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47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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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사(홍성)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 용봉산의 북쪽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용봉사는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고찰의 하나이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로 속해 있다. 용과 봉황이 있는 산에 있는 사찰, 용봉산의 용봉사라는 그 이름조차 범상치 않다. 이 절은 확실한 창건연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없으나 각종 유물에 의해 백제 말 혹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의 앞쪽에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자리 잡고 있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처럼 용봉사는 홍성 지역의 사찰 중에서 종류와 내용이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고찰이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용봉산1길 109
용상사(파주)
용상사는 월롱산 남쪽 사면 중턱에 위치해 있다. 993년(성종 12), 1010년(현종 1)에 이어 1018년(현종 9)에 소배압이 거느린 40만의 거란군이 개성까지 쳐들어오게 되자 현종은 민간인의 차림으로 이곳 월롱산까지 피신하게 되었다. 다행히 강감찬이 귀주에서 승리하면서 나라 안이 평정되자 현종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절을 짓게 하고는 임금이 머물렀다는 뜻으로 용상사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 뒤 덕은화주가 1445년(세종 27)에 중건하였으며, 이때 소북석상을 인근 벽장굴에 조성해 봉안하였다. 임진왜란 때 승병의 도량이 되었는데 왜군의 시체가 근처 골짜기에 가득하여 한때는 ‘무덤골’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후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나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절 이름이 보이고 있고, 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에 보면 ‘절이 지금은 없어졌다’라는 말이 있어 임진왜란 이후 어느 때인가 폐사된 것으로 생각된다. 근대에는 1926년에 정염스님이 폐허가 된 절터에 사찰을 중건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현재의 용상사는 옛터에서 약간 아래쪽에 터를 닦아 해방 전에 중건되었고, 벽장굴에 있던 석불을 대웅전에 모시게 되었다. 1967년에 대웅전을 다시 개축하면서 서쪽에 삼성각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용상골길 403
용천사(청도)
비슬산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용천사(湧泉寺)는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옥천사(玉泉寺)라고 하였는데, 당시 옥천사는 해동화엄전교(海東華嚴傳敎)의 10대 사찰 중 한 곳이었다. 고려 원종 8년(1267)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선사(1202~1289)가 중창하여 불일사(佛日寺)라 하였다가 다시 용천사로 고쳤다. 임진왜란 후 조선 인조 9년(1631) 조영대사가 3중창 하였으며, 조선 순조 5년(1805) 의열화주가 크게 중수하였다. 해방 후 용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구교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편재되었다. 용천사는 맑고 풍부한 석간수가 끊임없이 용솟음쳐 흘러내리고 있어 용천(湧泉)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2012년 지거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9년 동안 봉직하며 목암, 공양간 건축, 경내 토목 공사정비, 각 전각의 단청 등을 완수하여 도량을 일신하였다. 전성기에는 1,0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였고, 부속 암자로들은 백련암, 청련암, 일련암, 남암, 서암, 내원암, 부도암, 도성암 등 47개소에 이르렀으나 무구한 세월 속에 사라지고 사찰에서 약 30m 떨어진 곳에 2m 높이의 부도 6기가 사찰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사찰 내 전각들 중 대웅전은 1631년 3중창 때 것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제295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대웅전 내 후불탱화 영산회상도는 보물 제1956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헐티로 1375-9

용화사(김포)
김포 용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로, 제방도로를 타고 강화 방면으로 가다가 누산리 평야가 시작되는 지점의 좌측, 운양산에 자리 잡고 있다. 강이 내려다 보이고 그 너머로 일산 신도시 일대가 한눈에 조망되는 아름다운 곳이다. 절의 창건연대는 대략 1405년(태종 5)으로, 뱃사공인 정도명이 조공을 배에 가득 싣고 오다가 간조로 인하여 운양산 앞에 배를 대게 되었는데, 그날 밤 부처가 꿈에 나타나 대어놓은 배 밑쪽에 석불이 있으니 잘 모시라 하여 이를 모시고 자신도 삭발수도하게 되었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비교적 높은 석축 위에 동서로 50m, 남북으로 30m에 이르는 대지 위에 용화전이 자리하고 있으며, 용화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의 단층 목조건물로서 팔작지붕으로 된 기와집이다. 5층석탑은 높이 약 5m에 달하며, 회백색 화강암 재질로써 옥개받침은 5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화전의 상단에 모셔져 있는 석불은 용화사의 창건설화에 나오는 미륵석불로 조선 초기 불상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2004년 8월 김포시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김포시 금포로 1487-5 (운양동)

용화사(안성)
안성 용화사는 안성시 미양면 법전리에 자리한 사찰이다. 나지막하고 완만한 경사를 이룬 산 사이로 좁은 들이 펼쳐지는 이곳의 지형 특성에 따라 지어진 용화사는 산사보다는 한적한 시골마을의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절의 창건은 1902년 소현 스님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그 인연에는 스님의 꿈과 연관된 일화가 있다. 불학을 공부하고 포교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스님은 그 첫날밤에 종산에서 용이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용은 하늘로 오르면서 무슨 미련이 있는지 자꾸 자신이 솟아오른 땅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꿈속에서 보았던 터전에 지금의 용화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사찰의 건물로는 용화전과 요사채 2동이 있다. 법당 내 오른쪽에 석조여래 입상과 작은 바위가 세워져 있는데, 이 불상과 바위에 관해서는 남녀 미륵불이 땅속에서 솟아날 때, 지나가는 행인이 여 미륵 위에 소변을 누는 바람에 미륵불이 못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어 임신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해 많이 찾아온다. 용화사에 핵심인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앞쪽에 큰 석조 불상이 있고 뒤쪽에는 그보다 작은 크기의 바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앞쪽의 큰 석불이 남 미륵이고 뒤쪽에 자리한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바위는 여 미륵이다.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얼굴 윤곽은 뚜렷하나 이목구비 등이 많이 닳고 훼손되어 있다. 정확한 이미지를 쉽게 그려볼 수는 없으나 팔, 법의 등 조성된 양식으로 추정해 보았을 때 고려 시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법전길 260-31
용화사(진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용화사는 신라 성덕왕 19년에 만들어진 숭덕불상을 모시기 위해 처음에는 미륵불당으로 세워졌다. 하지만 조선 시대 때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할 때 절은 없어지고 이석불만 외롭게 서 있다가 1959년에 기해 10월에 한자심에 의해 법당, 요사채를 각 3칸씩 짓고, 1965년 을사 10월에 법당을 중수하고 용화사라 이름 지었다. 경내에는 도지정 제138호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높이 7m의 커다란 불상으로 타원형의 얼굴에 은근한 미소가 보인다. 목에는 3줄로 새겨진 삼도(三道)가 있고 그 아래에 표현된 목걸이 장식은 얼굴과 함께 불상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신체는 부피감이 거의 없는 커다란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옷은 가슴을 드러낸 채 양 어깨에 걸쳐 입었고 하체에는 U자 모양의 주름을 겹쳐 나타냈다. 가슴 앞에 들고 있는 오른손이나, 연꽃을 들고 배에 댄 왼손은 작게 표현되었다. 거대한 크기, 부피감 없는 사각형태, 빈약한 세부표현에서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소강정1길 83

용화사(청주)
용화사는 청주 무심천변에 자리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다. 선덕여왕 때 은점선사가 처음 지었으며, 조선 인조 6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영조 18년(1752) 벽담선사가 다시 짓고 용화사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경내에는 보광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용화전, 탐진당, 적묵당, 해월루 등 목조건물과 불사리 4 사자 법륜탑, 효봉스님 사리탑이 있다. 불사리 4 사자 법륜탑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 양식의 원주 석탑으로, 진신사리 7 과가 봉안되어 있다. 산내 암자로는 고려 태조 26년(943) 도솔선사가 세웠다는 도솔암, 조선 숙종 7년(1681) 청안선사가 세웠다는 관음암이 있다. 용화사에는 1902년 고종의 비인 순빈 엄 씨가 명하여 발견했다는 칠존의 석불이 안치되어 있으며, 상당산성 안에 있던 보국사를 옮겨 이 절을 지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곳은 일반 사찰과 달리 시내 가운데에 있어 누구나 편히 방문할 수 있으며,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절에서 묵으며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지기 좋다. 봄에는 사찰 주위의 무심천에서 벚꽃축제가 열린다.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무심서로 565

용화사(김천)
용화사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찰이지만, 예로부터 있어 왔던 사찰터에 근래 새롭게 중창한 관음기도도량이다. 신라시대부터 절이 있던 자리로, 일명 ‘미륵당’이라고도 하는데, 오랫동안 폐허 또는 일반 민가로 있다가 1927년 백연수 보살이 현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금릉덕천리석조관음보살입상’을 옮겨와 불당을 세워 사찰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1952년 박광명화 보살이 용화전과 요사 등을 건립하여 중창하였으나 용화전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환어스님에 이어 덕기스님이 주지를 맡았으며 1996년 대웅전, 관음전, 삼성각 등을 지으며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봉산1로 160

용화사(고창)
용화사는 대산면 연화마을 뒤편 야트막한 구릉에 자리한 한국불교태고종 사찰로 1950년에 세워졌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근현대 사찰이지만 꿈속에서 ‘산속에 내가 묻혀 있으니 나를 모셔다 절을 지으라’는 현몽을 통해 용화사를 건립했다고 한다. 용화사 미륵전에는 전라북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용호사 미륵석불입상(미륵여래입상)이 본존으로 봉안되어 있다. 용화사 미륵석불입상은 얼굴이 크고 신체표현이 섬세하지 않은 고려시대 이후 거불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시대 불상이다. 2001년 개축한 정면 3칸·측면 2칸의 대웅전에 주존불인 석가여래좌상과 협시보살인 세지보살·관음보살 그리고 지장보살좌상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대산면 연화길 88-56

용화사(담양)
담양 용화사는 1934년 갑술년에 백양사 차학신 스님께서 백양사 포교당으로 출발한 것을 시작으로 어려운 여건으로 민가에 팔렸다. 그 후 담양 불교청년회와 신도회 등이 1945년 해방 전까지 백양사 청류암에 주석하셨던 백양사 묵담 큰스님께 깊은 산중에 계시느니 가까운 읍내로 내려오시어 교화해 달라고 권청한 것을 계기로 다시 세워졌다. 당시 임야 6천 평, 대지 6백 평의 초가집 2동 등을 매입하여 담양군 담양읍 남산리 106번지에 사찰을 창건하여 용화사라 하였다. 2대 주지 덕봉지광스님이 미륵전, 칠성각, 종각, 요사를 세웠으며 1997년 대웅전을 건립하고 본존 석가모니불, 문수, 보현 양대보살과 1천관세음보살, 후불탱화, 신중탱화, 지장탱화를 조성 봉안하였다. 묵담 대종사 유물관에는 보물 제737호 불조역대통재를 포함하여 다양한 유적들이 소장되어 있다. 불조역대통재는 석가여래 탄생부터 원통 2년 사이 학덕이 높은 스님들의 전기를 연대순으로 적어놓은 책으로 전권을 빠짐없이 갖춘 유일한 것으로 조선 전기의 목판인쇄술과 왕실의 불교신앙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담양읍 남촌길 77

용흥사(상주)
용흥사(龍興寺)는 갑장산 서편 중턱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산하의 전통사찰이다. 신라 문성왕 원년(839년) 진감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1968년 극락보전을 해체 보수할 때 발견된 기문에 의하면 고려 말 나옹화상이 창건한 후 1647년(인조 25) 법인화스님이 중창하고, 1680년(숙종 6)에 사유·홍치 두 스님이 두 번째 중수하였으며, 1707년(숙종 33)에 사준·도인 두 스님이 세 번째 중수, 1806년(순조 6)에 네 번째 중수, 그 후 161년 만에 다섯 번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극락보전에 관한 내력이다. 경내에는 극락보전, 나한전, 삼성각, 승방, 백운선원 등의 전각이 배치되었고, 경내에 선 오층석탑은 1976년 6월 30일, 극락보전에 봉안된 탱화에서 발견된 사리를 이 탑에 봉안하여 세운 것이다. 봉안하고 있는 괘불은 1684년(숙종 10년)에 제작된 것이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불, 왼쪽에는 약사불을 둔 삼존불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지천1길 223-35 (지천동)

용흥사(담양)
용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백제 때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본래는 ‘용구사’라 했는데, 조선 숙종(1674∼1720) 때 숙빈 최씨가 이 절에서 기도한 뒤 영조를 낳자 이후 절 이름을 용흥사로 바꾸었으며, 산 이름도 몽성산으로 고쳐 불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50여 년간 절이 발전하여 한때 산내 암자만도 7개나 있었고 큰스님도 머무르며 불법을 폈다고 한다. 19세기말에 의병의 본거지로 쓰이다가 불에 탄 것을 박항래가 중건하였다. 1930년대에 백양사 승려 정신이 대웅전과 요사채를 세웠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다시 불에 탔다. 1957년에 중창하고 1970년대에 대웅전을 새로 지었으며, 1990년대부터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용흥사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채 2동이 있다. 이 중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과 산신상, 영산후불탱화를 비롯하여 칠성, 독성,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으며, 제석천룡 도와동종, 소종 등도 놓여 있다. 유물로는 보물로 지정된 용흥사범종이 잘 알려져 있다. 1644년(인조 22) 조성된 것으로 종신에 적힌 명문에 따르면, 당시까지 절 이름은 용구사였음을 알 수 있다. 높이 78㎝, 입지름 66㎝로서 조각기법이 매우 뛰어나다. 절 입구 극락교 왼편에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용흥사부도군이 있다. 7기 모두 팔각원당형 부도로 퇴암의 부도가 1717년(숙종 43) 조성되어 가장 오래되었다. 그밖에 희옥과 일옥, 쌍인 등의 부도가 전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월산면 용흥사길 442

우곡사(창원)
우곡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단계리의 전단산 기슭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이다. 우곡사[牛谷寺)] 인근의 성주사[聖住寺]·성흥사[聖興寺]와 함께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한 신라 고찰로 알려져 있지만, 창건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우곡사가 자리 잡은 전단산이 불교와 관계 깊은 지명이라는 점, 낙동강을 낀 곡창과 왜구를 막아주는 산악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병참기지의 역할을 했으리라는 점 등으로 창건 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우곡사 경내를 들어서는 초입에는 벼락 맞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둘레가 네 아름이나 되고 키가 30m를 넘었다고 전하지만, 지금은 속이 시커멓게 타버린 채 두 길 높이 이상은 자취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벼락을 맞은 부분은 불에 타서 까맣게 죽고 말았지만 바로 그 옆자리에 새로운 싹을 틔워 줄기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팔뚝이나 허벅지만 한 굵기의 이 줄기들은 다시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고 있다. 이 은행나무의 모습은 우곡사와 너무도 닮아 있다. 가람 또한 신라시대에 창건하여 흥망성쇠를 거듭하였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법등을 꾸준히 이으면서 새롭게 발돋음하고 있으니 말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자여로 459

운대암(남해)
남해군 창선면에 위치한 운대암은 고려 초 망경암이라 불리며 대방산 중턱에 창건된 사찰이다. 아침에 기도하면 저녁에 영험을 보는 제일의 기도 도량으로 번창하여 오던 중 조선시대에 운대암이라 개칭되었다. 상좌중이 낙상 사망하여 한 동안 절이 비었다가 임진왜란 후에 세월선사가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법정화상께서 원력을 세우고 불심이 깊은 신도를 얻고자 일 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대작불사를 하였으며 법당(무량수전)과 산신각을 1990년 12월에 완공하였다.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창선로153번길 240

운람사(의성)
※ 25년 3월 산불로 인해 보광전 등 건물 일부가 전소되어 방문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text202503{ COLOR: #FF0000; } 운람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 소속 사찰이다. 신라 제31대 신문왕 때에 의상 대사가 창건하였다. 운람이라는 사찰의 이름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천등산 첩첩산중 깊은 계곡에 위치하여 아지랑이가 마치 구름같이 피어오른다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구름과 바람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운람사 창건 이후의 자세한 변천 과정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보광전의 목조아미타 여래좌상과 복장 유물에 따르면 1602년(선조 35)과 1704년(숙종 30)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741년(영조 17)에 지장 탱화, 1774년에 반자, 1827년(순조 27)에 산신 탱화를 조성하였으며, 1999년에는 보광전을 중창하였다. 운람사의 경내에는 3층 석탑과 보광전을 중심으로 산왕각, 식암당, 조당, 객당 등이 있다. 보광전 내부에는 주불인 아미타불과 왼편의 관세음보살, 오른편의 대세지보살 등 금동 삼존 여래 좌상이 조성되어 있는데, 좌우의 협시보살은 화관을 쓴 모습을 하고 있다. 3층 석탑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높이 3.39m이다. 보광전 옆에 있는 산왕각의 내부에는 1827년에 조성한 산신 탱화가 있었으나 오래되어 1977년에 다시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삼성각에는 최근 조성한 칠성 탱화, 산신 탱화, 독성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1774년(영조 50)에 제작된 반자가 요사채 처마 아래에 걸려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신안2길 223

운수사(부산)
운수사는 부산광역시 사상구 백양산에 자리한 사찰로, 가야국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신수암으로 불렸으나 18세기 이전에 운수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가람이 전소되고 1660년 현재의 대웅전이 중수되었다. 현재 운수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로 삼성각, 용왕각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심검당과 세진당이 자리하고 있다. 운수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유형문화재인 대웅전 석조여래 삼존좌상, 문화재자료인 아미타 삼존도 등의 문화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불교 성지와 유적지 탐방, 차 덖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와 재가신도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불교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로219번길 173

테이블플라워
테이블플라워는 2011년 낡은 가옥을 리모델링하며 독창적인 문화 예술 마을로 거듭난 부산 영도의 흰여울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다운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는 매장은 바다가 잘 보이는 사진 명소가 마련되어 있다. 테이블플라워의 사장님은 '화훼 장식 기능사'이며 아동미술 전공 '미술 심리치료사' 자격증도 소지하여 성인 뿐 아니라 아동들을 위한 체험도 준비되어 있다. 어린이를 위한 꽃다발로 초콜릿 꽃다발이나 각종 캐릭터 꽃다발도 준비되어 있으며 누구든지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부산광역시 영도구 절영로 248-1 (영선동4가)

운심사(군산)
운심사는 1919년 일제강점기 한국인 이종선이 세운 사찰로 한국불교태고종 사찰이다. 대야면 산월리 백산 남쪽 야트막한 중턱에 창건했다. 경내는 그다지 넓지 않고 전각들도 고만고만하다. 운심사의 아름다움은 사찰의 삶을 영위하는 텃밭과 절집을 꾸민 꽃밭에서 찾을 수 있다.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자연 주초 위에 두리기둥이고 주심포 형식의 조그마한 팔작지붕 건물이다. 편액이나 주련이 없고, 내외부에 단청이 칠해져 있으나 단순한 것이 특징이다. 내부에는 중앙에 석가여래상과 미륵보살, 관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는 1989년에 조성된 석조 미륵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입상인 석조 미륵 불상은 앙련 대좌 위에 세워져 있는데, 불상의 높이가 19척이나 된다. 대웅전의 작은 규모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지만, 얼굴은 작고 귀염성이 있다. 요사채는 원래 이 절의 중심에 있던 법당이었다 한다. 한편 용왕상(龍王像)은 2000년 10월 26일 세운 것으로 대웅전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대야면 오동길 30-28

운암사(문경)
운암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경북 문경시 불정동 재악산 정상 부근에 있다. 678년(신라 문무왕 17)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폐허가 된 것을 1658년(효종 9) 영준이 복원하였다. 이후 1666년(현종 6) 해특이 극락전을 중건하였으며, 1785년(정조 9) 인월이 중창하고, 1972년부터 4년간 대대적인 불사를 진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건물로는 극락전과 산신각, 삼성각, 안양문,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유물로는 높이 81㎝의 정월당 부도와 높이 107㎝의 정봉당 부도가 전한다. 모두 석종형으로 조선 후기 작품이다. 마을 초입에서 1.3㎞, 먼 거리는 아니지만 재악산을 조금은 가파롭게 올라 거의 산 정상 가까이에 위치한 운암사에 들어서면 약수물을 마셔야 한다. 재악산이 약수산이라고도 불릴 만큼 이곳의 물은 효험있고 맛있기로 소문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운암사 초입, 불정(佛井)이라는 마을의 이름 역시 좋은 물 때문에 생겨났다. 불정동에 들어서면 마을의 보호수인 수령 300년 된 느티나무 앞에 마을 지명 유래비가 서있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거신이라는 사람의 집 근처 조그마한 암자에서 수도를 하던 스님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암자의 우물물이 마르자 이상하게 여겨 근처를 살펴보다가 맑고 깨끗한 물이 솟아나는 샘을 발견하고 샘 안을 들여다보니 돌부처가 한가운데 앉아있는지라 돌부처를 암자로 옮겨 봉안하고 그 후부터 이 샘을 부처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경상북도 문경시 불정길 149-123

운용사(충북)
운용사는 청주 삼불산 아래에 위치한 사찰이다. 현재의 사찰에서 1km가량 떨어진 절터골에서 석조여래좌상이 발견된 것이 인연이 되어 운용사를 건립했다. 작은 암자와 같은 규모로 사찰이 경영되고 있어,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산속에 아담하게 마련된 곳이라 찾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얼굴에 마모가 있으나 그 외의 다른 부분은 매우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어 불상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석조여래좌상이 발견된 절터골에서는 아직까지도 세월이 오래된 듯한 기와조각이 발견되나, 아직까지 그곳에 어떤 절이 경영되었고, 언제 창건되어 언제 폐사되었는지에 대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운용사 소장 백의관음보살 후불도는 19세기말∼20세기 전반 마곡사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활동한 화승 금호당 약효가 1904년에 조성한 불화로 관음보살을 외호 하는 보살들과 제자들, 사천왕을 표현한 작품이다. 본래 보살사 자운암에 봉안되었던 불화로 관음보살과 아미타불을 일체화하는 교리를 표현한 새로운 형태이고 백의관음 머리 위로 흩날리는 듯한 천의 표현은 약효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운용길 27-4

양촌 와이너리
양촌 와이너리는 지역 특산품인 감과 딸기를 활용해 독특한 와인을 제조하는 곳으로 유명하며, 2023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어 충남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인정받았다. 대표 제품으로는 감와인 ‘추시’, 감소주 ‘아치 23’, 딸기 스파클링 와인 ‘베리 서프라이즈’가 있다. ‘추시’는 세계 최초의 홍시 와인으로 감의 탄닌을 살려 3-5년간 숙성시켜 만든다. 와이너리 내에는 시음실과 셀러가 있어 다양한 와인을 맛볼 수 있으며, 인근의 송어 양식장과 감 농장에서 송어 요리와 감 따기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정기적으로 와인 시음회, 견학 프로그램, 와인&재즈 페스티벌 등의 문화 행사를 개최하여 지역 관광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양촌 와이너리는 한국적인 재료로 만든 와인을 통해 전통주의 현대화와 지역 농산물의 가치 증대를 실현하고 있는 곳으로 와인 애호가와 지역 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황산벌로 1075-21

과자의성
과자의 성은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에 위치한 복합문화 공간이자 랜드마크이다. 이곳은 단순한 과자 공장을 넘어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과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보이는 빵 공장에서는 방문객들이 제조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으며, 동화&베이킹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루프탑 카페에서는 울산바위가 보이는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고, 기념품샵에서는 다양한 과자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제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으며, 강원다래빵은 맛있기로 유명하다. 소규모 베이커리들의 제품 개발과 생산을 지원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미시령로 3010 (노학동)
운흥사(대구)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에 위치한 운흥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이다. 비슬산에서 뻗어 솟구친 최정산 중턱에 자리하며, 아래로는 대구의 상수원인 가창댐을 굽어보고 주위는 울창한 숲이 드리워져 있다. 운흥사의 창건은 신라 흥덕왕 때인 832년에 운수화상에 의해 동림사로 개산하여 1620년 조선 광해군 12년 무념스님이 중수하여 수암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751년 조선 영조 27년 치화대사가 지금의 위치인 최정산 정산 인근에 옮겨 중수하면서 운흥사로 부르게 되었다. 1760년 무렵에 간행한 여지도서에 운흥사가 실려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당 송운대사가 이곳에서 승병 300여 명을 지휘하여 왜적과 싸웠다고 전해진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 요사채 5동이 있다. 수목이 울창하고 계곡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특히 대웅전 안에는 1653년(효종 4)에 조각승 도우(道祐)가 조성한 대구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2014년에 보물로 지정되었고 대구광역시 전통사찰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헐티로 1068

원각사(구미)
원각사는 구미 비봉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대한 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비봉산의 중심에는 형제봉이 있고, 형제봉의 좌측은 미타산이며 우측은 비봉산이다. 1931년 일제시대 당시 도리사의 주지였던 하정광 스님이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고 개축하여 민족의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설립한 사찰이다. 처음에는 사찰이라는 허가가 되지 않아 선산포교당으로 시작하였으며 후에 원각사가 되었다. 원각사 주 전각인 원통전에 봉안한 목조 보살좌상은 조선시대인 1649년에 조성한 유서 깊은 불상이다. 창건 당시 구미시 무을면의 수다사에서 이운하여 봉안하였다. 보관이 화려하고 조각이 뛰어나며, 1999년 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997년 주지 대혜스님이 요사채 4동, 석축, 진입로 공사, 마당 확장 성역화 중창불사를 하여 지금에 이른다. 절은 산 밑에 위치하지만 마을과 가까이에 있어 법회나 참배가 쉽고 주민들이 저녁 산책을 나와 잠깐이라도 절 마당을 걸어볼 수가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선주로9길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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