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11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11페이지입니다.

경주 이견대
대왕암을 의미 있게 눈여겨볼 수 있는 곳이 두 군데 있다. 대본 초등학교 앞쪽에 있는 이견대와 동해구(東海口)라는 표지석 아래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기념비가 서 있는 자리이다. 이견대는 화려한 능묘를 마다하고 동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는 곳이며 그의 아들 신문왕이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배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현재의 건물은 1970년 발굴조사 때 드러난 초석에 근거하여 최근에 지은 것이다. 동해구 표지석 아래로 내려가면 우현 고유섭 선생의 반일 의지를 기리기 위해 1985년 제자들이 세운 기념비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가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 명백한 침략을 내선 합일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우격다짐에 쐐기를 박듯, 이미 통일신라시대에 왜구의 침략을 경계한 문무왕의 호국의지를 돌이켜 생각하며 고유섭이 지은 ‘대왕암’이라는 시와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기념비가 대왕암이 바라다 보이는 자리에 나란히 세워져 있어 뜻이 더 깊다.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대밑길 12-14

영지석불좌상
영지석불좌상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능리에 있는 석불좌상이다. 대좌와 몸 뒷부분에 조각된 광배가 있는 불상으로 광배 일부와 머리 부분은 심하게 닳아서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건장한 신체와 허리, 부피감 있는 무릎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며,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놓고 손바닥이 밖을 향하게 하였다. 팔각형의 섬세하고 고운 연꽃대좌와 불신과 같이 하나의 돌에 새겨진 광배에는 번잡한 불꽃무늬 안에 작은 부처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어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아사녀가 불국사 석가탑을 만든 아사달을 찾아와 기다리다 몸을 던져 죽은 후 아사달이 그녀를 위하여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거창 동계종택
조선 중기의 문신 정온이 태어난 집으로, 후손들이 1820년에 다시 짓고 정온의 신위를 사당에 모시고 있는 곳이다. 고택은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남쪽 지방임에도 추위가 심해 북방식인 겹집 형태로 지어졌고, 호서지방이 가까워 비가 잦아 비를 피하려 사랑채 누마루는 겹지붕 형태로 건축되었으며, 이는 고건축학적으로 특이한 것으로 눈썹지붕이라고도 한다. 사랑채는 꺾인 부분을 누마루로 꾸미고 눈썹지붕을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안채와 사랑채는 북부지방 가옥의 특징인 겹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기단은 낮고 툇마루를 높게 설치한 남부지방 고유의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집의 학술적 가치를 찾을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양반주택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또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동1길 13

거창 갈계리 삼층석탑
이 석탑은 사각형으로 된 이중의 받침대를 두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일반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간략화된 조성 기법이 고려시대 이후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받침대 부분은 위아래 받침 모두 모서리 기둥과 함께 중앙에 받침기둥을 새겼다. 몸체와 받침을 이어주는 위 갑석은 경사가 별로 없는 한 장의 돌로 조성하였다. 각 몸체에도 모서리기둥을 조각했을 뿐, 그밖에 별다른 조각은 없다. 지붕돌의 받침은 각각 4단이며, 추녀의 물받이면은 낮게 조성하여 경사가 심하지 않다. 그러나 모서리 부분은 너무 치켜오려 과장이 심한 편이다. 꼭대기 부분이 없어져 버려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다. 받침 부분이 큰 데 비해 몸체와 대기 부분이 없어져 버려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다. 받침 부분이 큰 데 비해 몸체와 대기 부분이 없어져 버려 원래의 모습은 알 수없다. 받침 부분이 큰 데 비해 몸체와 지붕이 왜소해 보여 전체적인 조형미를 갖추지 못하였으며, 지붕돌 역시 너무나 두꺼워 투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조형 양식을 볼 때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
조선 연산군 7년(1501)에 요수 신권이 이곳에 들어와 산 이 후, 이 마을은 거창 신씨의 집성촌으로 번창해 왔다.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이 집은 1927년 신도성이 건립한 근대기 주택으로 원학고가라고도 부른다. 당시 이 집의 주인은 큰 지주였다고 하는데, 이 집은 그러한 집주인의 경제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모두 경남 지방의 일반적인 주택 양식인 홑집 대신에 겹집의 팔작지붕으로 지어 집주인의 부와 권위를 드러내고 있으며, 사랑채는 궁궐이나 절에서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장식물로 꾸몄다. 잘 다듬은 커다란 돌로 쌓은 받침돌과 기둥을 받친 주춧돌 위에 설치한 기둥 자리 등은 조선 중기 이전에는 벼슬이 높은 양반 집안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 밖에 안채와 그 건물을 둘러싼 크고 화려하게 지은 부속건물들도 집주인의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안채의 늘어난 방 수, 좁아진 대청, 집안에 들어선 화장실 등은 전통의 격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20세기 초 실용성을 중시하던 가옥의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20년대에 지어진 이 가옥은 격식의 해체, 실용성의 증가, 심화된 경제적 계층화 등 복합적인 사회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109-5

우두산
산의 형세가 소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의상봉(1,046m)은 우두산의 아홉 봉우리 중 가장 높은 곳이며,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참선한 곳이라고 해서 의상대사 이름을 빌려 산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속세를 떠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할 만큼 경치가 빼어난 산이라고 해서 별유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두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동남쪽으로는 비계산, 북쪽으로 수덕산, 서북서쪽으로 덕유산, 기백산, 금원산, 황석산 등의 산과 능선이 보이며, 산세가 수려하기로는 덕유산, 기백산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의상대사가 참선하던 곳으로 알려진 의상봉, 처녀봉, 장군봉(953m), 바리봉, 비계산 등이 빼어난 산세를 자랑한다. 우두산 아래에는 고견사와 고견사폭포, 쌀굴 등이 있어 볼거리가 많으며, 고견사의 세 가지 구경거리로 높이 80m 되는 가정산 폭포, 최치원 선생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의상대사가 쌀을 얻었다는 쌀굴 등이 있다. 우두산에는 거창 항노화힐링랜드와 우두산 Y자형 출렁다리가 있으며, 정상 남쪽 억새밭 지역에 있는 별유샘도 꼭 들러가야 할 곳 중 하나이고 가조천의 발원지가 되는 곳이다. 우두산 산행 후 가조 온천에서 피로를 풀 수 있어서 주말이면 등산객의 발길이 잦은 산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거창 둔마리 벽화 고분
금귀봉의 동남쪽으로 뻗어있는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는 무덤으로 이 일대는 석장골 또는 재궁골이라 불리던 곳이다. 고분의 모양은 능선 상의 좁은 평지 위에 방형으로 지대석을 설치하고 그 위에 호석을 올려놓고 봉토를 쌓은 방형호석 형태이다. 석축의 동쪽, 서쪽에 2구의 석인이 있는데 동쪽 석인은 두관을 착용한 문인석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형상이다. 서쪽의 석인은 가슴 윗부분이 절단되고 하반신만 남아 있으나 동편과 비슷한 형태로 보인다. 근처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일반인들의 무덤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둔마리고분은 발견 당시에는 파괴가 심하였으나 지금은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무덤 내부 구조는 상자형 쌍돌덧널로 먼저 땅을 판 후 판석으로 벽을 두르고 그 안에 덧널을 설치한 굴식돌방무덤으로 서쪽에 있던 덧널에는 나무로 만든 널이 1개가 들어 있었으며 동쪽 돌덧널은 비어 있었다고 한다. 양쪽 돌덧널 모두 벽면에 회칠을 하고 흑·녹·갈색으로 인물을 그린 벽화가 있고, 동쪽 돌덧널의 동쪽 벽에는 선녀 6명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북쪽 벽에 글자가 희미하게 나타나 있다. 서쪽 돌덧널의 서쪽 벽에는 여자 두 명, 남자 한 명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벽화의 내용은 악기 연주 그림으로 붓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생기가 있으며, 불교의 사상이 중심이 되면서 도교의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남산공원(고성)
고성읍 주변과 남해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공원으로 공원 입구는 선인들의 행적비가 가지런히 정비되어 있고 84 계단을 오르면 대한불교조계종 옥천사의 말사인 보광사를 만날 수 있다. 보광사 좌측에는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충혼탑과 봉안각, 6·25 반공유적비 등이 세워져 있다. 보광사 위편 산등성이에는 생활체육시설과 목련쉼터를 조성하여 체력단련과 함께 쉼터로서의 완벽한 휴식 공간이 조성되어 있어 읍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부터 산정을 거쳐 수남리와 신월리까지 3~4m 폭의 산책로가 잘 닦여져 있으며 약 1시간이면 산책이 가능한 거리이다. 전문 육상선수들의 동계훈련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며 정상에는 고성만 해안과 고성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팔각정이 세워져 있어 읍민들의 건강 증진과 휴식은 물론,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머무르고 싶게 하는 포근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수남리

문수암(고성)
대한불교조계종 쌍계사의 말사인 문수암은 고성군상리면 무선리 무이산에 있는 암자로서 신라 의상조사가 창건했다. 창건 이후 이 암자는 수도 도량으로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고, 산명이 수려하여 삼국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 유명하였으며 특히 화랑도 전성시대에 국선 화랑들이 이 산에서 심신을 연마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현존하는 암자는 사라호 태풍 때 건물이 붕괴된 뒤에 지은 현대식 건물이고, 일반 신도들의 성금으로 1973년에 이 절에서 수도한 이청담(李靑潭)의 사리를 봉안하여 세운 청담 대종사 사리탑이 있다. 인근에 수태산 보현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문수암 입구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승용차로 조금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면 문수암이 나타난다.
경상남도 고성군 상리면 무선2길 808

화암약수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
그림바위 산속에서 바위를 뚫고 샘솟는 화암약수는 철분, 탄산, 칼슘 외 9가지의 건강 필수 원소가 함유된 톡 쏘는 맛을 가진 천연 탄산수다. 화암약수는 화암팔경 중의 하나로 신비한 맛의 산화철 탄산수로 위장병, 빈혈, 안질, 피부병 등에 효능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1910년경 문명무라는 사람이 청룡과 황룡 두 마리가 얽히고설켜 서광을 발하며 하늘 높이 올라가는 꿈을 꾸고 발견하였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화암약수는 자연경관도 아름답고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여유 있게 경관을 즐기면서 산책을 할 수 있다. 특히 10월부터 11월 가을철에는 단풍이 아름답다. 정선아리랑으로 유명한 아우라지 나루터와 가리왕산의 풍광이 뛰어나 관광코스로 이용되며 주변에 화암동굴, 거북바위, 몰운대 등의 화암팔경을 돌아볼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화암면 약수길 1330

화암동굴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화암관광단지에 위치한 화암동굴은 금광산과 석회석 자연동굴이 어우러진 국내 최초의 테마형 동굴이다. 일제강점기 금을 채굴하던 천포광산의 갱도 작업 중 지하에 있던 대형 석회동굴이 발견되면서 현재의 교육·체험형 동굴 관광지로 조성되었다. 총연장 1,803m의 관람 구간 중 상부갱도 515m에는 금광맥의 발견부터 채취까지의 전 과정을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하여 역사·교육적 요소를 더했다. 동굴 내부에서는 대형 유석, 석주, 종유석, 석화, 곡석, 동굴산호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을 관찰할 수 있다. 아울러 동굴 마스코트인 ‘금깨비’와 ‘은깨비’를 활용한 캐릭터 연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흥미롭게 동굴을 탐험할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화암면 화암동굴길 12

옥천사(고성)
고성군 개천면 연화산에 있는 천년고찰 옥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인 쌍계사의 말사로, 670년에 의상이 창건하였다. 대웅전 뒤에 맑은 물이 나오는 샘이 있어 옥천사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1208년에 진각국사 혜심이 중창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0년에 학명과 의오가 다시 중창하였다. 1883년 용성이 중건하였고, 1919년 이 절의 강사 영호가 두 차례 중수하였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건물은 대웅전, 자방루 심검당, 적묵당, 명부전, 금당, 팔상전, 나한전 등이 있는 대형 사찰이다. 자방루는 지은 지 300년이 넘는 건물이며, 대웅전은 1745년에 창건된 목조 건물이다. 유물로는 옥천사임자명반자가 있는데, 이는 고려 1252년에 동으로 만든 악기로서 불교 의식에 사용하였다.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연화산1로 471-9

운흥사(경남)
고성군 하이면 와룡산 향로봉(香爐峯) 중턱에 위치한 천년고찰 운흥사(雲興寺)는 1,300여 년 전 신라 문무왕 16년 (676년) 의상조사가 창건한 신라 고찰이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 50여 말사 중 산세와 규모가 비교적 큰 수 말사에 속하고, 임진왜란 때 승병의 본거지로서 사명대사의 지휘 아래 6,000여 명의 승병이 머물 정도로 규모가 컸으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수륙양면 작전 논의차 세 번이나 이곳을 왕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불가의 화원 양성소로 큰 역할을 했는데 조선시대의 불화 중 가장 많은 걸작품을 남기고 있는 『의겸(義謙)』 등이 나왔다. 그 당시 절의 규모는 현존하는 산내 암자인 천진암과 낙서암을 비롯하여 아홉 군데의 암자가 있었고 곳곳에 남아있는 절터와 대형 맷돌 그리고 전방 1㎞ 떨어진 언덕에 고승들의 사리가 안장되어 있는 부도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상당한 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효종 2년(1651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경내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대웅전과 영산정, 요사채와 그 사이의 장독대가 전부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범종루(梵鐘樓),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고, 이 중 대웅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웅전 내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인 괘불(掛佛)과 조선 후기에 제작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인 경판(經板) 등이 보관되어 있다. 대웅전 안에 모셔져 있는 삼존불상과 더불어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감로탱’인데 이는 조선 중기 이후에 불화를 잘 그리기로 이름난 의겸이 그린 것으로 보아지며 당시 일반인들의 생활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괘불탱화를 비롯하여 대웅전, 영산전, 명부전 목조각상, 목제원패, 경판 등 30여 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가장 많은 승군이 죽은 날로 기록되는 음력 2월 8일이면 국난극복을 위해 왜적과 싸우다가 숨진 호국영령들을 위한 영산제가 열린다. 운흥사에서 와룡산 정상 쪽으로 300m쯤 오르면 운흥사의 부속 암자인 천진암(天眞庵)에 이르고 여기서 200m쯤 오르면 낙서암(樂西庵)에 이르게 되는데, 낙서 도인이 수도하였다는 낙서암은 물이 세다고 하고 이 물로 술을 빚으면 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와룡2길 248-28

고성 송학동 고분군
고성읍 무기산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구릉 주변에 있는 7기의 가야 무덤들이다. 가장 높은 곳에 1호 무덤이 있고 점차 밑으로 내려가면서 나머지 6기의 무덤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에서 북쪽으로 300m 거리에 기원리 무덤들이 있고, 동쪽으로 300∼400m 거리에 송학동 조개더미가 있어, 삼국시대 소가야국의 자리를 나타내주고 있다. 1호 무덤은 겉모습에서 앞이 네모나고 뒤가 둥근 무덤인 전방후원형 무덤으로 보이기도 하나, 발굴조사 결과 흙을 쌓아 구릉처럼 만든 뒤 돌무덤방을 만든 가야 고유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 7기의 무덤은 1호 무덤인 무기산 무덤과 가까운 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1호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는 딸린무덤(배총)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호 무덤은 좋은 위치와 무덤의 규모 등을 생각했을 때 이 지방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며, 만들어진 시기는 A·D 400년을 중심으로 앞뒤 50년의 범위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북쪽에는 고성 동외동 조개더미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 조개더미에서는 널무덤(토광묘)·독무덤(옹관묘)·돌널무덤(석관묘) 등의 유적과 청동 투겁창(청동광모)·청동 칼자루 끝 장식(검파두식)·거울조각·불탄 쌀·회색토기 등의 유물이 발견되어 이 지방의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송학동 무덤은 동외동 조개더미의 초기철기시대를 뒤 이은 후대 문화를 대표하는 가야 문화 유적으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 470

워터월드 제주
워터월드 제주는 국내 최초 '물'을 이용한 몰입형 미디어 테마파크로, 감각적인 미디어아트와 다채로운 콘텐츠를 선보인다. 총 12개의 테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창적인 컨셉과 높은 퀄리티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도록 가을과 겨울에는 온수로 운영되며, 공간 곳곳에 마련된 감성적인 사진 명소에서 추억을 남기기에도 좋다. 어린이가 있는 가족부터 이색적인 경험을 원하는 성인까지,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어 누구나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월드컵로 33 (법환동)
대국산성
남해 대국산성은 남해군 설펀면 진목리에 있는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옛 성으로 산꼭대기를 빙둘러 돌로 쌓았다.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국산성은 성 안에서 여러 종류의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이 발견되고 성의 보존 상태가 역시 매우 좋아 학술상으로도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해발 376m의 대국산 정상에 있는 대국산성의 둘레는 1.5㎞, 성벽의 높이는 5∼6m이고, 윗부분의 폭은 2.4m인데, 성벽의 바깥쪽은 깬돌을 이용하여 겹으로 쌓아 올리고, 안쪽은 자갈과 흙을 섞어서 채워 성벽을 다졌다. 성벽의 둘레에는 네모꼴의 망대가 있었던 흔적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현산성은 현의 북쪽 17리 지점에 있으며, 석축으로 둘레는 527m이고 높이는 3m이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고현산성이 바로 대국산성으로 여겨진다.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남치리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
창선면 단항마을 앞 농경지 안에서 자라고 있는 천연기념물 왕후박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8.6m로 가지는 밑동에서부터 11개로 갈라져 있다. 옛날 단항마을 어부 한 사람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큰 고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뱃속에서 씨앗이 나와 뜰에 심었더니 하루가 다르게 나무가 자랐고 이것이 왕후박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동제나무라 칭하며 매해 음력 섣달그믐날 정성스레 동제를 올리며 풍년과 풍어를 빌었다고 한다. 후박나무는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 등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로 일본, 대만 및 중국 남쪽에도 분포하고 있다. 나무가 웅장하게 자라기 때문에 정원수, 공원수 등에 이용되고 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용으로도 심어졌다.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대벽리

적석산
적석산은 깃대봉에서 남쪽 방향으로 흘러내린 산릉이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거대한 암봉을 치받고 솟아난 곳이다. 마치 돌을 쌓아 올린 듯 보인다 하여 붙인 산명이지만 그저 적산(積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커다란 암반으로 이루어진 정상 주위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지만, 대부분의 산능은 단순한 흐름과 더불어 부드럽다. 창원시 진전면 일암리에 위치한 적석산 정상에 두 봉우리를 연결하는 52m의 현수교가 설치되어 등산객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적석산은 도심지 인근에 위치하고 주변에 마빈온천등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산을 찾는데 반해, 정상 첫 번째 봉우리와 두 번째 봉우리간의 연결코스가 암벽으로 이루어져 추락위험이 내포되어 있었으나, 2005년 말 현수교 설치로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경관을 안전하게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적석산2길 136

강주연못
강주연못은 본래 강주의 영터라고 전한다. 진양지에 의하면 하륜(1347~1416)은 그의 촉석성 성문기에서 ‘미년(1379) 가을에 지밀직 배공(배극렴, 1325~1392)이 강주진장으로 와 있으면서 목관에게 이첩하여 촉석성이 흙으로 된 것을 돌로서 쌓게 하였더니 역사가 반도 되지 못하여 왜구에게 함락되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곳이 고려 말 우왕 5년(1379년)에 배극렴이 진을 치고 있던 영터라는 것은 분명하며 이곳이 석축 된 오늘날의 진주성(晋州城)을 있게 한 근원지이다. 강주연못이 언제 축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못둑에는 5~6백 년 정도의 고목이 우거져 있고 이곳의 이팝나무는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말이 전하는 것 등으로 보아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못둑에는 오래된 고목이 무성하며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경치가 좋아 연중 관광객이 많고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2004년 생태공원의 조성으로 환경과 교육, 휴식이 어우러진 장소로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

남악서원
남악서원은 신라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전략상의 요충지를 찾아다니다가, 이곳 금산 아래서 진을 치고 휴식하던 중 비몽간에 신령이 나타나 삼국통일의 위업을 가르침 받아 높은 공을 세웠다고 전한다. 1922년 지방 유림이 중건하고, 경주 서악서원의 이름을 본떠 남악서원이라고 하였다. 사당에는 김유신 장군과 최치원 선생, 설총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사당과 서원, 솟을대문이 남북 축상에 놓여 있고, 서원 좌우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재가 각각 마주 보고 있는 □자형의 좌우대칭 배치를 나타내고 있다. 서원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오량구조 팔작지붕이다. 특이한 점은 대청이 없고, 툇마루가 확장되어 대청의 기능을 하고 있고, 사당은 서원 바로 뒤에 높게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3량 구조 팔작지붕이며, 전퇴칸이 없는 평면형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죽곡길 102

진양호 공원 (진양호 전망대, 동물원)
서부 경남의 유일한 인공 호수인 진양호에 있는 공원으로 각종 위락시설을 고루 갖춘 관광객의 쉼터이다. 경남 유일의 동물원을 두고 있어 호랑이, 사자, 곰, 독수리, 기린 등 야생동물을 직접 관람할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다. 3층 규모의 현대식 휴게 전망대로 시원하게 트인 넓은 호반과 주변 시가지, 지리산·와룡산·자굴산·금오산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진주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영화 의 촬영지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1년 계단과 연결되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상락원 가족쉼터와 연결된 가족들의 휴식코스로, 동물원·진주랜드와 연결되어 오락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갖춘 진주의 명소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진양호의 노을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진양호반 둘레길, 어린이농촌테마체험관, 청소년진로체험관, 어린이물놀이터, 에어바운싱돔 등 많은 관광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1번길 96-6 (판문동)

시루봉
시루봉은 지도에는 웅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웅암이 마치 시루를 얹어 놓은 것 같다 하여 시루봉으로 부르고 있다. 시루봉은 진해, 창원, 김해에 걸쳐있는 산으로 북서쪽으로 장복산, 남서로는 산성산, 남으로는 천자봉과 연결된다. 시루봉은 산세가 수려하며, 안민고개에서 주능선에 이르기까지 등산가 좌우의 막힘이 없어 진해시가 한눈에 보이며, 좌측으로는 창원시가 보인다. 진해 시내와 멀리 바다를 함께 볼 수 있으며 가을에는 억새와 상록수 편백의 군락이 볼 만하다. 시루봉 정상에 우뚝 솟은 거암 시루바위는 조선시대 명성황후가 순종을 낳은 후 세자의 무병장수를 비는 백일제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쾌청한 날에는 멀리 대마도가 보이는 이 시루바위에는 조선시대 웅천을 일본에 개항하였을 때, 웅천을 내왕하는 통역관을 사랑하게 된 기생 아천자가 이 바위에 올라 대마도를 바라보며 기약 없이 떠난 임을 그리워했다는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

수치해안
창원시에 위치한 수치해안은 잔잔한 바다와 숲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횟집과 레스토랑, 숙박시설,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다. 주변 횟집에서 선보이는 싱싱한 회와 얼큰한 매운탕은 관광객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또한 사철 어종이 다양하고 풍부하여 방파제 또는 배를 이용하여 낚시도 즐길 수 있다. 봄에는 도다리, 노래미, 여름에는 장어, 가을은 돔과 볼락, 겨울은 돔과 농어 등이 잡힌다. 인근에는 임진왜란 당시 이충무공이 왜군을 무찌른 해전으로 유명한 합포가 있어 호젓한 산길을 거닐면서 바다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좋다.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안골왜성
안골왜성은 일본군들에 의해서 축성된 일본식 성으로 일본 수군의 본거지였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군은 해전에서 우리 수군에게 패전을 거듭하여 막대한 군사적 타격을 입고 본국으로부터의 보급이 원활하지 못하자 우리 수군을 해상에서 제어하고 장기간 주둔을 위한 최후의 기지로 활용하기 위하여 1593년경 남해안 연안일대의 요지에 웅천안골왜성을 포함한 18개소의 왜성을 축성하였다. 1998년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으며, 높이 3∼8m, 둘레 594m, 넓이 약 16,529㎡, 안골포 동쪽의 해발 100m의 동망산 위에 있으며 가덕도 왜성과 약 4㎞ 거리에 있다. 동망산의 지형을 3등분으로 나누어 부분적으로 정상부를 깎은 뒤에 본성, 제1 외곽, 제2 외곽으로 나누어 따로 석축하고 외곽으로 각 부분을 연결하였는데 외곽의 일부는 토축성이다. 비록 일본군에 의해서 축성되기는 하였지만 성을 축성하는 노역을 담당했던 우리 선조들이 흘렸을 눈물과 한을 무심히 간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축성 기술과 일본의 축성 기술을 비교하여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