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국 관광지 13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3페이지입니다.

남이장군묘 (화성)
역사관광경기도

남이장군묘 (화성)

남이장군 묘는 화성시 비봉면에서 2.5km 떨어진 한양 조씨의 선산 내에 있으며 남이장군과 부인이 함께 있는 쌍분묘로 1973년 7월 10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남이(1441∼1468)는 본관은 의령으로, 태종의 외손이며 좌의정 권람의 사위이다. 1457년(세조 3) 1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의 난(1467)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용맹을 떨쳤고, 여진의 건주위를 정벌할 때에도 선봉으로 적을 무찔러 이름을 날렸고, 26세의 나이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그러나 1468년에 28세때 예종이 즉위하자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모를 꾀한다하여 죄명을 쓰고 능지처참형을 당하였다. 역적으로 몰린 남이장군의 후손들이 시신이 훼손되는 일이 없게 남이섬과 전국 각지에 남이장군 이름의 가묘를 만들었고, 고증을 거쳐 이 곳이 남이장군의 실제 묘소로 확인되어 이곳에서 후손들이 제사를 지낸다. 현재 묘역에는 장군과 부인이 합장되어 있고 봉분은 2기이며, 봉분 아랫부분은 둘레석이 둘러져 있다. 묘 앞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1쌍씩 있다. 조선 초기의 예술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석인상은 경기 지역 능묘 문화의 특성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하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이로

정약용선생묘
역사관광경기도

정약용선생묘

조선 중기 문신이자 실학의 대가인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의 묘소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정약용유적지 내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은 마재마을이라 불리며 경기옛길 평해3길로 지정되어 정약용 유적지, 실학박물관, 다산생태공원, 수종사 등이 한강길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정약용선생묘는 1972년 5월 4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부인 풍산 홍씨와 합장되어 있다. 묘소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설치되어 있다. 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로 신유사옥으로 전라남도 강진에 유배되었으나 19년 만에 풀려났다. 유배 기간 동안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완성하였다. 그는 조선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결국 고향인 능내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정약용유적지에는 묘소 외에도 생가인 여유당, 다산문화관과 다산기념관이 있어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매년 열리는 정약용문화제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념인물인 다산 선생의 실사구시 사상과 인문정신을 계승하는 남양주시의 대표 문화제로 1986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남양주 방문 시 정약용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여행 코스를 계획할 수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1

인천향교
역사관광인천광역시

인천향교

향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며, 지방 백성들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으로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인천향교가 처음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5세기 중반에 수리하였다고 전한다. 지금 남아있는 주요 건물은 조선 후기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1976년에 대성전·명륜당·삼문 등을 고쳤다. 현재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동재·서재 등이 남아있다. 뒤쪽에는 제사공간을 이루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고, 내삼문을 경계로 앞쪽에는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있어, 전학 후묘의 배치형식을 볼 수 있다. 향교에서는 인성 및 예절교육 등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교육의 기능은 물론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사의 기능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89 (문학동)

행주산성
역사관광경기도

행주산성

행주산성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덕양산의 7, 8부 능선에 쌓은 테뫼식[山頂式] 성으로 흙을 이용해서 쌓은 산성이다. 덕양산 정상부를 에워싼 소규모의 내성[內城]과 북쪽으로 뻗은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外城]의 이중구조로 강안의 험한 절벽을 이용하고 동, 북, 서로 전개된 넓은 평야를 감싸고 있다.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적갈색 연질 토기와 회청색 경질토기 등의 조각을 비롯하여 어골문[魚骨文], 수지문[手指文]이 새겨진 기왓조각도 발견되고 있어 고려 시대까지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權慄] 장군이 의병과 승명을 포함한 2천3백 명과 함께 왜군 3만여 명을 크게 물리쳤다. 왜군을 격파하여 나라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운 충장공 권율 도원수의 행주대첩을 기념하기 위한 매년 제례행사와 그 밖의 여러 가지 문화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권율 도원수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충장사에서 행해지는 이 제례에는 장군의 영혼을 불러들이기 위해 향을 피우고 제례를 지낸다. 선조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로15번길 89

강화향교
역사관광인천광역시

강화향교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인 강화향교는 지방의 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한 교육기관이다. 고려 1127년 현재 내가면 고천리에 창건되었다. 1232년 강화읍 갑곶리로 옮겼다가 이후 서도면 볼음도로 옮겼다. 1624년 당시 강화유수였던 심열이 송악산 기슭으로 또다시 향교를 옮겼다. 1629년 명륜당을 세워 학교로 승격시켜 학궁이라 칭했다. 1673년 유수 민시중이 남산 근처로 옮겼다가 1731년 유수 유척기가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강화향교의 건축물은 대성전, 동무와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와 서재, 외삼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명륜당은 향교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던 강당이다.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담당하였으나 현재는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배향 기능만 남아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향교길 58

강화산성
역사관광인천광역시

강화산성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이다. 몽골의 침입으로 백성과 국토가 수난을 당하자, 당시 실권자인 최우는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다. 왕궁과 성·관아 시설은 1234년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때 개경의 궁궐과 비슷하게 지어 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지었다. 성은 흙으로 쌓았고,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중성은 내성을 지키기 위해 쌓았으며, 외성은 1233년 강화 동쪽해안을 따라 쌓았다. 이 외성은 몽골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자, 정부가 39년간 육지로부터 물자를 지원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고려 원종 11년(1270) 개경으로 수도를 다시 옮기면서 몽골과 강화조약의 조건으로 성을 모두 헐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 내성이었던 강화성을 축소하여 다시 지었다. 1637년 병자호란 때 청군에 의해 다시 파괴당하였고, 숙종 3년(1677)에 성을 보수하면서 모두 돌로 쌓고 넓혀 지었다. 남문인 안파루·북문인 진송루·서문인 첨화루와 동문인 망한루가 있으며, 비밀통로인 암문 4개 그리고 수문이 2개 남아있다. 높은 곳에서 망을 보기 위한 장대와 성위에서 몸을 감추기 위한 여장 등의 방어시설도 갖추고 있었으나 여장은 모두 무너졌다. 현재 성의 동쪽 부분은 없어졌으나, 남북 쪽 산자락은 복원 정비되어 있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신미양요와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3번지

강화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역사관광인천광역시

강화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은 길이 710cm, 높이 260cm, 넓이 550cm의 커다란 돌을 사용했으며, 형태는 북방식 고인돌로서 고대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인즈 제24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강화도 고인돌 유적은 고인돌의 제작 기겁과 선사시대의 다양한 무덤 형태 등에 대해 알 수 있는 공간으로 아이와 함께 역사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강화 홍릉
역사관광인천광역시

강화 홍릉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청소년야영장 내 위치한 홍릉은 고려 23대 고종(1192~1259)의 능이다. 강종의 맏아들로 1212년(강종 1) 태자로 책봉되었다. 어머니는 원덕태후 유씨이고, 비는 제21대 희종의 딸인 안혜태후이다. 46년간 재위하였지만, 정치적 실권은 무신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북방 민족의 침입도 잦아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1231년 몽골이 침략하자 다음 해 강화로 천도하여 항쟁했으며 16년간에 걸쳐 강화에서 을 판각하였다. 1259년(고종 46)에 태자 ‘후일의 원종’가 몽골에 가서 강화의 뜻을 비쳤고 항쟁하던 성곽도 헐어버렸다. 같은 해 6월 고종이 사망하자 강화에 묻었고 그것이 홍릉이 되었다. 본래 홍릉은 높게 쌓은 3단의 축대로 되어있으며, 맨 아래에 정자각, 2단에 사람 형상의 돌 조각상, 가장 높은 곳에는 왕릉이 배치돼 있다. 원형의 봉분은 직경이 4m로 작은 편이다. 지금은 사람 모양의 돌조각 2구만 남았다. 1988년 재실이 신축, 복원되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강화전적지
역사관광인천광역시

강화전적지

강화 전적지는 갑곶돈대, 고려궁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으로 5개소이며 강화도는 지리적 특성상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 외세의 침입에 대항하는 첫 번째 관문으로서 수많은 전투가 일어났던 전적지이다. 몽고와의 항쟁을 비롯하여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 및 정묘호란을 피했던 곳으로, 개화기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겪었으며,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서울 방위를 위한 중요한 국방 요지이며, 1977년 복원 및 보수작업을 마무리하여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18

설봉산
자연관광경기도

설봉산

설봉산은 높이 약 394m로 이천시를 수호하는 진산이다. 이천 시가지를 서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설봉산은 부악산, 무학산, 부학산이라고도 부른다. 설봉산은 들머리와 날머리를 모두 설봉공원의 주차장으로 삼는 총 5개의 등산로가 있다. 3코스는 공원 입구→호암약수→설봉산성→정상→화두재→학소정을 거치는 코스로 신라시대의 성곽인 설봉산성, 고려 때 건립된 영월암, 설봉서원 등의 문화유적과 정상으로 오르는 길의 칼바위를 비롯한 여러 암봉, 삼형제바위, 호암계곡 및 호암약수터 등 설봉산의 명소를 둘러볼 수 있는 대표적인 등산코스로 꼽힌다. 총 6.85km, 약 120분 소요되는 코스이며 조금 길지만 등산 초보자 및 어린이도 오를 수 있는 쉬운 코스이다. 특히 설봉산은 봄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진달래 군락이 널리 알려져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산행 뒤에는 설봉공원 내의 박물관 및 미술관, 설봉조각공원 등을 둘러보거나 가까이 위치한 시내의 안흥유원지에서 온천욕을 하며 피로를 풀 수 있다. 설봉저수지 부근 제1주차장 쪽에 이천 종합관광안내소가 있어 필요시 관광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메인 주차장인 설봉공원 제1주차장 외 공원 내 모든 박물관, 미술관 등의 시설에 별도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코스별 가까운 지점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신둔IC에서 차량으로 약 8분, 경강선 이천역, 이천종합터미널에서 차량으로 약 10분 소요된다. 인근에 사기막골도예촌, 예스파크, 이천설봉온천랜드, 미란다호텔 스파플러스, 성호호수연꽃단지, 한택식물원, 지산포레스트리조트스키장, 이천테르메덴, 덕평공룡수목원 등이 있다.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서운산성
역사관광경기도

서운산성

서운산성은 차령산맥의 주된 봉우리인 서운산(해발 539m)에 있다. 정상부에서는 안성, 평택, 천안, 아산만 등 사방이 잘 조망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성벽은 서운산 정상부의 봉우리 2개를 연결하여 산 복부를 감싸도록 쌓았다. 남벽 일부 외에는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성의 둘레는 620m이고, 흙을 쌓은 곳은 450m 가량 된다. 전체적인 평면 형태는 동-서로 길쭉한 장방형이다. 성벽은 능선을 따라 흙을 성토하여 쌓았다. 자연지형에 따라 성벽을 쌓지 않거나 삭토하여 경사를 확보한 구간도 있다. 북쪽과 남쪽에 성문터가 있는데 주로 남쪽으로 출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안에는 전투 때 지휘하던 곳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장수 바위와 우물터․절터․돌부처․작은 동굴․토기와 기와편 등이 발견되었다. 축성법이나 출토유물로 보아 서운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성일 가능성도 있으나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주체와 축성 시기는 알 수 없다. 안에서 발견된 유물로 볼 때 삼국시대에 축조된 성을 임진왜란 당시 수축하여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산평리

안성향교
역사관광경기도

안성향교

안성향교는 1532년 창건된 된 향교로, 1932년과 1986년, 1988년 총 3차례 중수하였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안성향교는 대성전, 명륜당, 풍화루, 삼문 등이 현존하고 있다. 대성전은 문묘를 배향한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명륜당은 일종의 교실이며, 풍화루는 일종의 강당으로 전국에 안성과 남원밖에 없으며 규모는 정면 11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성향교의 풍화로는 조선시대 향교 문루(아래에는 출입을 하는 문을 내고, 위에는 누를 지어 사방을 두루 살피는 기능을 가진 건물)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경사지라는 입지여건의 특징을 잘 살려 외부에서 향교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향교 전면을 효과적으로 가릴 수 있는 적절한 높이와 규모를 가진 건물이다.

경기도 안성시 향교길 90-4 (명륜동)

여주 영릉과 영릉
역사관광경기도

여주 영릉과 영릉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능이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세종, 오른쪽에 소헌왕후를 모셨다. 원래 영릉은 1446년 소헌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헌릉과 인릉 경내 인릉 자리에 조성되었고, 4년 뒤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영릉에 합장하였다. 그러나 영릉이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세조 대부터 영릉을 옮기려고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가 1469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옮기면서 옛 영릉에 있던 능침 석물과 신도비는 땅에 묻었고, 여주로 옮기면서 능침의 석물은 다시 만들었다. 영릉(寧陵)은 조선 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다. 영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위아래로 조성한 최초의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위에 위치한 봉분이 효종의 능이고, 아래 봉분이 인선왕후의 능이다. 이렇게 능을 위아래로 조성한 이유는 쌍릉의 형태처럼 봉분을 나란히 조성할 경우, 풍수지리상 생기가 왕성한 정혈(正穴)이 벗어나기 때문에 위아래로 배치한 것이다. 1659년 효종이 세상을 떠나자 현 구리 동구릉 내 원릉 자리에 조성되었으나, 조성 직후부터 능침 석물에 문제가 생겨 보수가 계속되자 능 안에 빗물의 피해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1673년에 옮기기로 하였다. 그러나 능을 옮길 때 방을 열어보니 물이 들어온 흔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영릉 입구에 있는 재실은 제향을 준비하는 건물로 현재 조선왕릉의 재실 중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다.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로 269-10

영월루
역사관광경기도

영월루

영월루는 신륵사 국민관광지 맞은 편에 위치한 영월근린공원 내에 있는 2층 누각이다. 영월루에서는 남한강의 푸른 물줄기와 멀리 양섬, 강 건너 신륵사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영월루의 건축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건물 구조로 볼 때 18세기 말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을 한 2층 누각으로 낮은 기단과 좌우로 기다란 몸체와 치켜서 들린 지붕의 비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원래 여주군청의 정문이었는데 1925년경 군청 이전 때 당시의 군수였던 신헌수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한편 이곳은 예로부터 당대의 묵객들이 찾아와 시와 풍류를 즐겼던 명소라 한다. 영월루 바로 아래에는 커다란 바위 절벽이 있는데, 바위에는 마암[馬巖]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신라 경덕왕 때 마암 아래 강물에서 황룡마와 여룡마가 나타나 고을 이름을 황려현으로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때문에 이 바위는 마암이 되었다. 여주가 본관으로 여주에서 탄생한 대문호 이규보의 시 중에도 [두 마리의 말이 기이하게 물가에서 나왔다 하여 고을 이름이 황려라네]라는 내용이 있다. 영월근린공원 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탑인 여주 하리 삼층석탑과 다수의 선정비, 불망비, 구휼비와 현충탑, 그리스 참전비 등이 있고 분수와 운동시설, 벤치 등의 휴게시설이 있어 공원을 둘러보며 쉬어가기 좋다.

경기도 여주시 주내로 13

보가산성지(지장산)
역사관광경기도

보가산성지(지장산)

보가산성(보개산성)은 포천시 관인면 중리 산 251번지 일원에 축조된 복합식 석축산성으로 보개산부터 관인봉 능선의 서쪽 계곡부를 따라 내·외성을 쌓은 이중복곽식의 중·대형급 산성이다. 2005년 지표조사를 통해 외성과 내성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산성은 기반암인 응회암을 자연석 또는 반가공하여 사용하였다. 성의 규모는 전체 길이가 4,495m(외성 4,168m, 내성 327m)이고 성 내부면적은 총 537,718㎡이며, 잔존구간의 성벽 전체합산 연장길이는 443.8m로 조사되었다. 산성의 시설로는 상부가 없는 개거식 문지 1개소와 수구 2개소, 서문 문루지를 포함한 3개소의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으며 전형적인 중세성곽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전까지 태봉국의 궁예와 관련된 산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궁예가 왕건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피신할 때 항전하며 반격의 거점으로 쌓은 성터라는 전설 때문이다. 그러나 지표조사 때 산성에는 고려 중기 유물만 수습되었으며 이를 통해 볼 때, 1253년 몽고군에 의해 철원의 동주산성이 합락되었던 패전 경험과 대몽항쟁기 전쟁 양상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시 대피가 가능한 입보형 산성으로 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 산251

지순택요(고려도요)
역사관광경기도

지순택요(고려도요)

경기도 지정문화재였던 고 지순택 옹이 세운 이 도요는 도자기가 실제로 제조되는 과정을 성형실, 조각실, 건조실용 가마 등으로 분류된 시설을 통해 직접 관람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별실인 도암당에 전시되어 있는 주술목적의 각종 목각인형, 탈 등도 방문자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현재는 지순택 옹의 큰아들인 지수구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때로는 도자기를 제조하지 않는 날도 있을 수 있으므로, 제조 과정을 보고자 한다면 사전에 연락을 해보는 것이 좋으며, 과정이 공개되는 만큼 관람 시 정숙을 요구한다.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경충대로 3217

노송지대
자연관광경기도

노송지대

지지대비가 있는 지지대고개 정상으로부터 옛 경수 국도를 따라 노송이 있는 약 5㎞의 지대다. 정조(재임 1776~1800)가 생부 장헌세자의 원침인 현륭원 식목관에게 내탕금 1,000냥을 하사하여 이곳에 소나무 500주와 능수버들 40주를 심게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대부분 고사하고 1권역 효행기념관 부근 9주, 2권역 삼풍가든 부근 21주, 3권역 송정초등학교 부근 8주 등 총 38주의 노송만이 보존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존송(尊松)사상이라는 게 있을 정도로 소나무를 끔찍이 아꼈다. 소나무는 정중하며 엄숙하고 과묵하며 고결하며 기교가 없고, 고요하며 항상 변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잘 어울리는 까닭에 우리 민족의 심성을 사로잡아 왔다. 현재 노송지대는 대기 및 토질 오염과 차량 진동 등으로 인해 죽거나 솔나방의 유충, 솔잎혹파리·소나무좀 등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여 노송을 보호하기 위한 관리와 보존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한국민속촌
역사관광경기도

한국민속촌

한국민속촌은 오랜 시간을 거쳐 전승되어 온 우리 문화 속 생활풍속을 한데 모아 내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1974년에 설립되었다. 높은 교육적 가치와 관광적 가치를 지닌 한국민속촌은 설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생생한 문화체험과 아름다운 자연 속의 전통문화 관광지로서 사랑받고 있다. 웰컴 투 조선, 추억의 그때 그 놀이 등 전통을 재해석해 만들어진 다양한 테마와 콘셉트의 시즌 축제가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민속촌로 90 (보라동)

광주 조선백자 요지
역사관광경기도

광주 조선백자 요지

광주 조선백자 요지는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조선시대에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로 1985년 대한민국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86년 중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 발굴된 곳으로 ‘번천리 5호 가마’로도 불린다. 조선 세조 13년인 1467년에 왕의 명으로 처음 만들어져 이후 약 500여 년을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백자 가마터이다. 이곳에서는 1400년대 중반부터 조선백자 중 가장 우수한 백자를 구워냈으며, 382,738㎡에 이르는 면적에 300여 개의 가마터가 남아있으며 이 가운데 68개소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이곳은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넓은 크기의 백자 요지로도 알려져 있다. 경기도 광주 일대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질 좋은 백자를 만들어내던 중심지였기에 조선 도자사 연구에 기반이 되는 지역으로 매우 가치 있는 곳이다. 가마터와 공방 터 외에 도자기와 관련된 전시품과 가마 발굴부터 이곳에서 만들어졌던 도자기 종류와 정보, 유물, 출토품 등을 볼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해공로 91

오두산 통일전망대
문화관광경기도

오두산 통일전망대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이산가족의 망향의 한을 달래주고 통일교육의 체험 도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2년 9월 8일에 개관하였다. 고구려와 백제가 각축을 벌였던 오두산, 그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남쪽에서 흘러온 한강과 북쪽에서 흘러온 임진강이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 들어가는 절경과 눈앞에 바로 보이지만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북한 황해도의 산천과 북한주민들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망대 내부에는 정부의 통일정책, 역대 정부의 통일노력의 발자취, 북한실상 등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각종 전시실을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운영하고 있다. 개관한 이래 오두산통일전망대는 2,0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방문했으며 이제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국제적인 통일교육의 전당이 되었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369

설악산국립공원(내설악)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설악산국립공원(내설악)

한반도의 중추인 태백산맥 중에 가장 높은 대청봉(1,708m)을 정점으로 펼쳐진 설악산은 남한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봄의 철쭉 등 온갖 꽃과, 여름의 맑고 깨끗한 계곡물, 가을단풍, 눈 덮인 설경 등 사시사철 어느 때이건 찾는 이의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한계령과 미시령을 경계선으로 서쪽(인제군)은 내설악이라 부른다. 내설악은 백담계곡, 수렴동계곡, 구곡담계곡, 가야동계곡, 십이선녀탕계곡, 용아장성, 귀때기골 그리고 장수대지역의 대승폭포, 옥녀탕 등이 아름답고 산세가 빼어나다. 내설악은 설악의 계곡미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곳. 계곡의 갈래가 다양하므로 등산코스도 그만큼 많다. 용대리~백담계곡~수렴동 코스, 십이선녀탕계곡 코스, 장수대~대승령 코스 등이 대표적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백담로 150

설악산국립공원(남설악)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설악산국립공원(남설악)

설악산은 태백산맥 중 가장 높은 대청봉(1,708m)을 가진 산이다. 남한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꼽히며 사계절 내내 다양한 경관을 자랑한다. 봄에는 철쭉 등 다양한 꽃이 피고, 여름에는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흐른다. 가을에는 설악제를 전후로 단풍이 물들고, 겨울에는 설경이 절경을 이룬다. 한계령과 미시령을 기준으로 동쪽은 외설악, 서쪽은 내설악, 남쪽은 남설악이라 구분한다. 남설악 지역은 오색약수와 온천으로 예로부터 유명하다. 주전골 일대에는 용소폭포, 십이폭포, 여신폭포 등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 점봉산(1,424.2m)도 남설악에 속하며 산세가 험준하고 경치가 빼어나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서면 설악로 801

치악산국립공원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치악산국립공원

치악산은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삼봉, 향로봉, 남대봉, 천지봉 등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병풍처럼 남북으로 걸쳐 있다. 주봉인 비로봉에서 남대봉까지 남북으로 뻗은 치악 능선은 14km에 달하며, 총면적 182.09㎢로 1984년에 국립공원이 되었다. 구룡사, 상원사 등 신라 고찰을 비롯하여 영원산성, 해미산성 등 전란사가 담긴 유서 깊은 곳으로 기암괴석과 울창한 산림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적악산으로 불리던 꿩의 보은 전설이 연유되어 치악산이 되었다. 구룡계곡, 금대계곡, 부곡계곡 등 기이한 암석들이 이룬 아름다운 계곡과 태종대, 구룡소, 세렴폭포, 구룡사, 상원사 등의 수많은 관광명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울창한 숲과 깨끗한 물, 가을 단풍과 특히 겨울 설경이 아름다워 등산객이 많이 방문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무쇠점2길 26

경포도립공원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경포도립공원

강릉시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약 6㎞ 떨어져 있는 경포대, 경포호, 경포해수욕장을 중심으로 많은 문화재와 기념물 등이 있는 지역이었다. 이후 일부 해제되어 현재 면적은 6.865㎢이며, 경포호 (가시연습지), 순포습지, 경호정 일원송림, 사천해안 송림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경포호는 천연기념물인 고니, 청둥오리 등이 도래하는 곳이기도 하다. 관동 8경 중의 하나인 경포대는 대보름 달맞이 장소로 유명하며, 과거 경포호에서의 낚시는 이곳을 찾는 이의 여유로움을 돋우기에 충분한 곳이었으나 현재는 자연보호지역으로 낚시를 금지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창해로 473 (강문동)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