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40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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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사(순창)
구암사는 백제 무왕 35년(634) 숭제법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 태조 원년(1392) 각운선사에 의해서 중창되었다. 무학대사가 구암사를 방문했을 때 마치 붓처럼 우뚝 솟은 문필봉을 가리키며 후세에 선승과 문인이 많이 배출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이 예언과 같이 후대에 석전 박한영을 비롯한 불교계의 많은 지도자들이 구암사에서 배출되었다. 구암사에는 전북특별자치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조선 태조 원년(1392) 무학대사 자초의 방문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로 추정되며, 조선 왕조의 번창과 태조의 안녕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구암사 일대와 주변의 숲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은행나무는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보물로 지정된 월인석보 권15도 발견되었는데, 완전한 상태로 전존되는 판본이 없었다는 점에서 초간본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1998년에 소개된 바 있는 성암본이 모두 30장에 불과한 점으로 보아 구암사본은 비록 앞뒤의 표지가 결락되어 있으나, 본문에는 낙장이 전혀 없는 완전한 상태이다. 월인석보 권15는 완전한 초간초쇄본이라는 점에서 그 진가가 높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
구절사
구절사는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 구절사는 옥천의 상동 부락 서북쪽에 우뚝 솟아있는 식장산 영축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구절사는 조선 태조 2년, 1393년에 무학대사께서 최초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전의 사명은 영구암이었는데 이는 영축봉의 동쪽과 서쪽의 두 정상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놓여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탑 사거리에서 구절사까지는 좌우에 수많은 아카시아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 나무들은 5월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향기가 온 천지를 감싸는 아카시아 꽃길을 이룬다고 한다. 이 사찰은 어느 순간 폐사되었으나, 1933년에 절 아랫마을의 한병석이 이곳에 참배하러 왔다가 중건했다. 이후 사찰의 명칭이 구절사로 바뀌게 되었는데, 절 뒤에 있는 영축봉을 구절산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충청북도 옥천군 상중길 226 문화재(전통사찰-구절사)

구절암(홍성)
굽이굽이 산 길 따라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대숲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사찰, 구절암을 찾는 길은 산이 높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구불구불 꺾이는 산길을 지나 산사를 찾는 마음이 바쁘지만, 이정표도 없고 길을 물어볼 사람조차 발견할 수 없다.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한 산사를 이렇게 찾기 힘든 것처럼 구도의 길 또한 그만큼 멀고 험한 것이 아닌가 싶다. 구절암 가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길이다. 지나가는 사람 한 명도 만날 수 없는 인적 드문 시골길. 봄바람이 살랑살랑 귓불을 간질이고 작은 바람에도 대밭의 댓잎들이 서로 비비면서 내는 소리가 싱그럽다. 봄을 준비하고자 두엄용으로 뿌려놓은 쇠똥 냄새가 시골 내음으로 다가오고, 멀리서 밭을 돌보는 농부의 손길이 무척 바쁘다. 그다지 멀지 않은 절까지 가는 길이 유난히 험난한데, 어느 정도 가면 이제 가파른 경사길이 나오지만 절은 아직도 멀었다. 낮은 하늘 아래에 위치한 사찰이지만 아득하고 멀기만 한다. 이렇게 찻길이 꼬불거리고 가팔라 힘이 들고 절을 찾아가야 하는 마음은 바쁘며, 또 갈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산사에 도착하자마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구절암이 멀리서 보이게 되면 좌우에는 크고 작은 돌을 손 닿은 대로 올려 마치 탑처럼 쌓아놓은 것과 만나게 된다. 이제 굽이굽이 복잡하고 험난한 길을 지나 드디어 구도의 길을 찾아가듯 힘들었던 구절암에 도착하게 된다.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거북로218번길 163
국녕사(고양)
북한산성 가사당 암문 아래에 자리한 국녕사는 1713년 승병의 군영이라는 목적으로 창건된 사찰로 1711년에 북한산성 축성 이후 산성의 수비를 위해 창건한 13개 사찰들 중 하나이며 86칸 규모로 승려 청휘와 철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승군들은 북한산성 수비와 관리를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승군이 머무를 수 있는 도량은 필수적이었다. 창건 이후 국녕사는 갑오경장으로 의승군이 폐지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나 이후 노역에 지친 많은 스님들이 떠나게 되어 한국전쟁 이후까지 폐허로 남게 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국녕사가 편안하면 나라가 편안하다’라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보경 스님에 의해 법등을 다시 밝히게 된 국녕사는 1991년 화재로 소실이 되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지금의 국녕사는 1998년 폐허를 딛고 가람을 중창한 것이어서 예전의 모습은 찾을 길 없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268 (북한동)

국청사(부산)
국청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선 숙종 29년 금정산성 축조와 함께 중수하여 이름을 국청사라 칭하고 순조 26년의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청사지(國淸寺誌)에 '국청사에는 동래 부사 송상현, 부산진 첨사 정발, 다대포진 첨사 윤흥신 등과 함께 승장 만홍, 정안, 성관, 관찰 등 수백 명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고 있다.' 라는 기록이 있음을 비추어 볼 때 임진왜란 때 이미 의승군의 숙영지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703년 금정산성이 개축되면서 국청사와 해월사(海月寺)를 지었다. 국청사는 최근 들어 중창을 거듭하였다. 1978년 삼성각을 지었고, 1982년 승려 창봉과 혜성이 경내에 있는 연못 중앙에 3층 석탑을 조성하였다. 1992년 대웅전을 지었고, 1998년 요사를 지었으며, 2010년 일주문을 건립하였다. 국청사에는 조선 시대 승병장이 사용하던 금정산성 승장인이라는 철제 도장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자료를 통해 승군 작대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국청사와 해월사 모두 산성을 방어했던 호국 사찰로, 국청사에는 산성을 지키는 승병장이 거주하여 전략 기지의 역할을 한 의승군의 사령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문로 42
귀정사(남원)
귀정사는 백제 무녕왕 15년(515년)에 현오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본래는 만행사(萬行寺)라 불렸다. 이후에 백제의 왕이 절에 참배를 와서 고승(高僧)의 설법에 탄복하여 3일간 절에 머무르며 국정을 살피고 돌아갔다 하여 귀정사(歸政寺)라 고쳐 불렀다. 왕은 “죽고 살기를 스님과 더불어 같이 한다”는 글귀를 남겼다고 한다. 1221년 대방(남원의 옛 이름) 태수 복장한(卜章漢)의 요청으로 귀정사에 제2의 백련결사를 개설했다. 고려 목종 5년(1002년) 대은스님이 크게 중창하였고, 조선 세조 14년(1468년)에 낙은스님이 각각 두 차례에 걸쳐 크게 중창하였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모두 소실됐다. 현종 5년(1664년) 설제대사가 비교적 옛 모습대로 고쳐졌고, 순조 4년(1804년)에 현일대사가 다시 보수하였으나, 우리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와중에 옛 건물이 모두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옛 귀정사에는 법당, 정루, 만월당, 승당, 연화당, 삼광전, 문수전, 명월당, 시왕전, 향로전, 영당의 전각이 있었으며, 부속 암자로는 남암, 상암, 대은암, 낙은암 등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귀정사에 살던 스님들이 모두 흩어지자 만공스님이 큰 법당에 모셔졌던 삼존불상을 충청도 수덕사 대웅전으로 옮겼고, 지금도 그곳에 모셔져 있다. 1968년 유정동 스님이 보광전, 승당, 요사채를 복원하였다. 2006년부터는 새로운 대승불교운동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의 터전이 되면서 중창불사가 시작되어 보광전 개축, 만행당, 관음전, 산신각, 종각 등을 새로 건립하였고, 인드라망 수련원, 만행산 귀농학교, 숲살림원, 사회연대 쉼터 인드라망 등이 운영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2길 246
극락사(경기)
경기도 광주시 백마산 중턱에 위치한 극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말사이다.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624년 남한산성 축조에 동원된 의승들이 거주하던 사찰이라고 한다. 그 외에 승려들을 수용하기 위해 장경사를 비롯한 7개의 사찰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극락보전, 삼성각밖에 없어 절의 규모는 작은 편이나 주전인 극락보전 안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광주 극락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이 있다. 석조지장보살좌상은 조선시대의 지장보살상으로, 높이가 47cm 정도인 작은 상이다. 가부좌한 다리 위에 양손을 포개어 놓은 선정인의 손 모습을 하고 있다. 보주를 받들기 위해 선정인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민머리의 승려형 보살상으로 둥근 얼굴에 양 볼이 통통하며 얼굴 중앙의 코가 오뚝하다. 코 좌우의 두 눈은 가늘고 길며 살짝 다물고 있는 입에는 미소가 감돌아 온화한 인상을 자아낸다. 가슴에는 치마단이 수평으로 걸쳐져 있고, 이를 묶은 매듭이 반원형의 곡선을 그리며 좌우로 늘어져 있다. 또한 다리 중앙에서 삼각형 모양의 옷자락이 길게 흘러내리는 표현되어 있는데, 이 부분들은 다른 불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경기도 광주시 양촌길 268-1 (양벌동)
극락암(강원)
극락암은 간성 대대리 검문소에서 진부령 방향으로 약 2키로 정도가면 우측에 이정표가 있다. 이 이정표에서 마을 안길을 통하여 산모퉁이 숲길을 지나면 어머니 품속을 연상케하는 아담하고 정겨운 사찰이 고즈넉이 노송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 극락암은 건봉사에서 서북쪽으로 2키로 지점에 있었으며,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였다. 945년 묘적동에 창건하였으며 1878년 산불로 인해 건봉사와 함께 소실되었으나 다음 해에 증건하였다. 일제때까지 산신각 1칸을 포함하여 총49칸으로 건봉사와 산내암자 5개중 가장 큰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50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함께 생활하던 수행처이자 봉명학교에 다니는 멀리서 유학온 여학생들의 기숙사로도 사용했다. 예전 그곳은 현재 민통선 내라서 출입이 불가능하고 건봉사 대웅전뒤 서북쪽 능선넘어 1키로미터 지점에 터만 남아있다. 예전엔 건봉사에서 암자까지 우마차가 다닐 정도 길이나 있었다. 해방 후 38선 이북에 위치하여 정상적인 종교 활동이 불가능하자 극락암 비구니 스님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극락암에 살았던 비구니 법선스님이 1956년 간성면 광산3리에 극락암을 신축하였다가 1962년 현재의 간성읍 교동리 280번지 함박동으로 이전하여 오늘의 극락암이 되었다. (출처 : 고성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교동2길 26 대한불교조계종극락암
금강암(보령)
금강암(金剛庵)은 보령시 미산면 용수리에 있는 높이 411.8m 양각산(羊角山)의 동편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이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사찰 이름이 ‘옥계사(玉溪寺)’로 나와 있으며, 1799년(정조 23)에 간행된 '범우고(梵宇攷)'와 1930년대에 이병연(李秉延)이 찬술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옥계사’라는 이름을 기록한 뒤에 지금은 '금강암'이라 칭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조선 후기에 암행어사(暗行御史)로 활약한 박문수(朴文秀)의 할아버지 박선(朴銑)이 자주 찾았다고 하는 설도 전해진다. 비문(碑文)에 의하면 금강암을 창건한 영암은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제자이며, 영암이 금강암을 창건한 이유는 태종의 후비였던 궁주 권 씨(宮主 權氏)의 소원을 빌기 위해 원당(願堂)으로 창건한 것이다. 궁주 권 씨의 아버지인 영가군(永嘉君) 권홍(權弘)과 궁주 권 씨의 딸인 옹주 이 씨(翁主 李氏)가 후원하였다.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보령호로 1139-102

금곡사(칠곡)
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7년(638)에 김란[金蘭]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현재 금곡사 사역은 아니다. 다만 주변에 금곡사지로 전하는 절터가 있으므로 이 일대가 일찍이 사찰이 자리하기에 유익한 풍수지리적 요건을 가졌다고 여겨진다. 현재의 극락전은 1959년에 건립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주심포 익공계 건물이다. 극락전 전방 좌우측에는 요사채가 각각 1동씩 있으며, 좌측 요사채 뒤편과 극락전의 우측 후면에도 요사채가 각각 1동씩 자리 잡고 있다. 극락전의 좌측 후면의 삼성각은 1990년 건립된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주심포 익공계 건물로 내부에는 건립 당시 봉안한 칠성탱화, 산신탱화, 독성탱화가 있다. 외벽에는 나반존자와 산신설화와 관련된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극락전 전면에는 세존사리탑이 있으며, 좌측으로는 세존사리탑건립비와 금곡사도로공덕비가 있다. 사찰의 입구에는 1986년에 세운 금곡사전기불사공덕비가 있다. 또한 이곳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제531호 칠곡 금곡사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금화길 107

금곡사(강진)
금곡사는 신라 말 밀봉대사가 창건하여 성문사라 칭하다가 이 주위에 금광이 있다 하여 후에 금곡사라 개칭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훈련 장소로 쓰였으나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탔다. 이후 폐사와 중창을 반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찰 옆 개울가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금광이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금곡사에는 백제 계통의 고려 양식인 보물 제829호 삼층석탑이 있는데 1985년 복원작업을 하던 중 석가세존 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어 세상의 이목을 받기도 했다. 이 탑은 석탑으로서는 5m가 넘는 거탑으로 그 형식 면에서는 전형적인 고려 양식을 고수하면서도 기단부 구성이나 옥개석의 우동마루 등 일부에서는 약간의 백제 계 석탑의 분위기가 가미되어 있다. 조성 연대는 고려 초반기로 추정된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의 양이 일정한 약수터에서 풀로 만든 대롱으로 물을 빨아먹으면 신경통이 사라진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아마도 임진왜란 때 왜구를 격파한 이 고장 출신 김억추장군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매년 봄이 되면 금곡사로 가는 군동면 호계리에서 작천면 군자리에 이르는 19㎞ 구간은 연분홍빛 벚꽃터널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금곡사 벚꽃 길은 1992년부터 2년에 걸쳐 강진군 공무원들이 휴일을 반납해가며 직접 만든 곳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까치내로 261-21

금선사(서울)
금선사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솔 내음이 가득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청와대와 경복궁이 위치한 인왕산이 바로 보이는 종로구 구기동에 소재하고 있다. 이북5도청을 지나서 북한산국립공원 비봉코스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첫 번째 관문인 삼각산 금선사의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도량의 전각은, 법회를 보는 반야전을 지나면 200년이 넘은 소나무가 중앙에 있으며, 소나무를 지나서 108계단을 오르면 금선사의 주불이 모셔진 대적광전이 사찰의 가장 중심부이면서 가장 높은 곳에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우측으로는 삼성각이 있고, 북한산의 일급수가 모였다가 흘러내리는 홍예교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비봉길 137

금수사(부산)
금수사는 구봉산 아래 자리한 아담한 사찰이다. 금수사 계단 앞으로는 산복도로가 잘 나있으며, 버스정류장이 바로 앞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좋은 도심 속 사찰로 알려져 있다. 금수사는 한국불교원효종의 총본산으로도 유명하다. 2003년 입적한 원효종 종정 법홍스님이 주석한 이곳에는 원효대사의 유지와 종풍을 받들고자 하는 수많은 사부대중의 귀의처로서 자리매김하였으니 산중이 아닌 일반 백성들 속에 중생들을 깨우쳐 주고자 했던 원효대사의 화쟁 무애사상이 빛나는 사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불교가 낳은 불멸의 성사 원효대사의 유지를 받들고, 호국일념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사명대사의 족적이 남아 있는 곳, 구계산 금수사는 이러한 역사적 터전 위에 지금 불법홍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다. 또한 금수사 경내에 호국영각을 짓고 기미년 독립선언의 민족대표 33인과 안중근, 김좌진, 안창호, 윤봉길 등 애국독립지사 22인의 위패를 모셔 매년 추모법회를 봉행하고 있으니 호국도량으로서의 그 위상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533-1
금용암(부산)
금용암은 쇠미산의 작은 암자로, 입구의 송림길과 함께 불국 수미산 산속에 홀로 묻힌 듯 자연과 동화되어 있는 사찰이다. 금용(金蓉)이란 금색 연꽃이란 뜻으로, 불교사상에서 연꽃과 금강석 또는 금과 함께 대표적인 불교사상의 상징을 따서 사찰명을 지었다. 조선 후기 철종 때 이인덕행이라는 보살이 1919년 10월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대봉이라는 법명을 받아 쇠미산 기슭에 기와집으로 인법당 3칸을 짓고 금용암이라 불렀다. 금용암이라는 이름은 쇠미산의 별칭인 금용산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금당인 염화전과 삼성각, 요사인 원통료·향적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2년 지은 염화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며, 안에는 석가여래 좌상을 중심으로 약사여래 좌상과 관음보살 좌상이 배치되어 있고, 뒤편에는 1993년 조성한 후불탱을 비롯하여 지장탱·신중탱이 있다. 삼성각 안에는 삼신할머니 탱화가 있는데, 불상이 아니라 여인 세 명을 그린 것이다. 이곳 삼신할머니는 오래전부터 득남을 기원하는 이들에게 영험이 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절 담벽 아래 비탈길에 대봉의 상반신이 선각된 사적비가 있다.
부산광역시 연제구 성지곡로 111

금정사(김포)
금정사는 신라 진흥왕(540~576) 때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는 ‘고상사’라고만 전하여 왔으나 달리 전해오는 기록은 없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왕은 자신의 아버지 원종으로 추증하고 어머니 역시 인헌왕후로 추증하여 그들의 묘를 양주에서 김포로 이장하고 장릉이라고 하였다. 인근에 있던 고상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겨 장릉을 보호하는 사찰로 재건하면서 ‘봉릉사’라 칭하게 되었다. 1930년에 당시 주지 영송화상이 사찰을 중수하였고, 1938년 주시 성화대사가 다시 한번 크게 중수하였다. 6·25전쟁 이후 사찰을 정녕스님과 고근스님이 대웅전과 범종각을 새로 지었다. 또한 능을 지킨다는 봉릉사에서 절의 뒷산인 금정산과 법당 앞에서 좋은 물맛이 솟아나므로 ‘하늘우물’이라는 의미의 ‘금정사’로 개명하여 김포지역 포교와 수행도량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금정사는 경기도 전통사찰 제63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기도 김포시 승가로 125 (풍무동)

남고사(전주)
남고사는 고덕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남고산성을 따라 전주의 남쪽을 지키고 있는 사찰로, 절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전주 시가지가 한눈에 보여 아름다운 전망을 만나볼 수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관음전, 삼성각, 사천왕문 등이 있다. 남고사 안쪽에는 삼성각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삼성각은 한국 고유의 토속신앙과 불교가 합쳐져 생긴 형태로, 산신, 칠성, 독성을 봉안하는 불교의 건축물이다. 또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하고,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앞 건물 자리는 남고사지의 옛 절터로, 1985년 8월,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단풍 가득한 가을의 남고사는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하여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남고산성1길 53-88

남산사(정읍)
정읍 신태인간 지방도로변에서 더 들어간 곳에 있는 낮은 산인 남산에 남산사가 있다. 남산에는 예부터 반야선터라 하여 알려져 있는 선의 도량으로 병자호란 이전에는 승려가 100여 명이나 기거한 큰절이었다고 한다. 이 절은 옛날에는 한적사(閑寂寺)라 했다. 지금도 절터였던 주추돌과 기와장이 무수히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폐허가 된 사적지로 남아있던 사지에 1910년경 이장녀 보살이 작은 암자를 짓고 남산사(南山寺)라 이름하여 창건한 후 신도우, 정진성, 김금담 등 역대 주지가 있었고 1991년에는 현주지인 학승, 도선스님이 정진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정신로 183-64

남원사(익산)
우리나라 사찰은 대체로 산속에 위치해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남원사는 보기 드문 평지 사찰이다. 벼 이삭이 익어가는 8월이 어느 날. 장마 뒤끝에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시샘하듯 들녘을 가득 메운 벼들은 빗물에 씻긴 채 물기를 머금고 초록빛이 더욱 짙어져 간다. 시원하게 뚫린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울창한 나무와 숲을 가로질러 난 고불고불한 산길을 지나 노인분들께 물어물어 남원사를 찾아간다. 그러다 더 이상 물어볼 사람이 없어 두리번거릴 때 파란 들판 한가운데 그림같이 서 있는 사찰이 나타난다. 바로 남원사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남원사는 논두렁 사이에 파랗게 익어가는 벼 이삭 사이로 서 있는 아담한 사찰이다. 그곳에서는 장맛비를 맞아 환하게 피어 올라온 분홍빛 연꽃이 우선 맞이해 준다. 일주문을 거쳐 경내로 들어서면 유난히 아름다운 화단이 또 지친 나그네를 맞아준다. 낮은 꽃밭에는 정겨운 우리 꽃들이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아마도 이곳에 도착하게 되면 계절 따라 철철이 피는 또 다른 꽃을 만나게 되고, 그 꽃을 보면 부처님의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미륵전을 들어가면 이곳 소박한 시골의 사찰을 닮은 순박한 모습의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서촌1길 34-3

남지장사
남지장사는 최정산 남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684년에 양개 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현재까지 1300년 이상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있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남지장사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대사유정이 왜군에 맞서기 위해 승병 훈련장으로 이용하였다. 당시 사명대사가 이끄는 승병과 의병장 우배순이 거느린 의병의 수가 3천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왜군에게 점령되고 화재로 소실된 후 1653년에 인혜에 의해 중건되었다. 1767년 모계와 풍흡이 중창하여 팔공산 동화사 부근 북지장사와 대칭되는 곳에 있는 절이라하여 절 이름을 남지장사로 변경된 것으로 전해지며 이전 절 이름은 전하지 않고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남지장사길 127
내원사(대전)
내원사는 대전 서구 도솔산 동쪽 사면에 자리한 사찰이다. 도솔산은 대전 시내에 솟아 있는 비교적 낮은 산으로, 많은 시민들이 가벼운 산책이나 등산을 위해 자주 찾는 장소이다. 내원사는 이처럼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산속에 위치해 있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내원사’라는 이름의 사찰은 전국 여러 곳에 있으나, 도솔산 내원사는 험준한 산사에서 느끼기 어려운 포근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찰 경내에는 대웅전과 대적광전이 자리하고 있으며, 주변 자연 풍광과 조화를 이루어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방문객들을 위한 약수터도 마련되어 있어 잠시 머물며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내원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에 대한 문헌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는 ‘도솔암’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다가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28년, 연덕화 보살이 절을 다시 지었고, 1965년에는 법전 스님이 중건하였다. 1997년에 조성된 대웅전을 중심으로, 대적광전과 요사채가 함께 구성되어 있으며, 절 입구에는 1996년에 조성된 범종 형태의 부도 1기가 세워져 있다. 도심 가까이에서 불교문화와 자연의 평온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장소로, 내원사는 누구에게나 조용한 위로와 휴식을 선사한다.
대전광역시 서구 배재로197번길 200

내원사(서울)
내원사는 삼각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 정릉 골짜기를 지나 1㎞ 정도 오르면 멀리 목멱산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터전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내원사의 존재를 밝혀주는 것은 현재로서는 김정호가 제작한 「수선전도(首善全圖)」와 1859년(철종 10) 만들어져 사찰에 전하는「백의대사불도(白衣大士佛圖)」라는 목판이 유일하다. 수선전도에는 현재 내원사가 자리한 곳과 같은 위치에 내원암이 표시되어 있고, 「백의대사불도(白衣大士佛圖)」목판에는 삼각산내원암(三角山內院庵)이라는 기록이 있어 19세기 전반만 해도 법등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을 알려준다. 그러던 내원사가 언제 어떠한 이유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진다. 오늘도 무상함 속에 범종루 아래 길게 이어진 이끼 낀 석축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배어나고, 바위틈에서 솟는 감로수는 사찰의 흥망성쇠를 잊은 듯 말없이 흐르고 있다. 출처 : 내원사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국문로 262-151 내원사
내원사(양산)
내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로써 수려한 산수와 아름다운 계곡으로 천성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1898년 석담유성 선사가 설우, 퇴운, 완해 등과 더불어 수선사를 창설하여 절 이름을 내원사로 개칭하고 동국제일선원이라 명명한 후 선찰로써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경허선사의 법제자인 혜월선사께서 조실로 주석하시면서 운봉, 향곡선사 등 한국 선종사의 선맥을 잇는 명안종사를 배출한 도량이다. 1979년 도용스님을 입승으로 모시고 18명의 스님들이 모여 삼년결사를 시작한 이후 1999년 여섯 번째 회향을 하였고, 지금도 비구니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다. 원효대사는 중국 태화사에서 건너온 1천 명의 대중들을 이끌고 이 산으로 들어와 대둔사와 89개의 암자를 창건했다고 한다. 당시의 암자 가운데 내원암이 있었는데 조선 후기에 발생한 큰 수해로 대둔사와 암자 대부분이 유실되고 하내원암만 남아, 여러 차례 중건을 거듭하여 오늘날의 내원사로 법등을 잇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동국제일선원’으로서 수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고 있는 곳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내원로 207

내원암(울산)
내원암은 울산 12경 가운데 하나인 대운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신라시대의 고찰 가운데 하나이다. 석남사, 문수사, 신흥사와 함께 울산 지역의 4대 고찰 가운데 하나로, 신라시대 고봉 선사가 창건하였다는 대원사의 암자로 현재 대원사는 내원암 입구에 터로 남아있다. 주변은 울산 12경 가운데 하나로 계곡물이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하여 울산과 주변 지역 시민들이 즐겨 찾고 있는 곳이다. 내원암의 자랑인 팽나무 고목은 500여 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터줏대감인데, 모습이 코끼리를 닮았다고 하여 보는 이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근래 들어서는 종교 간에 얽힌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자 매년 울산지역 성직자들이 함께 참가하는 산사음악회를 개최하고 있어 지역사회에서 호응을 받고 있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내원암은 울산지역의 대표적인 기도처이면서, 종교를 초월하여 지역의 모든 이들을 포용하는 문화공간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대운상대길 382

부용체육공원
부용체육공원은 금강변에 위치한 자연친화적인 공원으로, 매년 봄이면 넓은 유채꽃밭이 조성되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공원은 연인이나 가족, 아이들과 함께 봄나들이 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손꼽힌다.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도 많다. 세종시에서 제주도 못지않은 유채꽃밭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세종특별자치시 금호선말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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