑은 지리산 천왕봉 서편, 실상사 북쪽 백장암 아래 경작지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높이 5m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통일신라 후기의 자유로운 형식과 화려한 조각이 돋보인다. 받침부는 낮고 1층 탑신은 상대적으로 높으며, 상층으로 올라가도 너비 변화가 크지 않다. 탑의 각 층에는 보살, 선녀, 천왕 등 다양한 인물상이 생동감 있게 새겨져 있다. 전통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조형미와 예술성이 뛰어난 석탑으로 평가받는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백장길 66

소림사(부산)
대한조계종 소림사는 1913년 승려 송영이 창건하였으며, 해방 직후인 1945년 비구니 정금광이 인수하였다. 1948년 순 한국식 불단으로 개조하여 가람을 수호하며 포교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소림사는 부산 대중 불교의 산실이자 부산 지역의 지도적인 재가 불자를 양성한 대표 사찰이다. 산림 법회를 60여년간 지속해 오고 있으며 그밖에 다양한 법회와 기도 등을 행하고 있다. 소림사의 전각은 무량수전과 대웅전이 있으며, 무량수전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상과 좌우에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을 봉안하고 있다. 무량수전 내에는 신중단, 칠성단, 독성단, 산신단 등이 있고, 대웅전은 석가모니 불상과 관세음보살상, 대세지보살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지장보살상, 홍법대사상, 부동명왕상도 함께 봉안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상로65번길 7 (초량동)

동래향교
조선은 1392년(태조 1) 나라에서 교육진흥책을 위해 지방에 향교를 설립함에 따라 동래에도 동래향교가 설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동래성 함락과 함께 불타버렸다. 임진왜란 이후 1605년(선조 38) 동래부사 홍준이 재건한 이후 1704년(숙종 30)에 동래부 동쪽 관노산 아래로 옮겨졌다가 1813년(순조 13)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동래부가 되었을 때 동래향교에는 종 6품의 교수 1명과 학생 70명이 있으며, 향교의 유지와 관리를 위해 학전 7 결도 지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래향교의 건물구조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반화루, 동재, 서재로 구성된 강학공간과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 서무와 내·외삼문, 사주문으로 구성된 제향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

충렬탑(부산)
충렬탑은 부산 충렬사 내에 위치해 있으며, 조국과 민족을 수호했던 선열들의 기개를 보여주는 임진왜란 때 굳센 항전을 표상한 탑이다. 부산 충렬사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순국하신 선열의 영령을 모신 곳으로, 충렬사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충렬탑이 보인다. 충렬탑은 높이 28m, 좌대 6.4m로 6인 군상을 새겨 임진왜란 당시 우리 민족의 단결을 표현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 345

금강사(부산)
금강사는 대승불교의 금강반야 정신을 실천 수행하는 사찰로, 1951년 월명법사가 창건했다. 그 후 일붕 경보대종사께서 이곳에서 안거했으며 역경, 포교, 도제, 국제불교포교, 교육도량, 전법의 초지 가람이었다. 1964년부터 개산 혜성선사가 금강사에서 도량을 승계하고 중흥불사를 계속하여 국제 불교포교의 근본도량으로 세계속에 알려진 사찰이 되었다. 금강사는 금정산 남쪽 기슭 명당에 자리했으며 많은 고승들이 은거 수행하여 온 비산비야의 수행처이기도 하다. 금강사는 주변 환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노송들이 자욱하고 솔밭향기로 가득하며, 대중문화가 함께하고 있는 차밭골 문화가 있어 시민들이 차 한잔을 하면서 쉬어 갈 수 있는 운치 있는 사찰이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211 (온천동)

심원계곡
심원계곡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전남 구례군 산동면의 경계에 있는 계곡이다. 칠선계곡, 문수계곡과 함께 지리산 3대 계곡 가운데 하나로 지리산 반야봉과 노고단 사이에 있다. 반야봉, 날라리봉, 노고단, 종석대 등에서 발원한 물이 한데 모여 계곡의 물줄기를 이루며 50여 개의 담과 소를 이룬다. 특히 주변의 숲은 한국 자생식물의 보고이다. 고로쇠 약수로도 유명하고 하늘을 가리는 우거진 숲과 시원한 계곡물 때문에 한 여름 밤에도 추위를 느낄 만큼 서늘하다. 계곡 등반은 마한의 별궁터가 있는 달궁계곡과 연계하여 오르는 것이 좋다. 달궁에서 계곡 쪽으로 오르다 보면 쟁반소와 비가 오면 수천 마리의 두꺼비가 모여서 울었다는 두꺼비소를 비롯하여 이름 모를 수많은 소와 담들이 계곡을 찾는 이들을 매료시킨다. 쟁기소에서 약 500m를 더 올라가면 반야봉 서북 능선 자락과 만복대 사이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선이 지나는데 그 아래가 달궁계곡이고 위쪽이 심원계곡에 속한다. 달궁에서 계곡을 따라 도로가 뚫리면서 심원마을까지 쉽게 갈 수 있게 되었고 성삼재에서 30분이면 노고단에 오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로 842-8

여원치마애불상
여원치 마애불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여원치 정상 아래 바위에 새겨진 불상으로, 높이 2.5m, 어깨 폭 1.09m이다. 불상 앞에는 건물 흔적으로 보이는 구조물과 기와 조각이 남아 있어 과거 불전을 두고 불상을 모셨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민머리에 넓고 낮은 상투 모양 머리묶음과 광배가 표현되어 있으며, 목에는 삼도, 넓은 어깨는 강한 인상을 준다. 오른팔은 가슴에 대고 있고, 하체는 파손이 심해 형태가 불분명하다. 불상 동쪽면에 새겨진 글을 통해 이 불상이 조선 개국과 관련된 인물인 이성계와 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양가리

제이드가든
‘숲 속에서 만나는 작은 유럽’이라는 테마로 꾸민 이국적인 수목원으로 약 16만 3500㎡ 부지에 자연 지형을 가능한 원형대로 유지한 채로 24개의 테마 정원을 조성했다. 수목원 입구의 이탈리아 토스카나 풍 방문객 센터, 영국풍 화단으로 꾸민 영국식 보더가든, 이탈리아풍 정원 양식과 수로를 갖춘 이탈리안 웨딩 가든 등 곳곳에서 유럽 감성이 느껴진다. 수목원을 돌아보는 산책로는 크게 나무내음길, 숲 속바람길로 나눠진다. 중심부의 나무내음길은 바닥에 우드 칩이 깔려있고 테마 정원 곳곳으로의 접근성이 좋다. 숲 속바람길은 나무가 무성하고 시원해서 여름철에 걷기 좋다. 각 코스는 편도 40~60분 정도 소요되며 중간중간 서로 연결된다. 모든 코스는 매표소에서 시작해 가장 꼭대기의 가드너스 코티지나 스카이가든에서 끝난다. 산책 중 만날 수 있는 카페 허니비 코티지를 비롯해, 스튜디오제이드(Gift shop) 등의 편의시설을 갖췄다. 시기별로 야간 개장을 시행하며 경춘선 굴봉산역과 수목원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남산면 햇골길 80

오리정
춘향고개 하단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는 오리정은 1953년에 세웠다. 정자가 자리한 이곳은 고대소설 『춘향전』의 주인공인 성춘향과 이몽룡이 이별의 정을 나눈 곳이라 한다. 소설에 따르면 이몽룡이 부친을 따라 한양으로 가게 되었을 때 이곳까지 따라온 성춘향은 서로 백년가약을 맺고 행복하게 지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눈물로써 이몽룡을 보냈다고 한다. 비록 소설 속의 이야기지만 그토록 애절한 사랑의 사연을 담은 곳이기에 오리정은 지나는 사람의 발길을 멈추도록 한다. (출처 : 남원 문화관광)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정령치
정령치는 높이 1,172m로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에 걸쳐 있는 지리산국립공원의 고개이다. 고개 꼭대기의 정령치 휴게소는 지리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동으로는 바래봉과 뱀사골 계곡이, 서쪽으로는 천왕봉과 세석평전 반야봉 등과 남원의 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지리산 주능선 일 백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출처 : 남원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정령치로 1523

지리산 천년송
지리산 천연기념물 천년송은 뱀사골 계곡 등산로에서 석실바위 50m 전 지점에서 좌측으로 700m 떨어진 와운마을 북쪽 능선에 위치한다.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6m, 가지 폭 12m에 이르는 소나무로, 수령은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우산을 펼친 듯한 아름다운 수형을 지닌 반송이며 임진왜란 이전부터 자생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한아시송과 할매송 두 그루가 20m 간격으로 자라며 이 중 더 크고 오래된 할매송을 주민들은 ‘천년송’이라 부른다. 마을에서는 매년 설에 천년송 앞에서 당산제를 지내며 안녕과 풍년을 기원해 왔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와운길 255

남원 진기리 느티나무
진기 마을의 정자나무 구실을 하는 남원 보절면의 느티나무는 나이가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며, 크기는 높이 23m, 가슴높이의 둘레가 8.25m이다. 단양 우씨가 처음 이 마을에 들어올 때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조선 세조(재위 1455∼1468) 때 힘이 장사인 우공이라는 무관이 뒷산에서 나무를 뽑아다가 마을 앞에 심고 마을을 떠나면서 나무를 잘 보호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세조 때 함경도에서 일어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워 적개공신 3등의 녹훈을 받았으며 그 후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냈다. 후손들은 사당을 짓고 한식날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가까운 곳에 우씨 집안의 열녀문이 있다. 이 느티나무는 단양 우씨가 마을을 이룬 유래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고,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보절면 보절신기길 14-3
간재선생유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전우(1841∼1922)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선생은 임헌회 문하에서 20년간 학문을 배웠으며 고종 19년(1882) 벼슬에 올랐으나 곧 사임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910년 국권이 일제에 강탈되자 선생은 통분해하며 스스로 귀향하여 도학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의병을 일으키지 않고 도학만을 이야기한다고 하여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1922년까지 이곳에서 도학을 가르치며 항일정신을 고취하여 민족정기를 진작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전우 선생의 성리학적 연구 업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유학사상을 그대로 실현시키려 한 점에서 조선 최후의 정통 유학자로서 추앙받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계화면 양지길 12

부안 격포리 후박나무군락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의 여러 섬들과 해안에서 자라며 울릉도와 외연도에도 분포한다. 주로 해안을 따라서 자라며 암수 한 그루인 이 나무의 꽃은 5월에서 6월에 새 잎이 나면서 함께 피고 이듬해 7월에 검게 익는 열매가 달린다. 껍질과 열매는 약재로 쓰인다. 나무가 웅장하고 아름다워서 정원수, 공원수 등에 이용되고 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용으로도 심는다. 부안 격포리의 후박나무 군락은 해안 절벽에 자라고 있는데 약 60년 전의 기록을 보면 10그루의 후박나무가 있었고 그중 나무의 높이가 4m에 이르는 큰 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는 132그루의 후박나무가 자라고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있어 그 안쪽에 있는 밭을 보호하는 방풍림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근처에 수성당(水城堂)이라는 서낭당이 있다. 부안 격포리의 후박나무 군락은 육지에서 후박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지역이 되므로 식물분포학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고홍건신도비
거북과 용머리를 새긴 고홍건신도비는 1668년에 세운 것이다. 신도비란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이나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우는 비다. 용두귀부의 절묘한 솜씨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당대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흥건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공신록에 이름이 오른 고희의 아들로, 1580년에 출생하였다. 1603년 무과에 급제한 뒤 1613년 한양의 도성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으며, 조상의 큰 공으로 무관직 6품에 승진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인조를 호종하여 공주에 간 공로로 종2품 가선대부가 되어 영원군에 책봉되었다. 이어 평안도 희천군수와 여산영장을 거쳐 5위의 장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위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 서쪽 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충청도병마절도사와 오위도총부부총관, 서흥부사 등을 거쳐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제수되었다. 1651년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 석불산길 138

보수동 책방골목
켜켜이 쌓인 빛바랜 책들 사이에서 오래된 시간을 걷는 부산의 골목이다. 보수동책방골목은 6·25전쟁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피난 온 부부가 박스를 깔고 헌책과 잡지를 팔던 노점에서 시작되었다. 전쟁 중 보수동 일대 야산에서 천막 수업을 이어가던 수많은 학생들이 이 골목을 통학로로 이용하면서 헌책방은 성황을 이루었고, 하나둘 피란민들이 가세하며 지금의 책방골목이 형성되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골목으로, 고서·소설·참고서·만화·아동서적·외국 원서까지 가게마다 전문 분야를 달리해 운영하고 있다. 책방골목 문화관과 어린이도서관도 함께 자리하며, 인근에는 국제시장·부평깡통시장이 있어 부산 원도심 여행 코스로 함께 즐기기 좋다. 매년 가을 보수동책방골목 문화축제도 열린다.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 67-1

곰소염전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위치한 곰소염전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천일염 생산지로 조선시대에는 줄포만에서 곰소만까지 화염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곰소염전은 일제 말기에 만들어졌으나 해방 이후부터 천일염을 생산하였다. 소금은 보통 4월에서 10월까지 생산되는데 5, 6월에 소금 생산량이 가장 많고 맛도 좋기 때문에 이 시기가 염부들에게는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다. 곰소염전 일대를 포함하여 채석강에서 고창까지 이어진 연안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갯벌이 발달해 있으며 곰소만의 입지 조건상 바닷물에 미네랄이 많기 때문에 소금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진서면 염전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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