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24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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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세대학교 스팀슨관
연세대학교에 최초로 세워진 건물로서, 1919년 착공하여 1920년 완성된 돌로 지은 2층 건물이다.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 언더우드(한국 이름 원두우) 목사가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서 항구적인 학교 건축을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던 찰스 스팀슨의 기부금을 얻어놓고 세상을 떠난 뒤 후임 교장인 에비슨이 그 기부금으로 건립한 것이다. 유가족인 언더우드 부인이 초석을 놓았고 당시 화학과 교수인 밀러가 공사를 감독하였다. 설계자는 알 수 없으나 당시 미국인 건축가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설계와 기본 계획을 작성하였다고 한다. 장방형의 평면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신촌동)
서울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안에 있는 언더우드관은 이 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창립자인 언더우드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형인 존 티 언더우드의 10만 달러 기부금으로 지어졌다. 1921년 짓기 시작하여 1924년에 완공되었으며 감독은 당시 화학과 교수였던 밀러가 담당했다. 연세대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캠퍼스의 중앙을 가로지른 백양로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의 5층으로 된 중앙의 탑은 이 캠퍼스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본래 강의동으로 사용되었지만, 현재에는 대학본부 건물로 총장실을 비롯한 중요 행정부서가 있다. 구조는 돌구조로서 지하 1층, 지상 3층이며, 탑 부분은 5층이다. 이 건물은 1950년에 한국 전쟁으로 소실되어 내부와 지붕부가 크게 파괴되었으며, 전후 복구되었고 그 보존 상태가 우수하여 역사적 가치가 크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서울 연세대학교 아펜젤러관
연세대학교 서울캠퍼스 안에 있는 아펜젤러관은 연세대학교의 본관 건물인 스팀슨관의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미국 북감리 교회 최초의 선교사이자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를 기념하기 위하여 미국 매사추세츠주 피츠필드시의 제일감리교회의 기부금으로 지어졌다. 스팀슨관과 언더우드관과 마찬가지로 화학과 교수인 밀러의 감독하에 1921년 짓기 시작하여 1924년에 완성되었다. 아펜젤러관은 스팀슨관과 언더우드관의 두 건물과 함께 ㄷ자형의 캠퍼스를 구성하며, 중앙에 있는 언더우드관의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평면은 장방형이며 중앙에 현관과 계단실이 있고 본래는 이학관으로 자연과학계의 교사로 쓰였고 해방 후에는 상경관으로 상경계통에서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행정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영해향교
영해향교는 경사지에 건립하는 일반적인 예에 따라 대성전을 명륜당 뒤에 두는 전학후묘 방식을 택했다. 태화루를 제외한 대성정, 명륜당, 동재와 서재는 2009년에 중수하였고, 동무와 서무, 내삼문, 전사청은 전에는 없었으나 과거의 기록에 따라 이때에 새로 만들었다. 대성전에 5성, 동무와 서무에 송조 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예주8길 14-5

영덕대소산봉수대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던 시설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에 국경이 명확해지면서 봉수 시설을 체계적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약 12㎞마다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놓았다. 그중 영덕대소산봉수대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조선시대의 통신수단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대소산 봉수대에 서면 멀리 영덕 축산항과 영해면을 조망할 수 있으며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은 임진왜란 때 경주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박의장의 넷째 아들 박선(1596~1669)이 맏형 박유를 위하여 1600년 중반에 집을 완성했다. 야산을 뒤로하고 앞들을 내려다보며 남향으로 놓여 있으며, 건물 전체가 대문채, 정침, 내삼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10칸, 측면 7칸의 ㅁ자형이고, 사랑채는 팔작지붕, 안채는 맞배지붕이다.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치면서 부분적으로 구조 변형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가운데 설주의 유구와 사랑대청의 대들보, 상부에 파련대공 등 품격을 지니고 있는 큰 규모의 종택으로 무의공의 위세와 조선 중기의 건축기법을 발견할 수 있다. 불천위 사당 앞에는 고택과 함께 세월을 보낸 370년 된 회화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길 17-4

창의문(자하문)
서울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四大門), 그 사이에 4소문(四小門)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北小門)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으로 불린 적은 없었고,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려 왔다. 1413년(태종 13)에는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길이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여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422년(세종 4)에는 군인들의 출입통로로 이용할 수 있게 하였고, 1617년(광해군 9)에는 궁궐 보수 작업 때 석재의 운반을 위해 열어주도록 하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도 길 자체는 있었던 것 같다. 창의문이 서울성곽의 문루로서 제구실을 하게 되는 것은 1741년(영조 17)에 이곳을 수축할 때였다. 당시 훈련대장 구성임이 “창의문은 인조반정(1623년) 때 의군이 진입한 곳이니 성문을 개수하면서 문루를 건축함이 좋을 것”이라고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져 비로소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56년 창의문 보수 공사 때 천장 부재에서 묵서로 된 기록으로 확인되었고, 지금 창의문에는 인조반정 때 공신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현판이 걸려 있다. 창의문의 형태는 전형적인 성곽 문루의 모습으로, 서울의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수백 년간 사람의 발길에 길들여진 박석이 윤기를 발하고 있다. 특히 빗물이 잘 흘러내리도록 문루 바깥쪽으로 설치된 한 쌍의 누혈(漏穴) 장식은 연잎 모양으로 맵시 있게 조각되어 이 성문의 건축 단장에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성문의 무지개 모양 월단 맨 위에는 봉황 한 쌍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데, 속설에 의하면 닭 모양을 그린 것으로 창의문 밖 지형이 지네처럼 생겼으므로 지네의 천적인 닭을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 118 (부암동)

정수사(강진)
정수사는 천개산에 있는 절로,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말 애장왕 6년(805년)에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세울 당시에는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에 묘덕사와 쌍계사 두 절이 있었는데, 후에 쌍계사는 수정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한동안 폐허가 되었던 것을 중종 19년(1524년) 다시 지으면서 정수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정수사에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인 정수사대웅전과 보물로 지정된 강진 정수사 석가여래삼불좌상을 볼 수 있다. 향좌측의 소조불좌상은 묵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조각승 태보와 사담에 의해 1561년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다시 1648년에 화원 승일 등 7명의 조각승에 의해 중앙과 향우측의 불상이 조성될 때 다시 중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석가여래삼불좌상 중 1존이 나머지 2존과 조성 시기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조성 양상마저 당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불상 조성 방식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대구면 정수사길 459
세렴폭포
세렴폭포는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구룡사 계곡에 있는 폭포로 구룡폭포와 함께 치악산을 대표하는 폭포로 알려져 있다. 높이 6.7m의 폭포로 2단으로 굽이쳐 내려오는 모습이 장쾌함을 선사한다. 세렴폭포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의 산책코스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용 가능한 치악산 대표 탐방코스이다. 출발지인 구룡탐방지원센터에서 구룡사~용소~대곡안전센터~세렴폭포를 왕복하는 탐방코스로 총 3km로 1시간 30분 소요된다. 특히나 구룡소까지의 황장목숲길은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장애 탐방로로 조성되어 있다. 세렴폭포까지 가는 길목에 황장목 군락지는 울창하고 시원한 산책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산림욕을 즐기며 등산을 하기에 좋다. 세렴폭포까지 가는 등산 코스는 하절기와 동절기에 따라 입산 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방문하기 전에 확인을 해보는 것이 좋다. 탐방로를 끼고 이어지는 계곡도 여름철에만 한시적으로 개방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입석사(원주)
입석사는 원주 치악산에 있는 전통사찰로 상원사와 비로봉에 오르는 중간 지점인 치악산 입석대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의 고승 의상(義湘)이 토굴을 짓고 수도하였다고 전해진다. 경내의 연화대좌와 광배와절 앞에 있는 석탑의 연꽃받침 탑신은 고려 전기의 조각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절의 서북 방향인 입석대 옆에는 마애불좌상이 있는데 원우오년경오삼월일[元祐五年庚午三月日]이라는 명문이 있다. 이 기록으로 보아 고려 전기인 1090년(선종 7) 무렵에 불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1957년 요사가 건립되었고 1992년에는 대웅전이 건립되었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황골로 707
원주 조엄묘역
문익공 조엄(1719~1777)의 묘역이다. 조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문장에 능하고 민생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지평, 수찬 등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조창을 설치하고 조세부담을 줄이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영조 39년(1763)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고구마의 종자를 가져와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 재배에 성공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 봉분 앞에는 제사음식을 차려 놓을 수 있는 상석(床石), 망주석 2기가 있고 상석에서 조금 왼쪽으로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이곳에서 100m 떨어진 묘소 진입로 쪽에 신도비가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신도비는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원주 운곡원천석묘역
운곡 원천석(1330~) 선생의 묘이다. 원천석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밝아 목은 이색 등과 함께 성리학의 보급에 큰 역할을 했으며 조선 태종의 어릴적 스승이기도 하였다. 고려말에 정치가 문란해지자 이를 개탄하면서 치악산에 들어가 숨어 버렸다. 조선왕조가 들어서 선생에게 벼슬이 주어지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켜 나아가지 않았다. 선생의 묘역 내에는 봉분 앞에 묘비와 제사음식을 차려 놓을 수 있는 상석(床石)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신도비가 있는 소박한 형태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행구동

황무진충효사
충효사는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에 위치한 사당으로, 부사과 충효공 황무진(1568~1652)을 봉안한 곳이다. 원래는 원주시 명륜동 향교 자리에 있었으나 건물의 노후로 인해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황무진의 본관은 창원이며, 자는 자룡, 호는 벽룡담이다. 그는 회산부원군 황석기의 9세손으로 원주시 봉산1동 무진고개 인근에서 태어났으며, 가세가 어려워 문막읍 반계리 골무내기 마을로 이주해 평생을 살았다. 일찍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지극한 효성으로 모셔 '하늘이 낸 효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1627년 정묘호란 당시 사한 김창일, 관설 허후 등과 함께 의병활동을 하여 절충장군 용양위 부사과에 봉해졌다. 1634년(인조 12) 그의 효행을 기려 나라에서 명하여 집 앞에 정문을 세웠다. 사당은 황무진 사후 69년이 지난 1721년(경종 1)에 건립되었다. 충효사 내부에는 황무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매년 3월 23일 생일에 헌다례가 열린다. 충효사는 원주굽이길 6코스 12.5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해당 구간은 황무진의 이름을 따 ‘황효자길’이라 불린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보문사(원주)
보문사는 신라 경순왕때 무착(無着)이 창건하였으며, 이후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보문암창기(普門庵創記)에 따르면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가 중창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중창하면서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신행결사도량으로 삼아 절 이름을 보문련사(普門蓮社)라고 불렀으며, 국형사(아랫고문절)의 위쪽이 되므로 ‘웃고문절’이라고도 한다. 1930년에 강상준이 중건하고, 1971년 주지인 이백련화(李白蓮華)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과 약사전·산신각·용왕각·요사채 등이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고문골길 270
안성맞춤랜드
안성맞춤랜드는 2012년에 개장한 대규모 부지 내에 준공된 시민공원이다. 남사당공연장, 천문과학관, 공예문화센터, 캠핑장, 사계절썰매장, 잔디광장, 야생화단지, 수변공원 및 분수광장 등 다양한 시설을 한 곳에서 이용하기 편리하며 예술과 과학, 자연이 만나는 복합 문화예술 공간인 동시에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이다. 2012년에는 세계민속축전의 개최지였다.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남사당로 198

원주 강원감영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원일로에 위치한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관청이다.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의 26개 부·목·군·현을 담당하던 강원도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1395년(태조 4)에 설치되어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됨에 따라 기능을 상실하였다. 감영이 폐지될 때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 업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1895년 이후 대부분의 건물들이 없어지고 선화당을 비롯하여 포정루, 내아 등 몇 동의 건물만 남게 되었다. 1896년 이후 강원감영 건물은 원주 진위대 본부로 사용하였고, 1907년 진위대가 해산된 후에는 원주군청으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2000년부터 강원특별자치도와 원주시에서 복원작업을 추진, 시작하여 2005년까지 일부를 복원하고 이후, 2011년 10월 선화당 뒤편에 자리 잡고 있던 원주 우체국 청사를 철거하고 후원 권역 복원에 착수하여 2018년에 복원 완료하였다. 복원이 완료된 선화당 후원은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봉래각, 채약오, 조오정, 관풍각 등의 정자, 건물들과 600년 수령의 보호수인 느티나무, 원주 출신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인 〔김금원의 여행일기〕 조형물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원주 강원감영은 전국의 감영 중에서 형태가 가장 잘 복원되어 있기로 유명하다. 복원 이후에는 매년 9월경 밤 10시까지 시민에게 개방되는 ‘달빛여행’이라는 지역 축제를 개최하여 아름다운 야경 명소로도 사랑받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원일로 85

원주 영원산성
영원산성은 원주 치악산에 자리한 돌로 쌓은 산성이다. 2003년 6월 2일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신라 문무왕 때 이 산성이 축조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려 충렬왕 17년(1291) 원나라의 합단군이 침입했을 때, 원충갑이 지역의 백성들과 함께 산성으로 들어가 지키다가 침략군을 통쾌히 무찌른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목사 김제갑의 지휘 아래 원주 일대의 주민들이 끝까지 항전하다가 함락되어 수많은 장졸들이 목숨을 잃은 비극의 현장으로 당시 치열한 격전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산성의 성벽은 동쪽과 서북쪽 일부 구간에 잘 남아 있으나 대체로 붕괴된 상태이며, 전체 둘레는 약 2.4㎞ 정도이다. 옛 기록에 의하면 성안에는 우물 한 군데와 샘 다섯 군데가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도 샘터가 남아 있다. 샘터 외에도 성안에는 건물 터, 성문 터 등이 남아 있다. 영원산성은 산성 축조방식에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산성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 주며 학술적으로는 중세 산성의 특징을 잘 나타냄과 동시에 역사적으로는 고려·조선시대를 걸쳐 전란 시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역사교육 현장의 귀중한 유적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도라전망대
도라산전망대는 송악산 OP 폐쇄에 따라 대체 신설되었으며, 북한의 생활을 바라볼 수 있는 남측의 최북단 전망대이다. 수십대의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개성의 송악산, 김일성 동상, 기정동, 개성시 변두리, 금암골(협동농장)등을 망원경을 통해 바라볼 수 있으며, 날씨가 맑은 날에는 개성공단까지 볼 수 있다. 도라산전망대는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승용차의 출입이 제한된다. DMZ관광을 하기 위해서는 비무장지대 연계관광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2018년 10월 신축이전된 도라산전망대는 실향민과 남북분단 현장을 보러 오는 외국인 관광객 등 연간 80여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명소이다. 또한 민간인 통제구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을 필참 해야 하므로 잊지 말고 준비해야 한다. (출처 : 파주 DMZ 평화관광)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제3땅굴로 310
절영해안산책로
절영해안산책로는 영도 서쪽 편 봉래산 아래 해안선을 따라 이어져 있는 산책로이다. 원래 지형이 가파르고 험난하여 접근이 어려웠으나, 시민들의 관광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공근로사업의 일환으로 2001년 해안선을 따라 산책로를 개설하였다. 경치 좋은 절영해안 산책로에는 곳곳에 있는 장승과 돌탑, 뱃놀이 터, 산책로 우측의 넓은 바다, 담벼락의 다양한 모자이크 타일 문양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2014년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5대 해안 누리길로 선정되었고 2021년 부산 안심 관광지에도 선정되었다.
부산광역시 영도구 해안산책길 52
부산대교
부산대교는 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과 중구 대교동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영도 대교가 영도의 유일한 다리로 심각한 정체 현상을 보이는 시점에서 대형 화물 수송이 가능하고 교통량을 분담하기 위해 부산 개항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되었다. 1934년 준공된 영도대교와 더불어 영도와 내륙 부산을 연결하는 동맥이자, 부산의 산업을 촉진시키는 교통로이기도 하다. 많은 난점을 해결하면서 순수 우리의 기술과 자재를 가지고 완공한 국내 최초의 3경간 연속아치교로 유명하다. 1976년 10월에 착공하여 1981년 1월 30일에 완공됨으로써 기계공업단지 및 신흥만으로 성장하는 영도지구의 물동량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산업도로 겸 임항도로로서 기능을 발휘하게 된 부산의 새로운 명물이다.
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나루로 79 (봉래동1가)

봉래산(부산)
봉래산은 영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산세가 마치 봉황이 날아드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봉래산은 산 전체가 원추형으로 노년 산지의 특색을 보이고 있다. 조봉, 자봉, 손봉 총 3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으며 사면은 가파른 편이다. 산 정상부에는 봉래산 영도 할매 전설이 서려 있는 할매의 신체인 할매 바위가 있다. 이에 따르면 봉래산에는 ‘영도 할매’가 있어 주민들을 평안하게 지켜준다고 전한다. 정상에서는 중구, 서구, 해운대구 등 부산의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주변 관광지로는 복천사, 국립해양박물관,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기념관 등이 있어 연계 관광코스로 좋다.
부산광역시 영도구 청학동

75광장
부산 영도구 75 광장은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다. 이 광장은 1975년에 조성된 이후, 부산의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로 알려져 있다. 75 광장은 넓은 공간과 함께 다양한 문화 행사와 공연이 열리는 곳으로,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또한, 광장 주변에는 편의시설과 다양한 음식점들이 있어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이다. 75 광장은 부산의 역사적인 의미를 간직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소통과 문화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성주봉자연휴양림
성주봉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아름다운 경관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주시 은척면 남곡리 성주봉(606m)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깊은 계곡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휴식을 할 수 있는 숲속의집 8동과 산림휴양관 11실이 숨기듯 절묘하게 위치해 있으며, 단체행사가 가능한 수련관 8실 및 강당, 야영데크 55개소, 물놀이장을 운영하고 있다. 천혜의 150m 암벽등반코스와 잘 정비된 산책로, 독특한 산행코스 5개소를 마련하여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하였으며, 금불초 외 15종의 야생화 18,000본 및 감초 등 100여 종의 약초를 관찰할 수 있는 약초동산과 약초길도 빼놓을 수 없는 성주봉자연휴양림만의 자랑거리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성주봉로 3

견훤산성
산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한 산성으로, 견훤이 쌓았다 하여 견훤산성이라 불린다. 이 산성뿐만 아니라 상주지역의 옛 성들이 견훤과의 관계는 삼국사기에 견훤과 그의 아버지 아자개가 상주 출신이란 기록 때문이다. 견훤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신라의 장군으로 있다가 이곳에서 군사를 양성하여, 신라 진성여왕 6년(892)에 반기를 들고 신라의 여러 성을 침공하다가 효공왕 4년(900)에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이 산성은 대체로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산세와 지형을 따라 암벽은 암벽대로 이용하고, 성벽을 쌓을 필요가 있는 곳에만 성을 쌓았기 때문에 천연 절벽과 성벽이 조화를 이룬다. 성의 4모서리에는 굽이지게 곡성을 쌓았는데, 동북쪽과 동남쪽으로 난 2곳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다. 보은의 삼년산성(사적)과 쌓은 방법이 비슷한데, 정교하게 쌓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삼국시대 산성의 하나이다. 견훤산성 주변을 1시간 정도 가볍게 돌아볼 수도 있으며 백두대간 길을 이어 헬기장, 문장대까지 이어지는 속리산 등산 코스도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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