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국 관광지 146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46페이지입니다.

할미꽃 한재공원
자연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할미꽃 한재공원

남해로 둘러싸인 장흥군 회진면의 한재공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할미꽃 자생군락지로, 보송보송한 솜털을 지닌 검붉은 할미꽃이 넓은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는 곳이다. 자생 할미꽃은 보통 3월 초순부터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해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절정을 이루며 아름다운 봄 풍경을 선사한다. 꽃대가 아래로 굽은 모습이 특징인 할미꽃은 가까이에서 보면 자주색 꽃과 부드러운 솜털이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특별관리지역으로 할미꽃을 불법 채취할 경우 처벌 대상이므로 눈으로만 감상해야 한다. 또한 한국 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촬영지로 알려져 있으며, 공원 정상에서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회진면 덕산리

연제 안승갑 고가
역사관광충청북도

연제 안승갑 고가

연제 안승갑 고가는 충청북도 진천군 보련마을에 자리한 전통 한옥으로, 1900년대 초 조선시대 가옥 구조를 계승하여 건립되었다. 이곳은 만뢰학원을 설립해 한글과 우리 역사, 민족사상 교육에 힘쓴 연제 안승갑 선생이 생활하던 곳으로, 근대 민족교육의 의미를 함께 간직하고 있다. 본채를 비롯한 대문채와 광, 외양간 등 전통 가옥의 공간 구성이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넓은 대청과 'ㄱ'자형 평면 등 당시 주거 건축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역사적 가치와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진천의 문화유산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보련골길 46

진천 이영남 묘소
역사관광충청북도

진천 이영남 묘소

진천 이영남 묘소는 임진왜란 당시 7년전쟁을 마무리한 최후의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 순국한 임란 충신 가리포첨사 겸 조방장 양성 이영남(1563~1598) 장군이 잠든 유서 깊은 곳이다. 이영남 장군은 1563년 2월 13일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에서 태어나 선조 10년(1577) 별시무과 병과에 급제하였으며, 선조 25년(1592) 율포권관을 시작으로 소비포권관, 강계부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동래성 함락 이후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원병을 요청하여 연합함대를 결성하였고, 이영남 장군은 옥포해전, 사천포해전, 한산대첩 등 주요 해전에 참전하였다. 선조 31년(1598) 가리포첨사로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순국하였으며, 장군의 종복이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인 진천 기전리에 안장하였다. 선조 38년(1605)에는 절충장군 선무원종일등공신에 녹훈되었다. 이영남 장군 묘소는 조선시대 묘소의 일반적인 형식을 바탕으로 최근에 정비·조성되었으며, 조선 중기 최대의 국난이었던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해전에서 나라를 지킨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정되었다. 묘소는 원형 봉분으로 직경 약 600㎝, 높이 약 240㎝이며, 둘레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긴 호석을 둘렀다. 묘소 앞에는 상석과 계체석이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1기씩 배치되어 있다. 우측에는 1983년에 건립된 이영남 장군 사적비가 있으며, 석물들은 모두 양호한 상태이나 근래에 조성된 것이다. 좌측에는 말무덤인 애마총이 있고, 묘소 상단에는 부모인 이사종과 광주 진씨의 쌍분 및 묘비, 조부 이극인의 묘소와 묘비가 자리하고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

주전봉수대
역사관광울산광역시

주전봉수대

주전봉수(남목봉수)는 울산광역시 동구 주전동 봉대산 정상에 위치한 조선시대 봉수대로, 천내봉수에서 봉수를 받아 유포봉수로 전달하였다. 18세기 이후에는 천내봉수뿐만 아니라 동쪽의 경주 하서지봉수와도 연락하였다. 봉수 간 거리는 북쪽의 유포봉수와 약 5.75㎞, 남쪽의 천내봉수와 약 6㎞, 하서지봉수와는 약 16㎞이다. 현재 봉호사가 있는 자리는 과거 봉수대의 부속 건물인 봉대사(烽臺舍)가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1981년 정비사업을 완료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울산광역시 동구 동해안로 230

우가산유포봉수대
역사관광울산광역시

우가산유포봉수대

봉수는 과거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대의 군사통신제도이다. 조망이 양호한 산정에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중앙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봉수제가 성립된 것은 1149년으로 1급에서 4급의 봉수 거화수(炬火數)를 규정하고 봉수군의 생활대책을 마련해 주었다.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 그 체제가 정비되었다. 5 거 거화수 등 관계 규식 마련, 각 도 연변의 연대(烟臺) 축조하고 봉수선로 획정 등을 통해 그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각 봉수에는 오장(伍長)과 봉수군(烽燧軍)이 교대로 근무하면서 평상시에는 한 홰, 적이 나타나면 두 홰,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홰, 적이 국경을 넘어오면 네 홰, 적과 접전하면 다섯 홰의 봉수를 올리도록 하였다. 1894년에 전보통신이 보급되면서 폐지가 결정되었고 다음 해 각처 봉대와 봉수군을 폐지함으로서 모든 봉수제는 폐지되었다. 봉수는 성격에 따라 경봉수(京烽燧), 내지봉수(內地烽燧), 연변봉수(沿邊烽燧)로 구분된다. 경봉수는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였던 중앙봉수로서 서울 목멱산(木覓山)에 위치하여 목멱산봉수 또는 남산봉수라고 불렀다. 연변봉수는 해륙 변경(海陸邊境)의 제1선에 설치하여 연대라 하였으며 내지봉수는 연변봉수와 경봉수를 연결하는 중간봉수로서 수적으로 다수였다. 우가산 유포봉수대는 우가산 정상에 위치한 연변봉수의 하나로, 남목천(현재의 주전)에서 봉수를 받아 경주 하서지로 전하였다. 각 봉수와의 거리는 남쪽 남목봉수(주전봉수)와는 5.17㎞, 북쪽 하서지봉수와는 10.85㎞이다. 유포봉수는 조선전기에 유등포(柳等浦) 봉화로 불리기도 하였다. 연대를 둘러싸고 있는 약 216m 길이의 방호벽은 석축으로 방형에 가까우며, 석축의 높이는 1m~2m가량 남아있다. 2003년 실시한 지표조사에 의하면 유포봉수대는 방호벽으로 조성된 공간의 동쪽으로 치우쳐서 서쪽과 남쪽으로 넓은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이곳에서 많은 양의 기와편과 약간의 자기편이 수습되었는데, 봉수대를 운영하기 위한 봉수군의 주거건물과 창고가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울산광역시 북구 당사동

태화강 전망대
문화관광울산광역시

태화강 전망대

태화강 전망대는 울산광역시 남구 무거동에 위치한 전망시설이다. 1963년에 건립되었으나 1995년 이후 사용이 중단된 태화취수장과 취수탑을 울산광역시와 한국수자원공사가 현대적인 전망시설로 리모델링하여 조성하였다. 지상 4층(높이 28m), 연면적 514㎡ 규모로 건물 내부에는 야외 전망대, 홍보관, 휴게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전망대에서는 망원경을 통해 태화강과 국가정원교, 태화강국가정원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시민과 관광객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전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울산광역시 남구 남산로 223

대왕암 송림
자연관광울산광역시

대왕암 송림

동구 지역 주민을 비롯해 울산을 찾는 외지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대왕암공원(울기공원)이다. 만발한 벚꽃이 고개를 숙이면, 해송의 진한 향기가 녹음을 드리우고, 가을바람 은은한 600m 산책로에는 어김없이 겨울바다의 운치가 겹쳐져 사계절 모두 인산인해를 이룬다. 대왕암공원은 도심 속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귀한 휴식처다. 우리나라 동남단에서 동해 쪽으로 가장 뾰족하게 나온 부분의 끝 지점에 해당하는 대왕암 공원은 그래서 동해의 길잡이를 하는 울기등대로도 유명하다. 간절곶 등대와 함께 하룻밤 등대 체험이 가능한 곳으로 뭔가 특별함을 찾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공원 입구에서 등대까지 가는 600m의 산책길은 송림이 우거져 있다. 수령 100년 이상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어 시원함과 아늑함을 선사한다. 산책로 중간중간에 벚나무, 목련, 동백, 매화, 개나리 등이 다양한 꽃 잔치를 연출한다. 송림을 벗어나면 탁 트인 해안 절벽이다. 마치 선사 시대의 공룡화석들이 푸른 바닷물에 엎드려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이 뭉쳐 있다. 불그스레한 바위색이 짙푸른 동해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데, 곧장 마주 보이는 대왕암은 하늘로 솟구치는 용의 모습 그대로다. 댕바위, 혹은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다 하여 용추암이라고도 하는 이 바위는 신라 문무대왕비가 죽어서 동해의 호국룡이 되어 이 바다에 잠겼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북쪽 등성이를 넘어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일산해수욕장이다. 1km에 달하는 백사장에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걷는 맛이 남다르다. 여정이 허락한다면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그리고 현대미포조선 등을 꼭 둘러보자. 산업수도 울산의 맥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울산광역시 동구 등대로 110

최순우 옛집
역사관광서울특별시

최순우 옛집

성북동에 위치한 최순우 옛집은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찾고 알린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거주한 주택이다. 1930년대 지어진 근대 한옥인 이 집은 곳곳에 선생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재 이곳은 2002년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확보하여 2004년 4월 일반 개방을 통해 공개되었다. 시민 모금으로 매입한 뒤 가족들이 살며 덧대어 쓴 공간을 덜어내고 낡은 곳을 보수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 최순우 선생이 쓰던 유품과 친필 원고, 문화예술인들이 보낸 연하장과 선물한 그림 등을 유족과 지인들에게 기증받아 상설 전시하고, 최순우 선생이 찾아 알린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교유한 문화예술인을 소개하는 기획전시, 다양한 시민 참여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안채는 전시공간으로, 동편 행랑채는 사무공간으로, 서편 행랑채는 회의실과 방문객의 휴게공간 등 서비스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15길 9 (성북동)

만해 한용운 심우장
역사관광서울특별시

만해 한용운 심우장

이 집은 3.1 운동 민족 대표이면서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한용운 선생은 조선의 불교를 개혁하려고 했던 승려이자 조국의 독립에 힘쓴 독립 운동가이며, 근대 문학에 큰 업적을 남긴 시인이었다. 심우장은 전체 규모가 5칸에 불과한 작은 집으로, 이곳에는 가운데 대칭을 중심으로 왼쪽에 온돌방, 오른쪽에 부엌이 있다. 부엌 뒤로는 식사 준비는 하는 공간인 천마루방이 있다. 동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가면 북쪽으로 향한 기와집인 심우장과 양옥의 관리사 그리고 만해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 등이 있다. 한용운의 서재였던 온돌방에는 심우장이라는 현관이 걸려있는데, 이는 근대의 서화가인 위창 오세창이 쓴 것이다. 이 이름은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29길 24 (성북동)

슬도
자연관광울산광역시

슬도

방어진항의 끝 어촌 마을 동진포구 바다에 위치한 조그마한 섬으로 섬의 대부분이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에 촘촘히 나 있는 구멍들은 모래가 굳어진 바위에 조개류 등이 파고 들어가 살면서 생긴 것으로 보이며, 슬도 주변으로 바다의 수심이 낮고 작은 암초들이 산재해 있다. 방어진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으로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 하여 슬도[瑟島]라 불린다. 슬도는 바다에서 보면 모양이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시루섬 또는 섬 전체가 왕곰보 돌로 덮여 있어 곰보섬이라고도 한다. 슬도에 울려 퍼지는 파도소리를 일컫는 슬도명파[瑟島鳴波]는 방어진 12경 중의 하나다. 방어진 방파제를 따라 걸어서 섬에 갈 수 있고, 1950년대 말에 세워진 무인등대가 홀로 슬도를 지키고 있으며 이곳에는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어 낚시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변에 활어직판장 등 횟집이 있으며 인근의 대왕암공원을 같이 둘러보면 좋다.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 산5-3

효자 송도선생 정려비
문화관광울산광역시

효자 송도선생 정려비

송도는 연안 송씨로 조선 초기 울산에 살았던 효자였다. 선생은 울산지역 최초의 생원으로 병든 부모를 10여 년 동안이나 정성껏 간호하였다. 1년 사이에 부모가 잇달아 돌아가시자 몸소 흙과 돌을 져다 무덤을 만들고 유교식 예법에 따라 사당을 세워 신주를 모시고 새벽마다 배알하고 때에 맞추어 제사 지냈다. 당시까지 불교식 장례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송도의 효행은 매우 두드러진 것이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세종 10년 효자로 정렬되고 표창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되어 있다. 효문동이라는 마을 이름도 그러한 사실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연안 송 씨 족보에는 정려비가 본래 효문동에 있었으나 영조 13년에 울산도호부 서쪽 연못 인근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정려비 앞면은 효자 성균 생원 송도 지려라 적었으며, 뒷면에는 송도의 효행을 기록하였다. 정려비 왼쪽의 깨어진 비석의 글자로 보아 숙종 38년에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중구 우정동에 있던 비석과 비각을 2006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정려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비석이나 문을 세워표창하는 일을 말한다.

울산광역시 중구 동헌길 167

울산테마식물수목원
자연관광울산광역시

울산테마식물수목원

울산테마식물수목원은 동해 남부지방의 산림휴양 문화공간으로 다양한 수목과 자생식물을 식재한 자연학습과 학술연구를 위한 공간이다. 로즈메리길, 유실수원, 배롱나무원, 침엽수원, 단풍원, 암각화폭포원, 무궁화원, 온실, 체험학습장, 수생식물원등의 주요 시설과 휴게실, 하늘전망대, 갤러리, 카페 등의 부대시설이 있다. 이외에도 파충류 체험장, 쉼터, 조각공원, 여름 이벤트장, 눈썰매장, 놀이광장이 있다. 또한, 유치부부터 초. 중. 고등학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연생태프로그램과 진로체험 프로그램, 환경교육프로그램, 숲해설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말타기, 말먹이 주기 체험도 가능하다. 기존 위락시설 위주의 유사 식물원과 차별화시켜 자연환경울 최대한 보존하고 식물의 특성, 이용객의 편의 및 토지활용 등을 고려한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식물수목원을 지향하고 있다. 사라져 가는 우리 식물의 번식 및 관리를 통하여 자생지 외에서 보존 관리함으로써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의 영구보존 및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울산광역시 동구 쇠평길 33-1

청풍리조트
테마파크충청북도

청풍리조트

금수산과 월악산의 아름다운 능선이 펼쳐지고 청풍호반의 운치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인 청풍리조트는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리는 객실과 레스토랑, 연회장, 레크레이션 및 레저 스포츠 시설, 교육시설 등을 갖추고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제공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청풍리조트 여행의 품격을 높이는 다양한 레저 및 부대시설로 색다른 즐거움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청풍호반과 제천 10경의 절경이 어우러진 자연 속의 휴양지인 청풍리조트는 일상에서의 탈피를 꿈꾸며 자연과 더불어 휴양과 각종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웰빙라이프를 제공한다.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1798

개심사(괴산)
역사관광충청북도

개심사(괴산)

개심사는 괴산읍 동부리에 있는 자그마한 전통사찰로 연혁에 대해서는 현재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보학스님이 1935년에 쓴 를 통해 연혁을 짐작할 뿐이다. 현판 기록에는 여신도인 김경림이 절에 10여 칸의 큰 법당을 시주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사찰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창건에 관한 이야기, 즉 괴산읍 칠성면 두천리에 있던 도덕암이 폐사됨에 따라 현재 개심사터에 전각을 짓고 도덕암에 있던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 불상 2구를 옮겼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이는 1935년의 기록으로 김경림보살이 법당을 시주할 때 개심사에 도덕암 불상 2구가 안치되었으며, 개심사가 새롭게 중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98년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을 요사채를 헐고 그 터에 새로 지은 극락보전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이래 극락보전, 요사채 등의 중창과 축대 및 주차장 설치 등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역말길 22

괴산군수 관사
역사관광충청북도

괴산군수 관사

괴산군수 관사는 이 지역 유지인 최부자가 1950년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에도 관사로 사용되고 있다.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근대기에 세워진 현존하는 관사들은 대부분 일식이나 근대식 건축물이지만, 괴산군수 관사는 전통 한옥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고 있는 대문간채, ‘-’자형의 사랑채, ‘ㄱ’자형의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 평면의 실 구성 및 배치는 변화하는 생활 방식에 따라 많은 부분이 변경되거나 증축, 개축되었지만, 외관은 예전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양반가의 민가 형태 잘 간직하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읍내로13길 12

괴산 둔율 올갱이마을
문화관광충청북도

괴산 둔율 올갱이마을

괴산에 위치한 둔율올갱이마을은 가까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군자산과 갈은동구곡, 쌍곡계곡이 있으며, 마을을 따라 흐르는 달천강은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올갱이의 고장이다. 마을에 오면 올갱이잡기, 돌무지를 헐어 민물고기 잡기 등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생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아울러 담벼락마다 ‘옛 놀이문화’를 주제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정다운 분위기 속에서 가벼운 산책을 하기에도 좋다. 가족 단위나 친구와 함께 방문하여 자연 속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마을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둔율길 142

개심사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
역사관광충청북도

개심사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

개심사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나무로 된 여래좌상과 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원래 칠성면 두천리의 도덕암에 있던 것을 암자가 폐사되면서 옮겨온 것이다. 괴산읍 서부리에 살던 김경림이 1935년경 현재의 개심사를 신축하면서 옮겨왔다고 전한다. 2구의 각부 조각과 단아한 양식수법은 조선후기의 불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높이 85cm의 목조여래좌상은 한 나무로 조성한 좌상인데 나발의 머리와 상호가 정제되어 원만하며 백호를 갖추고 있다. 양 눈썹과 눈, 입과 입술 등이 정돈되고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통견인 법의는 조선시대 특유의 양식으로 손목에서 두껍게 표현되었다. 무릎의 의문도 두툼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들고 왼손을 내려 설법인을 결하고 있다. 관음보살상은 72cm이고 역시 한 나무로 조성한 것인데 머리에는 금속제의 화사한 보관을 쓰고 있다. 상호는 원만하며 이마에 백호가 있고 양미안과 구순 등이 정제되어 목에 돌려진 삼도와 어우러진다. 통견과 법의는 두툼하면서도 유려하여 조선시대 작품으로는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근에 홍범식 고택과 괴산향교, 애한정 등 가볼 만한 곳이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역말길 22

괴산 김항묵 고택
역사관광충청북도

괴산 김항묵 고택

괴산 김항묵 고택은 1900년 전후에 지어졌다고(안채는 19세기 초) 추정되는 건물로 공간구성의 아름다움, 외벽 장식의 화려함, 건축 당시의 모든 구조물의 보존 등 전통적 상류주택의 정수를 보여준다. 괴산군 칠성면에 있어서 칠성고택으로도 불린다. 안채는 30여 평 규모의 ㄷ자형 평면으로 남도식 배치 방법을 띠고 있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 부엌(찬방 포함)을 두었으며 오른쪽에 건넌방을 놓았다. 안방과 건넌방 앞에 툇마루를 만들었는데 건넌방 앞까지 설치해 통로로 이용한 점이 특이하며, 한쪽 옆면 전체를 부엌으로 크게 만든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바깥채의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고 좌우로 ㄱ자 건물에 마구간, 곡간 등 행랑채를 두어 외곽을 구성하였으며, 그 안에 외정을 두어 공간을 만들고 내장을 쌓아 안채와 사랑채를 구조하였다. 사랑채에는 ㅗ자 모양으로 안채 쪽에 부엌, 사랑방, 꺾어져서 대청, 작은사랑을 두었는데, 큰 사랑 동쪽에 누마루를 덧달아서 사랑정원을 감상하게 되어있다. 사랑마당은 바깥마당보다 한단 높으며 일각대문으로 연결하여 외부와 차단된 별당형식이다. 사랑채의 합각에 전돌로 새긴 완자무늬를 비롯하여, 광채 벽의 수복무늬와 팔각겹곡두무늬, 담장의 화문담 문양 등이 아름다워 눈여겨볼 만하다. 사랑채 정원에는 원래 초당과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다. 나머지 건물들은 20세기 초에 지은 것들로 바깥 행랑채는 11칸 크기에 광, 방, 헛간 등이 배치되어 있다. 광채는 6칸으로 양 끝에 온돌을 설치하였다. 집을 지은 기법이 옛 법식을 잘 따르고 있으며 크고 작은 공간구성의 배열 또한 짜임새 있게 갖추고 있는 양반집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칠성로4길 20

괴산동헌
역사관광충청북도

괴산동헌

괴산동헌은 조선초기에 창건되어 그 뒤에 여러 번 중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시대 이후 관청건물로 쓰이면서 고쳐져 그 원형을 잃었다. 최근까지도 괴산엽연초생산조합의 관사로 쓰였으나 1996년 보수할 때 동헌건물로 복원되었다. 현재 괴산읍 서부리에 있는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된 8 칸집이며, 구조는 5량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이 건물은 본래의 건물지반이 주위의 지면보다 50cm 내외의 깊이로 낮아져 있는데 건물신축 당시보다 주위의 지면이 상당 부분 상승했음을 알 수 있으며, 내아 등 다른 건축물은 모두 남아있지 않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읍내로2길 65-20

괴산 백운사 승탑군
역사관광충청북도

괴산 백운사 승탑군

괴산 백운사 승탑군은 모두 5기의 석조승탑을 모아놓은 것이다. 5기의 승탑 중 1955년에 건립한 백운사 2차 중창주인 송운제 스님의 승탑을 제외한 4기의 승탑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이 승탑들은 조선시대 석종형승탑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중 4기는 방형 혹은 가옥형의 특이한 형식을 갖추고 있어 주목된다. 옥개석에는 기와골 등이 생략되는 등 후기적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합각마루의 용두장식과 상륜부의 보주 등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모두 화강암재로 이루어진 승탑들은 옛 절터에서 1943년경 현재의 위치인 사찰입구로 이전한 것이다. 백운사는 사역에서 출토되는 명문기와로 볼 때 고려시대 대흥사였으며 조선 영조 연간(1725-1776)에 폐사된 후 1930년대 초 하장우 스님이 중창하였으며, 1994년 이후 금당, 관음전, 요사채 등 상당한 규모의 불사가 진행 중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사리로소매2길 125-146

괴산 사담리 망개나무 자생지
자연관광충청북도

괴산 사담리 망개나무 자생지

괴산 사담리 망개나무 자생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망개나무 자생지 중 하나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및 보호하고 있다. 속리산 국립공원 근처에 계곡을 중심으로 냇가의 굵은 돌이 많고 흙이 없는 곳과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다. 이곳의 망개나무는 지방민들이 발견하고 제보해 몇몇 학교 생물과 교사들이 답사를 하고 망개나무라는 것을 확인한 바 있었는데, 1979년 당시 문화재위원회 이창복 위원 등이 이 지방 식물생태를 조사하던 중 발견, 학계에 보고하였다. 망개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지에서 드물게 자라는 희귀종으로, 황색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대체로 따뜻한 곳에서 자란다. 번식력이 매우 약하나 한 번 싹을 틔우면 잘 자란다. 잎이 길고 타원형이며 꽃은 6월에 황색으로 피어나고, 열매는 타원형으로 8월에 붉게 익는다. 경상도에서는 살배나무 또는 멧대싸리라고도 한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

괴산 삼방리 마애여래좌상
역사관광충청북도

괴산 삼방리 마애여래좌상

괴산 삼방리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3.7m, 폭 4.1m, 두께 2.4m의 바위의 한쪽 면에 새긴 높이 3.5m의 마애불이다. 낮은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이 좌상은 통견의 법의를 걸치고 있는데 왼손은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독특한 수인을 보이고 있다. 굴곡이 없는 사각형적인 신체, 몇 가닥의 간략한 옷주름선, 도식적인 꽃잎의 형태에서 기술의 한계가 엿보이지만 안정감 있는 단아한 체구, 소발의 머리에 큼직한 육계, 삼도가 뚜렷한 목, 당당한 어깨와 무릎 등에서 앞 시대의 특징이 엿보이는 수준작으로 평가된다. 얼굴 부분은 대체로 양각이라기보다는 선각에 가까우며, 가슴에 군의대 매듭이 보인다. 이 좌상은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초기 이 지방에서 유행한 좌상양식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좌상을 새긴 바위의 아래쪽 일부가 깨어진 것 외에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삼방관전3길 18

괴산 삼방리 삼층석탑
문화관광충청북도

괴산 삼방리 삼층석탑

1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의 석탑이다. 기단부는 대석 위에 갑석을 올렸는데 갑석의 윗면에는 2단의 탑신괴임이 있다. 대석의 면석에는 양우주와 1탱주를 모각하였고 각층 탑신에는 양우주를 정연하게 각출하였다. 각층 옥개석 낙수면의 물매는 비교적 급한 편이며 층급받침은 모두 4단이다. 탑신부는 각기 다른 석재로 만든 탑신석과 옥개석을 번갈아 3층으로 쌓았고 위층으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진다. 팔작지붕처럼 생긴 옥개석은 윗면의 경사가 매우 급한 편이고 아랫면에는 4단의 각형받침이 선명하게 돌출된 모습이다. 1층 탑신 4면에 새긴 불상은 앙화좌 위에 결가부좌 하였으며, 모두 두광과 신광을 갖추었다. 동쪽은 약사여래, 서쪽은 아미타여래, 남쪽은 대일여래, 북쪽은 석가여래상을 조각하여 사면불의 의궤를 갖추었다. 이 석탑은 삼층탑신과 상륜부의 일부가 결실되어 최근에 보수하였으나 정제미와 조각기법이 뛰어나며, 옥개석의 전각, 층급받침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삼방연지길 49

애한정
역사관광충청북도

애한정

애한정은 괴산읍 검승리 정자마을 언덕에 남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광해군 6년(1614)에 박지겸이 세운 정자인데 그의 호를 따서 애한정이라 하였다. 조선 선조 때의 유학자인 박지겸은 임진왜란 때 백의로 왕을 의주까지 호가하여 그 공으로 별좌에 올랐다가 광해군 때 정치가 문란해지자 처의 고향인 이곳에 낙향하여 은거하며 애한정을 건축했고 정진하며 후진양성에 힘썼다. 이후 현종 15년(1674)에 그의 손자인 박정준이 군수 황세구의 도움을 받아 새로 짓고, 숙종 38년(1712), 숙종 44년(1718), 영조 51년(1775), 그리고 1979년에 중수하였다. 건물 규모는 처음 지었을 당시에는 앞면 3칸·옆면 1칸 반의 작은 건물이었으나 수리를 하면서 규모를 넓혀 정면 6칸, 측면 2칸 반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괴산은 예부터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곳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다녀간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애한정도 그중 한 곳으로 박지겸, 우암 송시열, 조천 정당, 송병선, 박의화 등이 이곳에서 많은 저서를 남겼다. 1978년 10월 27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가까운 곳에 제월대와 고산정, 홍범식 고가 등 가볼 만한 곳이 많이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충민로검승1길 18-9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