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50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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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
방어산 마애사에 있는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은 암면을 깎아 새긴 마애약사불상과 협시보살상인데, 신라 애장왕 2년(801)에 만들어진 신라 하대의 가장 유명한 마애불이다. 불상은 8세기의 이상적 사실주의 경향의 불상들과는 다소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거구의 불상이지만 위장부적인 당당한 체구가 아닌 현실적인 장대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특징은 정적이며 침울하기까지 한 얼굴, 탄력감이 줄어진 신체 각부, 둥글기만 한 어깨, 밋밋한 가슴과 배 등에서도 보인다. 일광보살의 강렬한 인상과 월광보살의 온화하고 우아한 얼굴 등에서 이상적인 양식이 다소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8세기의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던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에서 한층 해이해지고 한층 활력이 줄어든 현실적 사실주의 양식으로 이행되어 가던 변모 과정을 잘 보여주는 801년의 절대 연대를 가진 중요한 마애불상으로서 1962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입상의 전체 높이는 5m, 본존불상의 높이 2.85m, 좌협시상 높이 2.45m, 우협시상 높이 2.64m이며, 재료는 청석이다. 마애불은 암벽에 새긴 불상을 말하는 것으로, 한국을 비롯하여 인도·중국·일본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수법도 양각·음각·선각 등 다양하다. 원래부터 바위를 매끈하게 다듬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은 석질이 더욱 고르지 못하고 아랫부분은 탈락이 심하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덕연서원
신재 주세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주세붕(1495∼1554)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학자이다. 주로 홍문관과 성균관 등 학문기관의 관직을 지냈으며, 지방관으로 있을 때에는 교학진흥을 통한 교화에 힘썼다. 덕연서원은 선조 24년(1591)에 ‘동림서원’으로 세웠으나, 현종 원년(1660)에 칠원현 남고에 ‘남고서원’으로 새로 세웠다. 숙종 2년(1676)에는 ‘덕연’이란 이름을 나라로부터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 뒤 흥선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다가 1964년에 다시 세웠다. 서원 안에 있는 건물로는 강당, 존덕사, 덕연별사가 있다. 교육 공간인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존덕사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주세붕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존덕사 오른쪽에 위치한 덕연별사에는 삼칠선현(三漆先賢)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서원에서는 해마다 3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예용3길 12-2

서산서원(함안)
서산서원은 숙종 계미년(1703)에 경상도 유학자 곽억령 등이 생육신이신 이맹전, 조려, 원호, 김시습, 남효온 등의 병향이 사육신의 예에 따라 이루어짐이 마땅함을 국왕께 상소하여 윤허를 받고 여섯 분의 제향을 위하여 창립한 서원이다. 숙종 때인 1713년에는 국가에서 제물을 내리고 서산서원의 현판을 내렸으나 고종 때 서원쳘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 후 조려선생의 후손들이 1984년에 사우, 강당, 재료, 문, 원장 등을 빠짐없이 갖추어 복원하였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군로 1235
칠원향교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에 위치한 칠원향교는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원읍지에 의하면 칠원현의 서쪽에 있던 건물을 광해군 13년(1621)에 동쪽 삼리허에 이건 했다가 숙종 26년(1700) 현의 서쪽 지금의 위치에 다시 이건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06년 칠원군이 함안군에 통합되어 칠원향교도 함안향교에 병합되었다가 1961년 칠원 유림이 뜻을 모아 중수복원하여 다시 칠원향교의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 배치는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의 형식이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그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여러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짠 익공 양식을 취하고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산4길 60-1

함안 악양루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악양마을 북쪽 절벽에 있는 정자로 조선 철종 8년(1857년)에 세운 것이라 한다. 악양루(岳陽樓)는 전망이 아주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정자 아래로는 남강이 흐르고 앞으로는 넓은 들판과 법수면의 제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자의 이름은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기두헌(倚斗軒) 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청남 오재봉이 쓴 악양루라는 현판만 남아 있다. 한국 전쟁 이후에 복원하였으며 1963년에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대법로 331-1

함안 채미정
조선 단종 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漁溪) 조려(趙旅)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 위를 차지한 세조의 처신에 격분하여 조정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와 여생을 보낸 정자이다. 1693년에 창건하였고 1954년에 재건하였다. 정면 4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으로서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 정면에 방형 연못이 있고 북쪽절벽 위에 청풍대(淸風臺)에 문풍루(聞風樓)라는 6 각정이 있다. 1453년 진사가 되고 명망이 높았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항거하여 벼슬을 단념하고 함안에 돌아가 백이산(伯夷山) 아래에서 독서와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 1698년(숙종 24년) 단종의 왕위가 복위되자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정조 때에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군로 1216

함안 어계고택
함안군 군북면에 위치한 함안 어계고택은 조선 전기의 문신 어계 조려(1420∼1489) 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조려 선생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단종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영월에서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 뒤 왕의 얼을 동학사에 모셨다. 그 후 어계 선생은 이곳에서 낚시로 여생을 보냈으며 지금은 후손들의 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대체로 건물의 구조, 재료, 형태들이 조선 후기 민가의 평범한 양식을 갖추어 간결하고 검소한 느낌을 주고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길 104-1

쌍절각
함안군에 위치한 쌍절각은 조선 선조 31년 정유재란시 함양 황석산 싸움에서 전사한 충의공(忠義公) 조종도(趙宗道)의 공(功)과 그의 부인이 남편의 전사 비보를 듣고 자진한 절개를 후세에 길이 빛내기 위하여 1616년(광해군8년) 3월에 정려를 명(命)받아 건립한 정려각이다. 건물의 구조는 팔작지붕, 정면 2칸, 측면 1칸의 목조 다포와가이다. 정려현판은 1732년(영조 8)에 부인 정려시에 개판(板)한 것이다.
경남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349-11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은 함성중학교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원래 여항면 주서리 주리사터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면사무소로 이전하였다가, 8.15 광복 후 다시 함성중학교 교정에 옮겨온 것으로, 적지 않는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석탑이다. 수차례에 걸쳐 설치 장소가 이전되면서, 기단부의 4사자와 2층, 3층의 옥개석과 옥신석, 그리고 상륜부(相輪部)의 노반(露盤)만이 잔존하고 그 밖의 부재는 모두 망실되었다. 기단에 네 마리의 사자를 배치한 것이 일반 석탑과는 다른 독특한 모습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전남 구례 화엄사의 4사자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전국을 망라해도 몇 곳에 불과하다. 바닥돌 위에 얹힌 지붕모양의 돌 위로 네 마리의 사자를 올리고 그 위로 5층으로 보이는 탑신을 쌓았는데, 탑신의 몸돌 하나가 없는 상태이다. 3층 혹은 5층일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의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으나, 구례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 회양 금장암지사사자삼층석탑, 제천 빈신사지사사자석탑 등 비슷한 양식의 탑과 비교해 볼 때, 네 마리의 사자가 포함된 기단부가 있었을 거라고 추측된다. 사자는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등을 맞댄 채 앞을 보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조각은 단순하나 각 부의 형태가 잘 드러나 있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이 표현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 치켜올림이 있다. 기단부에 사자상을 배치한 경우는 드문 경우로, 원형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남아있는 탑재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함안대로 105-2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901번지에 있는 회화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자라왔으며, 문화적, 생물학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회화나무의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26m, 가슴높이 둘레가 5.82m, 뿌리 근처의 둘레가 8.45m, 가지 밑의 높이가 4m, 가지의 길이는 동쪽이 9.6m, 서쪽이 12.76m, 남쪽이 11.00m, 북쪽이 12.00m이다. 1482년 광주 안씨의 17대조이며 성균관 훈도를 지낸 안여거가 영동리에 정착할 때 심었다고 전하여 온다. 옛날에는 뿌리 근처에서 수액이 많이 흘렀다고 하며, 이것은 속병 치료에 좋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가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나무라고 믿고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1일에는 소나 돼지를 잡아놓고 동제를 지내왔다. 영동리에는 장춘사란 아름다운 절이 있으며, 절 주변에는 단풍나무들이 많아 단풍 명소로 잘 알려진 곳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2길 18-31
센텀시티 스파랜드
스파랜드는 부산 도심 속에 위치한 휴양형 온천 명소이다. 18개의 온천탕과 13개의 테마로 즐기는 찜질을 즐길 수 있으며, 지하에서 끌어올린 2종류의 천연 온천수와 다양한 테마의 욕탕으로 입욕의 즐거움을 더한다. 스파랜드는 천연 온천수를 각기 다른 온도로 제공한다. 고온욕에서는 체온을 빠르게 상승시키고, 중온욕에서는 느긋하게 입욕할 수 있는 등 23종류의 다양한 욕탕에 번갈아 입욕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외벽으로 들어오는 자연 채광과 호텔급 이상의 급배기 시스템의 환경에서 두 가지 온천수를 활용한 대욕장에서 도심 속의 피로를 풀고 건강 입욕을 즐길 수 있다. 온천과 찜질 외에도 휴식 공간, 엔터테인먼트존, 각종 에스테틱 프로그램은 물론, 이벤트룸, 카페, 레스토랑 등 휴식과 즐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센텀남대로 35 (우동)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소는 신라 천 년의 시간을 흐르는 경주 남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산림환경조사, 산림병해충의 친환경 방제, 우량수목 등 식물 유전자원 보존 및 증식, 천연기념물 후계목의 증식과 보존, 병해충을 방제 등 산림보호를 위한 연구 기관이며, 지방 정원, 숲 체험원 조성으로 생태휴양공간을 마련하고 산림의 효율적인 경영과 보호를 위한 임도 및 사방사업을 수행하는 산림 전문 연구기관이다. 숲공원으로 지자체가 조성하고 관리하는 국가 정원으로는 국내 5번째이고, 경북에서는 첫 번째 숲 정원이다. 경북천년숲정원은 다양한 테마로 조성된 정원과 오솔길. 메타세콰이어 숲길, 거울숲, 외나무다리 등 이 있으며, 각 구역별 계절별 꽃을 피우는 나무와 야생화들이 식재되어 있어 각기 다른 공간적 특징을 지니며 계절에 따른 변화도 즐길 수 있다. 식물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안내문도 잘 작성되어 있어 아이들의 교육현장으로도 좋다.
경상북도 경주시 통일로 367 (배반동)
속리산 산채비빔밥 거리
속리산 산채비빔밥 거리는 정이품송공원에서 법주사로 가는 길 사이에 있으며 속리산터미널, 속리산조각공원과 가깝다. 공기 좋은 곳에서 자연경관을 즐기면서 먹는 맛있는 산채비빔밥은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그중 봄에 먹는 산채비빔밤이 가장 맛있고,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기로 유명하다. 봄에 새싹을 내민 부드럽고 연한 산나물과 약초 등이 맛을 돋운다. 산채비빔밥 거리의 시작은 197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 두세 집이 영업을 하던 것이 1980년대 후반에 10여 개로 늘어났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90여 집으로 늘어난 것이다. 산채비빔밥 거리에 있는 식당들은 약초와 산나물 등을 합쳐 20여 가지의 재료를 넣어 비빔밥을 만드는데 그 재료와 요리법을 특허등록까지 했다고 한다. 주변 속리산 일대의 관광지들을 둘러보고 이곳을 방문해 식사하기 좋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괴산 올갱이국 거리
올갱이국은 괴산의 유명한 음식 중 하나로 괴산읍 중앙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는 올갱이국을 파는 가게 몇 군데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주차장식당은 올갱이 해장국으로 알려진 맛집이다. 이외에도 기사식당, 올갱이 서울식당,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 나왔던 맛식당이 있다. 올갱이는 표준말로 다슬기라고 한다. 그런데 다슬기보다 올갱이라고 해야 그 맛과 향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올갱이국은 된장이 맛이 좌우하는데 올갱이국을 파는 괴산의 식당에서 집집마다 된장을 담그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보통 3년 이상 된 된장을 쓰고 8년 묵은 된장도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부재료가 아욱이다. 특히 아욱은 가을에 그 맛이 최고조에 이르기 때문에 올갱이국 또한 가을에 먹어야 가장 맛이 좋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괴강로 12

서울 삼각지 대구탕 골목
30년이 넘는 세월 삼각지에 대구탕 끓는 냄새가 이어지고 있다. 해장국 중 으뜸으로 꼽히는 대구탕이 삼각지에 처음 자리 잡게 된 것은 1979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삼각지 우리은행 주변에 네 곳의 대구탕 집이 성업 중이다. 대구탕은 그 국물 맛이 깊이가 있어 애호가 층이 생기는데, 대략 젊은이들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이 단골이 많다. 특히 전날 술 먹는 사람들이 숙취 해소하러 들르는 경우가 많고, 등산이나 운동을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 대구탕에 소주를 즐기는 부류도 있다. 또한 나이 드신 분들은 깊은 국물 맛에 단골이 돼 대구탕 집에서 모임을 갖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삼각지 대구탕 골목 단골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집을 찾아 입맛을 찾고 훈훈한 이야기를 나누며 정도 쌓아간다. 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 14번 출구나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우리은행이 나오고 그 앞에 평양집(식당)이 있다. 평양집 뒷골목에 원대구탕과 자원대구탕이 있다. 이 식당들이 오래된 집들이다. 그 골목 초입에 참대구탕집이 있다. 세창대구탕은 우리은행 뒤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길 왼쪽에 있다. 대구탕 골목이 유명해진 건 순전히 군인들 덕이다. 삼각지 주변에는 육군본부 등 군인들이 많았었는데 그들이 주요 단골이 됐고, 전국에서 모여드는 동료들에게 맛을 보이면서 그 맛이 전국으로 소문난 것이다. 또한, 전출과 파견 근무 등이 많은 군인의 특성상 외지에 갔다가 오랜만에 돌아오는 단골들은 부대에 복귀하기 전 삼각지 대구탕 한 그릇을 먼저 먹고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서 이곳 대구탕 골목에는 전역한 군인이 손주 손을 잡고 와서 맛을 나누는 자리도 만들어진다. 대구탕은 대구 자체에서 시원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별다른 육수를 쓰지 않는데, 한때는 동태로 육수를 만들었던 적도 있었다. 이 골목에는 콩나물과 미나리 등을 넣고 벌겋고 얼큰하게 끓여 내는 대구탕과 함께 맑은 국물로 나오는 대구탕도 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62가길 4 (한강로1가)

서울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
의류 상가가 꽉꽉 들어찬 빌딩들이 즐비한 동대문, 이제는 아시아 최대의 의류상가 지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곳이 동대문 주변 지역이다. 이곳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뒤에는 동대문 원단시장, 평화시장과 인근에 자리 잡은 시장 사람들이 있었다. 30여 년 전 그들의 허기를 달래주고 마음을 녹여주던 곳이 지금의 닭한마리 골목이었다.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8, 9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다가 기업은행 건물을 끼고 좌회전하면 일방 통행길이다. 그 길 오른쪽에는 오늘도 동대문 종합시장과 인근 시장으로 드나드는 물품을 나르는 택배 오토바이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그 길 중간쯤 오른쪽에 보면 덕성각이라는 중국요리집이 보이는데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닭한마리집들이 나온다. 그 골목 닭한마리집들은 짧게는 5년부터 길게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식당이 있기 전 개인 집에서 닭칼국수를 팔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 골목 닭한마리집의 역사는 30년 보다 훨씬 더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당시 닭칼국수를 팔던 할머니집을 28년 전에 인수해서 지금까지 닭한마리를 팔던 식당 주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할머니 한 분이 지금의 닭한마리 식의 요리가 아니라 닭고기를 넣고 칼국수를 끓여 팔았다고 한다. 기와 얹은 한옥집 마루와 방에서 손님을 받았다. 지금의 사장은 그 집을 고스란히 인수해서 당시 마당이었던 곳에 홀을 만들고 식탁을 놓았다. 지금 남아 있는 집들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집은 ‘진옥화 닭한마리’이다. 그러나 식당에 불이 났고 2009년 2월 재건축 하였다. 이 집 또한 처음에는 지금의 닭한마리 식의 요리가 아니라 닭칼국수를 팔았다. 그러니까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 요리의 원조는 닭칼국수인 셈이다. 지금도 이 골목 식당 간판이나 현관, 유리창에는 닭칼국수라는 단어가 남아 있다. 또한 닭한마리와 곁들여 먹는 메뉴에 칼국수 사리가 남아 있는 것도 그 증거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칼국수에 닭고기가 들어간 것에서 닭한마리를 육수에 넣고 끓이는 닭요리에 칼국수가 부재료로 들어가는, 주객이 전도된 요리이기도 하다. 닭한마리 요리는 집집마다 거의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닭고기를 찍어먹는 소스의 맛과 육수, 선택해 넣어 먹을 수 있는 부재료 등이다. 그래서 이 골목 집집마다 소스와 육수의 비빔을 반만 공개한다. 나머지는 비밀이다. 소스의 주재료인 고춧가루가 좋아야 한다. 맵기만한 고춧가루가 아니라 매우면서도 풍부한 미감과 감칠맛을 머금고 있어야 한다. 또한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도 엄나무, 인삼 등 집 마다 다르다. 큰 양푼에 육수 가득 붓고 그 속에서 닭한마리를 통째로 끓인다. 닭은 살짝 삶아서 나오지만 식탁 위 간이 가스레인지 위에서도 푹 끓이는 게 좋다. 왜냐하면 감자와 떡, 인삼, 대추, 버섯 등 부재료들의 맛이 우러나 뒤엉켜 한 맛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끓고 나면 고기와 부재료를 건저 먹은 뒤 남은 육수에 칼국수 사리를 넣어 끓여 먹는 것으로 닭한마리의 만찬은 끝난다. 지금도 이 골목 단골의 반 이상이 동대문 주변 시장 사람들이다. 소문이 일본까지 퍼져 일본 여행자들도 꽤 많이 찾는다. 또한 맛골목을 좋아하는 젊은 연인들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팔품을 팔아 이 골목을 찾는다. 그들의 입맛에 30년 전 닭한마리 요리가 다시 태어나고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0가길 14

장흥 옥당리 효자송
곰솔이 있는 당동마을은 장흥군 천관산(해발 723m)의 북쪽 기슭에 있으며 읍사무소가 있는 옥당으로부터는 약 1㎞의 거리에 있다. 일명 해송(Pinus thunbergii PARL.)이라고도 말하는 이 곰솔은 마치 우산을 펼쳐 놓은 듯 아담하게 서 있으며, 높이가 12m이고 줄기 밑동의 둘레가 4.50m, 윗부분 너비는 동서 20m, 남북 26m에 이른다. 키가 낮고 윗부분 너비가 넓은 것은 곁가지가 가슴 높이에서 사방으로 발달하여 높이보다는 수평 방향으로 더 자랐기 때문이며 반송(盤松)과 같은 느낌을 준다. 줄기의 크기로 보아 수령은 300년은 될 듯하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이 마을에 살았던 위윤조(1836년생)가 밭농사를 많이 짓는 부모님의 휴식처로 하기 위해 심었다고 하며, 그러한 연고로 효자송이라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150여 년생이 될 것이다. 한편 고려 24대 원종(1260~1274) 때에 이 마을 뒷산에 사직단을 축조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있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져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으므로 이 자리에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신당(神堂)을 지었다고 하여 마을의 이름을 ‘당동(堂洞)’이라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 소나무도 그 크기로 보아 옛날부터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나무로 보호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장흥 방촌리 지석묘군
지석묘(고인돌)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문화의 하나이며 무덤으로 주로 쓰이나 제단이나 기념물적인 의미의 묘표석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 지석묘는 크게 두가지 형식으로 분류된다. 탁자형의 북방식과 지상에 상석만 있고 묘실은 지하에 두는 남방식이 있다. 지석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이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방이며 암벽에서 채석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있으며 지금까지 2,208개소에 2만기 이상이 알려지고 있다. 장흥군내의 지석묘도 210여군데 2,250여기가 확인되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군집(群集)지역이 방촌리 지석묘군이다. 이 유적은 장흥대덕간 도로에서 관산읍을 지나 남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방촌리 내동 마을 입구로 벅수골이라 부르는 소나무 숲속에 93기의 지석묘가 남북으로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 곳은 완만한 경사의 낮은 구릉 정상부로 마을 진입로를 만들 때 일부 훼손된 것 같다. 전체적인 수량이 많은데 비해 지석묘의 규모는 큰 편이 아니고 대부분 숲속에 이루어진 관계로 보존이 잘되어 있는 편이다. 이 곳에서 남동쪽으로 1,500m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있고 북쪽으로 1,000m 떨어진 곳에 고읍천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벅수골」이란 왜적을 막아 주는 곳이란 뜻으로 이 곳이 옛 성터처럼 왜적을 막아 주었다고 한다. 지석묘 주변에서 무늬없는 토기편과 석촉 등이 채집되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장흥 방촌리 석장승
관산읍에서 방촌으로 넘어드는 국도 23호선 도로변, 좌우측에 화강석으로 된 2기의 석장승이 서 있다. 이중 서쪽에 위치한 장승은 ‘男長栍’, ‘벅수’, 명문에 따라 ‘鎭西大將軍’으로 불린다. 이 장승과 마주하는 동쪽의 장승은 ‘미륵석불’, ‘벅수’, ‘돌부처’, ‘女長栍’, 등 다양하게 불리나 명문은 없다. 총 크기와 머리크기의 비율을 보면 진서대장군이 1 : 4 미륵석불이 1 : 2이다. 전체 크기에 비해 몸통 둘레가 작고 각 면이 각을 이룬 장방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반면에 전체크기에 비해 둘레가 크고 각 면에 각이 없는 원통형인 미륵석불은 머리에 비해 몸통이 풍만하다. 남・여 장승이 모두 두부(頭部) 외에는 별다른 조식이 없다. 진서대장군은 전체적으로 간략하고 평면적인 조각이다. 얼굴이 있는 위쪽의 폭이 아래보다 조금 넓다. 얼굴에는 왕방울눈이 이중선각(二重線刻)으로 처리되어 있고 주먹코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양옆 볼까지 찢어진 입을 보면, 입술이 두껍고 입꼬리가 귀밑으로 치켜 올라가 전체적으로 익살스럽게 활짝 웃는 형상이다. 목 밑에서 가슴의 명문 위쪽까지 역삼각형의 수염이 넓게 선각되어 있다. 그 수염 밑에서부터 좌대까지 ‘鎭西大將軍’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한편 미륵석불은 진서대장군에 비해 풍만하면서도 조각이 깊고 무서운 인상을 주고 있다. 얼굴 반을 차지한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이 툭 튀어나와 있고, 우뚝 솟은 주먹코가 남은 얼굴 반을 차지하고 있다. 두터운 입술을 갖고 있는 입은 직선에 가깝고 짤막하다. 이마에는 반원형으로 나란히 곡선이 선각되어 있다. 방촌리 석장승 건립 당시에는 성문을 수호하는 공공장승의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元宗 6년(1265) 長興府가 懷州牧으로 승격 개칭되고, 회주목의 치소가 있던 방촌을 보강하고자 상령산성(觴岺山城)과 회주고성(懷州古城)을 축성하면서, 성문인 북문동의 동쪽에 미륵으로부터 치소를 지키고자 축성되었던 성으로, 방촌마을 주변에 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이 회주고성의 서쪽이 약하다하여 읍성의 보허진압(補虛鎭壓) 및 수호를 위해 서문 밖에 이 장승을 세웠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나 동쪽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오는 미륵석불이 진서대장군과 함께 쌍을 이루고 서있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는 밝혀져 있지 않고, 방촌 석장승은 제작연대와 그 기능, 형태와 명문 등으로 보아 민속신앙과 생활문화사와 관련된 귀중한 학술적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관산읍 장흥대로 1674

부춘정원림
남평문씨 희개(希凱 : 호 청영(淸潁) 1550~1610년)가 정유재란 뒤 고향에 돌아와 세운 것으로 창건 당시에는 청영정(淸潁亭)이라 불렀다. 희개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였으며 정유재란 때는 고창현감으로 수성(守城)에 공을 세운바 있다.청영정은 헌종 4년경(1838)에 청풍(淸風)김씨 영동정공파(令同正公波)의 후손인 김기성(金基成)이 사들여 오늘과 같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실이 있는 팔작집으로 개축하고 이름도 부춘정으로 고친듯하다. 정(亭)의 서쪽에는 탐진강이 인접하여 남쪽으로 흘러가고 강안에는 붉은 소나무・푸조나무・개서어나무・단풍나무 등의 노거수가 수림을 이루어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또 정의 맞은편 강변에는 자미나무가 군식되어 여름철이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하나 지금은 제거되고 제방이 축조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부산면 부춘길 79

장흥 어산리 푸조나무
장흥 용산면의 푸조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이 넘은 걸로 추정되며, 높이가 24m, 가슴높이의 둘레는 6.4m이다. 푸조나무는 팽나무과의 낙엽수로 대한민국에서는 남부지방과 제주도에서 자생하며 국외로는 중국 남부와 일본, 대만에 분포한다. 어사리 마을 앞 공터에서 자라고 있으며 국가와 마을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줄기에 굴곡이 많고 밑동은 울뚝불뚝 근육처럼 발달했다. 이 나무의 잎이 늦게 피거나 고루 피지 않을 경우에는 질병 또는 재난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반대로 잎이 고르게 피면 나라가 태평하고 풍년이 든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마을 주민들이 매년 정월 보름날이면 나라가 평화롭고 질병 없는 한 해가 되도록 당산제를 지낸다. 어사리 푸조나무는 우리나라의 푸조나무 중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용산면 어산리

용호정원림
순조 29년경(1829) 최규문의 아버지가 비가 왕서 강물이 넘치면 강 건너 기산(騏山) 북쪽 부친의 묘에 성묘를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며 명복을 비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부친을 위해 탐진강변에 용호정을 세웠다. 이는 최규문의 부친에게는 '부친을 바라보는 정자요(望親之亭)' 최규문에게는 '부친을 위로하는 정자(慰親之亭)'라 할 수 있다. 1947년 중건할 때 초가지붕을 기와지붕으로 바꾸었다. 탐진강 북안에 세워진 용호정은 10m 아래에 강이 흐르고 해발 높이 250m의 기역산이 남서방향에 멀리 솟아 있어 산수경관은 정내에서나 정외의 강안에서 보나 매우 수려하다. 정자 아래의 깊은 물과 강안의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경관은 일품이다. 정 앞뜰에는 평탄한 암반이 깔려 있어 앉아 쉬거나 주위의 산수경관을 전망하기에 알맞다. 뜰에는 괴석도 배치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부산면 용반1길 213-34

장흥 회령진성
회령진성(會寧鎭城)은 성종 21년(1490) 4월에 축조된 만호진성(萬戶鎭城)으로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하는 수군진(水軍鎭)이다. 회령진이 처음 설치된 시기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초에 설진 됐음은『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회령포진은 전라좌도도만호진(全羅左道都萬戶鎭)인 여도 관하에 내예, 돌산, 축두, 녹도, 마두, 달량, 어란 등과 함께 만호가 배치되어 중선 4척, 별선 4척 군 472명, 뱃사공 4명이 주둔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방어와 수색을 위하여 수군첨절제사나 수군만호들은 항상 병선을 이끌고 해상을 왕래하였고 병선이 머무르는 곳으로 지정된 포소를 영・진으로 삼고 있었으나 여기에는 군량과 군기를 쌓아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울러 병사가 없는 병선이 있어서 유사시 하번선군(下番船軍)이 집결하는 장소였으며, 또 평상시에는 해상작전을 하는 병선의 기항지인 동시에 보급기지의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수군은 병선에 승선하여 해상에서 왜적을 막아야 하였다.성종 9년(1478) 7월에는 어란과 달량, 마도와 회령포 사이에 보를 설치하는 논의가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고 여러 포구의 만호 첨사유진처(僉使留鎭處)에 대한 축성이 논의되는 것은 성종 15년(1484) 10월의 일이다. 회령포진성은 마을의 뒷산을 이용 축성한 부정형 성으로 이 진성은 현재는 연륙 되어 있는 덕도와 노력도, 대마도, 대・소대구도 등의 섬들이 외호(外護) 하고 있다. 남아 있는 성벽의 총 길이는 616m이며 동벽은 깎아지른듯한 절벽 위에 축성하였으나 현재는 모두 훼철되었고, 다만 윤중 필 씨댁 부근에서 동문지(東門址)의 유구만이 확인될 뿐이다. 북벽은 현 높이 2.3m~2.5m, 너비 1.5m~2m로 150m 길이의 돌로 쌓은 성과 220m 길이의 흙과 돌로 새로 쌓은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

장흥 키조개마을
키조개마을은 장흥의 연안 중에서 유일하게 해수욕장을 가진 곳일 뿐만 아니라 전국의 서남해안에서 갯벌보전지구로 지정될 만큼 바다생태계가 우수한 수문연안과 여다지 갯벌, 철쭉으로 유명한 삼비산 등 무한한 관광자원이 산재되어 있다. 매년 5월 수문항에서는 장흥키조개축제가 열려 군민열린음악회 및 초청가수공연, 모듬북난타공연, 종려거리 건강 달리기 대회, 참가자 즉석노래자랑 등 다양한 부대행사와 함께 5일간 개최되고 있다. 주요 특산물로는 어머니 품같이 포근한 득량만 청정해역에서 생산되는 키조개, 피조개, 새조개, 바지락과 특용작물로는 쪽파, 감자, 벌꿀 등이 있다. 특히, 키조개는 단백질이 많은 저칼로리 식품으로 필수 아미노산과 철분이 많고 동맥경화와 빈혈예방에 좋아 높은 가격으로 일본에 수출을 하며 수산자원 보전지구로 지정된 우리 마을의 청정해역과 바다생태계의 보고인 넓은 갯벌은 키조개 생산의 최적지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안양면 수문용곡로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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