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4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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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동헌
이 건물은 3단의 계단식 건물 터 제일 상단부에 들어서 있는데, 조선시대 말기에 건축한 것으로 보인다. 벽과 방의 구조는 근래 일부 개조하여 본 모습은 잃었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추녀와 대청마루에서 한식 목조 건물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여산 동헌은 전국적으로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옛 모습을 간직한 조선시대 지방관청 건물의 하나이다. 『여산 동헌 느티나무』전라북도 기념물 (2002.08.02)이 느티나무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여산 동헌과 주변에 7주의 대형 느티나무가 집중 분포되어 있음에 따라 동헌의 설치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여산은 전주에 속해 있다가 공양왕 3년(1391) 감무를 두고 낭산과 공촌, 파제 두 부곡의 권농사까지 겸임하였고, 조선 태종 2년(1402)에 여산현이라 하고, 세종 18년(1436)에는 원경왕후의 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고 함으로 조선 태종대에서 세종대에 동헌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식재되었을 것으로 보여 수령은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나무의 휴고 둘레는 4.5m, 높이는 22m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동헌길 13
익산향교
익산향교(益山鄕校)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교육기관이다. ‘금마향교’라고도 부른다. 1398년(태조 7) 건립되어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 15일에 봉심을 올리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던 곳이었다. 향교는 고을의 크기에 따라 대설위(大說位), 중설위(中設位), 소설위(小設位)로 설립되었는데, 익산향교는 공자와 4성, 10철, 송조6현, 동국 18현 등 39위를 모신 중설위 향교로 세워졌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고도7길 11-3

익산제석사지
이 터는 백제시대의 사찰인 제석사가 있던 곳이다. 제석사지는 무왕대의 익산 천도설을 밝혀 줄 수 있는 왕궁리 유적과 관련이 있는 절터이다.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期]에 따르면, 제석사는 백제 무왕대에 창건된 사찰로서, 무왕 40년(639)에 벼락으로 불타버렸으나, 탑 아래 넣어두었던 불사리와 금강반야격을 얻었던 칠함이 보존되어 다시 사찰을 짓고 안치하였다 한다. 1993년 일부 지역을 조사한 결과 목탑 터, 금당 터, 강당 터 등의 기단이 확인되었으며, 「제석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출토됐다. 비록 터만 남았지만, 이곳은 몇 개 남지 않은 백제 절터의 하나로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함벽정
함벽정은 1930년에 왕궁저수지의 제방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여 이 고장의 부호였던 송병우[宋炳雨]가 건립하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저수지의 맑은 물을 그려 ‘함벽정’이란 이름을 붙였다. 특히 기둥 위의 공포는 이익공계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평주 위 공포의 쇠서가 전면으로만 돌출되는데 비해 이 건물에서는 좌우 대각선 방향으로도 돌출시켜 마치 귀기둥에서의 공포결구수법과 같이 짜여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주변 연지에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백련을 갖다 심었다고 전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호반로 30-21

금왕사
경남 남해군 이동면 신전리에 위치한 금왕사는 기암절벽 가까이 이런 사찰을 지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또한, 일 년 내내 끊일 줄 모르고 나온다는 천년의 약수도 있다. 천년의 약수 위로 오르면 돌로 만들어진 동자승이 누워 있고, 금왕사 미륵전에서 참배가 가능하다.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보리암로 65-23

남해 금산 봉수대
봉수(俸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밤에는 횃불[俸]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이 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실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상 고려 중기(12,3세기)에 이 제도가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실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던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이후였다. 봉수대는 각각 일정한 거리를 둔 산꼭대기 중에서 시야가 확 트인 곳에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불꽃이나 연기를 한 번 올리지만 [一炬 또는 一煙],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두 번,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세 번,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네 번,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번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이곳 금산 봉수대는 고려 의종(毅宗, 1147~1170 재위) 때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중심 봉수로(烽燧路) 가운데서 동래(東萊)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제2 봉수로에 속한 최남단의 봉수이다. 이곳에서 점화된 봉수는 창선 대방산을 통해 사천(四川), 진주(晉州)등을 거쳐 서울에 전달되었다. * 금산봉수대는 해발 681m인 금산에 자리 잡고 있고 둘레는 26m의 네모난 형태이며, 높이는 4.5m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보리암로 691
남해향교
남해향교는 1450년 하신(河紳)이 남해현령으로 재임할 때 봉강산 포교당터에 건립하여 개교하였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후 1669년(현종 10)에 사당인 대성전을 고쳐 세웠다. 그 후 고종 29년(1892)에 대성전을 비롯한 동·서 양무와 내삼문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고, 점차 그 밖의 건물들도 모두 옮겨 세웠다. 완만한 경사지에 출입구인 외삼문, 유생들의 거처인 동재와 서재,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비교적 낮은 터에 있고, 그 뒤로 조금 높은 터에 내삼문과 성현에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이 위치하여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이나 서재의 남쪽에 담장을 붙여 돌단을 쌓은 것은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북변리

평사리들판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이곳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그 기둥을 세운 이유 세 가지 중의 첫 번째가 이곳 평사리들판이다. 만석지기 두어 명쯤은 능히 낼 만한 이 넉넉한 들판이 있어, 3대에 걸친 만석지기 사대부 집안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태가 되었다. 생전 박경리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로 세 가지를 얘기하셨는데, 그중 하나가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였다. 그렇듯이 넉넉한 들판은 모든 생명을 거두고, 자신이 키워낸 쌀과 보리로 뭇 생명들의 끈을 이어준다. 섬진강 오백 리 물길 중 가장 너른 들판을 자랑하는 평사리들판은 83만여 평에 달한다. 평사리들판에는 최참판댁 한옥, 부부송, 동정호, 동정호조각공원, 박경리문학관 등 많은 관광 명소가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하동향교
하동향교는 세워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영조 12년(1736)에 부사 민진기가 횡천으로부터 옮겨지었다. 그 뒤 헌종 13년(1847)과 1920년에 고쳐 지었고, 근래에도 보수하였다. 출입문이자 휴식 공간이었던 풍화루를 들어가면 유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이 있고, 그 앞쪽에는 유생들의 거처인 동·서재가 비대칭으로 위치하고 있다. 명륜당 뒤로는 내삼문이 있고, 그 안에 사당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있어서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을 모시고 있다. 전체적으로 공부하는 곳이 앞쪽에, 제사 지내는 곳이 뒤쪽에 있는 전학후묘의 건물배치를 이루고 있다. 하동향교는 다른 향교에 비해 많은 전적을 보관하고 있으며, 특히 하동지방 향토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향교2길 5

한산사(하동)
중국의 한산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바로 하동 악양면 고소성 아래에 있는 한산사이다. 한산사가 위치한 하동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당이라 하고, 모래밭 안에 있는 호수를 동정호라 했으며, 하동의 고소성 또한 중국의 고소성과 같은 이름이다. 한산사 창건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전해지지 않으며, 사찰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화엄사와 창건 연대가 비슷하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중국의 한산사가 위치한 곳은 절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시인 장계가 풍교야박의 시를 읊어 더욱 유명한데, 하동의 한산사 또한 그 절경이 중국의 한산사를 빼어 닮았을 뿐 아니라, 지역의 모습 또한 꼭 닮았다고 한다. 1960년경에 송상형 스님이 중창 불사를 하여 대웅전, 약사전, 삼성각 등의 전각이 오늘이 이르고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59-102

수도권매립지 드림파크 야생화단지
드림파크 야생화단지는 수도권매립지 내에 축구장 60개 규모의 대규모 녹지공간으로 조성된 도시숲이다. 과거 연탄재 야적장이었던 부지를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와 지역주민이 함께 가꾸어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생태녹지로 탈바꿈시켜, 수도권 시민들에게 산책과 휴식, 환경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드림파크 야생화단지는 테마식물지구, 야생초화지구, 습지생태지구 등 다양한 주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 300여 종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어 사계절 내내 다채로운 자연을 즐길 수 있다. 4월에는 벚꽃과 수선화, 5~6월에는 작약과 수국, 9~11월에는 핑크뮬리로 물든 꽃밭이 펼쳐져 풍성한 생태계를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연꽃과 벗풀, 꽃창포가 있는 수생식물원, 시원한 녹음이 드리운 참나무 쉼터, 물 위를 걷는 듯한 징검다리길, 피톤치드가 가득한 메타세쿼이아길 등이 조성되어 있어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휴식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매년 가을에는 드림파크 국화축제가 열려 다채로운 시민참여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되어 나들이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인천광역시 검단구 자원순환로 170 (백석동)

신숭겸장군유적
신숭겸(?∼927)은 평산 신 씨의 시조로서, 918년 배현경, 홍유, 복지겸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의 건국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고려개국의 1등 공신인 신숭겸 장군은 궁예가 세운 나라인 태봉의 기병장수였다. 그런데 궁예가 왕위에 즉위한 지 몇 년 만에 처자식을 살해하고 백성을 혹사하는 등 폭정이 심해지자 동료 기장들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였다. 고려 태조 10년(927) 신라를 침공한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왕건과 함께 출전하였다. 왕건이 이곳 공산싸움에서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위기에 빠지자, 왕건의 옷을 입고 변장하여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으며, 왕건을 그 틈을 이용하여 홀로 탈출하였다고 한다.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춘천인 광해주에서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웠다. 그리고 신숭겸이 순절한 이곳에 순절단과 지묘사(미리사)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게 하고, 토지를 내려 이곳을 지키게 하였다고 한다.
대구광역시 동구 신숭겸길 17 (지묘동)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자동차 공장으로, 약 32,000명이 근무하며 연간 최대 152만 대의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여의도의 1.5배에 달하는 부지를 갖추고 있으며, 전용 수출 부두를 통해 하루 최대 4,500대의 차량이 전 세계로 수출된다. 공장 투어는 세 가지 코스로 구성된다. ‘헤리티지 홀’에서는 현대차의 역사와 상징적인 차량, 포니를 비롯한 올드카 전시와 함께 디오라마·영상으로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다. ‘의장공장’에서는 실제 부품 조립 라인을 견학하며 자동차 생산의 핵심 공정을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동차 전용 부두’에서는 완성 차량이 수출선에 선적되는 역동적인 현장을 관람할 수 있다. 투어는 사전 예약 필수이며, 단체는 15인 이상, 개인은 최대 4인까지 신청 가능하다.
울산광역시 북구 염포로 700

메이즈랜드
메이즈랜드는 최장을 자랑하는 석축미로를 보유한 제주의 종합테마파크로 제주의 명물인 돌, 바람, 여자를 뜻하는 삼다(三多)를 테마로 하여 조성됐다. 현무암과 송이석으로 만든 돌미로에서는 원적외선과 음이온을, 미측백나무로 만든 바람미로에서는 피톤치드를 누릴 수 있다. 미로퍼즐박물관에서는 체험을 통해 학생들이 과학적, 수리적 능력을 배양할 수 있으며 미로의 기원 설화와 14세기부터 현재까지의 미로와 관련된 유물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애지앙길과 야외에는 석공명장 장공익 선생의 제주 설화와 전설이 깃든 해학적인 석상들도 만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 2134-47

무안황토갯벌랜드
무안갯벌은 자연 생태의 원시성과 청정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장소에서 갯벌의 생성과 소멸 과정이 관찰 가능하여 지질학적 보전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갯벌의 형태 및 생물의 다양성이 인정되어 2001년에는 전국 최초로 습지 보호구역, 2008년에는 람사르 습지 및 갯벌도립공원으로 등록, 지정되었다. 무안황토는 먹는 산소라 불리고 있으며, 항암과 면역기능 증진, 노화 방지 등에 특효가 있는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무안생태갯벌 과학관을 중심으로 분재 테마전시관과 분재 전시실 등 볼거리 이외에도 황토 이글루, 황토 움막, 방갈로, 카라반, 오토캠핑장 등 숙박시설이 있으며, 편의 시설로는 식당과 매점, 카페, 바비큐장 등이 갖추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갯벌의 중요성과 갯벌 생물의 다양한 특징을 배울 수 있는 전시시설과 갯벌체험학습장 그리고 해양생물 자와 핀 버튼 만들기 등 체험학습장도 있다. 이러한 무안황토갯벌랜드에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힐링과 치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해제면 황토갯벌길 88

충장로
서울에 명동이 있다면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는 충장로가 있다. 도심이 커지면서 곳곳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번화한 새 거리들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중심은 충장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충장로는 읍성시대에 남문과 북문을 잇는 광주의 대표적인 남북대로였고 성안에 있어서 시내라고 불렀다. 충장로에 상가가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 직후인 1911년 일본인이 현 산업은행 건너편에 ‘여목’이라는 상호로 일용 잡화점을 낸 것이 효시이다. 그 후 충장로 1가를 중심으로 일본인들의 상가가 들어섰고 일본인들이 충장로의 상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구 도청 자리에 일제 총독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충장로’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김덕령의 시호를 딴 것으로 충장로의 최초 가로등은 석유 등잔불이었다고 한다. 일찍이 양장, 양복, 요식업, 서비스업 등이 집약되어 있어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고, 당대에 유행을 선도하는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던 충장로는 자연스레 유행의 거리, 젊음의 거리로 불렸다. 충장로를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다방’이다. ‘우다방’은 충장로가 가장 번성기를 누렸던 7~80년대에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우체국을 그 시절에 유행했던 다방에 빗대서 붙인 이름이다. 1963년에 완공되어 그 당시에는 드물게 냉, 난방을 갖춘 대형 건물이었던 우체국은 가난한 연인들이나 학생들에게 둘도 없는 만남의 장소였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시위 군중들의 예비 집결지, 정보 교류처, 대피처로 광주의 역사와 함께했던 ‘우다방’은 지금도 자신의 주장을 알리려는 시민들이나 각종단체들이 행사나 집회를 여는 곳이다. 2004년부터 매년 10월,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대표하는 번화가 충장로의 특징을 살린 추억의 충장축제가 열린다. 축제의 가 장 큰 볼거리인 ‘충장 월드퍼레이드'는 지역별로 서로 다른 테마로 퍼레이드에 참석하며 경연 퍼레이드, 영화 콘셉트 퍼레이드, 아시아 국가 퍼레이드 등 다양한 퍼레이드가 쉴 새 없이 진행된다. 또한, 70~80년대 충장로의 모습을 재현한 추억의 테마거리도 조성된다. 옛날 다방에서 차를 마시거나 흑백사진관에서 멋진 흑 백사진을 찍는 등 MZ세대를 비롯한 다양한 세대가 즐거운 레트로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축제 본연의 특성인 놀이성, 일탈을 통한 해방감, 공동체로서의 대동감을 느낄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서석로 37 (충장로1가)

왕피천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
왕피천 일대는 지형이 험준하여 사람의 접근이 어려워 현재까지 원시의 자연경관과 생태계를 유지해 오고 있으며, 국내 최대 규모의 생태경관 보전지역(총면적 102.84㎢)으로 지정되어 있다. 왕피천 계곡 일대에서는 돌개구멍과 토르, 절리 등과 같은 다양한 지질구조도 잘 발달하고 있다. 특히 돌개구멍(pot hole)은 빠르게 흐르는 물에 의해 빙글빙글 도는 자갈이 오랜 시간 동안 암석을 깎아 만든 침식 지형(그릇, 항아리 모양)으로 계곡의 바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수직으로 발달한 절리가 오랜 시간 풍화되어 탑 모양이나 벽돌을 세워 놓은 것과 같은 바위 지형인 토르(tor)도 흔히 볼 수 있다. 왕피천 탐방로에서는 돌개구멍인 용소와 용머리바위, 절리에 의해 생성된 학소대와 거북바위, 토르에 해당하는 송이바위 등을 관찰할 수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

지리산역사관
지리산 역사관이 자리한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은, 하늘 아래 첫 마을로 잘 알려진 곳으로,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아 깨끗한 먹거리와 자연환경을 간직한 신선함이 감도는 마을이다. 남서쪽으로 남해와 섬진강을, 북동쪽으로는 삼남지방을 연결하는 벽소령이 있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던 이곳은 최근 지리산에서 나는 고사리와 각종 산나물, 고로쇠 수액 등으로 유명해지면서 관광객들의 왕래가 잦아지고 있다. 이른 봄 채취하는 고로쇠 수액은 양도 양이지만 전국적으로 그 맛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지리 역사관은 지리산을 주 무대로 하여, 화전민의 생활상과 하동 특산물을 보여주는 전시관이다. 지리산 빨치산의 생성에서 소멸까지 과정을 재현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장대한 지리산 계곡 자락에 있는 지리산역사관은 여러 가지 전시물을 통하여, 지리산을 안고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빨치산 관련 전시물은 이데올로기로 인한 민족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교육장이 되고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로 1438 지리산역사관

백룡동굴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
백룡동굴은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백운산(白雲山) 기슭 절벽에 위치한 석회암 동굴이다. 197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956,434㎡, 전체길이 1.2㎞이다. 동굴 내에는 종유관, 종유석, 석순, 석주, 유석, 휴석(소), 동굴진주, 커튼과 베이컨시트, 곡석, 석화, 동굴산호, 동굴방패, 부유방해석 등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기형의 종유석과 석순, 에그프라이형 석순은 백룡동굴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매우 특이한 형태이다. 백룡동굴 내의 동굴생물은 모두 56종으로 거미, 곤충, 박쥐, 딱정벌레, 새우, 노래기 등이 서식하고 있으며 조금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이밖에 동굴입구에서 10m 안쪽 부근에 온돌, 아궁이, 굴뚝의 흔적과 함께 주변에서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구들장 내부의 숯을 연대 측정한 결과 서기 약 1800년대로 밝혀졌다. 이를 통해 백룡동굴이 한 때 조상들의 거처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백룡동굴 생태학습체험장)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미탄면 문희길 63

삼락생태공원
삼락은 가장 넓은 둔치지역을 자랑하는 곳으로, 다양한 자연환경과 시민들을 위한 친수공간이 조성되어 있는 체육 및 휴식공간이다. 삼락생태공원은 과거 비닐하우스 경작지였던 곳을 1998년 사상구청에서 삼락둔치 상단부 일부에 운동장을 조성하였고, 2006년 부산시 낙동강둔치 재정비사업으로 겨울철새 먹이터로 이용하기 위한 친환경영농원, 물놀이장, 인라인스케이트장 등 체육시설과 습지를 복원하였다. 삼락생태공원은 크게 세 부분으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최상단부와 중앙 부분에 시민들을 위한 체육시설, 둘째는 상단부 쪽에 갈대 및 갯버들 군락의 커다란 자연초지와 곳곳의 산책로, 셋째는 하단부의 갈대습지 형성과 철에 많은 철새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 사상구 삼락동 29-46
외동어촌체험마을
대경도는 여수항에서 남쪽으로 약 0.5㎞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이다. 섬은 크게 외동, 내동, 오복 등 3개의 거주 지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크기는 약 2.33㎢이다. 대경도에 도착 후 직진하면 작은 언덕을 만나고 이 언덕을 넘으면 U자형 지형에 들어선 아기자기한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외동이다. 외동마을은 물이 거울같이 맑고 호수 같다 하여 경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 앞길을 지나 U자형 끝에 펜션형 낚시터 관리사무소가 있다. 바다 한가운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떠 있다. 실내는 원룸이며 주방과 욕실이 갖추어져 있어 간소하면서도 편리한 구조이다. 창문 밖으로 여수 앞바다가 보이는 낭만적인 펜션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단연 바다낚시 때문일 것이다. 노래미, 볼락, 우럭 등이 주로 잡히며 가을에는 감성돔도 잘 잡힌다. 가끔 갑오징어와 꽁치도 낚인다. 마을 앞 갯벌은 해산물 채취가 금지되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지만 근처 경호초등학교와 내동과 오복 등 인근 마을로 드라이브를 다녀오는 것도 좋다. 초등학교는 운동장에서 바다가 보일 정도로 운치가 있으며 다른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들도 바다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멋진 코스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대경도길 2 (경호동)

왕지등대마을
왕지마을은 남해군 설천면 문의리 일대에 위치한 곳으로 태조 이성계는 남해금산에서 백일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 마을의 아름다움에 취해 쉬어가기도 한 곳이다. 이성계가 이곳 ‘굽은 고개를 넘어가 임금이 되었다’ 하여 굽을 왕(枉), 땅 지(地)를 써서 ‘왕지’라 불리고 있다. 왕지등대마을은 이순신 장군의 최후 격전지인 노량바다가 보이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고 남해대교에서 마을까지 이르는 도로에 아름다운 벚꽃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농어촌복합체험마을답게 농촌과 어촌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개막이체험은 바닷가에 그물을 설치한 뒤 바닷물이 빠지면 직접 물고기를 잡아보는 체험으로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 좋다. 갯벌의 생태를 공부하며 갯것들을 직접 잡아볼 수 있는 갯벌생태체험은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에 더없이 좋은 체험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설천로864번길 53

광양 형제 의병장마을
광양 형제의병장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큰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강희보, 강희열 형제 의병장이 태어난 마을이다. 두 형제는 임진왜란 당시 위기에 처한 진주성에서 김천일 장군과 함께 10만 왜군에 맞서 전투를 벌이다 1593년 6월 27일과 29일 각각 장렬히 전사했다. 뒷날 선조는 강희보, 강희열 형제의 충절을 높이 사 진주 창렬사에 배향했고, 1970년에 이르러 고향인 봉강면 신룡리에 묘소와 묘비를 보수하고 사당을 건립했다. 현재 형제의병장마을에 남아 있는 사당은 1998년에서 2003년에 걸쳐 광양시에서 건립하였고, 이곳 쌍의사에서 매년 형제 의병장의 충의정신을 기리고 있다. 강희보, 강희열 두 형제 의병장의 묘소는 바구산 등산로 중턱에 나란히 위치해 있다. 묘소까지는 생태탐방로를 따라 완만한 산책로가 이어져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기에 좋다. 주위로 백운산 자연휴양림과 성불계곡, 질매제 계곡이 있어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모이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봉강면 신촌길 21-6
사기아름마을
사기 아름 마을은 2002년에 아름 마을로 선정되었다. 사기 마을은 투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을 지닌 우리나라 전통 차사발(茶沙鉢)의 본고장이다. 행정 자치부는 2001년부터 쾌적한 자연환경과 생태 공간을 간직하고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려는 취지에서 사기 마을을 ‘아름 마을’로 선정하여 각종 체험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있다. 경상남도에서는 산청군 신촌 마을과 더불어 단 두 곳만이 아름 마을로 선정되었다. 사기 아름 마을은 칸 국제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서 화가 장승업(張承業)이 활활 타오르는 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명장면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사기아름길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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