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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4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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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산계곡
자연관광경기도

석산계곡

양평과 홍천군의 경계 지점인 단월면에는 봉미산에서 시작되어 홍천강으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소리산을 휘돌며 형성한 석산계곡이 길 옆으로 이어진다. 골이 깊고 숲이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으며, 양평의 남한강 지류와는 풍광이 완연이 다른 모습을 띠고 있어 한여름에도 서늘한 냉기가 흐른다. 여름이면 반딧불이가 지천을 이룰 정도인 청정구역으로 바위가 많아 석산리라는 지명이 붙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리산과 함께 때 묻지 않은 비경과 자태를 자랑하며 기암절벽과 소나무가 어울린 절경을 보여준다. 물이 맑아 다슬기가 있고 깊지 않아 물놀이가 안전하며 숲이 우거져 그늘을 만들어준다. 계곡의 길이가 상당히 길고 수량이 풍부하며 계곡 주변에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 가족 휴양지나 피서지로 손색이 없다.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석산리

지평향교
역사관광경기도

지평향교

지평향교는 양평군을 대표하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 3곳 중의 하나이다. 건물의 내력이 적힌 문서(상량문)가 명륜당에서 발견되어 지평향교가 조선 전기에 세워져 조선 숙종 10년(1684)에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건물의 전체 배치는 앞쪽에 교육 공간이 있고, 뒤쪽에 제사 공간이 자리한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앞쪽에 위치한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이며, 동재와 서재는 기숙사이다. 뒤쪽의 대성전과 동무·서무는 중국과 조선 성현의 이름이 적힌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내는 곳이지만, 현재 동무과 서무는 남아 있지 않다. 지평향교는 현재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양평은 1908년 양근군과 지평군을 합친 이름이기 때문에 옛 양근군에 있었던 양근향교와 옛 지평군에 있었던 지평향교로 총 두 개의 향교가 양평에 자리 잡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평로 333

단양 사인암
자연관광충청북도

단양 사인암

사인암은 단양 8경 중 하나로, 단양 남쪽 남조천변의 푸르고 깊은 계류를 끼고 있는 높이 70m의 기암절벽이다. 남조천(일명 운계천) 변에 병풍처럼 넓은 바위가 직벽을 이루며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 그곳에 사인암이 자리하고 있다. 사인암은 중생대 백악기 흑운모 화강암으로 판상절리와 수직절리가 잘 발달하여 화강암체가 사각기둥처럼 보인다. 이 지역의 화강암체는 상부에 토르를 비롯한 절리가 잘 발달하여 특이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하천가에 위치하여 포트홀과 너렐 등의 침식 지형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 암자인 청련암이 있으며, 선암골 생태탐방로를 활용한 트레킹을 할 수 있어 많은 경관적 가치와 문화, 역사, 생태, 지질적 가치가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로 재임한 임재광 선생은 단양 출신인 고려말 경사와 역학에 능통했던 대학자 역동 우탁 선생이 임금을 보필하는 직책인 정4품 ‘사인’이라는 벼슬로 재직할 당시 이곳에서 머물렀다 하여 사인암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고 한다.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2길 42

단양 방곡도깨비마을
문화관광충청북도

단양 방곡도깨비마을

중선암과 상선암을 지나 선암계곡의 경치에 홀려 오다 보면 방곡리에 도착한다. 첩첩산중에 둘러싸여 평화로운 방곡리는 600여 년 전부터 도자기 생산지로 유명했다. 방곡도깨비마을에서는 여전히 소나무 장작을 땔감으로 사용하여 전통적으로 도자기를 굽는 장작 가마 방식을 여전히 이어오고 있으며, 다수의 도예인이 공방과 가마를 운영하고 있다. 도예촌에서는 도예전시관, 도자판매장, 도예교육원을 상설 운영하고 있다. 방곡도깨비 마을의 으뜸 체험은 단연 도자기 만들기 체험이다. 체험 프르그램에 따라 도예 장인과 함께 물레를 돌려볼 수 있고, 잘 구워진 도자기 그릇에 나만의 그림을 그려 넣을 수도 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도자기는 불가마에서 잘 구워져 한 달 후에 집으로 배달된다.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선암계곡로 148

화암서원(보령)
역사관광충청남도

화암서원(보령)

화암서원(보령)은 충남 보령시 북동부 청천저수지변에 있는 서원이다. 1610년(광해군 2) 창건되어 『토정비결』의 저자인 토정 이지함 등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그 후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폐된 것을 1920년 토정의 후손이 현재의 자리에 재건립하였다. 원래는 맞배지붕 사당 1동과 삼문 1동에 불과했으나, 현 위치로 이전하여 축대와 기단을 정비하고 재실과 삼문을 보수하였다. 1984년에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후, 1988년에는 강륜당을 건립하고 충효교실을 운영하였으며, 1997년 평문 외삼문을 솟을대문으로 개축, 서원의 면모를 갖추었다. 1998년에는 이지함의 후손들이 이지함의 영정을 제작, 표준영정으로 심의받아 봉안하였으며, 매년 2월과 8월 중정일을 기하여 향사를 드린다. 화암서원(보령)은 국도 36호선, 21호선과 지방도 609호선, 610호선에서 죽성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대천 IC와 서천공주고속도로 서공주 IC가 가깝다. 인근 관광지로는 청천저수지 외에 성주산, 보령 냉풍욕장 등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죽성로 411

이지함선생묘
역사관광충청남도

이지함선생묘

이지함 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토정비결』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지함 선생 묘는 보령시 북서부 서해안에 있는 묘소이다. 낮은 산허리에 있으면서도 보령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이지함 생전에 미리 터를 정해두었다고도 전해진다. 전체적으로는 이지함의 형제와 가족이 함께 있는 가족묘로 조성이 되어 있으며, 이지함의 묘는 봉분 둘레 10m, 높이 1.6m로 묘소에는 비석과 문석인이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진 비석은 직사각형의 대좌와 비신이 있다. 비신은 높이 132㎝, 너비 52㎝, 두께 17.8㎝이며, 전면에는 ‘토정선생이공지묘 공인완산이씨부좌’라고 새겨져 있다. 유언대로 비문은 간략하고 문석인은 치장이 거의 없이 매우 검소하다. 1992년 5월에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이지함 선생 묘는 국도 40호선에서 지방도 610호선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대천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보령에너지월드, 갈매못 순교성지 등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 사당골길 13

구담마을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구담마을

섬진강 상류에 위치한 구담마을은 조선 숙종 때인 180년경 해주오씨가 정착해 형성한 마을이다. 구담마을의 원래 이름은 안담울이었는데, 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에 자라가 많이 서식한다고 하여 구담[龜潭]이 됐다고도 하고 아홉 군데의 못이 있어 구담[九潭]이 됐다고도 한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강과 강을 따라 구릉과 비탈에 자연적으로 핀 매화꽃이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답다. 정자나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과 강이 한 폭의 수채화 같으며 매화가 절경을 이루는 시기가 되면 관광객과 화가, 전문 사진가들이 찾는 풍경 명소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덕치면 천담1길 49

사곡리남근석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사곡리남근석

사곡리 남근석은 자경마을 입구에 있었던 것으로 경지 정리 시 도로변에 옮겨 세운 것이다. 강동로를 따라 고개를 넘으면 왼편으로 안내판과 함께 볼 수 있으나, 주의하지 않고 보면 지나칠 수 있다. 사곡리 남근석은 화강암을 돌기둥처럼 다듬어 만들어졌으며, 제작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높이 200㎝이고 사각기둥 꼴의 몸통이며, 상부의 귀두 부분의 높이는 37㎝이고 약간 퍼져 있는 형국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덕치면 사곡리 1019

영암 학계리석불입상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 학계리석불입상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에 있는 높이 4m의 석불 입상이다. 화강암에 돋을새김을 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은 불분명하고 4각형의 얼굴은 몸에 바짝 붙어있다. 머리에 비해 어깨가 좁아 양감이 있다. 손모양은 왼손을 들어서 배에 대고 오른손은 길게 내리고 있는데 신체에 비해 너무 작게 표현되었다. 서 있는 자세의 하체 부분은 형체만을 나타내는 등 전체적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가슴 앞의 옷주름도 전통적인 ‘U자형’이 아닌 ‘凹형’ 무늬를 새겼고, 왼쪽 팔에 걸쳐 내린 4가닥의 옷자락만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얼굴과 몸 아랫부분에 금이 갔다. 커다란 바위에 불상의 형태만 그렸을 뿐 수법이 단순하고 양식을 형식화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 전후의 불상 양식으로 추정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어비계곡
자연관광경기도

어비계곡

용문산과 유명산 사이에 숨은 듯 있는 어비산 자락을 감싸고도는 시원한 계곡이 바로 어비계곡이다. 지금은 개울 같은 계곡에 불과하지만 예전에는 물고기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뛰어난 계곡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어비[魚飛]다. 수심이 적당하고 너른 바위를 따라 더 깊이 올라갈 수 있으며 상류에는 사람이 발길이 적어 자연 그대로의 계곡을 마주할 수 있다. 비가 온 후에는 계곡물이 불어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경기도 청정계곡 일환으로 잘 정비된 이곳은 예전엔 계곡을 따라 테이블을 놓고 사유지처럼 식당들이 사용하던 것을 깨끗이 정비하여 계곡을 찾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계곡을 따라 데크길이 설치되어 있고 성수기에는 데크다리와 계곡 중앙에서 분수처럼 물이 쏟아지기도 하며 야간 경관 조명이 설치되어 밤에는 색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성수기만 틀어준다는 분수는 겨울에는 가평 빙벽계곡으로도 유명하다. 근처에 식당이나 펜션, 캠핑장 등이 있어서 식사나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어비산길99번길 9-10

흥룡사
역사관광경기도

흥룡사

백운산 흥룡사는 봉선사의 말사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해발 904m의 백운산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말엽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절터를 정할 때 나무로 만든 세마리의 새를 공중에 날려 보냈는데 그 중 한마리가 백운산에 앉아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창건했을 때는 내원사라 하였고, 대웅전 등 법당이 4동에 이르는 대규모 사찰이었다. 1786년 중건하며 백운사라 이름을 고쳤다가 1922년 다시 중수하면서 흑룡사로 절 이름을 고쳤다. 흥룡사 입구에는 향토유적인 ‘흥룡사 청암당 부도’가 있는데 이는 조선 인조26년 흥룡사의 암자인 보문암을 창건한 청암대사의 사리를 안치한 곳이다. 이 부도는 옥개가 팔각원당형의 기본을 따른 것으로 윗부분은 복연이 조각되어 있고, 탑신은 원형이며 보개는 없어졌다. 탑신에는 ‘청암당’이라 음각되어 있으며 각 부의 재료는 화강암이며 총 높이는 158cm이다. 현재 이 부도 옆에는 묘화당이라 새겨진 석종형의 부도가 나란히 서있으며, 탑신에 강희이십년이란 각자로 보아 숙종 7년에 건립되었다.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포화로 236-73

선유담계곡
자연관광경기도

선유담계곡

포천 이동면 도평리 백운동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신선이 놀던 자리라고 하여 선유담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백운산 기슭을 끼고 돌며 구비치는 영평천 상류 계곡으로 물빛이 푸르고 참 곱다. 물에 잠긴 깎아지른 암벽 그림자도 좋거니와 암벽에 반사되는 물빛도 아름답다. 암벽에는 선유담이라는 세 글자가 암각되어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양사언 선생이 썼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선유담 계곡은 10㎞가 넘는 길이에 계곡은 물이 맑으며 봄.가을로 신선하다. 특히 서쪽에서 동쪽으로 내려앉은 계곡은 벼랑과 울창한 숲을 등지고 있어 한나절 내내 계곡물에 해가 들지 않아 선선하기가 한층 더 깊다. 상류 계곡에는 10여 가구가 상주하고 있으며 민박과 음식점을 겸하고 있어 먹는 것도 크게 불편이 없다. 또 백운계곡으로 잠시 넘어가면 유명한 이동갈비가 있다.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포화로 123

삼가저수지
자연관광충청북도

삼가저수지

삼가저수지는 보은군 외속리면 삼가리에 있는 충북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이다. 속리산 주봉인 천왕봉(1,058m) 남쪽 골짜기에서 발원한 삼가천이 골짜기마다 물을 합수하면서 만수 계곡을 만들고, 삼가 저수지에서 머물렀다 하류인 서원 계곡으로 흐르다가 금강을 만나게 된다. 삼가 저수지는 금강의 발원지 중 하나이다. 삼가저수지 인근에는 구병산 자락에 있는 내속리면의 구병산 마을이 나온다. 이곳은 정감록에 나오는 전쟁과 굶주림을 피할 수 있는 곳인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삼가리

안면암(태안)
사찰충청남도

안면암(태안)

안면암은 대한불교조계종 금산사의 말사다. 사찰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태안을 방문한 여행자들이 거의 들렀다 가는 필수 탐방 코스다. 그 이유는 사찰 앞쪽으로 펼쳐진 바다 풍광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안면암 앞에서 부표 위에 목재를 덧대어 만든 다리 위를 흔들흔들 아슬아슬하게 걸어 여우 섬까지 가게 된다. 물이 빠지면 부교를 건너는 묘미는 덜해도 갯벌에 사는 다양한 생물을 관찰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안면암의 풍광은 또 다르다. 여우섬을 천천히 돌아본 뒤 뭍으로 돌아오며 만나는 안면암은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3층으로 지어진 안면암의 건축도 독특하다. 마치 단양 구인사를 보는 듯 계단으로 이어진 법당이 극락보전, 비로전, 나한전으로 연결된다. 법당 앞에 서서 바다 풍광을 바라보는 것도 특별하다. 삼성각과 용왕각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무량수전과 신중단의 돌탱화를 비롯해 다양한 탱화도 볼 수 있다. 법당을 둘러싸고 있는 야외공간에는 다양한 크기의 불상과 불탑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여수해길 198-160

아산향교
역사관광충청남도

아산향교

아산향교는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고, 조선 선조 8년(1575) 아산리 동쪽 향교골에서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었고, 고종 1년(1864)에 중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경내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대성전은 제사 지내는 공간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인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안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으로, 대성전과 마찬가지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에 맞배지붕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여민루길 82

관음사석탑
문화관광충청남도

관음사석탑

관음사석탑은 관음사 사찰 내 대웅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로 3층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기단부는 탑신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파손되어 있으며, 위층 기단 위로 깎아둔 2단의 괴임돌 역시 모서리가 파손된 상태로 남아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딴돌로 조성하였다. 몸돌은 위로 오를수록 높이가 줄고 있으나 1층 몸돌이 다소 높직한 느낌이다. 몸돌 각 모서리에는 가지런한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을 뿐 별다른 장식은 없다. 두꺼워 보이는 지붕돌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약간 치켜올라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층과 2층이 4단이고, 3층은 3단이며, 각 귀퉁이에는 작은 종을 매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전체적으로 돌을 다듬은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영인로96번길 16-6

천황사(진안)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천황사(진안)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정천면 갈룡리 구봉산에 있는 사찰인 천황사는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헌강왕 때인 875년에 무염 국사가 창건하였고, 1065년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였다. 본래 이 천황사는 주천면 운봉리에 있었으나 숙종 때 중건을 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설선당, 요사채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유형문화유산 제17호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120㎡가 넘는 매우 큰 건물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나한상과 동자상이 벽화로 조성되어 있다. 이외의 유물로는 부도 3기가 전해지는데, 절 입구에 있는 평생 ‘금강경’을 강의하던 명봉의 부도와, 대웅전에서 산 쪽으로 15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애운의 부도이다. 애운부도는 높이 170㎝의 크기로 현재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제1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애운부도 옆에는 높이 213㎝ 크기의 부도 1기가 남아 있다. 1995년 사자사(師子寺)라는 명문이 새겨진 신라 때의 기와가 발굴되기도 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출처: 진안군 문화관광)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정천면 수암길 54

주천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주천서원

주자를 중심으로 여대림·주잠·이황·이이·김충림·김중정 등 7인(人)을 기리고 있는 서원이다. 1924년 광산 김 씨 문중 사당으로 처음 짓고 ‘주천사’라 하였다. 1975년 성균관장의 인증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서원은 홍살문, 외삼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반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9월 15일 제사 지내고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주천면 금평1길 30-7

아침가리계곡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아침가리계곡

아침가리는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한 마을을 칭한다. 인제소재 방태산 기슭에 있는 산마을 삼둔사가리 중 하나로 오지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시간만 햇빛이 비치고 금방 저버리는 첩첩산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침가리계곡은 시원하고 맑은 물과 계곡을 따라 펼쳐진 원시림으로 인해 사시사철 트레킹 코스로 알려져 있다. 아침가리트레킹은 방동약수에서 아침가리까지 난 길을 한참을 걸어 올라간 뒤 계곡길을 트레킹 하며 내려가는 코스이다. 이 코스는 정해진 길이 없으며, 계곡을 따라 걸어도 되고 숲 그늘에서 걸어도 된다.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기린면 추대길 58

대견사
사찰대구광역시

대견사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대견사는 대구광역시 비슬산 정상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이다. 대견사는 신라 하대 초기인 헌덕왕 때에 창건된 신라 천년 고찰이다. 이 절을 창건한 주체는 헌덕왕과 왕비였던 것으로 보이며,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 스님이 1227년 승과에 22세 나이로 장원급제하여 초임 주지로 온 이래, 22년간 주석하여 삼국유사 자료수집 및 구상을 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사찰 역시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폐사되었다가 광해 3년인 1611년과 인조 11년 두 차례에 걸쳐 크게 중창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18세기 들면서 다시 폐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1900년 영친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하여 이재인이 중창하였으나 1908년 허물어지기 시작하여 1917년 6월 『조선 총독부 관보』에 ‘대견사를 폐지한다’고 공시하면서 그 터만 남게 되고 폐사지에는 삼층석탑만이 위태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 한 때는 ‘대견사지’라고 불리었다. 그러다 달성군과 조계종 동화사에 의해 2011년 11월 대견사 재건 공사가 착공되어 2014년 3월 적멸보궁, 요사채, 산신각, 목조 와가 등 건물 4동이 완공되었다. 이로써 대견사가 폐지된 지 100여 년 만에 다시 복원되었다. 설악산봉정암, 지리산법계사와 더불어 1,000m 이상에 자리 잡은 사찰 중 한 곳이며, 불상이 아닌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적멸보궁이라 한다. 대견사에 봉안한 진신사리는 2013년 11월 동화사가 스리랑카 쿠루쿠데사원에서 모시던 부처님 진신사리 1 과를 기증받아 이운 한 것이다. 이 진신사리는 서기 103년부터 스리랑카 도와 사원에서 보관해 오다 1881년부터 쿠루쿠데 사원에 모셔진 사리 4 과 중 하나다. 비슬산 정상에 위치하여 봄이면 비슬산 참꽃 군락지에 진달래가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일연선사길 177

소재사(대구)
역사관광대구광역시

소재사(대구)

소재사는 비슬산 조화봉 남서 중턱 해발 430m에 위치한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 말사이다. 소재사라는 이름은 일체의 재앙을 소멸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절로서,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그 뒤 공민왕 7년인 1358년에 진보가 중창하였고, 1457년 활륜이 중건, 1510년 외암이 중수, 1701년 청심이 중창, 1841년 완산이 중창하였다. 그 뒤 1857년에 법로가 중수하였으며, 1900년 왕산이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대웅전은 1976년 달성군에서 해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러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명부전 역시 최근에 허물어져 다시 중수하였다. 특히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보살좌상은 최근 개금불사에서 출토된 복장품에서 1674년에 조상했고 건륭 6년 신유 3월 20일에 중수개금을 시작하여 4월 6일에 마쳤다고 하는 복장기를 확인하였다. 즉, 조상연대와 중수기록이 있고 또한 지장보살로서는 비교적 큰 규모이며 조선 후기 작품이면서도 조선 전기 양식을 일부 간직하고 있어 조상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부근에는 피부병과 고질병에 좋다는 약수가 솟는 금물정이 있다. 샘의 물 표면에 금가루 모양의 작은 먼지들이 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휴양림길 228

예연서원
역사관광대구광역시

예연서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곽재우(1552∼1617)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곽재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조직하여 경상도 일대에서 활약하여 큰 공을 세운 인물로 붉은 옷을 입은 장군이라는 뜻의 ‘홍의장군’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광해군 10년(1618)에 ‘충현사’로 처음 세웠고 현종 15년(1674)에 규모를 확장하여 서원의 모습을 갖추었다. 숙종 3년(1677) 나라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예연’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고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77년과 1984년에 걸쳐 복원하였다. 현재는 곽재우의 재종숙으로 정유재란 때 공을 세운 곽준의 위패를 추가로 모시고 있다. 경내 건물로는 사당과 강당 등 주요 건물과 제물을 준비하여 두던 고사, 숙소로 사용되던 동·서재 등이 있다. 사당은 곽재우와 곽준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강당은 유림의 회합장소와 교육 장소로 사용하던 건물로 중앙에는 마루를 구성하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한 구조이다.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낸다. 경내에는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비석이 있어 흥미롭다. (출처 : 국가유산청)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구례길 123

용연사(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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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사(대구)

용연사는 사찰 입구에 있는 못에서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사찰은 914년(신라 신덕왕 3년)에 보양국사가 창건하였으며, 1419년에는 천일대사가 중창하였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여러 전각들이 차례로 중건되었고,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용연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유래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한 끝에 가피를 받아 금란가사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귀국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자장율사는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오대산 월정사, 영축산 통도사 등지에 진신사리를 봉안하였고, 이들 다섯 사찰은 5대 적멸보궁으로 불리게 되었다. 용연사의 진신사리는 임진왜란 당시 전란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겨졌던 것을,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이 다시 통도사로 모시던 중 사리 1 과를 이곳 용연사에 봉안하였다. 이후 건봉사, 도리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8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불리게 되었다. 사찰 내에 위치한 금강계단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수계의식을 행하는 신성한 장소로,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 계시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금강계단 앞에는 적멸보궁이라는 전각이 세워지며, 이 전각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금강계단에 모셔진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예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용연사의 금강계단, 삼층석탑, 극락전,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 유물 등은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되어 지정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길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림욕을 즐기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며, 이 길은 비슬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이기도 하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용연사길 260

달성 현풍 석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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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현풍 석빙고

현풍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이다. 남북으로 길게 축조되어 있으며, 출입구가 개울을 등진 능선 쪽에 마련된 남향구조이다. 돌의 재질은 모두 화강암으로 외부에서 보면 고분처럼 보인다. 입구는 길쭉한 돌을 다듬어 사각의 문틀을 만든 후 외부공기를 막기 위해 돌로 뒷벽을 채웠다. 외부는 돌을 쌓고 점토로 다져서 흙을 쌓아 올렸다. 잘 다듬어진 돌로 벽과 천장을 쌓았는데 천장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네 개를 틀어 올리고 그 사이사이에 길고 큰 돌을 얹어 아치형을 이루게 하였다. 천장에는 통풍을 위한 환기구가 두 군데 설치되었고 빗물에 대비한 뚜껑이 있다. 바닥은 평평한 돌을 깔고 중앙에 배수구를 두었다. 당시에는 얼음창고가 마을마다 설치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작은 현풍고을에 이러한 석빙고가 만들어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1982년 석빙고 주위의 보수작업 때 축조 년대를 알려주는 건성비(建城碑)가 발견됨으로써 1730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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