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10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10페이지입니다.

중앙탑공원(충주)
국보인 충주 탑평리 7층 석탑은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우리나라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이라고도 부른다. 중앙탑 주변에는 넓은 잔디밭에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충주박물관과 술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한편 바로 옆으로 남한강에 조정지댐을 만들어 형성된 탄금호에는 여름철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어 휴양레포츠형 충주의 모습을 제공한다. (출처 : 충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충청북도 충주시 탑정안길 6

천안상록리조트 아쿠아피아
천안에 있는 워터파크로 7월~8월 여름 시즌에는 실외풀을 포함해 운영되는 야외 물놀이장이다. 어린이풀, 파도풀, 유수풀, 워터슬라이드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스파가 곳곳에 있다. 이외에도 식당, 아쿠아샵 등 부대시설이 있어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음식물과 돗자리는 반입이 불가하다. 인근에는 천안함 생태공원, 천안함 위령탑 등의 관광지가 있다. 동계에는 실내풀만 운영하니 참고해야 한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수신로 576

황장산
황장산(1,077.3m)은 월악산국립공원 동남단에 있는 산이다. 대동지지, 예천군읍지 등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말기까지 작성산이라 불렸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천황의 정원이라 하여 황정산(皇廷山)이라 하였다. 지금도 지도에 그렇게 표기된 것도 있지만 정확한 이름은 황장산이다. 울창한 계곡과 골짜기가 깊어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암벽 등이 빼어나고 내성천의 지류인 금천의 상류부가 산의 남쪽 사면을 감돌아 흐른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도락산과 문수봉, 서쪽으로는 대미산, 남쪽으로는 공덕산, 운달산이 있어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벽초지수목원
1997년 벽초지의 얕은 물과 몇 그루의 나무로부터 시작된 벽초지수목원은 2005년에 벽초지 연못을 중심으로 개원하였다. 각기 다른 테마 공간 속 27개의 동·서양의 정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또한 이곳에는 벽초지수목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벽초지 연대기’와 ‘벽초지의 사계’ 사진 전시회를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와 벽초지를 둘러보며 마음에 들었던 꽃 또는 식물을 구입할 수 있는 화원도 자리 잡고 있다. 1,000여 종의 식물들과 함께 사계절 변화하는 수목원의 모습은 드라마와 영화 등에 담기고 있어 작품 속 풍경을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즐길거리가 된다. 수목원의 크기가 방대하여 수목원에서 제공하는 리플릿을 참고하여 관람하기를 권한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하얀 튤립 밭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제니의 사진이 SNS에 올라오며 많은 이들이 사진 속 장소를 궁금해했다. 이곳은 파주에 위치한 ‘벽초지 수목원’으로 영화 , 드라마 등 많은 콘텐츠 촬영지로 유명한 장소다. 6가지의 테마 공간 속 동양식 정원과 서양식 정원이 함께 조화롭게 어우러진 수목원의 풍경은 방문객에게 흥미롭고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온다. 사계절마다 각기 다르게 변화하는 정원의 풍경을 보고 싶다면 벽초지 수목원을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부흥로 242

이월드
이월드는 1987년 10월, 타워 건립과 종합 테마파크 조성 공사의 재착공을 시작으로, 1993년 종합 테마파크 마스터플랜을 확정한 후 1995년 3월 개장한 테마파크이다. 폭포, 분수, 조명, 꽃으로 꾸며진 유럽식 도시공원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 전시 및 예술 공간, 깔끔한 식당가 등이 마련되어 있다. 이월드는 각 테마에 따라 다양한 광장을 조성하여 방문객에게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입구에 위치한 진입광장, 랜드 중심부에 자리한 중앙광장,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광장, 젊은이들을 위한 영타운광장 등이 대표적인 공간이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공원로 200

서암정사(함양)
우리나라 3대 계곡 중 하나인 아름답고 웅장하기로 유명한 칠선계곡의 초입에 있는 서암정사는 천연의 암석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찰이다. 서암정사는 6.25 전쟁으로 황폐해진 벽송사를 재건한 원응스님이 지리산의 장엄한 산세를 배경으로 수려한 자연환경과 조화롭게 자연 암반에 무수한 불상을 조각하고 불교의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극락세계를 그린 조각법당을 10여 년간에 걸쳐 완성하여 그 화려함과 웅장함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찰 입구에 불교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대방광문이 있고 바위에 조각된 사천왕 상을 지나 도량 안으로 들어서면 아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극락세계를 형상화한 석굴법당이 있다. 도량 위편에는 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는 광명운대와 스님들의 수행 장소인 사자굴 등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79

오도재와 지리산조망공원
오도재는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와 함양읍 구룡리 사이를 넘는 고개이다. 이름과 관련하여 이 길을 오르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전설이 있으며, 많은 유학자와 수행자들이 이 고개를 넘었다고 전해진다. 2004년 개통하여 도로의 기능뿐 아니라 재를 넘어 뱀같이 구불구불하게 난 길은 새로운 명물로써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함양군의 지리적, 역사적 특성을 바탕으로 오도재에 지리산을 효율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전망 공간인 지리산조망공원을 조성하였다. 지리산 제1문 건립과 숙박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함양 및 지리산을 찾는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과거 오도재 정상에는 방장 제1문이 2개 있었으나, 나무로 된 문은 6·25전쟁 때 불타고 없어졌으며, 돌로 된 문의 일부가 아직 존재하고 있다. 2005년 초에 오도재 옆 금대산에서 돌로 만든 방장 제1문의 표지석과 바위에 새겨진 방장 제1문에 관한 칠언시를 찾아냄으로써 지리산 제1문의 역사성이 증명되었으며, 함양군에서는 2006년 11월 1일 지리산 제1문을 오도재 정상에 새로이 준공하였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가는길 534
화림동계곡
화림동계곡은 해발 1,508m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남강의 상류)이 서상~서하를 흘러내리면서 냇가에 기이한 바위와 담소를 만들고 농월정에 이르러서는 반석 위로 흐르는 옥류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장장 60리(15km)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정자 문화의 메카라고 불리는 곳답게 계곡 전체의 넓은 암반 위에 수많은 정자와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곳이다. 계곡에는 조선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대첩 시 장렬히 전사한 이 고장 출신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머물면서 시회를 열기도 하고 세월을 낚기도 했다는 농월정이 있고, 농월정 주변은 함양군에서 국민관광 단지로 조성하여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1472

자연과별천문대
자연과별 천문대는 가평군 북면 명지산 자락에 위치하여 별을 관측하기에 아주 좋은 최적의 장소에 자리 잡은 천문대로 도심과 1시간 반 거리에 위치하여 접근성도 좋은 곳이다. 개인이나 가족 단위, 학생 등 단체를 위한 다양한 밤하늘 관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으며, 숙소, 휴게실, 식당, 매점, 수영장, 강의실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백둔로342번길 115-33

삼척 해신당공원
동해안 유일의 남근숭배민속(男根崇拜民俗)이 전해 내려오는 해신당 공원에는 어촌민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어촌민속전시관, 해학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남근조각공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공원을 따라 펼쳐지는 소나무 산책로와 푸른 신남바다가 어우러져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웃음바이러스가 넘쳐나는 동해안 최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출처 : 삼척 문화관광 홈페이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원덕읍 삼척로 1852-6

경주 배동 삼릉
경주 배동 삼릉은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졌다. 밑으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 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신덕왕릉이라 전해오는 가운데의 무덤은 1953년과 1963년에 도굴당하여, 내부를 조사한 결과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임을 확인하였다. 무덤에는 돌방 벽면에 병풍을 돌려세워 놓은 것처럼 동·서 양벽의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는데, 이것은 본격적인 벽화는 아니지만 벽화가 그려지지 않은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주목되는 자료이다. 색은 붉은색, 황색, 백색, 군청색, 감청색으로 되어있고, 12폭으로 되어있다. 경주 배동 삼릉의 주인공이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하고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고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 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 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신라 초기에는 이와 같은 대형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경주 나정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전설을 간직한 우물이다. 박혁거세를 기리는 유허비를 비롯해 신궁터로 추정되는 팔각건물지, 우물지, 담장지, 부속건물지, 배수로 등이 남아 있다. 특히 팔각건물지는 한 변의 길이가 8m나 되고 네모난 담장을 두른 것으로 보아 신라의 신궁터로 추정되며 이곳 나정을 박혁거세를 제사 지내는 신전으로 짐작할 수 있다. 와 에 나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신라 건국의 주역인 6촌의 촌장들이 모여 군주를 선출하고 도읍을 정하자고 결정한 뒤 일행이 높은 곳에 올랐다. 그런데 양산 아래 나정이라는 우물 근처에 이상한 기운이 돌며 백마 1마리가 무릎을 꿇고 있어 가보니 백마는 하늘로 올라갔고 붉은색의 커다란 알만 남았는데 이 알을 쪼개자 어린 사내아이가 나왔다고 한다. 이상히 여겨 동천에서 목욕시키자 몸에서 광채가 났고 새와 짐승들이 춤추듯 노니니 천지가 진동하며 해와 달이 청명해졌다고 한다. 박처럼 생긴 알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성을 박(朴)이라 하고, 세상을 밝게 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고 하였다. 아이가 13살이 되던 해인 BC 57년 왕의 자리에 올라 나를 세우고 서라벌이라고 이름지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통일전(경주)
통일전은 삼국 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 경내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통일을 위한 격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화가 긴 회랑을 따라 전시되어 있다. 통일전은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만큼, 초·중등학생들의 이념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삼국 통일 당시의 전투 장면이 여러 액자에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며, 남산 답사 중 잠시 호국영령에게 참배하고, 넓은 잔디밭에서 쉬어가는 것도 좋다.
경상북도 경주시 칠불암길 6

경주 감은사지
감은사는 동해안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신라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세운 절이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 문무왕이 죽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 신문왕이 682년 완성했다. 문무왕은 죽기 전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를 지낼 것을 유언했다. 문무왕을 장사한 곳이 대왕암이며, 신문왕이 이곳 사찰을 완성하고 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이름을 감은사라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3층 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으며,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사찰로 언제 절이 무너졌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의 모습인 경주 감은사지는 1979년부터 2년에 걸쳐 전면 발굴조사를 실시해 얻은 자료를 통해 창건 당시의 건물 기초대로 노출 정비한 것이다. 아울러 금당의 지하에는 동해 바닷물이 유입되는 통로를 만들어 바다용이 된 문무대왕의 이 통로를 통해 들어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상징적인 공간을 만들었다는 흔적도 있다. 또한 감은사터의 상징인 우뚝 솟은 두 3층 석탑은 통일신라 초기의 탑으로 수십 개의 부분을 조립해 세웠다. 이 탑들은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용당리

경주 원성왕릉
원성왕릉은 낮은 구릉의 남쪽 소나무 숲에 있는 것으로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원성왕의 이름은 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 후손으로 독서삼품과를 새로 설치하고 벽골제를 늘려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 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약 23m, 높이 약 6m이다.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의 무덤 아래에는 무덤의 보호를 위한 둘레석이 있는데, 이 돌에 12 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봉분 바로 앞에는 4각 석상이 놓였고 그 앞으로 약 80m 떨어진 지점부터 양 옆으로 돌사자 두 쌍·문인석 한쌍·무인석 한쌍과 무덤을 표시해 주는 화표석(華表石) 한쌍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이 석조물들의 조각수법은 매우 당당하고 치밀하여 신라 조각품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꼽히고 있는데, 특히 힘이 넘치는 모습의 무인석은 서역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 페르시아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원성왕릉의 무덤제도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둘레돌에 배치된 12 지신상과 같은 세부적인 수법은 신라의 독창적인 것이다. 또한 각종 석물에서 보이는 뛰어난 조각수법은 신라인의 예술적 경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출처 : 경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신계입실길 139

경주 구정동 방형분
경주 구정동 방형분은 경주에서 불국사로 가는 길의 북쪽 구릉자락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의 무덤이다. 이 방형분은 한 변의 길이가 9.5m 높이가 2m이다. 무덤의 형태는 정사각형이고 흙을 덮어 만든 봉분 아래에는 무덤을 보호하는 의미를 갖는 12지신상이 조각된 둘레돌이 배치되어 있다. 둘레돌을 배치하는 것은 삼국시대 이후부터 내려오는 전통인데, 통일신라시대 경주지방의 왕릉에서는 12지신상을 조각한 둘레돌을 흔히 볼 수 있다. 무덤 내부에는 봉분의 남쪽으로 치우쳐 직사각형의 상자형으로 축조된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 있다. 시체를 모신 널방(현실)의 동쪽 벽에는 널길(연도)이 나 있다. 유물로는 금동관장신구·은제띠고리·은제행엽 등이 출토되었다. 둘레돌의 배치, 돌널(석관)의 사용, 12지신상의 조각 수법 양식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말기의 최고 귀족층 무덤으로 생각된다. 신라 무덤 중 유일한 네모무덤으로, 그 계통을 알 수 없으나 고려 전기에 나타나는 둘레돌을 갖춘 네모무덤의 선구적 모습으로 평가된다.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15-5 (구정동)

알뜨르비행장 및 일본군 비행기 격납고
알뜨르비행장 및 일본군 비행기 격납고는 제주 서남부의 넓은 들판에 자리한 근현대사 유적으로 일제강점기 중일전쟁의 전초기지로 조성된 군사시설이다. 현재도 격납고와 관제시설, 대공포 진지 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19기의 격납고를 통해 당시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군용지이지만 현재는 농경지로 활용되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이곳은 주민들의 강제 동원으로 조성된 시설이자 가미카제 조종 훈련이 이루어진 장소로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격납고 내부에는 실물 크기의 제로센 전투기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인근 섯알오름은 제주 4·3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역사 현장으로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공간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제주목 관아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제주목 관아[濟州牧 官衙]는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 일대에 분포해 있었으며, 이미 탐라국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 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아 시설은 1434년 관청의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진 뒤 바로 역사를 시작하여 그다음 해인 1435년에 골격이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 내내 중. 개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주목 관아는 일제강점기 때 집중적으로 훼철되어 관덕정을 빼고는 그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제주시에서는 탐라국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제주목 관아를 원래의 양식으로 복구하고자, 1991년부터 1998년까지 4차례 발굴 조사를 마친 결과, 탐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문화층과 함께 문헌상에 나타난 중심 건물인 홍화각[弘化閣], 연희각[延曦閣], 우연당[友蓮堂], 귤림당[橘林堂]등의 건물터와 유구[遺構]가 확인되고 유물[遺物]도 출토되었다. 1993년 3월 30일에 제주목 관아지 일대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발굴 과정에서 확인된 초단. 기단석 등을 토대로 하고,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와 『탐라방영총람[耽羅防營總覽]』 등 당대의 문헌 및 중앙문화재위원·향토사학가·전문가 등의 고증과 자문을 거쳐 관아지 복원 기본 설계를 완료, 2002년 12월에 복원을 완료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 25

춘천김정은가옥
춘천김정은가옥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신동면 솟발길에 위치한 전통 한옥으로, 강원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1920년에 건립되었으며, 최재근 전통가옥을 지은 목수가 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과거 도깨비 터로 알려졌으나, 현재 가옥 주의 선대가 집을 지은 후 등나무에 벼락이 치고 나무가 산 너머로 넘어간 사건을 계기로 집안이 번창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가옥은 ㄱ자형 안채와 ㅡ자형 사랑채, 솟을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서 중부 지역의 전형적인 기와집 구조를 따르고 있다. 외부 공간의 배치, 목재의 치목, 부재의 크기까지 정밀하게 고려된 전통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마당에는 단풍나무가 드리워져 있으며, 뒤편의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고택의 운치를 더한다. 현재는 '춘천고택카페'라는 이름으로 활용되고 있어 전통 공간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내부는 전통 방식의 콩댐 온돌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장용훈 장인이 만든 창호지로 마감된 방도 있다. 창호 문을 통해 자연 채광과 고택의 정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고택은 예약제로 운영되며, 방문객들은 전통문화와 일상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신동면 솟발1길 44

춘천최재근가옥
춘천 최재근[崔在根]가옥은 1917년에 세운 집으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ㅁ자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안채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윗방·안방·부엌을 두었고 오른쪽으로는 건넌방을 꾸몄다. 지금은 생활하기에 편리한 구조로 개조하였는데 부엌을 입식으로 고치고 안방과 윗방 사이의 벽과 바깥쪽 툇마루를 없애 방을 넓혀 쓰고 있다. 사랑채는 대문 왼쪽에 외양간·광·방을 배치하였고 오른쪽에는 부엌·방·광을 놓았는데 왼쪽은 삼량구조이나 이 오른쪽 부분은 평사량구조를 취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신동면 솟발길 33-11

연천 당포성
당포성은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직단애를 이루지 않는 평지로 연결된 동쪽에만 돌로 쌓아 성벽을 축조했다. 동측 성벽은 길이 50m, 잔존높이 6m 정도이며 동벽에서 성의 서쪽 끝까지의 길이는 약 200m에 달하고 전체둘레는 450m 정도이다. 성 축조에 이용한 돌은 대부분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현무암을 가공하여 쌓았는데 이는 고구려 성의 큰 특징 중에 하나이다. 당포성의 배후에는 개성으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는 마전현이 자리하고 있어 양주분지 일대에서 최단거리로 북상하는 적을 방어하기에 당포성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남하하는 적을 방어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위치이므로 신라의 점령기에도 꾸준히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778

연천 호로고루
연천 호로고루는 개성과 서울을 연결하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당리에서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지류가 흐르면서 형성된 현무암 단애 위에 조성되었다. 호로고루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 부근의 지형이 표주박, 조롱박과 같이 생겼다.”하여 호로고루라고 불린다는 설과 고을을 뜻하는 ‘홀’과 성을 뜻하는 ‘구루’가 합쳐져 ‘호로고루’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경기도 지역에서 조사된 고구려 관방유적 중 당포성, 은대리성과 함께 3대 평지성 중 하나이다. 호로고루 동쪽벽은 현무암 대지의 동쪽 부분을 막아 조성한 것으로 가장 높은 부분이 10m로 성벽 위에서는 주변 지역은 물론 임진강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다. 호로고루에 대한 1차 발굴조사는 2000년 11월부터 2002년 5월까지 이루어져 성벽의 축성방식과 구조에 대한 확인이 이루어졌다. 호로고루 성벽 전체 둘레는 401m로 남벽 161.9m, 북벽 146m, 동벽 93.1m로 내부 면적은 606㎡이며 약 28m 높이의 현무암 절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벽은 여러 번에 걸쳐 흙을 다져 쌓은 위에 돌로 성벽을 높이 쌓아 올려 석성과 토성의 장점을 적절하게 결합한 축성술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파산서원
파산서원은 조선 중기 학자인 청송 성수침(1439~1564)과 그의 아들 우계 성혼(1535~1598), 아우 절효공 성수종(1465~1579) 및 휴암 백인걸(1497~1579)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1568년(선조 원년)에 율곡 이이, 휴암 백인걸 등 파주지역 유생들의 주창으로 창건되어 적성현감 성수침을 제향하였고, 1650년(효종 원년)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후 1628년(인조 6년) 성혼을 1705년(숙종 31년) 백인걸을 1785년(정조 9년) 성수종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조선말 대원군의 서원철폐에도 존속되었던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조광조의 문인이자 당대 명필로 추앙받던 성수침이 있었고, 기호사림(畿湖士林: 경기도와 충청도를 근거지로 하는 사림)의 거두 성혼을 배출한 서원인 까닭에 기호사림이 중심이 된 서인(西人: 조선 시대의 한 정파)들의 본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서원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복원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전소되었고 1966년 서원의 사당만을 복원하였다. 사당 좌측으로 재실인 찰륜당이 있고, 1807년(순조 7년)에 지역 유림들이 조감(趙堪), 성문준(成文濬), 신민일(申敏一) 등 3인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제단을 만들고 제향을 지내는 곳이자 3인의 호를 새긴 비석이 있는 경현단이 있다. 2023년 진행된 발굴 조사 결과 파산서원은 평행한 병렬구조로 조성되어 중층구조의 일반적인 서원∙향교의 배치와는 다른 특별한 사례임이 확인되었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을 담당하여왔으나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매년 봄에 춘향제 봉행을 시행한다. 현재 주변은 둘러볼 수 있으나 사당은 상시 개방되고 있지 않으며, 정확한 개방일과 행사 관련 내용 등은 별도 문의하여야 한다. 인근에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 연천 호로고루, 율곡 이이 유적지와 화석정, 임진각(평화누리공원), 오두산 통일 전망대, 헤이리 예술마을, 세계문화유산 파주 삼릉 등이 있다.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파산서원길 24-40
성혼선생묘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인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 선생의 묘이다. 휴암 백인걸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고 율곡 이이(李珥)와 사귀면서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묘역은 부인과 합장한 하나의 봉분 형태이다. 묘제(墓制)는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석물은 새것과 섞여 있다. 봉분의 정면 오른쪽에는 묘표(墓表;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를 세웠다. 1649년(인조 27)에 건립한 것이고, 비문은 김집이 짓고 외손자인 윤순거가 글씨를 썼다. 보편적인 옥개방부형(屋蓋方趺形; 지붕모양의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이지만 안정적이고 당당한 형태이다. 하단에는 동자석인 1쌍을 조성하였다. 머리는 쌍계형(雙髻形; 두 개의 상투머리가 위로 솟은 형태)으로 묶고 두 손에는 지물을 든 형상이다. 부친인 청송 성수침 묘에도 동자석인을 조성하였는데, 창녕 성씨 가족의 공통적 묘제로 볼 수 있다. 묘역 입구에는 성혼의 신도비(神道碑;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석)가 있는데, 김상헌이 글을 짓고 김집이 글씨를 썼다. 전액(篆額; 비석의 이름을 전서체로 새긴 부분)은 김상용이 썼다. 이 묘역은 묘제와 다양한 석물의 원형이 유지되고 있어 중요하다. 특히 동자석인의 조성은 지역적 공통성과 연관 지을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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