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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447페이지

총 12,561개의 관광지 중 447페이지입니다.

충령사
역사관광충청남도

충령사

충령사는 6.25 전쟁과 월남전에서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전투 중 산화하신 전몰군경과 국토방위를 위하여 헌신하신 순직군경 등 호국영령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 1978년 홍성군에서 건립하였다. 이곳은 대지 18,600평, 본전 14.7평, 삼문 4평 규모의 목조 기와 형태의 건물로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는 이곳에서 기관 단체장, 보훈가족, 주민 등이 모여 추념식을 거행한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충서로 1121-43

철마산 3.1공원
문화관광충청남도

철마산 3.1공원

1919년 독립운동을 했던 184명의 영혼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가 있다. 이 고장 출신 선열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손들에게 보전하고 건립했다. 철마산 3.1 공원은 고려의 충신 최영 장군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은 추모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수목과 꽃나무가 식재되어 있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어서 산책하기에도 좋은 공원이다.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철마산길 149-26

이광륜묘
역사관광충청남도

이광륜묘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광윤은 성품이 인자하며 의리를 존중하였고, 극진한 효도로 부모를 봉양하였고 호는 중임(仲任)이며 고려 문절공 이행(李行)의 6대손이다. 자는 중임(仲任)이며, 고려조의 문절공 이행의 6대손으로 청양군 비봉면 방한리 신기동에서 명종 2년(1546) 12월 7일에 출생하였다. 천성이 인자하고 의를 존중하며 효로서 부모를 봉양하더니 33세가 되던 해 효행으로 추천을 받아 생원시에 응시하여 문소전 참봉(文昭殿 參奉)이 되었으나 사양하였다. 선조 26년(임진년) 4월에 왜적이 부산과 동래를 함락하고 북쪽으로 쳐들어오자 이광윤은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창의(倡義) 하기로 결심하고 친우와 친척, 향리의 장정을 모아 삼백 명의 창의군을 이끌고 청주작전에 참가하였다. 청주성 탈환 작전에는 승장(僧將) 영규대사와 합세하여 성을 포위하고 격전을 벌여 마침내 청주성을 탈환하였다. 승전의 기세로 금산지역으로 향했으나 금산에는 적의 정예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금산 작전에서 왜적의 야습을 받아 창의군전원이 전사하였다. 그 후 사헌부 집의라는 증직과 정려를 세우라는 명을 받았으며 헌종 6년 자헌대 부이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 총관의 추증(追贈)이 있었으며 장곡면 옥계리에 정려가 세워졌다.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무한로865번길 29-58

최치원선생유적지
역사관광충청남도

최치원선생유적지

신라 말기의 학자인 최치원 선생의 친필 금석문이 있는 유적지이다. 최치원 선생은 경주 최씨의 시조로 869년 열세 살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874년 과거에 급제했다. 이후 선주 표수현위가 된 후 승무랑 전중시어사내공봉으로 도통 순관에 올라 비은어대를 하사 받고 이어 자금어대도 받았다. 879년 황소의 난 때는 고변의 종사관으로서 토황소격문을 초하여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885년 귀국하여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서서감지사가 되었으나 894년 시무책 십여 조를 진성여왕에게 상소하여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고 외직을 자청해 충남 서산 등지의 태수를 지낸 후 아찬이 되었다. 그 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를 비판하며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바위에 새겨진 유려한 명문을 찾아보며 굴곡진 시대를 살다 간 학자의 깊은 고뇌를 되새겨볼 수 있다.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월계리

문수암(옥천)
역사관광충청북도

문수암(옥천)

문수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공주 동학사의 강주를 역임했던 경봉(1885∼1969) 스님이 1930년 무렵 옛 절터에 창건했다고 한다. 문수산은 지금의 옥천군 청성면 마장리와 대안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이 산에 문수사라는 절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의 문수암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옛 문수사의 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도장리 마장동 뒷산에 불당골이라 부르는 곳에 절터가 하나 있는데 근래까지도 그곳에서 기와 편과 도자기 편 등의 유물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문수사의 터일 가능성이 높다. 대웅전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외벽을 빙 둘러 팔상도(석가모니의 일생을 8장면으로 묘사한 그림)를 벽화로 그렸고, 정면 포벽에는 여래상, 좌우와 뒷면 포벽에는 나한, 연꽃, 매화 등을 그려 놓았다. 대웅전 앞마당 왼편과 오른편에 요사가 1동씩 자리하며 왼쪽 요사 쪽으로 미륵불 입상과 4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대웅전 왼편의 작은 언덕에 자리 잡은 삼성각은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을 모셨다. 삼성각 앞에 서면 멀리 속리산의 준령과 넓은 들판이 훤히 보이며 마음이 확 트이는 곳이다.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도장1길 33

미륵사(부산)
역사관광부산광역시

미륵사(부산)

미륵사는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한 해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이다. 이곳에는 한가운데 위치한 염화 전 뒤편의 거대한 바위가 스님이 좌선하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좌선바위’라 불리고 있다. 이 바위는 여러 개의 바위들이 모자이크 한 듯이 어울려 있는데, 해가 지고 난 뒤 바위와 바위 사이의 금이 보이지 않게 될 때 전체로 보면 그 형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좌선바위 뒤편에는 미륵불과 닮은 미륵불을 향해 좌선을 하고 있는 형상의 절묘한 터에 원효는 기도도량을 세운 것이 다. 미륵사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문로 126

미륵사(나주)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미륵사(나주)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이다. 백제 성왕 22년(544)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창룡사(蒼龍寺)라 칭했다고 전해지지만 문헌상의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으며, 창건 이후의 연혁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다. 한국전쟁 후 거의 폐사되어 인법당의 형태로 유지되다가 이후 미륵당이라 불리면서 무속인이 거주하였다. 1990년대 후반 원일스님이 부임한 후 불사를 벌여 대웅전, 삼성각, 관음전, 설법전, 요사 등을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대웅전에는 내부 불단에 삼존불(아미타여래좌상, 관음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이 모셔져 있고, 불화로는 후불탱, 지장탱, 신중탱이 있다. 보물 제462호 나주 철천리 석조여래입상과 보물 제461호 마애칠불상이 있다. 영산포 공용터미널에서 거리로 14㎞, 차량으로 18분 소요되는 거리에 있으며, 직선 길이 5㎞에 나주호가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봉황면 세남로 408-64

미륵사(증평)
역사관광충청북도

미륵사(증평)

미륵사(彌勒寺)는 충북 증평군 증평읍에 자리한 대한 불교 조계혜능종 소속 사찰이다. 본 사찰은 수령이 300년이나 되는 느티나무 옆에 모셔진 석조관음보살입상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듯하다. 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관음보살입상은 미륵사 보다 더 오래도록 지금의 자리를 지켜오며 대비보살로서 중생구제 원력을 펼치고 계신다. 관음보살의 영험이 알려진 것은 오래전 한마을 전체에 원인 모를 병이 돌아 매일 두세 명씩 죽어 나갈 때부터이다. 어느 날 한 노승이 나타나 마을 어귀 느티나무 옆에 있는 석조 관음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7일 이내 효험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떠났다. 주민들은 처음 보는 노승의 말인지라 그냥 흘려들었지만 이후에도 계속 질병이 심해져만 가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노승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주민들이 모여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하였다. 노승의 말처럼 7일이 되자 백약이 무효였던 마을 사람들의 병은 씻은 듯 완치가 되었다. 그 후로 마을에서는 느티나무 옆 석조 관음보살님께 매년 한 번씩 모여 기도를 올리게 되었으며 현재는 윤달이 든 해 음력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재를 지내고 있다. 미륵사는 천년의 세월 가까이 수많은 영험을 낳으신 석조 관음보살 입상을 기도처로 삼아 1930년 대 작은 초막을 지은 것이 시작이었다. 사찰로서의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은 1950년대 새로 전각을 지으면서부터이다. 미륵사라는 이름도 이때 가지게 되었고 현재의 ‘미륵댕이’라는 지명도 석조관음보살입상을 수호불로 모시는 마을 사람들의 깊은 신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미륵댕이1길 13-5

미륵암(남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미륵암(남원)

미륵암은 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암자로 신라 말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당과 법당, 요사로 이루어져 있다가 1992년 대웅전, 1994년 용화전과 산신각을 새로 지었다. 용화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내부에 절터에서 발견된 높이 192㎝의 고려시대 석불인 미륵암 석불이 모셔져 있으며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다. 원래 이 사찰이 자리 잡은 골짜기를 부처골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사찰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이곳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 기도를 드리면 영험이 있다고 하여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노송로 1188-5 (노암동)

미륵암(의정부)
역사관광경기도

미륵암(의정부)

부용산 자락에 위치한 미륵암은 미륵불과 농부에 대한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지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 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 제76호이다. 최초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세조 때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미륵불을 얻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세조는 국상 신숙주에게 절을 짓게 명하였고, 신숙주가 혜암대사를 후원하여 절을 짓고 미륵암이라 하였다. 이를 근거로 세조의 재위연간 중 1460년대를 이 절의 초창연대로 보고 있다. 이후 고종 28년 운송화상이 중수한 후 몇 번의 보수를 거쳐 지금의 주지스님이 법당을 중건하고 진입로를 말끔히 포장하였다. 사찰에 전해오는 중요 유물·유적은 없으나 농부가 발견했다는 미륵불은 현재까지 전해져 용화전에 협시보살과 함께 봉안되어 있다. 본래 석조불이었으나 최근 금동불사를 마쳤다. 경내에는 법당인 용화전,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의정부경전철 탑석역에서 자동차로 약 10 정도 소요되며, 400m 정도의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해 오르기 어렵지 않다. 절 뒤편으로는 부용한 정상으로 향하는 오솔길이 있으며, 가까운 곳에 이 절과 인연이 깊은 신숙주선생묘가 있다. 인근에 의정부 동부광장, 부대찌개 거리, 도봉산, 수락산, 장흥유원지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만한다.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로65번길 94

미타사(성북)
역사관광서울특별시

미타사(성북)

보문사와 담장 하나 사이에 있으며, 탑골승방으로 잘 아려진 미타사는 여승들의 거처이다. 이 사찰은 950년에 혜거국사가 처음 창건하고 미타사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1047년에는 석탑을 조성하여 탑골승방이라 하였다. 석탑은 대웅전 뒤 단하각 왼쪽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이 절은 131년에 혜감국사에 의해 중건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단종비였던 정순왕후 송씨에 의해 중수되었다. 또 이곳에는 6층으로 된 오래된 석탑이 있는데, 위 3층과 아래 3층이 그 시대를 달리하고 있다. 아래 3층의 조성 시기를 고려 때로 보고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사길 6-16 (보문동3가)

미타사(강서)
사찰서울특별시

미타사(강서)

미타사는 서울시 강서구 개화동 개화산 서남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김포평야와 행주나루 끝자락에 걸쳐 있는 도심 속 사찰로, 한적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동산에는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나무들과 들꽃들이 어우러져 조용한 아름다움을 더한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은 치열한 격전지였으며, 김포공항을 사수하던 육군 1,000여 명이 전사하고 절의 모든 당우가 전소되는 비극을 겪었다. 사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법당 옆 바위 위에 세워진 미륵불입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에 따르면 이 불상은 땅에서 솟아났다고 전해진다.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로13길 56-33 (개화동)

미타사(성동)
역사관광서울특별시

미타사(성동)

옥수동에 자리한 미타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조계사의 직할 사찰로 달맞이봉공원 아래 위치해 있다. 또, 두뭇개에 있으므로 두뭇개승방이라고도 한다. 888년 신라 진성여왕 2년에 창건된 미타사는 금호동 부근에 대원 비구니 스님의 원력으로 창건되었으며 1115년 봉적 두 비구니 스님이 현재의 옥수동으로 옮겨 극락전을 건립하고 아미타불을 모신 후 국사로부터 미타사라는 사명을 받았다. 미타사의 극락전과 관음전은 불심 깊은 조대비의 보시로 건립되었으며 극락전의 삼존불과 6개의 탱화, 관음전의 천수 탱화, 7층 석탑 등은 불교예술의 전통미를 함축하고 있다. 미타사는 역사를 이어오며 많은 비구니 스님이 운집하여 미타사 내에 각기 암자를 건립하게 되는데 현재는 대승암, 칠성각, 금보암, 금수암, 정수암, 관음암, 용운암의 7개 암자가 있는 서울 도심 속의 특별한 전통 사찰이다. 1988년 천불전과 미타유치원을 건립하여 지역주민과 불자들의 친행처와 지역 어린이 보육전당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성동구 독서당로40길 21

미타암(양산)
역사관광경상남도

미타암(양산)

미타암은 경상남도 양산시 웅상읍 천성산(千聖山)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이다. 646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며, 원효대사가 창건한 89암자 가운데 하나로 본다. 920년에 지공 대사가 중창하였다. 1376년에 중창했으며, 1888년에 다시 정진(正眞)이 중창하였다. 구한말에 우리나라의 선사상을 부흥시킨 경허(鏡虛)의 제자 혜명(慧明)이 주석했으며, 현재 그의 비석이 남아 있다. 미타암은 천연 동굴에 인공을 가해 조성한 석굴 사원이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대웅전·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에는 석조 아미타여래 입상이 모셔져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 주진로 379-61

반룡사(경산)
역사관광경상북도

반룡사(경산)

반룡사는 경북 경산시 용전면 구룡산 자락(반룡산)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이다. 661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전기에 원응국사가 ‘신흥암’이라는 이름으로 중창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며 소실되었고, 조선 후기에 사찰의 면모를 회복하였다. 반룡사는 인조 대부터 숙종 대까지 60여 년 동안 총 25개의 전각을 건립하여 대가람을 이루며 ‘신흥사’를 반룡사로 개칭하였다. 하지만 화재로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다. 1968년 중창하였고 이후에도 산식각, 용왕각 등을 완공한 후 2018년 요사채를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반룡사에는 경상북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산 반룡사 화문면석 부재 10여 점이 보관되고 있다. 이 밖에도 1741년 조성된 종형 부도 1기가 유존하고 있다.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전1길 60

백련사(제천)
역사관광충청북도

백련사(제천)

백련사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감악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상이 백련암으로 창건했으며 고려와 조선 때 여러 차례 중수, 중창하고 1910년 주지 윤인선이 산성 안인 현 위치로 옮겨 중창하고 백련사라 개칭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강당,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가파른 자락에 높은 석축을 쌓아 사역을 조성하였는데, 일주문이자 요사채인 보응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극락전을 중심으로 중정을 만나게 된다. 중정에는 오층석탑과 석등을 중심으로 대웅전이 남향하고 있으며, 좌우로 주지스님의 거처인 무염당과 보응문이 ‘ㄷ’ 자형의 구조로 배치되어 있다. 이외 보응문 외곽으로 삼성각이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무염당 뒤쪽으로 거사들의 요사채와 공양간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9년 중건되었다. 내부에 석가모니불 좌상을 모시며, 불상 뒤에는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걸려 있다. 불상은 조선시대 유물로 목조이며 높이 75cm, 어깨너비 45cm이다. 이 밖에 신중탱화와 나한을 그린 벽화 4점이 있다.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62년에 세워졌다. 축대 남쪽으로는 넓은 계곡이 있는데 이곳이 연지였다고 하며 키가 큰 갈대가 숲을 이루고 있는 습지대이다. 사역 내에서는 조선 시대의 기와류와 토기 편, 백자 편이 수습되었다. 가람은 오솔길을 따라 축대를 지나 청정 약수가 있는 수곽과 만나게 되며, 이곳을 지나 천연 암벽을 치석한 아치형의 석문을 통과하면 가람의 입구에 들어서게 된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있어 오르기 힘들지만 가볼 만한 사찰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암로5길 414

백련사(강북)
역사관광서울특별시

백련사(강북)

백련사[白蓮寺]은 서울시 강북구 수유 4동 산 127-1번지 삼각산에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북한산 첩첩산중에는 많은 사찰들이 자리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가 하면 터만 남아 이름을 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찰의 역사가 오래되었건 되지 않았건 모두 부처님의 연화도량임에는 변함이 없음이다. 4·19 국립묘지에서 대동문으로 오르는 등산로 가에는 작은 가람이 자리하고 있다. 백련사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작은 사찰이지만 80여 년 전인 1930년 이은순여사가 지극한 신심으로 창건한 곳이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면서 수행과 포교의 도량으로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있는 듯 없는 듯 항상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법 등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4.19로20길 142 (수유동)

백련사(용인)
역사관광경기도

백련사(용인)

용인 향수산 중턱에 위치한 백련사는 용인시에서 가장 오랜된 사찰로 백련암이라고도 부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801년(통일신라 애장왕 2년) 신응선사가 창건하였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지장전, 나한전, 요사채, 삼성각 등이 있다. 특기할 만한 문화재는 없고, 무학대사가 조성했다는 나한상은 모두 화강암으로 기법이나 조형이 특이하다. 또 현재의 요사채는 원래 법당으로 사용하였던 건물인데 1960년대까지는 요사채와 대웅전의 용마루에 고려 때부터 전해오던 청기와가 1개씩 얹혀 있었다고 하나 그 뒤 모조품으로 바뀌었다. 이 밖에 사찰 북쪽에는 수경당과 도원의 부도가 있는데 높이 132cm의 석종형 부도로서 조선 중기의 작품이다. 산신각 앞 석단에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높이 66cm의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에버랜드와 호암미술관이 향수산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백련사는 에버랜드 정문으로 가다가 호암미술관을 조금 지난 곳에서 좌회전하면 오를 수 있다. 절에 오르는 길은 숲이 우거진 곳으로 풍경이 좋아 등산코스로도 제격이다. 마성IC에서 차량으로 약 12분 소요된다. 에버랜드와 호암미술관이 가까이 있으며, 인근에 경기도박물관, 경기도어린이박물관, 한국민속촌 등이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456번길 290

백운사(익산)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백운사(익산)

백운사는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소속 사찰이다. 창건 연대나 연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전하지 않는다. 다만 928년(신라 경순왕 2)에 승려 백양(白楊)이 지금의 위치에서 1.5㎞ 떨어진 산 위쪽에 창건하여 ‘법당산(法堂山) 혜정사(慧定寺)’로 사찰 이름을 붙여 부르다가 그 후 ‘백운암(白雲菴)’으로 불렸다는 사실만 전해지고 있다. 그 외의 연혁은 전하는 것이 없어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고, 이후 1956년 이종태가 중건하였다. 1988년 7월 22일 전통 사찰 제48호로 지정되었으며, 1991년 승려 우성이 중창을 한 뒤 1999년 10월 22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의 승인을 받아 ‘백운암’에서 ‘백운사’로 개명하였다. 백운사의 전각은 한글 현판이 이색적인데 대웅전 현판에는 ‘큰법당’, 일주문 현판에는 ‘천호산 백운사 해탈문’라고 한글로 쓰여 있다. 관음전 역시 한글 현판을 걸었다. 백운사 경내에는 대웅전인 큰법당을 비롯하여 관음전, 약사전, 삼성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배치되어 있다. 큰법당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약사전을 두고 남쪽에는 관음전을 배치하였으며, 큰법당 뒤쪽에는 삼성각이 있다. 큰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최근에 조성된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지장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삼존상을 봉안하고 있다. 큰법당 왼편에는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세워져 있는데 석가모니불, 아난존자, 사리불 존자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천호산길 155-23

백운사(의왕)
사찰경기도

백운사(의왕)

의왕시청 부근 백운산 서쪽 중턱에 있는 백운사는 조선 후기 청풍 김씨가 중건한 아담한 규모의 사찰이다. 최초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이미 존립하여 있었고 1894년(고종 31년)에 산불로 소실되었던 것을 이듬해인 1895년(고종 32년) 청풍 김씨 종중에서 현재 위치에 건평 20평 규모의 작은 암자로 중건한 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1955년에는 근대 한국 불교사를 대표하는 대선사인 금오[金烏]가 머무르면서 수행승들을 지도하였던 곳으로 유명하며, 1971년에 비구니 정화[貞和]가 법당을 확장, 개축하고 요사채를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 요사채, 해우소 3채의 건물이 있으며, 정기법회와 유아부∙학생부∙청년부 법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의왕IC에서 약 5분 소요된다. 인근에 청계산, 광교산, 백운호수, 롯데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 안양예술공원 등이 있다.

경기도 의왕시 왕곡로 323 (왕곡동)

사찰충청남도

백운사(보령)

백운사(보령)는 보령시 성주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공주 마곡사의 말사이기도 하다. 통일신라시대 무주 무염스님이 창건하였으며 당초에는 본산 이름인 숭암산을 따라 숭암사라고 불렀으나 이후 사찰이 높은 곳에 있어 흰 구름 속의 사찰과 같다고 하여 백운사로 명명되었다. 성주산과 심연동계곡 사이의 깊은 산 속에 있어서 수행과 명상을 하기에 좋은 곳이며,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목조보살좌상,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부도와 영식필산신도백운사본이 있다. 백운사는 심원계곡로를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주변에는 성주산, 심연동계곡 외에 보령무궁화수목원, 성주사지, 보령석탄박물관, 보령시청소년수련관, 성주면 소재지 등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심원계곡로 259-200

백운사(광양)
사찰전남광주통합특별시

백운사(광양)

백운산 해발 900m 높이에 위치한 백운사는 천혜의 기도처로 보조국사와 구산스님이 수행하셨던 상백운암, 하백운암을 일컬어 말한다. 보조국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하백운암과 백운암은 눌암스님에 의해 중건되었고 상백운암은 구산스님에 의해 중건되었다. 도선국사가 절터를 잡았다는 설이 전해 오고 있으며 말년에 은거하다가 입적한 곳으로 전해진다. 백운사에 오르는 동곡 계곡은 백운산 4대 계곡의 하나로 산이 높은 만큼 골이 깊고 길이가 10㎞에 달한다. 백운사까지 숲 사이로 난 길을 올라가면 잘 알려지지 않은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림을 끼고 있는데 900종이 넘는 나무와 풀이 자라 한라산만큼 다양한 식생이 존재한다. 백운사가 자리한 백운산은 지리산과 마주하고 있으며 지리산, 조계산, 무등산도 조망이 가능하다. 백운산의 정상도 좋지만 상백운암에서 시작되는 억새밭과 정상을 잇는 산길도 장관이다. 상백운암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멀리 광양 앞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옥룡면 백운사길 352

백운사(괴산)
역사관광충청북도

백운사(괴산)

백운사는 고려 27대 충숙왕(忠肅王) 8년(1321)에 창건되고 조선 영조(1725- 76) 때 폐사(廢寺)된 대흥사(大興寺) 옛터에 1930년 하장우(河長雨) 스님이 초막 4칸을 세우고 ‘백운사’라 이름한 사찰이다. 대흥사의 창건주는 미상이며, 구전에 의하면 이곳에서 기거한 스님들이 힘자랑을 하다가 살인을 했기 때문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백운사 창건 이후 수차에 걸친 화재로 소실과 중창을 거듭하였는데, 현재까지 대웅전, 요사채 등의 중건이 진행되고 있다. 백운사에는 1941년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이 발견되었으나 1965. 12. 4일 증평에 주둔한 군부대장 金某가 가지고 갔다고 하며, 1952년 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이 발견되었으나 1953년 분실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5기의 부도가 사찰 입구에 모셔져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로소매2길 125-146 백운사

백운암(충주)
역사관광충청북도

백운암(충주)

백운암은 1886년(조선 고종 23) 진령군 파평윤씨가 세운 법주사의 말사이다. 창건주 윤 씨는 본래 무당이었는데 임오군란이 일어나 명성황후가 장호원읍으로 피난 왔을 때 곧 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예언하여 진령군 여대감이라는 벼슬을 얻었다. 이후 꿈에 흰옷을 입은 철불이 나타나 지금의 자리에 절을 지으라고 계시하여 지은 절이다. 1977년 중창하였고 현존하는 건물로는 법당과 삼성각과 요사채 등이 있다. 백운암에는 철제 불상이 본존불로 안치되어 있는데, 철불상은 2006년 황금색으로 칠한 불상을 전면 보수해 금칠과 녹을 벗겨내 신라시대의 모습을 되찾았으며 충주지역 철조 공예술과 불교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내창로 617-80 백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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