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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21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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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서원(창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운암서원(창원)

우곡 박신윤 선생의 효행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1702년(숙종 28) 향촌 사림들이 조정에 상소하여 운암사를 창건하였다. , 의 기록에 의하면 운암서원은 1702년 사당으로 건립되었다 1844년(헌종 10)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폐원되고 8년 뒤인 1876년(고종 13)에 중건되어 밀양박씨 문중의 재실로 사용되어 오다가 1949년부터 석채를 봉행하였다. 2004년 서원을 복원하고 제향 인물도 늘려 고려 때 판서를 지낸 송은 박익, 송은의 아들 박소, 임진왜란 때 공신인 박홍정을 추가 배향하였다. 박신윤을 위하여 사우 앞 동편에 따로 별묘를 설치하였다. 외삼문·강당·내삼문·사우가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강당 앞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있으며 사우 앞 동쪽과 서쪽에는 별묘와 전사청이 있어 전학후묘의 구조를 이룬다. 사우인 경현사 3칸, 강당 5칸, 동재인 권선재와 서재인 권학당 각 3칸, 내삼문·외삼문 각 3칸, 별묘와 전사청 각 3칸이며, 강당의 뒤편을 개폐식으로 설계하여 날씨가 안 좋을 때는 뒷문을 열고 사당에 참배할 수 있게 하였다.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사화로 311

김해 월봉서당
역사관광경상남도

김해 월봉서당

김해 월봉서당은 1917년에 세운 유학 교육 시설이다. 처음에는 현재 관동중학교가 있는 곳에 세웠으나 1917년에 지금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이곳에서 영남 지역 기호학파의 맥을 이어 학생들을 가르친 월헌 이보림 선생을 기리기 위해 사당인 명휘사를 세웠다. 월봉서당은 앞면 다섯 칸, 옆면 두 칸의 규모로 홑처마를 갖추었고 기둥이 직접 보를 받치는 납도리집이다. 넓은 방과 높은 천장 등이 근대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곳에는 조선 후기 유학자인 간재 전우의 초상화, 편지, 연보와 석농 오진영의 편지, 연보, 문집, 강록, 유기 등 891점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덕정로77번길 11-16 (관동동)

위계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위계서원

위계서원은 이인형(李仁亨), 이의형(李義亨), 이령(李翎), 이현(李顯), 이응성(李應星)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으로 1844년(현종 10)에 창건하였다. 고성 위계서원은 계곡 상류에 남향하여 지어졌다. 경사면의 낮은 곳에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당을 배치하고 높은 곳에 신주를 모시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을 갖추고 있다. 위계서원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팔작지붕의 목조 와가이다. 가운데 3칸을 대청으로 하고 좌우에 방을 두어, 배우는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경내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인 숭덕사, 내삼문, 강당의 전면 좌우에 우진각지붕의 익랑채, 정문으로 솟을대문인 유인문이 배치되어 있다. 해마다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석마2길 186

의양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의양서원

의양서원은 의령군 유곡면 칠곡리에 있는 서원으로, 고려말 생육신의 한 사람인 추강 남효온 선생 등 3인의 선현을 제향 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으나 해방 이후 복원하여 의양서당이라 하였다. 서원의 주향은 남효온 선생으로 본관은 의령, 자는 백공, 호는 추강·행우·최락당·벽사이며, 시호는 문정이다. 또한 김종직의 문인이며, 김굉필·정여창 등과 함께 수학하였다. 1513년 소릉 복위가 실현되자 신원되어 좌승지에 추증되었고 1782년(정조 6)에 다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원호·이맹전·김시습·조려·성담수 등과 함께 생육신으로 불렀다.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청정로16길 57-57

하동 경현당(인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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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경현당(인천서원)

하동 경현당은 일명 ‘인천서원(仁川書院)’이라 불려진다. 인천서원은 원래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 남포마을에 위치했다. 죽당 최탁(1598~1645)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강학하던 곳이었다. 숙종 36년(1710년) 외손 주담 김성운(1673~1730) 선생을 중심으로 지역유림에서 죽당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고자 건립하였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최탁 선생의 9대손인 수당 최경병(1865~1936) 선생을 중심으로 후손과 지역유림이 주축이 되어 1892년 ‘경현당유계(景賢堂儒稧)’를 조직하고, 1903년 죽당선생의 태지인 인천중촌마을에 건립되었다. 경현당 건립은 위국의 순간에도 불의에 굴하지 않은 죽당선생의 정신을 이어받고 후학을 강학하고자 함이다. 1960년 경현당 뒤에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경인사를 축조하였다. 수위로 세종조의 학자인 정재 최득경 선생을 모시고, 임진왜란 진주성싸움에 순절한 모산 최기필(1562~1593) 선생, 죽당 최탁 선생, 주담 김성운 선생의 위패를 배향하였다. 매년 음력 3월 21일 후손과 지역유림에서는 향사를 지낸다. 인천서원은 모두 4채로 이루어진 간소한 서원공간 구성에 전학후묘의 서원구성을 취하고 있다. 전면에 3간의 문간채와 강학공간인 경현당이 있고, 직선축의 후면에는 3간의 내삼문과 사당인 경인사가 후묘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경현당은 전면 5간의 양측에 퇴가 있으며, 측면 1.5간의 건물로서, 구성상 5간의 맞배집의 양 옆에 전면 반간씩의 공간을 증축하여 전면·좌우측 툇집의 구성을 취하고, 좌우측의 퇴에는 부섭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면은 전면에 퇴를 두고, 중앙간과 그 동측의 간으로 2간의 마루를 마련하였고, 양측에 각 2간씩의 온돌방을 두었다. 가구는 소로수장한 주두집에 3량 구조로 구성하였고, 마루 중앙의 월간보 위에는 복원반형의 대공을 두었다. 경인사는 전면에 퇴를 두고 후면에 3간 1실의 사당을 둔 묘우로서, 맞배집에 양측면에 박공풍판이 달려있고, 공포는 이익공에 봉두를 얹은 화려한 구성을 취하고 연화머리초의 모루단청을 하였다.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중촌길 51-22

정산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정산서원

함양군 지곡면 보산리에 창립된 정산서원은 고려 말 간숙공 허주, 개령 현감을 지낸 허방우, 조선 후기의 남인 문정공 허목, 허방우의 후손이며 조선 후기 학자인 삼원당 허원식을 제향 하기 위하여 하양허씨 문중에서 1951년에 건립하였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제향하고 있다. 함양 정산서원 입구에는 철제 홍살문이 세워져 있으며, 별도의 출입문 없이 바로 강당으로 연결된다. 정산서원의 강당은 정면 6칸, 측면 2칸 형태이다.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원의 뒤편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오르면 맞배지붕 형태의 사당이 자리 잡고 있고, 사당 안에는 위패가 모셔져 있다. 서원 내에는 급천재 중건과 관련한 급천재중건칠사 공적비가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정취길 80-21

중동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중동서원

숙종 17년(1691)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알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이개와 이우칭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책임져 왔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그 뒤 복원하였다. 경 내 건물로는 3칸의 충의사, 신문, 8칸의 강당, 3칸의 망월루, 5칸의 만서정사, 3칸의 화수정, 고사 등이 있다. 묘우인 충의사에는 이알평을 주벽으로 이개와 이우칭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과 9월 중정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충효로 46

증산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증산서원

조선 말기 창건된 서원으로 충무공 창계 서응시 선생(?~1592)을 배향하는 곳이다. 서응시 선생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칠백 의사 중 한 사람이며 전란 후 나라에서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의 교지와 충렬의 시호를 내렸고 금산의 칠백의총에 함께 묻혔다. 서원은 목조건물로 강당 4칸, 별묘 3칸, 창고 3칸으로 구성하였고 매년 음력 2월 8일에 유림들과 함께 향례를 올리고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원계증산길 57-11

창렬사
역사관광경상남도

창렬사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순절한 의병장 김천일 등을 제향하기 위하여 건립된 사당이며,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에 있다. 1593년(선조 26) 서울에서 물러나 부산 등지에 집결되어 있던 왜군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하여 10여만의 대군으로 진주성을 공격하였는데 이때 김천일 등은 끝까지 성을 사수하다가 순절하였다. 이에 임진왜란이 끝난 뒤 관민이 협력하여 그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사우를 세웠으며 1607년 사액 되었고 1712년(숙종 38) 병사 최진한에 의하여 중수되었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대상에서 제외되어 존속되었다. 창렬사의 정사에는 충무공 진주목사 김시민을 필두로 하여 문열공 창의사 김천일, 무민공 충청도병마절도사 황진, 충의공 경상우병사 최경회, 충의공 장윤, 효열공 고종후, 증이조판서 유복립 등 모두 7분을 열향하고 있고 창렬사에는 모두 39명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첨두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첨두서원

첨두 서원은 임진왜란 때 왜적과 맞서 공을 세워 선무 원종 이등 공신에 책록된 노경종을 추모하여 교하 노씨 후손들이 건립한 서원이다. 1981년 향교 유림에 의해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서원으로 승격된 시기에 대해서는 기록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 1731년에 서원으로 건립되었다가 고종 시기 서원 철폐령에 의해 폐쇄되었으며, 1947년 복원 이후 1950년에 소실되었다가 1955년에 재건되었다고 한 기록이 있는가 하면, 첨두재로 건립되었다가 1981년 유림의 공의를 얻어 서원으로 승격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첨두서원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목조 건물로 팔작지붕의 구조이다. 첨두서원의 강당 서쪽에 사우가 배치된 이른바 서묘동학의 구조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로 63

청계서원(합천)
역사관광경상남도

청계서원(합천)

청계서원은 우옹 이희안(1504∼1559)과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전치원, 이대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희안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김안국의 문인이다. 몇 차례 관직에 나갔으나 사직하고, 조식과 사귀며 학문을 닦았다. 명종 19년(1564)에 처음 지었다. 이후 고종 6년(1869)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그 뒤에 복원하였다. 이 서원은 왼편과 오른편에 동재·서재가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서당과 대문간채만 남아 있다. 서당은 앞면 5칸, 옆면 1칸 규모이며, 앞뒤로 퇴칸이 있다. 왼쪽부터 방과 마루 2칸, 방 2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왼쪽 방 뒤에만 퇴칸이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2길 23-61

청계서원(진주)
역사관광경상남도

청계서원(진주)

청계서원은 1833년(순조 33)에 건립되었으며,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정신열 선생과 고려 말 물레를 개발하여 백성들에게 따뜻한 목면(목화) 옷을 입게 한 정천익 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이다. 본래 대평면 마동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된 것을 1961년에 지금의 자리에 복원하였다. 1961년 후손들이 복원 사업을 시작하여 경덕사와 정교당을 건립하여 봉남서당이란 이름으로 그 맥을 이어오다 1993년 숭은사와 진사청을 재건하고 청계서원으로 복원하였으며 서쪽 경덕사에는 정신열 선생의 위패를, 동쪽 숭은사에는 정천익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매년 음력 3월 15일 사당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본성동)

청계서원(함안)
역사관광경상남도

청계서원(함안)

함안군 칠서면 청계 1길 116-12번지에 소재하는 청계서당은 1670년(현종 11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하나, 이후 1918년에 다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로 인해 서당의 강당구조 및 창호 등에서 근대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온돌방 앞의 띠살창과 청방간의 분합문은 전통건축에서 볼 수 없던 것으로 개화기 이후 외래 건축문화와 주의식의 변화가 반영되어 나타난 것으로 전통건축의 변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소박한 건축물에서 근대성과 지역성을 잘 반영된 건물이다. (출처 : 함안군 문화관광)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청계1길 116-12

청계서원(함양)
역사관광경상남도

청계서원(함양)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청계서원은 조선 연산군 때 학자인 문민공 김일손(1464∼1498)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1921년에 옛 청계정사의 터에 세웠다. 김일손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그의 스승을 비롯한 영남학파 학자들과 함께 조의제문사건에 연루되어 무오사화로 희생되었다. 글에 뛰어났으며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비판하였다. 연산군 1년(1495)에는 ‘청계정사’를 세워 유생을 가르쳤고, 광무 10년(1905) 유림들이 그 터에 유허비를 세웠다. 그 뒤 1915년에 건물을 원래 모습으로 고쳐 ‘청계서원’이라 하였다. 구경재와 동재, 서재, 홍남문, 솟을삼문 등의 건물이 남아 있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수동2길 74

청곡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청곡서원

조선시대 단성현에 속하였던 산청 청곡서원은 1702년(숙종 28년)에 일신당 이천경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사림이 창건했으나, 1868년(고종 5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됐다. 이후 후손들이 1896년에 강당을, 1924년에 사당을 각각 중건했다. 이천경(1538~1610)은 남명 조식(南冥 曺植)의 문인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의 봉양을 위해 관직을 사양했으며, 저서로 ‘일신당집(日新堂集)’이 있다. 청곡서원은 중심축에 따라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이 위치하는 전학후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교육공간인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활주를 많이 사용하는 경남 서부지방 건축의 지역성을 잘 보여준다. 제향 공간인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절충식 공포를 사용하였으며 치장과 화려함을 추구한 근대기 건축 기법이 나타난다. 서부 경남을 중심으로 활동한 지방 목수 기법이 반영된 특색 있는 문화유산으로 건축·학술적 가치가 높아 2024년 6월 27일에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청현로99번길 32-19

칠탄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칠탄서원

단장면 미촌리에 있는 칠탄서원은 임진왜란 때 밀양 석동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충위를 덜친 선조 때 울산판관과 영천군수를 지낸 오한 손기양을 봉안하던 사당이었다. 헌종 10년(1844년) 고을 사림들의 주장으로 오한이 만년을 보내던 별업 경내에다 청절사를 세웠다가 그 후 칠탄서원으로 편액 하였는데 이때 봉안문과 상향축문은 정재 유치명이 지었다. 고종 5년(1868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고 후손들에 의하여 서원을 정으로 편액 하였으며 1914년에 청절사가 있던 자리에 칠탄서원유허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활성로 313-1

태암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태암서원

태암서원은 담양 전씨 문원공 전조생과 그의 후손 전자수를 추모하기 위해 유림과 후손들이 세운 서원이다. 1789년(정조 13년)에 유림과 담양전씨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해체되었다가 다시 세웠다. 전조생은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학자로 학문과 문장에 뛰어났던 분이다. 고려 찬성검의부사로 있을 때 충혜왕으로부터 왕자 2인을 부탁받고 정학에 힘썼으며 이어 공조전서를 지내기도 하였다.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였을 때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신하의 도리를 지키며 두문동에 들어간 72현 가운데 한 분이다. 또 함께 배향된 전자수는 문원공 조생의 손으로 일찍이 벼슬에 나가 광정대부첨의평사 겸 진현관대제학으로 지냈다. 경내의 건물로는 별묘와 강당 등이 있다. 별묘는 영정을 모신 곳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강당은 유생을 교육하고 유림들이 모임을 갖던 장소이다. 앞면 6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가운데 3칸에 마루를 두고 양 옆에는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매년 음력 2월 말 정일(丁日)과 10월 10일의 춘추 2회에 걸쳐 유림에 의한 향사가 봉행된다.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덕암로5길 5-2

평천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평천서원

산청군 생초면에 위치한 평천서원은 1694년(숙종 20)에 창건하였다. 창건된 후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서원에서는 배현경(裵玄慶), 배신침(裵愼甚), 배세겸(裵世謙) 등 세 사람을 배향하고 있다. 본 서원 일대가 1990년대에 대진간 고속도로 교착지로 편입하게 되어 있어 생지봉 임당선생묘소(生旨峰 林塘先生墓所) 산록으로 이건하고 평천서원으로 복원하였다. 평천서원기문에 의하면 본 서원은 1788년( 정조 12)에 열읍 사림의 공의로 산음현 서모음(山陰縣 西毛音)에 배신침과 배세겸 양 부자를 봉향하기 위하여 창건하였으며, 1819년(순조 19)에 배현경을 추향 하였다고 하였다.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왕산로 439-13

표충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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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서원

표충서원은 본래 무안면 중산리 웅동의 현 대법사 자리에 있던 표충사가 그 시초였다.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서산, 송운, 기허 3인의 대사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향사하던 건물이었으나, 조선 말기에 관리 소홀로 퇴락하자 헌종 5년(1839) 정월에 영정사(지금의 표충사) 주지인 월파당 천유가 밀양부사 심의복과 그의 아들인 순상 심경택의 힘을 빌리고 예조의 승인을 얻어 지금의 위치인 단장면 구천리 영정사 경내로 옮기고 편액을 표충서원이라 고쳐 걸었다. 1871년(고종 8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83년(고종 20년) 사림의 요청으로 복원되었으며, 그 후 팔상전 자리와 현 종무소 자리 등으로 수 차례 이건되다가 근년에 들어서 현 유물관 부근에 자리 잡게 되었다.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홍포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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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포서원

함안군 칠서면에 있는 홍포서원은 1782년(정조 6)에 윤환, 윤자당, 윤지, 윤석보, 윤탁연 등 칠원윤씨 5인을 향사하기 위해창건한 서원이다. 조선시대 관향에 건립된 서원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칠원지역의 대표적인 문중서원이다. 홍포서원은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4년에 복설 되었다. 원래 서원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홍포서원 유허비가 세워져 있으며, 계내리 수곡 상포재 앞의 건물은 1980년 7월에 중건된 것이다. 「홍포서원중건상량문(鴻浦書院重建上梁文)」은 종약장 윤홍근이 지었다. 서원은 외삼문과 강당, 내삼문, 사당인 홍포사로 구성되어 있다. 홍포사는 강당의 우측에 자리하고 있으며, 홍포사 앞에는 ‘홍포사오선생행적비(鴻浦祠五先生行績碑)’가 세워져 있다. 또 홍포사 옆에는 ‘균시문(均視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별도의 출입문을 내어 재실인 상포재를 추가로 건립하였다. 상포재 뒤쪽으로는 칠원윤씨 시조 윤시영 등의 묘역이 있다. 매년 3월 상정일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공단북안길 66

화산서원(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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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서원(함양)

함양군 수동면에 위치한 화산서원은 회헌 임대동 선생을 봉안하고 매년 춘추 중정일에 향례를 모시는 서원이다. 후에 회암 임종인 선생과 남계 임희무 선생을 봉안하였다. 회헌 임대동 선생은 1474년 갑오식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용성교수, 임실현감을 역임하였다. 또한 유림면 그믐골에 회곡정사 강학소를 짓고 후학을 교육하여 인재를 양성했다. 회암 임종인 선생은 1486년 병오식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 1498년 무오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성균관 학정으로서 한림원에 들어갔다. 1988년에 몽호정을 짓고 춘추로 향례를 올렸다. 남계 임희무 선생은 1558년 무오별시에 급제 승정원 주서, 홍문관 정언, 성균관 학유, 사헌부 지평과 장령, 사간원 정언, 좌·우승지 하였다. 유적으로 망북대와 후학을 양성했던 연산정사가 있다. 서원 건물로는 심원문, 상현사, 경회당, 모의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원문은 대문이며, 정면 3칸의 상현사는 사당, 경회당은 강당, 모의재는 유생들이 기숙사로 사용한 곳이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두 차례 제향을 올리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수동내동길 7-12

황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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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곡서원

황곡서원은 1633년(인조 11)에 창건하였으며, 당초 검계에 검암정사를 짓고 학문을 연구할 때 원근각지에서 준수한 선비들이 경전을 가져와 가르침을 청하였다. 이에 따라 후진양성을 위해 황곡서당을 중수하여 황곡서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871년(고종 8)에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가 1981년에 다시 복원 및 정비하였다. 함안향교 유림 및 각 문중대표 주관으로 낙성고유식을 거행하였다. 건물의 공간적인 구성은 풍수지리학적 지형지세에 따라 길지 위에 사당, 서원, 협문 등이 배치되었다.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상검길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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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서원

조선 중기의 학자 한강 정구 선생을 추모하고자 그의 문하생인 장문재가 지은 것으로 전한다. 서원은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지고 정자인 관해정만 남아 있다. 관해정 앞에는 수령 440여 년된 은행나무가 있으며 정구 선생이 손수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정구 선생과 그의 문하생인 허목 선생의 향사를 모시고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북23길 22 (회원동)

효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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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산서원

산청군 차황면에 위치한 효산서원은 경주 김씨인 김자수(金自粹), 김영유(金永濡), 김상례(金商禮)를 배향하기 위해 1991년에 창건된 서원이다. 당시 홍경래난의 여파로 속세를 떠나 산골에서 쓰라린 고통과 험운을 겪어 가면서도 어버이를 섬기며 숭조 의념이 남 달라 전대의 관망을 매듭짓고 자연과 풍영을 벗 삼아 초야에 묻혀 살면서 벼슬에 나가지 않는 순결한 위인이 살아온 곳이다. 이때 잉승된 사문으로, 언제나 변함없는 가범과 예절이 완연하고 정민함에 금세에 인감이 되는 본손 세환이 유림의 후원에 힘입어 사원을 준성하여 삼현을 모시고 향예하고 있다. 서원을 구성하는 건축물로는 4간 팔작지붕인 효산서원이 있으며 경모사 근사문 상덕문 봉월루 삼묵재 내성문 춘강정사 복원문 등 총 9채의 가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상남도 산청군 차황면 신차로1480번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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