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4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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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외사리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거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양 기둥에 별다른 조각이 없다. 기둥 사이에는 당간을 꽂았던 둥근 받침돌이 2단으로 마련되어 있는데, 그 윗면 가운데에 높이 솟아오른 부분을 두어 여기에 깃대를 끼웠던 것으로 보인다. 기둥 안쪽면에는 아래위로 홈을 두어 당간을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조각솜씨가 세련되거나 정교하지 못하나 간결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괴산 봉학사지 오층석탑
봉학사지 5층석탑은 고려시기에 건립된 석탑이다. 이 석탑은 기단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채, 평평한 돌 위로 5층의 탑신이 올려져 있다. 4매의 지대석 위에 세워진 석탑은 초층 탑신만이 2매의 돌로 되어 있고, 각층의 옥개석과 탑신은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 1층 몸돌은 큰 편이고, 2층 몸돌에서 급격히 낮아지다가 5층까지는 비슷한 크기를 유지한다. 각층 지붕돌은 두꺼운 편이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상륜부에는 복발과 보륜이 남아있고, 옥개석에는 5단 받침과 2단의 탑신괴임을 조각하였다. 이 탑은 현재 사담리 보광사 뒤편 옛 절터에 있는데, 1966년 이 석탑의 2층 옥개석 사리공에서 발견된 청동합에 들어있던 청동불상에서 ‘鳳鶴山 鳳鶴寺’라 쓰인 시주문이 발견되었다.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괴산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은 불신만 남아 있는 것을 불두를 찾고, 왼쪽 팔목의 보수를 제외하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신체에 비해서 큰 얼굴은 앞으로 숙여져 있으며 옷은 왼쪽 어깨만을 감싸고 있다. 손은 오른손 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끝이 아래를 가리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배꼽 앞에 놓은 모습이다.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얹어 놓은 앉은 자세는 그 예가 드문 편이다. 평판적이고 굴곡이 없는 네모진 상체, 목에 있는 3개의 주름, 둔감한 옷주름선 등에서 도식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조선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보광산 폐사지에 있던 것을 아래쪽에 새로 지은 보광사 대웅전에 봉안하여 1935년부터 주존불로 모시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모래재로시동2길 231
괴산 장담 충신각
이 정문은 장담의 정려로 영조 5년(1729) 청안면 청룡리에 세운 것을 조천리로 이건한 것이다. 장담은 호는 수풍정, 본관은 인동으로 통례 장인계의 후손이다. 영조 4년 청주에서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벼슬이 없는 처사로서 의병을 일으켜 난을 진압하다 순절하니 그의 동생 장환이 나머지 군사로 적을 토벌하여 복수하였다. 후에 이 사실이 주문되어 충신으로 정려 되고 분무원종훈 1등 공에 록선 되었으며, 정조조에 표충을 명하고 좌승지에 증직 되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며, 현판을 달고 보호책을 둘렀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청안읍내로 151
괴산 이창훈 고가
이 가옥은 1908년 이달승에 의하여 건축되었으나 정확한 건축연도의 확인은 어렵다. 이전에 가옥이 있었던 것을 1924년 중수한 것으로 추정되며, 안채, 사랑채, 사당, 광채, 외양간, 대문 등으로 구성되어 전통적인 고가의 형식을 띠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의 ㅡ자형으로 남향한 안채를 중심으로 안채 서쪽에 정면 9칸 측면 1칸의 행랑·광·곡간채를 담장에 붙여 동향으로 배치하였다. 안채 앞으로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바깥채를 남향으로 두고 여기에 문으로 잇대어 정면 4칸, 측면 2칸의 사랑·광채를 동쪽에 남북으로 두어 서향 하게 하였다. 건물의 전체적인 구조는 ㅁ자 형태를 띠고 있는데 대문을 들어서서 마주 보는 바깥채 양옆의 사랑채, 행랑채가 서로 문으로 연결되고 사랑채 옆의 담장사이에도 일각대문을 두어 안채와의 구분을 도모하고 있다. 안채 뒤쪽에는 우물, 장독대를 두고 축대를 쌓아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사당을 배치하였다, 안채와 담장사이에도 일각대문을 두어 사당이 있는 공간과 구분하고 있다. 현재 안채 동쪽의 문간채와 이엉으로 이었던 대문이 훼철되었으나 비교적 건축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고가는 마을의 길지에 배치하여 자연경관과 망화정, 연지 등이 가옥과 조화를 이루고 산수가 수려하며 중부지방 양반가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전통가옥의 형식과 개화기의 형식 등이 혼재하여 나타나는 한옥으로 안채, 광채, 사랑채·행랑채, 사당 등이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학술적으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현재 가옥은 실제 거주자가 있어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곳이지만 관람에 유의하여야 한다.
충청북도 괴산군 감물면 충민로오간길 64
괴산 율지리 미선나무 자생지
율지리 미선나무 자생지는 야산 중턱의 구릉에 형성되었으며, 1967년에 발견되었다. 미선나무는 1919년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처음 발견되어 1924년 일본인 石戶谷勉이 Arnold식물원에 소개함으로써 학계에 처음 알려져 Abeliophyilum distichum이라는 학명(學名)을 얻고 천연기념물 14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원산지인 진천에서 멸종되었는데, 1955년 괴산군 장연면 송덕리, 1965년 장연면 추점리, 1967년 칠성면 율지리에서 자생지가 발견되어 1970년까지 3곳의 자생지에서 천연기념물로 보호되어 왔으며, 199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영동군 영동읍 매천리의 자생지와 1992년 부안군에서 보고된 자생지 1곳 등 모두 5곳의 자생지가 알려져 있다. 흰색 또는 도홍색으로 피는 꽃은 아름답고 화려한 장미나 다알리아 등과는 또 다른 초연하고 온화한 한국인과 같은 은근한 매력을 지닌 소박하고 청초한 달빛과 같은 꽃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율지리
보안사(괴산)
괴산군 청안면에 있는 사찰로 누가 언제 창건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에는 수암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고종 때 편찬된 에는 폐사로 기록되어 있다.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1957년에 절 아래 효재마을 사람들이 부서진 탑재들을 모아 탑을 세우고 불상을 발굴하여 보호각을 세운 뒤 절 이름을 보안사라고 지었다. 현재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고, 대웅전 내에 모셔진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삼층석탑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 외 석불입상, 탱화 5점의 유물이 전해지고 있다. 가까운 곳에 청안사마소와 청안향교 등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 곳들이 많이 남아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효근1길 3-8
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
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은 본래 노천의 석단(石壇)에 모시어 불공을 드리고 있었던 것을 현재 법당을 지어 그 안에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다. 이 불상은 금박(金箔)을 칠하였으나 원형은 잘 남아있다. 머리에는 낮은 육계(肉?)가 있고 미간의 백호(白毫)와 이목구비가 정연하다. 상호(相好)는 살이 쪘으나 목에 돌린 삼도가 양 귀와 잘 어울리어 준엄한 인상을 주고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했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놓고, 왼손은 손바닥을 펴서 복부 앞으로 약간 올렸는데 손바닥에 어떤 물체가 놓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약병을 올린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으로 보인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등뒤로 넘겨졌고, 왼쪽 가슴에서 내려진 옷의 주름은 무릎을 덮었는데 양쪽 발바닥이 그 위로 노출되어 있다. 각부의 수법이 둔중하며 금박이 두터워 더욱 둔한 감을 준다. 결가부좌한 좌고는 117cm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효근1길 23

괴산 적석리 소나무
적석리 입석마을은 400년 전 조선 숙종 때 연일 정 씨의 선조가 정착하면서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고갯마루에 있는 입석암이라는 허물어진 절터와 입석마을 뒷산에 고려당골과 국사당이 있어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임을 짐작하게 한다. 입석고개는 영남에서 이화령(이유릿재)이나 새재를 넘어 괴산,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어 옛 선비들이 쉬어 넘던 애환의 역사가 있다. 고갯마루에 서 있는 소나무는 키 21.2m, 가슴높이 둘레 3.48m의 크기로 속리산의 정2품 송과 비슷한 모습이나, 줄기가 끝으로 가면서 5° 정도 기울어 비스듬하게 자랐다. 줄기의 윗부분은 적송 특유의 붉은빛을 띠며, 아랫부분은 나무껍질이 두껍다. 가지는 사방으로 균형 있게 뻗었다. 나이는 약 500년으로 추정되고 이화령터널 입구가 보이는 고갯마루에서 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자랐다고 한다. 원래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던 국사당의 소나무와 같이 있었으나 국사당 소나무는 없어지고 입석고개 소나무만 생존하여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해방 전까지는 성황당이 있어 당제를 지냈으나 한국전쟁 이후 당집도, 제사도 없어졌다고 한다. 이 소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보살핌을 받아온 나무로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적석2길 42

괴산 송병일 고택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고택으로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전통가옥이다.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이 잘 남아있는 곳이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사당채 등이 남아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ㄷ’자형으로 동서로 나란히 서있고 중간에 낮은 담장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안채 앞에는 ‘一’ 자 형태로 곳간채가 길게 세워져 있다. 3칸 크기의 대문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만들어 바닥을 다진 후 건물을 세워 튼튼함과 안정감을 주고 있다. 안채는 작은 문을 거쳐 들어갈 수 있도록 담이 둘러져 있고 옆에서 보면 맞배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4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뒤쪽에 위치해 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또 광채는 일자형으로 곡식은 물론 각종 농기구를 보관하던 장소로 이용이 되었고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가 주위로 울창한 숲이 이루어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마당은 깨끗하게 포장을 하여 방문자들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 또 마당 한편에 뜰마루를 설치하여 더위를 식히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잘 가꾼 잔디밭과 화초는 고가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답다. 이 고택은 우암 송시열의 후손들이 살던 집이다. 송시열의 8대손인 송병일이 충청감사로 재직 시에 아버지를 위해 별당을 지어준 것이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까지 사용되었다. 우암 송시열의 종손들이 6대에 걸쳐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우암 송시열의 묘가 고택 바로 위에 있기도 하다. 현재는 충북 양로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화양계곡과 선유계곡, 공림사 등이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청천4길 17

자라섬
자라섬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일원에 있는 섬이다. 1943년 청평댐[淸平]이 건설되면서 북한강[北漢江]에 생긴 자라섬은 남이섬과 직선거리로 800m 정도에 자리 잡고 있다. ‘자라처럼 생긴 언덕’이 바라보고 있는 섬이라 하여 ‘자라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동도, 서도, 중도, 남도 등 4개 섬으로 이뤄진 자라섬에는 레저 및 생태공원 시설도 들어서고 있다. 서도 일원에는 오토캠핑장이 중도에는 지름 100m가 넘는 잔디광장을 갖춘 생태문화공원이 있으며, 자라섬 캠핑장 서단에는 자연생태테마파크 ‘이화원[二和園]’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자라섬로 60

순창장류체험관
전통 고추장 민속 마을 앞에 위치한 순창장류체험관은 순창 장류 전통의 맛과 멋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장류 산업의 세계화를 널리 연구, 보급, 홍보하고자 설립된 체험관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고추장인 순창 전통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 가져갈 수 있고 순창 전통 고추장을 이용한 맛있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 시식해 불 수 있는 열린 체험의 공간을 제공한다. 요리체험장, 야외학습장 등 전통 장류 체험에 필요한 다양한 시설들을 마련하였고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장류 문화를 체험하고 관광시킬 수 있는 체험관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민속마을길 55

신지명사십리해수욕장
신지명사십리(薪智鳴沙十里)해수욕장은 모래 우는 소리가 십 리 밖까지 들린다고 하여 ‘울모래’ 또는 ‘명사십리’로 불리기도 하였다. 길이 3,800m, 폭 150m에 달하는 광활한 은빛 백사장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넓고 울창한 송림, 주차장, 샤워장, 탈의실, 탐방로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연인 및 가족 단위 피서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여름볕으로 잘 달궈진 뜨겁고 부드러운 모래로 하는 모래찜질은 어르신들의 퇴행성 관절염과 신경통에 좋고, 미네랄이 풍부한 바닷물은 피부병과 피부 노화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주변의 갯바위는 돔과 농어, 광어 등 어족자원이 풍부해 낚시터로 인기가 높다. 완도읍과 신지면을 잇는 신지대교가 2005년 12월 14일 개통되었으며, 밤에 보는 신지대교의 야경 또한 아름답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신지면
선운사(고창)
선운사는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산(兜率山)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도솔산은 선운산(禪雲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유산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으며, 이후 그 자리에 선운사를 창건하였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하여 절 이름을 ‘선운(禪雲)’이라 지었다고 한다. 현재 보물, 천연기념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등 다양한 성보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대웅전 뒤에는 수령 약 500년, 높이가 평균 6m는 되는 동백나무들의 군락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꽃이 만개하는 봄이면 사찰 뒤로 꽃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장관을 이룬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전주 경기전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하는 전각인 전주 경기전은 1991년 1월 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410년(태종 11)에 임금은 전주, 경주, 평양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하는 전각을 짓고 어용전(御容殿)이라 하였다. 조선 왕조의 발상지라 여기는 전주에 건립한 태조 진전으로 경기전이라는 명칭은 세종 때 붙인 이름이다.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14년(광해군 6)에 중건하였다. 보호 면적은 49,590㎡이다. 경기전의 경역은 정전(正殿)과 조경묘(肇慶廟)로 나뉜다. 정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다. 지대석(地臺石)과 면석(面石) 및 갑석(甲石)을 갖춘 기단 위에 세운 다포계(多包系) 형식의 맞배집으로, 그 전면 가운데에는 1칸 규모의 기단을 돌출시켜 쌓고 그 위에 첨각(添閣)을 세워 배례청을 시설했다. 마치 능침(陵寢)의 정자각(丁字閣)과 같은 형상이다. 이 첨각 기단의 3면에 벽돌을 깐 보도를 연결하였다. 조경묘는 정전 북쪽에 있다. 태조의 22대조이며 전주이 씨의 시조인 신라 사공공(司空公) 이한(李翰) 부부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1771년(영조 47)에 지은 것이다. 이곳에 남아 있는 경기전 조경묘 도형의 그림을 보면 지금은 없어진 전사청(典祀廳)·동재·서재·수복방·제기고 등 부속건물들과 별전이 따로 있는 광범위한 성역이었다. 경기전은 전주한옥마을에 방문했다면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다. 드라마 촬영 명소로도 유명한 대나무숲, 고풍스러운 돌담길,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소나무 숲과 매화나무는 고즈넉한 한옥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선보이고 홍살문을 지나 정전으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풍경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출처 : 비짓전주)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도심 한가운데 있는 조선 시대의 고풍스러운 공간으로 정전, 돌담, 대나무숲 등이 사극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먹거리, 놀 거리가 풍부한 전주한옥마을 안에 있어 전동성당과 함께 돌아보기 좋으며 주변에 한복대여소가 많아 한복을 입고 돌아보기를 추천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풍남동3가)

전주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전주향교에는 훌륭한 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비롯해 동무·서무, 계성사,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인 명륜당 등의 여러 건물이 있다. 대성전은 효종 4년(1653)이 고쳐 세웠는데, 이기발이 중건기를 남겼다. 이후 융희 원년(1907)에 군수 이중익이 다시 고쳤으며,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다. 대성전 앞뜰의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를 비롯해 곳곳에 은행나무가 많아 1년 중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고, ‘구루미 그린 달빛’, ‘성균관 스캔들’ 등 각종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지로 유명하다. 향교와 주위를 둘러싼 돌담을 배경으로 고즈넉한 분위기의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139 (교동)

완도 청해진 유적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3년(828) 장보고가 설치한 해군기지이자 무역기지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 앞바다의 작은 섬인 장도에 있다. 장좌리 마을에서 장도까지의 거리는 약 180m쯤 되고 하루 두 차례씩 썰물 때는 바닥이 드러나 걸어갈 수 있었다. 간조시에만 장도 청해진 유적지까지 걸어서 들어갈 수 있었으나, 2009년 장도목교를 설치한 후로는 탐방객들이 목교를 건너 청해진유적지로 자유롭게 도보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청해진은 통일신라시대 때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청해진이 있었던 장도는 섬 전체에 계단식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유적지 내에는 1만 명의 식수정으로 사용하였다는 청해정이 있어 지금도 맑은 물이 솟으며, 토성의 일부와 기와 파편 등도 출토되었다. 앞바다를 제외한 주변 바다는 수심이 얕아 방어용 목책을 박아 외부 접근을 막도록 만들었다. 현대에 들어 장도는 완도 주민이 농사를 짓던 곳인데, 1959년 태풍 사라 때 갯벌이 깎여 목책이 드러나면서 청해진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과 연구가 시작되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완도읍 청해진로 1380-138

완도 정도리 구계등
완도항에서 서쪽으로 4㎞쯤 떨어진 완도읍 정도리에 있는 길이 800m, 폭 200m의 갯돌해변이다. 이 갯돌을 주민들은 용돌 또는 청환석이라 일컫는다. 이곳을 구계등이라고 하기 이전에 이곳 주민들은 구경짝지라고 하였으나, 명승지로 신청하면서 누군가에 의해 구계등이라고 신청한 것이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구계등의 뜻을 풀면 ‘9개의 계단을 이룬 비탈’이라는 뜻이다. 정도리 구계등 갯돌들은 몇 만년 동안 파도에 씻기고 깎인 탓에 표면이 아주 매끄러울 뿐만 아니라 형용도 모난 데 없이 동글동글하다. 갯돌들의 크기는 작은 것은 달걀만 하고 또 어떤 것은 수박만 하다. 파도가 닿는 곳에는 주로 굵은 갯돌만 깔려 있다 보니 파도가 거센 날에는 돌 구르는 소리가 우렛소리처럼 요란하다. 해변 뒤편에는 상록수와 단풍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한여름철의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에도 좋다. 그리고 동서로 시야가 훤히 트인 이 해변에서는 장엄한 해돋이와 다채로운 빛깔로 물든 석양도 감상할 수 있다. 정도리 구계동은 수영금지구역으로 바다에 들어갈 경우 처벌 대상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완도읍 중도리

경주 대릉원 일원
경주 대릉원은 경주시 노동동과 황남동에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을 말하며 노동동 고분군, 노서리 고분군, 황남동 고분군, 황오동 고분군, 인왕동 고분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동동 고분군은 고신라 시대 무덤들로, 봉황대, 식리총, 금령총 등이 포함되어 있다. 봉황대는 밑둘레 230m, 직경 82m, 높이 22m로 황남대총 다음으로 규모가 큰 무덤으로 덧널을 설치한 돌무지덧널무덤이다. 노서리 고분군은 넓은 평지에 크고 작은 고분 14기가 있다. 노동리의 봉황대 고분과 더불어 규모가 있고 쌍벽을 이루는 제130호 고분을 비롯해 1921년에 금관이 출토된 금관총, 1926년에 일본 방문 길에 스웨덴의 황태자이며 고고학자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들러 발굴을 조사 참관한 서봉총이 있다. 1946년에 고구려 광개토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그릇이 발견됐으며 신라 고분 연대 추정에 도움을 준 호우총과 은평총, 쌍상총, 마총 등도 있다. 쌍상총에서 토기 조각, 마총에서 말뼈와 안장 조각이 출토됐다. 황남동 고분군은 신라초기의 무덤들로 일부가 대릉원 구역 안에 있다. 원형으로 흙을 쌓아 올린 30기의 무덤이다. 큰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이고 주변에는 봉문이 없어진 작은 무덤이 있다. 대릉원 안에는 전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이 있다. 천마총은 1973년 4월 6일부터 12월 4일까지 발굴조사됐다. 천마총은 지름 47m, 높이 12.7m로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나왔다. 당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가 출토되었기 때문에 천마총이라 이름 짓고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황오동 고분군은 크고 작은 신라시대 무덤들이 밀집되어 있다. 오랜 세월 관리가 되지 않아 봉분이 많이 손상되었으나, 현재 고분 형태 유지가 확인되는 것만 10여 기에 달한다. 이 무덤들은 인접 지역에서 발굴된 무덤 구조로 미루어 볼 때 주로 4~5세기경의 왕족 또는 귀족을 묻은 돌무지 덧널무덤으로 추정한다. 인왕동 고분군은 경주 중심부 평야지대에 남아 있는 고분군 중 가장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13기의 봉토분이 확인되었고 새로 10기의 고분이 더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고분 중 일부를 발굴조사 했는데, 삼한과 삼국시대의 무덤 양식이 확인됐다. 이른 시기부터 무덤이 축조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봉토가 남아 있는 삼국시대 고분들은 대부분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출토유물이나 유구의 크기 등으로 보아 신라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에서 보라가 수학여행 자유시간을 보낸 곳으로 고분들이 밀집된 공원이다. 약 20여 기의 큰 고분들이 마치 능선을 그리는 것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고분 사이에 목련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곳이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유일하게 내부를 공개하는 천마총도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저동항
경상북도 울릉군 저동리에 있는 저동항은 울릉군에서 가장 큰 항구이다. 저동항은 울릉도 오징어 대부분이 취급되는 항구로 1967년 1월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었다. 오징어를 잡기 위해 집어등을 밝힌 어선들의 오징어잡이배 불빛으로 유명한 저동어화(苧洞漁火)는 울릉 8경 중에 하나로 유명하다. 또한 항구 방파제 옆에 있는 촛대바위는 홀아버지와 살던 딸이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어 효녀바위라고도 불린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

노화도
노화도는 완도와 14.5㎞ 떨어져 있으며 보길도, 소안도 등과 함께 소안군도를 이루는 섬이다. 완도에서 생산되는 전복의 80%가 노화도에서 생산되며 하루에 두 번 물이 갈라지는 노록도 신비의 바닷길, 작은 여유 공간인 솔밭 쉼터 등 자연 그대로의 멋을 간직하고 있다. 노화도 전복체험마을은 관광객들이 직접 전복을 채취하고 시식하며 관광지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노화읍 노화로 813
초도(여수)
초도는 풀이 많아 풀 초(草) 자를 써 초도(草島)라 하며, 바닷새가 많다 하여 새 조(鳥) 자를 써 조도(鳥島)라고도 한다.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77㎞, 거문도에서 북쪽으로 18㎞ 해상에 위치하며 주변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잔재해 있다. 섬 중앙의 상산봉을 최고점으로 하며 섬 전체가 대부분 산지를 이루며 대동, 진막, 의성 등 세 개 마을로 구성돼 있다. 최고봉인 상산봉에서 보는 일출과, 진막-목섬 간의 바다 갈라짐은 초도의 자랑이다. 북서쪽에 대동 해수욕장, 남서쪽에 정강 해수욕장이 있으며 여수에서 초도까지 1일 1회 정기 여객선이 운항한다. 상산봉(上山峰:338.7m)에서 바라본 일출과 모세의 기적을 연상시키는 진막-목섬 간 바다 갈라짐 현상은 초도만의 자랑이다. 초도의 진막리 정강 마을에 있는 정강 해수욕장은 가족단위 휴양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600m의 해변이 몽글몽글한 자갈과 고운 모래로 덮여 있고 맑은 물과 화려한 주변 경관이 찾는 이들을 흡족하게 해 준다.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안고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모자바위 등 아름다운 기암괴석과 울창한 상록수림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해변 또한 황금빛 모래가 아기자기해 여름철 조용한 피서지로 제격이다. 특히 배를 타고 1~2시간 정도 모도와 인근 무인도를 도는 유람선은 관광하기에 좋은 코스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삼산면

이종일선생생가지
이종일 선생의 생가터는 태안보훈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종일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지사이다. 선생의 생가는 1979년 3월 1일 원북면 반계리에서 태안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이었던 박춘석에 의해 발견됐고 1986년에 복원되었다. 나무로 지은 초가집과 복원할 때 지은 사당, 낮은 돌담이 있다. 이종일선생생가지 내 주요 시설로는 초가집, 사당, 옥파이종일기념관, 체험관이 있으며 체험관에서는 태극기 만들기 체험을 운영한다. 선생은 1858년 11월 6일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89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총명한 재질과 뛰어난 학구력으로 한학에 전념했고 16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와 함께 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와 그곳의 개화된 문물을 접한 후, 개화의 의지가 불붙었다. 그 뒤 정2품 중추원 의관이 되었으나 쇠퇴기의 국운을 통탄하며 취임 10여개월 만에 관직을 내려놓고 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기울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민중 계몽과 인재 양성이 중요함을 느끼고 신문 발행과 교육 사업에 모든 정열을 쏟았다. 1919년 2월 3·1운동의 계획을 듣고 그 자리에서 민족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수락하고, 직접 독립선언서 원고를 인쇄하여 국내외에 배포하였다. 대한협회, 자강회, 조선국문연구회 등 구국 단체를 조직하여 정신 개조를 주장하고 근면과 노력을 강조하였으며, 한글 맞춤법 연구에 이바지하다가 1925년 사망하였다.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옥파로 199-7

꾸지나무골해수욕장
충남 태안에 위치한 꾸지나무골해수욕장은 생소한 이름만큼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곳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작고 아담한 백사장과 푸른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있으며, 백사장 양 끝에는 갯바위가 있어 바다 낚시터로 많이 이용된다. 고운 백사장과 멋진 송림, 그리고 양쪽에 갯바위가 있어 놀래미 낚시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이곳의 소나무 숲은 숲 그늘이 짙어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이다. 아직 피서객의 발길이 많지 않은 곳이라 주변에 편의시설이 적다. 장화를 신고 목장갑을 끼고 광어와 우럭, 놀래미를 집는 재미가 일품이며 잡아온 물고기는 즉석에서 회를 떠주기도 한다.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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