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28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28페이지입니다.
광대도
진도 광대도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에 속한 작은 섬으로, 남해의 고요한 자연과 어촌의 정취가 잘 보존된 곳이다. 섬 주변으로 맑은 바다와 완만한 해안선이 펼쳐져 있어 한적한 풍경을 즐기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자연 훼손이 적어 청정한 환경을 간직하고 있으며, 바다와 섬 특유의 평온함을 느끼고자 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다. 소나무, 동백이 울창하고 섬 전체 모양이 사자 한 마리가 앉아 하품을 하고 있는 형상이라 ‘사자섬’이라고도 불리며 섬의 모양이 보는 위치에 따라 변하면, 광대가 춤추는 형국이라 하여 광대도라고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길 42-365
혈도(활목섬)
혈도는 그 이름만큼이나 신비로운 이야기를 간직한 섬이다. 이 섬은 지형이 마치 활처럼 휘어진 모양을 하고 있어 활목섬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섬의 매끄럽고도 자연스러운 곡선은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자연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혈도는 공도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는 섬의 중앙에 뚫려 있는 거대한 구멍 때문이다. 이 구멍은 마치 대포를 맞아 뚫린 듯한 독특한 형상을 띠고 있는데 실제로는 천 년 전부터 거센 파도와 해식 작용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구멍은 혈도의 대표적인 상징이자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혈도의 구멍은 단순히 지형적 특징을 넘어, 특별한 관람 경험을 제공한다. 구멍을 통해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경은 마치 커다란 프레임 속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파도 소리와 섬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더해져 방문객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한다. 맑은 날에는 멀리까지 펼쳐진 다도해의 섬들이 조화를 이루어 더욱 황홀한 장관을 연출한다. 혈도는 자연이 빚어낸 걸작이자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응축한 작은 섬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큰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곳을 직접 찾아가 섬의 구멍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을 감상하고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예술을 느껴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길 42-359
송도
1600년경에 주민이 정주하였다고 한다. 섬안이 소나무만 자생한다고 하여 송도(松島) 또는 솔섬이라 한다. 송도의 자연환경은 산지, 평지, 사빈으로 구성되어 있다. 송도 동쪽에 45.5m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북쪽 완경사면에는 밭이 있다.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로우며 남쪽 해안에 모래사장이 약 30m 길이로 나타난다. 어류는 돔, 붕장어, 숭어가 주를 이루며, 패류는 고동과 전복 그리고 해조류로는 톳, 돌미역이 주를 이룬다. 식생은 곰솔이 주를 이룬다. 기반암은 응회암, 유문암, 백악기 경상계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리
진도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진도향교는 조선 세종 20년(1437) 처음 지었으나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타버렸다. 그 뒤 인조 원년(1623)에 다시 세웠고 효종 7년(1656)에 지금 자리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앞쪽에는 교육 공간을 두고 뒤쪽에는 제사 공간을 배치하였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7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은 높은 축대 위에 세웠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이 외에도 제사를 지내는 건물로 작은 규모의 동무·서무가 있고, 학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서재, 출입문인 내·외삼문 등의 부속 건물이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진도읍 진도향교길 68-5

안악해변
안악해변은 해변 길이는 1.5㎞이며 백사장 길이는 200m에 이른다. 백사장을 에워싼 울창한 소나무 숲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여름철 피서객들의 휴식공간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리고 함평만이 바라보이는 해수욕장 주변의 해변도로는 석양을 감상하기에 좋아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졌으며 안악해변은 특히 일몰 풍경이 일품이다. 매년 해변 개장 기간에는 바닷가의 솔밭과 바로 옆에 펼쳐진 너른 갯벌 속에 파랗고 노란 어린이 풀장을 무료 개방하고 있으며 월촌 어촌계에서 660㎡ 뻘웅덩이에서 진행되는 뱀장어 잡기 행사 또한 관광객들의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 축구장, 족구장, 배구장, 농구장이 항상 개방되어 있고 저녁에는 플래시만 가지고 지천에 깔려있는 게를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 해안가를 따라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며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손불면 안악길 132

용천사 꽃무릇공원
용천사 주위에 위치한 꽃무릇공원은 주변의 숲속에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어 있어 국내 최대의 자생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꽃무릇은 상사화라고도 불리는데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한다. 잎과 꽃이 만날 수가 없어 서로 그리워만 하는 꽃이라 불린 꽃말이라 한다. 사찰로 올라가는 숲길 양옆으로 약 40만 평 규모로 꽃무릇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책길 옆으로 지붕을 얹은 낮은 담장이 길게 이어져 있고 산책로를 따라서 꽃무릇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중간지점에 구름다리, 나무의자가 놓여 있는 쉼터들이 있다. 또한, 광암저수지 인근 산책로를 따라 나무 사이에 항아리로 탑을 쌓아 놓아 꽃무릇이 피는 9월이 아니더라도 사시사철 방문하기 좋은 산책 공원이다. 매년 9월이면 용천사뿐만 아니라 절 아래 꽃무릇공원과 광암저수지에도 온통 꽃무릇이 군락을 이룬다. 저수지 방죽과 방죽 건너 산비탈, 깊은 숲길까지 온통 꽃무릇으로 붉게 물들면 함평 모악산 꽃무릇 축제가 열린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길 209

함평 고막천 석교
함평 고막천 석교는 함평군과 나주시 경계 사이를 흐르는 고막천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돌다리로 똑다리, 또는 떡다리라고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원종 14년(1273)에 무안 승달산에 있는 법천사의 도승 고막 대사가 도술로 이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체 길이 20m, 너비 3m, 높이 2.1m로, 현재 남한에서는 유일한 고려 시대의 다리이다. 함평 고막천 석교는 목조 가구의 결구 수법인 주두의 가구법을 석조 형태로 바꾼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돌로 만든 다리로 마치 나무를 베어내듯 자유롭게 돌을 자르고 짜 맞춘 솜씨가 돋보이는 다리다. 이 다리는 물이 잘 넘치는 고막천의 물살을 7백 년 동안이나 버틸 정도로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수중 지하 바닥은 지반 보강을 위해 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아 이를 지지대로 하였으며, 그 주위에 잡석을 일정 두께로 깔아 바닥이 급류에 휩쓸려 나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한 공법을 택했다. 2001년도 보수공사 시 바닥 기초의 나무 말뚝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최소한 고려 말, 조선 초로 판단되어 지금까지 민간지역에서 축조 연대가 밝혀지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임이 과학적인 방식에 의해 증명되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학교면 고막리 629

함평자연생태공원
함평자연생태공원은 쾌적한 자연환경보전과 더불어 멸종위기의 각종 동, 식물을 보존육성함은 물론 전시와 관람을 통해 보고 배우며, 체험할 수 있는 학습공간으로서 국민들이 여가선용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역문화 발전 및 관광산업 활성화에 그 목적을 두고 추진하게 되었다. 하늘에는 나비와 잠자리, 땅에는 꽃과 난초, 물에는 수생식물과 물고기를 주제로 한 테마별 생태체험 학습공간으로 개발하였으며 나비ㆍ곤충표본전시관, 곤충애벌레생태관 등 7개의 전시시설과 수서곤충관찰학습장, 반달가슴곰관찰원 등 16개의 관람시설 및 전망대, 벽천폭포 등 9개의 편익시설을 조성하여 생태체험학습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학생들이 환경파괴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동식물들에 대해서 배우고 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대동면 학동로 1398-77

함평 향교리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 숲
함평 향교리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 숲은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대체로 350년 정도로 추정되며 향교와 초등학교 옆에 있는 옛날의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팽나무 10그루, 느티나무 15그루, 개서어나무 52그루, 푸조나무·곰솔·회화나무·개잎갈나무가 각각 한 그루씩 자라고 있다. 이곳에 줄나무가 만들어진 유래로는 지형적인 결함을 보충하기 위한 풍수설로 풀이되고 있다. 명륜당 남쪽에 있는 수산봉(水山峰)이 화산이므로 화기를 품어 그 재앙이 예상되었다. 이것을 막고자 유림의 대표인 이양휴(李楊休)등 몇 사람이 향교리에서 나무를 캐어 이곳에 옮겨 심었다고 한다. 이 숲은 바닷바람을 막는 방풍림으로서 기능이 컸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대동면 향교리

함평향교
함평향교는 조선시대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설립연대는 미상이며, 1597년(선조 30) 함평현 남쪽 대화리에 중건하였으나 지리가 불순하다는 논의가 있어 1632년(인조 10)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다. 1929년·1956년·1967년·1975년·1976년에 각각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과 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전사고(典祀庫)·양사재(養士齋)·고사(庫舍)·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건물의 배치는 통상적인 향교와는 달리 대성전이 명륜당의 앞에 위치하는 ‘前廟後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 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敎官) 1인이 정원 30명의 교생(校生)을 가르쳤다.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대동면 대동길 45

팔열부정각
1975년 5월 22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정유재란 때 정절을 지킨 여덟 명의 열부(烈婦)를 기리는 정각으로 조선시대인 1681년(숙종 7)에 현재의 자리에 세워졌고, 순절지인 묵방포(墨防浦)에는 순절비(殉節碑)가 세워졌다. 팔열부는 부군들이 왜군의 흉탄에 맞아 영광 삼서(森西:지금의 장성)에서 전사하였다는 비보를 듣고 영광 칠산 앞바다까지 피난하던 중 왜구의 추격을 받고 이곳에서 투신 자살했다. 여덟 열부는 정함일(鄭咸一)의 부인 이씨, 정경득(鄭慶得)의 부인 박씨, 정희득(鄭希得)의 부인 이씨, 정함일의 딸 정씨, 정운길(鄭雲吉)의 부인 오씨, 정주일(鄭主一)의 부인 이씨, 정절의 부인 김씨, 정호인(鄭好仁)의 부인 이씨 등이다. 정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층 맞배집으로 익공계(翼工系)건축이며 사면이 벽체 없이 홍살로 둘러 있다. 현재 진주정씨 종중에서 맡아 관리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월야면 월야리
함평죽암리고분
함평읍의 손불면과 신광면이 교차되는 지점으로 ‘떼등이’라 불리는 낮은 구릉에 있는 무덤들이다. 현재는 넓은 농경지를 바라보고 있지만 바다 쪽에 제방을 쌓기 전에는 바닷물이 무덤 앞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무덤은 북동쪽이 타원형의 원형부이고 남서쪽이 사다리꼴의 네모형을 하고 있는 앞이 네모나고 뒤가 둥근 전방후원 형태이다. 함평 죽암리무덤은 영산강 유역의 전남광주통합특별시지방에서만 발견되는 무덤으로 일본의 전방후원 무덤과 유사한 점이 많아 두 나라의 고대사와 무덤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손불면 죽암리

나산 솟대 장승공원
나산 솟대 장승공원은 교통·지리적 특성을 고려하여 전형적인 농촌면으로써 지역 내 산재한 수변공간, 시설채소단지, 화훼단지, 선사유적지 등과 연계한 현존하는 솟대섬의 역사성을 부각하기 위하여 정부의 공공근로사업 계획상 자치단체 필수 사업인 국토공원화사업 일환으로 추진하여 조성한 공원이라고 한다. 함평의 솟대, 장승 한마당은 사라져 가는 우리의 전통 민속을 되새기고 점차 보기 힘들어지는 여러 종류의 장승을 한자리에서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행사로 매년 추석을 전후해 열리며, 나산면과 용천사 주변 국도에서는 풍요로운 가을 들녘의 모습과 더불어 흥겨운 축제행렬을 볼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나산면 나산리

함평예덕리고분군
함평예덕리신덕고분군은 1988년 12월 21일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고분군이 입지 해 있는 지형은 저평한 평지성의 구릉으로 이 일대에 많은 고분이 분포해 있다. 남쪽으로는 내부구조가 대형 옹관으로 추정되는 예덕리 만가촌 고분군이 있고 서북쪽에는 1990년 발굴 조사되어 백제계의 굴식돌방무덤으로 밝혀진 월계리 석계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군은 일명 왕무덤 또는 장수무덤으로 불리며 이 고분군을 모두 9기로 구분된다. 특히, 1호분과 2호분의 봉토는 서로 연접되어 누에고치 모양의 표형고분으로 되어 주목되고 이 고분은 백제시대에 조성된 석실분으로 추정된다. 1991년 3월 도굴로 인하여 알려지게 되어 1991년 6월에 국립광주박물관의 긴급 수습으로 개배 100여 점, 굽다리접시 3점, 항아리 2점의 토기와 철기류, 철판이 출토되었다. 이 고분군은 전방후원형 고분으로서는 내부 구조가 돌방으로 밝혀진 국내 최초의 고분이다. 일제 때 모두 도굴되었는데 어떤 유물이 나왔는지 알 수 없으나 1호분에서 놓치고 간 금귀걸이, 옥목걸이를 취득하여 팔았다는 전언이 있다. 2000년 10월 고분측량 보고서에 의하면 지금까지 2기의 고분으로 알려진 표산 1호분이 1기의 장고형 고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월야면 예덕리

보광사(함평)
보광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289번지에 자리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은 1924년 모진택이 처음 집을 짓고 별당으로 사용한 것에서 유래한다. 1938년 무렵 용천사[龍泉寺]의 신도에 의해 포교당으로 설립되었다가, 1942년에 모성월[毛性月, 1886~1979] 스님이 원명[圓明] 스님과 김남하[金南夏] 포교사 등과 함께 인수, 지금의 보광사로 만들면서 본격적 사찰로 경영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영명[英明] 스님을 거쳐 현재 법홍[法弘]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현재 절에는 극락보전과 요사 및 종각 등의 건물이 있고, 종각에 있는 범종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172호로 지정되어 있다. 범종은 법당 왼쪽의 범종각에 보관되어 있는 종이다. 원래는 무안 원갑사의 종이었으나 폐사되자, 함평의 용천사를 거쳐 한국 전쟁의 혼란을 피해 1967년 현 위치에 옮겨진 것이라 한다. 형태를 보면,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는 2마리의 용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고, 용의 다리와 종을 연결하여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몸통 윗부분은 2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8자의 범자를 새겼다. 그 아래에는 사각형의 유곽이 있고, 안에 돌출된 9개의 유두가 배치되어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을 양각하였다. 몸통 아래쪽에는 넓은 두 줄의 도드라진 선을 두르고 그 사이에 글이 있어, 이 종이 영조 43년(1767)에 만든 것임을 말해준다. 범종의 크기는 높이 2.1m, 윗둘레 2m, 밑둘레 2.65m, 직경 0.83m이다. 종의 형태는 정상부에 용뉴와 상대, 종신[鐘身], 유곽[乳廓], 보살상 등을 갖추었으나 당좌[撞座]와 하대를 생략하였다. 정상부의 용뉴는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용의 다리를 종신과 접착시켜 그 무게를 지탱하게 하고 있다. 상대에는 두 줄의 돌출대를 두르고 그 안에 8자의 범자[梵字]를 새겼다. 종신 상단에는 전후좌우면에 두광[頭光]을 갖춘 보살입상을 양각하였으며 그 사이의 4면에는 사각형의 유곽을 획정하고 그 안에 9개의 유두를 돌출시켰다. 몸체 하단에는 넓은 두 줄의 돌출대를 두르고 그 사이에 ‘정해삼월’이라는 명문을 새겨 놓았다. 이 명문에 따르면 범종의 조성연대는 18세기 후반인 1767년(영조 43)으로 추정된다. 이 범종은 정상부에서 음통은 물론 당좌와 하대 등을 생략하는 간략화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18세기에 조성되는 범종의 높이가 1m를 넘지 못하는 경향에 비추어 보면 그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소리가 해맑아 우수한 범종으로 평가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함평읍 한재골길 26-32

용천사(함평)
용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백제 무왕 1년(600) 행은이 창건하였으며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세조와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하였으며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유물로는 용천사석등, 해시계 등이 전한다. 이 중 1981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석등은 높이 2.38m로 숙종 11년(1685)에 제작된 것이다. 해시계는 석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6·25 전쟁 때 잃어버렸다가 1980년 경내 흙더미 속에서 발굴되었다. 본래는 높이 14㎝, 가로 세로 각 39㎝의 정사각형이었으나 지금은 절반이 떨어져 나간 상태이지만 낮 시간에 해당되는 묘시부터 유시까지는 남아 있어 사용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길 209

용천사 석등
1981년 10월 20일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석등은 대웅전의 오른쪽에 있는 삼층석탑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석등은 절 안을 환하게 밝히는 기능뿐 아니라 부처님의 빛이 사방을 비춘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석등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석등으로 크기나 짜임새가 투박하면서도 정감이 있다. 쑥돌(화강암)로 만들어졌으며 높이 2.37m이다. 용천사는 신라 때 행은존자에 의해 창건된,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사찰 앞에는 용천이 있는데 이곳에서 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용천[龍泉]이라 하였고 이곳에 절을 지어 용천사라 하였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불에 타서 거의 모든 유물이 사라졌는데 다행히 이 석등은 기둥 받침석의 상단에 붙어 있는 두귀의 거북만 깨졌을 뿐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 용천사 석등의 형태와 모양에 대해 이 석등은 크기나 짜임새가 투박하면서도 정감이 있어 조선시대 석등으로는 대표급이다. 재질은 쑥돌이고 높이는 2.38m이다. 8각의 간석[竿石] 위에 4각의 화사석[火舍石]을 얹었고 그 위에 4각의 옥개석[屋蓋石]을 올렸다. 화사석의 네 벽면에는 둥근 화창[火窓]이 있으며 지붕돌의 네 귀에 거북을 조각하였는데 그 형상은 간략하나 모양이 세련되었다. 거북조각은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그 모양이 세련되어 보인다. 석등 상부의 지붕돌은 목조건물의 팔작지붕(옆에서 볼때 ''八''자 모양) 형식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특이한 양식이다. 석등 밑 8각 간석에 새겨진 글에는 숙종 11년(1685)에 만들어졌으며 당시 시주한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길 209

함평용월리지석묘군
함평용월리지석묘군은 1995년 12월 26일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영산강의 지류인 고막원천 주변에 총 16기가 한 군데에 밀집해 있다. 고인돌은 선돌과 함께 거석문화(巨石文化)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전세계적인 분포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돌방이 지상에 있는 북방식과 지하에 있는 것으로 크게 나누어지며, 지하에 있는 것은 받침돌이 있는 남방식과 받침돌이 없는 개석식(蓋石式)으로 구분된다. 용월리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축조되었다. 총 16기 가운데 12기가 받침돌이 보이는 남방식 고인돌인데, 상돌이 받침돌에 의해 들려진 상태여서 하부는 대부분 교란되어 있다. 상돌은 대부분 직사각형이다. 북방식 고인돌의 장벽석과 같은 두꺼운 판석을 가진 것도 있는데 대부분 유실된 상태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월야면 용월리
자산서원
정개청이 1589년 일어난 기축옥사(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문인들이 스승의 신원운동을 전개하면서 1616년 건립하였다. 1678년 조정으로부터 자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나 계속되는 남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훼철과 복설(復說)을 되풀이하였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이르기까지 무려 5차례의 훼철을 당하였고 8·15 해방 이후 1957년에 복설 된 뒤 1988년 대규모의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1987년 6월 1일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정개청 문집 《곤재 우득록(愚得綠)》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엄다면 곤재로 688

함평 양재리의 이팝나무
손불면 양재리 함평 모씨 종중 모 씨 소유인 수정재 뒤편 동산의 소나무 숲 안에 두 그루의 이팝나무가 나란히 서있다. 그중 한 그루는 높이 14m이고 줄기의 가슴 높이 줄기둘레는 3.04m이며 다른 한 그루는 높이 12m, 줄기의 가슴 높이 둘레 1.43m로 두 그루의 굵기 차이가 크다. 크기로 보아 앞의 나무는 수령이 200여 살, 뒤의 나무는 100년 전후로 추정되어 약 100년의 간격을 두고 심은 것으로 여겨진다. 5월이 되면 이팝 나뭇가지에 하얀 꽃들이 한꺼번에 흐드러지게 피어 나무가 눈에 덮여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이팝나무는 그 수가 적지만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 분포하고 있어 농경문화와 깊은 관련을 가진 나무로 평가받고 있다. 개화 상태로 농작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는 등 우리 농촌의 숲 속에서 이팝나무를 예외 없이 찾아볼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손불면 모량길 38

장봉도 한들해수욕장
장봉도 남쪽에 있으며 낮은 산이 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해수욕장이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해수욕장으로 약 500m에 걸쳐 희고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수심이 깊지 않아 아이들과 해수욕을 즐기기 좋다. 썰물 때 물이 멀리까지 빠지면 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해안가에 있는 갯바위에서는 낚시도 할 수 있고 해변 바로 뒤편에 소나무 숲이 있어 사유지인 캠핑장들이 있다. 장봉도 한들해수욕장은 인천 삼목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해서 갈 수 있으며 사람과 차, 자전거 모두 입도 가능하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장봉로465번길 70

진촌해변
진촌해변은 장봉도 북쪽에 펼쳐진 작고 아담한 해변이다. 고운 모래사장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있고 해변 양 끝이 바위 절벽과 산등성이로 가로막혀 있어 한층 아늑하다.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아 해변의 정취를 한가로이 즐길 수 있다. 낙조 때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해변 오른쪽 끝에는 해안 탐방로가 있어 바다와 나란히 걷는 색다른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해변에서 마주 보이는 바위섬에는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백로와 괭이갈매기들이 날아든다. 장봉도는 이와 같은 희귀 조류들이 집단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천 옹진군 북도면 장봉리

실미도자연발생유원지
실미도자연발생유원지는 무의도 북서쪽 해안에 자리한 자연 휴양지이다. 초승달 형태의 백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해변을 따라 소나무들이 촘촘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솔숲은 한낮에도 짙은 그늘을 만들어 쾌적하고 시원하다. 야영하기 좋은 환경 덕분에 캠핑이나 차박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유원지 서쪽으로는 실미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유원지와 실미도 사이에는 하루 두 차례 바닷물이 빠지면서 너른 모래벌판이 드러나는데, 이 길을 따라 실미도까지 걸어갈 수 있다. 실미도는 2003년 말 개봉한 684부대의 비극적인 실화를 그린 작품 영화 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인천광역시 영종구 무의동 768-5

하나개해수욕장
하나개해수욕장은 무의도 서쪽에 자리한 갯벌을 품은 해수욕장이다. 하나개는 가장 큰 갯벌이라는 뜻이다. 1㎞ 길이의 고운 모래 백사장이 펼쳐지고, 물이 빠지면 고운 모래사장 너머로 너른 갯벌이 드러난다. 갯벌을 조금만 파 내려가면 흰 속살의 동죽조개를 비롯하여 소라, 방게, 바지락 등이 지천이다. 해가 질 때의 붉은빛 노을은 해수욕장의 또 다른 장관이다. 하나개해수욕장은 아이들이 놀기에 수심이 적당하고 숙박시설과 샤워장, 식당, 노래방 등 편의시설이 많아 주로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해수욕장 뒤편에는 유원지가 조성돼 있어 즐길 거리도 많다. 유원지에서는 승마, 사륜오토바이, 씨 스카이월드를 즐길 수 있다. 씨 스카이월드는 백사장에 설치된 높이 25m의 철탑으로부터 413m의 와이어를 연결하여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하늘을 날 듯 하강하는 신종 익스트림 레포츠이다. 노천 포장마차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드라마 촬영지로 해변 한쪽에 촬영 세트장이 남아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인천광역시 영종구 하나개로 150 (무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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