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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3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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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송첨종택
역사관광경상북도

경주 양동마을 송첨종택

경주 양동마을 송첨종택은 경주 손 씨 큰 종가로 이 마을에서 시조가 된 양민공 손소(1433∼1484)가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은 집이다. 양민공의 아들 손중돈 선생과 외손인 이언적(1491∼1553)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一자형 대문채 안에 ㅁ자형 안채가 있고 사랑채 뒤쪽 높은 곳에 신문(神門)과 사당이 있다. 안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고 사랑채는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사랑방과 침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ㄱ자형으로 놓여 있는 사랑채 뒤편 정원에는 수백 년 묵은 향나무가 있다. 대개 사랑방은 큰 사랑방 대청 건너편에 작은 사랑방을 두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집은 작은 사랑을 모서리 한쪽으로 두어 방과 방이 마주하지 않도록 한 점이 눈길을 끈다. 또한 일종의 마루통로 형식으로 꾸민 점 역시 특이하다. 종가다운 규모와 격식을 갖추고 있으며 사랑채 뒤편 정원의 경치 역시 뛰어난데 건물을 지은 수법과 배치 방법들이 독특하여 조선 전기의 옛 살림집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으므로 참고해야 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75-6

부여 군수리 사지
역사관광충청남도

부여 군수리 사지

부여 군수리에 자리하고 있는 백제의 절터로,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1935년 일본 사람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그 결과 중문, 목탑, 금당, 강당 이 남북으로 일직선 상에 배치된 1 탑 1 금당의 구조임이 밝혀졌다. 백제 사찰에서의 1 탑 1 금당의 가람배치는 이 절터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는데, 이후 계속된 조사를 통해서 백제의 기본적인 가람배치로 알려졌다. 금당터의 기단은 기와를 쌓아 만든 것이 특징이며, 유물은 절터에서 골고루 출토되었다. 먼저 강당터 남쪽에서 금동관 조각이 나왔고, 금당터 주위와 탑터에서는 약 1,150점의 옥과 금당 서쪽에서는 금동제방울, 구두 모양의 금구가 출토되었다. 또한 연꽃무늬, 덩굴무늬가 아름답게 조각된 상자 모양의 벽돌과 금제고리, 작은 구슬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목탑의 중심부에서는 군수리 금동미륵보살입상(보물 제330호), 군수리석조여래좌상(보물 제329호)과 칠지도, 철못, 삼족토기를 비롯한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역사관광경상북도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은 경주 남산의 용장사 터에 있는 바위 면에 새겨진 불상이다. 용장사 터에는 이 불상과 함께 삼층석탑(보물 제186호)과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이 남아있다. 불상의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을 겹겹이 새겼고, 정수리의 뼈가 머리 위로 솟아 상투처럼 보이는 육계는 크고 펑퍼짐하게 표현하였다. 눈, 코, 입이 뚜렷하게 새겨진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보인다. 옷 주름은 평행선을 빼곡하게 그려 넣어 표현하였다. 무릎 위에 놓인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쪽에 놓여 있다. 머리 광배와 몸 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왼쪽 어깨 바깥 부분에 10자 정도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앞부분을 태평 2년 8월(太平二年八月)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마애여래좌상은 977년 또는 102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역사관광경상북도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石築)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 줄 뿐이다. 절을 감싸고 뻗은 동쪽 바위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서 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자연암석을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바로 위층 기단이 올려져 있다. 즉, 자연암석이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고 그 아래 바위산 전체가 또한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는 셈이다. 위층 기단은 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조각을 새기고 2장의 판돌로 덮어 기단을 마감하였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져 원래의 상태를 알 수 없고 쇠막대를 꽂았던 구멍만 남아 있다. 쓰러져 있던 것을 1922년에 재건하였는데, 사리장치는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각 부의 조화가 아름다우며 주변 자연과의 조화 속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문화관광경상북도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쌍탑이 동·서로 건립된 특이한 예의 두 탑이다. 동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서 쌓아 올린 모전석탑의 양식을 취하고 있고, 서탑은 전형적인 3층석탑의 양식이다. 동탑은 탑의 토대가 되는 바닥돌이 넓게 2중으로 깔려있고, 그 위에 잘 다듬은 돌 여덟 개를 한 단처럼 짜 맞추어 기단부(基壇部)를 이루고 있다. 탑신부(塔身部)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돌 하나로 만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과 낙수면이 모전석탑처럼 똑같이 각각 5단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 서탑은 위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 2단의 기단은 한 면을 둘로 나누어 팔부신중(八部神衆)을 새겼다. 팔부신중은 신라 중대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돌 하나로 되어 있고 각 층에 모서리기둥을 조각하였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쌍탑은 대체로 동일한 양식으로 만들어지는데 비해, 이 동·서 두 탑은 각각 양식이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 흔치 않은 모습이며,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마주 서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경주 탈해왕릉
역사관광경상북도

경주 탈해왕릉

경주 동천동에 있는 신라 제4대 탈해왕(재위 57~80)의 무덤으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무덤의 형식 자체는 일반적이나, 신라 초기의 왕릉이고 특히 최초의 석 씨 왕릉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무덤은 높이 4.5m, 지름 14.3m 크기로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봉토무덤이다. 주변에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 겉으로 보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으로 추측된다. 왕릉 초입에는 탈해왕의 제사를 모시기 위한 전각 숭신전이 있다. 탈해왕은 신라 최초의 석 씨 왕으로 62세에 즉위하여, 24년 만에 세상을 떠났으며, 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왜국에서 동북쪽으로 1천 리 떨어져 있는 다 파나 국(또는 완하국, 용성국)의 왕비가 잉태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이는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 하여 그 알을 궤에 넣어 바다에 버리니 동해 아진포에 닿았다. 그때 한 할머니가 이것을 열어 보고 어린아이가 있어 데려다 길렀다. 배에 까치들이 울며 따라왔으므로 까치 작(鵲)에서 새 조(鳥) 자를 떼서 석(昔)으로 성을 삼고, 아이가 궤를 풀고 나왔다 해서 이름을 탈해(脫解)라 지었다. 탈해왕은 석 씨의 시조로서 신라 최초 석 씨 왕이 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경주 망덕사지
역사관광경상북도

경주 망덕사지

경주 낭산[狼山]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절터로 사천왕사와 마주하고 있다. 처음 지어진 때는 정확하지 않으나 신라 문무왕 또는 신문왕 때로 전한다. 현재 절터에는 동·서 목탑터와 그 북쪽으로 금당터와 강당터, 남쪽으로 중문터, 그리고 이를 둘러싼 회랑터가 남아 있어 통일신라시대 전형의 쌍탑 가람배치를 볼 수 있다. 이밖에 중문터 남쪽에 계단터가 잘 남아 있고 그 서쪽으로는 당간지주(보물)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절은 황룡사, 사천왕사, 황복사와 함께 경주의 중요한 사찰이었던 곳으로 그 의미가 크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진천 산수리와 삼용리 요지
역사관광충청북도

진천 산수리와 삼용리 요지

진천 산수리와 삼용리 요지는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을 끼고 전개되어 있는 야산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부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문화유적조사 중 1986~1990년까지 대전 한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된 유적이다. 4차에 걸친 발굴조사결과 우리나라 원삼국시대에 타봉문 토기를 생산하였던 대형오지군으로서 확인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굴조사된 토기 가마터 중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가마의 구조가 독특하고 잔존상태가 양호하여 우리나라 원삼국시대 이래 삼국시대 토기 가마 구조나 토기의 발달과정, 한·중·일 토기 가마 비교 연구 등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됨으로써 이를 사적으로 지정·보존해 오고 있다. 진천 산수리 요지는 1988년 2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진천 삼용리 요지는 1991년 2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 7월 28일에 사적 ‘진천 산수리와 삼용리 요지’로 통합 지정하였다.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문화관광경상남도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원경왕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원래 반야사의 옛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에 해인사 경내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려 인종 3년(1125)에 만들어진 이 비는 조각 기법이나 간단한 형태의 지붕돌 등에서 고려 중기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비의 높이는 2.3m, 너비는 1.2m이고 재료는 화강석이다. 거북 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색이다.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숙종 9년(1104)에 승통이 됐다. 예종의 스승을 맡기도 했으며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이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김부일이 짓고 글씨는 이원부가 썼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탑골공원
문화관광서울특별시

탑골공원

조선시대 원각사터에 세운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다. 조선 세조 13년에 원각사로 건립하였던 것을 고종 34년인 1897년 도지부 고문인 영국인 브라운에 의해 공원으로 조성되어 1920년에 공원으로 개원하였다. 1919년 3·1 운동 당시 처음으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3·1 운동의 출발지로서,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곳이다. 1992년 5월 28일 공원 명칭을 파고다 공원에서 탑골공원으로 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원 내에는 독립운동 봉화에 불을 댕겼던 팔각정을 중심으로 국보 원각사지 10층 석탑, 보물 원각사비 등의 문화재와 3·1 운동 기념탑, 3·1 운동 벽화,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 한용운 선생 기념비 등이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99 (종로2가)

자연관광경상남도

와룡산(사천)

와룡산은 높고 낮은 봉우리가 아흔아홉 개로 형성되어 있어 구구연화봉이라고도 불리며,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와룡산이라 불린다. 와룡산을 등반하다 보면 유난히 높게 쌓여 있는 돌탑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 수도 어마어마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으며 소원을 빌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또한 은 정기가 많이 나는 산인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와룡사와 백천사, 백룡사 등의 유서 깊은 많은 암자와 절을 품고 있다. 와룡산은 5월이면 진분홍의 철쭉이 온산을 뒤덮어 신선이 산다는 무릉도원에 온 듯한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낸다. 와룡산 철쭉은 정상인 민재봉을 중심으로 민재봉을 거쳐 새섬바위, 민재봉 삼거리, 기차바위로 향하는 세 갈래로 뻗은 능선과 좌우 사면이 철쭉으로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경상남도 사천시 벌리동

봉명산시립공원
자연관광경상남도

봉명산시립공원

봉명산은 시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울창한 숲과 수려한 경치, 잘 조성된 산책로와 등산로 덕분에 삼림욕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신라 지증왕때 창건한 다솔사와, 보안암석굴, 이맹굴, 서봉사지 등이 있어 고고학계의 발길이 잦을 뿐 아니라 300여 미터인 봉암산, 천왕산 등을 연결하는 산책로는 등산코스로도 좋으며 정상에 서면 한려해상 국립공원인 다도해를 관망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이 찾고 있다. 정상에 오르면 남으로 금오산, 다도해, 서쪽으로 백운산, 서북으로 지리 능선, 웅석봉 등을 볼 수 있다.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용산리

각산
자연관광경상남도

각산

각산산성과 각산봉수가 있고,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편이며 삼천포 앞바다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삼천포항 서쪽에 바다와 접하면서 실안동을 말발굽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이 각산이다. 건너편 와룡산의 위세가 워낙 대단하여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근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산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산세가 포근한 느낌을 주고 있다. 남릉에 위치한 각산산성과 봉화대가 이 산의 위치적 중요성을 더욱 일깨우고 있다. 각산 전망대에서는 사천의 아름다은 장관을 볼 수 있으며 풍경을 찍기에도 아주 좋은 사진 명소이다. 사천여행 시 가족과 함께 올라가 추억을 남기기 좋은 곳이다.

경상남도 사천시 동림동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천석실

동천석실은 주자학에서 신선이 산다는 선계세상으로 부용동을 한눈에 굽어 볼 수 있으며 낙서재의 정면에 바라보이는 산중턱에 있다. 3,306m²(1,000여 평)의 공간에 한 칸 정자와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전을 조성하고 차를 마시며 시를 지었던 곳이다. 동천석실은 천하의 명산경승으로 신선이 살고 있는 곳을 동천복지(洞天福地)라고 한 데서 이름 지어진 곳으로 휴식과 독서를 위해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정자이다. 석담에는 수련을 심고 못을 둘로 나누어 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구멍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희황교라 칭하였다. 지금도 석실 앞에는 도르래를 걸었다는 용두암과 차를 끓여 마신 차바위가 남아있다. 윤선도 원림 매표소에서 동천석실 입구까지 차량으로 약 5분 소요되며 동천석실 입구에서 동천석실까지 약 20분 산을 올라가야 한다. 금, 토, 일요일에는 세연정에 문화해설사가 상주하므로 동천석실과 곡수당, 낙서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보길면

망끝전망대
문화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망끝전망대

망끝전망대는 보길도의 가장 서쪽인 보옥리 바로 못 미쳐 망월봉 끝자락의 돌출부에 자리한다. 제주도 한라산 산신이 지리산 산신의 초청을 받아 가던 중 보길도 산봉우리에 걸쳐진 달의 모습에 취했다는 망월봉이 있는데 이곳을 망월봉의 끝부분이라는 의미로 망끝이라 불렀다. 전망대에 서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천길 단애가 펼쳐진다. 끝없이 탁 트인 시원한 바다와 함께 서해바다로 붉은 몸을 감추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 망끝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추자도와 함께 옥매, 가도, 상도 등 다도해의 수많은 섬과 함께하는 일몰은 한 편의 서사시다. 맑은 날은 망끝전망대에서 멀리 제주도 섬이 보인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 산 148-6

범바위
자연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범바위

청산도의 명산 보적산에 있으며 범의 머리 모양을 닮아 범바위라고 부른다. 범바위 부근은 강한 자성의 영향으로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아 신비의 바위라고 불린다. 이 바위 근처에 가면 범바위의 기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호랑이가 웅크린 모습의 범바위에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신선이 청산의 생기를 이어갈 열 가지 생명을 십장생이라 하고 그들을 모으라고 범에게 시켰는데 십장생에 포함되지 않은 범은 나쁜 마음을 먹었다. 그것을 알게 된 신선이 오늘 밤 달빛이 바다에 비추기 전에 청산도를 떠나라고 범에게 말했다. 혼이 난 범이 섬을 떠나려고 했지만 아기범이 자꾸 뒤처져서 산의 정수리를 넘으려는 순간 달이 바다를 비추고 어둠이 가시며 범과 아기범은 커다란 바위가 된 채 이곳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호랑이가 바위를 향해 포효한 소리가 자신의 소리보다 크게 울리자, 이곳에 더 큰 호랑이가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놀라 섬 밖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범바위라 불리게 되었다. 큰 범바위 위쪽 범바위전망대를 지나 더 오르면 작은 범바위도 있다. 범바위에 오르면 거문도와 제주도가 보이고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포구에서 거북이 세 마리를 찾는 즐거움도 이곳을 찾는 재미 중에 하나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청산면 청계리

신흥해수욕장
자연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흥해수욕장

신흥해수욕장은 지리청송해변과 함께 청산도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이다. 손을 담그면 금세 파랗게 물들어버릴 것 같은 쪽빛바다를 자랑한다. 신흥해수욕장은 지리청송해변과는 청산도 섬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사장이 매우 넓은 해수욕장으로, 지리청송해변에 비해 편의 시설이나, 방풍림은 적으나 물이 깨끗하고 조용하며 주변 바다가 전부 낚시터이다. 썰물때면 2km에 달하는 모래사장이 모래섬이 되고 물이 차면 마을 앞까지 물이 차는 자연의 신비를 감상할 수 있다. 간조시 드러나는 수만 평의 은빛 모래사장에서 가족이나 연인끼리 백사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조개잡이는 또 다른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 이곳에서 슬로길 7코스, 들국화길을 이용하여 목섬(항도)까지 갈 수 있는데 목도까지 가는 길은 청산도 비경으로 꼽힐 만큼 아름답다. 가을이면 신흥리에서 항도까지 주변 갓길이 들국화로 조성되어 있어 들국화길이라 부른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청산면 신흥리

읍리지석묘와 하마비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읍리지석묘와 하마비

우리나라의 지석묘는 무덤의 방이 땅 위에 있는 북방식의 바둑판처럼 뚜껑 돌 밑으로 조그만 받침돌을 고이는 남방식, 그리고 판석만을 놓고 땅 밑에 무덤 방을 만든 개석식이 있다. 남방식인 이 유적은 청산면 읍리에 위치하는데 마을 동쪽 도로변에 ‘골기미’, ‘독배기’로 불리는 곳에 하마비와 지석묘가 있다. 이 지석묘는 도로공사로 훼손되어 원래 형태는 파악이 어렵고, 현재는 남방식을 띠는 3기만이 완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호는 4개의 지석(고인돌)이 드러나 있고, 2호 역시 4개의 지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3호는 벽석이 드러나 있는 북쪽 판석이 없어졌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때 지석묘 부근에서 마제석검 등을 비롯한 석기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하마비란 조선시대 종묘 및 대궐 문 앞에 세워놓던 비로 누구든지 그 앞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의 글을 비에 새겨두었다. 읍리 하마비는 민간신앙에 기초를 둔 것으로 이 비의 주변에는 10여 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비는 앞면에 보살상을 새겨두고 그 아래 하마비라는 글자는 시멘트로 만든 하단에 새겼다. 불상의 머리 위에 보관이 표현된 것으로 미루어 보살상으로 짐작되며, 고려말·조선초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청산면 읍리

지리해수욕장
자연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리해수욕장

지리해수욕장은 청산도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일몰이 아름다운 해수욕장 가운데 하나이다. 해변에는 폭 100m, 길이 1㎞의 백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해수욕장 뒤편에는 200년 이상된 노송 500여 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해 질 녘 점점이 떠 있는 섬의 서쪽으로 떨어지는 해는 붉다 못해 바다를 검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선명하다. 청산도는 우리나라 최대의 바다낚시터로 이곳 역시 돔과 능성어, 우럭 등 고급어종이 풍부한 곳이다. 지리청송해변은 슬로길 10코스에 해당하며 이 길을 노을길이라고 부른다.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지리청송해변에서 진산리 몽돌해변까지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드는 단풍길이 펼쳐진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청산면 청산로 1462-58

우암 송시열 글쓴바위
자연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우암 송시열 글쓴바위

송시열 글쓴바위는 보길도 선백도마을 앞 바닷가의 암벽을 말한다. 이곳은 선조에서 숙종조의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왕세자 책봉문제로 관직이 삭탈되고 제주 유배길에 올라 경치가 좋은 이곳에서 잠시 쉬며 임금에 대한 서운함과 그리움을 시로 새기어 바위에 새겨 놓은 것이다. 지역에서는 우암 송시열 글쓴바위라고 부른다.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시로 표현하여 바위에 새겨놓았다. 이후 우암의 후학인 임관주라는 사람이 1707년 같은 바닷길로 유배를 가다 이곳에 들러 [동국의]라는 오언 절구를 남겨 오늘에 전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송시열 암각시문 이정표에서 산책하듯 약 300m 숲 터널길을 5분~10분 정도 걸어가면 탁 트인 바다와 암벽을 만난다. 송시열이 바라보았던 글쓴바위 인근 푸른 바다 위에는 지금은 전복 양식장이 펼쳐져 있어 이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을 선사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보길면

아그로랜드 태신목장
문화관광충청남도

아그로랜드 태신목장

아그로랜드 태신목장은 한국 낙농업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1968년에 설립되었으며 1978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해 왔다. 2004년부터는 낙농 체험 목장을 운영하기 시작하였고 목장을 개방해 각종 가축이 있는 목장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푸른 초원에서 느낄 수 있는 목가적인 풍경과 자연 속에서 소와 함께하는 체험의 장을 제공한다. 시설은 목장 체험장, 승마 체험장, 조각공원, 야생화정원, 초지 체험장, 생태연못과 산책길, 동물농장, 사랑앵무새장, 한우 방목지, 측백나무 미로 등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체험 프로그램은 트랙터 열차 타기, 소젖 짜기, 목장 체험, 승마 체험, 아이스크림 만들기가 운영되고 있다. 주변에는 면천읍성, 면천향교, 합덕제 수변공원, 합덕수리민속박물관 등이 있다.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몽2길 231

통리해수욕장
자연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통리해수욕장

백사장 길이 0.7㎞, 평균 수심 1.5m로 중리해수욕장과 함께 보길도의 명소로 꼽힌다. 모래가 곱고 경사가 완만하여 수심이 얕고 백사장이 넓어 여름에 피서객이 많이 찾는다. 백사장 뒤로는 길이 약 180m, 폭 10m의 곰솔로 이루어진 소나무숲이 있어 야영이나 차박이 가능하다. 해수욕장의 앞으로는 목섬, 기섬, 토끼섬, 갈마섬, 소도, 당사도 등 크고 작은 소안군도의 섬들이 펼쳐져 있어 다도해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하루 두 번씩 썰물이 되면 백사장에서 고동, 게, 바지락, 해삼 등을 딸 수 있으며 해안 왼쪽으로 보이는 목섬까지 연결되어 걸어서 갈 수 있다. 주변 섬이나 갯바위에서 연중 바다낚시가 가능하며 인근에 보길도 윤선도 원림, 세연정 등의 역사관광지를 볼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보길면 중통리

진산리해수욕장
자연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산리해수욕장

진산리해수욕장은 소안도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편의시설은 다른 곳에 비해 부족한 편이나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바다낚시가 잘 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바닷가 모래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해 주는 소나무 방풍림이 있다. 해수욕장의 앞으로는 제주해협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저녁이 되면 당사도의 등대가 불을 밝혀 여름밤의 운치를 더한다. 인근의 미라리 해변과 같이 둥근돌로 이루어져 있어 갯돌 위를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이 제법 자극이 돼 지압에 좋고 해맞이길에 위치해 있어 인상적인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바닷가 갯바위 앞에는 작은 돌섬 노적도가 그림처럼 떠 있다. 청산도슬로길 8코스가 진산리해수욕장을 지나간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소안면 진산리

곤충생태관
박물관·전시경기도

곤충생태관

2001년에 개관한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에 위치한 곤충생태관은 곤충을 관찰하며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생태문화 공간이다. 이곳은 하수 처리장에서 수질 기준에 적합하도록 처리된 방류수를 조경수와 화장실 용수, 청소용수, 소방용수로 사용하여 물 절약을 실천하고 생활폐기물 폐열을 활용하여 난방을 하는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있다. 곤충생태관은 전시 및 생태관 시설과 사육시설, 식초 식물 재배 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물로는 살아있는 나비와 장수풍뎅이, 물방개 등 36여 종의 살아있는 곤충, 타란툴라, 민물고기 등 곤충 이외의 특별한 동물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나비표본을 포함한 330여 종의 표본을 볼 수 있다. 곤충생태관에는 다양한 교육,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절지동물의 겨울나기, 자연에서 찾은 생체모방 기술 등이 있으며,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 가능하다.

경기도 구리시 검배로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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