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24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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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정·죽도 전망대
양양 10경 중 제6경에 속하는 죽도정은 죽도해변에서 차로 1분 거리로 서핑을 즐기러 왔다면 꼭 들러야 할 코스이다. 정상에 있는 죽도정은 1965년 현남면 내 부호들의 행정 지원을 받아 건립되었고, 팔각집은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섬 둘레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서 해안 풍경을 조망하며 삼림욕을 즐길 수도 있고, 높이도 낮은 편이라 가볍게 산책이 가능하다. 죽도정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수십 개의 계단이 있지만 다행히 중간에 쉼터가 있어 쉬어갈 수 있고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사진도 찍으며 쉬어 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죽도정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새하얀 전망대인 죽도 전망대가 있으며 원 모양의 계단을 빙글빙글 돌면서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방식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남면 인구리 1-1

양양향교
양양군 양양읍 임천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향교로 1985년 1월 17일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7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고려 충혜왕 때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682년에 부사 최상익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오랜 역사를 지닌 양양향교는 많은 국보급 서화와 조각 등 예술적인 유물들을 보존해왔으나 6·25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지고 1952년에 대성전과 동재, 서재 등을 중건하였으며 다음 해에 명륜당을 다시 지었다. 1954년에는 향교재단으로 명륜중학교를 설립, 양양군의 중등교육에 힘썼다. 이 학교는 1970년 기술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75년 폐교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 10철, 송조6현의 위패가,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거마천로 52-20

양양동해신묘지
양양 동해신묘지는 동해의 용왕신에게 국태민안, 풍농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창건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세워져 조선 초기에 국가 제사의 중사(국가적 제사로 대, 중, 소사의 규모 중 중간) 장소로 정비되었다. 동해안 지역은 경지 면적이 부족하여 신라 시대부터 험난한 바다에서 어로 활동을 해왔기에 용왕을 모셔 제사를 지냈다. 마을 차원에서도 바닷가 마을에만 존재하는 마을 제당인 해신당이 있었다. 동해안 연해에 있는 고성, 양양, 강릉, 동해, 울진, 삼척 등의 해안 마을에서도 마을 전체를 관장하는 서낭당과 함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해신당이 있는 마을이 매우 많다. 동해신묘 역시 해안지역의 민간신앙 전통이 이어져온 신묘로 지정돼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왔다. 그러다 순종 2년(1908)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비석이 잘리고 건물이 철폐되었다가 1993년부터 양양군에 의해 복원 사업이 추진되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해수욕장 개장식과 함께 ‘양양 동해신묘 여름 해변 용왕제’를 올리고 있다. 이외 낙산해변, 설악해변 등지에서도 그해 해수욕장이 개장할 때 용왕제를 올리며 무사안전을 기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동해신묘길 34

남대천(양양)
남대천은 양양 8경 중 1경으로 꼽히는 하천이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서 발원한 강은 양양을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든다. 구간별로 최상류부터 부연계곡, 법수치리 계곡, 어성전천, 남대천으로 나눌 수 있다. 양양 남대천은 한국에서 제일가는 연어 회귀 하천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70% 이상이 이곳으로 회귀하여 연어의 모천(母川)이라 불린다. 강 상류에 법수치리 계곡, 하류 인근에 낙산 해변 등의 관광지가 있고, 강 하구에 조성된 남대천 생태 관찰로는 가을에 은빛으로 물드는 갈대숲이 아름답다.
강원 양양군 양양읍 남문리 362

삼귀해안
삼귀해안은 울창한 숲과 함께 해안을 따라 도로가 나 있어 자동차로 일주하며 바다 경치를 즐길 수 있으며, 밤이면 건너편 바다에 정박한 배들의 불빛과 돝 섬의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바다를 사이로 마산구와 돝섬 해상유원지 그리고 마창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야간에는 건너편 바다에 정박한 배들과 돝섬 야경이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해안마을인 용호마을의 배암개 앞에는 개구리를 잡아먹으려는 뱀 모양의 풍광 좋은 개구리 섬이 있으며, 봄, 여름이면 도다리·숭어·농어·노래미 등을 낚으려는 낚시꾼들이 율구만 앞바다로 모여들고, 해변에는 싱싱한 회를 파는 횟집이 30여 호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귀산동

용추폭포(무주)
용추폭포는 칠연계곡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명소로 2개의 망봉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높이 5m의 암벽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칠연계곡 11경 중에서 제1경에 속하며 울창한 노송에 둘러싸여 있는 아담한 사탄정이라는 정자가 옆에 세워져 있어 풍광이 아주 그럴듯하다. 이곳은 사시사철 폭포에 물이 있고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로 인해 큰 소(웅덩이)가 형성되어 있다. 폭포 주변으로는 기암들과 수목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여름에는 빼어난 경관으로 인해 사람들이 물놀이 장소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등산 탐방 코스로는 동엽령 코스에 해당이 된되며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코스인 이곳은 안성 탐방 지원 센터 입구에서 출발하여 1.2㎞ 정도를 걸으면 칠연 폭포가 나오고, 칠연로를 따라서 계속 이동하면 용추폭포가 나온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안성면 칠연로
칠연의총
칠연의총은 무주군 덕유산 통안 마을 은반대에서 0.1㎞ 지점 계곡 왼편에 있는 구한말 전사한 신명선 의병 부대의 유해를 합장한 무덤이다. 1907년 일본의 강압으로 정미칠조약이 체결되어 우리의 군대가 해산을 당하게 되자 일본의 침략에 울분을 참지 못하던 시위 보병들은 전국에 흩어져 항쟁을 벌였다. 이때 시위대 출신인 신명선이 덕유산을 거점으로 의병을 모집하여 무주·장수·순창·용담·거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면서 수많은 공을 세웠다. 신명선 부대는 초기 창의할 때 불과 40여 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점차 세력이 불어나 150여 명의 의병이 결집된 부대가 되었다. 신명선 부대는 1908년 4월, 일본군 사살 15명, 부상 20명의 성과를 거둔 장수에서 격전 후 칠연계곡 송정에서 쉬고 있던 중 잠복하고 있던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150여 명의 전 대원이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안성면 칠연로 608

부안 줄포만 노을빛 정원
줄포리 일대에 위치한 부안 줄포만 노을빛 정원은 저지대 침수에 대비하기 위해 제방을 쌓은 것이 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은 경우다. 제방을 쌓은 이후 갈대와 삘기 등이 무성해지고, 담수습지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레 생태늪지로 발전했다. 생태공원 앞 갯벌은 지난 2010년 1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될 만큼 갯벌이 살아 있는 곳으로 황조롱이를 비롯해 50여 종의 조류와 염생 식물, 갯벌동물 등이 한데 어울리며 살아간다. 칠면초 군락도 넓게 펼쳐져 있어 초가을이 되면 빨갛게 물들어 볼거리를 제공하며 다양한 체험거리와 숙박시설, 캠핑장이 있어 가족, 연인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 주는 곳이기도 하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줄포면 생태공원로 38

부안댐
변산온천을 지나 중계계곡의 산골짜기에 있는 다목적 댐이다. 1996년 11월 6일 완공된 댐으로 주로 부안군민 및 고창군민의 생명수인 상수원으로 역할하고 있다. 국립공원 지역에 소재하고 있으며, 수자원 개발 정책이 큰 댐 중심에서 중소 규모의 댐 개발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축조된 우리나라의 중규모 댐이다. 부안댐 건설로 부안군 변산면의 중계리와 대항리, 상서면 청림리가 수몰되었으며,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망향탑이 세워져 있다. 부안댐이 소재한 변산반도는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지역답게 주변 경관이 좋고, 댐 주변에 직소정, 부안 댐 물 문화관, 부안호 문학 동산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부안댐로 281

수성당
수성당은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 있는 제당이다. 이 지방의 해안마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마을의 공동 신앙소로, 건평 4평의 단칸 기와집이다. 이곳은 칠산바다를 관장하는 개양할미와 그녀의 딸 8자매를 함께 모시며 해마다 음력 1월 14일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개양할미는 키가 매우 커서 나막신을 신고 서해를 걸어 다니며 수심이 깊은 곳은 메우고, 풍랑을 다스려 어부들이나 이곳을 지나는 선박들을 보호하는 바다의 신이다. 1992년 발굴조사에서 3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의 백제, 가야, 통일신라부터 조선을 비롯해 고대 중국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을 통해 이곳에서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 사람들도 제사에 참여하고 제사가 끝나면 제기를 포함한 각종 물품을 땅에 묻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수성당 주변에는 적벽강, 채석강이 있으며 서해랑길이자 부안 마실길을 이용해 가볍게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적벽강길 54

난계 박연선생 생가
국악의 거리에서 외길을 따라 고당리 방면으로 가다 보면 난계 박연 선생이 태어난 가옥이 있다. 난계 박연은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손꼽힌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음악가로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타계했다. 박연은 악보와 악기를 정리한 악서를 편찬하고 대고와 석경 등 아악기를 제작했다. 또, 궁중악을 완성하고 악기를 조율하는 편경을 만드는 등 국악을 발전시키고 완성한 국악의 아버지다. 세조 2년(1456년)에 삼남 계우가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화를 당할 뻔하였으나, 세 임금에 봉직한 공으로 화를 면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으로 돌아와 살다가 세조 4년(1458년) 3월 23일 81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박연이 낙향할 때 강을 건너며 배 위에서 피리를 불었는데 그 피리 소리에 가던 배도 멈추고 쓸쓸한 느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는 일화가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걸출한 인물의 비애를 단적으로 나타내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음악과 함께한 국악의 거성 난계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0년 5월 안채와 사랑채를 복원하였다. 생가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측면 1칸은 퇴칸 구조이며 정면 2칸만큼 우물마루를 설치하고 한쪽에는 부엌과 곡식창고를 부설한 고미 반자에 우진각의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다. 우진각지붕은 용마루와 추녀마루만 있고 내림마루는 없으며 전·후면은 사다리꼴이며 양쪽 측면은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용마루가 짧고 내림마루가 길게 늘어진 모습이 특이하다. 부속 채는 1동으로 외양간, 광과 방 1칸인 초가지붕으로 되어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하고당1길 14-17

영동 가학루
영동 가학루는 황간향교 앞에 있는 누각이다. 이 누각은 자연경관을 즐기던 곳으로, 조선 태조 2년(1393)에 황간현감 하첨이 지었다. 임진왜란(1592) 때 불탔으나 새로 짓고 여러 차례 보수했다. 가학루라는 이름은 경상도관찰사 남공이 마치 학이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듯하다 해서 지은 것이다. 앞면 4칸, 옆면 4칸 규모의 1층 건물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기둥과 난간만 있어 사방이 탁 트인 형태로 시원하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구교리길 94
백화산(영동)
해발 933m의 백화산은 충북 영동과 경북 상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남북으로 뻗은 날카로운 주능선 양옆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지고, 사이사이로 아름다운 천이 흘러 계절이 좋을 때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경관을 자랑한다. 반야교를 지나면 주행봉 들머리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오르고 있으나, 낙타 등과 같은 능선을 하고 있는 경북 상주시에서 오르는 사람도 있다. 바위가 많고 반야사 쪽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는 저승골이라 불리는 협곡도 있어 등산객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한다. 산줄기가 장쾌하여 백화산맥이라고도 부른다. 동서 쪽보다 취약한 토산지역인 북쪽은 아직까지 돌로 쌓아 올린 금돌성이 남아 있어 역사의 흔적 또한 엿볼 수 있다. 백옥정, 옥동서원, 반야사 등 문화유적 답사를 즐길 수 있기도 하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반야사(영동)
백화산에서 흘러내리는 큰 물줄기가 태극문양으로 산허리를 감아 돌면서 연꽃 모양의 지형을 이루는데 연꽃 중심에 반야사가 위치해 있다. 호랑이를 품고 있는 절로도 알려져 있으며 신라 성덕왕 27년(728년) 원효대사의 10대 제자 중 하나인 상원화상이 창건한 천년의 사찰이다. 뒤에 고려 충숙왕 12년(1325년) 학조대사가 중수하였고 1464년(세조 10) 세조의 허락을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극락전은 언제 중건되었는지 확실치 않으나 근래 수리하고 단청해서 상태가 단정하고 아담하다. 동북쪽으로는 백화산이 솟아 있고 절 앞을 흘러내리는 석천계곡에는 폭이 50m나 되는 큰 냇물에 반석이 깔려 있고 녹수청산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 망경대가 있다. 세조대왕이 속리산 법주사 복천암 법회 후에 이곳 반야사를 들렀을 때 일이다. 세조가 경내를 거닐고 있는데 어디선가 문수동자가 나타나 세조에게 가까운 곳에 좋은 약수 샘이 있다고 안내하여 목욕할 것을 권하였다 한다. 문수동자의 안내를 받아 망경대에서 휴식을 취한 세조는 문수동자를 만난 것을 뜻깊게 여겨 글을 남겼는데, 그 글은 현재도 보관 중이라고 한다. 이 절의 이름을 반야사라고 한 것도 이 절 주위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신앙 때문이며, 문수의 반야를 상징하여 절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영동 반야사에는 백화산 기슭의 반야사 호랑이와 더불어 수령 500년이 넘는 백일홍나무가 유명하며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반야사 삼층석탑이 있다. 사찰 뒤편 산허리에 쌓인 파쇄석 모양이 꼬리를 세운 호랑이 모습을 닮은 반야사 호랑이 형상은 높이 80m 길이 200m이며 백화산 기슭에서 수천 년간 흘러내린 돌무더기가 주변 수목과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한편, 보물로 지정된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은 반야사 안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래 반야사 북쪽의 석천계곡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 양식을 절충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반야사에서는 다양한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지친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체험형 템플스테이와 나 자신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지혜를 찾도록 돕는 휴식형 프라즈나(지혜)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백화산로 652
황간향교
황간향교는 태조 3년(1394)에 마을 뒷산에 세웠으나 현종 7년(1666)에 흙으로 쌓은 성안으로 옮겼으며, 영조 28년(1752)과 고종 9년(1872)에 수리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과 고직사 등의 부속건물이 있는데 앞쪽은 배움의 공간, 뒤쪽은 제사공간을 형성하는 전학후묘의 배치형태를 따르고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으로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해 여러 성현들을 모시는 제사공간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집이다. 또한 주춧돌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사원건축양식과 정자, 주택양식이 절충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걸쳐 제사만 지내고 있다.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책들은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구교리길 88
영동 추풍령 전적 및 장지현 순절비
임진왜란(1592) 때 의병장이었던 삼괴 장지현(1536∼1593)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순절비 및 전적지이다. 장지현은 선조 23년(1590) 신립 장군의 부장이 되고, 이듬해 사헌부 감찰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2,000명을 모아 관군과 합세하여 추풍령에서 1만여 명의 왜적과 싸워 김천 방면으로 물리쳤다. 그러나 곧 금산 방면에서 공격해 온 왜군의 협공을 받아 사촌동생 호현과 함께 전사하였다. 장군의 높은 뜻과 애국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1978년 사당을 건립했다.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 사부리
영동 영모재
영동 영모재는 고성 남 씨의 재실 건물이다. 재실이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순조 28년(1828)에 남주한이 선대의 묘소 아래 처음 지은 후 1885년에 고쳐지었으며, 1929년에 중수하였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중앙의 2칸은 넓은 대청으로 하고, 양끝에 온돌방을 만들었으며, 돌담과 높이 솟은 대문, 현판, 중수기, 상량문 등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특히 이곳은 온돌방에 불을 지피면 연기가 내부로 빨려 들어가게 하여 열효율을 극대화하도록 굴뚝을 설치하지 않은 특이한 건물이다. 영모재는 전통온돌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관기길 16-3
영동 사로당
영동 사로당은 현감 박수근(朴守謹)이 그의 아우들과 학문을 논하던 곳으로, 사로당이라 하였다. 박수근의 아우들은 수인(守認), 수해(守諧), 수원(守源)이다. 이곳은 조선 숙종 36년(1710)에 세워졌고, 영조 43년(1767)에 중수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면에서 땅에서 1.2m 높이 위에 마루가 설치된 전형적인 별당 건축이다. 보기 드문 높은 마루를 하고 사면에는 간결한 난간을 돌리고 있는 특징이 보이고 있다. 앞면 3칸 중 왼쪽 끝 1칸과 오른쪽 모퉁이를 온돌방으로 꾸미고 나머지를 대청마루로 하였다. 2단의 받침대 위에 주춧돌을 놓고 둥근기둥을 세웠다. 사방에 간결한 난간이 둘러져 있고 온돌방의 창호가 알맞게 짜여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민주지산로 3759-13
영동 삼괴당
조선시대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남지언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건물로 그의 호를 따서 삼괴당이라고 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남인과 아들인 남경도 역시 효자로 이들을 칭찬하기 위해 나라에서 삼효각을 세워 주었다고 하나 지금은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현재의 삼괴당 건물은 순조 25년(1802) 다시 세운 것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임산3길 28-13
영동향교
조선 선조(1567∼1608) 때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며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영동지방에 세운 교육기관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현종 1년(1660)에 옛 읍성 안에 이건, 복원하였다. 숙종 2년(1676)에 구교동으로 옮겼다가 영조 30년(1754)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건물의 배치는 전학후묘로 앞에는 유교 교육을 위한 강당인 6칸의 명륜당과 학생들의 거처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중간에는 내삼문을 두었고, 그 뒤 편에 문묘인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제향을 받들고 있다. 소장전적은 판본이 몇 권 있을 뿐이며 향교의 운영은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영동향교는 1980년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부용리 372 영동향교

벽련암(정읍)
벽련암은 전라북도 정읍의 내장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원래 이름이 백련사로 기록되어 있다. 사찰은 백제 의자왕 20년인 서기 660년에 유해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언제부터 백련사로 불렸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추사 김정희가 사찰 이름을 벽련사로 고쳐 부르고 현판을 써서 걸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1925년 학명선사가 극락보전을 중창하고 요사와 선원도 함께 지었다. 이 건물들 역시 1951년 음력 12월 10일 한국전쟁 중 모두 소실되었다. 사찰 서쪽에는 건립 연대를 알 수 없는 탑 형식의 부도가 남아 있다. 암자 뒤편 암벽에는 태인 출신 여성 시인 몽련당 김진민이 쓴 '석란정'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현재 벽련암은 그 역사성과 유물로 인해 문화적 가치가 크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20-74
임병찬창의유적지
임병찬창의유적지는 구한말 둔헌 임병찬(1851∼1916) 선생이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자 의병들을 모아 훈련시켰던 곳이다. 임병찬 선생은 불법적인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듬해인 1906년 면암 최익현 선생과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순창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최익현과 함께 붙잡혀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1914년 독립의군부를 전국 조직으로 확대하여 대한독립의군부로 만들었으며,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거문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지역은 해발 400m 이상인 산간오지로서 임병찬 선생이 한일합방을 대비,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공자를 모시는 영소전 학당을 지어 제자를 가르쳤다. 또한 병기참 및 탄약제작소, 숙소를 설치하고 활쏘기, 말타기 들를 익히게 하였다. 현재는 당시 건물들의 흔적만이 있을 뿐이며, 최근에 후손들이 기념비를 세웠고, 정읍시에서 안내판과 표석을 설치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276-1

에너지 캠퍼스
에너지 캠퍼스는 신재생 에너지전환의 비전을 가상현실(VR)과 4D영상 등 최신 미디어 기술로 담아낸 멀티미디어 체험학습장이다. 2007년 한국동서발전(주)당진발전본부의 전력문화홍보관으로 최초 개관하였으며 2022년 11월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에 발맞춰 에너지캠퍼스로 전면 탈바꿈하였다. 에너지 캠퍼스에서는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전 연령층이 전기생산과정과 신재생 발전원리를 직접 체험하며 전력산업 트렌드를 익힐 수 있다. 전시관은 총 9개의 코너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 입구인 발전소 게이트를 통과하면 발전소의 보일러 안으로 들어가며 본격적인 에너지전환 여행을 시작한다. 에너지원 변천사를 그린 파노라마 실감영상 감상 후 가상의 드론택시를 타고 발전기 내부를 누비며 발전원리를 VR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4D영상관에서는 미래 생태도시를 여행하며 무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놀이공원 못지않은 박진감과 역동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친환경 발전설비 기술, 신재생에너지 원리 등을 퀴즈 형식으로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점 또한 에너지캠퍼스의 자랑이다. 우리가 간과해 왔던 신재생에 대한 오해와 진실 등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약 45분에 이르는 에너지전환 여행은 우리가 지켜낸 깨끗한 지구와 형형색색 빛나는 우주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으며 마무리된다.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대호만로 2424

영천 신월리 삼층석탑
영천시 신흥사에 있는 신월리 삼층석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높이가 4.75m이다. 신라 진평왕 때 신흥사가 위치했던 곳이라는 전설에 따라 근년에 신흥사라는 절이 새로 건립되었다. 이중 기단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쌓아 올린 것으로, 전형적인 신라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윗 기단부의 면석에는 팔부중상이 돋을새김이 되어 있고,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돌로 조성되었다. 지붕돌 밑면 받침은 4단이고 추녀 밑은 수평을 이루고 있다. 또한 보통 석탑의 몸돌인 경우 문짝모양과 자물쇠를 조각하는 경우는 볼 수 있지만 이 탑처럼 면마다 무늬를 새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비록 기단과 탑신부의 여러 곳에 손상을 입었으나, 신라 석탑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금호로 36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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