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42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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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버덩
바람의핫도그 본점 뒤편에 위치한 노랑버덩은 사장님께서 거제 여행객들에게 소소한 여행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수 가꾼 정원이다. 노랑버덩이라는 명칭답게 입구부터 노란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의자와 울타리, 바위 모두가 노란색으로 되어 있으며 곳곳에 다양한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수국이 피어나는 시기에는 수국 포토존 떠오르고 있다.
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다대5길 13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충청남도 홍성군 용봉산에 있는 불상으로 돌출된 바위면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돋을새김으로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다. 얼굴은 몸에 비해 크고 풍만하며 잔잔한 미소가 흘러 온화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목 밑에서는 굵직한 몇 가닥의 선으로 표현되었지만 아래쪽은 가느다란 선으로 도식화되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파낸 바위면을 이용해 희미한 음각선으로 윤곽만을 나타냈다. 전체적으로 얼굴 윗부분은 입체감이 있고 원만한데 비해 아래로 내려갈수록 양감이 약해져 균형이 깨지고 있는 작품으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신경리

라테라스 윈터빌리지 어드벤처
라테라스 윈터빌리지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에 위치한 테마파크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 놀 거리를 만날 수 있다. 라테라스 리조트 일대를 감싸는 유럽 크리스마스의 재현된 모습과 크리스마스 기차, 회전목마, 아이스 링크 등 다양한 체험시설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일정시간 동안 인공눈이 내리는 이벤트를 제공하여 마법 같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돌산읍 진모1길 29-12

문수암
문수암은 진천의 미륵산 중턱에 구불구불 이어진 길 끝에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체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사찰이다. 근처에 천안과 진천을 오가는 국도가 조성되어 있어 쉽게 만성사에 갈 수 있다. 문수암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미륵산에 자락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6 교구 마곡의 말사이다. 새로 세울 당시 이름은 만성사였으나, 1992년에 조계종으로 종파가 바뀌면서 사찰명이 문수암으로 바뀌었다. 만성사라는 사찰명은 수많은 사람이 성인이 되기를 축원한다는 의미로 명명된 것이라 한다. 이곳 산봉우리에서 석불입상이 발견되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만성사가 창건되게 되었다. 석불은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최소한 고려 초에 사찰이 경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이 사찰이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석불만이 자리를 지키며 일반인의 예불 대상으로 계속되었다. 1960년대에 외롭게 산을 지키고 있던 불상이 인연이 되어 석불인 지암리 석조여래 입상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새롭게 사찰을 조성했다. 정면 2간, 측면 1 간이었던 작은 법당을 새롭게 중창하여 사찰의 면모를 새롭게 갖추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금사로 252-106
만어사
해발 674m인 만어산 8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만어사는 가락국 수로왕이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고대 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뒷받침해 주는 전통사찰로 많은 전설과 갖가지 신비한 현상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오랜 가뭄이 지속되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영험이 있었다고 하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세상에 전해오기를 신라왕의 공불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려 명종 10년(1180)에 처음 건립하였고, 삼층석탑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 탑상편에는 만어사의 창건과 관련된 기록이 있으며, 양산지역 옥지라는 연못에 독룡 한 마리와 다섯 악귀가 서로 사귀면서 농민들이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치는 등 온갖 행패를 부렸다. 수로왕이 주술로 그들을 제거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여 이들로부터 오계를 받게 하였다. 이때 동해의 수많은 고기와 용들이 불법의 감화를 받아 이 산중으로 모여들어 돌이 되었는데, 이들 돌에서는 신비로운 경쇠소리를 났다. 수로왕은 이를 기리기 위해 절을 창건하고 불법의 감화를 받아 돌이 된 고기떼의 의미를 살려 이름을 만어사라 칭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만어사 앞에 있는 돌을 두드리면 맑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하며 경상남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 밀양시 문화관광)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만어로 776

망경암
망경암은 전통사찰 74호로 성남에서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가장 좋은 영장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고려말부터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임금이 친히 들러 나라의 번영과 백성들의 안녕을 빌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망경암에 오르면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을 볼 수 있다. 이 마애여래좌상은 망경암(望京菴)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이다. 조각 기법이 투박하고 불상이 갖추어야 할 여러 요소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으나 불교사적으로 의미를 갖는 장소에 모셔진 조선 후기의 마애불로서 자료적인 가치가 있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로55번길 72 (복정동)

망월사(경기 광주)
망월사는 남한산성 내 가장 오래된 고찰이다. 다른 사찰이 조선 인조 때 남한산성을 축조하면서 건립한 것과 달리,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한양의 장의사를 허물고 그곳의 불상과 금자화엄경[金字華嚴經], 그리고 금정(금솥) 1좌를 이곳으로 옮겨 화엄종 사찰로 창건했다. 넓은 대지에 창건됐던 망월사는 임진왜란 이후 승병대장의 지휘소 역할을 했는데, 군사적·역사적 중요성으로 인해 오히려 1970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되는 아픔을 겪었다. 남한산성 내에는 행궁, 사장대와 9개 사찰이 있었다. 망월사는 산성의 승병을 관할하던 절이었다. 국가와 산성을 수호하던 9개 사찰은 일본군에 의해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1907년 8월에 장경사 요사채 일부만을 남겨두고 모두 전소되었다. 1981년 성법스님이 인도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기증받고 모실 곳을 찾던 중 망월사에 인연이 닿았다. ‘이곳에 부처님 사리를 모셔야겠다.’라는 발원으로 각종 규제로 묶인 개발제한구역에서 사리를 모시기 위한 성법스님의 구법행이 담긴 사찰이 망월사이다. 망월사는 산성 동문에서 북으로 난 길을 따라 200m 정도 올라가다가 장경사와 갈라지는데 길 왼편에 위치하고 있다. 1984년 동국대 발굴조사단장인 문명대 교수가 발굴을 시작했으며, 1990년 조사보고서를 발행하고 본격적인 복원불사를 시작했다. 경기도 기념물 제111호로 지정된 망월사는 높게 쌓아 올린 석축 위로 대웅보전, 극락보전이 나란히 서 있는 고려시대 양식이다. 어느 곳에서나 아름다운 자연석으로 쌓은 석축을 만날 수 있는데, 이 돌은 사찰터에 흩어져 있던 것이다. 당시 사찰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대웅보전 후불탱화와 신중단은 화려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양각 양식의 불보살님이 조각되어 있다. 또 대웅보전 오른편으로 넓은 창문이 있어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석탑을 보며 기도를 올릴 수 있도록 했다. 불사리탑은 인도 간디수상으로부터 성법스님이 직접 전해받은 부처님 사리를 모셨는데, 13층의 다각다층석탑으로 월정사 석탑의 양식을 따왔다. 산신각도 특이하다. 대웅보전 뒤편 길을 따라 오르면 나오는 산신각은 자연동굴에 호랑이를 타고 있는 산신할아버지를 조각해 모셨다. 화려한 단청을 자랑하는 범종각도 세월을 머금으며 문화유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찾는 사람이면 꼭 둘러봐야 할 곳이 망월사이다. 남한산성의 사찰 가운데 현재 4곳이 복원되어 있는데, 망월사는 인근에 있으면서도 가람배치나 건축양식이 전혀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산세에 따른 가람배치 형태가 다르기 떄문이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680

망월사(경주)
망월사는 경주시 배동에 자리한 대한불교원효종 소속 사찰이다. 대한불교원효종의 중요한 사찰로 꼽힌다. 대한불교원효종은 우리나라 18개 불교 종단 가운데 하나로 신라의 원효스님을 종조로 하여 1963년 경주에서 해인스님이 대한불교원효종 포교원을 창종하고 해인스님이 초대 종정이 되었다. 그 뒤 1967년 8월 망월사가 본원이 되었으며, 1977년 12월 대한불교원효종이 되었다. 현재 총무원은 서울 안양암에 있고, 주요 경전은 원효종성전인데 1967년 망월사에서 발간되었다. 오랜 역사와 위상에 비해 소박한 사찰이며 대웅전, 요사채가 있으며 연못 안에 놓인 불탑인 연화탑이 인상적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포석로 682-17 (배동)

망일사(서산)
망일산 망일사는 서산이 서해의 바닷가에 위치한 갯마을임을 깨닫게 해주는 사찰이다. 그만큼 망일사는 서쪽 바닷가에 외따로 위치한 한적한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서해에서 해를 바라볼 수 있어 또 다른 시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날씨도 스산한 12월 한 겨울의 해 질 녘에 찾아간 망일사는 서해바다에 뉘엿뉘엿 잠기듯 지는 해를 듬뿍 받아 부처님의 불신(佛身) 마냥 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며, 서쪽을 향해 있어서 겨울의 추위가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고 손을 연신 호호 불면서 부처님이 계신 절집을 바라보게 만든다. 대웅전을 비롯한 절집들은 서해의 기운을 담뿍 받기 위해 서쪽을 향해 서 있으며, 그곳에 칠해진 단청의 빛깔은 원래의 색 대신 노을빛을 받은 색다른 색으로 바뀌어 무한한 부처님의 공력을 느끼게 만든다. 대신 아침의 망일사는 서쪽 절집이어서인지 해가 늦게 뜨고 그래서 서늘한 푸른빛과 추위를 많이 느끼게 한다. 절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이 경내 앞마당에는 수령 700년의 괴목이 서 있다. 사찰의 역사를 말없이 대변하고 있는 나무는 모진 서해바다의 모든 것을 오랜 세월 지켜보면서 망일사를 망일사답게 해 준다. 사람은 가도 나무는 남아서 이곳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을 여전히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이들 나무들은 대웅전 앞에 서 있는 뒤틀리며 용트림하는 오래된 고목을 통해 사찰이 겪었을 긴 세월에 걸친 영욕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다. 망일사에서 서해의 해를 바라보고 싶다면 대웅전 마당 앞 나무에 기대어 서거나 혹은 이 절집에서 그나마 오랜 역사를 지닌 망로정에 올라 내려다보길 권한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서해바다가 그대로 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좀 더 오래 사찰에 머물러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면 붉은 노을빛이 서해바다를 물들이는 것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절집, 서쪽 바닷가에서 해를 바라보이는 산에서 해를 바라볼 수 있는 사찰이 바로 망일산 망일사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망일산로 831-134

망해암
망해암은 1940년대에 편찬된 「봉은본말사지」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의 원효대사가 처음 세웠다고 한다. 이후 망해암에 관한 기록은 조선 전기부터 나타난다. 용화전의 석불 입상에 ‘성화 십오년 사월 일 조성(成化十五年 四月 日造成)’이라고 새겨져 있어서 이 불상이 1479년(성종 10)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영조 때에 펴낸 「여지도서」, 18세기에 신경준이 쓴「가람고」, 그리고 「승정원일기」 1843년(헌종 9)기록에도 ‘관악산 망해암’ 등의 내용이 있다. 망해암은 1803년(순조 3), 1863년(철종 14)에 중창하였으나, 1922년 화재로 모두 불타 다시 건립하였다. 현재의 망해암은 한국전쟁으로 불에 타버린 것을 천불전과 지장전 등을 추가하여 중창한 것이다. 망해암이란 ‘바다를 볼 수 있는 암자’라는 뜻으로, 이곳에서 아름다운 서해바다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각박한 도시 일상을 벗어나 나만의 고즈넉한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임곡로 245

모은암
모은암의 전설은 지리산 하동 화개의 칠불암 전설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곳이다. 김해시 상동면과 생림면의 경계에 위치한 무척산은 수로왕과 가락국 불교 이야기, 기묘한 바위, 산정호수인 천지(天池)가 있어 더욱 신비스러운 산이다.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동면의 기암절벽 아래에 백운암이 있으며 반대쪽인 서면에 모은암이 자리하고 있다. 무척산은 김해에서 밀량 삼량진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데, 생림면 생철리 산불감시초소 옆 간이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석굴암을 거쳐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30분 남짓 오르면 도로가 끝나는 지점 바로 위 모은암이 나온다. 가야 불교를 일으킨 가야국은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세운 고대국가이다. 김수로왕은 인도에서 배를 타고 온 허황옥과 결혼, 열 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중 일곱왕자가 성불, 지리산의 칠불사를 창건하게 됐다. 지리산의 칠불사가 왕족의 해탈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김해 무척산의 모은암은 왕가의 번성을 상징하는 자연 남근석이 암자 바로 옆에 우뚝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모은암 경내 동굴에도 남근을 상징하는 닝가가 모셔져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마사로 36-228

묘각사(영천)
묘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소속 사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이전까지의 기록은 없다. 용왕과 관련한 사찰이라 이곳에서 용왕제(龍王祭)와 기우제(祈雨祭)를 자주 지냈다고 한다. 절의 부근은 예로부터 불교 신앙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절의 뒷산은 보현보살이 머무른다는 보현산이며, 기룡산 아래에는 용화·삼매·정각 등 불국 정토를 나타내는 마을 이름들이 많다. 창건 당시 동해 용왕이 의상에게 법을 듣기 위하여 말처럼 달려왔다고 해서 절이 들어선 산 이름을 기룡산(騎龍山)이라 했다고 한다. 의상이 법성게(法性偈)를 설하자 용왕이 문득 깨닫고 승천하였는데, 이때 용왕이 하늘에서 감로(甘露)를 뿌려 주어 당시 극심했던 가뭄을 해소하고 민심을 수습했다. 이에 의상이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묘각사라 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며, 1644년(인조 22) 설선당(說禪堂)을 지어 중창하였다. 1657년에 요사를 중창하였는데 지금은 설법전이다. 1760년(영조 36)에 삼성(三性)이 중창하였고, 1889년에 법당을 중수하였다. 1994년에 진광(眞光)이 산신각을 지었다. 1999년 아미타삼성전을 복원하였다.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화길 499

묘심사(부산)
묘심사는 1888년 지금의 서구 토성동에서 대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임제종 포교당으로 기능했다. 일본인이 사찰을 운영하다가 해방 후에 기독교인에게 팔리기도 했는데, 당시 몇몇 신도가 성보들을 현재의 사찰 자리로 옮겼고 1960년대 무렵 관음보살좌상과 지장보살좌상, 그리고 범종과 종각 등을 가지고 와서 묘심사로 다시 창건했다. 묘심사는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변에 위치하는 도심 속 사찰이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삼성각, 종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익공식 팔작지붕이다. 대웅전에는 금동 석가여래 좌상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좌우 협시하고 있다. 또 1946년 제작한 지장시왕도와 신중도가 있다. 대웅전 옆으로 유리 보호각을 둘러 씌운 지장보살 입상이 동자를 안고 서 있다. 그 뒤편 계단 위로 삼성각이 자리한다. 삼성각 내에 칠성도, 산신도와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높이 30㎝의 돌좌상이 있다. 지장보살 입상 옆으로 ‘ㄱ자’의 현대식 요사채가 있다.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671

묘적사
묘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가사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이를 고증할 만한 기록이나 유물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묘적사에 관한 문헌기록으로는 『세종시록』, 『연산국일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이 있으며, 이 문헌들에 묘적사는 조선 초기에는 그 사격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대웅전 앞의 팔각칠층석탑 또한 그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 묘적사는 창건 뒤 조선 초기까지 폐허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세종 때 학열스님이 180여 칸을 지으며 중창하였고, 남북 군영을 세워 무과 시험장으로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절에서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묘적사는 본래 국왕 직속의 비밀 기구가 있던 곳으로, 이곳에 일종의 왕실 신하 비밀요원을 훈련시키기 위한 사찰을 짓고 선발된 인원을 승려로 출가시켜 승려 교육과 아울러 고도의 군사훈련을 받도록 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두 차례는 잘 막았으나 마지막 한 번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완전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에서 동쪽으로 약 20m 떨어진 곳에는 이제면이라는 사람의 묘와 묘비가 있어 이를 통해 묘비가 세워졌던 1720년(숙종 46) 무렵에는 절이 거의 페허화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묘적사가 다시 중건되는 시기는 19세기로 절에 남아 있는 기록 중 『묘적산산신각창건기』에 따르면 1895년(고종 32)에 규오 법사가 산신각을 중건했다고 한다. 그 뒤 1969년에 화재로 대웅전, 산신각 등이 소실되었다가 1971년 자신스님에 의해 대웅전과 요사가 중건되었다. 이후 1976년에 다시 대웅전을 비롯해 관음전과 마하선실을 중건하고, 1979년과 1984년에는 나한전과 산령각을 각각 건립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수레로661번길 174
무량사(고양)
경기도 고양시 무량사는 북한산성 입구인 대서문 안쪽에 위치해 있으며, 고종의 후궁인 순빈 엄씨와의 인연으로 사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순빈은 지금의 무량사 자리에 산신각을 짓고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를 모신 뒤 백일기도를 올려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이 아들이 바로 영친왕 이은(1897~1970)이다. 이런 이유로 이 절은 순빈의 원당이 되었으며, 일반인에게는 백일기도를 올리면 소원을 들어주는 사찰로 알려졌다. 현재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는 약사전에 모셔져 있다. 북한산성의 방어를 위하여 승병을 주둔시켰던 승영사찰은 아니지만, 1900년 전후에 제작된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어 경기도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184 (북한동)

무봉사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통도사의 말사로, 773년 법조스님이 현재의 영남루 자리에 있었던 영남사를 순례하다가 큰 봉황새가 현재의 무봉사 자리에 날아와 앉으므로, 상서로운 성지라 생각하고 무봉암을 창건하였다. 고려의 고승 범률국사가 이 절에서 하안거를 하면서 봉황이 춤추는 형국이기 때문에 절 이름을 무봉사로 하였다고도 한다. 1359년 영남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무봉암이라 하였던 이 절을 무봉사로 승격시켰다. 무봉사는 밀양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밀양 최고의 명소 영남루와 인접한 탓에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밀양강 상류 쪽 절벽 위에 아랑의 전설이 깃든 아랑각이 있고, 계단을 올라서면 우리나라 3대 누각 중의 하나인 영남루와 무봉사가 있다. 무봉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인 무봉사 석조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무봉사 인근에는 영남루와 밀양 박물관, 아랑각, 박시춘 생가지 등을 함께 둘러볼 수 있으며, 밀양강 아래로 펼쳐지는 대나무 숲과 강가 맞은편 공원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 영남루1길 16-11 (내일동)

무진암(부여)
무진암의 소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리 만수리 125번지이다. 무진암은 비구니 스님의 정갈함이 묻어나는 작은 비구니 암자로, 아름다운 사찰이다. 무진암으로 오는 도중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소나무가 마치 산개와도 같은 모습으로 서 있어 눈길을 끈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인 무진암은 남쪽을 향해 햇볕이 잘 드는 양지에 있으며, 야트막한 만수산의 줄기를 따라 비교적 평평하고 너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깨끗한 만수산의 자연을 닮아 사역 전체가 맑으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최근에 불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제법 규모가 큰 대웅전이나 삼성각과 함께 여러 채의 요사를 갖추고 있다. 무진암 인근의 사찰 무량사는 부여에서 가장 큰 절로 외산 만수산 기슭, 소나무가 울창하고 물이 넉넉하게 흐르는 숲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절은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 하며, 고려 때 크게 융성했고 임진왜란 때 불탄 후 조선 인조(1636~1646) 때에 재건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181-17
문성암
대한 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이다. 과거 운흥사와 관련된 문수암이 위치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에 1987년 다정스님이 문성암을 창건하였다. 2층 건물의 구조로 1층은 종무소로 사용하며 2층은 참회전이라 하여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외 백호선원, 지장전, 문수선원 등의 건물이 있으며 지어진지 오래되지 않았고 다른 사찰과는 달리 단청을 칠하지 않아 정갈하고 고요한 느낌을 준다. 문성암이라는 이름대로 글을 매우 잘 하는 사람이 출현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사찰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문수는 문수대성(文殊大成)이며 여기에서 문성(文成)을 따서 암자의 이름을 지었고, 문수가 지혜를 의미하기 때문에 선원 터로 적합하다고 여겼다고 하며, 문수보살이 화현한 터라고도 한다. 문성암을 세운 다정스님은 죽림사와 운흥사를 오가며 수행할 때 문성암 앞의 커다란 소나무를 보고 사찰이 있을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또 운흥사 초가에서 기거할 때 스님이 문성암 쪽에서 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꿈을 꾸고 절을 짓고자 결심하였다. 처음 터를 닦을 때 같이 일을 하던 보살이 꿈을 꾸었는데 불이 나서 그 불길이 하늘을 태웠다고 하는 길몽을 꾸었다고도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다도면 암정로 325-37

문수사(김제)
문수사는 백제무왕 25년(서기 623년) 혜덕왕사가 문수보살의 현몽으로 문수골에 창건하고 사찰 이름을 문수암이라 칭하였다. 그 후 서기 950년에 화재로 건물 등은 소멸되고 문수암 현판만이 현재 사찰의 부지인 장소에 날아와 떨어졌다고 한다. 현 소재지에 건립하라는 지시 인가 하여 서기 957년 고려 광종 8년에 혜림왕사가 현 장소에 중창하였다. 전 문수골과 현재 장소의 거리는 350m이고, 날아온 현판은 현재 보존하고 있으며 필적은 신필이라고 한다. 문수사 도량 앞마당과 관음전옆에는 느티나무가 있으며, 이 고목은 명칭 귀목이라 하는 글자 그대로 귀한 나무이다. 이 나무는 705년(서기 1202년)에 수도승이던 무불스님이 이곳에 왔다 가는 표적으로 심었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황산5길 158 (황산동)
명상정원
명상정원은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호수인 대청호 주변에 조성된 대전시 동구를 대표하는 관광명소이다. 대청호 오백리길 4구간 호반낭만길에 위치해 있으며, 어린이, 노약자 등도 쉽게 산책할 수 있는 무장애 데크길이 이어져 있고 정원 내에 산책로, 전망 데크, 전통담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대청호의 풍경을 더 가까이서 감상하기 위해 만든 휴식과 힐링의 공간으로 대청호의 풍경, 나무와 풀꽃들이 어우러지는 고즈넉한 명상정원에 머무르다 보면 공원 이름처럼 자연스럽게 명상에 빠지게 된다.
대전광역시 동구 추동
예산 삽교읍 석조보살입상
2개의 돌을 이어서 조각한 석불이며 예산군 수암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이는 5.3미터에 이르고, 조각 돌은 흑운모 화강암이다. 남쪽 약 0.2도 기울어져 있으나, 불안정하지는 않다. 머리에는 두건 같은 관(冠)을 쓰고 있고, 그 위에 6각으로 된, 갓 모양의 넓적한 돌을 올려놓았다. 몸체는 돌기둥처럼 양감이 전혀 없다. 목이 부러져 있었던 것을 시멘트로 붙여 놓았다. 왼손은 몸에 붙인 채 아래로 내렸고,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지팡이 비슷한 것을 잡고 있는데 양 발 사이로 길게 내려온다. 이 지물을 석장(錫杖)으로 보고 이 보살상이 지장보살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거구이면서 양감 없는 돌기둥 형태, 간략한 신체 표현 방법 등이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과 유사한데, 이는 고려시대 이 지역 석불 특유의 양식이다.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도청대로 835-43

호떡골목
1945년에 형성되어 제주에서 제일 크고 오래된 시장인 동문재래시장에는 그 세월만큼이나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호떡 골목이 시장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제주 도민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이곳에서 따뜻한 호떡을 먹은 추억 하나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호떡 골목은 동문재래시장 1번 게이트 입구에서부터 왼쪽으로 길게 줄지어 가게들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시장이 처음 생길 때부터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가게부터, 빙떡, 쑥 호떡을 곁들여 파는 가게, 푸짐한 잡채가 한가득 들어간 잡채 호떡, 이색적인 다금바리 빵까지 조금씩 다른 콘셉트의 호떡으로 입맛 따라 취향 따라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동문로 16 (일도일동)

제동목장 입구
제동목장은 한진그룹에서 운영하는 제주도 목장으로 한국마사회에서 운영하는 렛츠런팜 목장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제동목장은 사유지이기 때문에 목장 출입은 불가능 하나, 최근 제동목장 진입도로가 제주도 결혼사진 촬영 명소로 널리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인생사진 명당이 됐다. 제동목장 입구에는 거대한 삼나무가 도로 양쪽으로 빽빽하게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고,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비 오는 날에도 이곳만의 특별한 분위기에서 기억에 남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제동목장 입구는 주차 공간이 없기 때문에 삼다수숲길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서 이동하는 것을 권장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교래7길 218

열린송현 녹지광장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있는 공간으로, 경복궁과 종로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광장이다. 송현동 부지는 일제강점기 식산은행 사택, 해방 후 미군 숙소, 미대사관 숙소 등으로 활용되어 오다가 1997년 우리 정부에 반환되었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쓰임 없이 폐허로 방치되어 높은 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2022년 7월 한국주택공사로 소유권이 넘어오고 서울시로 다시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쉼과 문화가 있는 열린송현 녹지광장으로 단장하고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높이 4m 담장에 둘러싸여 오랜 기간 닫혀있던 공간은 돌담을 낮추고 야생화로 어우러진 녹지로 조성하였다. 이로 인해 율곡로, 감고당길에서 드넓은 녹지광장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돌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광장 중앙에 서울광장 잔디보다 넓은 중앙잔디광장이 펼쳐진다. 광장 주변으로는 코스모스, 백일홍과 같은 야생화 군락지가 조성되어 있다. 경복궁과 북촌은 송현동 부지가 열리면서 광장 내부로 난 지름길로 연결된다. 광장을 가로지르며 걷다 보면 청와대, 광화문광장, 인사동 그리고 북촌 골목길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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