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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20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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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덕원서원

덕원서원은 세조(재위 1455~1468) 때 이시애의 난을 맞아 당시 선봉장으로 활약하다가 장렬히 전사한 강열공 차운력, 문절공 차원부, 문목공 차포온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덕원서원은 숙종 18년(1692) 세웠는데, 처음에는 호남 승평에 세워 오천서원이라 했다. 그 뒤 지방 유림이 순조 6년(1806)에 청덕면 성태리로 옮겨지어 덕원서원이라 하였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자진 철폐하였고, 고종 39년(1902) 지방 유림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원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으며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청덕면 성태길 81

덕천서원(거창)
역사관광경상남도

덕천서원(거창)

봄이면 서원 마당 가득 흰 목련과 연분홍 벚꽃이 한데 어우러져 꽃빛 가득한 정원으로 변하는 거창의 대표 봄꽃 명소다. 덕천서원은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를 꾀하다 사사된 세종의 여섯 번째 아들 금성대군과 충장공 이보흠을 기리기 위해 1979년 영천 이씨 문중이 거창읍 장팔리 곰실마을에 건립한 문중 서원이다. 전통 서원의 격식을 갖추면서도 벚꽃공원 안에 조성된 열린 공간으로, 정면 4칸·측면 1칸 규모의 본당 뒤로 벚꽃과 목련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진다. 서원 옆 소류지는 잔잔한 수면 위에 벚꽃과 버드나무가 반영되어 이른 아침 물안개와 함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인근 건계정 산책길·병곡마을 수양벚꽃길과 함께 거창의 봄꽃 여행 코스로 즐기기 좋다.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장팔길 594

도계서원 유허비
문화관광경상남도

도계서원 유허비

도계서원은 군 서쪽 10리 지점인 파수리 원촌동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이숙, 이휴복, 박진영, 조익도 등 4명의 공신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780년(정조 4)에 창건되었다. 그 후 1871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는데 현재 원촌마을에 거주하는 이양숙 씨 주택 부근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유허비만 남아있다.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

도곡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도곡서원

도곡서원은 1701년(숙종 27) 함양 지역 유림이 함양 출신 선현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으며, 조승숙, 정복주, 노숙동, 노우명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배향하였다. 그 뒤 노사예와 정수민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에 훼철된 뒤, 2001년에 다시 복원하였을 때는 조선 후기 학자 정덕하를 추가 배향하였다. 도곡서원의 강당인 수성당(정면 4칸의 팔작지붕), 사우인 경덕사, 양재에 해당하는 존양재와 진수재가 갖추어져 있다. 도곡서원은 구천서원과 더불어 조선시대 함양의 유력 문중의 인물들을 배향함으로써 문중 간의 연합을 도모한 서원이라는 특징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병곡지곡로 859

도남서원(창원)
역사관광경상남도

도남서원(창원)

창원시 동급 화양리에 위치한 도남서원은 김귀의 유덕을 기리는 김해김씨 문중서원이다. 현대에 세워진 문중서원으로서 향사나 강학보다 후손의 돈목을 더 큰 목적으로 삼으면서 그 구심점을 선조에게서 찾았다. 도남서원은 문중의 주장에 따르면 사우의 창건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오래전에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사원 복원은 1976년 강당과 함께 건립·복원되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서원의 강학 기능이 중단된 현대에 건립된 것으로 전통적인 서원 건물의 배치와 구조는 따르지 않았다. 정문인 불사문은 1칸 규모의 솟을대문 형식이며, 일반 가옥의 대문과 같다. 강당은 정면 4칸에 유리문을 덧댄 현대식 건물이다. 사당의 정문인 유정문 역시 일반 가옥 출입문과 유사하다. 구봉사는 정면 3칸으로 이루어졌다. 제사는 후손들에 의해 받들어지며, 향사일은 3월 7일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동읍로401번길 68

도봉서원(창원)
역사관광경상남도

도봉서원(창원)

도봉서원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명윤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713년(숙종 39)에 사당을 짓고 1775년(영조 51) 도봉사를 건립하였으며 1844년(헌종 10) 도봉서원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되었고 1887년(고종 24)에 다시 별묘와 재실을 중건하여 1974년에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별묘에는 선조의 하사품인 장도(쌍검) 등 동산공 김명윤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도봉서원 내에는 충현사·신문·강당·동재·외문 등이 있고 충현사에는 김명윤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으며 강당은 여러 행사와 화합에 사용된다. 향사는 매년 3월 13일 한 차례만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길16번길 5-11

도산서원(고성)
역사관광경상남도

도산서원(고성)

고성 도산서원은 1623년에 왜적을 물리친 소호 최균(蘇湖 崔均)과 소계 최강(蘇溪 崔堈) 형제의 공을 높이 새기고 이것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방 유지들이 창건한 사액서원으로 1623년에 창건되었다. 1713년에 왕으로부터 현판, 노비, 서적 등을 하사 받는 사액 서원이 되었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그 후 1870년에 다시 고쳐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성 도산서원은 구릉의 남쪽 경사면 끝자락에 남서쪽을 향해 있다. 경사면의 낮은 곳에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당을 배치하고 높은 곳에 신주를 모시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 형식이다. 강당 영역은 강당을 중심으로 정면에 외삼문을 두고 좌우에 서재와 동재를 튼 ㅁ자형을 배치하였다. 사당은 숭의사(崇義祠)이며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규모이다. 지붕은 지붕면이 양면으로 경사를 짓는 맞배지붕이다. 정면에 툇간을 두고 배면에 통칸 마루방을 두어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처마와 기둥 사이에 짜 맞추어 댄 나무인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의 부재를 끼운 익공 형식을 갖추고 있다.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서까래를 놓도록 하는 도리는 3개이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5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네모꼴의 처마에 세모꼴의 지붕을 올린 팔작지붕이다. 양지문은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이며 가마를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좌우 행랑보다 지붕을 높게 설치한 솟을대문 형식이다. 양지문 왼편에 위치한 행랑채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중앙 2칸의 마루를 두고 좌우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을 각각 1칸씩 배치하였다. 공포 형식은 소로수장집이며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서까래를 놓도록 하는 도리는 3개이다. 동재는 흥학재(興學齋)이며 정면 4칸, 측면 1.5칸의 규모이다. 서재는 진수재(進修齋)이며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규모이다. 지붕은 모두 팔작지붕이다.

경상남도 고성군 구만면 화림3길 88

동산서당(창녕)
역사관광경상남도

동산서당(창녕)

창녕 동산서당은 사간 노선경, 이조참판 노극홍, 월촌 노세후, 이조참의 노해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829년 창건했다. 사액은 받지 못했으며, 1868년 고종 때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 후 1923년, 후손과 사림들이 그 유허지에 집을 세워 동산서당이라 이름 붙였다. 동산서당의 건물로는 재성재, 고경당, 유의문, 구인루가 있다. 동산서당은 실용성과 경제성을 중시한 근대기에 건축된 서원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당시 다양하게 발전하던 한옥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근대기 서원이라는 점에서 건립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학술적 연구대상으로 보존가치가 있다. 동산서당 소장 문화재로는 광산노씨세보, 한강연원록, 동산서당 소장책판, 창녕 동산서당 강당(이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등이 있다.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이방로 565-5

두곡서원(창원)
역사관광경상남도

두곡서원(창원)

창원시 마산회원구 두척동에 위치한 두곡서원은 현종 12년(1864)에 창건하였고 고종 4년(1867에) 옮겨 세웠으며 통일신라시대 학자 최치원 선생을 배향하는 곳이다. 최치원 선생은 9세기 통일신라의 학자로 중국 당나라에서 토황소격문으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신라로 돌아온 뒤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정치 개혁을 추진하였다. 유교·불교·도교에 모두 이해가 깊었고, 유·불·선 통합 사상을 제시하였으며 수많은 시문을 남겨 한문학의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두곡길 54 (두척동)

두릉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두릉서원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음촌마을에서 내곡으로 가는 길옆에 두릉서원(杜陵書院)이 있는데 이는 조선 순조 32년 (1832)에 고향을 생각하는 사림(士林)들이 안민(安慜), 안희(安憙), 안신갑(安信甲) 세분을 봉 향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고종 5년(1868)에 철폐된 후 1930년에 중건(重建)을 거쳐 1984년 복원(復元) 하였다.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두곡길 145

목계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목계서원

목계서원은 조선 숙종 때 사림이 김담(金湛)과 이조(李晁)를 두능서원(杜陵書院)에서 봉 향하다가 서원이 훼철되자 1778년(정조 2)에 유림들이 목계서원을 지어 다시 봉향 하였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된 것을 1883년(고종 20)에 강당을 중수하였으며, 1983년에 완전히 복원되었다. 이 서원을 ‘목계정사(牧溪精舍)’로도 부르는 것은 훼철을 피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현재 편액은 목계정사(牧溪精舍)이고 건물 한 채인 재실만 있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석대로525번길 40-13

물계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물계서원

물계서원은 1712년(숙종 38)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성송국, 성삼문, 성담수, 성수침, 성운, 성제원, 성혼, 성윤해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성여환, 성희, 성수경, 성문준, 성람, 성여신 등을 추가 배향하고, 1814년(순조 14) 성안의, 1857년(철종 8)에 성준득을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89년 서원을 복원하고 1997년에는 영의정 문경공 성석린, 진사 성언충을 추가 배향하였다. 물계서원에는 서원의 유래와 배향 인물 19명의 내력이 새겨져 있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인 물계서원 원정비가 있다.

경상남도 창녕군 대지면 모산1길 109-36

미양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미양서원

경상남도 김해에 위치한 미양서원은 조선 전기의 학자인 서강 김계금 선생은 기리고 있다. 미양서원에는 서강 김계금 일고 책판(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을 보관하고 있다. 서강 김계금 일고 책판은 학자 김계금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1915년에 후손인 김규동이 제작한 것이다. 문집에는 선생이 쓴 시 세 수가 전해지는데, 모두 어린 임금 단종에 대한 그의 충성심을 노래하고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진영로 430-16

반곡서원(거제)
역사관광경상남도

반곡서원(거제)

반곡서원은 우암 송시열선생이 1679년(숙종 5년) 거제도로 귀향을 왔을 때 머물렀던 곳에 세워진 서원이다. 거제 유림 윤도원, 옥삼헌 등이 문정공 우암 송시열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704년(숙종 30년) 창건하였으며, 그 후 죽천 김진규, 몽와 김창집, 학공 이중협, 문충공 민진원, 정문공 김수근 등을 추가로 배향되었다.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으나 1906년 거제 유림에서 서원의 옛 터에 제단과 반곡서원유허비를 세우고 매년 가을에 단제를 봉행하였다. 1971년 거제향교 전교 윤병재가 서원의 복원을 발의하고 유림총회에서 1974년 우암사를 중건하고, 인접 지역 고택 3채를 철거하여 나온 부재로 강당을 보수하여 개축하는 등 옛 모습을 되찾았다. 2010년부터 3년간의 대대적인 복원 사업을 진행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동록당은 추사 김정희가 군자라 칭송했던 동록 정혼성을 배향한 곳이다.

경상남도 거제시 동상3길 31-8 반곡서원

산청 배산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산청 배산서원

도천서원에 모시고 있던 청향당 이원과 죽각 이광우를 따로 모시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원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며, 이황 선생과 학문의 뜻을 같이 하였으며, 1546년에는 나라에서 벼슬을 내렸으나 거절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배산서원은 1771년에 덕연사만 세워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철거되었다. 그 뒤 1919년에 새로 지어 배산서당이라 하였다. 서원 안에는 문묘, 도동사, 강당이 있고, 문묘는 앞면 세 칸, 옆면 한 칸 반 규모로 공자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도동사는 앞면 세 칸, 옆면 한 칸 반 크기의 건물로 청향당 이원·퇴계 이황·남명·죽각 이광우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안에는 중국 학자인 강유위가 쓴 현판과 백범 김구·성재 이시영·우천 조완구·백암 박은식 선생의 배산서당 낙성축문 현판을 보관하고 있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배양길 16

역사관광경상남도

봉산서원(산청)

봉산 서원은 지리산 자락의 작은 마을인 어은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1654년(효종 5) 봉산사로 창건 후 어은 정사로 변경했고, 1988년에 봉산사를 신축했다. 건물은 봉산사(鳳山祠), 강당(講堂), 고직사(庫直舍), 내삼문(內三門), 솟을대문이 있다. 배향 인물 어은 오국헌(漁隱 吳國獻 1599~1672)은 승훈랑(承訓郎)과 호조좌랑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사서해의(四書解義), 역계해의(易繫解義), 유후귀감(遺後龜鑑), 어은유고(漁隱遺稿)가 있다. 해주 오씨의 선조 어은 오국헌이 강학했던 곳이다.

경상남도 산청군 생비량면 지리산대로4119번길 37-20

삼강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삼강서원

낙동강가 민씨 오우정(五友亭) 안에 있는 서원으로 연산군, 중종 때 학자인 민구령(閔九齡), 민구소(閔九韶), 민구연(閔九淵), 민구주(閔九疇), 민구서(閔九敍) 등 5형제를 배향하였다. 삼강서원은 조선 연산군·중종 때의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였던 민구령(閔九齡)이 1510년(중종 5)경에 삼랑루(三郞樓)가 있던 자리에 정자 하나를 짓고 아우인 민구소(閔九韶), 민구연(閔九淵), 민구주(閔九疇), 민구서(閔九敍)와 더불어 5형제가 베개를 나란히 하여 기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실천하여 형제간의 우애가 출천(出天)하여 향도에 그 평판이 자자하였다. 1547년(명종 2)에 당시의 경상도 관찰사 임호신(任虎臣)이 그 명성을 듣고 이곳을 찾아와 사실을 확인한 다음 조정에 벼슬을 천거하는 한편 오우정(五友亭)이라는 현판을 써서 걸었다. 그 뒤 1563년(명종 18)에 이곳 향중의 사림들이 민씨 5선생의 우애와 덕행을 추모하고 정자 안에 오우사(五友祠)를 지어 병향(幷享)하였으며 경내에 따로 기사비(紀事碑)를 세웠다. 후에 오우사는 삼강사(三江祠)로 바뀌었고 다시 삼강서원으로 승격하여 조두(俎豆)의 위의를 더욱 갖추었다. 정자와 사당은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가 그 뒤 자손들에 의하여 복원되었고 이후 수백년 동안 여러 차례 흥폐를 거듭해 오다가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1897년(고종 34)에 후손인 민영지(閔泳智), 민영하(閔泳夏) 등이 문중의 의논을 주도하여 사당에 있던 자리에 큰 집을 새로 짓고 오우정의 현판을 걸어 보존하였다. 1904년에 일부를 중건하였으며 1979년에 14세손 민병태(閔丙兌)의 주선으로 후손들이 협력하여 정자의 규모를 확충하고 사당을 다시 지어 향중 유림들의 공의로 삼강서원의 현판을 걸고 향사림의 주관으로 서원 향사를 받들고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1길 32-9

역사관광경상남도

상봉서원

상봉서원은 1696년(숙종 22)에 황협(黃悏, 황열(黃悅) 등 8현을 추향하기 위하여 칠원면 유원리에 설립한 서원이다. 1868년(고종 5)에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자 용산서당을 중건하여 석채례(釋菜禮)를 지내다가 1935년 상봉서당을 용산사(龍山祠)의 옛 터에 중건하여 석채례를 속행하였다. 광복 후 1984년 사림과 후손의 협의 하에 서원으로 중건하고 1985년에 용산사를복원하여 황협과 황열 두 사람을 배향하게 되었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1길 32

서계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서계서원

산청읍에 위치한 서계서원은 조선 중기 문신 덕계 오건 선생(1521~1574)의 학문과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1606년(선조 39)에 한강 정구를 비롯한 사림이 창건하였다. 1677년(숙종 3)에 서계서원으로 선현을 배향하고 지방 교육을 담당했으며, 산음현(산청군의 옛 지명)의 유일한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921년에 복원되었다. 경내는 3칸의 창덕사를 비롯하여 4칸의 강당, 3칸의 부속 강당, 각 2칸의 동재와 서재, 대문, 3칸의 고사, 4칸의 태실로 구성되어 있다. 신성한 공간인 창덕사에는 오건 선생을 주향으로 봉안하고, 왼쪽에 오간과 박문영, 오른쪽에 오장의 위패를 각각 봉안하여 해마다 음력 4월 2일에 사림들이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건물 구조는 전형적인 서원의 배치 형태로서 솟을대문인 입덕루를 들어서면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있고, 그 뒤 강당인 서계서원이 있다. 강당 뒤로 창덕사가 있고 덕천재와 장판각, 비각이 축을 이루고 있다.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덕우지길 51

성천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성천서원

1703년(숙종 29)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성천 서원(星川書院)은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해 왔다. 1868년(고종 5)에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 동춘당 송준길은 율곡과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서인에 속했다. 진사에 급제하여 이조 판서, 찬선 등의 벼슬을 지냈다. 예설에 밝은 분으로 송시열 등과 뜻을 같이 했다. 공은 거창 마리면의 영승 서원과 문묘 등에 제향 되어 있고, 『동춘당집』 등의 저술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지금도 월성 마을 뒤에는 초당과 비가 세워져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계수나무길 18-47

소계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소계서원

소계서원은 조선 태종 때 유학자인 안몽득 선생과 그의 아들 안우, 안주, 안택 3형제, 임진왜란 공신 안근, 안수, 안시명, 안이명, 안신명 등을 추모하기 위하여 1783년(정조 7년) 광주 안씨 문중에서 건립한 서원이다. 서원은 국립 교육기관인 향교와 함께 유교의 경전을 가르치던 사설 교육기관이다. 교육활동 외에 선현에게 제사 지내는 일도 함께하였다. 교육 기능보다는 선현에 대한 제례 기능이 강조된 것이 사우이지만 조선 후기에는 서원과 사우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서원이 제례 위주의 사우가 되기도 하고, 사우가 서원처럼 되기도 하여 소계서원을 소계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로 38

소곡서당
역사관광경상남도

소곡서당

소곡서당은 1650년경 창건된 소곡서원이 창건 200여 년 후 퇴락됨에 따라 1856년 당초 서원 터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북쪽 산기슭에 지금의 소곡서당을 건축하고, 청민공, 노변소, 만취공, 참봉, 노침, 절효공, 진사, 노홍언 3인을 합향하다가 대원군의 서원 훼철 시 피해를 입었다. 소곡서당의 현 배치형태는 튼ㅁ자 형으로, 남북축선 상에 대문채와 강당을 두고, 그 정면 좌우에 관리사와 영사정이 자리 잡고 있다. 경내 영사정은 1825년에서 1830년경에 창건된 건물로, 1925년에 강당 동편으로 옮겨 중건되었으며, 1998년에 지붕 등을 크게 수리하였다고 한다. 1998년 강당 서편에 있는 관리사를 크게 수리함과 동시에 강당의 한식기와를 철거하고 대신 근년에 공장에서 암수 일체형으로 생산되는 간이기와를 매입하여 보수하였다. 대문채는 2000년에 정면 5간, 측면 1간 규모로 신축한 건물이다. 소곡서당과 관련하여 남쪽 500여 미터 지점에 청민공묘(기념물 153호)가 자리 잡고 있고, 북쪽 500m 지점에는 절효공 노침의 묘가 있다.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우천길 111

소노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소노서원

1835년(헌종 2)에 건립한 것으로 임진왜란 때 공이 많은 충신 정호인, 정호의 형제의 우국충정의 얼을 길이 새기고자 향중유림의 공의로서 양위 배향하기 위해 서원을 짓고 매년 가을에 향사하고 있으며, 1929년에 동래정씨문중에 의해 복원되었다. 그 후 상의사와 강당이 풍우에 퇴색되어 1985년 유림에서 사우를 중건하고 강당을 확장, 중건하였다. 서원은 국립 교육기관인 향교와 함께 유교의 경전을 가르치던 사설 교육기관이다. 교육활동 외에 선현에게 제사 지내는 일도 함께 하였다. 대부분 선현의 문하생이나 후손들이 선현을 기리고 그의 뜻을 이어받아 후학을 교육시키기 위해 설립하였다.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노2길 13-27

송담서원(김해)
역사관광경상남도

송담서원(김해)

송담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김해에서 의병을 일으켜 성을 지키다 전사한 4명의 의병장 김득기, 송빈, 유식, 이대형의 공을 기리는 묘단이다. 조선 선조 25년(1592) 부산에서 동래성을 함락한 왜적이 병력을 이끌고 김해성을 공격해 오자 당시 장군 서례원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니 네 의병장이 각기 의병들을 거느리고 성으로 들어가 적과 죽을힘을 다하여 싸우다 순절했는데, 이것이 임진의병의 시작이다. 숙종 34년(1708)에 송빈을 기리는 표충사가 주촌면에 세워졌다. 이후 정조 8년(1784)에 이대형, 김득기를 더해 세 명의 충신을 기리는 송담사가 진례면에 세워졌고, 순조 33년(1833)에 송담사는 표충사라는 이름으로 편액이 내려졌다.

경상남도 김해시 사충단길 25 (동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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