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45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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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암(곡성)
수도암은 곡성군 옥과면 설옥리 613번지 설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암사의 말사이다. 사찰에 의하면 수도암은 신라시대 때 설두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 하나 이를 입증할 만한 자료가 없어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보다 수도암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기록으로는 옥과읍지(1936) 불우조에 설산 수도암이 1929년 4월 주지가 창건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현재 원통전에 있는 곡성군 옥과면 설산 수도암기를 살펴보면 이 사찰은 1926년 박민수 스님에 의해 창건된 뒤 1928년 불사가 마무리되었다고 적고 있다. 현재 절에는 원통전과 산신각, 칠성각을 비롯하여 요사채 등 5동의 건물이 있으며 원통전에는 1754년에 조성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옥과면 설옥길 81-158

수정암(충북)
수정암은 속리산의 수정봉 아래 자리한 법주사의 산내 암자로 추래암을 지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커다란 자연석 2개가 석문 역할을 하고 있고, 암자의 앞으로는 맑은 냇물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스님이 법주사와 함께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이후의 연혁은 거의 전하지 않으며, 근래에 들어와 1914년에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 대선방 등이 새로 지어졌다. 수정암의 본전으로 극락전은 1973년 진영각과 함께 지어졌으며, 그 이후 요사 등의 전각들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주사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울창한 숲길인 자연관찰로를 따라가다 보면 법주사보다 먼저 왼쪽에 개울 건너 고개를 살짝 내민 암자의 지붕들을 볼 수 있다. 그곳이 바로 수정암이다. 법주사와 수정암 들어가는 입구에는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가 속리산을 요양차 방문했을 때 복천암까지 오고 간 순행길인 편도 3.2km의 세조길이 조성되어 있다. 수정암터에서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여래좌상이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 파손되었던 것을 동국대학교에서 복원해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379

여수 낭도리 공룡발자국화석 산지
낭도리 공룡화석지는 여수시 화정면에 속하는 사도, 추도, 낭도, 목도, 적금도 등 5개 섬 지역의 백악기 퇴적층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조사결과 발견된 공룡발자국화석은 총 3,546점으로 사도에서 755점, 추도에서 1,759점, 낭도에서 962점, 목도에서 50점, 적금도에서 20점이 각각 발견되었다. 종류도 다양해 앞발을 들고 뒷발만으로 걷는 조각류, 육식공룡인 수각류, 목이 긴 초식공룡인 용각류 등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이 중에서 조각류 발자국이 전체의 81%에 달할 정도로 많이 나타났다. 추도에서는 발견된 최장 84m의 공룡 발자국 보행렬은 세계적으로 가장 긴 공룡 발자국 행렬이다. 공룡화석 이외에도 규화목, 식물화석, 연체동물화석, 개형충, 무척추동물, 생흔 화석과 연흔, 건열 등의 교과서적인 퇴적구조들이 발달되어 있어 국내 및 범아시아 공룡서식환경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다고 한다. 여수여객선 터미널에서 여객선을 이용하여 사도항으로 가는 방법(1시간 40분 소요)과 낭도선착장까지 차로 이동 후 낚시배를 이용하여 이동하는 방법이 있다. 여수엑스포역에서 낭도선착장까지 차량으로 50여 분 소요되며 사전에 낚싯배를 예약하면 낭도 선착장에서 추도까지 10여 분이면 도착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화정면 사도길 32
승련사(남원)
승련사는 남원 산동면 인근 연화산(527.9m) 남쪽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러 들어오는 이 사찰은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창건연대는 예로부터 [금강사]라 불리며 지리산이 조망되는 아름다운 경관을 지녀 고승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고려 16 국사 중 한 사람인 정혜국사가 말년에 이곳에서 살았는데, 사찰을 넓히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입적하였다. 이에 그의 제자 졸암이 뜻을 이어받아 1361년(공민왕 10)에 중창하여 절 이름을 승련사로 고쳤다. 그 후 조선 후기에 폐사되었으나 1986년부터 재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대웅전, 요사채, 선방, 공양간, 삼성각 등을 갖추고 있으며 많은 승려와 신도들이 수도하면서 불법에 정진하고 있다. 주변에는 남원자연휴양림, 남원 내동리 은행나무 등이 있어 연계해서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요천로 2675-90

영보정
영보정은 연촌 최덕지 선생이 관직을 떠난 후 영암의 영보촌에 내려가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사위 신후경과 함께 지은 정자이다. 창건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며, 당시의 규모도 명확하지 않다. 처음 있던 정자는 황폐화되어서 최정과 신천익이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지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넓은 뜰이 잘 정리되어 있으며 전면에 영보정이 있다. 정자의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네 귀에는 추녀를 찰주로 받치고 있다. 현판은 석봉(石峰) 한호(韓濩)의 친필이라고 전한다. 최덕지 선생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학식이 높고 행동이 단정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많은 저서를 남겼으나 불타버려서 한 권만 남아 있고 여러 현인들의 논설만 전하고 있다. 영보정은 일제강점기 때 청소년들에게 항일구국정신을 교육한 장소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는 이곳에 영보 학원을 설립하여 청소년들에게 항일구국정신을 배양시켰다. 영암지역 청년들의 항일투쟁활동으로 꼽히는 1931년의 형제봉 만세운동도 영보 학원을 중심으로 졸업생과 청년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것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덕진면 영보정길 10-8

승암사(전주)
승암사는 전주 승암산에 자리한 한국불교태고종 사찰이다. 승암산은 스님의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때문에 승암산은 멀리서 바라보아야 한다. 본래 불성을 간직한 사람은 어느 산이나 바라보면 산의 모습에서 부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듯이 멀리서 승암산을 바라보면 산과 바위의 모습이 영락없는 스님의 형상을 띠고 있다. 승암산의 정기를 고스란히 받은 승암사에는 여러 고승들이 주석하여 스님들의 법력이 강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북지방에서 가장 이름난 고승인 진묵스님이 이곳 진묵굴에 머물며 약수를 마시며 수도했다고 한다. 조선후기에는 용담 조관 스님이 중창을 했고 근대에는 만응 스님이 중창을 했으며 해안 봉수스님과 더불어 한벽선원과 승암강원을 열어 이 지역을 불교계를 육성하는 등 그 법력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시내에서 가깝고 길에서도 훤히 보이는 곳에 위치하여 누구에게나 가깝게 다가오는 곳이 바로 승암사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바람쐬는길 47-13 (교동)

영팔정
영팔정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문신인 하정 유관이 주위 경치에 감탄하여 아들 맹문에게 시켜 조선 1406년에 지은 정자이다. 처음에는 모산리의 ‘모’ 자와 호인 하정의 ‘정‘ 자를 따서 ‘모정’이라고 불렀으나 훗날 율곡 이이·고경명·남이공·유상운 등이 주변 경관을 팔영시(八詠詩)로 읊어서 영팔정으로 바뀌었다. 1689년에 영의정을 지낸 유상운이 건물을 고친 것 외에는 수리한 내력이 알려져 있지 않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내부는 방이나 벽체 없이 사방이 개방된 정사각형 평면이며 마루는 우물마루이고 오른쪽에만 난간을 설치하였다. 정자 안에 제영문·기문 현판과 동계책이 보관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신북면 하정길 8

원갑사
원갑사는 영광 불갑사, 영암 도갑사와 함께 남도의 3갑사라 불린다. 이 절은 통일신라 때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근거를 찾기 어려워 지은 시기를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원갑사에는 강산사에 대한 현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오래된 절이 무너지자 신도들이 중수하기 위해 돈을 모았는데, 목우암의 신도들이 이야기를 듣고 도와 1908년에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절의 자리도 세 차례 옮겼는데, 그에 따라 이름도 강산사, 당산사, 원갑사로 바뀌었다. 절 경내에는 법당인 무량전과 요사채가 있다. 무량전은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해제면 산길로 266-27

신광사(세종)
신광사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 있는 노적산에 자리한 사찰이다. 창건연대는 약 160년 전으로 추측되며, 1920년 이경직 주지가 복원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창건 당시 토골절, 수양사(修養寺) 등으로 불리었으며, 혜원 스님이 1980년 신광사로 개칭하였다. 신광사는 젋은 활기가 흐르는 사찰로 역사가 길지 않음에도 젊은 대학생들이 살고 있는 대학교 세종캠퍼스가 근처에 있으며,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광사는 참배객이 접근하기 좋은 곳에 있으면서 인연을 맺은 이들을 소홀히 하지 않고 불법을 전파하려고 노력하는 곳이다. 이러한 노력은 사찰 곳곳에 배치된 석물 하나하나에도 배어 나오고, 법당 안에 봉안된 불상에서도 느낄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토골고개길 24

신광사(광주)
신광사는 근현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역 최초의 비구니 수행 도량으로 지금은 국가 지정 전통 사찰이다. 원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지산동 조선대학교 교내에 있었는데, 1993년 북구 두암동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송광사의 말사이다. 일주문, 대웅전 1동, 삼성각 1동, ‘ㄷ’자형 반야당 1동, 종각 1동, 무설당 요사채 1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1933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시내 최동열의 모친 김청재월 보살의 시주금으로 선암사 광주시 서방포교당으로 지산동에 창건되었다. 그 뒤 안혜운 스님이 인수하였다. 1964년 법당이 협소하여 법당과 선방을 중창하였고, 1974년 요사가 낡아 헐어지게 되자 요사와 강당을 중창하였다. 근래에는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본사를 옮기고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전법도량으로서 절을 이끌어왔다. 그러던 중 1990년 조선대 교내에 있던 사찰 부지를 팔고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 뒤 최경주 스님이 절의 살림을 맡아 1992년 대웅전에 불상과 보살상을 봉안하였고, 요사채, 삼성각, 지하실 등의 대대적인 불사를 하였다. 2016년 제3대 주지인 동현이 주석하면서 불교 수행과 포교, 비구니 후학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삼정로66번길 42-10
신둔사(청도)
신둔사는 영남의 명산이며 이 고장의 진산인 남산(南山) 기슭에 자리 잡은 사찰이다. 1173년 보조국사 지눌이 봉림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고,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1667년 상견대사가 중창하였다. 이후 1878년 중건 당시에 이름을 신둔사로 다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근대에는 1926년에 송호영찬 승려가 중수하면서 오늘날 신둔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경내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 청풍루, 범종각 그리고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의 좌측 뒤편에는 삼성각이 있으며, 내부에는 칠성도를 비롯하여 독성도, 산신도가 봉안되어 있다. 입구 역할을 하는 누각인 청풍루는 주로 신도들의 법회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화양남산길 355
경주 일성왕릉
경주 남산 서쪽 약간 경사진 지점에 있는 일성왕릉은 신라 제7대 일성왕(재위 134∼154)을 모신 곳이다. 봉분의 높이 7m, 직경 10m이며 하단에는 석축을 쌓았다. 봉분 전면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호석으로 보이는 석열이 있고 봉분 주위에도 그러한 돌을 돌렸던 듯하다. 중단의 석상은 후세에 설치한 것이며 그 뒤에는 장대석으로 얕은 1단의 석축이 있으나 이것은 석상을 놓으면서 쌓은 듯하다. 하단의 석축은 잡석으로 쌓았는데 이것도 후세에 손댄 것으로 보인다. 상당한 규모의 대형 분묘여서 일반 서민의 무덤이 아님을 알 수 있으나 일성왕의 장지에 관한 기록이 없어 전해지는 말로 추정할 뿐이다. 일성왕은 에는 제3대 유리왕의 맏아들로 에는 제3대 유리왕의 조카 혹은 제7대 지마왕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일성왕은 농토를 늘리고 제방을 수리하여 농업을 권장하였으며 민간에서 금·은·주옥의 사용금지를 하는 등 백성을 위한 정치에 주력하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경주 정강왕릉
이 능은 신라 제50대 정강왕(재위 886~887)의 무덤이다. 정강왕은 경문왕의 둘째 아들이며, 헌강왕의 동생이다. 황룡사에 백고좌를 설치하여 왕이 친히 강연을 들었다. 정강왕은 병이 깊어지자 누이동생인 만(진성여왕)이 왕위를 잇게 하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재위 기간은 만 1년에 불과하다. 헌강왕과 마찬가지로 보리사 동남쪽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정강왕릉은 경주 남산의 북동쪽 능선 끝자락에 있는데, 북쪽에는 헌강왕릉이 있다. 무덤의 외형은 흙으로 덮은 둥근 형태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밑둘레에 3단으로 돌을 쌓았다. 그중 제일 밑단만이 밖으로 약간 나왔으며, 무덤 앞에는 돌단이 있는데, 그 위에 돌로 만든 작은 제사상이 있다. 무덤의 구조는 헌강왕릉과 같다. 그러나 1993년 헌강왕릉의 내부조사 결과, 그 구조와 나온 유물들이 8세기 이전의 형식이어서 이 왕들이 왕위에 있던 9세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경주 헌강왕릉
이 능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의 무덤이다. 경문왕의 맏아들로서 왕위를 이었다. 헌강왕은 왕은 불교와 국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문치를 지향하였다. 재위 기간에 해마다 풍년이 들어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헌강왕이 죽은 후에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이 있는 곳은 경주 남산 북동쪽의 자락이다. 무덤은 높이 4.2m, 지름 15.3m의 둥근형태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무덤 밑둘레에 돌을 4단으로 쌓았다. 1993년에 발굴조사로 석실 내부 구조를 확인했다. 동남쪽으로 널길이 있고, 서쪽으로 석실을 배치하였다. 석실 입구에 돌문, 문지방, 폐쇄석 등이 있으며, 서쪽 벽 접하여 시신을 안치한 시상이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신륵사(제천)
신륵사는 월악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창건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1960년에 법당인 극락전을 중수하면서 쓴 『월악산 신륵사 중수기』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4년(582년)에 아도 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이후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년) 때 원효대사가 고쳐지었고, 고려 공민왕 때 무학대사가 다시 고쳐지었다고 한다. 또 조선 광해군(재위 1608~1623년) 때 사명대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 기록과 함께 절에 남아있는 삼층석탑과 석재 및 극락전으로 미루어볼 때 신륵사는 신라 말 고려 초에는 창건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고려 시대에서 조선 전기에 걸친 연혁은 전혀 알 수 없다. 임진왜란 후 조선시대 후기에 중건되었는데, 창건 후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중건되기 전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건되었다고 하더라도 절터나 현존하는 건물로 보아 사세(寺勢)는 미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부터 선원(禪院)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960년에 한국전쟁으로 퇴락한 극락전을 중수한 바 있고, 1981년에 삼층석탑을 해체하여 보수한 바 있다. 이후 근래에 들어와 2001년에 산신각을 창건한 것을 비롯해 약 사당과 요사를 신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신륵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보살좌상, 극락전 벽화 및 단청 등이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산로4길 180

신흥사(상주)
경상북도 상주시 신흥사는 안락행 김교순 보살에 의하여 1925년에 건립되었다. 경내에는 신흥사의 내력을 기록한 김교순여사사리급신흥사창건비(1970년)와 부도가 있다. 이 비문에 의하면 김교순은 1881년(고종 18) 경북 예천 출생으로, 21세 되던 해인 1901년 보은 속리산에서 용허선사로부터 보살계를 받고 불명을 안락행(安樂行)이라 하였다. 그 뒤 신흥사를 창건하여 사천왕문을 비롯하여 칠성각과 약사전, 대웅전 등의 불사를 이루었다. 또한, 김씨는 법당 건립 후 1926년 1월에 이른바 국화문사건에 연루되었는데 일제시기 일본 천왕만 사용할 수 있는 국화문양을 문살에 넣은 사건으로 대구재판소에 수감 중 20일간 단식 염불을 해 일본인 경사들을 놀라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듬해 석방된 뒤 중생구제와 염불 및 참선으로 일관하였다고 한다. 신흥사에는 약사여래좌상과 탱화, 민화 2점이 있으며 단청의 모습이 여느 절과 다른 특이한 문양의 소박함이 있는 절이다. 인근에 속리산 국립공원과 사담관광농원이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중벌2길 32

휴애리자연생활공원
휴애리는 수많은 꽃들과 한라산 풍경이 더해져 더욱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꽃 정원이다. 연중무휴이며, 매년 수차례 꽃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휴애리의 꽃 축제는 유채, 매화, 수국, 핑크뮬리, 동백 등 계절마다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을 전시하고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꽃을 통한 감동과 추억을 드리고자 함에 주된 목적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동물체험 먹이 주기 체험, 흑돼지야 놀자 등과 같은 시즌 체험 등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동로 256

신흥사(이천)
이천 설성산 중턱에 위치한 신흥사는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설성산성이 둥글게 에워싼 중간 지점에 있는 신흥사는 신라 내물왕(재위 356~402) 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설성을 쌓은 장군을 위해 세웠다는 전설이 전하나 당시는 신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훨씬 전이고, 조선 후기까지는 연혁이 전하지 않아 최초 창건연대 및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오랫동안 폐사가 된 채 내려오다 1700년대 말에 중창하고 1918년 3창하였으며, 1944년 수해로 유실된 것을 당시의 주지 해송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극락보전과 천불전, 범종각, 산령각과 요사채 등 여러 전각이 있으며 6~7세기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며 쌓은 성인 이천설성산성과 산 아래 선읍리 입상석불이 있다. 특히 선읍리 입상석불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석불로 선읍리 마을 앞 냇가와 논바닥에 흩어져 묻혀 있던 것이 1978년 여름에 장마로 드러나 마을 앞 광장에 두었던 것을 당시 신흥사 주지였던 월선 스님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봉안한 것이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사찰을 거닐며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 좋고, 산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는 탁 트인 풍경은 시원한 맛이 있다. 다만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수풀이 제법 우거져 있으므로 등산하고자 하는 사람은 긴바지 착용을 권한다.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경충대로519번길 246-314

신흥사(화성)
신흥사는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로, 서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구봉산 당성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1934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원래 당성 안에는 절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 흐르면서 절은 없어지고, 무심히 세월만 흘러가 인근에 살고 있던 한영석 거사가 꿈에 부처를 현몽하고 당성 안에서 석불을 발견하여 절을 세웠다. 이후 1973년에 주지로 부임한 오성일스님이 불교의 황무지였던 이곳에 불법홍포의 원력을 세우고 가람을 일구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신흥사는 종단에서 지정한 전법도량으로 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하시고 45년간 법을 설하여 수많은 중생을 교화한 것처럼 포교에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는 사찰이다. 그중에서 어린이 청소년 교화에 특히 중점을 두어 어린이 법당, 청소년 수련원 등 따로 만들어 일일출가 수련대회, 어린이 여름불교학교 등 많은 프로그램들을 직접 만들어 포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신흥사가 어린이 법회로 유명한 곳이니만큼 신흥사 내에 간판이나 내용들이 한자가 아닌 한글로 쓰여있으며, 큰법당(대웅전)까지 오르는 계단은 노약자와 휠체어가 오를 수 있도록 경사로도 함께 만들어져 있다. 신흥사 내에 만들어진 부처님 교화공원은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중생 교화사 중에 중요한 사례를 형상화하여 중생을 위해 고행하고, 중생에게 삶의 지혜를 주신 부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듯 느껴볼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왕복 20분 정도 소요되며 언덕길이어서 수행을 한다는 마음으로 오르면 어렵지 않다. 부처님 교화공원 내에는 부처님의 생애를 담은 팔상성도 석판 8점을 비롯하여 부모은중경 석판 11점과 30여 명의 교화중생상과 7분의 존자님상, 죽림정사, 기원정사, 그리고 초전법륜야외법당이 조성되어 있다. 부처님 교화공원은 성지순례지로 각광을 받고 있어 전국에서 많은 불자들이 방문하여 부처의 가르침을 본받고 있으며, 근처 구봉상 당성과 함께 둘러보면 좋을 듯하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신흥사길 17-34

신흥사(영천)
신라 진평왕 때 세워진 사찰이라는 설이 전하지만, 신흥사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원래 평지에 있는 사찰이었으나 오래전에 경작지로 변하여 석탑만이 남아있던 것을 1957년 당시 금호 포교당에 있던 장백현이 신흥사로 중창하였다. 사역 내의 석탑으로 보아 통일 신라 시대의 사지일 것은 분명하지만 알려진 바가 없다. 신흥사는 영천 신월리 삼층 석탑을 중심으로 법당과 요사채가 있다. 신흥사에는 영천 신월리 삼층석탑이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금호로 360-29

지리산참숯굴찜질방
지리산 참숯굴 찜질방은 숯을 굽고 난 후 그 열기를 이용하여 찜질방을 운영하며 원적외선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참숯, 대나무숯 등의 고급 무공해 숯 제품과 죽초액, 목초액 등 다양한 미용, 건강 관련 제품도 판매하고 있다. 산림청에서 목초액 품질 인증서를 취득하였으며 양질의 무공해 재료를 사용하여 이용객들의 편안함과 건강증진을 추구하고 있다. 국내산 참나무와 황토 재래식 가마로 제작하는 최상의 숯을 제작하며 그 온기로 따뜻하게 찜질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어릴적 부모님과 함께 했던 추억을 생각하며 가족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장소이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2741-24

신흥사(울산)
함월산 신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된 사찰이다. 신흥사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후 당나라의 공격을 받을 때 문두루비법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명랑조사가 세웠다. 명랑조사는 신라 호국불교의 지표인 건흥사의 창건주이고, 문무왕 때 신라가 만리성을 쌓는 동안 신흥사에는 승병 백여 명이 머물면서 무술을 닦았다고 하니, 이 절이 초기부터 승병과 관련된 호국도량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양란 때는 승병들을 모아 전투에 참가하여 호국의 의지를 불태우고 군량미를 제공하는 등 울산지역 승병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 때는 남부군 활동지였으며 지리산 자락의 다른 사찰들처럼 수많은 경전과 판각이 사라지고 폐허가 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신흥사의 문화재로는 국가 보물 지정 석조아미타여래좌상,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신흥사 구 대웅전, 신흥사 구 대웅전 단청반자가 있으며 주차장 바로 옆에는 400년 된 보호수 회화나무가 있다.
울산광역시 북구 대안4길 280
신흥사(완도)
완도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신흥사는 완도군 완도읍 성내리 168번지 남망산(南望山)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1932년 김성렬 스님이 불로사(不老寺)라는 절로 창건했으나 중간에 신흥사(新興寺)로 절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완도읍에서 신흥사는 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이다. 도심서 가깝다니 도심 속 혼잡함을 떠올리기 쉬우나, 속세의 혼잡함과 번거로움은 이미 떨쳐버린 곳이 신흥사다. 또한 신흥사에서는 매년 아이들에게 ‘장보고 학교’를 열어주고, 시민들에게 도예 공방을 열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동안 여럿스님이 신흥사에서 수행을 하셨는데 현재 백양사(白羊寺) 방장이신 수산 지종 큰스님이 대표적이다. 신흥사는 완도의 전망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완도 전망뿐 아니라 야경도 볼 수 있다. 맑은 날이면 저 멀리 신지나 대둔산의 경치도 볼 수 있고, 어둠 박차고 올라오는 검붉은 태양의 떠오름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도심과 바다가 어우러진 곳이 신흥사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청해진남로 101-1 신흥사
신흥사(충주)
신흥사는 장병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 1890년(조선 고종 27) 오영근이 창건했다. 오영근이 약초를 캐러 갔다가 석간수를 발견했는데, 그 물을 마시고 소원을 빌었더니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하며 이후 석간수는 신기한 약효가 있는 샘물로 이름이 났으며 근처에 초가 2칸을 마련하여 절을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건물로는 대웅보전과 삼성각, 용신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24년 세워진 것이다. 내부에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의 삼존불이 있고 불상 뒤로는 극락 후불탱화와 지장 탱화, 십일면 관음 탱화 등이 모셔져 있다. 불상 주위에는 십육 나한상이 놓여 있는데, 이 중 4구는 절 부근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밖에 팔각원당형부도 재료와 고려청자 1점이 발굴된 바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족동2길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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