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45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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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고창)
방장산 기슭의 고창읍 월곡리에 자리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상원사는 백제 성왕 23년(546)에 신라의 법사 고봉과 발용에 의해 건립하였다. 당시 신라는 진흥황 시기이었는데 전국적인 불사창건령에 따라 고봉과 발용은 임금의 밀명을 받고 백제 땅까지 들어와 사찰을 지은 것이다. 이후 현재까지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대웅전은 18세기 중반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모시 상원사의 중심 건물이다. 대웅전은 규모가 작아 다른 사찰의 대웅전에 비해 단정하고 아담한 느낌을 준다. 상원사는 호남지역 인사들이 다담을 나누는 명소로 알려져 있는데, 번잡한 세속을 떠나 그윽한 다향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 누구든 찾을 수 있는 아담한 고찰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상원사길 214
상이암(임실)
성수산에 위치한 상이암은 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최초 도선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후 태조 3년(1394) 각여선사(覺如禪師)가 증수하였으나 1894년 동학혁명 때 병화를 입었다가 다시 1909년 김대건(金大建)이 중건했다. 일본 강점기에는 의병장 이석용이 상이암을 근거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그 여파로 절은 일본군대에 의해 불에 타버렸다. 1912년 대원(大圓) 스님이 재건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당시 소실되었다. 1958년 임실군수 양창현(梁昌鉉)이 중심이 된 상이암 재건위원들이 빈터에 법당과 요사를 지었다. 『성수산 상이암 사적기』에 의하면, 894년에 고려 태조 왕건이 17세의 나이로 도선국사와 함께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드리고 다시 3일을 더 기도를 올렸다고 하는 전설과 조선 태조 이성계가 황산대첩(1380)을 승리로 장식하고 개선하는 길에 이곳에 들러 3일간 치성을 드리자, 천신이 내려와 ‘성수만세’를 세 번 외쳤다고 하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후 조선 태조가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경내에는 고려 태조가 썼다는 ‘환희담(歡喜潭)’ 비석과 태조 이성계가 썼다는 ‘삼청동(三淸洞)’ 비석이 있고, 혜월당(慧月堂) 부도와 두곡당(杜谷堂) 부도가 각각 국가유산자료 제124호와 유형국가유산 제150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출처 : 임실군 문화관광)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수면 성수산길 658

상락사(상주)
상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참배객들의 방문이 쉽다. 상주 불교 포교당으로 1921년 설홍스님이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며, 상주 지방 불교 부흥과 보급에 크게 기여해 온 사찰이다. 당초 포교당이던 사찰명을 2002년 상락사(常樂寺)로 바꾸었다.
경상북도 상주시 서성4길 19 (서성동)

서광사(서산)
서광사는 후삼국시대인 928년(신라 경순왕 2, 고려 태조 11)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며, 893년(신라 진성여왕 7)에 고운 최치원이 부성군 (현 서산) 태수로 역임하면서 공부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후 조선 후기에 현재의 사찰로 개편되어 삼선암이라 불리다가 1987년에 서광사로 개명되었다. 이곳은 본래 저녁 종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였으며, 현재는 여러 프로그램의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어 사찰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사찰 내에는 대웅전 외에 인곡수련원, 공양간(식당), 휴심당 및 적요당(숙소), 바둑체험관을 갖추고 있다. 서광사가 등지고 있는 부춘산(186.7m)은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소나무 숲과 더불어 야생화들이 가득하고 솔의 향기와 꽃의 향기가 어우러져 서산 시민의 등산코스로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겨울 설경이 아름답다. 주변 관광지로 서산중앙호수공원, 풍전저수지 등이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부춘산1로 44
서동사(해남)
서동사(瑞洞寺)는 화원면 사동마을의 운거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대흥사의 말사이다. 사동마을은 서동사가 있어 ‘절골’로 부르며,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피난민이 서동사에 대피해 와 이곳의 울창한 칡넝쿨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다고 한다. 1730년 무렵 목관 강필경이 부임해 와 동헌에 북통을 만들 때 칡넝쿨이 진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때문인지 서동사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칡 북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원통형의 나무에 구멍을 뚫고 양쪽에 가죽을 데어 만든 이 북은 나무의 원형을 따라 만든 탓인지 북의 모양이 다소 삐뚤어진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름이 약 50cm가량인이 칡 북은 나무의 안쪽을 파고 만든 나무라고 하여 굉장히 큰 칡나무로 만들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서동사의 창건과 관련 887년 무렵 신라 진성왕 때 최치원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며, 현재의 유적과 유물로 볼 때는 조선시대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웅전은 1779년(정조 3)에 복원된 건물로 1870년 의윤, 정기, 진일 등 3인의 스님이 발원하여 중수하였으며, 최근 년에는 정랑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후 요사채, 칠성각, 천불전, 화장실 등을 개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서동사는 대웅전, 종각, 요사 건물과 함께 최근 복원된 누각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약간 경사진 지형을 3단으로 정지하고 단에 대웅전과 요사를 배치했다. 이밖에 경내에는 석조와 용왕상이 있으며, 전에는 오층석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없어졌다고 한다. 또한 절에는 「상용권공문(常用勸供文)」이라는 책이 전한다. 책 끝부분에 1849년(현종15)에 해당하는 연도가 적혀있어 범자다라니경목판보다 시기가 빠른 고서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문화재로는 서동사 목조삼존불 좌상 보물 1715호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 제245호 서동사 동백나무 비자나무숲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화원면 절골길 244

서산사(곡성)
서산사는 곡성군 생활체육공원의 죽동저수지와 교촌마을 회관을 지나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은 1935년으로 이 지방의 부호였던 정진태, 수태, 규태 삼 형제가 아버지 정일택과 어머니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가 1938년에 서산사로 바뀌었다. 서산사에는 관음전과 요사채 1동 이외에도 법당 뒤에는 참봉 정일택 부부의 영당(신불을 모신 당) 등이 있다. 또한 이곳에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서산사 목조 관음보살좌상과 서산사 동종이 관음전에 봉안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곡성읍 교촌길 71

서산사(신안)
서산사[西山寺]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고, 고려 후기인 1375년(우왕 1)에 내월리 선왕산 뒤편에 처음 세워졌었다는 구전이 전해질 따름이다. 이 외의 사적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며, 주지의 설명에 의하면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위축되었던 포교활동을 1898년 목포 개항과 함께 다시 시작하려 하였으나 산길이 너무 험해 192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서산사는 불교의 미타신앙과 토착적인 용왕 산신신앙이 복합된 신앙을 내용으로 섬 주민들 사이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며, 나한기도의 도량으로서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비금도의 유일한 사찰이기에 여기에 들르는 관광객들이 꼭 한 번은 찾아가는 명소이기도 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안군 비금면 서산길 260

서악사(예천)
봉덕산 중턱에 자리한 서악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1960년 요사채를 중수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701년(조선 숙종 27)에 창건된 사찰로 1737년(영조 13)에 이건 하였으며, 1761년 요사채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건물로는 원통전과 요사채 2동, 일주문이 있다. 주법당인 원통전 내부에 있는 불상은 근래에 제작한 것이고 탱화 6점은 보존 가치가 있는 유물로 평가되는데, 6점 중 3점은 1770년(영조 45)에, 1점은 1868년(고종 5)에 제작한 것이다. 또 법당 안에 있는 동종은 1933년 3월 조성된 것으로 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조선시대 범종 양식을 충실히 따른 귀중한 유물이다. 절 입구 바위에는 ‘연파독역산’이라는 글귀가 남아 있는데, 이 글귀는 조선 후기 한성판윤을 지낸 장화식(1853~1938)이 이곳에서 역경을 강독하던 곳이다.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대심1길 160

서악사(안동)
서악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로, 통일신라 후기 경문왕 때 도선국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사기인 「서악사기」와 「태화산운대사상량기문」에 의하면, 1744년(영조 20) 태화산 중턱에 있던 서악사를 현재의 자리로 옮겼고, 1748년(영조 24) 대규모의 중창 불사가 있었다고 한다. 서악사는 본부(本府)의 사악(四嶽) 중의 하나로 지덕을 돕기 위한 비보사찰이다. 본부의 사악은 동(東)은 동악이라 하며 절이 있고, 남(南)은 남산인데 순천사가 있으며 서(西)는 서악이며 절이 있다. 그리고 북(北)은 금학산인데 수정사라는 절이 있다. 건물로는 원통전과 요사채 2동이 있다. 주법당인 원통전 내부에 있는 불상은 근래에 제작한 것이고 탱화 6점은 보존 가치가 있는 유물로 평가되는데, 6점 중 3점은 1770년(영조 45)에, 1점은 1868년(고종 5)에 제작한 것이다. 또 법당 안에 있는 동종은 1933년 3월 조성된 것으로 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조선시대 범종 양식을 충실히 따른 귀중한 유물이다. 절 입구 바위에는 ‘연파독역산(蓮坡讀易山)’이라는 글귀가 남아 있다. 이 글귀는 조선 후기 한성판윤을 지낸 장화식(1853-1938)이 이곳에서 「역경(易經)」을 읽었다는 뜻으로, 절 뒤편에 장화식의 묘가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악길 67-14 (태화동)
서천사(평택)
서천사는 경기도 평택시 장안산에 있는 한국불교해동종 사찰이다. 호국사찰로 잘 알려져 있는데, 호국사찰이란 부처의 공덕으로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고자 건립한 사찰 또는 그런 역할을 한 사찰을 말한다. 서천사는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주둔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또한 서천사 미륵전에는 승병을 보호하던 하얀 미륵불 석조여래좌상이 500여 년 전 모습 그대로 국토를 수호하고 있다. 1352년(고려 공민왕 원년) 나옹화상이 창건하여 1623년 인조반정 시 모두 불에 탄 후에 1870년 동파비구가 미륵불을 발견하여 사찰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그 후 1929년 중창불사가 있었다가, 1953년 화재로 소실되어 1954년 법당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찰하면 산속에 자리한 산중 사찰을 연상하지만 서천사는 너른 평택의 들판을 바라보며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서천사 입구에는 선훈당이 자리하고 주전인 미륵전과 종무소 겸 요사채인듯한 안월당, 각령전, 산신각, 부도탑이 자리하고 있다. 미륵전에 봉안되어 있는 대표적인 불상의 석조여래좌상은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고, 석가모니불상으로 돌로 만들어졌으나 몸 전체에 회칠을 발라 놓은 상태이다. 정확한 조성시기는 알 수 없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석불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서천사는 크지 않은 아담한 사찰로 네 채의 사찰 건물들이 보기 좋게 분배되어 지어졌고, 사찰 뒤로 낮은 병풍을 드리운듯한 낮은 산이 있어 산책하듯 사찰 나들이하기 좋은 곳이다.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방축4길 22-49

석골사
석골사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운문산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통도사의 말사이다. 560년 비허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773년에 법조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비허가 작은 암자를 짓고 보양과 서로 왕래하며 수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짐으로, 비허가 절을 창건하고 법조는 중창한 인물로 추정된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던 사찰로, 고려 건국 후에는 암자를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으며, 한때는 석굴사 또는 노전사라고도 불렀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활약하던 곳이었으며, 1753년 함화가 중창한 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50년에 불에 탔고,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석조아미타삼존불은 대광전에 있으며, 석탑 재료는 기단과 보주 등만 발굴되었다. 석골사에는 주지와 상좌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옛날 주지와 상좌가 이 절에 머물렀는데, 상좌의 인품과 학덕이 주지보다 높았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주지는 지팡이로 마법을 걸어서 상좌를 강철이로 변하게 하였다. 강철이란 독룡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초목이 말라죽는다는 괴물이다. 강철이로 변한 상좌는 억울함을 참으면서 열심히 불도를 닦았다. 1년 뒤 강철이는 옥황상제에게 하늘로 오르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화를 내고 몸부림을 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박이 떨어졌다. 그 바람에 인근의 농작물이 죽었고, 이후 매년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강철이가 몸부림을 쳐서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원서3길 167

오봉산 석굴암
오봉(五峰)의 서남쪽에 있는 관음봉(觀音峰) 중턱에 자리 잡은 석굴암은 위로는 도봉이 치닫고 아래로는 삼각산이 모여서 마치 여러 별이 모여 북극성을 떠받들고 있는 것 같아 그 산세가 크고 뛰어나며, 물 또한 맑고 골이 깊어 수행하는 사람이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사찰이다. 오봉산 석굴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고려 공민왕 당시 왕사(王師)였던 나옹화상이 3년간 수행정진 했다고 전해진다. 끊임없는 고승들이 주석하며 선맥을 이어갔으나, 6·25전쟁으로 인해 석굴암의 전각이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1954년 초안큰스님으로부터 시작된 복원불사를 이루어 나가 현 가람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굴암길 519

석련사(홍성)
홍성군 구항면 오봉리 백월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석련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7교수 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석련사는 멀리서도 잘 보이는 그런 곳이다. 가는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산길은 백월산의 풍광이 한눈에 각인되는 그런 곳이다. 나막하나 정겨워 드라이브 코스로 알맞다. 따스한 봄볕을 받고 있는 산길에는 아직 솔잎이 깔려 있어 폭신하다. 그러다 석련사에 도착하면 정갈한 경내 모습에 부처님을 향한 환희심이 넘쳐 난다. 높은 석축 위에 위치한 대웅전과 그 옆에 그림처럼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가 말없이 석련사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귀를 간질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을 느끼며, 그 나무에 기대서면 갑자기 두 눈이 동그래지면서 두 손을 합장하게 된다. 사찰 앞 백월산의 우거진 나무 때문에 드문드문 보이는 홍성의 활기찬 모습이 보이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면 시야를 탁 트이게 하는 환상적인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석련사에서 내려다보는 도심과 자연의 풍광이 아름답다. 대웅전에서 조금 더 산 위로 오르다 보면 근래에 마애불이 조성되어 있다. 이 마애불에서는 돌에 낀 이끼라든지 세월의 두께가 더께더께 붙은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그곳에 그 부처님을 모신 사람들의 믿음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그곳에서 다시 한번 더 산 아래를 내려보면 가슴속에 환하게 열리는 느낌이다. 이렇게 석련사에 오면 도심에서 멀지 않은 사찰이면서도 산사의 높이감과 믿음의 깊이감을 함께 만끽할 수 있어 좋다. 알맞은 곳에 딱 그만큼의 법당과 석물이 절집을 찾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구성북로160번길 76
석림사(의정부)
수락산 석림사(石林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1671년(현종 12년)에 석현화상과 그의 제자 치흠이 창건했다. 창건 당시에는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이 석림암(石林庵)이라 이름 짓고 「석림암기」와 「석림암 상량문」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1745년(영조 21) 대홍수로 유실된 것을 복원하고 석림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 후 6·25전쟁 당시 전소되어 또다시 소실되었다. 1960년부터 비구니 상인스님이 상좌 보각과 함께 중창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
경기도 의정부시 동일로122번길 177 (장암동)
석상암(고창)
석상암은 선운사와 함께 백제 시대에 창건된 기록이 전하며, 이후 1665년(현종 6)에 승려 학철이 중창한 선운사의 산내 암자로 승려들의 수행 장소이다. 선운산에 위치해 있으며 절 이름은 절의 서쪽 30m 지점의 평상처럼 생긴 넓은 바위에서 유래하였다. 법당은 최근 건물로서 옥돌의 관세음보살좌상을 봉안하였고, 보살상 뒤에는 1765년(영조 30)에 조성된 후불탱화를 중심으로 같은 해에 조성한 칠성탱화, 지장탱화, 신중탱화 등이 좌우에 있다. 현재는 법당과 칠성각만이 남이 있으며, 주변 네 곳에 건물 터가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본래는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크고 웅장한 규모가 잘 갖춰진 본사 선운사와 달리 작지만 아담하고 담박한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암자이다. 석상암은 자랑할 만한 큰 전각이나 국보급 불상은 없지만 암자 주위의 자연환경이나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매력적인 곳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석왕사(경기)
석왕사는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보운산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사찰이다. ‘바른 불교, 실천불교’를 표방하며 짧은 역사에 비해 도심 속의 포교 사찰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76년 전 총무원장 고산 스님이 천막법회를 시작으로 창건한 석왕사는 20여 년 만에 등록 신도가 1만 5,000세대에 이르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도심 포교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석왕사가 주목받는 것은 단지 이런 규모만이 아니라 어린이집, 유치원, 경로잔치, 문화행사, 출판 등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려는 다양한 시도를 해 왔기 때문이다. ‘석왕사보’를 발행, 사실상 현대불교 최초의 문서 포교를 전개했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한 어린이 포교, 생활협동조합 설립 운영, 부천시민신문 발행, 부천외국인 노동자의 집 설립 운영 등의 활동을 통해 불교의 지역사회 운동 및 사회민주화 운동에 신기원을 이룩했다. 특히 1980년대 석왕사는 민주화 및 노동운동가의 단골 집회소로, 부천의 민주화 성지로 알려지기도 했다. 석왕사는 일주문과 법당, 팔각구층탑, 범종각 등이 사찰이라는 것을 말해줄 뿐 여느 사찰과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생활협동조합, 아름다운가게, 무료진료소, 룸비니 수영장, 어린이집, 유치원, 왕생극락전(장례식장), 안락정토(납골당) 등이 있고, 생협과 아름다운가게에 물품을 실은 트럭이 오가는가 하면 저 아래쪽 어린이집에서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재잘댄다. 또한 장례식장과 명부전에는 검은 상복 차림의 유족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서성거리기도 한다.
경기도 부천시 소사로 367

석종사(충주)
석종사는 충주시의 외곽의 금봉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대웅전과 정면 3칸, 측면 2칸의 오화각 및 범종각, 소소원(선방), 안양원, 금봉암, 조종육엽(조실채), 금봉선원, 감로각, 천척루(누각), 회명당(후원), 원흥료(종무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출가한 승려만을 위한 공간을 지양하고, 재가자 역시 사찰에 몸담아 수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또한 템플스테이를 통해 일반인들도 조용히 수양하고 참선하며 불교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불교대학을 운영함으로써 불자와 일반인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 이 밖에도 불설사십이장경, 인천안목 권상과 같은 여러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길 271-56
석천사(여수)
여수 마래산 중턱에는 충민사와 석천사가 있다. 충민사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고, 바로 옆에 위치한 석천사는 충민사의 수호사찰이다. 충민사 뒤편 큰 바위 아래 석천이라는 샘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정유재란이 끝난 3년 후(1601) 이순신장군과 함께 판옥선을 타고 종군한 승장 옥형 스님과 자운 스님이 이충무공의 인격과 충절을 잊을 수 없어 충민사 곁에 공의 넋을 추모하기 위한 암자를 건립하였다. 석천사에는 의승당이 있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몇 해전 법당이 불에 타버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법당과 종각, 요사 등을 새로 짓고 보수했으나 충민사 정화 사업 때 법당과 요사의 원래 위치가 바뀌었고 일주문도 없어졌다. 충민사와 함께 둘러보면 좋고, 석천사가 있는 마래산은 여수 8경에 속하며 정상인 활공장에 오르면 탁 트인 바다와 여수시내, 그리고 오동도를 조망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충민사길 52-21
석천암(남양주)
석천암은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불암산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 흥덕왕 때 지증 국사가 창건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1882년(고종 19)에 병역 제도의 개편으로 오위 제도가 해체되자, 오위장 이장군이 옛터에 암자를 짓고 수도하였다. 그 후 1922년에 거사 김한구가 낡은 건물을 수리하고 이곳에서 공부하였으며, 1956년에는 주지 창근 스님이 요사채를 중수하고, 1960년에는 법당을 세웠다. 또한, 석천암의 중심 커다란 암벽에는 중생 구제의 염원을 가진 미륵불이 새겨져 있다. 말법 시대 중생들의 귀의처인 이 미륵불은 1966년 설봉 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오늘날 석천암의 상징이 되고 있다. 미륵불 앞 기도처는 동방 제일의 기가 강한 곳으로 이곳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사찰은 2011년 의문의 화재로 2010년 4월 낙성된 52.23㎡(약 15.8평) 규모의 대웅전이 모두 소실된 사건이 있었다. 방화 사건으로 마무리된 후 2013년 재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석천암은 불암산 등산코스에 있으며 불암사에서 석천암까지는 20분가량 가파른 산길과 암벽을 지나야 도달할 수 있다. 사찰에 가까워질수록 아래를 돌아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경치가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이곳은 불암산을 등반하는 길에 꼭 한번 들러봄 직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75
석천암(괴산)
석천암은 대야산 서쪽에 위치한 고찰로 구전에 의하면 ‘바위밑에서 약수가 나온다 하여 석천암으로 부른다’는 유래가 있어 석천암으로 부른다. 현재의 석천암은 보덕암에서 석천암으로 이름을 바꾼 사찰이며, 옛 석천암은 현재의 석천암 아래 삼송리 29번지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곧 원래의 석천암이 6.25 전란으로 법당이 소실되고, 1965년경 수해로 요사채가 소멸되어 폐사(廢寺)되었다. 이후 석천암 위에 있던 보덕암이 1985년경 화재로 소실되자 사찰을 신축하면서 ‘석천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석천암은 1칸 크기의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가 있으며, 사찰에 면한 뒤쪽 암반에서 나오는 물을 사용하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삼송길 205-182

석탄사(정읍)
석탄사는 정읍의 칠보면 용태봉 석탄의 동봉 암벽에 자리 잡은 전통 사찰이다. 창건 연대는 잘 알 수 없으나 오래된 절이다.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선조 때 임신과 정유 난 때 병화로 타 버렸는데 영조 때 박잉걸이 다시 지었고, 1894년 갑오동학 혁명에 소실된 것을 가산 김수곤이 중건했었는데 1950년 6.25 사변에 다시 소실되고 말았다. 1973년 조병준이 재건하였다. 석탄사의 대웅전 앞 쪽으로 지맥이 뭉친 곳이 있는데, 이 곳을 무제등이라 하고 여기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며, 인근 지역에 가뭄이 심하게 들 때면 고을원이었던 태인현감이 20리나 떨어진 이곳에 와서 직접 기우제를 주관하였다고 한다. 또 이 사찰은 삼성각의 나반존자가 여러 영험을 드러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내려오는 곳이다. 날씨가 맑은 날 대웅전 앞에 서 보면 너무도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다. 멀리 변산반도와 서해까지 들어오는데 산을 오를 때까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런 경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주변 관광지로 국사봉, 수청저수지, 칠보산, 무성서원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허궁실2길 186-125

선광사(제주)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선광사는 한국불교태고종 사찰이다. 선광사는 해안 석벽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해안 동굴들이 태고의 경이로움을 그대로 간직한 채 바다와 맞서고 있는 남원큰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선광사가 창건된 것은 1942년 보화 법인스님이 법당과 객실을 지으면서부터이다. 1945년에는 1차 중건 불사로 포교활동에 박차를 가했으나, 1948년 4·3사건의 여파로 선광사는 잠시 폐사가 된다. 그 후 4·3사건과 6·25전쟁 등 격동의 세월을 역사와 함께 보내고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게 되자, 다시 중창 불사하여 현재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물 정도의 사찰 면모를 갖추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510번길 42

선국사(남원)
선국사는 교룡산성 내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며, 산성 내에 있다고 하여 산성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685년(신문왕 5)에 남원 소경이 설치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창건되었으며, 이곳에 용천이라는 샘이 있어서 용천사라 하였다. 절 둘레에 교룡산성을 쌓은 뒤 절의 성격이 호국 도량으로 바뀌면서 이름도 선국사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국사로 이름이 바뀐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절 이름에 [국 國]자가 들어가는 사찰들은 대부분 나라를 위해 큰 역할을 담당해 왔던 것처럼 선국사도 나라를 지켜낸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호남지역의 6개 군현에서 거둔 군량미를 바로 이 교룡산성에 보관했는데, 이때 선국사는 교룡산성을 지키는 수비대의 본부 역할을 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군의 은신처가 되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 보제루, 관음전, 요사가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내부에 아미타삼존불과 지장보살을 비롯하여 여러 점의 탱화와 큰북, 중종, 현판 2매가 보관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성길 239 (산곡동)

선림사(보령)
보령시 오천면에 자리한 선림사는 유형문화유산이 있으며, 바다를 볼 수 있는 절경지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어우러진 천년사찰 선림사는 울창하게 숲이 우거져 오천팔경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곳이며, 서해 바닷가 쪽 큰 산 냇골 동쪽, 이른바 ‘싱기댕이’라고 부르는 곳에 있다. 사찰의 주위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해안이 가까이에 있어 멀리 바다가 조망되는 곳이다. 절의 돌 틈에서 나오는 약수는 머리가 맑아지게 하여 감로수라고 알려져 있다. 더욱이 이곳에는 관음조가 유난히 많고 갖가지 새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여 성지다운 도량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로 52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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