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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45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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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암(보은)
역사관광충청북도

복천암(보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속리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복천암은 720년(신라 성덕왕 19)에 창건되었으며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수차례에 거쳐 중수되었다. 에 따르면 복천사 동쪽에 샘이 있는 데 돌 틈 사이에서 물이 쏟아져 나와 재위에 쓸 물을 많이 제공하므로 복천이라고 불러 복천이라는 사명이 유래되었다. 조선 세조가 1464년 이 절에서 3일 동안 기도를 드린 뒤 절에 이르는 길목의 한 목욕소에서 목욕을 하고 피부병이 깨끗이 낫자 이 절을 중수하도록 하고 만년보력이라는 사각 옥판을 내렸다 한다. 1592년 불에 탔으나 곧 중건하였고 그 후 소실된 것을 1735년(영조 11)에 재창하였으며 1803년(순조 3)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전과 나한, 선방, 요사채 등이 있다. 복천암 극락전은 1976년 해체, 복원하였으며 내부에는 아미타불상과 후불탱화, 삼세불도, 신중도, 극락보전, 수암화상탑, 학조화상탑, 신미대사의 탱화가 보존되어 있으며 현판 무량수는 공민왕 친필로 전한다. 유물로는 부도 2기가 전하는데 그중 복천암수암화상탑은 1480년(성종 11) 제작된 것으로 조선시대 승려인 수암화상의 사리를 모시고 있고 이 부도 뒤의 복천암학조등곡화상탑은 1514년(중종 9)에 제작된 것으로 학조대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일반적인 석종형부도보다 훨씬 발전된 형식을 띠고 있다. 두 기 모두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 보물로 승격되었다. 속리산은 산이 깊고 넓어 많은 암자들이 만들어져 있는데, 복천암이 가장 깊은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규모 역시 가장 큰 사찰이다. 암자의 형태를 하고 있는 사찰이기 때문에 일반 신도들을 위한 사찰 운영보다는 선원의 형식으로 사찰을 운영하고 있다. 등산로를 따라 속리산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는 문장대, 비로봉, 천왕봉을 갈 수 있으며 상고암, 상환암 등 산속에 숨어있는 암자를 만날 수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로 702-5 복천암

본원정사(서울)
역사관광서울특별시

본원정사(서울)

본원정사(本願精舍)는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삼각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 소속의 사찰이다. 본원정사에는 한국전쟁 때 태고사에 불이 나서 옮겨왔다고 전하는 목조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륵불 사이인 부처님 없는 시대에 중생들을 교화하는 대비보살이다. 특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지옥에 들어가 교화해 제도하는 보살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초 주지소임을 맡은 원성스님은 이 지장보살상에 감화를 받아 지장보살의 본원을 따르고자 서원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절 이름도 본원정사로 바꾸었다. 이후 본원정사를 사바세계 중생들의 몸과 마음의 병을 다스릴 수 있는 도량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언제나 열려있는 도량으로 서울시민과 불자들에게 번잡한 마음을 쉴 수 있게 하고, 기도할 수 있는 도량으로 본원정사를 장엄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각산로 1

봉국사(서울)
사찰서울특별시

봉국사(서울)

봉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정릉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1395년 조선 왕조의 개창에 큰 역할을 했던 무학대사 자초(自超)가 약사불을 봉안하고 약사사라 한 것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 후 왕실의 지원으로 1468년 다시 한번 중창하였다. 현재의 이름인 봉국사로 바뀌게 된 것은 1669년 태조의 두 번째 왕비인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의 묘를 정릉으로 복원하면서 약사사가 원찰로 지정되었을 때부터이다. 이때 정자각(丁字閣)과 안향청(安香廳)·전례청(典禮廳) 등을 지었으며, 나라를 받드는 절이라는 뜻으로 봉국사라 하였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때 불에 탔으나 이듬해 청계(淸溪)와 덕운(德雲)이 중창하였고, 1898년에는 운담(雲潭)과 영암(永庵)·취봉(翠峰) 등이 명부전을 중건하였다. 1913년 칠성각, 1938년 염불당을 세웠으며 1977년에는 일주문 옆에 2층 누각을 짓고 아래층은 천왕문, 위층은 일음루(一音樓)라는 종루로 삼았다. 1994년 안심당을 짓고 현재에 이른다. 현재 만월보전과 천불전, 용왕각, 명부전, 삼성각, 독성각, 연화원 등이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로 202 (정릉동)

봉녕사(수원)
사찰경기도

봉녕사(수원)

봉녕사는 수원시 장안구 우만동 광교산 기슭에 자리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광교산 기슭에 자리한 봉녕사는 수원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고려 시대의 불상인 석조 삼존불과 대웅전 앞뜰에 수령 800여 년의 향나무는 봉녕사의 창건과 더불어 역사를 함께한 산 증거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208년에 원각국사가 창건하여 성창사라 하였고, 1400년 경에는 봉덕사로 개칭하여 오다가 조선 예종 원년 1469년 혜각국사가 중수하고 봉녕사라 하였다. 혜각국사는 세조로부터 스승예우를 받았으며 간경도감의 경전언해에 기여한 큰스님이기도 하다. 봉녕사는 1971년 비구니 묘전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부터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요사와 선원을 신축하고 선원을 개원하였으며, 이후 1975년 비구니 묘엄스님을 강사로 승가학원을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1979년에는 묘엄스님이 주지와 학장을 겸임하였으며 승가대학으로 개칭하게 된다. 현재 절에는 선원과 강원, 그리고 율원을 함께 갖춘 비구니의 수련도량으로써 내실을 다지고 있으며, 절이 위치한 곳이 광교산으로 그 뜻에 걸맞게 널리 가르침을 펼쳐 불성을 연마하고 한국불교의 초석이 되기 위한 수학, 정진에 여념이 없는 곳이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36-54

봉래사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봉래사

봉래사는 외나로도의 항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덕암산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조그만 암자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절이다. 송광사 판암 스님께서 1935년 덕암산 아래에 초가 3칸을 건립, 명이 송수인 스님을 청하여 거주하다 1938년 여름에 법당 4칸을 창건하여 신흥암이라 하였고 1949년 명송 스님께서 송광사로 가시고 남원 실상사의 벽운성범 스님께서 안거하면서 암자명을 봉래사라고 개칭하였다. 그 후 1962년 백은종택 스님께서 법당을 헐어버리고 법당 4칸을 재건하여 1987년 봉래사 연혁을 필사본으로 정리하였다. 대웅전에는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신중탱화라는 불화가 보관되어 있다. 경내에서는 신금리 나로도항이 한눈에 보이고 나로도항 수협 위판장에서는 계절별로 맛있는 해산물을 싼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봉래면 우주로 3159-32

봉림사(화성)
역사관광경기도

봉림사(화성)

서해를 바라보며 서있는 봉림사는 신라 진덕여왕(647~653)때 고구려, 백제와의 잦은 침략을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물리치고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절 이름은 창건 당시 궁궐에서 기르던 새가 절 근처의 숲 속에 날아들었다는 데서 유래하고, 산 이름도 비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극락전 내에는 보물 제980호로 지정된 목조 아미타불이 안치되어 있다. 1978년 이 불상을 개금 할 때 발견된 복장 내에 조성개금기에 의하면 조성시기는 1312년 이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복장에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 사이의 각종 전적 8종이 발견되어 보물 제1095호 지정되었다. 현재 본사인 용주사 박물관에 이전 보관하고 있는데, 이중에 담뱃갑보다 작은 크기의 금강경(가로 7.3㎝, 세로 4.5㎝) 1339년에 간행된 목판본으로 섬세한 필치의 변상도까지 갖춘 호신용 경전이다. 사리, 사리병, 각종섬유, 곡물, 구슬 등이 복장에서 함께 발견되었고, 그중 사리는 1979년 3층 사리탑을 조성하여 봉인하였다.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주석로80번길 139

봉림사(영천)
역사관광경상북도

봉림사(영천)

봉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1742년(영조 18)에 징월이 창건하였으며 인근 보현산에 있던 법화사를 학서산으로 옮겨왔으며, 법화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사찰을 옮겨온 설화가 전해지는데 법화사의 한 사미승이 탁발을 나갔다가 병이 들어 절에 돌아오지 못하고 민가에서 요양하였다. 사람들은 사미승을 극진히 보살폈는데, 여름이 되자 개고기가 몸을 회복하는 데 좋다며 먹으라고 권하였다. 사미승은 고민 끝에 개고기를 먹고 병이 나아 칠월 칠석이 되어 절에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번개와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밤새 내리더니 다음 날에 승려 1명이 사라졌다. 그 후 매년 칠월 칠석이면 어김없이 밤마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다음 날에 승려 1명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급기야 주지가 회의를 열고 칠석날 모든 승려의 몸에 실을 연결하여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아보자고 하였다. 다음 날 역시 한 승려가 사라졌고 실을 따라가 보니 산 중턱 바위 굴속에 큰 지네가 잠을 자고 있었고, 이 화를 피하고자 절을 옮겼다고 한다. 경내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으며,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하는 삼존불상과 후불탱화신 , 중탱화, 지장탱화, 칠성탱화 등의 탱화가 남아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천문로 2149-368

봉영사(남양주)
사찰경기도

봉영사(남양주)

봉영사는 남양주 진접읍 내각리 천점산(393m)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의 본사 봉선사의 말사이다. 봉영사는 599년(진평왕 21)에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봉이암이라 불렸다고 한다. 1755년(영조 31)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의 묘가 순강원으로 승격되면서 이 절을 인빈 김씨의 원찰(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았으며, 이때 절 이름을 봉영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후 절 지위가 크게 높아졌는데, 1877년(고종 14) 고종 숙부인 이공이 대대적으로 중수공사를 했으며, 이후 계속적인 중수가 이루어졌다. 봉영사에는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진 무량수전과 지장전, 승방, 요사, 그리고 사적기와 혜경선사 공덕비 등이 있는데 모두 근래에 건립된 것이다. 봉영사에는 약수터가 있는데, 이곳은 물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 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절 입구에는 쉼터인 찻집이 있으며, 이 찻집 안에 있는 봉영사 도서관은 휴식과 독서를 겸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종류의 불서와 양서를 접할 수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2로 84-77

봉서사(서천)
역사관광충청남도

봉서사(서천)

이곳은 서천 건지산(127m) 자락에 있는 사찰로 공주 마곡사의 말사이기도 하다.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99년(정조 23)의 기록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이 시기에는 이미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는 조선 후기 문신 석북 신광수(1712~1775),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1850~1927), 서천 출신의 시인 석초 신응식(1909~1975) 등이 머물며 공부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사찰에는 극락전, 삼성각, 심검당, 종무소 등이 있으며, 극락전에는 1619년(광해군 11)에 제작되어 보물로 지정된 조선 중기의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또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소조삼존불상도 있다. 봉서사가 있는 건지산에는 백제시대에 쌓은 건지산성이 있다. 그 외에도 주변에 문헌서원, 한산모시관, 한산소곡주 양조장, 한산읍성, 한산 오일장, 신성리 갈대밭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하기 좋다.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길 113

봉학사(충주)
역사관광충청북도

봉학사(충주)

봉학사는 충청북도 충주시 장미산 자락에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사찰이다. 봉학사는 1895년에 비구니 임광제가 봉루암을 창건한 이후 근대에 중창된 산사이다. 1921년에 임광제가 입적하자 제천 백운사 주지인 윤인선이 이곳으로 와 상주하면서 가람을 정비하여 향화를 이어갔는데, 1955년에 불교 분쟁으로 봉학사를 비구승이 접수하면서 이후 비구승에 의해 관리되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으로 절 운영이 어려워지자, 3년 후 다시 윤인선이 주석하며 사찰을 꾸려갔으며, 이후 충주 토박이 승려 배해월, 배용운, 배영환이 절을 운영하면서 사찰을 정비하였다. 1974년에는 명담 오길수가 인수하여 장연사(檣蓮寺)로 개칭하고 법당과 요사, 그리고 종각을 개축하여 현재의 사찰 모습을 갖추었다. 1986년에는 선혜 이도현이 절까지의 진입 도로를 마련하였으며, 전화도 가설하여 절로의 진입이 용이해졌다.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윗말1길 173

부귀사(영천)
역사관광경상북도

부귀사(영천)

부귀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부귀사의 자세한 연혁이 전하지 않지만, 591년에 혜림법사가 거조암과 동시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때 보조 국사가 주석으로 있었다고 전하며,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에 절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도중에 폐사되지 않고 명맥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1873년에 담운이 중창한 바 있고, 1882년 지금의 자리로 이건 하였다. 건물로는 법당과 요사채가 있으며, 보화루에 있는 「종각중수기」, 「부귀사게판기」, 「부귀암중수기」 등의 기문을 살펴보면 당시의 사찰 규모의 단편을 알 수 있다. 2000년에 아미타 도량을 세우기 위하여 중창 불사 발원 기도를 올린 뒤 불사를 하였다. 부귀사 내 건물로는 극락전, 보화루, 신검당, 산신각과 요사채 등이 있다. 부귀사 극락전에 1754년에 조성된 부귀사 미타회탱이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칠밭골길 446

부인사(대구)
역사관광대구광역시

부인사(대구)

부인사는 팔공산 남쪽 중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부인사에 관한 개창시기나 연혁은 잘 알려지지 않아 부인사의 창건연대와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편이다. 7세기 초 창건으로 전해오고 있는 현 부인사에는 신라 선덕여왕 어진을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보름에 신무동 주민과 사찰 측 및 경주 김 씨 종중에서 선덕여왕 숭모재를 지내는 것에서 부인사의 내력을 짐작할 만하다. 옛 절터가 지금은 포도밭으로 변해 있지만 현 사찰에서 200m 남쪽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고 팔공산 순환도로 남쪽으로 금당좌가 연접하고 있어 옛날 번창기의 사역 범위를 보여주고 있다. 현 부인사는 6·25 동란 때 불탄 것을 1959년 중건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승시장이 부인사에 개설될 정도로 아주 번창했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도전의 송화암종사우운시서의 기록 중에도 부인사가 팔공산에 위치한 거찰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인사는 고려 초조대장경의 판각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현종 4년(1013) 경부터 조각되기 시작하여 숙종 4년(1099)에 완성된 총 1만여 권의 초조대장경은 처음 여왕사, 개국사 등에 봉안하였다가 그 후 이곳 부인사에 봉안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여러 번의 인간이 있었다. 부인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사찰의 위치가 지금의 영천 근방으로 팔공산 동화사와 인접해 있었고, 거찰로서 고려 초조대장경을 보관하여 외침을 극복하려 했던 호국사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부인사는 팔공산국립공원 능선으로 향하는 탐방로의 기점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다. 부인사에서 이말재를 지나면 서봉과 비로봉, 동봉으로 이어지는 종주 코스를 오를 수 있으며, 톱날능선과 마당재를 거쳐 다시 부인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고즈넉한 사찰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부인사는 매력적인 시작점이자 반환점이 되고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로 967-28 (신무동)

북장사(상주)
역사관광경상북도

북장사(상주)

상주는 고도의 웅주였을 뿐 아니라 신라의 제2수도이며 고려 팔목의 하나로 다른 지역보다 일찍부터 불교문화가 발달한 지역으로 갑장사, 승장사, 남장사, 북장사 등 역사적인 고찰들이 남아 있다. 상주시 내서면 북장리 천주산 중턱에 위치한 북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시대 진감국사 혜소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북장사는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고 1624년(인조 2) 당승 10여 명이 들어와 다시 세웠으나 또다시 소실되어 1628년(인조 6년) 중창하였다. 극락보전에는 숙종 때 조성된 2m 높이의 거대한 목조 삼존불 아미타여래,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있으며 이 불상들은 17세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파랑새가 그렸다는 전설이 있는 괘불탱이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통일신라 때 제작된 북장사 삼층석탑도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북장1길 317

북지장사(대구)
역사관광대구광역시

북지장사(대구)

북지장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로, 팔공산 맑은 계곡변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사찰의 전형인 쌍탑 가람으로 팔공산에서 동화사와 더불어 삼국유사에 공산 지장사로 기록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485년(소지왕 7)에 승려 극달화상이 창건했다는 연기설화와 684년(신문왕 4) 승려 양한이 달성군 최정산에 남지장사를 세우자, 동구 도학동 팔공산에 있는 지장사가 대구광역시를 기준으로 볼 때 북쪽에 있어 북지장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1192년(명종 22)에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한 것으로 보이나 중창 이후 이 절의 역사는 전혀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대웅전의 기와 중에 강희 4년(1665)의 명이 있는 것과 1623년의 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절이 1623년(인조 1)에 중창되고 1665년에 중수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에도, 북지장사가 팔공산에 있다는 내용이 보인다. 또한 1832년(순조 32)에 편찬된 경상도읍지에 북지장사가 청련암·도명암과 함께 동화사에 소속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사찰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지장전을 비롯하여 극락전(현 대웅전) 삼성각·산신각·천왕문 등이 있으며 특히 대구 북지장사 지장전은 한때 대웅전이 불에 의해 소실되었을 때 대웅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건립 연대는 1623(인조 원년)으로 정면 1칸, 측면에는 퇴칸을 달았다. 공포는 다포계 양식의 내·외 4출목이며 조선시대 중기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내부는 정자의 가구수법과 유사하며 불전의 가구로는 특이한 예이다. 대웅전의 동편에 남쪽을 향하여 나란히 서 있는 탑은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 탑의 뒤쪽은 법당이 있던 곳으로 많은 석재 유물이 산재하여 있다. 이밖에도 지장전 앞에는 지장사유공인영세불망비가 있는데, 이 비문에도 지장사가 신라시대의 고찰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팔공산 자락에서 묵묵히 세월을 지켜온 북지장사는 현재 대구 올레 팔공산 1코스의 종착지로서 대구 동구 방짜유기 박물관에서 도보로 코스를 즐기기에 맞춤하며, 북지장사 가는길은 사철내내 푸른 솔숲을 볼 수 있고 솔 숲에서의 향기는 북지장사 석조 지장보살님을 뵈러 가는 발 길을 가볍게 하여 준다. 더하여 북지장사에는 연못을 두고 있는데 연못 주변에 오래된 노거수 버드나무가 또 한번 세속의 번뇌를 놓고가라 하는 듯하다.

대구광역시 동구 도장길 243 (도학동)

분황사
사찰경상북도

분황사

분황사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선덕여왕 3년인 634년에 창건된 사찰로, 원효대사와 자장법사가 머물렀던 역사 깊은 절이다. 절 안에는 국보로 지정된 모전석탑이 있으며, 이는 통일신라 이전에 세워진 대표적인 전탑 양식이다. 모전석탑은 본래 5층 이상이었으나 현재는 3층만 남아 있으며, 고려시대에도 보수가 이루어졌음을 사리장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탑 1층에는 감실과 수문장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석사자상도 함께 배치되어 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형 돌우물인 삼룡변어정이 있으며, 호국용 전설이 전해진다. 이 우물은 1965년 석불 14구가 출토된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분황사에는 약사전, 약사여래입상, 석등, 대석 등 다양한 유적이 남아 있다. 화쟁국사비부는 원효대사를 기리는 비석의 받침돌로, 고려 명종 때 만들어졌다. 현재 분황사는 역사적·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고찰로 평가받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

불암사(남양주)
역사관광경기도

불암사(남양주)

불암사는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 후기 헌덕왕 16년(824) 지증대사가 창건하였고, 도선이 중창하였으며, 무학이 삼창하였다. 불암사는 보물로 지정된 ‘석씨원류 목판’으로 유명하다. 석씨원류 목판이란 석가의 일대기나 전법제자들의 행적을 목판에 새긴 것으로, 1673년 승려 지십이 불암사에서 ‘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이란 책을 펴낼 때 제작하였다. 자작나무판을 사용하였으며 양 끝에 나무를 끼워 나무판의 뒤틀림을 방지한 것으로 조선 판본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있다. 인조 16년(1638)에 왕명으로 역대 승려의 법통을 이어온 것을 판각한 것으로, 고창 선운사와 이 절에만 보존되어 있는 귀중본이다. 불암사 뒤 암 벽에는 근래에 조각된 마애삼존불이 있고 경내에는 1989년 태국과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 사리를 모신 진신사리보탑이 있다. 부처님의 모습을 닮은 산 아래 자리하여 이름마저 불암(부처바위)이라 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까지 모셔놓은 불암사는 그야말로 부처님의 도량이다. 이런 도량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기법회와 기도를 드리며 정진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90 (별내동)

불령사(청도)
역사관광경상북도

불령사(청도)

불령사는 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로 호랑산이라 불리는 효양산의 비룡골 옆 산비탈에 위치해 있다. 불심이 계곡에 충만하다고 해서 불령사라 불린다. 절의 창건이나 연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지만, 신라 645년(선덕여왕 14)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할 뿐이다. 그 뒤의 연혁은 없으며, 이후 낡고 허물어진 사찰을 1912년에 봉주 승려가 중건하였다. 그 뒤 1930년 이종태 주지가 중수하였다. 이후 폐사 지경에 있던 것을 1985년 지선 승려가 요사와 산신각을 새로 지으면서 현재의 사찰 모습을 갖추었다. 2000년에 퇴락한 인법당(人法堂)이었던 대웅전을 위쪽으로 올려 새로 짓고 원래의 인법당은 종무소로 사용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령사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령사 전탑이 있다. 이 전탑은 좁다란 골짜기의 절벽 위 널찍한 터에 자리하고 있다. 땅 위로 5단의 바닥돌을 놓고 1층의 기단을 마련한 뒤 5층의 탑신을 올려놓았는데, 오랫동안 무너진 채 방치되었다가 1968년에 다시 세워 놓은 것이어서 원래의 형태인지는 알 수 없다. 길쭉한 벽돌의 옆면마다 연꽃받침 위에 앉아있는 3구의 불상과 2기의 석탑이 서로 교차하여 돋을새김 되어 있는데, 이러한 까닭에 이 탑을 ‘천불탑(千佛塔)’이라 부르기도 한다. 통일신라 때의 조각양식을 보이고 있어 이 시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용산3길 99-8

불정사(전주)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불정사(전주)

불정사는 전주 고덕산에 자리한 한국불교태고종 사찰이다. 서녘의 해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찰로 뒷산의 둥근 모습이 마치 부처님의 머리와 같기 때문에 절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빛이 난다고 하는 불광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불정사로 바뀐 것이다. 불정사는 숲이 깊고 그늘지다. 시원한 곳에 위치해 있는데 이끼가 끼어 오래된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다. 대웅전이나 산신각이 원래의 전통적인 전각에서 벗어나 있으며 종각 또한 마찬가지이다. 군데군데 석물이 많고 존상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 산과 나무가 띄엄띄엄 가려져 있어 사찰의 멋스러움을 더한다. 대웅전 내부에 위치한 아미타불좌상은 조선 후기 17세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각형의 무표정한 얼굴에 반개된 눈과 함께 목에 삼도가 표현되어 있으며, 단순화된 옷자락에 의해 경직된 모습이고 가슴 높이 걸친 군의의 상단 깃을 몇 가닥 겹친 수직적인 표현 또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오른팔을 소맷자락에서 빼낸 듯한 특징적인 옷차림새 또한 17세기 이후 불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다지 험하지 않으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나타나는 불정사는 해질녘 노을이 아름답고 산세에 맞게 정갈한 절집과 그 안에 모셔진 조선후기 불상의 조화를 함께 맞볼 수 있는 사찰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남고산성1길 33-24 (동서학동)

불탑사(제주)
역사관광제주특별자치도

불탑사(제주)

불탑사는 제주시 삼양동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관음사의 말사이다. 불탑사는 원당봉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불탑사의 원찰인 원당사는 고려 말 제주도의 3대 사찰 중 하나였다. 1948년에 발생한 제주 4.3 사건 당시 사찰 대부분이 파손되었으며 1953년에 재건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보수와 확장 작업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 요사채, 종각, 천왕문 등이 있으며 특히 이곳에 보존된 오층석탑은 제주도 유일의 고려시대 석탑으로 1993년 11월 보물로 지정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당로16길 41

사성암(구례)
사찰전남광주통합특별시

사성암(구례)

사성암은 구례읍에서 약 2㎞ 남쪽인 죽마리 오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원래 오산암이라 불렀는데, 성왕 22년 (544)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의상대사 4명의 고승이 수도하였다고 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 사성암은 높이 20m의 바위 사이에 박혀 있는 듯한 약사전과 바위와 계단으로 이어지는 건물들이 산과 하나 되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약사전 아래로 보이는 섬진강과 구례읍, 지리산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애여래입상이 약사전(유리광전) 건물 내 암벽에 새겨져 있으며 원효 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사성암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주차장이 협소하여 주차가 제한적이다. 사성암을 가는 방법은 걸어 올라가는 것과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마을버스 가격은 왕복 기준 3,400원 (13세 이하 2,800원)이다. 사성암 주차장 마을버스 매표소나 안전 운수사를 검색하여 찾아가면 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문척면 사성암길 303

사자사(사자암)
사찰전북특별자치도

사자사(사자암)

사자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절터다. 백제 무왕과 선화비가 행차 중 미륵삼존불을 목격한 사건을 계기로 미륵사가 창건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자사는 백제 불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93년 발굴조사에서 ‘지치 2년 사자사조와’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이 사자사터임이 확인되었다. 유구에서는 고려와 조선 시대의 건물터 흔적과 함께 통일신라 토기, 백제 기와, 분청사기, 청자, 백자 등이 발견되어 다양한 시대의 흔적이 공존함을 보여준다. 현재는 대웅전과 요사채, 석탑 1기가 남아 있으며, 발굴 후 과거 법당 자리에 약간 확장된 형태로 대웅전을 복원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구룡길 57-125

상연대(함양)
역사관광경상남도

상연대(함양)

함양군 백전면에 위치한 상연대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 경애왕 1년(924) 고운 최치원 선생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건립하여 관음 기도를 하던 중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상연(上蓮)이라는 이름을 하여 상연대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창건한 이래 신라말에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선문(實相禪門)을 이곳에 옮겨와 선문(禪門)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 후 역대의 고승· 대덕스님이 수도 정진해 오던 곳으로 천여 년의 영험 어리고 신령한 수도 도량이었으나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해 불에 타고 1953년경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의 뒤편으로는 백두대간으로 연결되는 백운산(1279m)이 우뚝 솟아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길 3-291

역사관광경기도

상운사(고양)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는 북한산 원효봉 남쪽 중턱에 있다. 신라 때 원효스님(617∼686)이 삼천사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조선 중기 이후 승병들이 머물렀던 절이다. 1722년(조선 경종 2) 승병장 회수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노적사로 바꾼 것을 1813년(순조 13) 승병장 태월과 지청이 중건하면서 현재의 이름인 상운사로으로 바꾸었다. 1864년(고종 1) 긍홍이 극락전을 중건하고, 1898년 한암이 큰방을 중건하였으며, 1912년 주지 법연과 덕산이 법당을 중수하였다. 이후 1980년대에 법당을 중건하고 요사채를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 범종각, 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고려 중기에 제작된 석탑과 석등 부재가 남아 있다. 그중 석탑은 기단부와 1층 탑신만 전한다. 절 뒤에는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바위가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197-22 (북한동)

상원사(춘천)
사찰강원특별자치도

상원사(춘천)

강원도 춘천시 서면 삼악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사찰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이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신라시대에 창건한 절이라고 전해지며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상원사에 가기 위해서는 삼악산 등산로 입구 삼악산 매표소에 주차하고 가파른 등산로를 30분가량 걸어 올라가야 한다.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으며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채 등의 건물과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석탑 1기만이 남아 있다. 사찰 앞으로는 의암호가 펼쳐져있고 뒤로는 암벽과 소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어 자연경관이 매우 뛰어나다. 주변에 등선폭포를 비롯하여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서린 옥녀탕, 삼악산성 등 볼거리도 많다. 특기할 만한 문화유산은 없으나 절 주위의 풍치는 빼어나다. 또, 이 산중에는 신라시대에 창건하여 궁예가 몸을 숨겼다는 흥국사가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서면 박사로 16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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