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1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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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봉평리 신라비
울진 봉평리 신라비는 삼국시대 신라의 비석으로, 1988년 봉평리 논 객토작업으로 2~3개월 방치되어 있던 것을 마을 주민이 발견하고 신고하였다.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었던 까닭에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나 원래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비의 크기는 길이가 204cm, 글자가 새겨진 부분의 위폭 32cm, 아래폭 54.5cm이다. 규모는 작지만 형태는 고구려 장수왕 2년(414)에 세운 광개토왕비와 유사한 고구려계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비는 자연돌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전체적인 모양은 사다리꼴에 가깝다. 신라가 동북방면으로 진출하면서 건립한 비로, 법흥왕 11년(524)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사회 전반에 걸치는 여러 면들을 새롭게 검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또한 법흥왕 때의 율령반포와 육부제의 실시, 왕권의 실태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비문은 한쪽 면에만 새겨져 있는데, 글자수는 400자 정도이다. 글씨는 중국 남북조시대에 북조의 영향을 받은 해서체이나, 예서체의 모습도 보인다. 내용은 전형적인 한문이 아니라 신라식의 독특한 한문체를 사용하여 파악이 어렵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짐작할 만하다. 기본 줄거리는 울진 지방이 신라의 영토로 들어감에 따라 주민들의 항쟁이 일어나자, 신라에서는 육부 회의를 열고 대인을 보내어 벌을 주고, 다시 대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이 비를 통하여 신라 육부제 실시와 법흥왕의 율령반포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입증 등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화길 15

운암서원(울진)
운암서원(雲巖書院)은 1826년(순조 26)에 기성면 노은동(魯隱洞)에 건립되어 김제(金濟), 손순효(孫舜孝)를 봉안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 1964년에는 서원 유생들의 주창으로 구인리(邱仁里)에 이건하였다. 1995년 10월에 서원의 보수와 평삼문 개축이 이루어지고 담장을 설치하였다. 현재 운암서원 내에는 평삼문·강당·사당이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어 있고, 사당 옆에는 비각이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평면은 중당협실형으로 앞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맞배지붕을 이었다.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기성로 77

울진향교
울진향교는 1484년에 경상북도 울진군 읍내리 월변동에 창건된 교육 시설이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와 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1697년 고성리로 이건 하였다가, 1872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다. 1878년에 군수 최형직과 유림의 노력으로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대성전과 동재를 제외한 명륜당, 서재 등 부속건물이 모두 소실되었으며, 1970년과 1976년에 담장과 주사를 보수하고 1980년 명륜당을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8칸의 대성전, 7칸의 명륜당, 5칸의 동재, 내삼문 등이 있고, 대성전에는 유학자들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향교로 34-13
영덕조각공원
영덕 풍력발전단지 내에 위치한 영덕조각공원은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국내 유수 조각가 최만린, 박석원, 이종빈 등 10여 명의 조각작품이 전시된 야외조각공원이다. 군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문화공간인 레포츠공원의 연장으로 2002년 영덕군이 [자연, 인간, 꿈의 만남]의 주제로 조성한 이 조각공원은 영덕 블루로드 코스 구간 중 일부로 아름다운 영덕의 바다와 주변 풍광을 바라보며 걷다가 잠시 들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영덕의 명물인 대게를 형상한 조각 작품들과 폐고철을 이용하여 정크아트, 정크트릭아트 전시관이 있으며, 영덕해맞이 예술관과 목공예 체험관이 있어 자연과 문화예술을 동시에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 풍력발전단지는 떠오르는 영덕의 일출, 일몰 명소로 바다를 내려다보는 주변 경관이 뛰어나며 인근 영덕 해맞이 캠핑장과 산림생태문화체육공원, 지질공원 산림생태문화체험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시설이 있으니 여유롭게 방문하기를 권한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영해 3·1 의거탑
영해 3·1독립운동에 참가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탑이다. 3·1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던 중인 1919년 3월 18일 오후 1시경, 영해읍 장날인 성내동 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시위대에 참가한 3,000명의 영해면 주민들은 일본 경찰 주재소로 달려가서 주재소를 때려 부수고 공립보통학교, 우편소, 면사무소들을 파괴하였다. 이 날 시위로 8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당하였으며 196명이 재판에 회부되고 185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1983년 11월 29일, 3·1운동의거탑건립추진위원회는 영해 장날에 3·1독립운동에 참가한 애국선열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탑을 세웠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

영덕 안동권씨 옥천재사
화수루라고도 불리던 조선시대 2층 누각 건물로 문화재명은 옥천재사이다. 옥천재사는 안동권씨의 영해 입향조 권책의 증손자인 권희언의 묘제를 수행하기 위해 지은 재사 건물로, 이 정자는 그의 다섯 아들들이 1676(숙종 2)에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옥천재사의 누각인 화수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一자형의 2층 누각인데, 후면으로 ∩자형의 건물을 연접하여, 전체적으로 口자형의 평면을 이룬다. 화수루 하부 어칸에 문을 달아 통로로 사용하였고, 상부는 6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 평면 구조이며, 가구(架構)는 오량가이다. 누각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마당이 나온다. 화수루 후면의 건물은 부엌과 곳간으로 사용되었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장육사길 363

모래시계공원
모래시계공원은 동해 바다와 산, 정동진 2리 마을을 배경으로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한가운데에는 모래시계가 있고, 그 주위에는 소나무가 있다. 그리고 바다 쪽으로는 벤치가 자리 잡고 있다. 모래시계공원 바로 앞은 정동진해수욕장과 이어져 있다. 정동진 모래시계공원은 1999년 강릉시와 삼성전자가 새로운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했다. 공원 내 모래시계는 크기와 무게가 세계 최대이며, 시계 속에 있는 모래가 모두 아래로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꼭 1년이 걸린다. 그러면 다음 해 1월 1일 0시에 반바퀴 돌려 위아래를 바꿔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정동진 모래시계는 허리가 잘록한 호리병박 모양의 유리그릇이 아니고 둥근 모양인 것은 시간의 무한성을 상징하기 위함이다. 또 둥근 것은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고, 평행선의 기차 레일은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 모래시계를 세운 정동진은 서울 광화문 앞에 있는 도로원표석을 기점으로 정동 쪽에 있는 고을이다. 그래서 하지 때는 한반도 제일 동쪽으로 해가 뜨는 고을이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동면 헌화로 990-1
칠성산
칠성산은 구정면 어단리와 왕산면 도마리, 목계리 사이에 있는 953m 높이의 산이다. 산꼭대기에 7개의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마치 칠성과 같이 생겼다 하여 칠성산(七星山)이라 불린다. 이 칠성산에 오르려면 법왕사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인 등산 코스이다. 웅장한 돌들이 건너편 산을 병풍을 두르듯이 옹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주위는 기암괴석 사이로 자라는 노송들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칠성산 정상의 주위는 기암괴석들이 층을 이루며 모여 있고 숨은 산의 비경을 맛볼 수 있다. 정상의 동쪽으로는 강릉바다와 금광평, 강릉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며 법왕사 뒤쪽으로 길게 뻗은 칠성산 준령에는 많은 비트(은신처)들이 발견된다. 칠성산 일대의 또 다른 특성은 산림의 분포가 특이하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다른 산들의 능선길에는 참나무 등 여러 활엽수림이 서로 섞이어 자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산림의 자생구역이 확연히 구분된다. 능선의 동쪽 편으로는 참나무가 집단적으로 모여 있고, 서쪽 편으로는 노송들이 집단으로 자생하고 있다. 마치 능선을 사이에 놓고 소나무와 참나무가 대치하는 것과 같은 인상이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

오봉서원
오봉서원은 조선 명종 11년(1556) 강릉부사 함헌이 사신으로 중국에 갔다가 오도자가 그린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와 명종 16년(1561)에 처음 세웠다. 그 후 정조 6년(1782)에는 주자, 순조 6년(1806)에는 송시열을 함께 모시면서 선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의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하여 서원은 없어지고 영정과 위패는 강릉향교로 옮겨졌다. 지금의 서원은 1903년에 새로 지어졌는데 강릉지방의 유림이 사당 건물을 지어 집성사라 하고, 사당 옆에는 별묘를 세워 칠봉사라 하였다. 집성사·칠봉사·문·오봉강당·묘정비각·2개의 묘정비 등이 남아 있다. 집성사에는 공자·주자·송시열 3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칠봉사에는 함헌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강당은 마루방과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데, 각종 행사를 치르기도 하고 유림이 모여 회의나 학문을 토론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음력 9월 2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서원길 28-7

용연사(강릉)
강릉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약 10분 정도 달리면 사천면에 이르고, 사천에서 서쪽으로 약 10km 들어가면 산속에 용연사가 위치해 있다. 용연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과거에는 많은 승려들이 수행하던 장소였다. 6·25 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1953년 한 비구니에 의해 대웅전과 요사채가 중건되었다. 1958년에는 요사채 1동이 추가로 건립되었고, 1983년에는 원통보전과 삼성각이 신축되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불상 뒤의 탱화는 목각으로 조성되어 있다. 경내에는 1967년에 세운 높이 3.6m의 5층 석탑이 1기 있다. 이 석탑은 원래부터 있던 기단부를 그대로 활용해 세운 것이다. 용연사는 아늑한 산중에 자리하여 조용한 분위기를 지닌 사찰이다. 현재까지 여러 차례 중건과 보수를 거치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사천면 중앙서로 961

사근진해변(사근진해수욕장)
안현동에 있으며 길이 600m, 24,000㎡의 백사장이 있는 간이 해변으로 경포해변과 붙어 있다. ‘사근진’이란 이름은 옛날 삼남지방에서 사기를 팔러 왔던 사람이 이곳에 눌러앉아 생활하면서 조그마한 배 한 척으로 고기도 잡고 사기도 팔았다 하여 ‘사기장사가 살던 나루’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변에는 깨끗이 정비된 민박집이 여러 곳 있으며, 탈의장, 급수대, 파라솔 등의 편의시설이 있다. 사근진해변은 경포해변과 붙어 있으며 넓은 백사장과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다. 사근진해변은 경포해변과 맞닿아 있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사근진해변은 푸르고 맑은 바다와 주변에 깨끗한 숙박시설이 관광객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해안로604번길 16

영진해변
영진 해수욕장은 조용하고 깨끗하여 가족 단위로 피서를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서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그마한 어촌 마을이다. 완만한 항구 바로 옆에 있어 피서철에 외지 피서객이 많이 방문한다. 60여 가구 어민이 35척의 어선으로 2월부터 10월 사이에 가자미와 조개를 많이 잡는다. 영진항은 좋은 물고기들이 많이 잡히는 곳으로 유명해 배낚시를 즐기는 동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삼 년에 한 번씩 지내는 풍어제는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은탁이 홀로 열아홉 생일을 자축하며 케이크 촛불을 끄다가 운명처럼 김신을 만난 장소다. 김신은 생일을 맞은 은탁에게 들고 있던 메밀꽃을 건넸고, 꽃말이 ‘연인’임을 알려 두 사람의 미래를 짐작게 했다. 두 사람이 서 있던 방파제는 지금도 도깨비 커플을 추억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

화적연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화적연[禾積淵]은 한탄강변에 13m의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화강암을 말한다. 예전부터 화강암 바위가 마치 볏단을 쌓아 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화적연은 사실적인 표현기법을 창안하여 새로운 화법의 시대를 열게 된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금강산 유람길에 이곳에 들러 화적연을 화폭에 담았으며,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해악전신첩」속에 이 그림이 있다. 또한, 삼연 김창흡의 시문집에도 화적연의 멋진 풍광을 소개하고 있다. 화적연(禾積淵)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시대의 화강암으로 알려진 명성산 화강암이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인해 생성된 것으로, 주변에는 다양한 암석들이 분포하는데, 화강암(화적연)을 덮은 제4기 시대의 현무암과 관입되어 나타나는 유문암, 안산암, 산성암맥 등이 관찰된다. 또한, 현무암이 식으면서 생성된 주상절리, 관입된 유문암에 포획된 화강암(포획암), 하천의 흐름방향을 알 수 있는 현무암의 침식면, 하천침식에 의한 포트홀 및 그루브 등 다양한 지질구조 및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출처 : 한탄강지질공원)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사정리

누리천문대
누리천문대는 군포시 대야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천문대로서 대야도서관 옥상 정원에 천체관측실과 천체투영실을, 4층에 천문우주체험관과 4D입체영상관을 설치하여 운영하는 시민천문대이다. 천체관측실, 천문우주체험관, 4D입체영상관, 플라네타리움 등 아담하고 알찬 시설을 갖추고 있는 누리천문대는 군포시를 대표하는 천문우주 체험학습 공간이다. (출처 : 누리천문대 홈페이지)
경기도 군포시 대야2로 139 (대야미동)
스플라스 리솜
스플라스 리솜은 약 600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용출온도 49.6도에 달하는 덕산 온천수로 워터파크, 스파, 리조트까지 한 번에 즐기는 복합 휴식공간이다. 정부가 지정한 보양온천의 온천수가 워터파크 내 15개의 야외 노천탕, 워터 슬라이드, 바데풀 등 모든 물놀이 시설뿐만 아니라 406개의 전 객실에 공급되어 스플라스에서는 사계절 언제나 온천수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이곳의 온천수에는 규소, 칼슘, 마그네슘 등 다양한 미네랄 성분과 함께 다량의 실리카 성분이 함유돼 있어 피부미용 및 노화방지, 혈관강화, 면역력 증가, 관절염 통증완화 등에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라라골프클럽, 마이리틀스플라스, 미니카랜드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리조트 객실은 6개 타입의 평형으로 구성되어 친구, 연인, 가족 등 다양한 고객층이 적합한 공간에서 편하게 머물 수 있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온천단지3로 45-7

백석산지구 전투전적비
이 전적비는 백석산 전투에서 산화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육군 제3군단이 1958년 3월 15일에 세웠다. 백석산 전투는 1951년 8월 18일부터 10월 28일까지 벌어진 치열한 고지쟁탈전으로, 국군 제7사단과 제8사단, 미군 제96야전포병대대가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서 싸웠다. 국군은 883 고지, 901 고지, 536 고지, 554 고지 등 주요 고지를 탈환하며 백석산을 확보하고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전투는 어은산 남쪽 고지군까지 확전 되었고, 국군은 중공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주요 고지를 점령해 전선을 안정시켰다.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방산면 송현리 233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은 사벌국(沙伐國)의 왕릉이라고 전해지는 곳의 서쪽에 있는 탑으로, 돌을 깎아 만들었다.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린 형태이다. 꼭대기돌을 제외한 몸돌, 기단이 온전히 남아 있다. 지붕돌과 몸돌이 9세기 무렵에 유행한 양식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시기의 탑은 보통 기단을 2단으로 쌓는데 화달리 삼층석탑은 기단이 1단인 점이 특징이다.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기고, 지붕돌의 처마 끝 귀퉁이를 위로 올려 균형감과 생동감을 주었다.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화달1길 2
상주향교
상주향교는 1426년(세종 8)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8년(광해군 10)에 중건하였다. 현재의 남산중학교 일대가 향교의 경내였으나, 1949년 학교로 개조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동재, 원래의 것을 축소한 것으로 보이는 서재,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누각인 태평루 등이 있다. 정면 10여 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동무와 서무는 현재 학교의 교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명륜당은 1920년대에 소실되어 그 자리에 교실을 신축하였다. 대성전에는 5성과 송조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대제를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남산중학교의 소유로 되어 있다. 상주향교는 문화재청에서 진행하는 문화재 활용사업인 [향교에서 즐겨보자]를 진행한다. 프로그램은 향교스테이를 통한 선비체험, 전통미풍양속 프로그램, 선비문화 정착을 위한 유교인문학 강좌, 단오절 전통민속놀이(그네뛰기, 창포물 머리감기, 궁기꽂이, 떡메치기, 윷놀이, 종경도놀이, 국궁, 투호놀이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학교를 운영한다. 상시 프로그램인 성균관 문화관광 프로그램은 선비문화 정착을 위한 선비예절과 유생체험이 있고, 유교 전통의 현대적 계승과 미래가치를 습득하여 문화·교양인 양성을 위한 성균관유교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상주향교는 그 어느 향교보다 문화유산을 활용하여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자 하며 유교문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보급하고자 노력하는 개방된 향교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2길 111 (신봉동)

상주 양진당
조선시대 문신 검간 조정이 1626년 지은 가옥인 상주 양진당은 종도리(용마루 밑 서까래를 거는 도리)기록에 의하면 1807년(순조 7)에 중수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1966년 대홍수 때 사랑채가 훼손되고 안채 23칸만 남았으나 1981년 전면 해체, 복원하였다. 원래 정면 9칸, 측면 7칸의 규모의 ‘ㅁ’자형 맞배지붕 건물인데 지금은 퇴락하여 좌우가 약간 다른 ‘ㄷ’ 자형으로 남아 있다. 특이한 것은 대지가 약간 경사져 있기 때문에 건물 바닥을 지면에서 1미터 이상 높게 마련한 고상형 구조로 이 구조는 남방식 가옥의 특징 중 하나이다. 뜨거운 여름 지열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장점과 낙동강과 가까운 저지대에 위치하여 하천이 범람할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상형 구조 중 보기 드물게 구들을 설치한 점은 한겨울 외부의 차가운 공기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한 북방식 구조이다. 이처럼 남방식, 북방식의 특징을 고루 갖추었다는 점에서 조선 중기 주거유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로 볼 수 있고 방이 두 줄로 나열되는 겹집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과 기둥은 굵은 부재를 사용하면서도 모서리를 접어서 투박하게 보이지 않게 하는 기술적 성숙도에서도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건물로 평가된다. 툇마루에 매달려 있는 종은 이곳이 일제 강점기 학교 역할을 했음과, 한국전쟁 후 현 낙동초등학교 분교 역할을 했음을 알려 준다.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27-4

전사벌왕릉
전사벌왕릉(傳沙伐王陵)은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화달리에 있는 무덤이다.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보물) 동북쪽에 있으며, 왕릉이라고 전해지지만 정사에 기록이 없어 누구의 묘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상주군읍지』에 의해 신라 54대 경명왕의 다섯 번째 왕자 박언창의 묘로 추정한다. 박언창은 사벌주의 대군으로 책봉되었으나 후에 이곳을 사벌국이라 칭하고 자립왕으로서 11년간 다스리다가 견훤의 침공으로 패망하고 이곳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삼층석탑 옆에 왕릉에 속한 신도비가 세워져 있으며 석탑의 서북 편에는 상산 박씨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 있다. 현재 능 앞에 세워져 있는 석물들은 오래된 것이 아니며 신도비는 1954년에 세워진 것이다. 상주시가 1981년 12월 능역을 확장하고 왕릉, 영사각 등 주변을 보수하고 정화하였다.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화달리

상주 오작당
상주 오작당은 조선시대 의병장 조정이 지은 가옥으로 원래는 40여 칸이었는데 1781년에 부분적으로 헐어내고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집안에 설치하는 사당인 가묘가 남아 있다. 상주 양진당에서 조금 떨어진 남쪽에 뒷산을 등지고 장천과 주변의 넓은 밀밭들을 향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의 왼쪽에 중간 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중문간채와 사랑채가 있는데, 앞면 7칸, 옆면은 2칸과 2칸이다. 사랑채 뒤로는 앞면 5칸, 옆면 2칸에 정지, 안방,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된 안채가 있다. 안채 뒤편 좌측 담장 모서리에는 가묘가 있고, 맞은편 담장 밖에는 조목수 불천위 사당이 있다. 안채는 각 방이 앞뒤로 배치된 구조이고, 부엌 위에 각종 집안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고방을 두었다. 네모기둥의 모서리를 깎아 둥글게 다듬은 기둥머리 위에 연꽃봉우리 조각재로 대들보를 받쳤다. 옛날 방식으로 만든 문과 창문 등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진당의 건축적 특징과도 유사한 점이 많아 그 가치가 높다.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선상서로 1975

도남서원
도남서원은 1606년(선조 39)에 창건하여 1676년(숙종 2)에 사액되었으며 1797년(정조 21)에 동·서재를 세운 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쳤다. 1871년(고종 8)에 철거하였으나 1992년 향토 유림에서 강당 등 일부를 재건립하여 복원하였고 2002년부터 유교 문화 관광개발 사업으로 정허루, 장판각, 전사청, 영귀문, 고직사, 일관당, 입덕문 등을 건립하여 지금의 모습을 갗추었다. 도남이란 북송의 정자가 제자 양시를 고향으로 보낼 때 ‘우리의 도(道)가 장차 남방에서 행해지리라’ 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조선의 유학 전통은 영남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세워진 서원이다. 수백년 간 이어오면서 정봉주, 김광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유성룡, 정경세, 이준 등 아홉 선생을 모시고 있으며 향사는 매년 음력 2월 8월에 행한다. 향사가 있을 때 외에는 닫혀 있어 경천섬 관광안내소에 문의하거나 영귀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도남2길 91 (도남동)

용화사(상주)
용화사는 함창읍 증촌리에 있는 사찰로 용화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누가, 언제 초창하였는지는 현재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전설에 의하면 이곳이 본래 신라 문무왕 때 의상조사가 처음 창건한 상안사의 유지라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함창읍지』에 이 절을 가리켜, ‘사창[司倉] 뒤 현탑동에 신라 고찰인 큰 절이 자리하는데, 석조 미륵상 2위가 있다’라고 적혀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석조 미륵상 2위가 바로 약사전에 봉안된 불상들로, 석조여래좌상과 또 다른 석불입상인데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 밖에 전하는 연혁은 없지만, 경내에 석탑과 석등, 주초석 등 여러 가지 오래된 석재편들이 있어 이곳이 오래된 절터임을 알 수 있다. 법당 안에 석불입상 보물, 석불좌상 보물, 각 일구가 봉안되어 있고 경내에도 석탑 및 석탑재, 광배편, 장대석 등 많은 석조의 부재가 동리 인근에 산재하고 있었던 것을 절 안에 모아두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증촌2길 10-13

흥암서원
상주 흥암서원은 송준길(1606~167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송준길은 문묘에 배향된 해동 18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이, 김장생, 김집으로 이어지는 기호 학맥을 이은 학자이다. 조선 후기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서 기호 학맥을 계승한 서인·노론계 인사들은 상주 흥암서원을 중심으로 결집하였다. 1702년 상주 지역에 송준길을 제향하는 상주 흥암서원이 건립되었으며, 1705년 ‘흥암’으로 사액 되었다. 영남에서 최초로 건립된 서인·노론계 사액 서원이 되었으며, 왕으로부터 친필 편액을 받았다. 이에 호응하여 성이홍, 채징휴 등 원유들이 어필비를 건립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 때도 상주 흥암서원은 철폐되지 않았다. 이후 상주 흥암서원은 근대 학교로 활용되어 상주고등학교와 남산중학교가 발족하였으나 현재는 이건 하였다. 2005년 유교문화권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중수하였다. 상주 흥암서원의 건물로는 흥암사, 진수당, 진의재, 의인재, 어필비각, 내삼문 등이 있다. 흥암사는 향사를 지내는 사우로, 송준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재인 진의재와 서재인 의인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1길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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