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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3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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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사(남해)
역사관광경상남도

무민사(남해)

‘지조 지킨 충신, 최영 장군 기리는 사당’ 무민사는 최영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남해대교를 지나서도 40분 정도 달려 남해군의 끝자락 미조면, 무민사는 아름다운 미조 항이 내려다보이는 왼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최영 장군은 고려의 유명한 충신인 최유청의 5대손으로 충숙왕 4년(1317)에 출생하였다. 1358년에 양광 전라도 왜구체복사가 되어 서해안과 남해안에 침입하는 왜구들을 격파하는데 큰 전과를 올린 명장이다. 1380년에는 해수도통사가 되어 삼남지방을 순찰, 왜구의 침입을 막기도 했다. 1388년에는 지금의 총리인 문하시중이 되었다. 최영 장군은 문화시중이 되어 자신과 고려왕조의 운명을 결정한 요동정벌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는 왕과 비밀리에 의논하여 원나라를 도와 요동을 정벌하기로 결정했다. 최영 팔도도통사, 이성계 우군도통사, 조민수 좌군도통사. 이렇게 구성된 요동 정벌군 3만으로 원정을 떠났다. 고려 말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 왕조를 건설할 야심에 차있던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역사적인 회군을 하여 왕을 폐위시켰다. 최영 장군도 이성계의 손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다. 최영 장군은 고려 우왕 때 남해군 평산포 수군 진영(만호가 주둔하던 곳. 지금의 해군기지)을 순시한 뒤 미조항에 들러 수군들을 격려한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미조진항을 지키던 첨사(종 3품)는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 나이가 많은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최영 장군의 영정과 칼이 바닷가에 있으니 찾아서 잘 모셔 놓으라”고 했다. 첨사는 꿈에서 깨어나 수문 장인 봉 장군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찾아볼 것을 지시했다. 봉 장군은 급히 바닷가에 나가 나무로 만든 궤짝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최영 장군의 영정과 칼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첨사는 이것을 짚으로 싸서 모셔 놓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나자 영정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현재의 무민사 자리에 영정이 내려앉았다. 첨사는 이곳에 조그마한 사당을 지었다. 그리고 이름을 ‘무민사’라 했다. 끝까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장군을 기리기 위해 봄, 가을 두 번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남해대로 14-11

설리해수욕장
자연관광경상남도

설리해수욕장

설리는 미조면 송정솔바람해변에서 불과 1㎞ 남쪽 등넘에 있는 자그마한 어촌이다. 이곳에 위치한 설리해수욕장은 하얀 눈 같은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져있다. 이곳 앞바다에서는 유어장 바지낚시와 통발체험, 갓후리체험 등의 어촌체험이 가능하다. 해녀상을 쫓아가면 설리어촌체험관이 있다. 설리해수욕장은 조류의 흐름이 좋아 해초류가 잘 자라 어패류의 먹이가 많은 곳이기도 해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다. 선상 낚시를 전문으로 하는 주민도 있어 선상 낚시도 즐길 수 있다. 또한 여름철에는 설리 앞 사도라는 섬까지 카약을 타고 가서 깨끗한 바닷물 속 생물을 원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스노우쿨링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설리마을 뒤에는 2020년 12월 정식개장한 전망명소 설리 스카이워크를 만날 수 있다. 강화유리바닥 아래로 보이는 투명한 바다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풍경은 남쪽바다 감성여행에 다시금 빠져들게 한다.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미송로303번길 70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
자연관광경상남도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

방조림은 바닷물이 넘치는 것을 막고 농지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숲이며, 어부림은 물고기가 살기에 알맞은 환경을 만들어 물고기 떼를 유인하는 역할을 하는 숲이다.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17세기에 만들어졌으며, 방조림과 어부림의 역할을 모두하고 있어 ‘방조어부림’이라고 불린다. 이 숲의 길이는 750m이며 너비는 40m 내외이고 나무의 높이는 대체로 10~15m이다. 팽나무·푸조나무·참느릅나무·말채나무·상수리나무·느티나무·이팝나무·무환자나무 등의 낙엽활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다. 19세기 말에 숲에 있는 나무 일부를 베어냈다가 그해 폭풍으로 마을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이 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라는 말이 전해 내려왔고, 마을 사람들은 숲의 나무를 베면 벌금을 내기로 약속하며 숲을 지켜 왔다고 한다. 그 덕분에 1933년 큰 폭풍이 닥쳤을 때 이곳의 피해는 이웃 마을에 비해 아주 적었고, 이후 마을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숲을 지키게 되었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숲에서 가장 큰 이팝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제사를 지내 마을의 평안을 빌고 있다.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산 12-1

남해독일마을
역사관광경상남도

남해독일마을

남해 독일마을은 1960~70년대 독일로 파견되었던 광부와 간호사들이 귀국 후 정착하며 형성된 독특한 테마 마을이다. 파독 근로자들의 삶과 문화를 기념하고 이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조성되었으며, 언덕을 따라 늘어선 독일식 주택들이 마치 유럽에 온 듯한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붉은 지붕과 알록달록한 외벽이 특징인 마을 주택 일부는 여행객을 위한 숙박 시설로 운영되어 현지 가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마을 내 카페와 음식점에서는 독일식 소시지와 맥주 등을 맛볼 수 있어, 한국 속 작은 독일의 정취를 오감으로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경상남도 남해군 독일로 89-7

자연관광경상북도

응봉산(울진)

응봉산은 울진군 북면 상당리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사이에 있는 산이다. 울진 쪽에서 산을 보면 비상하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어 응봉산으로 불리고 있다. 또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어느 조 씨가 매사냥을 하다가 매를 잃어버렸는데 그 매를 찾아 응봉이라 하였고, 그곳에 좋은 묏자리가 있어 부모의 묘를 써 집안이 번성하였다고 한다. 응봉산 지역은 산세가 험준하고 숲이 울창하며 전반적으로 자연 본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산이다. 동쪽 기슭에는 덕구계곡이 있으며, 덕구계곡 남쪽 등 너머는 구수곡계곡이 있어 맑은 물이 항상 흐르고 있다. 계곡의 길이만 약 12㎞에 이르며, 크고 작은 폭포와 암반이 산재한 작은 당귀골과 용소골이 비경으로 남아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구리

항도몽돌해변
자연관광경상남도

항도몽돌해변

항도몽돌해변은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에 위치한 한적한 해변이다. 미조 주민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조용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목섬은 남해의 숨은 비경으로 손꼽히며, 썰물 때 바닷길이 드러나 마을과 이어지는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선착장을 기준으로 한쪽은 백사장, 다른 한쪽은 몽돌해변이 펼쳐져 있어 색다른 해안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 산책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송정리

창선대교타운
테마파크경상남도

창선대교타운

남해안 한려수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창선면 대벽리 일원에 조성되어 있는 창선대교타운은 2003년 4월 28일 창선, 삼천포대교의 개통과 아울러 대교 입구에 조성하였고, 총면적을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하여 공용주차장 조성, 공중 화장실, 오수 처리 시설 등의 공공시설을 설치하여 관광객의 편의제공과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현재 창선대교타운은 창선대교의 ‘백만불의 야경’과 함께 범선 모양의 활어 위판장, 고급 레스토랑, 활어회센터, 특산물 판매장, 자동차 극장 등 다양한 시설이 있고, 특히, 창선대교타운 내에 위치한 창선유람선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승선하게 되면 창선도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대벽리

모상개 자연발생 유원지
자연관광경상남도

모상개 자연발생 유원지

모상개는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장포리 마을 끝에 위치한 작은 바닷가이다. 약 300m 길이의 아담한 해안으로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여행객들이 찾는다. 인근에는 펜션이 있어 숙박이 가능하지만 편의시설이 많지 않아 필요한 물품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남해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으며, 주변에는 사우스케이프 CC와 장군산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

화방사(남해)
역사관광경상남도

화방사(남해)

화방사는 망운사 자락에 있는 신라시대에 지은 사찰로 용문사, 보리암과 함께 남해군 3대 사찰 중 하나이다. 창건당시에는 연죽사라 불렀고,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근거지로 쓰이다가 불에 타 없어진 것을 현 위치로 옮기면서 절 이름을 화방사라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응진전, 명부전, 칠성각, 일주문, 채진루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 채진루는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산내 암자로 망운암이 있다. 사찰 내 유물로는 옥종자, 금고, 이충무공비문목판 등이 있다.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화방사길 128-6

진주 남강음악분수대
문화관광경상남도

진주 남강음악분수대

진주성 서장대 아래 남강변에 자리한 ‘진주 남강음악분수대’는 음악과 빛, 그리고 남강의 풍경이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되는 야간 관광 콘텐츠로, 시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감동과 휴식을 선사하는 명소이다. 클래식부터 대중가요까지 100여 곡이 넘는 다양한 음악에 맞춰 시원하게 뿜어 오르는 물줄기가 리듬을 타며 춤을 추고, 화려한 조명이 남강 위를 수놓으며 낭만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이곳의 분수 연출은 단순한 자동 반응형이 아닌, 음악의 흐름과 감정선을 반영해 수동으로 구성된 예술적 퍼포먼스로, 매 공연마다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선선한 강바람을 따라 퍼지는 선율과 반짝이는 물빛은 진주의 밤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채우며, 인근의 진주성, 국립진주박물관, 진주남강유등전시관, 소망진산 유등테마공원 등과 어우러져 하나의 완성된 야경 관광 코스를 이룬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542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 군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 군

이팝나무라는 이름은 꽃이 필 때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여 이밥, 즉 쌀밥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도 하고, 여름이 시작될 때인 입하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곳에 따라서는 나무의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팝나무는 낙엽활엽 교목으로 잎은 넓은 난형, 또는 타원형이며 양끝이 뾰쪽하고 양면에 털이 나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령은 250년이며, 암수 구별이 있다. 꽃은 자웅 2개로 각 꽃대마다 또는 한가운데서부터 피어오르는 취산화로써 5월 20일에서 25일 사이에 꽃이 피어 한꺼번에 지는 것이 벚꽃과 비슷하다. 이팝나무는 습기가 많은 계곡이나 개울 근방에 자생한다.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경기도에 야생하고, 일본, 대만, 중국 등의 고산지대에 군락을 이루고 있으나, 진안군처럼 거목이 군락을 이룬 곳은 매우 드물다.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의 나이는 약 280살(지정당시 기준) 정도이고, 높이는 13m 내외이며, 가슴높이 둘레는 1.18m에서 2.52m까지 된다. 마령초등학교 운동장 좌우담장 옆에 7그루가 모여 자란다. 이곳 주민들은 이팝나무를 이암나무 또는 뻣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숫나무 3그루, 암나무 10그루가 있었으나, 현재는 숫나무 2그루, 암나무 5그루가 남아 있다. 1997년에 숫나무 20주를 보식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마령면 임진로 2122

북악산 숙정문
역사관광서울특별시

북악산 숙정문

숙정문(肅靖門)은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하나로, 한양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처음에는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숙정문(肅靖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존 도성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다. 1976년에 문루를 새로 지었다.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년 4월부터 서쪽 성곽 0.5㎞, 북쪽의 진입로 0.6㎞ 구간과 함께 다시 개방했다. 1963년 1월 21일 서울 한양도성에 포함되어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낙산공원
문화관광서울특별시

낙산공원

낙산공원은 대학로와 동대문으로부터 이어지며 역사와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원이다. 낙산은 지형이 낙타의 등처럼 생겨 낙타산이라고도 했고, 궁에 우유를 보급하던 왕실 목장이 있어 타락산이라고도 불렀다. 1960년대 이후 시민아파트와 밀집된 주택으로 낙산 본래의 모습이 사라지게 되었고, 서울시가 낙산 복원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공원화 사업이 진행되어 2002년 7월 낙산공원으로 개원하였다. 낙산공원 중앙광장에는 낙산전시관과 중앙무대, 매점 등이 있어서 쉬어가기 좋고 광장 바로 아래 주차장이 있어서 중앙광장으로 오기도 편하다. 낙산전시관은 낙산공원 입구에 있는 시설물로 낙산의 유래, 역사적 인물, 한양도성의 사진 자료 및 모형이 전시되어 낙산공원을 방문하는 시민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주말에는 낙산과 서울한양도성에 관한 공원 이용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광장 한쪽으로는 낙산정이 있다. 낙산정은 낙산을 복원하면서 만든 정자로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서울한양도성과 푸른 숲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각광받고 있다. 언덕 정상에서 주택과 벽화가 있는 이화동 벽화마을로 갈 수 있고 흥인지문과 한양도성길로 가는 동대문 코스, 외부 성곽 벽면 전체를 보면서 걸을 수 있는 한성대 입구 방면 코스 등 다양한 코스가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애니메이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루미와 진우가 대화를 나누며 걷던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다. 성곽 너머로 펼쳐지는 서울의 도시 풍경이 인상적으로 담겨, 애니메이션 속 감성을 더욱 깊이 있게 전한다. 실제로 방문하면 고즈넉한 성곽길과 함께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산길 41

광희문
역사관광서울특별시

광희문

광희문은 1396년(태조 5년) 도성 창건 때 동남쪽에 세운 소문이다. 광희문은 실질적인 도성의 남소문으로 이를 흔히 수구문으로 불렀다. 청계천이 흘러 나가는 곳에 세워진 수구가 거리상으로는 광희문보다는 동대문이 가깝지만, 남소문이 장충단공원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따로 있었기 때문에 편의상 수구문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수구문은 실제로는 시구문으로 이용되었으니, 서쪽의 서소문과 함께 도성 내의 장례행렬이 동쪽 방향으로 지날 때 통과하는 문이었다. 임진왜란으로 도성과 궁성이 파괴될 때 광희문도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광희문은 일제가 전차궤도를 부설하면서 성곽을 철거할 때도 문과 문루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6·25 전쟁으로 문루가 파고 된 상태로 방치되었다. 그 후 1975년에 도로 중간에 위치하게 되어 원위치에서 남쪽으로 15m 옮기는 이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1975년 11월에 준공되었다.

서울 중구 광희동2가

홍지문 및 탕춘대성
역사관광서울특별시

홍지문 및 탕춘대성

탕춘대성은 조선 후기 도성방어체계를 보여주는 독특한 구조의 방어성으로, 한양의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여 세운 성이다. 도성과 북한산성 사이 사각지대인 지형에 맞게 두 성 사이를 이어 성벽을 만든 일종의 관문성(關門城) 성격을 지녔다. 성곽 둘레는 약 4㎞로서, 성 안에 연무장(演武場)인 연융대(鍊戎臺)를 만들고 군량창고 등을 갖추었다. 성벽은 크기가 고른 정방형의 둘로 반듯하게 쌓아 숙종 때 성을 쌓는 기법을 잘 보여준다. 홍지문은 홍예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문루를 지었는데, 대개의 성문처럼 우진각지붕이다. 그 옆으로 이어진 수문(水門)인 오간수대문은 홍예 5칸을 틀어 수구(水口)로 썼다. 성의 이름은 연산군 때 세검정 동편 봉우리에 탕춘대(현재 세검정초등학교)를 쌓고 연회를 베풀었던 것에서 유래했는데, 홍지문은 한북문으로도 불렸다. 1921년 홍수로 인해 홍지문과 오간수대문은 무너졌으나 1977년 탕춘대성과 함께 다시 지어졌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홍지동

청계천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청계천

청계천은 종로구와 중구 사이를 가르는 10.84㎞의 하천이다. 2003년 7월부터 2005년 9월까지 복개한 청계천로와 삼일로 주변 5.84㎞ 구간을 복원하고 총 22개의 다리를 설치하는 등 시민들의 쉼터로 탈바꿈하기 위한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하였다.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각종 문화행사 등이 열리고 있으며, 누구나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도심 속 휴식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신선대(거제)
문화관광경상남도

신선대(거제)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도장포마을 바닷가에 위치한 커다란 바위로 신선이 놀던 자리라 하여 신선대라 불린다. 신선대는 주변 해안경관과 더불어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갓처럼 생겨 갓바위라고도 불리는데 벼슬을 원하는 사람이 이 바위에 득관의 제를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바위에 서면 멀리 다도해 풍경이 펼쳐지고, 바위 옆으로 몽돌이 깔려 있는 작은 해수욕장인 함목해수욕장이 있으며, 도장포 마을 언덕에 신선대 전망대가 있어 탁 트인 바다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신선대 전망대는 해금강 가는 길 오른쪽에 있으며 자동차로 접근하기 용이하다.

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동국사(군산)
사찰전북특별자치도

동국사(군산)

동국사(東國寺)는 1909년 일본 승려 선응불관 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일본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며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온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그리하여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의 많은 창문이 일본식 사찰의 특징을 나타낸다.조계종 제24교구인 고창 선운사의 말사로, 동국사의 대웅전은 2003년 7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동국사의 본래 이름은 금강선사였다. 금강선사는 1909년 일본인 승려 내전불관이 군산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창건한 조동종 사찰이다. 일본 불교는 1877년 부산 개항과 함께 일본 정부의 요청에 의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정토진종 대곡파가 포교를 개시하였으며, 1904년 군산에도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이후 일연종이 뒤를 이었다. 결국 일본 불교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까닭은 순수한 불교 포교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일본 불교를 포교하고자 1911년 6월 3일 자로 사찰령을 발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 불교는 전국에 별원, 출장소, 포교소 등을 건립하였다. 금강선사가 창건되기 전, 군산에는 본원사, 군산사, 안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금강사를 창건한 내전불관은 1909년 당시 77세의 고령으로 군산 지역을 순회하던 중, 군산 일조통에 있던 집을 빌려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1913년 7월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금의 동국사를 신축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동국사길 16

은적사(군산)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은적사(군산)

은적사는 전라북도 내에 있는 사찰 가운데 가장 오래된 백제 시대 사찰이다. 천방사, 선림사 등으로도 불리었던 은적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군산시 소룡동 설림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613년(백제 무왕 14년, 신라 진평왕 35년) 신라 원광 법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952년(고려 광종 3) 정진 국사가 중창, 1373년(공민왕 22) 고승 나옹이 2차 중창, 1781년(정조 5) 보경 선사에 의해 중건, 1937년 허옹 선사가 중건하는 등 네 차례에 걸쳐 중창·중건이 있었다. 현재의 대웅전과 극락전 등 전각들은 1985~1995년 사이에 대규모 중창 불사로 새로 지어진 것이다. 이전의 전각으로 극락전, 명부전, 조사전 등이 있었으며 특히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와 다포 형식이다. 대웅전에 봉안된 은적사 석가여래 삼존상(전라북도 유형 문화재)은 1629년(인조 7)에 수종 화상이 조성한 대형 목불 좌상으로 조성한 불상으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산사 인근의 절에서 옮겨왔다고 전한다. 형식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서 모시고 있는 모습이다. 본존 석가여래는 사각형의 엄숙한 표정에 오뚝한 콧날, 당당한 어깨, 균형 잡힌 몸체, 안정감 있는 무릎 자세 등 신체의 비례가 뛰어나고 법의의 주름 표현이 아름답다. 얼굴은 네모나며 콧날이 오뚝하고 눈과 입 등의 표현이 정제되어 있다. 문수보살의 얼굴은 본존불과 같은 형식이다. 머리에는 위쪽으로 벌어진 중국식 보관을 쓰고 있는데 윗부분에는 붉은색, 아랫부분에는 금색이다. 크기는 전체 높이 114㎝, 머리 높이 23㎝, 어깨 너비 49㎝, 무릎 너비 71㎝, 무릎 높이 19㎝ 정도이다. 보현보살의 얼굴 역시 문수보살과 같은 모양이다. 두 보살상 모두 팔에는 꽃무늬가 새겨진 팔찌를 하고 있으나 특이하게도 보현보살은 왼쪽 팔이 노출되어 있으며 배 부근의 옷자락 밑으로 장식적인 꽃무늬 조각이 새겨져 있다. 크기는 전체 높이 114㎝, 머리 높이 23㎝, 어깨 너비 47㎝, 무릎 너비 72㎝, 무릎 높이 20㎝ 정도이다. 본존인 석가여래불은 간소한 나무 대좌에 결가부좌한 채 항마촉지인을 맺고 있으며 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낮게 표현되어 있다. 크기는 전체 높이 114㎝, 머리 높이 41㎝, 어깨 너비 54㎝, 무릎 너비 78㎝, 무릎 높이 19㎝ 정도이다.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본존불 뒷면에는 후불 탱화로서 영산회상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음 탱화와 신중 탱화를, 오른쪽에는 칠성 탱화와 산신 탱화가 걸려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설림3길 49 (소룡동)

남해 가인리 화석산지
자연관광경상남도

남해 가인리 화석산지

남해 가인리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는 마을 주민의 신고로 통해 처음 알려졌다. 1997년 진주교육대학교 서승조 교수가 이를 학계해 보고하였다. 그 후 2005년 3월 31일 경남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19일에 천연기념물로 승격되었다. 이곳에서는 익룡의 발자국, 대형 초식 공룡(용각류)의 발자국, 두 발로 걸었던 초식 공룡(조각류)의 발자국, 다양한 종류의 육식 공룡(수각류)의 발자국, 새 발자국, 도마뱀 발자국, 거북이 발자국 등이 발견되었다. 이외에도 공룡 피부 자국과 뼈 화석도 발견되었다. 발자국 화석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두 발로 걷는 익룡이 남긴 발자국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익룡의 발자국은 대부분이 네 발로 걷는 익룡의 것으로, 두 발로 걷는 익룡의 발자국은 세계적으로 처음 발견되었으며, 그 이름은 ‘해남이크누스 가이엔시스’라고 붙였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을 공룡과 사람이 함께 살았던 증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용각류의 발자국은 브론토사우루스와 같은 공룡이 남긴 것으로 생각되어, 그 이름이 ‘브론토포두스 버디아이’이다. 영화 에서 나오는 벨로시랩터와 같은 작은 육식 공룡의 발자국도 발견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육식 공룡 발자국도 발견되었는데, 발자국의 길이가 1.1㎝이다. 이 외에도 가운뎃발가락이 매우 긴 육식 공룡 발자국(글라래이터)도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새의 발자국은 세 가지가 넘는다. 백악기에 처음으로 발견된 도마뱀 발자국도 있는데, ‘네오사우로이데스 코리아엔시스’라고 한다. 이 화석 산지는 백악기 척추동물의 발자국이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게 발견된 곳이며, 세계 최초로 발견된 발자국들도 많은 곳이다. 발자국 화석뿐만 아니라 공룡 피부 자국, 뼈 화석, 나뭇가지 화석 등은 1억 년 전 다양한 생물들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알려 준다.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가인리 산60-20

운흥사(나주)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운흥사(나주)

운흥사는 전통사찰로, 1775년 정문이 쓴 진여문4중창기에 의하면 당 희종년간(846∼887)에 도선국사가 이곳의 지세가 좋아 흥덕으로부터 와서 이곳 도성암에서 첫 강회를 열고 터전을 닦은 후 신라 효공왕 년간(897∼911)에 웅점사로 개칭되었고 웅치사, 운흥사로 바꾸었다. 1775년 당시에는 대웅전 침계루 등 380여 칸의 규모를 갖춘 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규모가 축소되었다가 1998년 혜원스님이 부임하면서 대불사가 진행되었다. 또한, 운흥사는 조선 후기 승려인 초의선사가 출가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운흥사 입구에는 운흥사와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있는 남녀 한 쌍의 돌 장승이 있다. 사찰 앞에 세우는 사찰 장승은 경내의 부정을 금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기능을 지닌다. 석장승은 사찰에서 500m쯤 떨어진 밭 가운데 마주 보고 서 있는데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의 모습이다. 남장승은 높이 270㎝, 둘레가 192㎝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로 크고 둥근 눈에 뭉툭한 코, 송곳니가 삐져나와 있지만 인자한 할아버지의 얼굴이며 몸체에는 상원주장군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여장승은 웃는 표정으로 소박한 모습이다. 깊은 선으로 둥근 눈이 표시되었고 입언저리의 잔 수염과 주걱턱 표현이 인상적이고 몸체에는 하원당장군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여장승의 뒷면에 기록된 조선 숙종 45년(1719)이라는 내용을 통해 정확한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다. 사찰의 위치가 '다도면'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은 조선시대의 차 문화와 관련이 깊으며, 지금도 사찰 주변에 야생 차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다도면 암정로 398

정읍 전봉준 유적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전봉준 유적

이곳은 녹두장군인 전봉준 선생이 동학운동을 일으킬 당시 거주하였던 집이다. 1894년 갑오 동학 혁명 당시 전봉준이 살았던 오두막집으로 흙담 네 칸 집이다. 당시 우리나라 가난한 농민들이 살았던 전형적인 가옥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부엌은 서쪽에 위치하여 이에 이어서 큰방과 윗방이 배치되는 것인데 이 집은 이 순서를 따르지 않고 있다. 큰방과 윗방은 장지로 칸막이가 되어 필요한 경우 터놓을 수 있으며 천장은 두 가지 다 연동 천장이다. 그리고 두 방의 전면에는 퇴를 놓았으며 대살문으로 드나드는 끝방 전면에 반쪽에는 짧은 담을 두르고 이곳에 땔나무 등을 두었으나 이것이 본래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부엌의 전후벽에는 널문을 달아 필요한 때에는 잠글 수도 있도록 되었다. 대문의 동편에는 잿간을 겸한 변소가 있으며 출입문으로는 한 짝의 열매문을 달았다. 전봉준의 공초록에는 이 곳에 와서 수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촌로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웃 마을 양교리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조소1길 20

수종사
역사관광경기도

수종사

수종사는 남양주 조안면 송촌리 운길산의 정상 부근에 있는 봉선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일찍이 서거정이 동방 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격찬한 명당으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 풍경을 볼 수 있으며 인근 산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수종사는 신라 시대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으며, 조선 세조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세조가 지병 치료를 위해 강원도에 다녀오다가 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보내던 중,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아가 보니 토굴 속에 18 나한상이 있고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종소리를 내더라는 것이다. 이에 세조가 18 나한을 봉안해 절을 짓고 수종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다. 그러나 사찰에 세조의 고모인 정의옹주의 부도가 남아있는 것은 그 이전에 이미 상당 규모의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 응진전, 약사전, 산신각, 종각, 경학원, 요사 등이 있다. 중요 문화유산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수종사부도내유물과 수종사 오층석탑이 있다. 사찰안에는 세조가 하사했다는 500년 수령의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있다. 사계의 풍광이 모두 빼어나지만, 가을 단풍이 물드는 시기의 풍경이 특히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수종사 주차장에서 절까지는 400m로 도보로 15분 정도 소요된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433번길 186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 및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
역사관광경상북도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 및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은 초간 권문해(1534~1591)의 할아버지 권오상이 지은 가옥으로, 숲이 우거진 낮은 뒷동산을 배경 삼아 경사진 대지에 동남향으로 위치한다. 안채는 ㅁ자형으로 정면 5칸, 측면 5칸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집이다. 2단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어 건물 전체가 매우 높고 웅장하다. 안채의 오른쪽 앞면에는 사랑채인 별당(보물 제457호)이 나와있고, 왼쪽에는 대동운부군옥목판 및 고본(보물 제878호), 권문해 초간일기(보물 제879호) 외 여러 서적을 보관한 백승각이 있다. 별당 앞쪽에 행랑채 겸 대문채가 있었으나 철거되었다. 안채와 사랑채인 별당은 두 공간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연결하였다. 이는 조선 전기 손님 접대를 중요하게 여기던 살림집의 특징이자 누각형 접객 건물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드문 사례이다. 안채 오른쪽 뒤편 사당은 출입문에 붙였다 떼었다 하는 중간 설주가 있다. 이러한 설주 양식이 나타나는 곳은 이 종택이 유일하다. 조선 전기의 건물로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당대 건축 구조와 양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은 풍수지리상 명당자리로 유명한 죽림리 대수마을에 있다. 조선 중기 문인 초간 권문해(1534~1591)의 할아버지 권오상이 지었다고 전하며,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국가민속문화유산 제201호) 안채의 오른쪽 앞에 있는 별당 형식의 사랑채이다. 평지 위에 막돌로 높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집을 세우고 난간을 돌린 다락집 모양이다. 실제로는 안채와 연결되어 있으나 지붕이 팔작지붕이기 때문에 정면에서 보면 독립된 건물처럼 보인다.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오른쪽 3칸은 대청이고, 왼쪽 1칸은 온돌방이다. 대청 앞면은 문짝 없이 개방하고 옆면과 뒷면은 판벽을 쳤다. 외관은 네모 기둥에 주두만을 얹어 대들보를 받친 간소하고 소박한 모습이나 별당 내부 천장은 상당히 공을 들여 정교하게 꾸몄다. 일반 주택 건축으로는 보기 드물게 뛰어난 기법으로 건물 안쪽을 장식하여 꾸민 조선 시대 별당 건축물이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죽림길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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